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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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론과 시계, 그리고 감태의 탐험대에 대한 감동을 정리하고 그와 관련된 제도의 정비에 대한 명을 내린 뒤, 몽주가 집중한 건 혼인 제도와 상속 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이걸 보니 최근에 이를수록 첩을 들이는 사내들이 많아진 것 같군.”
“그렇습니다.”
몽주의 집무실에 재판청장 흥아필이 있었다.
그에게 혼인과 상속에 관한 판례를 정리하여 보고하라는 명을 내린 지 닷새 만에 장계가 있었으니, 몽주가 그것을 훑어본 뒤 다음 날 그를 호출한 것이었다.
재판청에서 올린 장계의 내용 중 가장 확실한 건 외도나 작첩(作妾 : 첩을 들임)으로 인한 가족 내 분쟁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이제 첩실을 들이면 관직을 얻지 못한다는 제약 정도로는 사내들의 욕망을 제어할 수 없겠지.”
“관리가 되지 않아도 출세할 길이 많아졌으니, 응당 그럴 만도 합니다.”
과거 고려에서 축첩하는 일이 의외로 드물었던 것은 첩을 들이면 관직에 나서지 못하고, 가지고 있던 관직에서도 낙오해야 한다는 문화적인 성토 때문이었다.
과거 첩을 들일 만큼 여유가 있는 사내들은 모두 관직에 나서길 희망하였고, 사회적으로 출세할 수 있는 길이 대개 관직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상당히 강력한 제재였다.
하나, 탐라국이 양적, 질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생성된 사회적 분화로 더 이상 관직만이 출세의 전부가 아니게 되었으니, 작첩에 대한 과거의 문화적인 제재와 성토는 더는 강력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외도하는 자들이야 늘 있기 마련이겠으나, 그로 인한 고소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고.”
“예, 상속이 복잡해지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 상속이 문제지.”
솔직히 첫 천몽의 경험이 없이, 그저 현대 한국의 보편적인 가치관만 가지고 있었다면 몽주는 두 번째 천몽을 시작하면서 고려 사회의 ‘문란’함에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성적으로 상당히 개방적인 당대 문화는 비단 미혼의 남녀에 국한되지 않고, 기혼 남녀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오히려 몽주와 앵도의 금슬이 특이한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추앙받는 부분이기도 하였다.
어쨌든 외도하는 자들이 많은 건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최근에 이를수록 그와 관련된 분쟁이 늘어난 건 바로 상속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상속할 재산이 있는 자들의 외도로 생긴 문제는 가문에서 알아서 해결하였고, 상속할 거리가 없는 대부분의 백성들은 대놓고 말해 외도로 낳은 자식임을 알더라도 그냥 모른 척하였다.
전형적인 농경 사회에서 자식이 중요한 노동력임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었다.
한데, 최근에 이르면서 탐라국이 전형적인 농경 사회에서 탈피하고, 백성들 중 다수가 상속할 만한 재산을 가지게 된 바, 외도로 생긴 자식으로 인한 가족의 분쟁이 상속권 분쟁으로 직결되는 경우가 증가했다.
결국 혼인 문제는 곧 상속 문제임이 분명했고, 혼인 제도와 상속 제도 또한 상호 연결하여 정비해야 마땅했다.
“내가 보기에 이제껏 상속 분쟁에 대한 판례는 옳은 길을 따랐다고 보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아마 백성들의 대다수도 그에 동의할 것입니다.”
상속 분쟁에 대한 재판청의 판례는 일관적이었다.
1/N.
즉, 부모의 재산을 자식이 골고루 나눠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실제 문화적으로도 고려의 상속은 대개 그에 따라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정확하게 1/N으로 나누기보다는 아들 중 하나, 보통 장자에게 조금 더 많은 유산이 돌아가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다른 자식들 또한 그에 버금가는 상속을 받고 있었다.
하여, 재판청은 특정 자식에게 유산이 집중된 경우에만 1/N로 나누도록 판결하고, 좀 더 많은 유산을 얻은 자식이 있어도 전반적으로 골고루 상속된 경우는 부모의 상속 결정을 존중해 주는 식으로 판례를 쌓아 왔다.
그렇게 문화적으로, 그리고 판례의 축적으로 생성된 상속 제도는 굳이 바꿀 필요도 없고, 바꿔서도 안 되는 부분이라는 게 몽주의 생각이었다.
“하면, 상속 제도에 맞춰 혼인 제도를 정비하는 게 맞겠지.”
“관건은 다처(多妻)와 작첩(作妾)을 허용할지, 그로부터 낳은 자식을 본처의 자식과 동등하게 대우할지에 대한 판단일 것입니다.”
“…….”
문득 몽주는 경계적 괴리감을 느껴야 했다.
외도 문제를 떼어 내고 생각하면, 또 사회적 지탄을 받는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확고한 일부일처제 사회에서 성장한 현대의 몽주와 제도 따위는 필요 없이 모든 문제가 부족장과 몇몇 장로의 판단으로 해결되었던 첫 천몽 속 몽주 사이에 놓인 경계감이었다.
하여 솔직히 그냥 뒤로 미뤄 두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사회가 산업화, 근대화될수록 일부일처제는 정해진 운명이라 보기에 뒤로 미룰수록 판단하기 편리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나, 산업화를 가속한 죄(?)를 지은 당사자로서, 그에 따른 문화지체 상황을 그저 모른 척하고 남겨 둘 수는 없었다.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몽주가 이맛살을 잔뜩 찌푸린 채 한참 고심하고 있자, 흥아필이 물었다.
“말해 보게.”
“천리에 따라 가족 문제에 있어 관건은 남성에게 있습니다.”
“그렇지. 그래서 다처와 축첩을 두고 고심하는 것 아닌가.”
한데, 고려에는 여성이 중심인 가족도 적지 않았다. 부부의 사유 재산이 독립적인 만큼 여성이 압도적인 족내 ‘파워’를 가진 가족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럴 경우, 여성이 오히려 여러 남편이나 애인을 두었는데, 감정적인 면을 제외하면 사회적으로는 별문제를 발생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차피 아이를 낳는 건 여인이라, 상속의 대상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나주에 상선을 이십여 척 가진, 부유한 홍씨 여인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공식적으로 혼인하진 않았으나, 사실상 남편이 넷이나 되지요. 모두 같이 살고 있고, 그들 사이에 낳은 자식도 여섯이라지요.”
“오호.”
남편이나 애인을 여럿 거느린 여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으나, 구체적인 이야기는 처음이라 꽤 흥미로웠다.
홍씨 여인 같은 경우가 가능했던 것은 탐라국에 ‘조선’식 호주제가 없기 때문이었다.
2년 안에 해야 하는 출생 신고도 아비 없이 어미 아래에 둘 수 있었고, 이 경우 성씨 또한 어미를 따르게 된다.
문화적으로도 충분히 수긍할 만한 일이고, 과거 성씨 도입과 함께 출생 신고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아비 없는 가족이 많았던 탓에 자연히 그렇게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한데, 홍씨 여인의 가족은 주변에서도 인정할 정도로 화목하다 합니다. 심지어 그 남편들 사이도 절친하다고 하고, 서로 아비가 다른 자식들도 친형제나 다름없다지요.”
“그 여인이 가족을 아주 잘 이끄는 모양이구려.”
“그럴 것입니다. 하나,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 아닙니까. 하여, 여러 사람이 그 비법에 대해 물었고, 그러다 마침내 답을 얻었다 합니다.”
“뭐라던가?”
“그 홍씨 여인은 남편들을 들일 때마다 약계를 맺었다 합니다.”
“약계?”
“예, 차후에 다른 남편이나 연인을 둘 수 있으니, 그에 불만을 가지지 말라는 약계였던 게지요. 응하지 않으면 그를 거두지 않을 것이고, 응해 놓고 차후에 질투나 시기로 말썽을 부리면 가차 없이 내쫓겠다는 엄포를 놓은 겁니다. 결국, 사내들끼리도 차라리 서로 화목한 게 나았으니, 절로 가족의 분위기도 화목해진 것이지요.”
“허…….”
몽주는 새삼 놀라면서 동시에 그 홍씨 여인이라는 이에 대해 감탄하였다. 그것도 일종의 여장부라 할 만하지 않은가 싶었던 것이다.
“한데, 그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는 이유가 다처와 축첩을 약계로 해결하자는 뜻에 있는가?”
“그렇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상속을 약계로 삼는 데 있다고 봅니다.”
“음?”
“다시 홍씨 여인의 경우로 살피면, 그 여인은 남편들이 따로 연인을 가지는 것도 상관치 않았다 합니다. 대신 그로 인해 생기는 자식은 사내의 재산만 상속할 수 있게 약계를 두었다지요.”
“그렇겠지, 어차피 약계를 맺었다 하면 말이야.”
“하면, 이는 결국 모든 가족에게도 통용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겠습니까.”
“…….”
흥 청장의 말은 사내가 중심인 가족 또한 처음 혼인할 때, 만약 사내의 외도나 다처로 낳은 다른 자식에게는 부인의 재산은 상속되지 않도록 정하자는 것이었다.
이는 당대의 상속 제도가 남녀와 장차(長次)를 구별하지 않고 비교적 골고루 분배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기본적으로 현재 상속 제도는 부부의 재산이 합산되어 처리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부모가 같이 사망할 경우든 한쪽이 먼저 사망할 경우든, 두 부부 사이에 생긴 자식들에게 재산이 상속되거나, 반대로 배제될 경우 자연히 자식들 간에 분쟁이 생기는 것이다.
“한데, 그리하면 외도를 부추기는 셈이지 않은가? 외도를 막지 못하는 건 그렇다 해도 부추기는 건 마땅치 않다고 보네만?”
어차피 상속이 부부 각별로 이뤄지면, 남편이든 아내든 외도하는 데 부담이 줄 테니, 몽주가 보기엔 그건 외도를 부추기는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건 상속 이전에 가족의 경제부터 부담을 증가시키는 짓입니다. 외도에도 비용이 드니까요. 만약 부부 사이 일방이 가족 경제에 해를 끼칠 정도로 외도에 낭비를 한다면 다른 일방은 이혼을 신청할 것이고, 재판청을 비롯하여 나라에서 그것을 인정하면 될 것입니다.”
“아…….”
그 순간, 몽주는 괴리감을 넘어 소외감마저 느꼈다. 천몽 속 35년 가까운 삶과 무관하게 현대적 가치관 또한 가지고 있는 몽주만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혼인이란, 결혼이란 무엇인가.’
당대의 혼인은 그 본질이 오히려 분명했다.
‘가족 경제 규모의 확대와 상속 대상의 한정.’
결혼을 사랑의 결실이라고 교육하는, 심지어 세뇌한다고 표현해도 될 만한 현대 사회의 시선으로 본다면 경악할 정도로 솔직한 당대의 혼인이었지만, 그래서 더 본질에 가까운 것인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대에서도 결혼은 현실이라 공공연히 말하지 않던가.
그 또한 문화적으로 치장된 결혼의 본질을 우회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리라.
혼인에 대한 문화적인 왜곡과 치장이 거의 없는 당대인 만큼, 흥 청장은 몽주의 현대적 가치관으로는 쉽게 떠올리거나 언급할 수 없는, 아주 과감하고 단순한 방안을 제시했다.
부부 개인별로 상속함으로써 상속 대상을 구별하고, 외도든 뭐든, 가족 경제에 해를 끼친 일방에게 혼인의 결격 사유가 있음을 인정하여 다른 일방에게 이혼 시 이점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혼을 포함한 혼인 제도와 상속 제도의 정리가 그 자리에서 결정되지는 않았다.
몇 년에 걸쳐 수많은 이들과 논의, 토론하고 탐라 순보를 통해 여론을 형성, 파악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나, 결과적으로 정비된 제도적 결과물은 몽주와 흥 청장 사이에 오고 간 이야기와 별다를 바가 없었다.
국가적 제도로서의 혼인은 그저 지극히 냉정하고 계산적인 약속으로서 최소한의 규범으로만 작동하였으니, 작첩 금지와 부부 각별 재산권 및 상속권 보장 정도가 사실상 전부였다.
그 외의 부분에 있어서는 부부 간, 집안 간의 약계인 ‘결혼 계약서’를 통해 합의하여 가족을 구성하게 되었으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부일처이나, 일부다처, 혹은 일처다부의 가족 또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고, 혼외정사 또한 ‘결혼 계약서’에 따라 문제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물론, 모든 이들이 그런 제도적 상황에 만족한 건 아니었다.
적어도 한 사람은 죽는 그날까지도 적응하지 못했으니, 그저 그 제도가 결과적으로 만들어 내는 보다 안정적인 사회 상황에만 만족할 따름이었다.
* * *
명나라 성영제는 근래에 이르러서야 편안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아니, 편안함을 떠나 적어도 악몽은 꾸지 않을 수 있었다.
언제나 불안하고 쫓기는 기분을 떨치지 못했던 그였지만, 10년이 넘는 치세 끝에 이제 명나라가 안정되어 가자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더 이상 반란은 없었고, 물가도 안정세를 찾았으며, 물산의 생산량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군대는 더 강력해졌고 명령 체계도 보다 확고해졌다.
귀족들은 권력에서 거세되었고, 모든 신료가 그의 명에 복종하였다.
적어도 내치에 있어서만큼은 이제 성영제는 이전 중국의 역사상 존재했던 그 어떤 천자도 부럽지 않다 자부할 수 있었다.
하나, 천자가 천자인 이유에는 그저 내치만이 전부가 아니니, 외교적 상황까지 통틀어 보면 성영제는 아직 반쪽짜리거나, 그 이하의 천자에 불과했다.
사방이 적국 내지 경쟁국에 둘러싸여 있고, 그 어떤 조공국도 얻지 못한 당금의 상황에서 성영제는 더 이상 천자라 할 수 없었고, 명나라는 천자국이 아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찾아와 조공을 바치길 청하는 나라가 있었으니, 성영제로서는 기꺼워하면서도 의아해 하고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섬라국은 약 육십 년 전에 건국되었으며 그 영토는 점파국과 난상국의 서편에 위치하고 있사옵니다.”
섬라국(暹羅國 : 시암국, 태국)의 사신을 먼저 만난 예조상서는 성영제의 명에 따라 상황을 고하였다.
“섬라의 사신이 말하길, 이제껏 나라를 안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고, 이제야 여유가 생겨 대국을 받들 준비가 되었다 하였사옵니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군. 그렇지 않은가?”
“그러하옵니다. 보고에 의하면 근래에 점파국이 섬라국을 크게 공격하였다 하옵니다. 아마도 섬라국은 상황이 좋지 않자, 위급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하여 폐하께 보호를 청하고자 하는 것으로 사료되옵나이다.”
성영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이해하였음을 피력하였다.
이제껏 모른 척하다가 상황이 좋지 않게 되자, 그제야 찾아온 섬라국이 괘씸했지만, 그렇다고 그 이유만으로 내칠 생각은 없었다.
성영제도 대명의 위업만으로 모든 외교적 상황을 관철시킬 수 없음을 깨달았고, 무엇보다 명나라는 단 하나의 ‘아군’이라도 아쉬웠기 때문이다.
“혹시 그들이 당장에 바라는 것이 있다고 보는가?”
“그렇지는 않사옵니다. 지금 온 사신들도 그저 조공을 윤허 받기를 청할 따름이었나이다. 다만, 다음번에는 무어라도 다른 청이 있을 것이옵니다.”
예조상서의 말을 들은 성영제의 시선이 좌측으로 슬쩍 돌아갔다.
그 자리는 천자와 예조상서 간의 독대 자리가 아니었으니, 호위를 제외하더라도 또 한 명의 고관이자 환관이 있었다.
“대외총관은 어찌 보는가?”
성영제의 시선에 놓인 자는 바로 정화였다.
중년의 사내로 변해 가고 있는 정화는 매끄러운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가다듬다가 말문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섬라국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사료되옵니다.”
“하나, 섬라국이 점파국과 다투고 있고, 점파국은 고려의 동맹이지 않은가.”
“고려도 점파국이 너무 강대해지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옵니다.”
성영제는 그리 동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폐하, 고려 탐라공이 단마시에 진출하였다는 장계를 기억하시옵니까?”
“음, 기억하지.”
“단마시는 섬라국의 남쪽에 있는 바, 단마시에 대한 고려의 종주권을 확고히 다지기 위해서라도 그 북쪽에 일방적으로 강대한 나라가 있는 걸 바라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것이 설령 고려의 동맹인 점파국일지라도?”
되묻기는 했지만, 성영제도 정화의 말에 일리가 있다 여겼다.
“그렇다고 해도, 섬라국만으로 고려의 동맹을 깰 수는 없을 것이네. 하면, 굳이 섬라국의 조공을 받아 대명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이 있을지 모르겠군.”
“폐하, 대명이 바다로 나서고자 하나, 배를 댈 만한 모든 곳이 고려의 세력권이었음을 기억하시옵소서. 만약 섬라국의 조공을 받게 된다면, 대명은 처음으로 고려의 세력이 아닌 곳에 포구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아…….”
정화의 지적에 성영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으니, 당장 고려의 동맹을 깨지는 못하더라도 그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데 동의할 수 있었다.
“소신이 섬라국의 사신과 동행하여 그곳을 방문하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섬라국의 의도를 이용하여 대명의 이득을 극대화하겠나이다.”
정화의 청이 있었고, 윤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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