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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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에서 태왕과 태자, 그리고 여러 제후들이 모여 탐라공의 연방 창설 제안을 논의하였으나,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결과를 만들어 내진 못했다.
다만, 비공식적으로는 진전이 있긴 했는데, 이는 황실과 다른 제후들의 이해와 합의가 있었다기보다는 탐라공이 가진 위명과 권력에 물러선 덕이었고, 어차피 공공선 연방의 확대는 결국 탐라국의 주도에 의해, 아마도 오직 탐라국에 의해서만 진행될 것이기에 다른 제후들이 굳이 강경한 의견을 내어 탐라공과 충돌하는 것을 피하고자 한 덕이었다.
하여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비밀리에 몇 가지 문건이 작성되긴 하였으니, 향후 추가적인 논의와 검토를 거쳐 시행될 제도적 변화에 대한 초안들이었다.
그 문건들 중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대헌장에 관한 것으로, 훗날 ‘신묘 증보 대헌장’, 혹은 ‘11년 증보 대헌장’의 이름으로 남겨질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대헌장(大憲章)
태조께서 이 나라 고려를 창건하신 이래 고려의 역사 오백 년에 이르러 서른 한 분이 왕좌에 올라 나라를 이끄셨음이다.
세월의 유구함과 시절의 변함은 나라 또한 피하지 못하는 바, 오늘 고려는 대헌장의 선언과 더불어 다시 태어남이니라.
짐은 이 나라를 받드는 제후들과 더불어 대헌장에 이름을 올리고 하늘에 고하니, 천세만세에 걸쳐 고려의 영광이 영원하리다.
고려제국이 성립되고 세력을 세운 지 11년에 이르러, 제국의 번창함이 하늘에 닿으니, 더 많은 제후들을 받아들여 제국으로서의 연방을 확장하기에 앞서 대헌장 또한 증보(增補)하노라.
제국헌조(帝國憲條)
고려는 황도 개경에 더해 고려 황실을 모시는 제후의 나라들로 이루어졌음이다.
짐과 제후들은 대헌장을 준수할 것이고, 짐과 제후들의 영속적인 후계자들 또한 대헌장을 따를 것이며, 만약 대헌장을 거부하거나 파기하는 후계자가 있다면, 그는 정당한 후계자라 할 수 없음이다.
태왕헌조(太王憲條)
태왕은 이 나라의 근본이나, 이 나라의 유일한 주인이 아닌, 오직 황도의 주인이며, 제후들 각국의 통치에 개입함을 필히 삼갈 것이로다.
태왕은 작위 수여를 독점하고, 제후의 습작(襲爵)을 윤허할지 판단하되, 신의성실한 제후의 습작을 거부하지 않음이다.
황도는 개경을 이름하니, 개경은 북으로 송악산을 두고 서로는 예성강에 닿으며, 남과 동으로는 임진강으로 경계를 이룸이다.
황실은 고유의 군력과 재산을 소유하되, 사치와 향락을 멀리하고 고려 백성의 안위에 최선의 관심과 노력을 경주해야 함이다.
제후헌조(諸侯憲條)
고려의 제후라 함은 고려 황실로부터 친히 작위를 하사받은 자들이자, 본 대헌장에 서명한 자를 가리킴이니, 그 외의 작위는 습작되지 않고 당대에 종료됨이며, 이후 모든 제후는 여타의 수작(授爵) 행위를 금함이다.
고려의 제후들은 각각 다스리는 나라에서 배타적인 통치권을 가지되, 고려 전역 혹은 다른 제후국에 영향을 끼칠 만한 법제에 있어서는 반드시 합동의 논의를 거쳐 시행의 여부를 가름함이다.
고려의 제후들은 독자적인 군사를 수행하되, 훈련이 아닌 군사는 반드시 왕도와 다른 제후들에게 통보해야 함이다.
제후국들 간의 경계는 논의로써 확정하고, 여타의 갈등을 해결함에 있어서도 군사의 동원은 극히 배제되어야 함이다.
제후국은 황도의 안전에 최선으로 협조하고, 한 제후국이 외적의 침범을 받아 원조를 청할 경우 다른 제후국들은 반드시 신의성실하게 응하여 고려 제국의 안전을 도모할지어다.
선헌조(善憲條)
황실과 제후국은 상호 교역함에 있어 장애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함이니, 특히 관세는 절대 금함이다.
황실과 제후국은 황실과 다른 제후국에 속한 상단과 회사의 업무를 방해하지 말 것이며, 상행 이동에 완전한 자유와 안전을 보장함이다.
고려의 모든 백성은 모든 시비와 죄의 혐의에 대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짐이다.
고려의 모든 백성은 다른 가족과 친족의 죄로 인해 불리를 당하지 아니할 것임이다.
황실과 제후 아래 모든 고려의 백성은 평등함이니, 이는 황실과 제후가 천명하는 고려 제일의 공공선으로, 황실과 제후는 결의하여 관부에 매인 노예와 노비는 즉시 방량하되, 사노비의 경우는 논의를 거쳐 각 제후국들의 사정에 따라 유예 기간을 둘 수 있음이다.
연방헌조(聯邦憲條)
이 조(條)는 신묘년에 증보함이다.
고려는 제국 구성의 연방과 구분되는 연방의 창설을 결의하니, 이를 공공선 연방이라 부름이다.
모든 제후국은 일등 제후국과 이등 제후국으로 구분됨이다.
일등 제후국은 제국의 일원이자 공공선 연방의 일원이되, 이등 제후국은 공공선 연방의 일원일 뿐, 제국의 일원이 아님이다.
고려 태왕은 일등 제후국에게 왕공후(王公侯)의 작위를 수여하고, 이등 제후국은 백자남(伯子男)의 작위를 수여할 수 있음이다.
일등 제후국은 고려 연방군의 창설과 유지에 인적, 물적 기여를 해야 함이니, 그 세부는 별도의 논의에 따름이다.
상기 외 공공선 연방에 대한 모든 사항은 공공선 연방 조약에 위임하되, 공공선 연방 조약의 수정은 황실과 제후들의 논의를 거쳐 시행될 것임을 천명함이다.
고려 제국의 만세에 걸쳐 대헌장은 모든 법령에 앞서 우월하고, 만백성이 대헌장의 기치를 기려야 함이로다.
증보 대헌장은 연방헌조의 증보를 제외하면 문구의 수정이 대부분이었으니, 고려가 제국을 선언한 이후에도 대헌장에 그에 걸맞게 수정되지 않은 부분을 고친 것이었다.
그리고 연방헌조에 실린 내용도 기본적으로 공공선 연방의 설립을 천명하는 것으로, 다른 헌조와 연관된 내용이 추가로 실려 있을 따름이고, 눈에 띌 만한 부분인 연방군의 창설 또한 별도의 논의로 미뤄 두어 구체화하지 않았으며, 나머지 주요 사항들은 모두 공공선 연방 조약에 위임되었다.
하여, 공공선 연방의 수립의 내용을 보다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문건은 공공선 연방 조약인 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공공선 연방
대헌장으로서 고려의 신제가 세워진 이래 제국의 선포에 이르렀고, 만백성의 노력으로 제국의 영광이 하늘에 닿았노라.
이에, 다시 신제의 확충이 요구되는 시절에 당도함에 공공선의 가치에 합의한 연방의 확대를 추진하며 다음의 규정을 새기노라.
하나. 공공선 연방은 고려제국과 그 외의 공공선 연방 제후국들로 구성됨이다.
하나. 공공선 연방에의 가입은 외국의 요청으로 검토하고, 기존 공공선 연방 제후국의 동의를 거쳐 가입을 확정하되, 가입 요청의 외국은 반드시 공공선 규정에 대한 충실한 이행을 선포해야 함이다.
하나. 공공선 규정은 별도로 정하고, 제후국들의 동의에 따라 수정할 수 있되, 첫 세 조항은 수정이 불가함이다.
하나. 공공선 연방의 모든 제후국들은 고려 태왕을 국가의 으뜸으로 섬김이다.
하나. 공공선 연방의 모든 제후국들은 일등 제후국과 이등 제후국으로 구분되니, 일등 제후국은 고려 제국의 일원이자 공공선 연방의 일원이고, 이등 제후국은 공공선 연방의 일원이되 고려 제국의 일원은 아님이다.
하나. 공공선 연방의 제후들은 공히 고려 태왕으로부터 수작하니, 일등 제후들은 왕공후의 작위를 얻고 이등 제후들은 백자남의 작위를 얻음이다.
하나. 일등 제후국은 연방군의 창설에 최소한의 인적 물적 기여를 해야 함이되, 그 세부적인 비중은 황실과 일등 제후들 간의 논의에 따름이다.
하나. 이등 제후국은 공공선 규정의 준수만으로도 그 자격을 잃지 않으며 제국에 동맹 수준의 군사적 협조를 구할 수 있으나, 공세적인 협조 요구는 불가하다.
하나. 일등 제후국의 탈방과 퇴출은 불가함이다.
하나. 이등 제후국의 탈방은 통보만으로도 가능하며, 이후 발생하는 모든 외교적 상황에 제국은 책임지지 아니하고, 한 번 탈퇴했던 외국의 연방 재가입은 불가함이다.
하나. 이등 제후국의 퇴출은 일등 제후국들의 협의에 따라 가능하되, 당해 이등 제후국은 일등 제후국의 협의에 앞서 스스로 변호할 기회를 얻으며, 일등 제후국들은 퇴출의 이유를 명백히 밝혀야 함이다.
하나. 이등 제후국은 향후 일등 제후국으로 승격이 가능하되, 다음의 절차와 규정을 충족해야 함이다.
30년간 공공선 연방에 속함으로써 승격 요청의 자격을 취함이다.
공공선 규정 이상으로 고려 제국과의 제도적 일치에 합의해야 함이니, 그 세부 규정은 별도로 둠이다.
최종적인 승격 여부는 고려 황실과 일등 제후들의 논의와 합의에 따라 가름됨이다.
하나, 공공선 연방의 모든 제후국은 상호 간에 판무관을 파견할 수 있되, 일등 제후국의 판무관은 일등 판무관, 이등 제후국의 판무관은 이등 판무관으로 명명함이다.
하나. 동맹국 중 50년 이상 신의성실한 관계를 유지한 나라, 혹은 한 번 이상 공동 전쟁을 수행한 나라는 공공선 연방에 가입하는 즉시 일등 제후국으로의 승격을 요청할 자격을 얻되, 승격의 절차와 규정은 다른 이등 제후국과 동일함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공공선 연방 조약에 실린 조항들이 품고 있는 목적은 분명했다.
확장과 진출의 경로에 있는 나라와 세력, 아마도 소국들일 그들을 대상으로 하여, 공공선의 이름으로 최소한의 제도를 강요하고, 이후 30년에 걸친 교류와 교역을 통해 경제적 문화적 동화를 수행한 후 고려 제국으로 완전히 편입시키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이 탐라공이 말하는 쉬운 확장과 포기의 핵심이니, 비록 군사적 정복보다는 느리지만 그만큼 적은 비용으로 확장하고, 만약 경제적 문화적 동화가 충족되지 않거나 다른 강대한 적으로 인한 수호의 비용이 과해진다면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었다.
공공선 연방 조약의 가입을 위한 공공선 규정과 승격을 위한 제도 개편 규정의 초안도 마련되었다.
다만, 공공선 규정의 경우는 수정 불가한 세 조항에만 합의되었고, 제도 개편 규정도 고려 제국의 제후국들이 이미 공유하고 있는 부분에 국한되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공공선 규정
다음의 규정들은 공공선 연방이 준수해야 하는 최소의 조항이다.
하나. 인신공양과 식인의 풍습을 멸하고 어떠한 종류의 노예 제도도 허락하지 않음이다.
하나. 공공선 연방의 모든 제후국들 간에 관세를 가할 수 없음이다.
하나. 세력(世曆)을 도입하고, 법제와 판례에 따른 일관적인 통치를 선언해야 함이다.
제도 개편 규정
일등 제후국은 상호 간에 제도적 일치에 노력해야 함이니, 그 세부는 다음과 같다.
제후국의 모든 영토는 제후 혹은 나라의 소유로써 제후국 조정에 의해 분배되어야 함이다.
고려의 말과 문자는 제후국에서 통용되어야 하고, 특히 나라의 모든 공식적인 문권과 기록에는 고려의 문자가 단독으로, 혹은 병기하여 사용되어야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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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에서의 논의 결과에 몽주는 만족하지 않았다.
태왕은 물론 모든 제후들 심지어 요동공을 대리하여 온 사위 방원조차도 떨떠름한 반응이었고, 논의의 결과도 딱 그 정도였다.
탐라공에게 거슬리는 걸 피할 정도이자, 자국의 통치에 별 영향이 없는 정도. 그러니까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했달까.
하기야 예상하던 바였다.
그저 연방군의 창설 정도는 좀 더 적극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것도 미적지근한 반응만 보인 게 기대 이하였을 뿐이었다.
“안 추워요?”
요동산 양털 모포가 어깨에 둘러지는 것과 함께 앵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입동이 코앞인 시절에 항주하는 선상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있었으니, 춥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제법 춥구려.”
“무슨 생각을 깊이 하느라, 추운 것도 몰랐어요?”
“내가 무슨 생각을 했겠소? 저녁 밥 생각?”
몽주는 농을 던지며 아내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담비모(帽)를 쓰고 있는데, 더 젊었을 때보다 더 잘 어울렸다.
“나라 생각, 백성 생각을 하셨겠지요? 탐라국공으로서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때로는 지치고 지겹진 않아요?”
“지칠 때는 많지요.”
“지겨울 때는요?”
지겨운 건 없었다.
지겨울 만하면 현대에서 깨어났고, 현대에서 새로운 논의와 목표 의식을 가지고 천몽으로 들어와야 했으니, 몽주에게 있어 탐라공으로서의 삶과 일은 주관적이면서 동시에 객관적인 것이기에 인생이면서 때로는 마치 영화 관람 같기도 했다.
“지겨운 건 없지요. 그래서도 안 되고.”
“하아, 정말이지, 자내는 대단하네요. 다른 이라면 이 정도면 되었다, 이만하면 충분하다며 편한 인생을 즐기고 싶은 수준을 몇 번이나 넘기고도 아직도 지겹지가 않다니요.”
“내가 그렇게 이상하오?”
“왜 아니겠어요? 이미 고려는 전조에 전조의 역사까지 더하여도 비할 바가 없는 전성기에 있고, 그중에서도 탐라국은 완벽하다는 찬사까지 받고 있는데, 자내는 늘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발전을 강구하고 있잖아요.”
몽주는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앵도의 입을 통해 받은 세상의 칭찬에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완벽한 나라가 어디 있을까.’
당대에는 물론, 현대까지 통틀어, 그리고 아마 미래에도 완벽한 나라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완벽한 준비도 어려운 법일 테고.’
그 생각이 미침에, 몽주는 아내를 향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이게 마지막이오.”
“……?”
“내가 고려를 바꾸고자 애쓰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란 말이오.”
“정말이에요? 그러면 남양으로 떠나는 것도 취소인가요?”
“아, 그것까지만 합시다. 어차피 같이 가기로 했지 않소. 여행이라 생각하고 겸사겸사…….”
“피이.”
앵도가 살포시 노려보며 입술을 삐죽이니, 몽주는 그 모습이 귀여웠다.
“자내는 젊을 때는 그렇지 않더니, 나이가 들면서 애교가 많아지는 것 같소? 나이가 들면 오히려 애가 된다던데, 이것도 그런 것이오?”
“허, 지금 내가 노인이 되었다고 타박하는 거예요?”
“아니, 그건 아니…….”
앵도가 진심인지 연기인지 사납게 노려보더니, 홱 하니 몸을 돌려 멀어지자, 몽주는 서둘러 그녀를 따라가 어깨를 감싸며 아내를 달래야 했다.
“남양에만 다녀온 뒤로, 편히 지냅시다. 남은 일들은 잘난 아들에게 맡기고 말이오.”
그렇다 한들 탐라와 고려의 정치에서 무관할 수 없고, 탐라상단의 일도 남아 있는 그였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여유(?)로워지리라 다짐하는 몽주였다.
‘그나저나 강중이 녀석은 일을 잘 처리했는지 모르겠군.’
바람을 피해 선실로 내려가기 직전, 동녘을 바라보며 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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