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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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해상시는 여전히 계속 성장하며, 진주상시와 함께 탐라국 제2의 고을 자리를 경쟁하고 있었지만, 출해포구 자체는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변화가 없었다.
이는 출해포구가 확장할 수 있는 곳까지 모두 확장된 상태인 탓으로 출해포구 앞의 평호섬이 방파제로서의 역할을 해 주는 곳 이상으로 포구를 넓힐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자체가 출해포구가 그만큼 이미 많은 발전을 이룬 증거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교역량을 포구의 확장성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물론, 출해상시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구주 최고의 고을 자리를 유지하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탐라국과 교역하기에 가장 적합한 고을임은 당연하고, 구주 최대 포구를 가지고 있는 고을로서 포구 배후의 고을 자체의 규모는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구주의 다른 주요 고을과 달리 손바닥만 한 어촌에서 비롯되었기에 사실상 ‘계획 도시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 사회 기반 시설에서도 가장 체계적이고 발달되어 있으며, 구주 전체가 출해군을 향해 교통 체계가 구성되어 있었다.
다만, 출해군이 가장 큰 고을이라 하더라도, 과거 분주의 구획상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건 아니었다.
오우치씨가 구주에서 물러나면서 과거 풍전국이 더해진 북구주가 약간의 차이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게 되었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달리 말하면 과거 서구주 지역과 출해군의 성장만큼 북구주 지역도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말이니, 특히 과거 다자이후 지역, 지금은 태재군(太宰郡)이라 부르는 고을의 성장은 탐라국 전체에서도 눈에 띌 정도였다.
본래도 구주에서 가장 살 만한 땅을 가진 지역이었고, 출해군과도 가까운 터라, 구주의 산업 중 많은 부분이 태재군을 기반으로 하는 덕이었다.
태재군의 산업 대부분은 구주 정도를 시장으로 하는 지역 의존적 산업이긴 하나, 그중 고려 전역으로 팔리는 물산의 생산도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사철(沙鐵)이었고, 더 정확히 말하면 사철 중 포함되어 있는 자철(磁鐵)이었다.
사철은 말 그대로 모래 속에 섞여 있는 철을 말하는 것으로, 도처에 흔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생산성을 가진 사철은 주로 해안이나 강가에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나, 간혹 지질학적 시간 단위의 변화 속에 사철이 모여 산세를 이루는 경우도 있으니, 그런 곳에 있는 사철을 산사철(山沙鐵)이라 따로 구분했는데, 당연히 해안이나 강가에서 사철을 구하는 것보다 더 생산성이 높았다.
태재군의 내륙 쪽에 바로 산사철 지역이 있었으니, 그곳은 예전부터 왜국의 철 생산지 중 하나로 구주가 탐라국에 속한 뒤로는 거의 몰락한 곳이었다.
고려 전역에서, 심지어 중국으로부터도 고품질의 철광석을 수입하여 대량으로 생산하는 탐라 제철 산업의 여파에, 질 좋은 철을 얻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쓰던 사철 산업이 버틸 수 있었을 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대명 전쟁 이후 다다라 상단이 태재군에 다다라 광물이라는 회사를 세우고, 사철의 채굴을 재개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우려의 시선을 보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가 다다라 상단이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크게 실수를 저지른다고 평하였는데, 탐라상단의 투자도 있다는 소문조차 헛소리로 취급할 정도였다.
한데, 지금에 이르러서 다다라 광물은 상당한 매출을 거두고 있고, 이문도 나쁘지 않은, 태재군의 대표적인 회사로 발전하였다.
이는 사철 중 자철을 탐라상단에서 전량 수입한 덕으로, 애초에 탐라상단이 다다라 광물회사에 투자하여 설립과 활동을 도운 이유도 자철의 수입에 있었으니, 다다라 광물은 자철을 탐라상단에 판매하는 것만으로도 10년 만에 투자 비용을 전부 거둬들일 수 있을 정도의 수익을 얻었다.
거기에 자철 이외의 철도 비록 그 품위가 낮다곤 하나, 높은 품질이 필요 없는 철물의 제작 용도로 쓰기에 충분했으니, 거기서도 이문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탐라상단주의 요구로 철을 추출하고 남은 모래와 흙을 한곳에 산적해 두느라, 예상보다 운영에 드는 비용이 조금 더 들긴 했지만, 큰 비용은 아니었기에 다다라 광물회사의 수익성을 해치진 않았다.
탐라 상단이 다다라 상단으로 하여금 사철을 생산하게 한 것은 당연히 사철 중에 포함된 자철로 자석을 생산하기 위함이었다.
나침반같이 전통적인 자석의 소용성은 해양을 기반으로 한 탐라국에서 더 높은 데다가, 장차 자석이 필요한 일들이 많아질 것을 예상하고 미리 생산해 두고자 한 것이었다.
그리고 철을 추출하고 남은 모래와 흙을 함부로 처리하지 않고 한 곳에 선적하게 한 것은 당장은 소용이 없어도 훗날 그 남은 모래와 흙에서 귀한 물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몽주가 현대에서는 사철의 채광이 철을 목적으로 하기보다 사철광석에 포함된 여러 희토류를 산출하기 위함인 것을 알고 보관하도록 요구한 것이었다.
어쨌든 다다라 광물은 예상과 달리 번창하였고, 출해군에 모든 걸 빼앗길 수도 있었던 태재군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큰 동력원이 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결국 탐라상단의 조력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만한 자들은 다 알고 있었으니, 경제적으로 구주가 탐라에 더욱 강하게 예속됨은 물론, 백성들의 여론 또한 더욱 탐라를 추종하게 만들고 있었다.
하여, 탐라공의 공자이자 차기 탐라국공 보위자인 통무총리 석강중이 태재군에 발을 디뎠을 때, 구주의 백성들이 크게 몰려 환영한 건 당연했고, 특히 경쟁의 대상인 출해군을 거치지 않고 태재군의 포구로 곧장 입항했다는 사실에 더욱 열광하였다.
강중은 자신을 환영하는 백성들 사이로 마차를 천천히 몰게 하여, 적지 않은 시간 동안 구주 백성들의 환대에 화답하였다.
안 그래도 사람 같지 않은 감화력을 가진 강중이 작심하고 친근함을 보이자, 탐라공이 직접 방문해도 그 정도일까 싶을 정도로 백성들의 환성이 커졌다.
그리고 그런 백성들의 거대한 환호성과 강중 공자에 대한 우호적 반응은 어떤 자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렇게나 친근한 표정과 환한 미소를 띠고 있던 공자가 정작 그들 앞에서는 서리 같은 냉랭함을 풍기자, 한겨울 냉골 위에 드러누운 것처럼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런 반응의 대표적인 인사는 물론, 다다라 상단주의 부인인 왕시라였다.
공자의 하룻밤 거처로 선택된 다다라 상단 선운회사 지소의 빈청에서 그녀는 강중 공자를 마주하고 있었다.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한 달 안에 지금 경영하고 계신 모든 회사에서 손을 떼십시오.”
‘마, 말도 안 돼!’
시라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번쩍 들어 항의하였지만, 정작 마음으로만 외칠 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공자와 시선을 마주치자마자 솟구친 뜨거운 분노마저 순식간에 식어 버릴 정도의 냉기를 느낀 탓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었음도 절감해야 했다.
‘그렇게나 온화하다 하였건만…….’
누구한테 들은 것만도 아니었다. 최근 몇 년 동안에는 만나지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 몇 번 만난 적 있었고, 외관부 관리 시절에도 종종 대면한 적이 있었다.
그 기억 속에서 강중 공자의 인상은 늘 한결같았으니, 온화하고 겸손하며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누구나 인정하는 그런 인상이었다.
한데, 지금은 아니었다.
분명 얼굴은 같으나, 마치 성격이 정반대인 쌍둥이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과거의 기억에 기대어, 그리고 일반적인 공자에 대한 평가에 맞춰 모든 대응을 준비해 왔던 왕시라는 만나자마자 크게 당황하고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 저는…….”
“변명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무슨 말을 하든 내 결정은 바뀌지 않을 것이고, 이는 탐라공 저하의 결정과도 같습니다.”
“…….”
꼭 붙은 것처럼 열리지 않는 양 입술을 뜯어내듯 열어 겨우 목소리를 내었건만, 무슨 말도 하기 전에 공자에 의해 차단되었다.
오우치 가문 내의 일이니까, 정치적인 문제이기 전에 경제적인 문제이자 상단 운영의 문제니까 등등.
생각해 두었던 모든 변명과 회유, 그리고 속임수의 말들이 목구멍 깊숙이 잠겨 버렸다.
한참이나 ‘아노미’ 상태에 있던 시라는 문득 남편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
의자에 앉아 있는 공자의 좌측에 시립한 채 담담한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을 확인하자, 그녀는 남편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순간 눈물이 왈칵 솟는 느낌에 입술을 깨물었으니, 지금 당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억울함 이전에, 남편에 대한 원망이 더 큰 원인이었다.
평소에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남편으로, 그녀가 바라는 건 어지간해서는 토조차 달지 않는 그이건만, 이상할 정도로 탐라공과 관련된 일에서만큼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아니 그보다는 사람이 아니라 인형인 것처럼 절대적으로 탐라공의 의견을 추종하였으니, 그 모습이 답답하다 못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지금도 자신의 부인이 곤경에 빠져 있건만, 게다가 예전과 달리 그 곤경의 원인이 비단 그녀에게만 있는 게 아님에도 자신을 모른 척하는 것 같은 남편이 참으로 차갑게 느껴졌다.
“부인, 대답을 들으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합니까?”
남편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을 때, 공자의 목소리가 들려옴에 그녀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 서 있는 다다라 상단의 직원들 중 상당수가 그녀를 지지하고 있겠지만, 그들은 아무런 힘이 되어 줄 수 없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녀가 대답을 하고 나면, 더는 그녀를 지지할 자들이 아니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자리를 정리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다는 말조차도 싸늘하여 일말의 고마움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받아 내야 할 대답을 받아 내었다는 당연한 반응일 뿐이었다.
그날 밤, 안채로 들어선 남편을 향해, 시라는 복수라도 하듯 최대한 싸늘하게 대하였다.
“내가 원망스러우시오?”
“…….”
“이런 물음을 예전에도 자내에게 한 적이 있는 것 같군.”
그 말에 반대로 돌리고 있던 시라의 고개가 휙 돌아가 남편을 쏘아보았다.
“그걸 아는 분이 내게 두 번이나 모욕감을 준 겁니까?”
“모욕이라…… 정말 그리 생각하시오?”
“그리 생각하느냐고요? 세상에……! 예, 나는 그리 생각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자들이 그리 생각했을 겁니다. 그리고 나는 물론, 상단주도 일언반구조차 못하는 걸 보았지요!”
하나, 남편 다의홍은 옅은 미소를 띨 뿐으로, 쓴웃음조차도 아니었다.
“잠깐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요. 하나, 나는 다다라 상단의 주인이고, 자내는 내 부인이지요. 구주에서 누구도 얕볼 수 없는…….”
“그래 봐야 탐라공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 꼴인 것도 사실이지요.”
“탐라공은 고양이 정도가 아니라 호랑이 중에 호랑이요. 그나마 나와 자내니까 요구라도 할 수 있었지요.”
“요구를 할 수 있었다고요? 그래서 받아들여진 게 있긴 합니까?”
“요구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얻었으면 받아들여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오.”
“…….”
연신 말다툼을 이어 가던 시라는 무어라 반론하려다가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었다. 그 증거가 다다라 상단이었다.
지난 날, 남편을 구주의 왕, 비유가 아니라 실질적인 의미의 왕으로 만들고 싶었던 그녀는 대신 남편을 다다라 상단의 주인으로 만들었다.
그것이 구주의 왕좌보다 더 나은 것일 수도 있음을 이제는 그녀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문득 생각이 드는 게 있어 서둘러 말문을 열어 남편에게 물었다.
“혹시 이번에도……?”
“남면과 이주로의 진출을 허락 받을 수 있었소.”
“……!”
시라는 놀란 눈을 크게 떴으니,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혜택인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당금 탐라국에 있는 수많은 회사들 중 탐라상단에 속한 회사들을 제외하면 모두가 한 지방에 국한한 ‘로컬 컴퍼니’들이었다.
즉, 남면에 위치한 회사들은 남면에서만 활동하고, 구주의 회사들은 구주에서만 활동하는 식으로, 물산의 전국적인 유통은 철저히 탐라상단의 손에 이뤄졌다.
물론, 이는 전국적으로 활동할 만큼 자본력을 갖춘 회사들이 극히 적은 탓이지만, 다다라 상단처럼 한 지방을 넘나들 만한 자본력을 갖춘 집단도 그러지 못하고 있었으니, 탐라국의 상계 내지 경제계의 암묵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이었다.
자유로운 상행과 회사 경영을 크게 지원하면서도 다른 지방으로 진출하는 것을 금하는 탐라공의 비공식적인 지침이 있었던 것으로, 기본적으로 각 지방의 자체적인 경제력을 쌓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기 위함이었고, 한 회사나 자본 집단이 너무 강대해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했다.
“대신, 남면과 이주의 회사들도 구주로 진출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다다라 상단에 나쁠 게 없다고 봅니다.”
뒤이어 놀랄 만한 큰 반가움을 감소하게 할 만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남편이 말한 것처럼 시라가 보기에도 다다라 상단의 입장에서는 분명 호재였다.
남면과 이주에도 큰 회사들이 많이 있지만, 다다라 상단처럼 회사들로 집단을 이룬 곳은 별로 없었고, 그마저도 다다라 상단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탐라상단이라는 너무 큰 거인이 있어 티가 나지 않지만, 다다라 상단도 탐라 경제계의 작은 거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시라의 표정에 분기와 원망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번 일만 해도 결국 다다라 상단을 더욱 키우기 위한 욕심에서 비록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욕심을 방향은 다르지만, 분명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이와미 은광에 손을 댈 수는 없게 됐지만, 손을 댄다고 해도 그녀와 그녀의 남편 대에는 은으로 이문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중국에서 은이 차지하는 위치 때문이라도, 탐라국에서 은의 생산과 처분은 철저하게 관리되고, 통제되고 있었으니 그런 상황이 변하기 전에는 은은 이문을 남길 여지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저 먼 미래를 보고 욕심을 낸 것인데, 당장 그녀의 대에서 승부를 걸어 볼 만한 ‘경기장’이 마련되었으니, 더 좋으면 좋지, 결코 나쁘지 않은 걸 얻은 셈이었다.
“하면, 어디부터 어떻게 진출하실 겝니까?”
“그야,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요.”
“…….”
“물론, 자내도 함께 생각해 주시오. 비록 명백한 자리를 내줄 수는 없어도, 명색이 내 아내인데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건 없지 않겠소?”
시라의 얼굴이 환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와중에 다의홍은 쓴 맛을 느끼고 있었으니, 이제 더는 주군께 무어라도 요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에는 아내만의 독단과 욕심으로 다다라 상단을 얻게 되었다면, 이번에는 그도 출해시장을 통해 그의 욕심을 전하였으니, 다음번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제는 진정 다다라 상단만으로 그만의 ‘왕국’을 세워야 할 때였지만…….
‘이만하면 할 만하겠지.’
* * *
태재군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강중은 해협을 넘어 오우치씨의 나가토국에 당도하였다.
그곳에선 태재군에서와 달리, 일말의 환호성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리 오우치씨가 탐라국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있다곤 해도 탐라국에 속하지도, 그렇다고 고려에 속하지도 않은 곳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여, 강중도 그곳의 백성들, 대개 무표정으로 우연히 조우하는 자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여 주거나 손을 흔들어 주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대신, 태재국에서와 반대로, 그를 마중 나온 오우치씨들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대하였다.
“반갑구나. 나는 탐라공국의 공자 석강중이라 한다.”
오우치씨의 현 가독이나, 고작 이제 곧 6살이 될 어린아이를 향해 강중은 자신을 먼저 소개하였다.
“……반갑습니다. 오우치 가독 히토요시입니다.”
10개나 되는 율령국을 거느린 오우치씨의 가독은 탐라국이라는 큰 벽 앞에서는 한낱 어린아이였으니, 아무것도 몰라도 되는 나이의 히토요시도 탐라국의 위세는 알고 있어, 절로 위축되어 어미의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겨우 인사를 받았다.
강중은 그런 히토요시를 귀엽다는 시선으로 잠시 보다가 그의 어미 모리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표정은 분명 걱정과 우려로 가득했으니, 강중이 미소를 다시 지으며 말하였다.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걱정을 하든, 너무 깊이 하진 마십시오. 나는 오우치씨를 돕고자 온 것이지, 해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알겠다고는 했지만, 말만으로는 그녀의 심기를 바꾸긴 어려웠고, 그건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시선을 보내고 귀를 기울이고 있는 오우치씨의 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근데, 여기서 계속 있을 겁니까?”
강중이 밝은 목소리로 말하니, 그제야 오우치씨의 가신들 중에 누군가가 마차를 준비했다고 말하며, 마차까지 길을 안내하려 하였다.
그렇게 강중을 비롯하여 오우치씨의 무리들까지 마차가 준비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마차를 코앞에 두었을 때, 문득 강중이 히토요시를 번쩍 들어 품에 안았다.
“……!”
위축된 채 강중과 어미 사이에서 걸음을 옮기던 그 어린아이는 한순간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고, 어미도 놀라 아이를 빼앗아 들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어미와 아이가 무슨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할 때, 목소리를 낸 건 가신들 중 하나였으니, 가독의 외할아버지되는 자였다.
“공자, 아무리 어리다 하나, 오우치 가문의 가독이시오.”
함부로 어린애 취급하지 말라는 뜻이 담긴 그 경호에, 강중은 대꾸 대신 히토요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내가 재밌는 걸 보여 줄까?”
“……?”
어린아이의 표정에 궁금함이 서리는 걸 확인한 몽주는 문득 아이를 안지 않은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 하늘에 평소보다 많은 갈매기들이 있었으니, 그 갈매기들이 갑자기 땅 가까이로 내려왔고, 그중 몇 마리가 강중의 뻗은 팔 위에 내려앉았다.
당연하 히토요시의 눈은 놀라움에 동그랗게 변했고, 그건 다른 어른들도 마찬가지였으니, 탐라국 공자가 동물들을 잘 다룬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야생의 갈매기들을 부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갈매기를 가까이서 본 적 있느냐?”
“죽은 건 본 적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진짜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 있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는 법이란다.”
뭔가 뼈가 있는 말이었지만, 어린아이가 알아차릴 만한 건 아니었고, 애초에 강중이 그 말을 한 것도 주변의 오우치씨들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히토요시는 그저 자신 쪽으로 가까이 다가온 공자의 팔 위에 앉아 있는 갈매기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뿐이었다.
“가는 길에 나랑 같은 마차를 탈까?”
“예.”
너무 쉽게 나온 대답에 가독의 어미가 만류하려 했지만, 이미 강중은 마차 중 하나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대신, 슬쩍 시선을 돌려 작은 고갯짓을 하였으니, 그 뜻이 걱정할 것 없다라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마차를 나눠 타고 숙소이자 회담장으로 예정된 근방 국인의 저택으로 향하니, 그리 길지 않은 여정 끝에 마차에서 함께 내린 공자와 가독의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의 어색함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어린아이답게 연신 무어라 조잘대는 히토요시와 큰 형처럼 어르고 달래며 웃음으로 말을 들어 주는 강중의 모습은 마치 친형제처럼 친근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그날 내내 이어졌으니, 당장이라도 무슨 말이라도 듣길 바라는 오우치씨들의 바람은 무시한 채, 강중은 히토요시와 노느라 바쁠 따름이었다.
결국 다음 날 오전 늦게서야 강중이 오우치씨들을 불렀으니, 히토요시는 그 자리에서도 강중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고, 그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다.
“지금부터 내가 전할 말은 탐라공 저하의 뜻이기 전에 나의 뜻이오. 그리고 이는 장차 나의 탐라국이 견지할 외교적 방침이기도 하오. 더불어, 이는 비단 오우치씨에게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받아들이라는 강요도 아니오. 나는 그저 오우치씨에게 선택할 기회를 줄 뿐이오.”
탐라공의 위세를 거두고, 자신의 외교를 밝히는 강중의 모습은 당당함 그 자체였으니, 이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도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강중은 오우치씨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었다.
그것은 공공선에 기반한 연방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와 독립하여 나라 대 나라로서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의 양자택일이자, 새로운 세상과 시대로의 물금(勿禁 : 허가)과 금즙(禁戢 : 불허)의 갈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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