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43)
“자칫 회사 하나 차려놓고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는 경우 말입니다.”
“신설하는 회사는 어느 정도 지대를 감면해 주면 될 것이고, 만약 지대를 지불하지 못하는 회사라면…… 유감이네만 폐업해야 마땅하겠지.”
“폐업은 그렇다 쳐도 신설 회사에게 지대를 감면해 주는 건 일을 너무 복잡하게 만들 우려가 있습니다.”
“온갖 종류의 세금을 두는 것보다는 훨씬 간단할 걸세.”
“온갖 종류가 아니라 소득세만 두면 되는 겁니다.”
“소득세를 두자면, 토지 경매 제도는 그 존재의 기반을 잃는 걸세.”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양립하게 하면 됩니다.”
“지금이야 백성들 대다수가 토지 경매 제도가 가진 세금으로서의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양립할 수 있는 걸세. 훗날 백성들이 그 원리를 알고 이해하게 되면, 그들은 토지로써 세금을 걷고 거기에 소득에 대한 세금을 더하여 가혹하게 착취한다고 하겠지.”
종성은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원리가 어떻고, 그 원리에 따라 백성들의 반응이 어떤지에 대한 몽건의 논리는 합당하다 생각하지만, 종성은 보다 확실한 정치를 위해서는 소득세가 유지됨이 옳다고 여전히 여겼다.
“형님, 쉽게 생각해 보십시오. 토지 경매만 단독으로 있는 것과 소득세와 더불어 있는 것은 설령 그 양쪽이 얻는 세수가 같다 하더라도, 조정으로 하여금 더 많은 정치의 도구를 가지게 만들 것입니다.”
예컨대, 똑같이 세수 100을 거둘 수 있다고 하더라도, 토지 경매로만 100을 모두 걷는 경우와 토지 경매로 50, 소득세로 50을 걷는 경우에 있어, 세금 또한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임을 감안하면 후자가 더 정치에 유용한 상태라는 게 종성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하나, 몽건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지극히 이상적인 판단일세.”
“제 생각이 이상적이라고요? 그 반대가 아니라요?”
“소득세라고 간단히 말하지만, 그 책정 기준과 징세과정을 생각하면 여간 복잡한 게 아니네. 내 질문 하나 던지지. 대저 이 나라에 소득세를 포탈한 자가 몇이나 될 것 같은가?”
“적지는 않을 테지요. 수시로 수십 명씩 그 죄로 잡히곤 하니까요.”
“그 답도 맞겠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오직 월봉만이 소득의 전부인 자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든 이들이 소득세의 납부를 회피했다고 봐야 하네. 그저 적극적이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설마요…….”
월봉만으로 소득을 얻는 자들이야 애초에 월봉을 받을 때 소득세를 먼저 제하기에 누락될 여지가 없을 것임을 쉽게 이해할 만한 부분이지만, 개별적으로 상점이나 회사를 운영하는 자들이 모두 소득세를 회피하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설마가 아닐세. 최근 몇 년 사이에 감사대와 순금대가 소득세 포탈의 혐의로 조사한 자들 중 세금 포탈의 죄로 관에 고발된 자의 비율은 거의 절반에 이르네. 그것만 보면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다소 다르네. 왜냐하면 세금을 포탈한 정도가 적은 자들은 회피한 세금을 완불하면 그냥 넘어가 주었거든. 그러니까 감사대나 순금대는 포탈의 정도가 큰 자들은 적극적으로 그리고 악의적으로 세금을 회피한 자로 보고, 다른 자들은 소극적으로 그리고 우연히 세금을 회피한 것으로 본 게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조사하는 대로 거의 모조리 잡아들여야 할 판이니까 말이야.”
“…….”
종성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것이 백성들에게 있어 매우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라는 점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걸릴 때 걸리더라도, 일단 세금을 회피하는 것이 경제적인 결정인 것이다.
어차피 수두룩한 게 세금 포탈이라면, 감사대와 순금대가 아무리 활약해도 그 많은 백성들을 모두 살필 수는 없다.
아마 감사대와 순금대도 적은 걸 넘어 미미한 수준의 세금 포탈 혐의는 아예 무시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과거와는 판이해졌네. 과거 현물 위주의 세금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지. 화폐로 경제가 움직이고, 세금 또한 화폐로 납부되는 상황에서 관부가 백성들의 세금 상황을 감시하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닐세.”
탐라국이 서고 화폐 제도가 자리 잡기 전, 고려의 조세 제도는 기본적으로 전통의 조용조(租庸調)를 기본으로 하였다.
토지와 인구, 그리고 호구라는 명백한 단위에 따라 부과되는 세금은, 그것이 가혹하니 마니를 떠나 적어도 훨씬 분명했다.
하나, 오늘에 이르러 화폐가 경제의 기본이 된 상황에서, 그것도 농업의 비중이 크게 낮아진 상황에서 조정은 백성들 각각의 세수를 파악하기가 크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역사에서 더 발전된 회계법과 더 큰 관료제를 갖춘 근대 국가들의 조세 체제는 실로 ‘개판’이었고, 사실 전산 기술과 정보화된 사회의 현대의 국가들 중에서도 그 조세 체제가 엄밀한 의미에서 투명하고, 공평하다고 평가할 만한 나라를 지목하기 극히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이를 생각하면, 그보다 훨씬 못한 당대의 탐라국의 상황에서 소득세가 제대로 된 정치의 도구가 되리라고 믿는 건 차라리 미신이라는 게 몽주의 판단이었고, 몽주의 논의를 이어받은 몽건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쯤에서 종성은 이미 그의 주장을 꺾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럼에도 마지막 ‘반항’을 더한 것은 탐라의 경제와 재정에 대한 명백한 우려 때문이었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다만, 때로는 나라의 살림을 위해 공평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길을 가야 할 때가 있다고 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이 나라의 재정이 토지 경매에만 의지하게 된다면, 그 경매의 기준금이 크게 치솟을 것입니다. 그것은 크게 토지를 써야 하는 상단이나 회사들로 하여금 토지를 사용함에 주저하게 만들 것이니, 그 비용을 아무리 차후에 그들의 산업으로 복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마치 지옥에 들어서는 것처럼 너무나 두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나라의 재정은 물론, 경제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종성의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현대적 복지 국가처럼 엄청난 재정을 편성해야 하는 것까지 가늠한 건 아니었지만, 당대 탐라국의 재정적 변화만으로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정이 확대될 것이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재정의 확대는 탐라 조정으로 하여금 토지 경매의 기준금을 지속적으로 상승시킬 것이고, 토지 경매 참여에 점점 더 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토지 임대를 주저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나라의 재정은 어려워질 것이고, 경제적 활력도 줄어들 테니, 그것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는 것이 종성의 생각이었다.
하나, 그에 대한 몽건의 반응은 실로 간단한 것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탐라공께서 해 주셨던 말로 대신하고 싶군. 아마 자네도 기억할 걸세. 오래 전, 경제학회에 참여하셨을 때 해 주셨던 말이니까.”
“……?”
“상인에게 있어, 불확실한 천국보다 확실한 지옥이 낫다.”
종성도 기억하는 말이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경제학회에서 중히 여기는 명제 중 하나였다.
“……토지 경매가 확실한 지옥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지옥도 지옥 나름이겠지. 연옥쯤 되려나.”
몽건이 실소하며 말하니, 그 말이 자못 의미심장했다.
연옥(煉獄)이라 함은 천국으로 가기 전에 거치는 지옥을 가리키니, 천국의 예비이자 예정된 천국이기 때문이었다.
진정 토지 경매로 단일한 세수는 탐라의 상인들에게 천국의 조건일 수 있을 것인가.
종성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다만, 불확실성이 감소함은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세금으로서의 토지 경매는 회피가 불가능하니, 애초에 상인들이 그들의 이득을 예견함에 있어 상수일 뿐, 변수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조세는 상인들에는 늘 커다란 변수일 수밖에 없네. 불법한 짓까지 포함해서 조세를 피하고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분명히 있으니까. 그렇게 세금을 줄이려는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상인으로서 자격이 없다 할 정도지. 한데, 이제 따로 세금이 없이 토지 경매로 확정된 비용만이 남는다면 상인들의 이득은 오직 그들의 상행 능력에 달려 있는 것일세.”
사실 탐라국의 세금이 소득세에만 국한된 건 아니었다.
다만, 나머지 세금은 ‘정부 서비스’ 내지 ‘사회 자본’을 이용하는 대가를 이용자에게 부담하는 형태였기에 백성들에게 세금이라기보다는 ‘요금’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소득세의 폐지는 실질적으로 세금을 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자연히 상인들을 비롯하여 자산이 많은 자들에게 세금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었다.
종성은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 말문을 열었으니, 그 말투에 감탄이 묻어 있었다.
“이제 보니, 조세제의 변화는 단지 세수 확보 수단의 변화뿐만 아니라 경제 자체를 바꿀 수 있겠군요. 아니, 애초에 그것이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어요.”
“자네가 이미 말했지 않았나. 세금도 나라를 다스리는 도구라고.”
“…….”
종성은 순간 부끄러워졌다.
말이야 그가 먼저 꺼낸 것이지만, 사실 나라 정치의 도구로서 세금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여겼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소득세의 존치를 주장한 가장 큰 이유는 재정 수급에 어려움이 있을 때, 토지 경매보다 빠르게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었고, 또 그에 앞서 토지 경매에 재정의 기반을 단일화하는 것에 반대한 이유도 재정 불안 상황에서 세금을 신설하여 세수를 쉽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법령을 휘두르는 데에 너무 매몰된 모양입니다.”
그가 경제학회를 떠나 법학회에 투신한 이유는 확실성에 있었으니, 법이 보다 확실함에 가까울 것이라 여긴 탓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생각이 맞다고 믿고 있었다.
다만, 지금에 이르러 깨달은 것은 자신이 그 확실성의 주체를 나라와 조정으로 두고, 백성에게 두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하여, 세제의 개편을 두고도 나라와 조정의 입장에서 세수 확보의 불안함에만 집중했으니, 처음 몽건과 입씨름을 시작한 그 순간부터 그는 이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경제는 곧 백성의 삶이므로.
“언제나 가장 크고 중요한 문제는 경제라 하셨지요, 탐라공께서.”
“맞아. 그것이야말로 핵심이지.”
편안한 미소를 띠며 몽건은 뭔가 풀이 죽은 듯한 종성을 시선과 표정으로 위로하였다.
다만, 그렇다고 의기양양한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니, 토지를 세금의 유일한 기반으로 삼는 것은 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형님과 논의하면서 토지 경매를 세금의 단일한 원천으로 삼기 위해서 마땅히 갖춰야 할 조건들을 정리한 바가 있었는데, 그 조건들은 결코 저절로 갖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일단 나라가 강국이자 대국이어야 했다.
토지가 재정의 근원인 이상 넓은 땅과 많은 자원을 확보하고, 지키는 것이 곧 토지 경매제를 튼튼히 하는 정석이었다.
또, 독과점을 철저히 배척해야 마땅했다.
경제의 활력을 갉아먹는 독과점은 자연히 토지의 이용 정도도 감소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정과 그에 임한 관리들이 청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정부패는 늘 세금과 유관하기 마련이니, 단일한 세원을 가진 상황에서 부정과 부패로 인한 악영향은 그야말로 즉각적이고, 거대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토지 경매제가 세수의 유일한 근원이 되는 순간부터, 청렴이라는 덕목은 관리에게 있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능력이자 자질이 되는 게지.’
형님으로부터 들은 말을 잠시 떠올렸던 몽건은 그가 만드는 데 일조한 연옥을, 천국으로 바꾸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할 것을 각오하였다.
* * *
치이이.
“일란할라군에서 명소로 선정된 목장에서 온 육우로부터 얻은 것이라 합니다.”
“오호, 하면 고려에서 가장 맛좋은 소고기라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포은은 참으로 귀한 것을 만난 것을 만났다는 양 젓가락질에 더욱 집중하여 불판 위의 소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음미하였다.
그 모습에 그를 청하여 소고기를 대접한 석삼과 점녀가 서로 잠시 마주보며 미소를 띠었다.
포은을 불러 함께 식사를 하길 잘했다는 의미였다.
재작년에 부인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포은은 은퇴한 삶 속에서 유유자적한 듯 보이지만, 아무래도 외로움이 전혀 없지는 않았고, 의식(衣食) 또한 대충 때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포은이 가난하거나 정말 외로운 지경이라 그런 건 당연히 아니었다.
원래도 내로라하던 세가 출신이었고, 고관으로 오래 일한 만큼 쌓아 놓은 재산도 많았다. 그가 지금 사는 집은 탐라공택을 제외하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큰 집이었고, 그 집에는 포은의 생활을 돕는 자들이 여럿이었다.
자식 농사도 성공적이라, 장남은 탐라국에서 유명한 학자이며, 다른 자식들도 탐라국 곳곳에서 다들 잘 살고 있었다.
아내를 먼저 여읜 것을 제외하면 포은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노년을 보내는 중이었다.
다만, 워낙에 관직 생활을 화려하게(?) 한 탓일까. 종종 은퇴 생활에 허전한 기색을 숨기지 못할 때가 있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포은의 집 근방에 있는 또 다른 큰 집에 살고 있는 석삼 내외는 그에게 관직에 복귀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하나, 포은은 자신이 예전보다 명석하지 못하고, 당장 아픈 곳은 없어도 고관대신들이 짊어져야 할 업무량을 감당할 체력이 되지 못함을 이유로 고개를 젓곤 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저 좋은 이웃으로 교류할 뿐이니, 오늘도 질 좋은 소고기를 구했기에 함께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탐라국 고을마다 명품을 꼽게 한 건 아주 좋은 정치임에 틀림없소. 누가 생각했는지 아마 저하께서 크게 상찬하셨을 게요.”
“제가 알기로 지금 상관부의 어느 주무관이 제안하였다 들었습니다. 성명이 황희던가 그랬지요.”
“오, 기억해 두어야 할 이름이군.”
포은은 좋은 소고기의 맛에 즐거웠고, 새로운 인재가 활약한 바에 다시 더 즐거웠다.
명품제(名品制)는 포은이 은퇴하고 1년 정도 뒤에 시행된 제도로, 여러 고을에서 각기 존재하는 특산물마다 최고의 산물을 선발하여 영예를 안겨 주는 제도였다.
선발된 산물 자체는 명품(名品)이 되고, 그 산물을 만드는 자는 명인(名人)이 되며, 그 산물을 만드는 곳은 명소(名所)가 되는 것이다.
포은은 물론, 같이 있는 석삼 내외도 몰랐지만, 명품제는 명품에 대한 백성들의 선호를 이끌어 내어 추가적인 수요마저 만들어 내고 있었다.
또, 훗날 시간이 흘러 그 권위가 높아짐에 따라, 그리고 다른 고을의 같은 산물끼리 다시 더 경쟁하여 뽑힌 더 좋은 산물에 고려명품이라는 이름의 최고 영예까지 주어진 뒤에는 모든 산자(産者)들에게 있어 인생을 걸고 도전하는 목표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히 기술이 개발되고, 지식이 쌓일 수 있었다.
“참 아름답지 않소?”
고기를 먹던 자리가 자연히 술자리로 바뀐 중에 문득 포은이 술잔을 든 채 고개를 남쪽으로 돌려 말하였다.
포은과 석삼 내외의 저택(?)들이 위치한 곳은 새로운 택지로 두무악 쪽으로 더 들어간 곳이라 자연히 지대가 높았고, 그들이 앉아 있는 2층 마루에서 홍로동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내가 처음 홍로동을 보았을 때도, 어찌 고려에 이처럼 크고 잘 정비된 고을이 있을 수 있는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지금 홍로동의 모습은 그 당시와는 또 크게 달라졌소.”
“그게 벌써 20년 전이니까요.”
2, 3층 건물이 하나둘씩 들어서던 것이 이제는 단층의 건물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에 이르렀다.
홍로동의 동서 외곽 지역에는 여전히 초창기에 지어진 집들이 남아 있어 백성들의 거처로 쓰이고 있지만, 홍로동의 중심부와 그 주변은 10년 사이에 신축된 건물들이 대다수였다.
진주나 출해를 비롯하여 크게 번성하는 고을이 여럿이긴 하나, 그래도 여전히 탐라특별시는 특별한 고을로서 압도적인 위상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그중에서도 홍로동은 중심이 되는 곳이었으니, 홍로동의 땅은 다른 그 어떤 곳보다도 소중하게, 그리고 더 알뜰하게 쓰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만간 선소도 차귀동 쪽으로 옮길 것이라 합니다.”
“음, 선거(船渠)가 다 지어진 모양이구려.”
“예, 저기 지금 짓고 있는 중함선들을 마저 완성하면, 그 다음부터는 차귀동의 새로운 선소에서 선박의 건조가 시작될 것이라지요.”
석삼의 말에 포은과 점녀의 시선이 홍로동의 선소와 근처 포구 주변에 수두룩한 선박들 사이를 오고 갔다.
배들을 본 탓일까, 포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탐라공의 남양행에 관한 것이었다.
“소문에 다시 저하께서 남양으로 행차하신다던데…….”
“예, 맞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남양행이실 수도 있겠군.”
“적어도 탐라국공의 지위로서는 그럴 것입니다.”
석강중 공자가 통무 총리에 임하였음이 알려지면서 탐라공이 조만간 공위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소문도 같이 퍼졌다.
“대체 무얼 하시려고 굳이 하야하시려는 건지…….”
“뭐든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몸 편히 마음 편히 그저 쉬실 분은 아니시니까요.”
“몸 편히 마음 편히 쉬고 있는 입장에서 저하께 죄송스럽…… 엇!”
포은이 진정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다가 술안주로 남아 있던 소고기가 불판 위에서 타고 있는 것에 놀라며 얼른 짚어서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음, 이 업진살 살살 녹는구먼. 좀 탔는데도 맛이 아주 좋아.”
조금 전까지 송구한 표정이었건만, 그 송구함은 온데간데없이 포은의 얼굴에는 한거(閑居)의 안락함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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