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53)
* * *
명나라 백성들은 성영제를 찬양하였다. 정치가 어찌 돌아가든, 전에 무슨 과오를 저질렀든, 당장 그들이 밥을 굶지 않고 내일 끼니를 걱정하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성영제는 성군이라 불리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성영제의 치세는 튼튼했다.
상인과 장인들을 조정으로 끌어들여 또 하나의 근위 세력으로 만들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부로써 군부를 더욱 완벽히 장악하고 강성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기존의 귀족으로부터 권력을 하나둘씩 빼앗아 유자들에게 주었으니, 강군이라는 최고의 기반 위에 근위 세력과 유자들, 그리고 귀족 간의 권력을 저울질하며 순탄하게 국정의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전반적인 형세가 요동국과 비슷했다.
요동국도 상인과 유자, 그리고 거란계 부족민이라는 세 세력을 강군으로 아우르고 있었으므로.
다만, 그 세 세력의 구성이 다른 것에 추가하여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으니, 요동국이 고려의 대헌장 체제하에서 요동공 아래 특권층을 일절 두지 않은 것에 비해, 명나라는 귀족층을 더욱 늘렸다는 점이었다.
기존의 근위 세력이었던 유자들을 귀족으로 만들고, 새로이 끌어들인 상인과 장인들도 관리로 등용했다가 작은 공이라도 세우면 그 공로를 빌미로 귀족에 임명하였던 것이다.
귀족층, 특권층이 크게 늘어나는 건 아주 위태로운 짓이나, 성영제는 강군에 기반한 독재적인 권력으로 귀족의 전체적인 특권은 늘리지 않았으니, 그 결과 작은 권력을 두고 귀족들끼리 피 터지게 싸우며 그들의 힘을 소모하는 형국을 만들었다.
당연히 그런 형세는 성영제와 황실의 권력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라가 무너질 것 같던 과격한 개혁의 시간이 지나고, 거대한 영토와 비교할 곳이 없는 인구수에 기반하여 명나라는 분명 다시 힘을 회복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대고려 전쟁 이전의 명나라보다 국력이 상승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문제는 결국 고려였다.
오늘에 이르러, 명나라에게 고배를 마시게 만든 고려를 능가할 수 있느냐는 질문만이 성영제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국운을 걸고 다툰다면 승산이 있을 수도 있사옵니다.”
“……그리 반갑지 않은 대답이로다.”
“솔직한 답을 원하신 건 폐하이시옵니다.”
“그렇다면 마냥 솔직하지 않은 것을 타박해야겠구나.”
성영제가 쓴웃음을 지으며 한 말에 정화도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국운을 걸고 나선다면 고려와 싸워 이길 수도 있다는 그의 말이 솔직한 것이 아님을, 다분히 성영제의 기분을 생각하여 한 말임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명나라의 장삼이사들이라면, 인구가 몇 배는 많고, 군사의 수도 월등하며, 나라의 크기도 비할 바가 없는에 어찌 그런 나약한 생각을 하느냐며 분개하겠지만, 고려를 가장 잘 아는 명국인들 중 하나인 정화는 그의 판단이 틀림이 없다고 여겼다.
이는 비단 고려에게 많은 동맹이 있기에, 그 동맹까지 취급하여 따진 탓만은 아니었다.
오직 명나라와 고려가 단독으로 다툰다고 해도 승리를 점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들어오는 정보와 소문을 분석하면 고려는 이제 결코 소국이라고 무시할 수 없을 만큼, 강국임을 넘어 대국이 되고 있었다.
아직 공공선 연방에 대해 일절 알지 못하고 있는 정화였지만, 고려제국 자체가 어느 정도의 규모와 저력을 갖추었는지 늘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단마시(태마식)을 얻은 뒤에도 동서남북에서 강토를 넓히고 있는 고려의 현황을 두고 이제 명나라가 마냥 규모로써 무시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님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정화가 아는 건 성영제도 아는 것이었다.
“탐라공이 조만간 은퇴하려 한다더구나.”
“예, 그의 독남이 이미 정치의 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그 공자에 대해서는 더 들어온 정보는 없는가?”
“특별한 소식은 없었사옵니다. 다만, 특별한 사안이 없다는 것 자체가 정보라면 정보일 것이니, 이제껏 파악한 공자의 능력과 성품이 사실이라는 증좌가 될 것이옵니다.”
“고려 탐라공은 운도 좋구나. 한 사람이 나서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추었다면 자식 복은 없어도 좋으련만.”
성영제가 부러움과 아쉬움을 담아 한탄하였으니, 그간 분석한 탐라 공자의 능력과 성품이 상당히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비처럼 기발하고 번뜩이는 재기를 가진 건 아닌 듯하지만, 대신 더 큰 포용력을 갖추고 있었고, 다방면에 준수한 이해력을 갖추었으며 무엇보다 사람을 다룰 줄 안다 하니, 창업주가 아닌 수성가로서는 오히려 최고로 적합한 인물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옵소서. 태자 전하도 부족함이 없사옵니다.”
“정말 그리 생각하는가?”
위로 삼아 건넨 말에, 성영제가 문득 진지하게 물으니, 정화는 속내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자 주윤문.
분명 괜찮은 황자였고, 태자였다.
학문에 능했고, 유순한 성미는 여러모로 사람을 따르게 할 만했다.
다만, 동시에 모든 이들이 아쉬워하는 단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태자를…… 데려가게.”
“……!”
갑자기 들린 명에 정화가 깜짝 놀라 천자를 직시하였다.
“낯설겠지만 중원 밖 넓은 세상을 둘러본다면 천자의 호연지기도 늘지 않겠는가.”
“하나, 이번 항해는 너무 위험하옵니다.”
“그러니까 데려가라는 게야.”
아닌 게 아니라, 처음 명을 내릴 때부터 천자도 꽤 고심 끝에 결심한 흔적이 묻어 있었다.
“탐라국 공자는 10년 전에 전쟁을 치른 적국에서도 일했음을 생각하면 위험한 것도 아니지 않나. 다만, 너무 위험한 때가 아니라면, 죽을 상황만 아니라면, 태자에게 위기를 타개할 기회도 줘 보고…….”
천자의 고민이 무겁게 담긴 그 말에 정화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천자가 그토록 아끼는 장남이자 태자인 윤문을 왜 역경에 들게 하는지 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자 윤문을 두고 혹자들이 하는 말이 있었으니, 차라리 여인으로 태어났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일국의 군주를 넘어 제국 명나라의 천자라는 지위에 오롯이 서기에는 태자의 성품이 너무나 유약하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결단력이 크게 부족하여 유유부단하기 일쑤였으니, 결단할 수 있는 용기 또한 없다시피 했다.
명나라의 세 번째 천자로서, 만약 태평성대 중에 천자의 지위를 잇는 것이라면, 어쩌면 다들 쉬쉬할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불행히도 당대는 물론이고, 가까운 미래에도 명나라가 마냥 평안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고려라는, 분명 명나라와 운명을 다툴 경쟁자가 있었고, 그 고려가 명나라의 실제적이고 잠재적인 세력들과 손을 잡고 명나라를 포위한 상태였다.
겨우 섬라국(아유타야)라는 남만의 세력을 통해 작은 틈을 내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했다.
결국 명나라는 언제고 희미하게 드러날 기회를 염원해야 했으니, 그런 명나라를 다스리는 천자 또한 그 실낱같은 기회를 반드시 포착하여 나라의 운명을 바꿔야 할 임무가 있었다.
그런 천자에게 결단력과 용기를 기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소치인 바, 그렇기에 태자 윤문의 단점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고 있었다.
“차라리 다른 황자들 중에 더 나은 이가 있다면 심정이 타들어 가더라도…….”
천자는 말을 줄였지만, 그 중얼거림에 담긴 뜻을 정화는 알고 있었다.
더 적합한 능력과 성품을 가진 자로 태자를 바꾸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아쉬움이 그것이었다.
일곱의 황자들이 있건만, 그들 중 윤문보다 나아 보이는 이는 없었으니, 대부분 윤문처럼 유약한 성미이었고, 그나마 담대한 면이 있는 황자는 능력이 너무 미약했다.
그러니, 천자로서는 어떻게든 태자를 훈육하여 조금이라도 과단한 면을 가지게 하고 싶었고, 안락한 황궁에서 그런 훈육이 가능할 리가 없으니, 정화의 함대에 따라 보내 거친 세상을 경험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문제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겠지.’
태자의 보령이 이미 서른이 넘었다.
이립의 나이를 지나 성품이 바뀌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나, 그런 자들은 그만큼 충격적인 일을 경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데, 어찌 국본인 태자에게 성품이 바뀔 정도로의 충격을 안길 수가 있을까.
천자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대외총관 정화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자와의 문제이기 전에, 차기 보위에 오를 태자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알겠사옵니다. 소신이 태자를 보필하겠사옵니다.”
“보필이 아니라 경험을 안겨 주는 데 힘쓰게.”
“알겠나이다.”
대답을 하긴 했지만, 정화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만약 태자가 견디지 못하고 반발한다면, 정화도 태자에게 선사할 수 있는 건 그저 견문을 넓히는 정도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정화는 새로운 바다로의 진출이라는, 안 그래도 과중하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임무에 앞서 또 다른 부담을 짊어져야 했다.
그가 마침내 바다로 나선 것은 세력 11년 1월 중순이었으니, 예상보다 늦어진 것도 태자 윤문의 동행 준비 때문이었다.
그리고 덕분에 탐라공과의 조우도 가능했다.
* * *
세력으로 11년이 되었지만, 아직 신묘년은 오지 않은 날에 몽주는 아내와 함께 여송섬에 당도하였다.
“멋진 풍경이군요.”
파식만을 가로질러 포구로 향하는 배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앵도가 감탄하였다.
포구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파식상시는 그곳을 본 적 없는 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발전되어 있었으니, 한겨울임에도 따뜻함이 감도는 그곳의 열대수 밀림이 시야의 좌우에 가득한 것과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파식만의 입구를 관문 삼아 마치 밀림 속에서 고대 문명을 발견하는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포구에 입항하니, 상시장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현 파식상시장 웅시란은 사십 대 여성으로 탐라국의 중견 관리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자였다.
본디 처음 탐라국이 선 뒤로 한동안 여성들은 관직에 도전하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본디 고려가 여성에게 관직을 허용하지 않은 문화적인 영향 때문이었다.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관리 생활을 하는 여성의 수는 늘어났지만, 대개 혼인과 함께, 혹은 혼인 이후에 관직을 그만두곤 했다.
아무래도 보통 네 명 이상 아이를 갖는 당대의 상황에서 어머니인 여인으로서 자기 장사도 아닌 관직을 유지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탓이었다.
여성 인력을 많이 쓰기 위해 탁아소를 많이 두었다곤 해도 애가 한둘도 아니고 넷이나 건사하는 건 관직에 있으면서, 특히 탐라국처럼 관리 생활이 빡빡한 곳에서는 좀처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여, 지금도 탐라국에서는 여성 관리의 수가 남성에 비해 훨씬 적었고, 이는 고위직일수록 더 심했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없거나 적은 것도 아니고, 다섯이나 되는 아이를 둔 여성으로서 청장급인 상시장까지 올라온 웅시란은 어떻게 해도 눈에 띄는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잘 있소?”
“네, 저하 덕분입니다.”
“내 덕분이긴. 다 자네 부부가 그만큼 노력한 덕이지.”
웅시란은 ‘슈퍼맘’이었다.
지아비가 문인이라 아내를 대신하여 아이를 건사할 수 있는 덕도 있었지만, 그래도 20년 동안 관직 생활에 충실하고, 온 가족을 데리고 여송까지 이사하여 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건 그녀가 관리로서뿐만 아니라, 아내와 어머니로서도 굉장히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시장과 함께 파식군을 일주하였는데, 확실히 이국적인 멋이 있었다.
밀림을 뚫고 지나가는 도로도 그랬고, 백성들의 차림새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건물 위에 있는 등나무 방(?)이 이국적이었다.
파식상시의 건물들은 관청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단층이거나 2층에 불과했는데, 모두 옥상이 평평하게 되어 있었고, 그 옥상에 등나무를 엮어 또 하나의 방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지붕은 넓은 열대수의 잎과 진흙으로 비를 막을 수 있게 하였으니, 세망으로 지은 건물과 어울리는 듯 아닌 듯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워낙에 더운 곳이라 세망으로 된 건물 안은, 아무리 창을 크게 하여도 무더워집니다. 하여, 저렇게 공기가 잘 통하는 등나무로 만든 방을 따로 두어 밤에 잠을 잘 때 이용하지요.”
“음, 모기로 인한 피해가 있을 듯한데?”
“이곳 백성들은 열대의 모기에 상당히 이력이 있는지 그로 인한 질병은 없습니다. 남면이나 탐라섬에서 이주해 온 자들은 조심해야 합니다만, 여기도 멸문향은 충분히 있어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등나무 방과 멸문향이라고 하니까 화재의 위험이 절로 연상되었지만,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여 굳이 더 지적하진 않았다.
그렇게 시정을 간략하게나마 살핀 뒤, 몽주는 휴식을 취하는 중에 한 사람을 불러들였다.
비서원 관리가 그를 찾아간 지 반 시진 만에야 모습을 드러낸 자는 파감태였다.
“아주 폐인이 되었군.”
“죄송합니다, 저하. 인사 올립지요.”
허리를 크게 숙이는 감태로부터 아직 깨지 못한 술내음이 풍겼다.
“호중 아대륙 때문에 그리된 겐가?”
“…….”
“그래서 그렇게 폐인으로 그냥 죽겠다?”
“죄송합니다.”
몽주가 허락한 의자 위에 앉아 머리를 쥐어 싸매는 감태의 모습은 폐인이자 패배자였다.
그리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몽주가 더 일찍 남양으로 출항할 수 있었음에도 다시 연기하여 이제야 여송섬에 닿은 이유가 호중 아대륙의 발견에 있었으니, 그만큼 그 발견은 굉장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에 비례하여 호중 탐험대의 명성은 높아졌으니, 호중은 물론 그의 대원들도 유명 인사가 되어 온갖 잔치에 불리고, 순보에 기사가 실리는 등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향후 탐험에 많은 자들이 먼저 투자하겠노라 몰리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인생이 활짝 피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에 비해 감태는 많은 것을 잃었다.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대표적인 인물로서의 명성은 아호중에게 가려졌고, 호중 아대륙 발견이란 업적을 잃으면서 그의 휘하에 있던 대원들 대부분이 그를 떠나 버렸다.
물론, 호중 탐험대가 누리는 호사가 감태의 것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도 빼먹을 수 없었다.
하나, 그렇다고 감태가 모든 것을 잃은 건 아니었다.
“자네가 좌절할 수도 있고, 실의할 수도 있음은 인정하나, 이처럼 폐인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군.”
“하지만…….”
“하지만 뭐? 자네는 아직도 탐라 상단의 지원을 받고 있고, 경함선은 잃었어도 누구도 가지지 못한 중함선 탐험선을 가지고 있어. 그리고 지난 탐험에서 자네도 큰 상금을 얻었지 않나. 아마 나라에서 지급하는 상금만 비교하면 호중보다 더 컸을 걸세. 그렇지 않나?”
“…….”
호중 아대륙의 발견자는 호중 탐험대였지만, 그들이 밝힌 신대륙의 크기는 무척 작았으니, 감태 탐험대가 밝힌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여, 발견에 대한 상금을 호중 탐험대가 받게 되어도, 항로와 측량에 대한 상금은 감태 탐험대가 훨씬 커서 전체적인 상금은 오히려 감태 쪽이 더 많았던 것이다.
물론, 민간에서 들어오는 축하금과 투자금이 전부 호중쪽에 몰려 있어 호중 탐험대가 얻은 전체 이득은 감태 탐험대에 비해 월등했다.
“그래 봐야 결국 호중 탐험대는 이제 겨우 자네와 비슷한 수준이 된 것에 불과해. 얼마나 많은 투자가 있을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중함선을 쉽게 구할 수는 없을 테고.”
“알고 있습지요.”
“알면! 왜 이러고 있는 겐가?”
“이미 졌지 않습니까. 이미 신대륙은 호중 대륙이 되었단 말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몽주는 앉아 있는 등나무 의자의 팔걸이를 퉁 내려치며 한심해 하였다.
그러고는 할까 말까 망설였던 말을 입으로 내뱉었다.
“호중이 밝힌 연안은 극히 일부일세. 정황상 그곳이 신대륙의 동쪽이라 여기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확신할 수는 없지 않나.”
“……?”
고개를 든 감태의 표정에 혹시나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몽주의 말에 호중이 대륙이 아니라, 다른 섬을 발견한 게 아닌가 싶었고, 혹시 탐라공이 그에 대해 아는 게 있는 지 궁금한 것이었다.
사실 몽주는 호중 탐험대의 발견에 몇 가지 의심을 가진 상태였다.
호중의 탐험 일지를 보면, 뉴기니섬의 남쪽에서 여러 제도들이 놓인 토레스 해협을 거쳐 200킬로미터 떨어진 퀸즐랜드 북쪽 반도 끝에 닿은 게 분명한데, 몽주가 아는 것과 다른 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호중의 탐험 일지와 측량 지도에 목요섬(Thursday island)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큰 섬들은 표기했으면서 목요섬만 빠진 것도 이상하고, 대신 목요섬이 있는 곳부터 대륙인 것처럼 표기된 지도도 정말 그 연안을 확인한 것인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몽주의 천몽 이래 그곳에서 역사에 없던 거대한 자연현상이 일어나 목요섬이 호주 대륙과 연륙되었을 수도 있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리 봐도 그럴 가능성은 높을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섬의 발견도 그 섬이 신대륙에 속한 것이라면 신대륙의 발견으로 인정할 수 있었다.
역사에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도 아메리카를 향한 첫 항해에서 발견했던 건 본토가 아닌 바하마 제도였다.
만약 조작이 있었다면, 특히 그것이 고의에 의한 것이라면 호중 탐험대의 영광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도 충분했다.
다만, 몽주는 그가 가진 의심을 감태에게 밝힐 수는 없었다.
그건 탐라 조정에서도 그 의심을 드러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였으니, 아무리 몽주가 지리에 초인적으로 밝다곤 해도 신대륙의 한구석까지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건 곤란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그 가능성을 지적하고 싶은 걸세. 게다가 신대륙이 호중 대륙밖에 없다고 누가 확인해 줄 수 있겠는가.”
“…….”
“대해는 정말 넓어 어디에 얼마나 많은 땅이 놓여 있는지 알 수가 없지. 호중 대륙? 그게 뭐가 어떻다는 겐가? 다른 대륙을 발견하여 자네의 이름을 붙이면 되지. 설령 다른 대륙이 없다 하더라도, 대해의 면목을 밝히면 자네는 진정한 대해의 발견자로 이름을 떨칠 수도 있을 걸세. 앞으로도 도전하고 발견할 것들이 이처럼 많고, 그 위업의 크기도 호중 아대륙 이상일 수 있는데, 겨우 한 번 졌다고 그렇게 세상이 끝난 사람처럼 구는 행태야말로 진정 패배자의 모습일 걸세.”
한바탕의 훈계 끝에 감태는 돌아갔다. 식사는커녕, 차 한 잔도 얻어먹지 못했지만, 어차피 감태도 식도락을 즐길 마음은 아니었다.
그리고 감태가 곧바로 기운을 회복한 것도 아니었다. 한동안 두문불출하였는데, 어느 날부터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옛 대원들을 하나씩 찾아가 설득하기 시작했고, 다시 탐험에 나설 준비에 나섰다.
다만, 감태의 태도에 뭔가 변화가 있었으니, 탐구로서의 탐험보다는 공업(功業)을 위한 탐험에 더 적극적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감태에게 또 하나의 별칭을 남기게 되었으니, ‘욕심쟁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물론, 그런 변모는 모두 탐라공이 태마식으로 떠난 이후의 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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