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54)
세력 11년의 태마식군은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고을이었다.
국제무역항.
1년 전에 비해 인구는 크게 늘지 않았다. 고작 수백 명 단위의 증가가 있을 뿐인데, 정작 고을의 역동성은 눈에 띄게 증가하였으니, 이는 사방에서 몰려오는 외국 상인들이 많아진 덕이었다.
근방이라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는 거의 2천 길미 떨어진 ‘동남아’ 서부의 왕국에서 상인들이 오는 것은 물론, 인도 상인들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 이틀 정도 포구에서 관찰하면 특이한 외모와 복색을 한 자들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태마식의 고려인들은 그들을 모두 회회인이라 통칭하였다.
하나, 고려인들이 본디 가지고 있던 회회인의 ‘이미지’보다는 좀 더 ‘순종’에 가까운 그들을 한 단어로 통칭하기에는 각각의 특색이 너무나 달랐다.
“저기 머리에 커다란 두건을 두른 자들은 오마니드라는 나라에서 왔다합니다. 그리고 저쪽에 오마니드 상인과 비슷하긴 하지만, 흰 보자기를 거꾸로 쓰고 있는 것 같은 복색에 좀 더 짙은 피부를 한 자들은 아주란이라는 곳에서 왔다고 합니다.”
“신기하군.”
“예, 저하, 세상에는 참 신기한 나라와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미리 운항소장으로부터 알아 두었는지 외국 상인들을 곧바로 지적하던 박자첨 수군 공병대장의 말에 몽주는 실소를 머금었다.
박 대장은 낯선 지명과 보다 이국적인 외모에 대한 신기함을 말했지만, 정작 몽주가 신기하다 한 건 1, 2천 길미 떨어진 곳도 아니고, 직선거리로도 5, 6천 길미가량 떨어진 먼 곳에서 태마식까지 상행을 온 것을 두고 느낀 바였다.
태마식에 당도한 지 이틀이 지나 여독을 푼 후, 태마식의 현황을 보고 받는 중에 낯선 외국의 상인들이 오고나감을 전해 들은 몽주는 그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하여, 시찰을 겸하여 나온 포구의 운항소 전망대에서 그런 상인들이 있는 지를 살피니, 의외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당연히 몽주는 박 대장에게는 낯설기 그지없는 그 상인들의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오마니드는 아라비아 반도의 동남쪽 끝이자 페르시아만 입구에 위치한 오만(Oman)이었고, 아주란(Ajuuran)은 현대 소말리아의 남쪽 지방을 가리키는 지명이 분명했다.
이후에도 박 대장은 눈에 띄는 대로 외국의 상인들을 찾아내어 말해 주었으니, 페구, 벵갈, 구자랏 등의 지명이자 국명이 등장하였다.
모두 동남아시아나 인도의 지명이었는데, 듣다 보니 몽주는 특이한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인도의 힌두교도 상인은 없는가?”
“예, 여태껏 보고 받은 적이 없습니다.”
“흠…….”
힌두교 왕국들도 분명 교역을 하긴 할 터인데, 훨씬 더 먼 곳에서도 상인이 오는 태마식에서 인도 힌두교도 상인을 보지 못하는 것은 의외였다.
힌두교의 경전에 외국과 교역하거나 외국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게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실제로 지금은 이슬람이 대세긴 해도 힌두교가 동남아에 많이 퍼져 있었음을 생각하면 분명 이상한 점이었다.
“아무래도 그 바르나라는 계급 제도에서 상인들이 하층이라 하니, 그만큼 활동하기 어려운 탓이 아니겠습니까.”
박 대장의 말에 몽주는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전적으로 그 탓이라 보진 않았다.
상인 계급인 비사(毗舍 : 바이샤) 계급이 네 계급 중 세 번째라 하나, 그래도 베다 경전을 공부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재생족에 속한 만큼 극심한 차별이 있진 않을 것이라 보았던 것이다.
또, 사실 인도의 계급 구분을 크게 넷으로 나누긴 하나, 현대에서는 몇 개인지 셀 수도 없을 만큼 그 안에도 많은 구분이 있었고, 당대에도 어느 정도 추가적인 분화가 이뤄졌을 걸 생각하면 적어도 농부보다 위에 있을 상인마저 활동에 제약이 있으리라 여길 수 없었다.
몽주는 인도 힌두교 왕국이 태마식에 상행하지 않는 점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가, 문득 새로 포구에 입항하는 배들에 시선을 두었다.
다우선박 계통으로 보이는 그 몇 척의 배들 자체는 태마식에서 특이할 건 없지만, 그 배의 갑판 위에 있는 자들 중에 눈에 들어온 자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 배는 페구나 근처 왕국에서 온 겐가?”
“알아보겠습니다.”
박 대장도 바로 알 수는 없었는지 운항소장에게 눈짓을 하여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배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었으니, 그들은 코테(Kotte) 왕국의 상인들이었다.
“코테?”
“예, 저도 처음 듣는 곳인데, 인도 남쪽에 있는 섬에 있다 합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지금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 배들이 닿은 포구에 관리들이 한 아름 몰려가 있었다.
물론, 몽주는 코테 왕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현대의 스리랑카가 있는 ‘실론’ 섬을 분할하고 있는 여러 소왕국들 중 서남쪽을 장악하고 있는 왕국이 바로 코테 왕국이었다.
물론, 당대에는 그 섬을 실론이라 부르지도 않을 것이고, 그 전에 섬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였다.
아직은 그 섬이 인도 아대륙과 가냘프게나마 연륙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실론섬이 섬이 된 건 15세기 후반 사이클론의 여파로 인한 것이니, 그사이에 역사와 다른 자연 변화가 있지 않은 이상 아직은 섬이라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코테 왕국은 제법 위기에 빠져 있다 할 수 있었다.
가까운 인도 땅이 당대 인도의 강국 중 하나인 비자야나가르(Vijayanagar)의 영토로, 아마 지금쯤이면 비자야나가르가 실론섬의 북부를 장악했거나 그곳에 같은 힌두계열의 속국을 두었을 것이다.
‘하면, 단순한 상행을 넘어 외교적인 역할도 수행하러 온 것일까?’
몽주는 멀리서 군병과 관리들에게 둘러싸인 채 조사를 받고 있는 코테 왕국의 상인들을 바라보며 궁금해 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추측성 의문이나 희망 사항 같은 건 아니었다.
앞서 코테 왕국의 배들이 입항하면서 몽주의 눈에 들어온 자, 얼핏 봐도 남방계 불교 승려임이 분명한 자가 굳이 상인들 사이에 있을 이유가 그 외엔 없기 때문이었다.
“박 대장, 모레쯤 코테 왕국과 오마니드의 상인들 중 대표를 뽑아 데려오게. 물론, 그 전에 그들에 대한 녹계를 주었으면 좋겠고.”
“예, 알겠습니다.”
잘하면, 태마식에서 장차 탐라가 진출할 방향으로의 징검다리를 얻을 수 있을 듯했다.
* * *
태마식이 국제무역항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은 당연히 태마식으로 모이는 ‘동아시아’의 산물들에 있고, 교역에 편리한 포구와 제도가 존재하는 데에 있었다.
하나, 그런 근본적인 이유와 달리, 최근에 외국 상인들의 방문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소소한 것이었다.
2년 전쯤에 탐라수군이 초계의 범위를 늘리면서 ‘안다만’ 제도의 해적을 소탕한 것이 바로 그 방아쇠였다.
안다만 제도는 소목도자(蘇木都刺 : 수마트라) 섬의 북쪽에 있는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의 북쪽 제도로, 안다만 제도뿐만 아니라 니코바르 제도까지 합해도 사람이 살 만한 땅은 극히 드문 곳이었다.
당연히 안다만 제도의 원주민들은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삼아야 했고, 이는 어업뿐만 아니라 해적질까지 포함하는 의미였다.
그 보잘것없는 머릿수와 무장의 해적들은 의외로 믈라카 해협을 통한 동서 교류에 있어 제법 큰 골칫거리였으니, 근방의 세력들이 1, 2백 길미 너머 바다 한가운데로 원정을 떠날 능력이 부족했고, 어느 세력도 책임지고 해결하기 애매한 위치에 있는 탓이었다.
물론, 안다만 제도의 해적이 전혀 강대한 세력이 아닌 터라, 근방을 지난다고 해서 반드시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니고, 협상도 가능하며, 상행의 규모가 크면 물리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서 교류에 절대적인 장애가 되는 건 아니었다.
비교적 가까운 동남아 서부나 인도보다 더 먼 곳의 상인이 오고자 할 때는 발길을 돌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 차에 탐라수군이 안다만 제도에까지 나아가 해적들을 소탕해 버리자, 가까운 곳은 가까운 대로 상행이 늘고, 먼 곳은 먼 곳대로 오지 않았을 상인들이 태마식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안다만 제도의 해적마저 탐라수군에게 멸하였다는 이야기는 곧 그 이남의 소목도자 섬이나 태마식 반도의 제해권을 탐라가 거의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적어도 믈라카 해협의 해안에 한하여 보자면, 근방에 더 이상 탐라국에 대항하는 왕국이나 세력은 없었다.
태마식에 탐라의 고을이 설치될 무렵에 이미 저항 능력을 크게 상하게 만들어 두긴 했지만, 그래도 소규모 전투는 한동안 끊임이 없었는데, 그때마다 탐라수군은 바다에서 그들을 멸하고 그들의 해안을 초토화시켜 힘의 우위를 확실히 새기게 하였으니, 2, 3년 전부터는 해적질을 하는 놈들은 있을지언정 세력 단위로 반항하는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근방의 세력들이 모두 탐라국에 순복하는 건 아니었다.
“아체 놈들에게도 제안을 해야 합니까?”
아체(Aceh)는 소목도자 섬의 최북단 지방으로, 소목도자 섬의 소왕국들 중 가장 끝까지 저항하였던 곳이다.
탐라수군에 의해 바다를 잃게 되면서 결국 항복하긴 했지만, 그저 부왕이 교체되었을 뿐, 나머지 왕국의 체제는 고스란히 유지되고 있었다.
이는 소목도자 섬의 다른 모든 소왕국도 마찬가지인 바, 아무리 탐라국이라고 해도 섣불리 정복을 감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한데, 아직 정식으로 세워진 건 아니지만, 탐라공이 직접 공공선 연방을 거론하면서 주변 왕국들에게 연방 합류를 제안하고자 함을 밝히니, 관군 총회의 모든 배석자들이 그 대상의 한계를 궁금해 하면서 박 대장이 그중 가장 배타적인 아체 왕국을 언급한 것이었다.
“해야지.”
“하나, 놈들은 믿을 수가 없는…….”
“믿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가늠하는 게 연방일세.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퇴출하고 철퇴를 내려야지.”
굳이 1등 제후국과 2등 제후국을 구분하여 사실상 제국과 속령이 구분되는 연방의 형태를 구현한 이유도 최소 30년 동안 신뢰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다만, 태마식의 장령과 관리들이 께름칙해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니, 어쨌든 공공선 연방에 가입하면 그때부터는 동맹의 수준에 준하여 그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잠재적이나마 적성이 의심되는 세력을 보호하는 게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다만, 그들에게도 경고를 보낼 필요가 있겠지. 하여, 나는 이곳에 군항을 설치하고 싶군.”
“안다만…….”
몽주가 지도에서 안다만 제도의 중심을 이루는 큰 섬의 남쪽 만을 짚으면 말하자, 박자첨 대장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그곳에 분함대를 두어 아체 놈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하실 요량이십니까?”
“어찌 생각하나?”
“음…… 두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
“만약 아체를 견제하실 작정이라면, 그보다 가까운 섬에 군항을 두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 또, 그곳에 군항을 두는 건 아무리 근방의 모든 소왕국들이 연방에 합류한다 해도 태마식과는 너무 멀어 관리하기 곤란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비용은 크고 이득은 없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몽주는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바로 반론하였다.
“안다만 섬 외 다른 섬들은 지고(地高)가 해수면과 너무 가까워 큰 폭풍이나 해일이 있을 때 삽시간에 황폐화될 가능성이 크네. 그 점을 생각하면 안다만과 니코바르의 제도들 중 군항을 둘 만한 곳은 안다만의 남쪽 만뿐이지.”
안다만 섬의 거의 최남부에 있는 만은 그 형태가 천혜의 항구지였고, 무엇보다 근방에서 찾아볼 수 없는 산과 언덕이 솟아 있었다.
실제로 역사에서 21세기 초 인도양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안다만 니코바르 제도는 10미터 해일에 거의 전토가 휩쓸린 바 있었으니, 장기적으로 볼 때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안다만의 남부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그곳에 군항을 두는 게 관리하기 불편한 건 사실이고, 아체를 견제하는 용도로만 쓰자면 얻는 것이 적을 것이네. 하나, 다들 알다시피 그곳에 수적들이 발흥하면 태마식으로 오는 외국 상인들이 크게 줄어들 걸세. 하면, 교역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근방까지 우리 수군이 초계를 해야 하니, 그걸 위해서라도 그곳에 군항을 두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는 그곳에 분함대를 둘 생각이 없네. 그곳에 남아 있는 원주민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작은 군항을 설치한 뒤 그곳에 연락선과 포구를 관리할 인원만 배치하고자 하네. 그러니까 아체가 딴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건 태마식으로부터 오는 초계 함대라 할 것이야. 어차피 그곳까지 초계해야 하니, 쉴 터를 둔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한데, 만약 안다만의 원주민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어찌해야 합니까.”
“무슨 어려운 점이라도 있겠는가?”
“아……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거칠게 하진 말고.”
“예, 저하.”
몽주의 되물음에 박 대장은 자신이 너무 조심스러웠음을 깨닫고는 자기 선에서 해결할 것임을 밝혔다.
어차피 안다만은 해적의 소굴이었고, 탐라군에게는 운 좋게, 그들에게는 운 나쁘게 한 번의 조우로 인해 그 세력이 거의 붕괴된 상태였다.
사안의 사정과 규모 등 모든 면에서 탐라공이 굳이 명을 내릴 필요도 없고, 신하된 자로서 주군에게 선택의 고민을 안겨 드릴 필요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하면, 이제 대충 방향은 정해졌군. 믈라카와 파타니는 이미 연방 가입을 청원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소목도자의 회교도들을 잘 구슬려 보게.”
“예, 저하.”
태마식과 마주하는 반도 남부의 두 왕국은 예상했던 대로, 공공선 연방에 대해 알려 주기 무섭게 합류를 청하였다.
지난날 탐라국에 굴복하면서 이미 사실상 공공선 규정을 따르고 있는 그들로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목도자 섬 중 동편 연안의 중부 이남에 있는 소왕국들도 거부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탐라국을 경원하기에는 태마식과 너무 가까웠고, 지난 7여 년 사이 탐라국과 경제적으로 연관이 생긴 만큼 정신머리가 있는 자라면 연방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 *
태마식에서 탐라공에 대한 인심은 물론 높았다. 다만, 이는 평균적인 의미로, 출신성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다.
가장 열렬한 자들은 당연히 고려인들이었고, 그다음이 기존 아홉 소왕국 출신들이었으니, 후자는 이미 모국을 잃거나 모국이 탐라국에 복종하면서 흥하고 있는 만큼 자연히 탐라국과 탐라공에 대해 긍정적이고 적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인도계나 중국계의 경우도 좋은 편이었는데, 명나라와 고려가 지난날 큰 전쟁을 벌인 것을 생각하면 중국계의 인심이 좋은 편인 건 의외라 할 수도 있으나, 사실 그들 중 대부분이 명나라의 건국 이전에 이주한 자들이라 고려와 명나라의 관계와는 별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다.
반면, 탐라공에 대한 인심이 가장 낮고, 심지어는 억하심정을 가진 자들은 주로 태마식과 근방 이슬람 소왕국의 원주민들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태마식의 건설과 안정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수도 없이 싸웠던, 그네들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당했던 과거가 있기 때문이었고, 태마식에 있는 그들 대부분이 탐라수군에 의해 죽고 다친 자들의 가족인 탓이었다.
때문에 몽주가 태마식의 거리에 나왔을 때, 그 주변의 대기는 뭔가 역설적인 느낌마저 있었으니, 가까운 주변에는 탐라공을 향해 환호하고 만세를 부르는 자들로 가득한 반면에, 먼 곳에서는 싸늘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하여, 몽주를 호위하는 자들도 가까운 곳의 환호를 다행으로 여기면서도 먼 곳에서 냉정히 바라보는 자들을 경계하였으니, 적어도 군율적으로 호위군병들이 방심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몽주와 앵도가 함께 마차에서 내려 군청사 앞 작은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일어난 일은 정말 바늘구멍만큼의 가능성 밖에 없었던 일이었다.
휙…… 퍽!
무언가가 몽주의 이마 옆을 때리고 떨어졌으니, 그리 크지 않은 돌이었다.
이마에 상처를 입어 핏기를 보이는 몽주의 얼굴이 굳어지는 동안, 주변의 모든 이들도 안색이 변했으니, 그 놀라운 사건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얼굴을 붉히거나, 그 놀라운 사건이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또 다른 사건에 대한 두려움으로 파리하게 질리거나 한 것이다.
“누구냐!”
호위대장의 고함이 적막한 주변으로 퍼지는 순간에 이미 범인은 드러났다.
그 돌이 날아가기 시작한 곳 주변의 모든 이들이 좌우로 퍼지자, 아직 성인은 아님이 분명한 소년이 제가 한 짓에 놀라 입을 벌리고 있었고, 바로 근처에 서 있는 어느 원주민 아낙도 놀라서 얼어붙어 있다가 이내 소년을 부둥켜안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던 것이다.
딱 봐도 소년이 돌을 던졌음이 분명했으니, 호위대장의 명이 떨어지기도 전에 군병들이 일제히 그 소년을 향해 달려갔다.
소년의 어미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무어라 마구 소리치며 애원하고 울부짖었지만, 군병들은 어미를 떼어 내고는 소년을 거칠게 쓰러뜨려 사지를 구속하였으니, 호위대장과 몽주를 바라보며 명을 기다리는 군병들의 시선에는 이미 뽑아 든 칼을 바로 휘두를 것 같은 살기가 가득했다.
“…….”
한데, 그런 일련의 일들이 일어나는 수십 초 동안 어쩐 일인지 몽주는 멍한 표정이었다.
“자내, 괜찮아요?”
남편을 끌어안으면서 마치 스스로 방패가 된 것처럼 자세를 취하고 있던 앵도는 남편의 반응이 이상함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아…….”
“자내……!”
“……아니오. 난 괜찮소. 그냥…… 생채기가 난 것뿐이오.”
그렇게 말한 몽주는 애쓴 것이 분명한 미소를 아내에게 보이곤 몹시 송구한 표정으로 자신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호위대장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사연은 모르겠지만, 저 소년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고 저지른 짓 같군. 저리 억압할 건 없으니 풀어 주고, 데려가 말로 훈계한 후 방면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호위를 강화하겠습니다.”
몽주는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는 듯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곤, 아내를 향해 다시 괜찮다는 양 웃음을 보이며 함께 청사로 들어갔다.
몽주가 괜찮다는 건 거짓말은 아니었다.
날아온 돌이 큰 것도 아니고, 정통으로 맞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마를 스치듯 지나며 옅은 상처가 난 것뿐이니, 얼마 지나면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모든 게 괜찮은 건 아니었다. 아니, 머릿속만큼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뭐였지? 그게 뭐였지? 어디서 봤지?’
돌에 맞는 순간, 몽주는 순간 어둠을 봤다. 그리고 그 어둠 속 먼 곳에서 한 점의 광원을 보았다.
그건 돌에 맞은 충격에 순간 시야가 깜깜해지는 증세 같은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분명 그와 비슷한 장면을 어디선가 봤던 것 같았다.
말로 표현하면 너무나 단순하고, 착각이라 여길 만한 그 경험은 결코 단순하지도 착각도 아니었다.
그 짧은 순간 그가 눈과 몸으로 느낀 모든 것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디서 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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