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40)
“하라바디, 안오!”
“아이구, 내 강아지!”
바짓자락을 끌어당기는 작은 손의 주인이 하는 요구에 몽주는 해죽 웃음을 보이며, 팔을 들어 만세 자세를 취하고 있는 손자를 안아 들었다.
“헤에.”
자기 키의 두 배 높이로 올라간 손자는 조막만한 손으로 할아버지의 수염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라바디, 저 머야?”
“저거? 배 아니냐.”
“웅? 아니야. 배 아냐.”
“배가 아니라고?”
“자가, 작아.”
“허허. 그래, 작긴 작구나.”
손자가 본 적 있는 배들은 최소 경함선급은 되었으니, 그에 비하면 지금 보이는 배는 확실히 작았다.
“하지만, 이 할아비에게는 저 배가 태함보다 더 좋구나.”
“태하미 머야?”
“아주 큰 배. 저번에 보았지 않느냐?”
“큰 배? 이~ 마난 거?”
품에 안긴 손자가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큰 크기를 표현하기 위해 양팔을 쫙 폈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 몽주는 손자의 보드라운 뺨을 살짝 꼬집으며 웃음을 흘렸다.
“신후야~!”
“어마아!”
문득 들린 여인의 목소리에 손자 신후가 몽주에게 안긴 채 몸을 틀어 뒤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이 아들 강중의 앞에서 밝은 미소를 보이며 낮은 언덕을 올라오는 젊은 여인이 있었으니, 며느리 해오였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는 손녀 신경이 안겨 있었다.
아까 손자와 함께 언덕에 올라올 때만 해도 마차에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는데, 어느새 깨어난 모양이었다.
“어마, 어마, 나 안오~!”
좀 전까지 잘 안겨 있던 손자가 어미를 보자 어미에게 안기려고 버둥거렸다.
“어허, 안 돼. 엄마는 지금 동생을 안고 있잖아.”
강중이 대신 아들을 안아 들었는데, 어미에게 안기지 못한 신후의 입술이 쀼루퉁 튀어나왔다.
불과 몇 달 전이었으면, 동생 대신 자길 안아 달라고 떼를 부렸을 텐데, 그래도 몇 개월이라도 더 컸다고 나름 심보를 자제하는 게 대견해 보였다.
물론, 그사이 혼나기도 많이 혼났겠지만 말이다.
잠시 언덕 위에서 솔솔 부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풍광을 감상하였다.
그곳은 산책을 나온 것치곤 먼 차귀동의 수군사령부 근방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내려가 있어요. 난 아버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내려갈 게요.”
“알았어요. 먼저 내려가 있을 게요, 아버님.”
“그러려무나.”
며느리는 손녀를 안고 손자의 손을 잡아 이끌어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리서 자리 잡고 있던 호위군병들 중 일부가 며느리를 따라 내려가는 걸 확인한 몽주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보아라.”
“지난번에 말씀하신 걸 물리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몽주는 미소를 띠곤 고개를 저었으니, 강중의 표정에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확연해졌다.
“왜국의 역사에는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였다더군요. 왕위에서 물러나 상왕이 되어 왕을 방패 삼아 전권을 휘두르는 일말입니다. 혹시 그런 걸 원하시는 것입니까?”
“그렇다 보느냐?”
“그럴 이유가 없기에 혼란스럽습니다.”
“혼란할 것 없다. 물러날 때가 다가오니 물러나는 것이니까.”
“오직 아버님만 물러날 때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사실 물러날 때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아마 나만 알 수 있겠지.”
“아버님!”
“아들아.”
두 부자 사이에 시선이 얽혔지만, 그건 눈싸움이라기보다는 이해와 설득의 충돌이었다.
“너는 내가 탐라공의 자리에 굳이 계속 앉아 있을 필요가 있다 보느냐?”
“필요가 아니라 자격이고, 존경입니다. 탐라공다운 자격과 존경은 바로 아버님께만 있을 뿐입니다.”
“아니, 너도 자격은 충분하고 존경은 앞으로 쌓으면 된다.”
“그건 오직 아버님이 안 계…….”
강중은 그가 탐라공의 지위에 오르기 위한 조건을 말하려다가 그 말 자체가 만드는 꺼림칙함에 말을 줄였다.
물론, 몽주는 아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탐라공으로서 내가 할 일은 모두 이뤘으나, 탐라상단의 주인으로서 내가 이루고자 하는 일은 아직 남았다. 이것이 내가 탐라공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원인이니, 만약 네 말대로 내가 죽어야만 탐라공의 지위를 벗을 수 있다면, 탐라상단의 주인으로서의 책임은 어찌할 수 있겠느냐.”
“지금까지도 잘해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탐라국공으로서도, 탐라상단주로서도.”
“허허, 이런 불효막심한 녀석, 나도 이제 나이가 적지 않은데 언제까지 그 힘든 생활을 계속하라는 게냐.”
“아, 아버님!”
강중이 몹시 당황하였으니, 몽주가 대화의 ‘프레임’을 자신의 혹사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아주 근거 없는 ‘프레임’은 아니었다.
오십 대 후반, 환갑이 2, 3년밖에 남지 않은 나이에 이르자, 몽주는 슬슬 노화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새카맣던 머리카락 사이로 흰머리가 틈틈이 보이기 시작했고, 마냥 동안일 것 같던 그의 얼굴에도 주름이 자리 잡았다.
원체 신체적 능력이 좋지 않았던 덕에, 이제 체력이 저하함에도 그리 크게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게 오히려 행운처럼 느껴지는 나이인 것이다.
그렇기에 국공과 상단주, 두 지위에서 한쪽에 치중하고 한쪽을 포기해야 할 때가 다가왔으니, 현대에서 재상 두신과 논의하면서 내린 상왕 놀이 내지, 책임 탈피의 목적과 더불어 국공의 지위에서 물러나는 데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어쨌든 잠시 당황하던 강중은 어느 순간 문득 얼굴에 각오가 서리더니 말문을 열었다.
“저는 아버님께서 탐라공으로서 하실 일을 모두 마치셨다는 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나, 아버님께서 힘들다 하시면 그 또한 마냥 만류하기 어려운 일인 만큼 제가 남은 일들을 받아 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아버님께서 마무리해 주셔야 합니다. 그것만 처리해 주신다면 저도 마음을 굳게 먹고 아버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이냐고.
“아시다시피 태왕 폐하께서 제후들의 승작 여부를 검토하고 계십니다. 그중에는 탐라공의 지위를 왕위로 승작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지요. 만약 고려 태왕께서 왕작을 하사하신다면, 그 수혜는 아버님께서 받으셔야 함이 이치에 맞는 일일 것입니다.”
“…….”
그러니까 왕작의 수여까지는 몽주가 책임지고 완수해 달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적법한 후계자인 강중이지만, 탐라공의 지위에 오르자마자 왕작을 받는 것은, 그것도 전대 탐라공인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 그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부담스럽기 전에 정치적으로도 묘한 상황이 되기 때문이었다.
즉, 왕의 아버지를 비롯하여 몇 대의 선조들은 자연히 추존(追尊)되어야 하는데, 그 자체가 돌아가신 선조들을 대상으로 하므로 생존한 아버지는 그 대상이 아니었고, 만약 같이 왕위를 받게 되면 두 명의 탐라왕이 동시에 탄생하는 꼴이니, 아무리 실질적으로 다르다 하더라도, 명분상, 그리고 명목상 강중의 정통성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들의 일리 있는 주장에 이번에는 몽주가 쉽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왜냐하면, 언제 왕작을 받을 수 있을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미 익희 태왕이 고려 제후들의 승작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이 흐른 지도 거의 2년이나 흘렀다.
상황이 순조로웠다면, 이미 왕작을 하사하고 수여하는 과정이 모두 완료되었을 시간이었건만, 아직 공식화하지도 못한 이유는 요동국공 이성계에게 있었다.
‘요동공이 쾌차하거나, 방원이 요동공에 오르기 전에는 왕작이 수여될 가능성은 없거늘…….’
요동공 이성계가 고뿔을 심하게 앓은 것도 거의 2년 전이었으니, 몇 달 간의 자리보전 끝에 고뿔 자체는 떨쳐 내었지만 몸이 크게 상하여 요동성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중에 황실에서는 왕작의 수여를 황도에서 거행함으로써 제국 고려와 태왕의 위상을 높여 고려 제후들에 대한 고려 황실의 정통성을 다지고자 하니, 자연히 요동공의 쾌차 내지 후계자의 등극을 기다려 왕작을 내리려는 모양이었다.
몽주가 보기에 이제 76세에 이른 요동공이 황도까지의 여정을 견딜 정도로 건강을 되찾을 가능성은 없었으니, 왕작을 받는 건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었다.
“하아, 꽤 제대로 핑계를 골랐구나.”
몽주가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뜻을 받아들이고자 하니, 강중이 환한 미소를 보였다.
“대신, 너는 이제 지금의 관직에서 물러나야겠다.”
“예…… 예?”
“내 너를 통무총리에 임할 것이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 중 상당 부분을 네가 처리하도록 해라.”
“아니…….”
“아니는 뭐가 아니라는 게냐. 이미 요동국도 방원이 후계자로서 사실상 요동공의 일을 대행하고 있지 않느냐. 어차피 요동공이 죽고, 내가 왕작을 받게 되면, 곧 너도 내 자리를 물려받게 될 것이니, 미리 준비를 해둬야지.”
“왕작을 받는다 하여 곧바로 선양하시는 건 무리…….”
“그래 봐야 길어도 1년이다. 요동공이 몇 년을 더 살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작해도 결코 너의 준비가 길다고는 할 수 없을 게다.”
이번에는 몽주의 주장이 이치에 맞았으니, 강중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뜻을 따르지요.”
아들의 표정과 말투에 각오와 두려움, 그리고 긴장감이 뒤섞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상황과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본다면 아들이 국공의 지위를 마다하고 가급적 뒤로 미루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몽주는 강중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라도 나 같은 아비의 뒤를 잇는 게 부담스러웠겠지.’
스스로 한 일을 두고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몽주는 그 특별한 처지 덕에 나름 자신이 한 일을 객관화하기가 남들보다 유리하였다.
객관적으로 탐라국공 석몽린은 한국사 최고의 군주이자 위인이고, 아마 훗날의 그 어떤 영웅도 넘보기 어려울 정도의 공업을 세웠으니, 그 뒤를 잇는 자는 아무리 잘해도 아버지만 못하다는 평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몽주는 앞으로 그 커다란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할 아들의 어깨를 몇 번 토닥이곤 시선을 바다 쪽으로 돌렸다.
50미 정도 떨어진 그곳에 아까 손자 신후가 배가 아니라고 말했던 배가 떠 있었다.
전장이 10미 정도에 불과한 그 배는 연안교통선보다도 못해 보였지만, 두 개의 특별한 점이 있었다.
첫 번째 특별함은 그 배의 선체가 갑판 외에는 거의 모두 철재로 이뤄져 있다는 것이었다.
탐라수군의 전투함 대부분이 구리 피복선인 터라, 겉보기에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피복선과 철선은 엄연히 차원이 다른 영역이었다.
목재 선체의 바탕 위로 연성이 좋은 구리로 피복하는 것과 강철 늑골 위로 탄성이 높은 철판을 이용해 빈틈없이 선체를 이루는 건 난이도의 차이가 그야말로 하늘과 땅이었다.
하나, 철선이라는 특징은 다른 특별함에 비하면 별게 아니었으니, 그 다른 특별함은 철선의 후미를 보면 짐작할 수 있었다.
선미로 튀어나온 철봉이 바닷속에 잠겨 있고, 그곳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물살이 생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작은 철선은 최초의 동력선이었다.
물론, 여전히 힘이 약한 열기 기관이 만드는 동력은 미미한 터라 오직 그 동력에만 맡겨 두면 하품이 절로 나올 속도가 나올 뿐이고, 어지간한 해류의 역방향을 결코 이겨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여 철선에도 돛대가 하나 달려 있고, 갑판 위에 노도 몇 자루가 놓여 있었다.
결국 그 배는 실험선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는 없었고, 그것도 상용화를 위한 실험이 아닌 다음 실험을 위한 실험에 불과한 정도였다.
하나…….
‘이게 어디야.’
철선의 구상부터 실험 철선의 제작에 이르기까지 몽주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
선소의 장인들이 목철선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스스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전은 부족함을 깨닫게 하고, 부족함은 필요를 만들며, 필요는 곧 충당의 동력이니, 결국 또 다른 기술과 물산의 탄생을 유발할 것이다.
이는 비단 철선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 탐라국의 전반이 그와 같은 길을 따르고 있었으니, 학문과 기술, 그리고 문화의 사회적 제도적 기반이 갖춰진 덕이었다.
그것이 몽주가 아들에게 말한, 자신이 탐라공으로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말한 바의 원천이었다.
***
슥, 쓰윽.
거울에 비친 얼굴에 덥수룩하게 나 있던 수염들이 칼날에 쓸려 나갔다.
수염이 장부의 상징과 같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지만, 그에게는 언젠가부터 그저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했다.
바다 위 미지의 항로를 탐색하는 생활은 그로 하여금 극단적인 효율을 추구하게 만들었음을 증명하는 변화였다.
“대장, 출항하오리까.”
대장실 안으로 들어온 조타수 조수의 물음에 감태는 칼질을 멈추고 거울에 비친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출항이다.
출항이라는 행위를 탐험대를 이끈 후에도 수십 번은 족히 했지만, 이번 출항은 특별했다.
그가 탐험을 하며 수도 없이 접했던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는 출항이기 때문이었다.
‘이제 100개는 넘었으려나?’
지난 6년 가까운 시간 중 순수한 탐험의 시간은 3년 정도였다.
길다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감태는 백 개에 가까운 섬들을 발견하고, 항로를 개척하였으니, 그 정확한 숫자는 그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많은 섬들 중에서 만나는 원주민들을 통해 남쪽의 거대한 섬에 대한 소문을 종종 들었으니, 그렇게 수집된 소문들이 누적되면서 소문의 수준을 넘어 확실한 정보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당연히 감태는 그 남쪽의 거대한 섬을 그와 그의 탐험대가 최초로 발견하길 고대하고 있었다.
하여, 2년 전에 감태는 그의 가족까지 여송 파식군으로 이주시켰고, 탐험대의 본진도 파식군으로 옮겼으니, 탐라섬까지 오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함이었다.
‘헛고생도 심하게 했지. 뭐, 딱히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사실 1년 전쯤에 감태는 그가 고대하던 ‘남쪽의 거대한 섬’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었다.
탐험 중 폭풍을 피하기 위해 동쪽으로 항해 하다 발견한 작은 섬의 원주민들이 동쪽에 거대한 섬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었고, 그 섬이 감태가 찾길 바라던 섬이라 여겼던 것이다.
하여, 폭풍이 지나간 뒤 신나게 동쪽으로 항해 하였고, 정말 큰 섬을 발견했으니, 탐험대는 축배를 들었다.
한데, 정작 그 섬의 남쪽 어느 원주민 부족으로부터 다시 남쪽의 거대한 섬에 대한 소문을 전해 듣게 되면서, 그곳이 그가 원하던 그 섬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어째 항로지도상으로 그곳은 이제껏 소문을 들었던 곳의 남쪽이 아니라 동쪽이라서 뭔가 이상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잘못 짚은 것이었다.
물론, 그 섬을 발견했다는 사실 자체는 마냥 헛수고는 아니었고, 오히려 감태와 그의 탐험대의 명성을 크게 높였다.
이전까지 다른 탐험대들이 여송섬 주변의 섬들을 탐험하고 탐색하면서 쉽게 이득을 취한 것에 비해 감태의 탐험대는 뭔가 어리석은 짓을 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수많은 섬들을 발견했지만, 섬 자체를 탐색해서 자원을 찾지 않고 그저 항로만 개척하는 것은 탐험령 이후에도 상대적으로 큰돈벌이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탐라상단의 지원이 있기에 다른 탐험대처럼 탐험대의 유지를 위해 상금과 이득에 목매달릴 필요는 없었지만, 명성 자체를 원하던 감태로서는 불만족스러웠다.
한데, 그 새로운 큰 섬, 후에 체관부를 통해 파파(波坡)섬라는 이름을 얻은 그 섬의 발견은 마침내 감태에게 큰 명성을 가져다주었으니, 파파섬의 거대한 크기 자체가 명성의 이유였다.
하여, 감태는 이번 탐험 때는 탐험대를 둘로 나눠 분대로 하여금 그 파파섬을 일주하게 하였고, 감태는 다시 남쪽을 탐험하고, 항로를 개척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로 향하는 길목을 발견했으니, 원주민들 스스로 티모르라 부르는 섬에서 남쪽의 거대한 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저 남쪽에 큰 땅이 있더라 수준이 아니라, 그곳에 가 봤다는 자들마저 만날 수 있었고, 그들로부터 얻은 정보가 거의 일치하였으니, 결코 거짓이나 과장이 아님을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항로 지도.”
대장실을 나와 선장실로 들어간 감태가 곧바로 내린 명에 항해사가 탁자 위에 항로 지도를 펼쳤다.
지형과 그 지형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들이 만드는 난해함을 뚫고 감태는 이번에 그의 탐험대가 갈 항로를 주시하였다.
본디 티모르의 원주민들이 그 남쪽의 거대한 땅으로 향한 ‘코스’는 티모르 섬의 동쪽 열도를 따라 움직이다가 어느 지점에서 정남쪽 바다를 뚫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하나, 감태는 그 길을 따르는 대신, 대각선으로 곧장 향하고자 하였으니, 항해 기간을 단축하기 위함이었다.
“만약 이 이점에서 뭍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정남으로 향해 할 것이다.”
“몇 길미나……?”
“……3도 정도는 가 봐야겠지.”
감태의 결정에 항해사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3도라 함은 태양의 고도를 측정한 차이를 의미하니, 탐라국 체관부에서 정한 지도 작법의 규정에 따라 경험적으로 1도 차이가 130길미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
그 말은 곧, 감태는 목표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최대 400길미까지 남방으로 더 항해하고자 한다는 말이었고, 원주민의 증언대로 그 사이에 섬이 없다는 게 사실이라면 망망대해 속에서 그 거리를 항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건 언제 어떤 위험에 빠질지 모른다는 이야기이자, 동시에 항로 측정의 오차를 생각하면 제대로 귀환하지 못할 가능성도 더 커진다는 의미였다.
항해사가 긴장하든 말든, 감태는 담담한 표정으로 선장실을 나와 갑판 위로 올라왔다.
그의 배는 티모르 섬의 연안을 오른쪽에 둔 채 티모르섬의 동쪽 끝 곶을 향하고 있었다.
“선선하군.”
시기상 한여름인데, 티모르는 오히려 북쪽보다 선선했다. 사실 선선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워낙에 열대에서 탐험하던 감태인 터라, 조금 낮아진 기온도 체감할 수 있었다.
“이 또한 땅이 둥글다는 증거일까.”
간단히 중얼거린 감태는 선수에 서서 그의 망원경을 들어 전방을 살폈다.
언젠가 세상을 일주해 보고 싶은 그로서는 땅이 둥글길 바라고 있었다.
다만, 지금은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것 같은 남쪽의 거대한 섬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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