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58)
시야를 위해 등불이 몇 군데 놓여 있었지만, 한밤의 대집회실은 어두침침했다.
강중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대집회실을 가로질렀다.
쓰윽.
회의석의 곁을 지나며 석상에 정연히 놓인 의자들의 등받이를 손으로 쓰다듬었으니, 근래에 브루내에서 가져온 좋은 원목과 최고품질의 황칠액이 만들어 내는 좋은 감촉이 손 끝에 느껴졌다.
그렇게 서른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회의석의 끝에 이르러 강중은 상석에 놓인 의자를 빼내곤 그 위에 앉았다.
다른 의자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 의자에 앉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시야, 즉 좌우로 멀리부터 놓여 있는 의자들의 행렬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광경은 그 자리를 특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바로 탐라국공의 자리.
탐라국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고, 고려 전체에서도 누구도 두렵지 않은 지위지만, 놀라울 정도로 탐라공은 그가 서고 앉는 자리를 높이지 않았다.
어릴 적에는 탐라공인 그의 아버지께서 그저 겸허하고 소탈하시기에 그런 줄 알았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굳이 앉고 서는 자리를 높이 세우거나 화려하게 꾸미지 않아도, 모든 이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인지상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탐라공이었다.
그리고 다음번 탐라공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것은 쾌감이자 부담이었다.
이미 그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총무회의를 이끈 지도 십여 번에 이르렀기에 강중도 그 모순적인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쾌감은 사람이 나서 세상을 뜻대로 이끌 수 있는 권력을 쥐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임에 분명했다.
다만, 부담은 그 심층을 꿰뚫어 보는 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으니, 처음에는 그저 하늘도 낮다 싶을 만큼 높고 큰 공업을 세운 아버지의 후계라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낀다고 여겼으나, 그게 핵심이 아님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이미 아버지로부터 따뜻한 충고와 위로를 받아, 자신이의 전대 탐라공이 세운 위대한 업적에 부담을 느낄 필요 없이, 오히려 행운이라 볼 수 있음을 인정하며 마음을 단단히 다질 수 있었음에도 부담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겉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담을 한 꺼풀 벗고 나자, 진정한 부담의 이유를 직시할 수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의 욕심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단지 아버지의 덕을 받아 손쉽게 태평성대를 누린 운 좋은 국공으로 남고 싶지 않다.’
부담을 느끼는 것과 달리 강중은 자신이 그저 군림하는 것만으로도, 암군이 되지만 않는다면 성세에 가까운 평세를 누릴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건 아버지로부터 받은 위로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그가 관리로서 나랏일을 하며 이미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 특히 외관부에서 일할 때 명나라와 왜국을 살펴보며 느낀 바였다.
‘인본의 땅은 단지 자비로움이 원인이거나 목표가 아니었다.’
사람이 근본임은 일찍이 아버지께서 홍길도 영감을 통해 펼치신 만행지론에 담겨 있던 바, 지난 세월 탐라국이 선 이래로 국정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지침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단지 백성들을 어여쁘게 여기기 위함이 아님도 지난 세월 동안 증명되었으니, 사람이 근본인 탐라국의 힘이 만백성으로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탐라국에서만 나서 자란 자들은 미처 깨닫지 못할 수도 있는 부분이나, 명나라와 왜국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던 강중은 그 두 나라가 고려에 못지 않고, 혹은 고려보다 더 강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군주와 귀족들의 군림에 의해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왜국은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분열로 인한 국력의 낭비가 있어 애초에 비할 바가 아니나, 명나라의 경우는 분명 탐라와 고려를 능가할 저력이 있었다.
특히, 성영제가 과격한 개혁을 나름 성공적으로 이끈 뒤에 그가 현명한 판단을 했다면, 그 저력을 실현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었다.
하나, 강중이 상해에서 보고 들은 명나라의 모습은 결국 다시 귀족들의 세상이었고, 대다수의 평민들은 그들이 가진 능력과 욕망을 펼치기 어려운 나라였으니, 설령 개혁의 과실이 있어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할지라도, 명나라의 잠재력을 십분 발휘하는 건 체제적으로 불가능했다.
이는 비단 강중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형님께서 인본을 주창하심은 경제적으로도 최고의 한수였다. 백성들 그 하나하나가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었지.’
언젠가 몽건 숙부로부터 들은 그 이야기는 적어도 강중에게는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아니, 조금이라도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는 자들이라면 모두가 단숨에 인정할 수 있는 견해인 바, 그저 지금 탐라국의 백성들이 생산과 소비를 누리는 건 단지 나라가 부유한 것에 이유가 있지 않았다.
아무리 부유해도 오래전 고려와 같은 체제였다면, 그 부유함은 결국 왕실과 귀족들의 몫에 불과했을 것이며, 대다수의 백성들은 생산 대신 착취를, 소비 대신 구휼의 대상에 머물렀을 테니, 결국 그 부유함도 일부의 일시대적인 사치와 향락 속에서 사그라졌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여, 강중은 그저 아버지께서 만들어 놓은 세상, 인본을 바탕으로 발전된 여러 제도와 기술 위에 올라타고만 있어도 탐라국은 그가 아는 세상의 그 어떤 나라보다도 앞선 나라일 것이라 예측했다.
그렇기에 강중의 부담은 탐라국을 강성하게 유지하지 못할까, 혹은 탐라국이 약화될까에 있지 않았고, 오히려 탐라국을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로 만들지 못할까에 있었다.
‘나는 나의 치세가 탐라국의 전성기이자, 완성된 창건기이길 원한다.’
그것이 강중의 욕망이었고, 회의석상 위에 놓인 그의 주먹을 움켜쥐게 만드는 동력이었다.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강중의 머릿속에는 세상이 활짝 펼쳐져 있었다.
탐라공가의 일원만이 볼 수 있는 지도를 통해, 그리고 최근에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아 본 더 세세한 지도를 통해 볼 수 있는 그 세상은 정말 넓고도 넓었다.
한 때 세상의 절반쯤이라 여겼던 중국도 결국 세상의 작은 일부에 불과함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로는 더 작은 곳이었다.
바다의 끝에 닿진 않았을까 싶었던 탐라의 바다도 과장하여 표현하자면, 이제 겨우 앞바다를 벗어난 수준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는 대해 너머에 또 다른 땅이 있을 수 있음을 언급하시기도 하셨으니, 상상하면 절로 소름이 끼칠 만한 크기였다.
온화한 공자로만 알려진 강중의 시선은 그 넓은 세상을 욕심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정복욕의 발원이기 전에 미래에 대한 안배였으니, 영토를 탐하는 대신 탐라국이 더 많은 물산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더 많은 문화를 향유하는 미래 세상에 대한 꿈이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알려지지 않은 진리들이 산재해 있단다. 그 파편화된 진리들을 한 곳에 모아 그 조각을 맞출 수 있다면 세상은 더 풍요롭게 만들 더 큰 진리를 얻을 수 있겠지.”
며칠 전, 지도를 앞에 두고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강중은 자신이 그 이야기를 십분 이해하였는지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감은 잡고 있었다.
직관적으로 보아도 탐라국이 더 많은 종류의 물산을 얻게 됨에 따라 또 다른 지식과 또 다른 부를 얻을 수 있었다.
예컨대, 오늘날 탐라 교역의 대표적인 효자 품목인 유리만 해도, 과거 고려의 모래를 이용하였을 때의 유리와 해망군도의 모래를 얻어 그것을 이용하였을 때의 유리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 순수한 모래를 통해 얻은, 더 나은 선명함과 견고함을 가진 새로운 유리는 그 전에 유리를 소비한 자들을 다시 소비하게 만들었으니, 만약 해망군도의 모래를 얻지 못했다면 더 깨끗한 유리를 얻지 못했을 것이고, 그를 통한 더 많은 부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세상에는 그렇게 숨죽어 있는 진리를 품은 물산들이 많이 있을 것이니, 원래 존재하던 물산의 발전은 물론, 전혀 새로운 물산의 탄생까지도 세상에 흩어져 있는 여러 물산을 어찌 얻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것을 깨달으면서 강중은 지난날 자신이 공공선을 묻고 그것을 기준으로 한 연방의 확대를 제안하였을 때, 아버지께서 기대 이상으로 흡족해 하시는 반응을 보이셨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토의 크기나 영향력을 늘이기에 앞서, 더 넓은 세상과 교류하고 교역할 수 있는 것이 단지 상업적인 이득 이상으로 탐라국을 풍요롭게 할 것이니, 공공선 연방이 그것을 위한 중요한 길이 되어 줄 것임을 아버지께서는 알고 계신 것이었다.
“후우우…….”
강중은 문득 긴 숨을 내쉬었으니, 부푼 가슴속의 두근거림을 잠재우기 위함이었다.
남양에서 돌아온 아버지는 그에게 외교까지 완전히 맡기셨다.
이제 군사를 제외한 탐라의 모든 일을 그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내치를 관장함은 물론, 이제 평시의 외치까지 한 손에 쥐었으니, 사실상 나라의 경영이 그의 몫이 된 셈이었다.
탐라국을 알고, 탐라국 밖의 세상도 알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어떤 방도로 움직여야 할지도 이미 머리와 마음속에 담겨 있다.
과연 자신의 치세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이고, 후대의 평가는 어떠할까.
강중은 그것이 두근거릴 정도로 궁금했다.
다만, 섣부른 짓을 할 생각은 없는 바, 치세의 교체기에 있을 수 있는 혼란을 안정시키고 탐라의 주변을 정리하는 준비가 우선이었다.
그 첫 걸음으로 강중이 택한 것은 무라카미였다.
* * *
늘 그랬듯이 당대 무라카미의 존재 기반도 오직 무력이었다.
스스로 나라와 다를 바가 없다고 자부하나, 건국을 주창한 바도, 다른 나라로부터 인정을 받은 바도 없었다.
무라카미가 인정받는 건 오직 무력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로써는 족했다.
심지어 당대의 무라카미는 분명 최고의 시대를 영위하고 있었다.
내해의 섬과 바다는 무라카미의 영토나 다름없었고, 그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았다.
2만의 전사들과 200척의 전함을 거느리고 있었고, 그 전력을 지탱하기에 충분한 수입과 기반이 있었다.
거기에 탐라국과 함께 세외로 나간 무라카미들이 쟁투로써 명성을 크게 얻었으니, 중국의 연안은 물론 저 먼 남양에서도 ‘무라함대’ 혹은 ‘무라 사략단’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하나, 그렇게 무라카미들이 승승장구할수록 동시에 무라카미의 정체성은 희미해지거나 왜곡되고 있었다.
이는 무라카미의 독자성 대신 탐라국과의 연계가 더 강조된 탓이니, 무라카미를 무라카미 그대로 아는 자들보다 탐라국의 무라카미로 아는 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언짢으십니까?”
노지마의 군청 3층에 위치한 군주의 집무실에서 고노 서장의 물음을 받은 묘자는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죠? 당신이나 나나 태생은 고려인인데 말이죠.”
“저는 빼 주십시오. 공식적으로 전 중립입니다.”
“그래도 마찬가지잖아요. 찬성이 아니니까요.”
“뭐, 그런 면이 있긴 합니다.”
고노 서장이 결국 인정하자, 묘자의 미소에 씁쓸함이 감돌았다.
그녀는 그 얼굴 그대로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남향의 창문으로 비치는 하늘에 노을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쩌면 예전부터 이런 때가 오리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 군주께서도 그렇기에 내게 자리를 넘겨주시려 애쓰셨던 거고요.”
묘자가 말하는 어머니 군주는 그녀 이전 무라카미 군주이자 무라카미를 통일한 여인, 미야코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묘자는 군주의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지지 세력이 약했지만, 미야코가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해 준 덕에 군주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제 생각에 미야코 님이 묘자 님께 군주의 자리를 넘겨주신 이유는 어떤 미래가 있더라도 묘자 님이 자리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 보셨기 때문일 겁니다.”
“제 말뜻이 원래 그거였어요.”
“아, 그랬군요.”
묘자와 장민 모두 고려 출신이었으니, 저마다의 사정으로 고려를 떠나 무라카미에 소속되었다.
때문에 다시 고려에 속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안착하기 쉬울 것이니, 미야코도 그걸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들의 대화에 전제된 사실은 탐라국으로부터 온 사신의 제안이었으니, 탐라국은 공식적으로 무라카미의 나라를 건국함과 함께 공공선 연방의 가입을 요청하였다.
그 제안은 지금 무라카미 내 실력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니, 찬성파가 반대파보다 약간 우세한 상황이었다.
다만, 반대파에 다름 아닌 군주 묘자가 있는 터라, 찬성파도 확실하게 기세를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좋게 보자면, 적어도 탐라국에 흡수되어 무라카미의 이름이 지워지는 건 아니니, 다행히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제법 존중해 주는 모습을 보인 것도 분명하고요.”
차기 탐라공이자 현 탐라의 공자인 석강중의 이름으로 온 그 제안에는 비공식적인 제안도 있었으니, 만약 공공선 연방에 가입하기로 하면, 그간 탐라국과 손을 잡아 왔던 시간을 동맹의 시간으로 해석하여 빠르게 1등 제후국으로 승급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확실히 어차피 독자적으로 서 있지 못하고 공공선 연방에 가입하게 된다면, 이왕지사 1등 제후국이 되어 고려 제국의 일원이 되는 게 낫긴 할 것이다.
“근데 왜 이렇게 싫죠?”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는 게 낫다는 심정이 아니라면…….”
“아니라면?”
“그냥 싫으신 게지요.”
장민의 말에 묘자가 실소하여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냥 싫다는 게 진정 그녀의 진심에 가까웠다.
아주 엉망진창이던 시절에 비참하게 버려졌던 그녀가 운이 좋게 미야코에게 발탁되면서 그녀는 스스로 더 이상 고려인이 아니라 여겼으니, 무라카미의 세상을 고려 보다 훨씬 나은 곳으로 만들기를 각오하였었다.
한데, 이제 와 다시 고려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그것이 무라카미에게 더 이로운 선택일 수 있더라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는 종류의 일이었다.
속내를 직시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묘자는 문득 장민을 향해 물었다.
“한데, 고노 서장은 어째서 적극적으로 찬동하지 않고 있으신가요?”
그녀가 아는 고노장민은 고려로의 회귀를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아닌 게 아니라, 무라카미의 모든 고려 출신들은 찬성파에 있었으니, 그들이 설령 고려와 탐라에서 죄를 짓고 쫓겨난 자들일지라도 고려로 돌아가는 것을 환영하였다.
예컨대, 과거 탐라 홍로현의 토호였다가 탐라공에게 의해 유배나 다름없이 무라카미의 관리로 임하였고, 그러다 자신의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무라카미로 전향한 후, 지금에 이르러 참장의 지위까지 거머쥔 강기식 같은 자는 아예 찬성파를 주도할 정도였다.
그런 면에서 고노 서장이야말로 찬성파의 수장쯤 되는 자리를 차지해도 이상할 바 없었다.
비록 그가 탐라군에서 죄를 짓고 무라카미로 쫓겨났다곤 하나, 그녀가 알기에 그 죄에 억울함이 있고, 탐라군에서도 사정을 파악하여 그를 복원시켰다 하니, 차기 탐라공의 뜻을 따라 준다면 당장에 탐라군으로 돌아가 한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한데, 그런 고노 서장이 찬성과 반대, 그 어느 쪽에도 서지 않고 있었으니, 묘자로서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묘자 님밖에 없어서 드리는 말씀인데…….”
장민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랫동안 동료였던 자들을 베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적어도 이 일에 앞장서고 싶진 않습니다.”
“……!”
묘자의 눈이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홉떠졌으니, 장민의 대답에 담긴 두 가지 뜻을 차례대로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확인한 것은 무라카미가 공공선 연방에 가입하면 반대하는 자들 중 많은 이들이 실력으로 저항할 것이라는 것이었으니, 그렇게 되면 평화적으로 연방에 가입하는 것과 무관하게 무라카미는 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연방 가입 여부가 순수하게 외교적으로만 진행될 것에, 즉 탐라국의 제안을 거부하더라도 보복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안심한 나머지, 내분의 가능성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던 묘자로서는 그걸 미리 생각지 못한 자신의 실책에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장민이 비록 찬반을 택하지 않았으나, 이미 결국 무라카미가 공공선 연방에 가입하게 될 것을 짐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만약 무라카미의 이름으로 가입이 결정된다면 그는 저항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데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게 의미 있는 것은 고노 서장 또한 무라카미 내에 나름의 세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노 서장이 공식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있어 그의 세력도 중립으로 파악되고 있지만, 사실 고노 서장과 그의 세력은 실질적으로 찬성파라 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가 아니더라도 이미 찬성파가 반대파를 상대로 조금이나마 우세한 상황에서 만약 찬성파가 무라카미의 이름으로 연방 가입을 선포하기만 한다면 고노 서장은 그 명분을 받아들여 반대파를 제압하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니, 이제껏 파악된 무라카미 내의 사정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제야 묘자는 왜 조용했던 고노 서장이 갑자기 독대를 청하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혹여 자신이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무라카미를 더욱 혼란에 빠지게 만드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함인 것이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조금 전까지 약간은 남아 있던 친근함을 표정에서 떨쳐 낸 뒤 묘자로부터 나온 말은 축객령이었고, 장민도 순순히 인사를 올린 뒤 물러났다.
홀로 남은 묘자는 다시 창밖을 바라보았으니, 노을도 다 지고 서쪽 하늘로부터 빠르게 어둠이 드리우고 있었다.
묘자는 그 하늘이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서쪽을 응시하였으니, 그녀도 무엇이 무라카미가 그나마 온전히 남아 있을 수 있는 선택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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