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60)
가장 아래에는 큰 북이 세워 있으니, 대고(大鼓)라 불렀다.
그 앞으로 받침대 위에 뉘여 있는 작은 북은 주된 북이라 하여 주고(主鼓)라 불렀고, 그 우측에 조금 더 큰 북은 담백한 소리를 낸다 하여 담고(淡鼓)라 불렀다.
대고는 소가죽을 가공하여 덮은 것으로 발로 차서 소리를 내는데 가장 울림이 크고 낮았고, 주고는 얇은 철판 위에 고무를 덮은 것으로 그 울림이 높고 날카로운 편이며, 담고는 양가죽으로 만들어져 소리가 대고만큼 낮지만 울림이 짧았다.
주고와 담고는 고봉(鼓棒)이라 부르는 나무 막대로 쳐서 소리를 내는데, 주고 근처에 챙과리라 부르는 얇은 철판들이 있어, 그것들도 고봉으로 두드려야 하는 터라, 제법 손놀림이 재빨라야 했다.
“쿵쿵텅, 두둥, 쿵쿵텅챙, 둥, 쿵쿵텅, 두둥, 쿵쿵텅챙, 둥!”
손발이 어지러울 법 한 데도, 박자감 있게 북을 두드리는 자는 석삼이었다.
다고(多鼓)라 부르는 그 타악기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그였으니, 몇 년에 걸쳐 제작하고 다시 몇 년 동안 개선하여 내놓은 그 결과물을 가장 잘 연주할 수 있는 이도 그였다.
근자에 다고를 알고 흥미를 가진 자들이 사사를 청하고 있기도 하여, 조만간 은퇴하게 되면 그들에게 다고를 가르치며 소일할 생각이었다.
본디 그가 다고를 만들고자 한 것은 아들과 친근하기 위함이었는데, 사실 그 목적을 십분 달성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아들이 피리 같은 관악기에 더 관심이 많은 건 둘째치고, 악기를 만드는 것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고, 바쁜 관리 생활로 인해 그럴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 그렇다고 석삼이 후회하는 건 아니었고, 얼마든지 도중에 관둘 수 있었음에도 틈틈이 시간을 투자하여 다고를 기어이 타악기로서 쓸 만한 수준까지 올렸다.
음주 외에 취미를 가진 것 자체에 아들이 좋은 평가를 하였는지 악기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화가 늘어난 데다가, 다고를 만들고 두드리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기에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무엇보다 석삼으로 하여금 다고를 포기하지 못하게 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할아버지!”
“……아구구, 우리 토깽이 왔구나!”
석삼은 북을 두드리는 소음 속에서도 어느 사내아이가 별채로 들어오며 부르는 소리를 정확히 들었다.
딱 봐도 장난꾸러기로 보이는 10살 먹은 사내아이가 책가방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달려오고 있었으니, 석삼의 둘째 손자인 시훈이었다.
“인석아, 학교에서 돌아왔으면 어머니한테 먼저 하교인사를 올리고 와야지.”
“했어요. 아아, 빨리 다고 치고 싶어요!”
가방을 매고 달려왔기에 그대로 별채로 달려온 줄 알았는데, 그냥 급한 마음에 가방을 두고 오는 걸 잊은 모양이었다.
“원, 녀석, 알겠다. 여기 앉아라.”
“네!”
석삼이 앉은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자, 손자가 그 자리에 앉아 고봉을 양손에 쥐었다.
쿵쿵, 텅텅, 챙챙!
손자가 손과 발로 북을 아무렇게 치기 시작하니, 꽤 소란스러워졌다.
뒤로 물러나 다른 의자에 앉은 석삼이 그런 손자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니, 귀로 들리는 소음이 그에게만큼은 들을 만했다.
불협한 소리임에 분명하나, 손자가 자신이 만든 악기를 즐기고 사랑하는데, 그 기쁜 마음 때문이라도 즐겁지 않을 수가 없었다.
쿵텅쿵텅, 챙챙채앵!
아무렇게나 두드리는 것 같던 손자는 이내 박자감이 느껴지게 두드리기 시작했으니, 처음에는 손을 풀고 귀로 타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이제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하려는 것이었다.
석삼은 조금 더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손자의 연습 연주에 집중하려 했는데, 어느 순간 여러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중 길게 자리 잡은 생각은 한 통의 서찰이었으니, 요동국 호조 첨사 김자디로부터 온 것이었다.
그와 연이 생긴 것은 작년 요동공의 장례를 위해 탐라공을 모시고 요동국에 갔을 때였다.
요동국 신진신료들 중 가장 주목받는 자라는 그는 의외로 소탈하고 솔직한 면이 있었으니, 장례를 앞뒤로 하여 여러 번 찾아왔었다.
그 자리마다 그는 탐라공 저하나 여러 탐라국 신료들에게 많은 것들을 질의하였으니, 때로는 꽤 민감한 문제도 서슴지 않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질의는 만약 이제 요동국공의 지위를 얻은 방원이 전제적인 치세를 열려 한다면 어찌해야 하느냐는 것이었으니, 탐라공의 사위가 요동공임을 생각하면 제정신으로 질의한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한데, 더 놀라운 건 탐라공 저하의 반응이었다.
“중요한 건 요동공이 얼마나 많은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그 권력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것이겠지.”
“만약 요동공이 막대한 권력을 마구 휘두르면 약한 신권이 어찌 견제할 수 있겠습니까.”
“견제는 신하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하는 것일세. 신료들이 국공의 독주를 저어하는 것이 단지 자신들의 이권이 적어지는 것에 있다면, 백성들은 신료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나, 만약 국공이 독점한 권력으로 망국의 정치를 하는 중에 신료들이 진심으로 나라를 살피려 한다면 백성들은 신료들을 지지할 것이네. 결국 백성들이 얼마나 깨어 있고, 곧은 시야를 가졌느냐에 따라 사정이 달라지겠지.”
“너무 이상적인 말씀이십니다. 백성들 하나하나가 현자와 같은 머리와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야…….”
‘하나하나의 사람은 온갖 편견과 오류를 가지고 있으나, 그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무리는 적어도 합리를 따르기 마련이지 않은가. 누가 자신들에게 이로운 정치를 하는지는 살기 위해서라도 알아야 하는 게 백성들이지.“
“때로는 대세를 거역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때도 있는 법입니다. 그 경우는 어찌합니까?”
“설득하든지, 결과로 보여 주든지. 설득할 능력과 의지도 없고, 결과로 보여 줄 만큼 백성들의 인내도 얻을 수 없는 정치라면 이미 무너진 것이나 다를 바가 없네.”
“백성들이 어리석어 설득을 알아듣지 못하고, 결과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깨어 있게 해야 한다는 걸세.”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정녕 몰라서 묻는 겐가?”
탐라공의 질책 같은 대꾸 뒤로 김자디는 잠시 고심 어린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끄덕이곤 물러났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그로부터 자신에게 서찰이 왔으니, 요동국 방문 이후 한 달 뒤에 처음 왔던 뒤로 벌써 네 번째 서찰이었다.
왜 탐라공이나 다른 신료가 아닌 자신에게 연락을 취한 건지, 그 이유를 이제는 파악하고 있었다.
‘영감께서는 일평생 탐라공의 곁을 지켰고, 가장 낮은 곳에서 지극히 높은 곳까지 임하셨습니다.’
어느 서찰에서 그가 자신을 평한 글귀 중에 하나였으니, 그 두 조건을 충족하는 이는 자신밖에 없었다.
김자디가 보낸 서찰에 내용은 사사로운 것을 제외하면 모두 요동국의 정치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학교 제도와 교육에 대한 것으로, 석삼에게 공공선 연방의 여러 나라와 남방 동맹국들로부터 식자를 초청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흥미로운 발상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 온 서찰에서 그 구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구에 대학을 설치하는 것에 저하께서 마음을 굳히셨습니다.’
대학(大學)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지난 서찰들에서 그가 여러 식자들을 초빙하면서 낯선 환경에서 낯선 지식을 갖춘 자들을 모아 논의하고, 그 논의를 세상이 전파할 것이라는 내용을 본 바 있으니, 대학이 바로 그런 장소가 될 것임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저하께서는 어찌 보실까, 그 대학이라는 것을?’
석삼은 주군께서 이미 요동국의 그런 움직임을 잘 파악하고 계실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저하께서 따로 관련된 명을 내리시지 않은 걸 보면, 대학의 취지에 그리 동감하지 않으시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아니면 그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거나 효용성이 적다고 판단하시는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다.
석삼이 잘 아는 분야도 아니고, 큰 관심이 있는 분야는 아니기에 그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김자디 첨사가 고작 1년 만에 하나의 제도를 제안하고, 실천의 직전에까지 이르게 했다는 점은 꽤 유심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보았다.
소문대로 요동국 신진세력의 수장답게 힘을 갖춘 자임에 틀림없고, 요동공도 그를 결코 무시하지 않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으니, 장차 요동국을 상대함에 있어 그를 염두에 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음, 하면 그런 자가 추진하는 그 대학이라는 것에도 관심을 두어야 하는 건가?’
석삼은 그 생각에 대학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까 했는데 이미 관심과 집중력은 그로부터 떠나 있었다.
‘주군께서 관련 관부와 논의하시겠지.’
그러자 지금쯤 황도에 당도하셨을 주군을 떠올렸으니, 주군께서 황도로 가신 이유를 생각하자, 짧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강중 공자께서 판단하시겠지.’
그 생각을 직후로 다시 귀에 손자의 다고 연주가 더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석삼의 고개도 손자가 만들어 내는 박자를 따라 끄덕거렸다.
* * *
요동공 이성계의 죽음 이후의 과정들이 마무리되기까지 반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국공의 서거가 가져온 정치적, 경제적 충격이 가시고, 그 와중에 방원이 국공의 지위를 이어받아 요동국의 주권을 형식상 확보하여 치세를 개시하는 시간이었다.
물론, 요동공의 죽음은 누구나 예견하고 있었고, 방원의 후계 지위도 공고하였기에 그만큼 요동국은 비교적 쉽게 안정을 되찾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황도로부터 왕위의 수작에 대한 언급이 빠르게 시작된 것도 가능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요동국과 탐라국을 공국에서 국으로 격상시키는 논의가 있었고, 공식, 비공식 양면에서 관련된 합의가 있었으니, 새로운 요동공이 그의 치세를 세우자마자 다시 그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건 당연했다.
오히려 왕위의 수작이 결정되기까지 반년이나 걸린 게 이상한 일이었으니,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왕위 수작의 대상이었고, 다른 하나는 왕위의 칭호였다.
전자는 왜 요동국과 탐라국만이 왕작의 대상이냐는 문제였고, 후자는 왕위의 칭호가 상징하는 존귀함에 대한 문제였다.
그리고 두 문제 모두 다른 제후의 주장이나 요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황실 내부의 문제였다.
먼저 왕위 수작의 대상에 대한 문제의 경우, 애초에 후국과 유구국이 승작의 부담스러움을 이유로 먼저 사절하여 이미 왕위 수작의 논의에서 제외되었음에도, 뒤늦게 황실 내부에서 그 점을 물고 늘어진 것은 결국 요동국과 탐라국에게 부여하는 왕작 자체에 대한 거부감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이미 탐라공에게 크게 눌려 기를 못 폈던 황실이지만, 시간이 흘러 황실의 사정이 나아지자 다시 상황 판단을 못하는 작자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다행히 탐라공이나 요동공이 힘을 쓸 필요는 없었다. 현명한 익희태왕이 알아서 해결하려 했고, 그에겐 그럴 능력이 있었다.
다만, 단숨에 해결하지 않고, 일부러 황실 인사들의 여론을 듣는 척하였으니, 상황 판단을 못하는 자들을 확실히 파악하기 위함이었고, 그 파악이 끝나자마자 익희태왕은 그들을 황실의 여러 사업에서 배제시켜 버림으로써 사실상 숙청했다.
왕위 수작의 대상에 대한 문제와 달리, 왕위 호칭에 대한 문제는 똑같이 황실 내부에서 제기한 것이긴 하나, 왕위 수작에 대한 불만보다는 고려 체제의 특이성에서 비롯되었다.
처음으로 제국을 형성하였기에 왕작의 전례가 없는 바, 어떤 칭호를 쓰는 게 마땅한 지 아무런 기준이 없었다.
그나마 요동국의 경우는 고려의 형제국과 같은 심왕위를 빌릴 수도 있긴 하나, 그 칭호도 당금의 고려 제국에서는 적당하지 않았다.
일단 탐라공에게 수여할 그와 동등한 칭호가 없는 문제도 있고, 심왕은 곧 심국(瀋國)의 국왕인데 그러면 요동국의 명칭을 바꿔야 하느냐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요동국이든 탐라국이든, 요동과 탐라라는 지명을 국명으로 사용하기에 너무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어 교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긴 했다.
하여, 칭호의 문제는 국명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이야기가 복잡해졌는데, 탐라공이 탐라국의 명칭을 바꿀 의사가 없음을 알리자, 논의가 어느 정도 정리되었고, 이후 익희태왕이 구상한 것을 밝히면서 결론이 날 수 있었다.
“제태왕고(諸太王考), 신 탐라국왕 남해왕(南海王) 석몽린은 제국 고려를 짊어진 국가를 세웠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존령께옵서도 구례를 떠나 신례에 임하여 의지하옵소서.”
“제태왕고, 신 요동국왕 진세왕(進世王) 이방원은 제국 고려를 보국하는 국가를 세웠으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중춘에 이르러서는 존령의 혜은을 신국에도 분급하여 주십옵소서.”
종묘태전(宗廟太殿)에서 선제에 알묘하였으니, 이미 경험이 있는 몽주로서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다만, 그때와 달리 황실 인사들의 반항기 어린 분위기는 없었고, 국왕뿐만 아니라 왕비도 함께 알현한 것이 달랐다.
왕비도 동행하여 알현하는 건 딱히 요청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이미 익희태왕이 종묘에서 제례를 함에 있어 황비와 공주들도 참여케 하고 있어, 그 예를 따른 것이었고, 의외로 처음부터 별 반발은 없었다.
“기분이 어떤가요?”
종묘 알현을 마치고, 왕위수작을 축하하는 연회를 위해 이동하는 중에 문득 앵도가 조용히 물었다.
“무슨 기분을 말하는 게요?”
“남해왕이라 부르는 것요.”
“……의외로 담담한 느낌이오.”
왕위 자체에는 아내에게 말한 대로 무덤덤했다. 국공의 지위에 있었을 때도 이미 왕과 다름없었기에 그저 칭호만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남해왕이라는 칭호 자체에는 묘한 느낌이 있었으니, 역사에 없던 칭호였기 때문이다.
즉, 칭호 문제로 말이 많던 중에 익희태왕이 따로 국명으로 부르는 칭호 외에 따라 당대의 왕을 지칭하는 호칭을 둠으로써 정통성이 부족한 왕위를 뒷받침하고, 요동과 탐라라는 작은 지명에서 비롯된 국명의 확장을 유도하고자 중호(仲號)라는 일종의 유사 연호(年號)을 허락한 것이었다.
이는 익희태왕이나 성영제처럼 연호에서 비롯된 칭호나, 죽은 왕에게 부여하는 시호와 구분되는 호칭으로, 당대 고려 제후로서의 국왕에게 태왕이 그 치세의 의미와 의지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호칭을 가질 수 있게 한 것이었다.
본디 제후왕이 직접 짓고 태왕의 윤허를 얻게 되어 있는데, 다만 첫 중호는 태왕의 하사가 있었으니, 남해왕도 태왕이 지어 준 것이었다.
남해왕과 북지왕(北地王).
태왕이 탐라왕과 요동왕에게 하사한 첫 중호가 그와 같았으니, 지극히 대칭적인 그 중호들은 탐라국과 요동국의 지리적인 위치와 성격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탐라국과 요동국이 탐라나 요동이라는 지역을 넘어서 더 큰 영토를 얻은 것에 대한 명분을 더하는 칭호이기도 하였다.
다만, 요동왕 방원이 북지왕의 칭호는 자신보다는 선왕께 더 적합하다 주장하였고, 이를 태왕이 받아들여 북지왕은 이성계의 몫이 되었다.
하여, 이성계는 중호와 시호를 동시에 얻게 되었으니, 시호인 고왕(高王) 외, 북지왕이라는 중호는 당대에서 쓰일 일은 없었다.
두 왕작의 탄생을 축하하는 연회는 삼 일간 이어졌다.
모든 준비는 황실이 부담하였으니, 왕작의 탄생 자체가 왕작을 받는 자의 영광이기에 앞서,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로서 태왕의 지위가 휘하에 왕작을 둠으로써 더욱 공고해졌음을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여, 그간 검소했던 것이 연기였던 양, 큰 재물을 풀어 황도 전체를 잔치판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공식적인 연회장의 수가 궁중을 제외하고도 18곳에 이르러 황도의 백성들과 황도를 방문한 자들까지 술과 음식은 물론, 무희와 악사들의 공연을 즐길 수 있었다.
그중 궁중에서 펼쳐진 연회에 참가한 자들의 면면은 질적으로든, 양적으로든 화려하였다.
제국의 제후들이나 동맹국, 아직 비공식적이지만 공공선 연방에 가입국인 나라나, 고려의 제후들과 친선 교류가 있는 대부족들도 축하 사절을 보냈으며, 그 사절단을 대표하는 자들도 그 나라나 세력의 ‘왕실’ 인사이거나 ‘대신’급 신하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태왕을 알현한 뒤 두 국왕을 뵙길 청하였으니, 몽주나 방원이나 연회의 이틀과 삼 일째에는 사절단을 맞이하느라 다른 일을 볼 여유가 좀처럼 없었다.
덕분에 몽주가 방원과 독대하여 긴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건 삼 일째 야밤에 이르러서였다.
이제는 장인과 사위라는 관계보다 동등한 제후로서 마주한 그 자리에서 몽주는 처음으로 방원을 시험하거나 의심하는 시선을 거두고 진솔한 대화에 임하였으니, 그 자리가 마무리될 즈음에 진세왕이 청한 것이 있었다.
“치세와 국정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미 그대는 자네 나름의 방향과 방법을 정하였을 터인데, 굳이 내 조언이 필요하겠소? 다만, 굳이 청한다면 공식적인 조언과 비공식적인 조언을 하나씩 해 줄 수는 있소.”
“하면, 먼저 공식적인 조언을 청합니다.”
“부국강병, 법제 통치, 그리고 인본.”
방원의 입가에 쓴웃음이 스쳤으니, 탐라공 아니, 남해왕을 아는 자라면 누구나 아는 가치였기 때문이었다.
“하면, 비공식적인 조언을 청합니다.”
“뜻대로 하시게. 다만, 너무 까불지는 마시고.”
“…….”
예상치 못했던 경박(?)한 말투에 진세왕 방원은 처음에는 장난인가 싶었지만, 이내 몽주의 진지한 표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심이시군요.”
몽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이러쿵저러쿵 부연하진 않았다.
무어라 말해도 어차피 요동국의 통치는 진세왕에게 달린 것이니, 그저 그가 무슨 짓을 하든 고려의 품 안에서 고려 백성들의 안위와 삶을 염두에 두고 행하길 바람을 간단하게 전했을 뿐이었다.
“조언에 감사드립니다.”
공손한 인사와 함께 물러나는 진세왕의 뒤로, 몽주는 탐라섬에 있을 아들을 떠올렸다.
방원과 더불어 공존과 협력을 다지고, 경쟁과 대결을 나눠야 할 아들이 잘하기를 기원하면서.
그날밤, 수면 중에 몽주는 다시 어둠 속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똑같이 먼 곳에서 발하는 한 점의 빛을 볼 수 있었다.
다만, 그 광원의 크기가 좀 더 큰 것이 전과 달랐으니, 지난번의 것을 좁쌀만 하다고 한다면, 이번의 것은 콩알만 했다.
그 변화는 실제로 커진 것일 수도 있지만, 더 가까워진 것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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