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46)
“득점이오!”
심판의 선언에 경기장 안이 환호로 가득했다.
“만세!”
출해 포구 축구단이 3점차로 앞서며, 이제 반식경도 남지 않은 그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것이 사실상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2년 연속 구주 축구 연단 우승자로 확정되는 순간이자 내년에 있을 탐라 우승단 연단에 구주 대표로 출전하는 것을 확정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연단(聯團)은 연합 집단의 줄임말 격인 신조어로 현대 한국인에게는 ‘리그(league)’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즉, 출해 포구 축구단이 지난 3년간 구주 축구 ‘리그’에서 두 번 우승하면서 4년마다 치러지는 탐라국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하게 된 것이었다.
탐라국에서 축구는 가장 대표적인 문화 현상이었으니, 최근에 탐라국의 영토에 속한 곳이나 동금주의 북부 지역을 제외하면 모든 곳에서 축구단과 축구 경기를 찾아볼 수 있었다.
탐라특별시 축구 연단에는 무려 삼십여 개에 이르는 축구단들이 있었고, 그 축구단들에 속한 선수들은 거의 모두 본업을 따로 가지고 있긴 하나, 우승권에 있는 상위 구단의 경우에는 축구 경기를 통해 버는 돈, 즉 경기 수당이나 승리 수당 등을 합한 돈이 어지간한 백성들의 일 년 수입에 버금가기도 하여, 극소수의 선수들 경우에는 사실상 축구를 직업으로 삼고 있기도 했다.
물론, 아직 탐라특별시 외에는 축구로 먹고 살 만큼 돈을 버는 건 불가능했지만, 다른 지역의 축구단들 중에도 선수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머지않아 직업 선수가 등장할 건 당연해 보였다.
남면의 경우 연단이 9개나 있었고, 한 연단마다 적게는 7개, 많게는 18개의 축구단이 속해 있었다.
과거에 비해 교통이 편리해졌다고는 하나, 엄연히 본업이 따로 있는 선수들이 먼 곳까지 경기를 위해 이동하는 게 어려운 만큼 아무래도 주변 군들끼리 뭉쳐 연단을 만드는 식으로 하다 보니, 무려 9개나 되는 연단이 만들어진 것이다.
구주 또한 마찬가지로, 과거 분주의 구획대로 4개의 연단이 있고, 그 4개의 연단에 총 27개의 축구단이 각각 소속되어 있었다.
반면, 그 외의 지역은 경제나 인구의 부족함 내지 아직 축구 문화가 자리 잡지 않은 탓에 축구단이 별로 많지 않았는데, 다만 동금주의 경우는 다소 이유가 달랐다.
동금주에도 녹둔군을 위시하여 1개의 연단이 있긴 했지만, 훈춘 정도까지만 축구 문화가 자리 잡고 있을 뿐, 그 이북에서는 축구를 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는 나담제 때문으로, 과거 유목 부족의 축제였던 나담이 ‘스포츠’화되어, 동금주에서 축구를 압도하는 운동 문화가 된 탓이었다.
말을 타며 활을 쏘고, 창으로 상대와 겨루는 운동에 매료된 자들에게는 공을 차는 정도는 너무 싱겁고, 얌전한 운동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적어도 탐라국의 핵심 지역이랄 수 있는 탐라섬과 남면, 그리고 구주에서는 축구 열기가 대단했는데, 그 열기에 열기를 한층 더한 것이 7년 전에 처음 치러진 우승단 연단의 창설이었다.
탐라상단이 주최하는 그 연단은 지난 3년 동안 각 연단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한 축구단들을 모아 1년 동안 진행하는 것으로, 초청된 축구단은 그 1년 동안 본래 속한 연단 대신 우승단 연단에서 경기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직 관람료 수익이 대단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각 연단의 입장에서는 손해일 수밖에 없었고, 특히 그 해의 우승은 다음 번 우승단 연단 참가 여부와 무관하기에 김빠진 연단이 될 수밖에 없음에도, 모든 연단들이 흔쾌히 응하였다.
왜냐하면 우승단 연단에 우승단을 참가시키면 그 연단에 탐라상단이 상당액의 운영 자금을 지원해 주었고, 만약 특정 축구단이 우승단 연단에서 3위 이상을 차지할 경우에는 그 축구단이 속한 연단에도 일정액의 상금이 쥐어지기 때문이었다.
이에 모든 연단이 안정된 연단의 운영을 위해서라도 받아들여야 마땅했던 것이다.
사실 굳이 물질적인 이득이 없어도 그 어떤 연단과 축구단도 거부할 리가 없었으니, 탐라상단이 주최한다 함은 곧 탐라공이 주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겨져 우승단 연단에 참가하는 것 자체가 영광스런 일이었다.
게다가 참가 축구단과 선수들은 탐라상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탐라국 곳곳을 방문하여 경기를 할 수 있었고, 경기 수당이나 승리 수당도 그 어떤 지역의 연단보다 훨씬 높았기에 다들 눈에 불을 켜고 우승단 연단에 참가하기를 고대하였다.
한마디로 축구로서 거머쥘 수 있는 최고의 명예와 돈이 우승단 연단에 주어지고 있었으니, 그 참가 자격을 획득하는 순간 그 축구단의 소속원은 물론, 그 축구단을 응원하는 지역 전체가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하하하, 정말 수고 많으셨소. 자, 포구 축구단의 무궁한 발전과 내년 우승단 연단에서의 좋은 성적을 기원하며, 거배!”
“거배!”
연단의 우승을 확정한 다음 날 저녁, 포구 축구단이 모든 소속원은 출해상시의 초대를 받아 축하연을 벌였다.
포구 축구단이 출해상시의 대표적인 축구단이었던 만큼, 포구 축구단이 서구주 연단에서 우승한 것은 출해상시의 영예이기도 하였으니, 시장이 그들을 초대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출해상시의 시장은 포구 축구단과 각별한 인연이 있기도 했으니, 그 스스로가 포구 축구단의 창립원 중 하나였고, 과거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이름을 떨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가등전지, 현 시장의 성명이 그러했으니, 한때 탐라섬에서 가동이라는 이름을 썼던 사내였다.
“내 요사이 공무로 몸과 마음이 적잖이 지쳤는데, 포구 축구단의 우승에 피로가 싹 가시는 기분이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포구 축구단의 단장의 표정이 밝은 만큼 가등 시장의 표정도 환했다.
“아까 거배할 때도 말했지만, 내년에 우승단 연단에서 정말 좋은 성적을 거둬 주시오. 뭐, 탐라시의 축구단이 워낙에 강한 터라 그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다음 자리는 우리 포구 축구단이 차지했으면 좋겠소.”
가등 시장의 당부에 단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리 단이 구주 최고임을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아니, 내친 김에 탐라시 연단의 우승단에게도 일격을 가해 보겠습니다.”
“오, 그러면 더욱 좋지!”
지금까지 두 번 진행된 우승단 연단에서 탐라 홍로 축구단과 탐라 대촌 축구단이 각각 우승을 거머쥔 바 있었다.
그 두 축구단은 탐라시 연단에서도 우승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초강자들로, 두 번의 우승단 연단에서 압도적인 성적으로 우승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탐라시의 백성들 사이에서는 탐라 연단에서 우승하는 것이 우승단 연단에서 우승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나, 탐라시 연단에서 중간 순위를 하는 축구단이 다른 지역의 연단에 가면 우승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였다.
사실 크게 허무맹랑한 말은 아니었기에, 다른 지역 사람들도 속내로는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축구단들은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축구의 열기 중 상당 부분은 지역적 특색과 애향심에 기반하고 있었기에, 객관적인 전력과 무관하게 자기가 속한, 그리고 자기가 응원하는 축구단이 무조건 최강이라 여겨야 마땅한 게 탐라국의 축구 문화였던 것이다.
그러니 포구 축구단도 내년 우승단 연단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축구단 자체의 명예는 물론이고, 서구주 연단의 명예, 그리고 구주의 축구 수준까지도 탐라국에 널리 알리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다.
가등 시장은 축하연에 오래 머물며, 축구단에 속한 선수들까지 일일이 술 한 잔을 따라 주며 덕담을 남겼고, 내년 우승단 연단까지 최고의 지원을 약속해 준 뒤에야 연회자리를 벗어났다.
“다다라 상단주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등전지가 연회장을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비서가 고하였으니, 안 그래도 약속이 있던 그는 곧바로 다다라 상단주를 만나러 움직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술을 좀 마셨습니다.”
“아닙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좀 더 맘 편히 술자리를 즐기셔야 하는데, 제 바쁜 일로 뵙자고 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등 시장은 최대한 예의를 차려 다다라 상단주를 대하였다.
구주에서 출해상시가 차지하는 위상은 물론, 가등 시장 개인적으로도 탐라 구주인의 대표 격인 인물이기에 그 누구에게도 극진한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었지만, 단 한 명 예외가 있다면, 그게 바로 다다라 상단주였다.
전 구주 도집사이자 서구주의 집사였으며, 탐라국에서 여러 고위직을 경험한 바 있는, 탐라공의 최측근 중 하나인 다의홍이 바로 다다라 상단주였기 때문이었다.
가등 시장이 탐라 구주인의 대표 격이라면, 다의홍은 탐라 구주인들의 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는 관직에서 물러나 그가 소유하는 상단의 경영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여전히 구주의 경제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였다.
“요새 내 아내 때문에 좀 골치가 아프시다 들었습니다.”
“뭐, 골치까지는 아닙니다만…….”
잠시 축구 이야기로 분위기를 풀던 끝에 다의홍이 용건을 꺼내니, 가등 시장은 아니라면서도 표정으로는 그렇다고 답하였다.
“아니긴요, 내 아내가 나를 오우치씨의 섭정으로 삼으려 애를 쓰는데, 어찌 골치가 아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가등 시장은 그제야 고개를 조금 끄덕이며 다다라 상단주를 응시하였으니, 그 시선이 마치 그걸 아는 사람이 그러냐는 책망 같은 게 묻어 있었다.
즉, 부인이 하는 짓이 여러 사람 골치 아프게 하는 짓인 걸 알면 알아서 만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뜻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다라 상단주의 부인 왕시라의 최근 행보는 가등 시장을 골치 아프게 하고 있었고, 탐라국의 외관부도 당황스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사정의 시작은 당대, 아니 전대 오우치 가독 히로즈가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부터였다.
죽은 히로즈는 가신 모리씨의 여식과 혼인하여 히토요시라는 이름의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는데, 이제 고작 다섯 살에 불과했다.
독자인 히토요시가 차기 가독인 건 당연한 수순인데, 그의 나이가 너무 어려 대리자가 필요했으니, 처음에는 히로즈의 부인이자 히토요시의 어머니가 그 일을 맡을 예정이었다.
한데, 바로 그 시점에서 왕시라가 개입했으니, 히토요시의 어머니가 아무런 경험이 없는 만큼 가문의 큰 어른이 섭정직을 맡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이었다.
그 말도 일리가 있긴 했지만, 문제는 그럴 만한 큰 어른이 없다는 것이었다.
직계나 직계와 가까운 이들 중에 큰 어른들은 죽거나 사리분별이 어려울 만큼 나이를 먹었고, 나이나 경험 면에서 어느 정도 적합한 자는 방계 중에서도 먼 자들뿐이었다.
그런 반론 앞에 왕시라가 다시 주장한 바가 있었으니, 그게 여러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비록 가문과는 절연하였다고 하나, 혈연이라는 천륜에서 엄연히 가독의 삼촌이 되시는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물론, 그 삼촌 되시는 분은 바로 다의홍이었다.
가문과 절연했다는 점만 빼면, 모든 면에서 가독의 섭정을 역임하기에 아주 적합한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사실 가문과 절연했던 건 어쩌면 오히려 손쉬운 부분이었기에 별문제가 아니었다.
하나, 히토요시의 어머니의 본가이자 오우치씨 가내에서 정치적 위상이 큰 모리씨의 반발이 있었고, 또, 왕시라가 예전에 오우치씨를 삼키려다 실패한 적이 있어 다시 같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문제였으니, 다들 왕시라의 뜻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라 여겼다.
한데, 뜻밖에도 최근에 히토요시의 어미가 아들의 정치를 대리할 섭정으로 다의홍을 택하겠다는 선언을 일방적으로 발표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물론, 그 선언은 곧바로 대대적으로 일어난 가신들의 반발에 밀려 연기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취소되긴 했지만,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아무리 왕시라가 지난 20여 년간 다다라 상단을 사실상 이끌거나, 주요 회사 몇몇을 직접 이끌면서 정치와는 무관한 인생을 살았다곤 하나, 오우치 가독의 어미가 그런 전향적인 선택을 하려 한 것 자체가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오우치씨의 가신들 중에도 상당수가 상단주를 지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가등 시장이 말하니, 다의홍도 알고 있다는 양 고개를 끄덕였고, 이어 말문을 열었다.
“탐라 조정의 의향은 아직 정해진 것이 없습니까?”
“외관부에서는 일단은 관망하면서 장계를 수시로 보내라 할 뿐입니다. 아무래도 탐라공께서 일선에서 물러나신 탓에 외관부에서도 좀 더 상황을 충분히 살피고자 하는 모양입니다.”
외관부의 일은 탐라공이 여전히 챙기고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예전만큼 일일이 나서기보다는 외관부의 결정에 ‘코치’를 하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전히 탐라 조정의 오우치씨에 대한 대계는 장기적인 흡수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 하나, 그것만으로는 결정에 아무런 기준이 되지 못하지요.”
오우치씨에 대한 탐라국의 외교적 방침은 장기적으로 오우치씨의 영토를 탐라국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었고, 이는 어느 정도 알려져 오우치씨도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오우치씨의 내부적인 대응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파악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탐라국의 일부가 되기보다는, 고려와 왜국 사이의 절충지로서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그 대응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오우치씨는 고려와 왜국 사이에서 정치와 경제 양면에서 특별한 이득을 취하고 있었으니, 그중에서도 특히 남조 측은 오우치씨와의 동맹까지 염두에 두고 친근하고 있었다.
현재 왜국의 남북조 대치 상황은 오우치씨라는 저울추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 분명한 만큼, 도가시령이 독립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남조의 입장에서는 오우치씨가 북조를 압박해 주는 것이 필수였다.
때문에 고려의 탐라국이 북조와 남조 모두에 대사관을 두고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조 측은 오우치와의 우호 관계를 위해 애쓰고 있었으니, 자연히 오우치씨의 정치적 영향력도 커졌고, 남조와의 교류 속에서 경제적인 이점도 챙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고려나 탐라국과의 관계는 양적으로는 풍족했지만, 그 와중에 점차 불만이 싹 트고 있는 중이었다.
오우치씨의 영지들이 가진, 교역에 있어서의 지리적인 이점은 탐라국이 남북조에 대사관을 설립하고, 무라카미씨들이 세토 내해를 지배하면서 교역의 ‘정류장’ 역할을 독점하면서 거의 사라졌다.
특히, 가장 큰 불만은 오우치씨 영토에 있는 이와미 은광에서 비롯되었으니, 이와미 은광에서 더 많은 은이 생산되면 생산될수록, ‘떡고물’ 정도의 이득만 얻는 오우치씨의 입장에서는 점점 더 배가 아플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탐라국의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도 있음에도 오우치씨를 어느 정도 챙겨 주고 있고, 게다가 오우치씨의 백성들을 고용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오우치씨의 경제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기에 그 불만이 어이없었지만, 오우치씨로서는 자신들이 이와미 은광의 온전한 주인일 수도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서 불만을 품었던 것이다.
“그나저나 상단주의 부인께서는 참으로 언변에 능하신 모양입니다. 가독의 어머니는 상단주가 섭정이 되는 것만이 오우치씨의 독립을 지킬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니 말입니다.”
“비꼬는 말이라도 감수하겠습니다.”
“비꼬는 건 아닙니다. 진심으로 감복한 면이 있어서 드리는 말입니다.”
왕시라는 오우치씨의 그런 불만을 제대로 이용했다.
다의홍이 오우치씨의 섭정이 되면 탐라에 흡수될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고, 이와미 은광에서 나오는 이득에서도 오우치씨의 분량이 더 많아질 것이라는 설득이 주효했던 것이다.
사실 다의홍이 오우치씨의 섭정이 될 경우, 고려에 흡수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건 사실 쉽게 통할 논리는 아니었다.
오히려 탐라국에 충성하는 다의홍이 오우치씨를 고려에 가져다 바치려 할 수도 있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었고, 처음 오우치씨의 가신들이 일제히 반발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한데, 왕시라는 한 가지 방안을 제시했으니, 다의홍과 그녀의 손녀와 히토요시의 혼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솔직히 그걸로 설득되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상단주께서 외증손자가 오우치씨의 후계자가 되면 오우치씨의 독립을 지원할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설마 상단주께서도 그리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이미 말했듯 나는 탐라공 저하의 뜻을 따를 것입니다. 다만, 내 아내가 던진 다른 제안에는 혹하는 면이 있습니다.”
“…….”
왕시라가 히토요시의 어미를 설득한 또 다른 방법이자, 오우치씨의 가신들 중 상당수의 생각을 바꾸게 만든 건 바로 이와미 은광의 추가적인 개발이었다.
즉, 다다라 상단이 이와미 은광을 개발하고, 그 이문의 많은 부분을 오우치씨의 몫으로 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물론, 개발하는 것 자체야 오우치씨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생산한 은을 명나라에서 팔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다다라 상단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 오우치씨를 유혹한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의홍에게도 매력적이었다.
정치와 관직에서 물러나 다다라 상단의 경영에 매진하면서 다의홍은 다다라 상단이야말로 그가 가진 최고의 자산이자 힘이고, 후대에 물려줄 최고의 가치임을 깨닫고 있었으니, 그의 대에 가급적 크게 성장시키고자 하였다.
그런 중에 이와미 은광의 개발은 아주 먹음직스러운 것이었으니, 설령 오우치씨에게 떼 주고, 탐라국에 다 바쳐 이문이 없다고 해도 손해만 보지 않을 수 있다면, 기어코 진출하고 싶은 사업이었다.
이문이 없더라도 다다라 상단을 고려의 상업과 산업계의 보다 큰 거인으로 만들 계기임에는 틀림없고, 훗날 상황이 변하여 이와미 은광으로부터 이득을 얻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가등 시장은 살짝 이맛살을 찌푸리며 다의홍을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결국 탐라공께서 친히 반대하시기 전에는 지금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두고 보실 요량이시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재삼 강조하건대, 탐라공 저하의 의중이 내 결정의 모든 것일 겁니다.”
다의홍의 마음속에 다다라 상단의 주인으로서의 욕심과 탐라공의 충신으로서의 자세가 뭔가 이율배반적으로 동거하고 있음을 느끼며, 가등 시장은 결국 이 문제를 탐라공께 부담으로 안겨드려야 한다는 점에 속내로 한숨을 내쉬었다.
출해상시의 시장이나, 구주 전반은 물론 오우치씨와의 관계 부분에서도 큰 역할을 해야 하는 그로서는 자신의 무능을 탐라공께 알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나, 결국 그는 탐라공께 장계를 올릴 수밖에 없었으니, 그 장계의 답신은 의외로 빨랐다.
그리고 그 답신의 내용도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통무총리의 결정에 따르라.’
외관부의 일은 총리에게 위임하지 않았다고 알려진 것과는 전혀 딴판인 결정이었다.
게다가 가등 시장을 더욱 당혹시킨 것은 함께 동봉된 통무총리의 영장이었다.
‘조만간 본인이 구주와 오우치씨를 방문코자 하니, 시장은 이에 협조하여 준비해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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