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5)
“헉!”
‘이게 아닌데.’
몽주는 그렇게 생각을 하며 바닥에 잽싸게 엎드렸다.
그가 바닥에 엎드린 곳 앞에는 한 무인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고, 그를 지나쳐 정면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게 버티컬 블라인드 아니, 수렴(垂簾) 너머로 보였다.
몽주가 엎드린 이유는 바로 그 수렴 너머에 있는 인물 때문이었다.
‘대체 왜 저자가 여기 나타난 거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애월루에서 만나 친해진 금오위 중랑장의 초대를 받아, 개경에 있는 그의 집에 찾아온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신돈이, 그 신돈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고개를 들라.”
“…….”
“……고개를 들라 하시지 않느냐!”
중랑장 김일기의 호통에 몽주는 그제야 번쩍 정신이 들었다.
몽주는 얼떨결에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여 인사를 하였다.
“여, 영공을 뵙습니다. 하, 한양부의 석몽린이라 합니다.”
겨우 인사말을 마치고, 고개를 들라는 명을 떠올려 아주 살짝 고개를 드는 체하였다.
속으로 자기가 왜 이렇게 겁을 먹고 있는 걸까 싶었고, 현대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몽린의 몸이 당당함 따윈 개나 주라는 듯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중랑장에게 들으니 네가 재밌는 이야기를 했더구나. 하여, 내 그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자 왔다.”
“소, 소인은 그저…….”
역시나 중랑장 김일기가 신돈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이런 식으로 갑작스레 신돈을 만날 이유는 그것밖에 없긴 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이해가 안 되었다.
김일기는 겨우 중랑장이다.
중랑장이 어떻게 영공인 신돈과 연결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이건 마치 경찰청 과장이 국무총리에게 직접 보고했다는 것과 같지 않은가.
“후후, 왜 이리 겁을 먹었는고? 목소리가 작아서 제대로 들리지 않는구나. 가까이 오너라.”
“…….”
가까이 오라는 신돈의 말에 몽주가 슬쩍 김일기를 바라보자, 김일기는 턱짓을 하며 얼른 움직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몽주는 마른침을 삼키며 무릎을 꿇은 채 몇 걸음 다가갔다.
“고개도 들고.”
“예…….”
“더.”
“…….”
자꾸 고개를 들라는 말에 몽주는 하는 수 없이 거의 수렴 너머의 신돈을 정면으로 볼 수 있을 만큼 고개를 들어야 했다.
처음 수렴 너머의 누군가를 확인하였을 때, 머릿속에서 ‘신돈!’이라고 경보음이 터지긴 했지만, 사실 이 시대의 살아 있는 권력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몸집은 평범했다. 환속했음에도 법복을 벗지 않고 다닌다는 소문대로 법복 차림이었다. 다만, 색색의 비단으로 지어진 것이 일반 법복과는 달리 권위를 세우려는 노림수가 묻어 있었다.
머리카락이 길게 뒤로 넘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상투를 틀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긴 머리카락은 봉긋하게 솟은 모자 아래에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수렴 때문에 이목구비까지 정확히 볼 수는 없었지만, 특별한 건 느낄 수 없었다.
“듣자 하니, 내 권세가 오래가기 위해서는 기반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고? 사실이냐?”
“……네.”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으니, 했다고 할 수밖에.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쯤, 애월루에서 향희를 힘들게 설득하여 중랑장과 자리를 마련하기로 약조했다.
그리고 김일기와 만나게 된 것이 대략 이 주 전. 안 그래도 애월루에 들릴 때라서 겸사겸사 왔다는 중랑장은 호인처럼 느껴졌었다.
술잔이 오가며, 말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형님, 아우님하게 되었고, 그렇게 친분이 쌓이자 몽주는 슬슬 속내를 드러내었다.
원래 계획이었다면, 애월루에서는 그저 얼굴만 익히고, 차츰 왕래하여 보다 친해진 후에야 본심을 보일 생각이었는데, 술기운 때문이었는지 저도 모르게 성급히 굴었던 것이다.
물론 중랑장이 그의 말에 호응을 잘해 주었던 것도 한몫했다.
본디 중랑장은 그저 윗선으로 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만 여겼는데 말을 하다 보니, 권력자를 설득시킬 내용에 대해서까지 언급하였다.
그걸 대충 간추리면, 공업과 상업을 부흥시켜 나라를 윤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부연하다가 나온 게, 현재 권세의 으뜸이라는 영도첨의사사 신돈에 대한 이야기였다.
몽주는 신돈은 적이 많고, 기반이 없어 임금의 신임을 잃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니, 그 전에 상인과 공인들을 자신의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는 식으로 김일기에게 설명했다.
아마도 그 말이 신돈에게까지 전해진 듯싶었다.
몽주는 중랑장 김일기가 원망스러웠다.
나중에 술이 깬 뒤, 자기가 뱉은 말이 조금 심했다 싶긴 했지만, 워낙 중랑장이 술술 다 받아 주었기에 별걱정은 안 했었는데, 그저 흘러 나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돈에게 고해 바쳤다니.
몽주의 작은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신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시 묻겠다. 네가 장사치나 바치(기술자)들을 내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던데, 맞느냐?”
어차피 엎지른 물이었다. 몽주는 이참에 신돈을 설득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달리 생각하면 이렇게 신돈과 독대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일 것이다. 언젠가 권력자를 설득시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생각이었으니, 기왕 이렇게 된 것 지금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 기반을 걱정해 준 건 고맙구나. 하나, 어찌 천한 장사치와 바치들이 내 기반이 될 수 있겠느냐?”
“시전의 장사치가 천하다고는 하나, 그들이 만드는 이(利)까지 천하겠습니까. 또, 도기소의 독바치(옹기장)들이 천하다고는 하나 그들이 만드는 도기(陶器)까지 천하겠습니까. 장사치가 없으면 백성들은 한 마리 물고기를 얻기 위해 큰물에까지 나가야 할 것이요, 독바치가 없다면 옹이 하나를 얻기 위해 스스로 흙을 빚어야 할 것입니다. 장사치와 바치들이 있기에 백성들은 필요한 것을 구하고, 불필요한 수고를 할 필요가 없으며, 장사치와 바치들은 스스로 이문을 얻을 수 있으니, 이는 모두가 좋은 일이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들이 때때로 이문에 취해 폭리를 노리기도 하나, 이는 나라에서 살펴 다스려야 할 것이며, 잘 다스린다면 그만큼 백성들의 신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 긴말은 아니었건만, 몽주의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현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이미 결론이 나 있는 주장을 머릿속 몽린의 사고방식으로 검증하며 말을 해야 했기에 심력이 두세 배로 소모되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생각했는데, 신돈에게는 부족한 대답이었던 것 같았다.
“그게 전부더냐?”
“……?”
“장사치와 바치들이 필요하다는 걸 세상의 그 누가 모르더냐. 나는 그것들이 내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너의 주장에 대해 듣고자 하는 것이다.”
“그, 그것이…….”
그러고 보니, 방금 그가 한 대답은 신돈이 물음에 빗나간 것이었다.
권력자를 설득해 상업과 공업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엉뚱한 대답을 하고 말았다.
몽주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사실 결론은 간단했다.
공인과 상인들의 권리와 입장을 대변해 주면 그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돈이 생긴다.
부르주아를 키워 부르주아의 지원을 받고, 그들의 정치적 대리자가 된다는 말이다.
돈은 귀신도 부리는 법이었으니, 풍족한 자금을 가진다면 신돈은 그만큼 자기 사람들을 많이 거느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 이 시대에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장사치와 바치들이라고 어찌 양심이 없겠습니까. 영공께서 중상(重商)하고 중공(重工)하신다면, 장사치와 바치들이 영공께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제길, 겨우 한다는 말이…….’
몽주는 속으로 자책했다. 나오는 말이 속맘 같지 않았다. 상공업을 천하게 여기는 것이 숨 쉬는 것처럼 당연시되는 세상 속 인물의 편견과 선입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설득하려니 할 말이 너무 궁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은혜를 어찌 갚는단 말이냐?”
당연히 되묻는 신돈의 말에는 코웃음이 묻어 있었다.
“장사치들이…… 어디라도 상행을 하는 것은 그것이 그들에게…… 이문을 주기 때문이며, 상행이 커지면…… 그만큼 이문이 커질 것이니…… 만약 영공께서 장사치들을 살피시어 그들이 편하고, 널리 상행할 수 있게 하신다면, 그들이 반드시 그 은혜를 갚을 것입니다. 이는 바치들 역시…….”
“아까부터 계속 말을 돌리고 있구나. 나는 그들이 어떻게 은혜를 갚느냐고 물었다! 너는 내가 묻는 것에 대답이나 하여라!”
묵직한 호통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그런 몸의 반응은 몽주를 한층 더 막막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잘 넘어가지도 않는 침을 마른 목구멍 너머로 겨우 밀어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자, 장사치와 바치들이 그들의 이문을 모아 바칠 것입니다.”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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