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50)
황도 개경은 어쩌면 고려의 주요 고을들 중 가장 변함이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
자연적인 인구의 증가가 있지만, 이주에 따른 인구의 감소도 있어 전체적인 인구는 비슷한 수준에서 유지 중이었고, 전통적인 산업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새로운 산업이 자리 잡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사실 황도 백성들 사이에서는 황도 최대의 산업은 황실이라는, 조금은 자조적인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황립 고려전당은 물론이고 산업이라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지만 많은 자금을 움직여 황도의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홍익회 또한 황실 소유이기 때문이었다.
이는 고을의 외관에서도 느껴지는 바였다.
신식 건물이 별로 없는 가운데, 황궁 근처에만 커다란 신식 건물 2채가 지어져 있는 게 눈에 띠고 있었으니, 그 두 건물이 각각 고려전당과 홍익회의 본당이었다.
어찌 보면 금융업 중심의 도시국가적인 미래가 벌써부터 보인다고 할 수 있었다.
“어머나, 국화밭이네요.”
마차를 타고 후국 영토를 지나 황도로 향하는 중에 가을벌판에 가득한 국화를 보고 앵도가 감탄하였다.
물론, 단지 아름다워서 하는 말만은 아니었고, 오히려 의구심이 가득하였으니, 지리적으로도 그리고 계절적으로도 국화밭이 있는 게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흠, 이상하군. 지금은 만추(晩秋)이고 여기는 제충국을 재배할 만한 곳이 아닌데?”
몽주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당금에 이르러 국화밭은 탐라국에서는 아주 흔히 볼 수 있으니, 재배 면적 순서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이 재배되는 것이 국화였다.
특히, 남면의 중심부인 영서 지방은 5, 6월만 되면 사방이 하얗고 노란 국화로 온통 뒤덮일 정도였다.
물론, 그 국화는 제충국이었으니, 모기향과 구충제의 재료로서 큰 수요가 있는 만큼, 딱히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 곤란하거나 애매한 곳에서는 거의 반드시 제충국을 재배하고 있었다.
한데, 제충국은 하국(夏菊)으로서 여름에 꽃을 피우고, 국화 중 비교적 기온이 높은 곳에서 자라기에 개경 근방에서는 이제껏 재배된 바가 없었다.
그러니까…….
“저 꽃들은 제충국이 아닙니다. 향국이라는 동국이지요.”
동국(冬菊)인 만큼 겨울철에 꽃을 피울 것이니 지금 보이는 들에 피어 있는 건 이해되는데, 하면 대체 자연적으로 핀 것도 아니고 저렇게 대규모로 재배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싶었다.
그러다 문득 코에 가득한 국향을 느끼면서 대략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주 향이 짙어 술을 담글 때 주향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본디 제충국에서 약효를 빼고 남은 것을 주향에 이용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싸구려 술 빼고는 모두 향국을 이용하고 있지요. 게다가 말린 꽃잎이 풍기는 은은한 향은 두통을 막고 숙면에 도움이 된다 하여 베개에 넣어 두는 향낭의 재료로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과 아내에게 설명을 해 준 자를 바라보았다.
염서형.
궁중후 염흥방의 장남이자 후계자로, 이제 이십 대 중반에 이른 젊은이였다.
딸만 있고 오래도록 아들을 얻지 못했던 염 후가 후실로부터 겨우 얻은 귀한 아들이었으니, 근래에 궁중후를 도와 서서히 일선에 나서고 있었다.
“후국도 여러 산업에 힘을 기울이는 것 같아 기쁘군.”
“감사합니다. 제 아버님께서 말씀하시길, 향국의 재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 탐라공의 덕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예, 고려의 경제가 흥하여 귀한 족속 외 평범한 백성들도 향미에 돈을 쓸 여유가 있는 덕에 향국도 팔릴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면 고려의 경제를 흥하게 만드신 분이 향국의 재배를 성공시킨 공업도 가지셨다 하겠지요.”
“허허, 민망하지만,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네.”
귀한 아들이라고 염 후가 너무 애지중지한 것은 아닐까 싶었는데, 지금 말하는 걸 보면 탐라국에서 나온 서책도 충분히 읽게 한 모양이었다.
“한데, 탐라공 저하. 감히 제가 여쭙고자 하는 게 있습니다.”
“말해 보시게.”
“저도 구계를 읽었습니다만, 그 고려 공공선 연방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까?”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답 대신 곧바로 되묻자, 서형의 표정에 약간의 곤란함이 스쳤다.
구계(具啓)라 함은 신하가 임금께 무언가에 대해 상세하게 아뢰는 글로, 몽주는 고려태왕에게 구계를 올림과 동시에 고려의 제후들에게도 그가 폐하에게 어떤 구계를 올렸는지를 알렸으니, 서형도 그 구계의 내용을 익히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쉽게 입을 열기 어려웠던 것이다.
“감히 제 단견을 밝히자면, 그와 같은 구상은 고려와 탐라국이 우월함을 얻지 못했을 때는 효과적이라 할 것이나, 그것이 아니라면 굳이 그럴 이유가 적다 여깁니다.”
“그러니까 지금 탐라국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왜 약한 나라와 세력에게 권한을 주려는 것이냐는 겐가?”
서형이 돌려 말한 것을 단도직입적으로 간추려 되물으니, 서형은 더욱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제 생각이 아둔한 것이라면 깨우쳐 주십시오.”
“더 깨우치게 할 것까진 없네. 자네 말대로 탐라국이 우월할 수 있다면 내가 구계로 제안한 것은 굳이 필요가 없는 일이지. 그리고 실제로 그래 왔고.”
“……하면 당금 탐라국이 그런 구상까지 강구해야 할 만큼 어려운 곳이 있다는 말입니까?”
“없어 보이나?”
“제 소견으로는 어느 곳, 어느 나라가 탐라국을 어렵게 할 수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그쯤에서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앵도가 한마디 하였다.
“아무리 명궁수라 하여도 화살이 닿지 않는 곳의 적은 어쩔 수 없는 법입니다.”
몽주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곤 아내를 향해 미소를 보냈으니, 아주 적합한 비유였기 때문이다. 하나, 서형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 국력을 투사하기가 어렵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하나, 어차피 탐라국이 목표하는 곳은 모두 바다에 접하고 있고, 탐라국 수군은 바다에서 천하제일이지 않습니까.”
“그대가 말한 그 두 가지는 분명 틀림없는 사실이지. 하나 그것들이 옳다고 해서 탐라군이 먼 곳에서도 천하제일이라는 말까지 사실인 건 아니네. 게다가 나라의 영토가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지켜야 할 것도 많아진다는 점도 기억해 두게. 아무리 태마식이 중요하다고 해도 태마식을 지키기 위해 10만의 군병과 1천 척의 군선을 주둔시킬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몽주의 말이 이어지자, 서형의 눈이 커지고 입이 벌어지며 크게 놀랐음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마차 안은 내내 조용해졌으니, 몽주 내외는 차창 밖을 보며 황도 근방의 풍경을 구경하느라 그랬고, 서형은 놀란 마음을 추스른 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느라 그랬다.
그날, 염서형은 장차 자신이 후국을 다스린다는 것, 고려제국의 제후가 된다는 것이 어떤 ‘판’에 오르는 것인지를 절감하였다.
* * *
“쉬운 확장과 쉬운 포기라 하였소?”
태자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양 물었으니, 몽주가 앞서 궁중후의 장남에게 말한 내용을 말한 직후였다.
“그러합니다.”
“쉬운 확장은 결국 탐라국의 진출로에 있는 소국들을 굳이 일일이 정복하지 않고 연방에 가입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겠지요?”
몽주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소국들의 입장에서도 굳이 탐라국에 항거하여 몰락하느니, 연방에 가입하려 할 것입니다. 공공선 조약을 받아들이고, 형식상 고려 황실을 모시기만 한다면 동맹에 가까운 군사적인 지원까지도 받을 수 있으니,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는 아니니까요.”
“정말 그들에게 손해는 없는 것이오?”
“적어도 명목적으로는 그럴 겁니다. 설령 손해가 있다하더라도 실제로 손해를 확인하기까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겁니다.”
“흠…….
태자 왕석이 잘 다듬어진 수염을 쓰다듬으며 탐라공의 솔직한 대답을 곰곰이 따지는 모습이었다.
확실히 연방에 가입할 때의 이익은 가시적일 것이다.
당장 탐라국의 진출에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탐라국의 군력에 보호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해는…….
사실 손해도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조약의 내용 중에 관세 폐지 선언 조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곧 가입국 간에 물산이 드나듦에 있어 자유로워진다는 말로 탐라국의 회사들, 특히 탐라상단이 빠르게 침투하여 경제를 장악할 수 있을 것이고, 탐라와 고려에 이득을 주고, 아마도 그만큼 새로운 가입국에는 손해가 발생할 것이다.
다만, 그 점을 파악할 수 있는 건 태자가 고려인으로 경제에 대해 익히 배우고 경험한 바가 있는 덕으로, 아마 경제라는 개념조차 없을 곳에서는 뭐에 어떻게 당하는지를 파악하는 데까지도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게 분명했다.
의아했던 두 가지 부분 중 하나를 대략 이해하고 난 태자는 개운한 표정을 지으려다, 다시 이맛살을 구겼으니, 다른 의문점은 짐작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탐라공, 쉬운 포기도 연방을 구성하는 이유 중 하나라는 말은 포기할 경우를 예견하고 있다는 말인 것 같소만?”
“예견까지는 아니나,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여기는 건 사실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이외다. 쉽게 얻었고, 고려제국의 영토가 아니라고는 하나, 엄연히 고려의 강역으로써 이득을 취할 수 있는 땅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하지 않겠소? 앞서 먼 곳은 작은 적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 하였던 말은 기억하오만, 아무리 그래도 작은 소국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은 믿기 어렵소.”
몽주는 속내로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지금 태자의 물음에 정확한 설명을 해 줄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했고, 태자의 말 속에 내재된 고려의 강토에 대한 욕심 때문이기도 했다.
고려의 여러 제후들이 차기 보위자들에게 통치 수업을 하게 하는 것에 앞서, 이미 태왕 왕요를 돕고 있는 태자 왕석은 그의 대가 다가옴에 따라 지금보다 더 강대한 고려제국을 바라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한 나라의 으뜸으로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욕심이긴 하나, 그가 전통적인 제국의 태자가 아니라, 대헌장 체제로 성립한 제국의 태자라는 자각이 희미해진 것 같았다.
현 고려제국의 영토는 황실이 아닌 제후들 각각의 힘으로 형성된 것이고, 황실은 제국의 주인이 아닌 황도의 주인이자, 제국의 얼굴일 뿐이다.
지금 논의되는 연방 이전에 고려제국 자체가 연방에 의한 것인 이상, 그리고 태왕의 주권이 지극히 한정된 이상 황실은 영토에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월권이었다.
“태자 전하, 저 또한 탐라국이 보다 넓은 영토를 얻길 바라고, 그래서 고려가 더 큰 제국이 되길 원합니다.”
몽주는 그 말로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을 삼가자, 단석 위에 앉아 있던 태자가 문득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으니, 다행히 그도 자신의 앞선 발언이 선을 넘은 것임을 깨달은 것 같았다.
태자 왕석은 어리석지 않았고, 당금 고려의 상황을 알기에 충분한 경험도 가지고 있었다.
하나, 아무래도 황도에서 귀한 대우를 받으며 살다 보니 현실 감각이 잠시 무뎌졌다가, 몽주가 연방은 결국 탐라국이 주도하는 것임을 넌지시 일깨워 주자 정신을 차린 것이다.
‘뭐, 그 전에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인 건 분명하지.’
고려 공공선 연방(高麗 公共善 聯邦).
몽주가 주창한 그 연방은 정확히 말하자면, 두 개의 연방으로 구성되었으니, 고려 제국을 이루는 연방과 고려제국을 중심으로 고려 태왕을 국가 수장으로 섬기는 연방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즉, 제후국 간에 구분이 있으니, 고려 제국을 이루는 1등 제후국과 고려 공공선 연방을 이루는 2등 제후국으로 나뉘는 것이었다.
물론, 몽주가 말하는 쉬운 확장과 포기의 대상은 2등 제후국이었다.
이런 구분은 당연히 당대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체제였고, 어쩌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나, 몽주는 탐라국과 고려의 과확장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특히 그의 사후 그 과확장으로 말미암아 연방 체제의 고려제국 자체가 붕괴하거나, 삽시간에 분열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과확장 끝에 오히려 멸망한 제국이 역사에 적지 않고, 일부의 붕괴가 연쇄적으로 다른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는 일도 비일비재하였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하여, 차라리 여러 곳에 너무 많은 적들로 인해 모든 곳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리 포기할 수 있는 영토를 정해 두는 예단이 필요했다.
그건 비단 아들 강중이 공공선을 물으며 그에 기반한 연방의 창설 내지 확대를 구상하기 전부터 현대에서 재상, 두신과 함께 논의한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연방 구성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눈앞에 있는 태자 왕석을 포함하여 당대인들에게 분명하게 밝히는 게 곤란했다.
“일단 이 한 가지만 이해해 주십시오. 영토는 어느 곳에 얼마만큼 있든 가질 수 있다면 가지는 것이 이득입니다. 하나, 만약 그 영토를 노리는 강대한 적이 있다면 그때는 주판알을 튕겨 계산을 해 보아야 합니다. 적에게 대항하기 위해 들이는 인적, 물적 비용과 그 영토로부터 얻는 이득의 경중을 따져야 하는 법이지요. 특히 먼 곳의 영토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하나, 왕석의 표정은 여전히 개의한 것이었으니, 몽주는 아무래도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게다가 조만간 황도에 당도할 요동국 방원 공자와 궁중후, 그리고 유구공도 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임을 생각하면 아플 정도로 입을 놀려야 할 것이 틀림없었다.
* * *
“영어로 하면 코리아 코먼웰스 페더레이션(Korea Commonwealth Federation)인가?”
“고려가 코리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 쳐도 페더레이션은 빼야지. 코먼웰스 자체가 연방이란 의미도 가지고 있으니까.”
“아, 그러면 고려제국을 임페리얼 페더레이션 오브 코리아(Imperial Federation of Korea)이라 하고, 공공선 연방을 코리아 코먼웰스라고 하면 되겠네.”
“음, 연합왕국과 영연방의 구분쯤 되는 건가?”
“굳이 비교할 걸 찾아보면 그렇게 되겠지.”
회의실 소파에 늘어진 채 재상과 두신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몽주가 끼어들며 말문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공공선 연방은 그냥 더 코먼웰스(The Commonwealth)라고 불릴 것 같은데요. 우리가 제일 먼저잖아요?”
“역사에선 크롬웰이 공화정 선언하면서 코먼웰스를 썼으니, 몽주 씨가 먼저긴 하죠. 근데, 애초에 영어니까, 누가 더 빠른지는 상관없이 지들이 하는 것을 고유 명사로 쓰겠죠. 천몽 속에서도 나중에 크롬웰이 정권을 잡고 공화정을 선포할지는 모르겠지만요.”
“뭐, 그거야 어떻든 상관없고.”
몽주는 널브러져 있던 상체를 일으켜 제대로 앉았다.
“이제 좀 기운이 납니까?”
“예. 원래 좀 엄살이었고요.”
애초에 기운이 없을 이유는 없었다. 현대에서 몽주가 기운을 낭비할 까닭은 없고, 천몽 안에서는 아무리 기운을 쏟아도 현대의 몽주에 신체적으로 영향을 주진 않는다.
다만, 현대로 나오기 전 거의 일주일 가까이 공공선 연방에 대해 열띤 논의를 한 탓에 정신적으로는 다소 지쳐 있었다.
“다들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건 당연한 노릇이죠. 개념이야 이해해도,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기 어렵죠.”
“게다가 몽주 씨가 하려는 건 역사적 과정을 건너뛰려고 하는 거고요. 몽주 씨의 공공선 연방은 마치 대영제국이 미래의 영연방을 알고, 그것을 염두에 둔 채 제국을 구성하는 것 같은 거죠.”
“예, 역사적 결과를 아는데, 그것이 필연적인 것임을 아는데 도저히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재상과 두신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다.
중국 같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광대한 제국은 언제나 일시적이고, 그 끝에는 분열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영제국이 세계 대전 시기 이후 영연방이라도 형성한 건 아주 드물고 평온한(?) 결과로, 그 외 수많은 제국들은 결국은 제국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압사당하여 초라한 지경으로 몰락했고, 그중에는 속령과 식민지의 붕괴가 아예 본토의 붕괴와 멸망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들도 있었다.
하여, 몽주는 훗날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고려제국의 보다 건강한 체제를 구성하고자 하였으니, 언젠가 광대한 제국의 무게가 힘겨울 때 적어도 ‘본토’만큼은 견고하게 남아 있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600년 뒤에도 고려가 강국으로 남아 있게 하는 도박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고자 하는 타짜짓인 거죠.”
“타짜짓이야 천몽 자체가 타짜짓이죠. 하하하.”
재상의 웃음을 시작으로 세 사람은 잠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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