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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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사 구름나그네.
뭔가 선술집 이름 같지만, 탐라 상단의 계열사인 탐라 항공과 더불어 고려에서 유이한 국제항공사의 이름이었다.
광대한 영토와 영해를 가진 대국이자, 세계 강대국 중 하나인 고려에 국제항공사가 고작 두 개뿐인 게 이상할 법도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많은 편이었다.
강대국 내지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 중에도 국적항공사가 없는 나라들이 숱하였으니까.
거의 한 세대 전에 반중력 기술이 개발된 이후, 그리고 금교사의 신기술에 의해 반중력 생성기의 가격이 뚝 떨어진 이후, 기존의 항공사들 대부분이 줄줄이 문을 닫아 버린 탓이었다.
일반 상용차가 공중 부양하여 운행하고, 그 속도도 보통 최대 시속 4백 길미에 이르며, 인공지능에 의한 무인 운전이 보편화된 상황에서 항공기의 가치가 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물론, 군사외교적인 이유로 일반 상용차가 국경을 넘을 수는 없기에 국제항공은 유효하지만, 국토가 크지 않은 국가에서는 국내선 항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진 상태였다.
고려처럼 영토가 바다로 끊겨 있거나, 아주 큰 영토를 가진 국가의 경우에나 국내선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구름나그네 항공사는 구름 항공사와 나그네 항공사가 합병된 회사였다.
그중 구름 항공사는 굉장히 유서 깊은 회사로, 거의 500년 전에 최초로 세워진 탐라 상단의 항공 회사가 후에 독립한 것이었다.
초창기 탐라 항공 회사였던 시절에는 비행기가 아닌 비행선을 이용하였는데, 천몽 전과 달리 비행선의 운항은 꽤 오래 지속되어 비행기의 개발과 상용화 이후에도 몇 십 년 동안 유지되었다.
비행선은 본디 비행기보다 느리고, 선박보다 수송량이 적어 순식간에 도태될 수도 있었지만, 고려처럼 영토가 넓고, 특히 바다 건너의 영토가 많으며, 외교적으로 얽힌 지역이 복잡한 나라에서는 비행기보다 수송량이 많고, 선박보다 빠르다는 점이 목숨을 연장할 수 있는 틈새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힌덴부르크 참사’같이, 대중들이 비행선을 외면하게 되는 충격적이고 인상적인 대형 사고도 없었다는 것도 비행선의 생명줄을 길게 만들기도 하였다.
비행기로 항공의 주류가 변화된 이후에도, 구름 항공사는 성공적으로 비행기 운항사로 거듭났고,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항공사로 이름을 떨쳤지만, 항공 패러다임의 변화 앞에 점차 사세가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십 년 전쯤에 자산의 상당 부분을 매각하고, 호중주에 본사가 있던 또 다른 대형 항공사인 나그네 사 와 합병하게 되었으니, 그렇게 끌어모은 자본 덕에 다른 대형 항공사들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버틸 수 있었고, 항공 업계 구조 조정을 이겨 낸 끝에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에 반해, 또 다른 고려의 국제항공사인 탐라 항공사는 오래전 최초의 항공사였던 탐라 항공 회사와는 무관한 회사로, 이제 고작 10여 년의 연혁을 가진 신생사였다.
항공 업계가 구조 조정에 몸살을 앓으며 고려 내 항공사들이 수두룩하게 폐업하자, 구조 조정 이후 고려 항공 업계가 진공 상태 내지 독점 상태가 되는 걸 막기 위해 국가 투자청의 지원을 받은 탐라 상단이 다시 탐라 항공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새로이 세운 것이었다.
하여, 탐라 상단의 계열사로서 탐라 항공의 이름값이 높긴 하지만, 명성으로 보나 연혁으로 보나 고려 최고의 항공사는 구름나그네사였다.
‘우주라고 해야겠지?’
분명 국내선이긴 하지만, 실상 어지간한 국제선보다 훨씬 긴 노선을 가진 진주 출발, 감주 도착 비행기가 지금 떠 있는 곳은 하늘이라는 표현이 부족하였다.
지구의 푸르고 둥근 지평 바깥으로 보이는 배경이 파랗지 않고, 검었기 때문이다.
잠시 창밖을 보던 몽주는 시선을 돌려 기내를 훑었다.
기내의 풍경은…… 솔직히 천몽 전 현대와 그리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아주 넓었다. 좌석이 넓다는 게 아니라, 기내 공간이 매우 넓어져, 천몽 전 현대의 비행기에 비해 5, 6배는 컸다.
기체의 전체적인 수치가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지만, 날개가 작아진 대신 전폭과 전고가 상당히 커진 덕에 넓은 내부 공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겉에서 볼 때, 천몽 전 비행기의 모양과는 많이 달라, 비유하자면 흰수염고래를 연상케 하였다.
위급 시 객실 전체가 분리되어 저속낙하하도록 설계되어 있기도 하고, 식사를 비롯하여 각종 시중은 인공 지능 인형[=로봇]이 대신하여 객실 승무원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기도 했다.
당연히 각종 편의 장비도 훨씬 대단한 것들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엄청난 속도였다. 도착지인 감주는 천몽 전 호주의 시드니 지역인데, 여객기임에도 고작 3시간 만에 닿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많은 부분에서 다르긴 한데, 정작 평범한 기내 상황은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었다. 그가 있는 일등석은 드러눕듯 몸을 쭉 뻗은 채 있을 수 있고, 보통석은 좀 편하게 앉으며, 실용석은 다닥다닥 붙어 있긴 매한가지인 것이었다.
이 정도 발달된 문명이라면, 모든 객석이 특등석처럼 되어 있고, 상상조차 못할 기술로 여행의 피로를 일절 느끼지 못할 정도는 아닐까 기대했다면 실망을 느낄 만한 수준이었다.
‘생각해 보면, 비행기만이 아니지.’
확보한 과학 기술의 수준을 생각하고 보면, 실생활에서 목격할 수 있는 문명의 모습들 중에는 예상보다 낙후(?)된 느낌을 받는 분야들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패션’이었다.
천몽 전 현대인의 평범한 차림새를 그대로 이곳에서 구현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테고.
여전히 면은 널리 쓰이고 있었고, 각종 합성 섬유 또한 이름이 달라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아 보이는 것들도 흔히 쓰이고 있었다.
단추나 지퍼도 널리 쓰였고, 벨트로도 마찬가지였다.
반대로 자동으로 세척 내지 건조가 된다든가, 저절로 사이즈가 맞춰진다든가 하는 기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발의 경우 개개인의 발 모양에 따라 변화를 줄 수 있는 것이 있고, 굽의 높이를 조절하는 것도 있다곤 하는데, 그리 대중적이지 않았다.
지금 몽주가 신고 있는 구두도 그냥 잘 만들어진 가죽구두였다.
물론, 그런 구두에도 다른 물건들처럼 ‘바코드’ 같은 게 부착되어 있어, 전자적인 추적이 가능했지만, 다른 이의 구두와 헷갈릴 경우 자기 구두를 찾을 때라든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 혹은 나중에 무단 투기로 버리는 걸 막는 것에나 유용할 뿐, 평소 구두를 신고 다닐 때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상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건가.’
생물의 진화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함이라면, 상품의 진화는 소비자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생산자의 공급에 의함이고, 최대 이득을 추구함에 있었다.
즉, 소비자가 굳이 좀 더 발달한 상품을 원하지 않는다면, 생산자도 최대 이득에 해를 끼칠 투자를 하며 그런 상품을 생산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소비자의 선택은 구두의 굽 높이를 조절할 수 있는 비싼 구두를 사느니, 차라리 굽 높이가 다른 여러 켤레의 싼 구두를 사는 것이었고, 찢어지지 않는 소재의 옷을 살 돈으로 여러 벌의 평범한 기성복을 입는 것이었다.
반대로 자동차는 부양 기술이 접목된 것이 나오자마자, 일반 자동차에 비해 열 배 이상 비싸도 구매하려는 자가 수두룩했고, 금교사의 신기술로 인해 반중력 생성기의 가격이 대폭 하락하면서 이제 도시에서 일반 자동차를 구경하기 어려워지게 된 것도 결국 소비자의 선택이었다.
더 발달한 기술이 접목된 상품을 위해 돈을 지불할 소비자들의 욕망 차이가 각 분야 및 상품의 발달 속도 차이로 이어진 게 아닐까.
그리고 그것이 제아무리 확실한 계산과 예상에 의해 굴러가는 세상이더라도 그 경제 체제가 결국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해요?”
“음…… 문명?”
“……?”
선영의 표정은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는 물음을 담고 있었다.
“그냥 문득 든 생각이었어요. 오늘날의 문명이 신기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해 봤죠.”
선영의 표정이 조금 한심한 쪽으로 변했다.
“선영 씨, 한 백 년 전쯤에 선영 씨가 살고 있었다면 어땠을 것 같아요?”
백 년 전이라 함은, 몽주가 생각하기에 천몽 전 현대와 비슷한 수준을 가진 물질문명의 시대를 의미했다.
“백 년 전요? 뭐, 글쎄요. 일단 핵대전 직후니까, 그것 때문이라도 좀 꺼려지네요.”
“핵대전이 없었다면요?”
핵대전은 4, 5차례의 세계 대전 중 핵무기가 대량으로 사용된 대전을 가리켰다.
“그래도 좀 싫은데요. 그 시절에 정치가 얼마나 개판이었는데요. 고려도 그랬고, 다른 나라들은 더 했고요.”
“정치나 정신적인 거 빼고요. 물질문명에 국한한다면요?”
“그렇다면…… 뭐, 살 만했겠죠? 백 년 전은 아니지만, 우리 할머니가 종종 옛날이야기를 해 줬는데, 그때도 재밌게 살았던 모양이더라고요. 아, 근데 줄기 세포 생체 교환이 어려웠을 때니까, 그건 좀 아쉽네요. 우리 할머니도 그 덕에 오래 살고 계시는데…… 아, 아니다. 어차피 현대의 이기를 모를 테니 상관없나? 아이참, 왜 그런 질문을 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요, 쓸데없이?”
“아, 미안요.”
몽주는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어쨌든 선영의 대답은 긍정적인 편이었다.
어느 정도 발달한 나라에서 태어나 당대의 문명을 누릴 수 있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을 거라는 의미였다.
하나, 그렇다고 오늘날이 천몽 전 현대와 같은 시대냐는 것, 먼 훗날의 역사가 판단할 때, 오늘날과 백 년 전을 같은 시대로 묶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아직 대답할 수 없었다.
물질문명은 같이 묶일 수 있을지라도, 정신적인 면, 그걸 시대정신이라고 한다면, 그건 달리 볼 수 있었다.
백 년 전을 두고 선영이 정치가 엉망이었던 시절이라 평가한 것만 봐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했다.
물론, 천몽 전 현대를 아는 몽주로서는 그렇게나 폄하할 수준이었던가 싶긴 했다.
백 년 전과 천몽 전 현대가 물질문명이 비슷했듯, 정치외교의 수준도 비슷했으니까.
오히려 천몽 전 현대를 인식하고 있는 몽주에게는 오늘날의 정치외교가 너무 조용해서 어색할 정도였다.
“쉴 생각 없으면, 여기서 미리 숙제해 두는 게 어때요?”
“숙제? 아…….”
숙제라 함은 보름간의 휴가를 떠나는 몽주에게 홍 사장이, ‘쉬엄쉬엄 틈틈이 훑어봐.’라며 정겹게 넘겨준 일감을 의미했다.
지난 토지 경매로 얻은 진주의 공단 부지에 세울 공장과 관련된 일로, 119층짜리 공장의 건설과 향후 운영 계획을 살펴야 하는 것이었다.
휴가 가는 부하 직원에게 일감을 안겨 주다니, 참 너그러운 사장이었다.
물론, 이 또한 양자계산궤에 의해 이미 그 대략적인 아니, 세세한 부분까지 계획을 완성해 둔 것이라 문자 그대로 살펴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긴 했다.
몽주의 기억에 이런 종류의 일에서 양자계산궤의 판단이 크게 잘못된 경우는 없었다.
하여, 좀 편안한 마음으로 ‘숙제’를 시작했는데,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다시 말문을 열었다.
“내 생각에 적어도 10년 안에 물질문명도 분기될 것 같아요.”
“에?”
선영은 또다시 들려온 뚱딴지같은 소리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이게 그만큼 대단하다는 말이에요. 지금까지의 문명과 앞으로의 문명을 확연히 구분 지을 만한 기술이잖아요.”
시대의 구분에 있어, 시대정신이 가장 큰 관건이지만, 물질문명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
천몽 전 근대와 현대의 구분이 1, 2차 세계대전이라면, 제국주의 시대의 종말이라는 시대정신과 더불어 라디오와 TV, 그리고 ‘컴퓨터’로 대변되는 근현대 사이의 물질문명의 변화도 빠질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대 변화에도 기술적인 발달 부분을 빼놓을 수 없으니, 그중 첫째는 지금의 정치외교적인 변화에 크게 이바지한 양자계산궤 및 인공지능의 발달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 그다음으로는 아마도 입자복사기가 꼽힐 듯싶었다.
둘 사이에는 어떻게 살펴도 수십 년의 격차가 있을 테지만, 역사에서 그 정도야 과도기에 불과할 테니.
몽주의 말에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을 짓던 선영도 자기 생각을 말하였다.
“그렇긴 하죠. 지금이야 몇 가지 안 된다지만, 앞으로는 모든 물산의 생산이 원천 입자 하나로 통합될 수도 있으니까요.”
입자복사기는 말 그대로 입자를 복사하는 기계를 의미했다.
그 구체적인 양상은 ‘원천 입자’를 다양한 입자, 그러니까 사물의 기본을 이루는 온갖 원소와 분자로 변형하는 것이었다.
아직은 몇 가지 특정한 원소와 분자 상태만 복사할 수 있었지만,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는 모든 종류의 입자를 복사,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통설이었다.
“근데, 말이 나온 김에 하자면, 좀 불안하긴 해요. 아는 사람은 알지만, 양자역학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예요. 반중력 생성기도 그렇고, 입자복사기도 그렇고, 그 구현 원리가 제대로 파악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저 가설들만 숱할 뿐. 이렇게 그냥 우연히 발견된 현상을 계속 이용해도 되는 건지 저는 모르겠어요. 편리하다고, 좋다고 마구 이용하다가 나중에 큰 부작용이 생길까 걱정스럽기도 해요.”
“…….”
무슨 소린가 싶었더니, 몽주도 기억나는 게 있었다.
그나 선영이나 경영 쪽 인재로서 이공계의 사정에 대해서는 밝지 않았지만, 그래도 일을 하면서 들은 이야기들이 있었으니, 선영이 말한 그대로였다.
그러니까 반중력 기술이나 입자복사 기술은 물론, 이미 너무 흔하디흔한 양자계산궤까지 원리를 알고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었다.
얼핏 듣기로 핵대전 이후에 우연히 발견된 무언가를 이용한다고는 하는데, 그 무엇이 무엇인지는 홍 사장마저도 알고 있지 못했다.
그저 오래전 탐라국 정부에서 그 무언가의 이용가능한 형태를 전면 공개하였고, 그 덕에 이후 양자 관련 기술들이 지속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까지가 몽주가 아는 전부였다.
하나, 그렇다고 선영처럼 우려스럽다는 건 아니었다.
“해왕도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했을 겁니다.”
“예? 아…….”
“그분의 시대에 이미 원소의 개념이 있었고, 그 개념도 해왕의 지혜로부터 시작되었다지요. 한데, 그렇다고 해왕이 원소에 대해 뭘 알고 있었던 건 아니잖아요.”
“음…… 그렇겠죠.”
“관찰된 현상도 지식의 일종이고, 그 지식을 이용하는 데에 있어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양자계산궤마저 예측하지 못하는 우려까지 품고 있을 필요는 없겠죠. 그리고 만약 정말 무슨 부작용 같은 게 있다면, 그거야…….”
“그거야, 뭐요?”
“운이죠.”
그 대답에 선영이 싱겁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더 이상 그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몽주도 숙제에 집중하였으니, 그 숙제를 대략 끝냈을 때 비행기는 감주에 당도하였다.
* * *
호중 대륙은 결국 호중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탐험가 호중과 감태 중 누가 먼저 호중 대륙을 발견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수백 년 묵은 것이었고, 특히 호중이 거짓 보고를 했음이 알려진 뒤 포상을 회수당하고 처벌까지 받으면서, 그리고 이후 감태가 탐험과 발견에 대한 큰 공을 연속적으로 세우면서 감태를 지지하는 여론이 커졌지만, 한 번 정해진 대륙의 이름마저 바꿀 수는 없었다.
고도왕(考道王) 석강중 9년에 호중의 거짓말과 죄가 확정되었지만, 이미 10년간 호중 대륙이라 불린 것을 돌이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감태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가 감태 대륙의 발견자로 이름을 떨친 걸 생각하면 그의 인생에까지 상처로 남진 않았을 것이다.
참고로 감태 대륙은 유럽 등지에서는 카마테칸 대륙이라 불리고 있으니, 감태라는 이름이 원주민식 조어법에 따라 카마테카가 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어쨌거나 호중 대륙은 발견 이래로 탐라국의 꾸준한 개척 지역이었고, 한 세기가 지난 후에는 오늘날의 동호중주와 북호중주, 그리고 신탐라섬, 즉 천몽 전 현대에서 퀸즐랜드주부터 태즈메이니아주에 이르는 대륙 동편 일대에 아홉 개의 군을 설치하게 되었다.
그중 ‘시드니’ 지역에 해당하는 감주군이 가장 발전한 건 지리적, 기후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몽주와 선영은 감주군에서 3일간 해변을 즐겼고, 이후 이틀 동안은 남호중주에서 대륙 중앙부에 위치한 새골군까지 드라이빙을 즐겼다.
공중 부양 자동차가 아닌, 바퀴로 바닥을 지쳐 달리는 구형 자동차.
더 정확히는 버기카(Buggy Car)를 연상케 하는 자동차를 타고 사막 기후의 골짜기를 누비는 모험 여행을 즐긴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백미는 새골군 서쪽 호중 대륙의 거의 정중앙에 해당하는 지역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저기가 폭심입니다. 한때 죽음의 대지였던 곳이죠. 지금 전망대가 있는 이곳을 포함해서요.”
호중 대륙 원주민의 핏줄을 살짝 느낄 수 있는 안내인의 말에 관람객들 사이에 웃음이 흘렀다.
그의 이야기가 과거의 이야기임을 알기에 보일 수 있는 웃음이었다.
높은 전망대 안에는 폭심에 가까이 설치된 촬영기를 통해 비치는 광경들이 화면에 비치고 있었지만, 여행객 대부분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하였고, 그건 몽주도 마찬가지였다.
평야의 사막 먼 곳에 마치 신의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 움푹 파인 흔적들이 모여 있었다. 오랜 시간의 흐름으로 폭발 당시의 날카로움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까지 무뎌진 건 아니었다.
핵대전 당시에 다섯 개의 핵탄두가 밀집하여, 서로 고작 수 길미밖에 안 떨어져 피격된 곳이 바로 저곳이었다.
50년 전까지는 전망대가 있는 곳은 물론 반경 200길미까지 완전 통제 구역이었다.
30년 전쯤에 반경이 50길미로 줄었으며, 다시 20년이 더 지난 후에야 반경 10길미까지 통제 구역이 줄어들 수 있었다.
방사능 측정치만 따지면 당장 폭심 한가운데에 서도 무방하다곤 하지만, 그런 짓을 하는 자들은…… 사실 아주 없진 않지만, 제정신인 사람들 중에는 없었다.
그저 핵대전 당시 고려 영토 안에 떨어진 13개의 핵폭탄 중에 5개나 몰려 떨어진 곳이자, 다른 지역과 달리 황무지 사막 지대라 수풀이 우거지지 않아 그 흔적이 비교적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을 관람할 따름이었다.
참고로 많은 핵 폭격을 맞은 또 다른 곳은 요동국 천야주로, 천몽 전에는 중앙 시베리아에 속한 광활한 지역이었다.
그곳은 네 개의 원폭을 감당해야 했는데, 호중 대륙과 달리 서로 동떨어져 떨어지는 바람에 훨씬 넓은 지역을 오랫동안 완전 통제 구역으로 두어야 했다.
그리고 그 두 지역이 인구가 희박한 곳이었음을 생각하면, 당시 정부와 군부가 인구 밀집 지역을 우선 방어하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힝, 그때 얼마나 많은 강가루들이 죽었을까요? 그 귀여운 애들이…….”
“여긴 강가루 서식지가 아닌걸요.”
“…….”
이제는 인간 대신 강가루의 운명(?)을 안타까워할 정도로 오래전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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