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48)
이주섬.
탐라섬보다 거의 20배가량 큰 섬이나, 세력 10년 현재, 그곳의 인구 규모는 탐라특별시의 인구와 비슷한 70만 정도에 불과하여, 비슷한 크기의 구주섬이 가진 인구의 절반 정도였다.
행정 구역상 5개의 군이 설치되어 있는데, 북동쪽 가남군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북평군, 서평군, 남평군,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산군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중 북평, 서평, 남평군은 과거 평포족들과 이주 월인들의 거주지였던 서쪽 평야 지대에 속하고, 가남군과 고산군이 이주섬의 동편을 양분하고 있었다.
다만, 가남군의 경우 과거 가남현이 있던 삼각주 주변만 관할하고 있고, 나머지 동편 대부분의 지역이자, 과거 고산족들의 영역은 모두 고산군에 속해 있었다.
고산군의 중심인 고산상시는 정작 고산군의 최남부, 과거 파이완족의 영역으로, 본디 근위수군의 분함대가 주둔하다가 대명 전쟁 이후 제4함대 사령부로 분리 독립한 남부 거점과 그 주변이 성장하여 이뤄진 고을이었다.
이주 5군의 인구는 비슷한 편으로 가장 많은 가남군과 가장 적은 남평군의 인구 차이가 3만 명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주섬에서 가장 발달한 산업은 역시나 농업과 어업이었으니, 그중 농업은 평야지대에 대규모 벼농사가 이뤄져, 여송 거양에 이어 쌀 생산에 있어 남면과 두 번째 자리를 놓고 다투는 지역이었다.
그렇다고 농어업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곳은 아니었고, 광업과 섬유업도 성행하였다.
광업은 동쪽 산악 지대 전역에 걸쳐 철과 동을 비롯한 금속 물론, 흑토나 황 같은 비금속도 산출하고 있었으며, 작은 규모지만 금과 옥을 생산하기도 하였다.
섬유업은 양잠업을 바탕으로 잠사(비단실)를 소량 생산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솜과 면실의 생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산군을 제외한 네 개의 군 전역에서 쉽게 목화밭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산업으로서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탐라섬이나 남면에 위치한 방적회사와 방직회사들이 사용하는 솜과 면실에서 이주산(産)의 비중이 제법 컸다.
진주를 비롯한 남부 해안 고을들의 경우 이주산 솜과 면실의 비율이 십분지 삼에 이를 정도였으니, 기후가 허락하는 고려의 전역에서 면화가 재배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이주섬의 면화 생산량이 상당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주섬에서 솜을 대량으로 생산하게 된 건 기후적인 이점 덕이기도 했지만, 적합한 시기에 목화를 대규모로 재배한 혜안 덕이었으니, 그 주동은 연향 농공이라는 회사였다.
연향 농공(戀鄕 農工)은 이주섬에 그리 많지 않은 이주 토박이 회사들 중 하나이자 이주 최대의 회사였으니, 그 연혁은 고작 7년밖에 되지 않았다.
하나, 이주 전역에 걸쳐 대규모 목화 농장 12곳을 두고 있고, 2년 전부터는 솜 생산을 넘어 직접 면실을 생산하는 방적 사업까지 성공적으로 진출한 상태였다.
회사명에서 알 수 있듯 연향 농공의 주인은 월인 출신이었는데, 다만 이주섬에 있는 대부분의 월인들과는 다소 다른 사정으로 이주에 정작한 자였다.
그자의 성은 여씨였고 이름은 경이었으니, 과거 안남국의 충신이었던 여아부의 아들이었다.
안남국이 멸망할 당시에 구사일생하여 이주섬에서 자란 그는 어느새 삼십 대의 청년이 되어 있었고, 큰 회사를 이룩하면서 이주의 월인들 특히 안남 출신들의 선망의 대상이자 그들의 정치경제적 대표자 자리까지 꿰차고 있었다.
하여, 그런 여경이 늦은 나이에 혼례를 치름에 월인들의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으니, 월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이주 남동부는 그야말로 축제의 장과 같은 분위기였다.
혼인날 며칠 전부터 방문자들과 혼례 선물의 행렬이 시작되어 분위기를 고조시키더니, 혼인 전날에 이르러서는 폭죽까지 터지며 남평상시 전체가 잔치를 벌인 것이었다.
다만, 그렇게 즐거운 분위기가 가득한 가운데 정작 큰 저택 안에서 혼인의 당사자인 여경과 그의 신부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그들의 앞에는 그들의 인생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자가 있었다.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네, 고마워요.”
탐라국에서 잔칫날에 잘 놀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석삼이었지만, 그날만은 아니었으니, 눈앞에 있는 두 남녀 모두에게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이었다.
“내 비록 너희를 크게 돕진 못했지만, 그래도 사람 된 도리로 빠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전면에 나서진 않겠지만, 진심으로 축원할 것이다.”
“충분히 도와주셨습니다.”
“저도 원망하는 마음은 없어요.”
앞선 대답은 여경의 것이었고, 뒤를 이은 대답은 신부 여애의 것이었다.
석삼은 그중 여애를 응시하였으니, 그 눈빛에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여애는 석삼이 과거 여나국 여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바로 그 여식이었으니, 전대 유구공 사토공의 수양딸로 성장했고, 지금은 좌(佐)씨 성을 받아 독립한 상태였다.
그리고 여애는 여경의 여동생인 여미숙과 더불어 여경을 도와 연향 농공을 크게 키워 낸 창업공신이기도 했으니, 그 인연이 부부의 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었다.
“너희가 함께 일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었지만, 혼인할 사이까지 이르게 될 줄은 미처 몰랐구나.”
“더 일찍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여경이 사과하였지만, 정말 크게 죄송한 기색은 아니었고, 석삼도 그에 대해 전혀 탓할 마음은 없었다.
여경과 여미숙 두 남매를 구하고 이주로 옮겨 살게 해 주었으며, 그들의 생활을 어느 정도 도와주기까지 한 석삼이지만, 성인이 될 무렵부터는 얼굴 몇 번 본 게 인연의 전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초에 그들을 고아로 만든 업보 중 적지 않은 부분이 그에게 있는 만큼 여경이 10살이던 시절부터 몇 년 동안 도운 것만 가지고 은인이라 자부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그런 면은 여애에게 더욱 컸으니, 애초에 석삼에게 있어 여애는 부정하고 싶은 존재였고, 아내 점녀의 측은심과 배려가 아니었다면,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인연이 끊어졌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그들이 혼인하기 전에 석삼에게 서편으로 알려 준 것만 해도, 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도리를 다한 셈이었다.
“언젠가 한번쯤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끊어질 듯 말 듯 어색한 대화를 조금 더 이은 뒤, 여경이 말하며, 신부 여애와 잠시 시선을 마주쳤다.
석삼은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 하고, 또 걱정하며 여경의 말을 기다렸다.
“아내와도 이야기를 나눠 본 적 있습니다. 대사님께서 저희에게 미안해 하고 계시다고요. 정말 그러시다면 그럴 필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구나.”
“아니, 고맙다는 말씀도 하지 마십시오. 정녕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은 저희입니다.”
“…….”
석삼의 시선이 절로 여애에게 돌아갔으니, 경은 몰라도 여애는 석삼에게 감사를 품을 이유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한데, 석삼의 눈에 들어온 여애는 작지만 분명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한때는 대사님……. 아니, 아버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어요. 어째서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지 못할까. 내 어머니는 왜 버려졌을까. 그런 질문을 원망과 함께 키웠었지요. 그러다 한참 큰 후에야 알았어요. 제 탄생의 사연에서 아버님은 오히려 피해자이셨다는 걸요. 그리고 뜸하게라도 연락할 수 있고, 특히 점녀 부인께서 음지로 저를 도운 것부터가 제게 큰 은혜를 베푸신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죠. 물론, 이런 마음을 인정하기까지 더 시간이 필요했기에 여태껏 제 입으로 표현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낳아 주셔서, 절 세상에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과 함께 문득 여경, 좌여애 부부가 일어나더니 고려식으로 석삼에게 큰 절을 올렸다.
석삼은 입술을 깨물며, 그렁그렁한 눈매로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으려 했지만, 고맙다는 말을 삼가고 대신 고개를 끄덕여 그들이 보여 준 마음이 대꾸하려다 결국 뺨 위로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잘 커 줬다.”
메인 목으로 애써 그렇게 말한 뒤 석삼이 서둘러 소매로 눈물을 마구 훔치는데, 여경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한 사람으로서의 감사 다음으로 한 회사의 주인으로서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
젖은 눈매로 의아함을 표하자, 여경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애초에 제가 연향 농공을 시작하고자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도 대사님, 아니 장인께서 여애에게 알려 주신 이야기들 덕분이었으니까요.”
석삼은 계속 그 말의 뜻을 모르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 여애가 말을 받아 이었다.
“아버님께서 제게 종종 보내신 서편에 여러 이야기들이 있었지요. 그중에 목화의 재배에 관한 이야기와 장차 면의 수요가 커질 것임을 여러 번 알려 주셨고요. 덕분에 경이 오라버니와 논의하여 목화 재배에 운을 걸어 볼 각오를 할 수 있었으니, 그것이 저희가 특별히 감사드리는 이유입니다.”
여경이 대표이긴 하나, 여미숙이나 좌여애 또한 창업부터 함께하였음은 석삼도 익히 아는 부분이었다. 다만, 사업 자체를 구상한 것도 함께한 줄은 처음 알았고, 그 구상의 계기가 자신이 보낸 서찰인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상상 못하는 게 당연했다.
애초에 그 서찰은 그의 이름으로 보낸 것이긴 하나, 대개의 경우 아내 점녀가 대신 써서 보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정다감한 서찰을 써 보낼 성격도 아닌 데다, 아무리 아내가 이해한다고 해도 여애가 언급될 때마다 아내와 그의 적자들의 눈치가 보였기에, 일부러라도 아내에게 맡기거나 아내를 통해 쓴 글만 보냈던 것이다.
하여, 목화나 방직 산업에 대해 그가 직접 언급했던 적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내가 썼을 가능성이 높았다.
‘역시 나는 좋은 아내를 두었군.’
살면서 몇 번이나 깨달은 바를 새삼 다시 깨달았으니, 그가 아는 점녀라면 여애에게 목화 산업을 언급함에 있어 우연히, 아무 생각 없이 적었을 리가 없었다.
아마도 여애가 장사나 사업에 뜻이 있음을 눈치채고, 그에 도움을 주고자 언급했으리라.
“그렇게라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구나. 하나, 연향 농공이 크게 성장한 것은 엄연히 너희들의 노력과 능력 덕이니, 내게 고마워할 건 없다. 앞으로도 연향 농공이 크게 발전하고, 너희가 이루는 가정도 만사형통하길 바란다.”
그렇게 덕담을 남기고 나자 석삼은 전부는 아닐지라도 마음속에 남아 있는 여경 남매와 좌여애에 대한 심적 잔재들 중 상당 부분을 털어 버릴 수 있었고, 이후 술 몇 잔을 나누며 좀 더 편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었다.
“방직업이 궤도에 오르면, 이 녀석을 개량하는 걸 도전해 보렵니다.”
“향초 말이냐?”
“예, 이처럼 전으로 부쳐 먹어도 좋지만, 그냥 먹어도 의외로 맛이 괜찮습니다.”
술상의 안주 중에 하나가 향초전이었으니, 향초는 고려의 열대 지방에 널리 전파되어 재배되고 있었고, 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었다.
“씨의 개수를 줄이고, 오래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만 있다면 고려 전역에서 각광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음, 아니면 추위에 좀 더 강한 향초를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좋겠지. 적어도 탐라나 구주에서라도 재배할 수 있다면 남면의 남부까지는 유통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지금 이주섬에서 재배되는 향초는 여송산이었으니, 오직 열대에서만 재배할 수 있어, 이주보다 조금만 더 북쪽에 위치한 곳에서도 자라지 못하는 종이였다.
“네, 최선을 다한 뒤, 운이 따라 주길 기원할 것입니다.”
당대의 종자 개량이란 당연히 기초적인 방법에 의한 것이니, 탐라공이 처음 벼의 종자를 개량시키면서 도입한 방법 그대로였다.
즉, 돌연변이나 특징이 강한 종자들끼리 수정시키는 방법이니, 다만 유리의 개발과 보급 이후에 유리 온실을 이용하는 정도의 발전은 있었다.
“유리 값을 꽤 쓰겠구나.”
“그렇지요. 하지만 그 정도 투자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하.”
“하하하!”
연향 농공이 그간 거둔 수익을 생각하면 아주 겸손한 표현이었다.
탐라공의 행차에 앞서 먼저 태마식으로 향한다는 명분하에 들른 이주였지만, 석삼의 인생에서는 금강과 같이 귀한 순간이었다.
* * *
그가 개척회사에 일하게 된 건 어쩌면 바다에 대한 혐오…… 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긋지긋함이라 할 수 있었다.
본디 탐라수군에 속했던 그는 몸집이 작고 날래어 초년 시절부터 망대에 올랐는데, 재수 없게 여러 번 전투에 휘말리고 거친 바다도 많이 겪으면서, 또 더 재수 없게 망대에 대신 올라갈 적합한 후임을 만나지 못하면서 유독 고생이 심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다 육군이 확대되자, 더는 참지 못하고 육군으로 전속을 청하여 전입하게 되었고, 7년간의 육군 생활 끝에 대위로 전역하였으니, 이후 환대를 받으며 개척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시 대위님, 세랑족이 오고 있답니다.”
“알았네. 한데, 그놈의 대위님 타령은 언제 거둘 셈인가?”
“헤헤, 좋지 않습니까. 부장님보다는 더 낫지요.”
아마 거의 열 번은 족히 나누었을 법한 대화가 한 번 더 흘러갔다.
개척회사의 여러 관리부장 중 하나인 시승태가 대위라는 칭호를 벗어던진 지도 5, 6년이나 지났지만, 많은 이들이 아직도 그를 장교로 대하고 있었으니, 특히 탐라군에 환상을 가진 자라면 탐라국 사람이 아니더라도 여지없이 그를 대위님이라 불렀다.
바로 지금 설구 과장처럼.
“자네가 나를 대위님이라 부르는 건, 내가 자네를 회골인이라 부르는 것과 비슷하네.”
“에?! 아니, 그게 어떻게 비슷합니까?”
쑥스러운 대위님 호칭에 안하던 반격을 하자 설구 과장이 이맛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항의하였다.
“자네가 회골인이 아니면 뭔가?”
“뭐긴요. 고려인이고, 요동인이지요. 회골의 피는 너무 오래되어 희미해졌습죠.”
“내가 그러하네. 탐라군에서 전역한 지가 언젠데, 게다가 더는 탐라국에서 살고 있지도 않은데, 왜 자꾸 날 대위라 부르는 겐가?”
“뭐, 그리 오래되지도…….”
“오래되었어. 요새는 탁가체술도 잘 기억이 나질 않을 정도야.”
“피, 얼마 전에도 아침에…….”
“어허!”
시 부장이 눈을 부라리며 으름장을 놓자, 그제야 설 과장이 예예, 알겠습니다하며 말을 삼갔다.
“근데, 뭐라 했지?”
“예? 아, 세랑족이 오고 있다고 말씀드렸죠.”
“아아, 맞아.”
그제야 용건을 떠올린 승태는 설구와 함께 머물고 있던 천막을 나섰다.
“으으, 벌써 공기가 차구먼. 여긴 다 좋은데, 너무 추운 게 문제야.”
“다 좋을 것도 없습니다만.”
“안 좋긴. 보게나 사방을 둘러봐도 탁 트인 게 얼마나 시원해 보이는가.”
“시원해 보이긴 바다만 한 게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이고, 말도 말게. 그 시원해 보이는 바다 위에 발을 디디면 이런 지옥 같은 곳이 다 있나 싶을 테니.”
육군에 전속한 후에도, 탐라군의 태생상 곧잘 배에 몸을 실어야 했던 승태에게 여전히 바다는 지긋지긋한 곳이었다.
반면, 요동국에서 나서 요동국에서만 살았던 설구에게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가 오히려 지긋지긋하고 바다에 대한 선망이 진했다.
어쨌든 시승태는 단단한 땅이 좋았고, 남들은 힘들다는 개척회사 생활 속에서도 그저 넓고 탁 트인 평원에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만족스러웠다.
“저기 오는 모양이군.”
하얀 깃발과 붉은 깃발을 나란히 보이는 일단의 무리들이 말을 천천히 몰아오고 있었다.
“아, 근데 세랑족이 어디에 살지?”
“초원이죠.”
“아니, 주된 근거지 말일세.”
“바이칼 호수 일대라고 알고 있습니다. 뭐, 저들이야 늘 돌아다니지만요.”
“음, 어쨌든 자네 고향이로군?”
“하이고.”
설구는 포기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바이칼 호 이야기만 나오면 여지없이 그와 같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흐흐, 자네 아버지가 너무 출세한 덕이라 생각하게.”
설구의 아버지 설장수는 요동국의 관리였다가 최근에 은퇴하였으니, 호조의 판서까지 역임한 바 있었다.
그리고 그 정도로 출세한 자라면 그가 회골족의 후손임도 널리 알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 중에 세랑족의 무리가 마침내 그들의 앞에 도착하였으니, 가장 앞서 있던 젊은이가 말에서 내리면 아주 능숙하지는 않은 고려말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시오.”
“안녕하시오. 오느라 수고하였소. 보아하니 짐이 제법 많구려.”
“그렇소. 이번에 담비 가죽도 이백 장 정도 가지고 왔소.”
“오, 그것 참 희소식이외다.”
근래에 담비 가죽이 탐라국 연해주에서 많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귀한 것이었다.
세랑족 족장의 아들이라는 이도 개척회사와의 이번 교역에서 크게 이득을 얻고 싶은지, 앞장서 그들이 가져온 물산들을 소개해 주었고, 이후 흥정에도 적극적이었다.
식량과 의복 등 생필품 위주로 거래를 대략 조율하자, 의례히 그러하듯 시 부장은 교역을 하려온 부족민들을 대접하고자 하였다.
한데, 세랑족의 족장 아들이 문득 승태에게 가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한 가지 더 보이고픈 게 있소.”
“……?”
“내가 전해 듣기로, 고려에서 금강석이 꽤 귀하다고 들었소.”
“금강석 말이오?”
승태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려다 이내 표정을 갈무리하였으니, 만약 금강석을 언급한 이유가 금강석의 거래에 있다면, 상대에게 너무 과한 욕심을 가지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금만큼은 아니지만 귀하다 할 수 있을 것이오.”
일부러 조금 낮춰서 평가하였지만, 세랑족 족장 아들은 그 정도라도 감지덕지인 듯 표정이 환해졌다.
그러면서 그는 품 안에서 작은 가죽 주머니를 꺼내 들고는 조심스레 한 손바닥 위에 가죽 주머니의 내용물들을 담았으니, 반짝이는 조그마한 것들이었다.
“어떻소?”
“……어디서 난 것이오?”
“자세한 건 말할 수 없소.”
“혹, 다른 자들에게서 빼앗은 것이오?”
“그건 절대 아니오.”
그렇다면 땅에서, 세랑족 같은 유목부족이 가진 기술을 생각하면 땅바닥이나 옅은 땅속에서 구했다는 말이었다.
시승태는 젊은이의 손바닥 위에 흐트러진 것들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대개의 것들은 좁쌀만도 못한, 조금 더 작으면 가루라 불러야 마땅한 놈들이지만, 몇 개는 쌀알보다 컸고, 그중 하나는 콩알 반쪽만 한 데다가 형태도 둥글었다.
‘정말 금강석이 맞다면, 적어도 저 큰 건 같은 크기의 금 백 개만큼의 가치가 있겠구나.’
그 생각을 하며 시승태는 부족 젊은이를, 그의 기대 어린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은 그가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불러 올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사실 결과를 짐작 못하기는 승태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바이칼 호의 서북쪽 강가에서 아주 간혹 발견할 수 있는 금강석 조각이나 금강석을 품은 돌멩이들이, 역사에서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큰 구덩이 중 하나를 500년이나 앞서 파게 만드는 실마리가 될지는 그도 전혀 몰랐다.
물론, 적어도 한 사람의 인생을 기준으로는 아직 너무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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