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52)
“자내는 누가 뭐래도 내게 색동가요. 세상이 그대를 무어라 부르고 그대의 외모를 폄하한다 한들, 내 눈에 그대는 서시이고 양귀비요.”
부드럽게 속삭이며 몽주는 그녀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고, 잠시 떼었다가 다시 입을 맞췄다.
첫 번째보다 두 번째가 입술에 가까웠으니, 다시 다가가면 그녀의 입술에 닿을 듯했다.
한데, 앵도가 그제야 갑자기 고개를 돌려 몽주의 입술을 피하였다. 짙어지던 분위기 속에 몽주는 속으로 적잖이 당황하였다.
“모, 모욕…….”
“……?”
갑자기 모욕이 왜 나오나 했는데, 목욕을 하고 온다는 것이었다. 모욕은 목욕의 옛말이었다.
“괜찮소. 자내의 향은 충분히…….”
“안 됩니다!”
어이쿠! 괜찮다며 옷고름에 손을 가져가던 몽주는 앵도가 뿌리치는 기운에 밀려 뒤로 자빠지고 말았다.
그래도 고의로 그런 건 아닌 듯, 앵도도 놀라 몽주를 서둘러 일으켜 주며 괜찮은지 물었다.
“아, 괜찮소. 괜찮아요.”
“그, 그럼…… 다녀오겠…….”
아니, 분위기 깨지게스리. 꼭 그럴 필요 없다니까.
하나, 앵도는 꿋꿋이 방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닫힌 문 안, 홀로 남은 몽주는 들뜬 심정을 가라앉히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움 반, 다행스러움 반.
목표(?)에까지 이르진 못했지만, 어쨌든 벽 하나는 넘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직 2막이 남기도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2막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몽주는 각오를 다졌다.
“첫 천몽이 도움이 되겠군.”
현대의 그는 대마법사급 순수함의 결정체였지만, 다행히도 그에게는 첫 천몽에서 ‘하렘’의 주인으로 산 경험이 있었다. 그 여인들의 정글과 같은 곳에서, 음계(淫計)와 육탄 공세에 버텨 20년 가까이 살아남았으니…….
몽주는 잠시 다가올 진정한 첫날밤을 위해 방안을 정리하다가 문득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앵도가 목욕씩이나 하고 있으니 그 또한 세수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하여, 이부자리 정리를 마치자 안방을 나섰다.
그런데, 대청마루에 나서자마자 살벌한 대치 상황을 목격했다.
종옥이 검을 뽑은 채 마당 맞은편에 있는 탁기를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냐.”
종옥의 험한 손속을 기억하고 있는 몽주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외간 사내를 내쫓고자 함입니다.”
“…….”
그러고 보니, 종옥이 선 뒤편이 부엌과 연결된 목간 쪽이었다.
몽주가 그걸 깨달은 표정을 짓자, 이어 왼팔 상처를 감은 천을 고쳐 묶은 탁기가 말문을 열었다.
“아직 퇴거를 명받지 못하여 있었을 뿐이고, 이 자리에 가만히 있었을 뿐입니다.”
그 또한 이유가 충분했다.
몽주는 먼저 종옥을 향해 말하였다.
그녀를 바라보는 몽주의 시선은 결코 고울 수 없었다.
돌이켜 볼 때, 피를 보게 만든 살초는 그녀의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앵도의 명에 의한 것이라곤 하나, 몽주의 입장에서는 그녀에게 미운털을 박지 않을 수 없었다.
“검을 거둬라.”
“…….”
“이번에도 말을 듣지 않을 셈인가. 너 또한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 터, 이제 우리 부부간에 오해를 풀고 화목을 이루려는 이때 훼방을 놓을 셈인가.”
몽주의 말에 종옥은 머뭇거림을 잠시 보이더니, 한 발 뒤로 물러나며 검을 회수하였다.
그걸 본 몽주는 속으로 실소하되, 표정을 담담히 하곤 탁기를 보았다.
“오늘 수고 많았네. 내일 중에 다시 부를 터이니, 오늘은 이만 물러나게. 상처 치료 잘하고.”
“알겠습니다.”
탁기는 꾸벅 인사를 올리곤 보무도 당당히 걸음을 옮겨 집을 나갔다.
몽주는 다시 종옥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너도 네 거처로 돌아가거라. 오늘은 네가 할 일이 더는 없을 것이다.”
“…….”
종옥은 다시 말을 듣지 않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고, 그에 몽주가 화를 내려 할 때, 목간 안쪽에서 앵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가 쉬어.”
그러자 종옥은 곧바로 알겠노라 대답하며, 주인이 보이지도 않는 목간 쪽을 향해 허리 굽혀 인사를 올리곤 곧바로 사라졌다.
자기에겐 목례도 안 하는 종옥이 괘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주인에게 참으로 충정이다 싶은 생각이 먼저였다.
어쨌거나 서옥 내에 부부만 남았…… 아, 점녀는 어디 간 게지?
몽주는 부엌과 뒷마당 등을 살폈지만, 점녀가 보이지 않았다. 거처로 돌아갔나 싶기도 했지만, 아내의 목욕을 뒷바라지하기 위해서라도 남아 있어야 했다.
하면, 목간 안에서 앵도의 목욕을 돕는 것일까.
몽주는 물 끼얹는 소리가 들리는 목간 쪽으로 살그머니 다가갔다.
머릿속으로는 단지 점녀가 그 안에 있는지가 궁금해서 확인하고자 함이라는 주장이 울리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발걸음이 너무나 조심스러웠다.
이미 어둔 밤. 부엌 옆 목간 안에서는 연신 물 끼얹는 소리와 첨벙이는 소리가 들렸고, 문의 틈새로 불빛이 충분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쯤에서 태연하게 몸을 돌릴 남자는 없으리라.
그것이 설령 혼인한 부부 사이라 할지라도 신혼 중의 신혼이며, 특히나 첫날밤을 보내기 전인 두 사람이니 더더욱.
하여 몽주는 조심스레, 숨조차 죽이고 문틈에 얼굴을 붙여 안을 훔쳐보았다.
오오……! 으아아……!
‘오오’는 더운 말이 담긴 나무통 안에 몸을 담은 앵도를 보면서, 그녀의 예쁘게 흘러내린 목덜미와 어깨의 선, 그리고 나무통 위로 아슬아슬하게 보인 앙가슴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리고 ‘으아아’는 잠시 후 목욕을 마치려는 듯 나무통 안에서 천천히 일어난 그녀를 보면서, 그러니까 그녀의 잘록한 허리가 골반과 함께 만든 호리병처럼 굴곡진 라인과 탄력이 눈에 보일 정도인 허벅지, 그리고 무엇보다 톡 튀어나와 탱탱하게 반원을 그리고 있는 엉…….
툭툭.
“뭐하시는 겁니까.”
“……으아악!”
누군가 등을 두드리며 묻는 말에 문득 고개를 돌렸던 몽주는 귀신을 본 것처럼, 아니, 정말 귀신을 보았기에 기겁하여 비명을 질렀고 도망쳤다.
우당탕!
하나 도망쳐야 한다는 마음과 달리 몽주의 다리는 그저 경기를 일으키듯 ‘발부림’만 한차례 하고 말았고, 그것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그의 몸을 날리게 할 뿐이었다.
그 방향은 하필 목간의 문 쪽이었으니, 결과적으로 몽주가 목간의 문을 부수듯 밀치며 안으로 뛰어든 형국이 되었다.
“……!”
몸을 가누고 보니, 몽주는 놀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앵도와 눈이 마주쳤다.
욕통 안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두 손을 각각 위아래 치부를 애써 감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부, 부인, 내 이러려고 한 것이 아니라…….”
변명을 하는데 문득 뒤쪽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저는 이만 물러가 있겠습니다.”
그제야 그 목소리가 점녀의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얼른 고개를 돌려보니, 등불을 든 점녀가 닫히는 문 사이로 잠시 보였다.
아래에서 비치는 등불로 인해 귀신처럼 보인 점녀의 얼굴에, 몽주가 기겁하여 이 상황이 된 것이었다.
원망스러워 무어라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이미 삐걱 짧은 소음과 함께 목간의 문이 닫힌 뒤였다.
“…….”
“크흠.”
다시 앵도를 보니 어느새 욕통 안에 도로 주저앉아 몸을 가리고 있었고, 몽주는 괜히 어색하여 헛기침만 하였다.
눅눅한 수중기가 가득한 목간 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이 초고속으로 돌기 시작할 때, 의외로 앵도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서방님께서도 씻으셔야죠.”
이어 물소리가 찰방 들렸다. 제법 큰 욕통 한쪽으로 그녀가 몸을 옮기며 몽주가 들어갈 수 있을 법한 공간을 만드는 소리였다.
거절할쏘냐.
몽주는 입가에 미소를 점점 크게 그리며, 입고 있던 옷을 하나씩 풀어 벗어 던졌다.
앵도의 부끄러운 시선이 어딘가에 닿은 순간,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 변하였다.
애정 만세(愛情 萬歲)
‘네가?’
뭉주가 앵도의 변화에 대해 ‘썰’을 풀고 나자, 재상의 표정에서 그런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러니까 초야 이후, 근 두 달간 몽주가 남성으로서의 ‘매력과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앵도를 정복하는 데 성공하였다는 설정 아닌 설정에, 재상이 특유의 ‘회의주의적 시각’으로 불신을 표한 것이었다.
두신 또한 그저 허허 웃으며 ‘우리 주인공이 잘하는 게 하나는 있는 모양이군요.’라는 소감 정도만을 남긴 후,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을 강렬히 전해 왔다.
“이 놀이가 시마과장 놀이였나 보네요.”
“…….”
재상이 시니컬하게 한 마디 더 덧붙였다.
거참, 못 믿으시네.
……는 사실 몽주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비록 첫 천몽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그건 ‘이론’적인 부분에서의 도움에 불과했으니, 앵도와의 승부(?)는 사실 몽린의 몸이 가진 본연의 능력이 이바지한 바가 컸다.
그러니까 거시기가 거(巨)시기했다는 말이고, ‘비비빅’이 하드(hard)했다는 말이다.
그런 ‘비대칭 전략무기’의 존재 덕에 지난 천몽의 하렘 훈련으로 완성된 ‘전쟁 계획’이 실전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으니, ‘오르다 가 버릴 쯤’에 푹 빠진 앵도는(아마도) 생애 처음으로 본의에 의해 아침 연재를 없애 버리고, 대신 몽주의 아침 밥상을 손수 챙기기 시작했다.
심지어 처가를 연신 찾아가 처가 살림을 뒤집어엎듯 하여, 산해진미 재료를 가져와 고단백 고영양의 음식을 가져다 바쳤다.
그중 백미(白眉)는 처조부께서 당신이 죽을병에 앓아누울 때를 대비하여 고이 간직하고 있던 산삼 세 뿌리마저 강탈해 온 것이었는데, 그는 이에 한탄하며 ‘이것이 어찌 작은 것을 잃는다 함인가.’라고 뜻 모를 탄식을 남겼다고 했다.
“사실 지금 보기에는 오히려 부실한 일 처리로 외려 미움을 받는다는 게 더 그럴싸…….”
“……?”
“……하다고는 할 수 없겠죠, 암요.”
또 시니컬하게 말을 덧붙이려던 재상은 고용주의 눈치를 재빨리 보며 말을 바꾸었고, 주제를 전환하였다.
“그럼, 이제 아내로 인한 문제는 해결된 겁니까.”
재상의 이어진 물음에도 몽주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 모습이 자못 거만해 보였는지 재상과 두신이 피식 실소하였다. 남성의 위력으로 아내를 휘어잡았다는 식의 설정이 그들에게는 유치해 보였을 것이다.
사실 어쩌면 앵도의 변화에 있어, 육체관계는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몽주가 그녀를 진심으로 어여쁜 여인으로 보고 있다는 것과, 그녀를 연모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으로 인한 변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건 지난 꿈속에서 그녀와 나눈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이었으니, 앵도는 실로 외로움에 사무쳐 있었다.
부모와 숙부 내외를 한꺼번에 잃은 후 처조부의 품에서 컸지만, 부모의 정을 알기에는 부족함이 많았을 것이다.
거기에 이 시대 고려인들 사이에서는 싫어하거나 꺼려 할 만한 점들만 모은 듯한 외모와 그에 대한 수군거림은, 그녀로 하여금 세상에 마음을 닫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니 몽주가 진심으로 그녀를 예쁘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앵도에게는 충격적인 감동이었고, 그녀가 스무 해 세월 동안 닫아 놓은 빗장을 열기에 모자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한번 풀린 빗장에서 쏟아져 나온, 마음 깊은 곳에 눌려 있던 따뜻한 인간관계에 대한 열의와 애정의 기세는 그녀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었으니, 적어도 몽주를 대함에 있어 앵도의 심정은 세상 모든 것을 대하는 마음과 같았다.
심지어 그녀와의 혼인에 노림수가 없지 않은 몽주로 하여금 다소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뭐, 좋군요. 어느 시대에서나 남성으로서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건 상당한 장점이니, 두루두루 부실한 우리 주인공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나저나 이제 한양부로 돌아가실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미 준비는 거의 다 되었죠. 사실상 서옥의 이삿짐만 옮기면 됩니다. 지참금 중 동산에 해당하는 건 이미 한양부로 다 옮겼으니까요.”
서옥에 삼 개월 동안 머문 것은 전통을 따르기 위함도 있었지만, 이번 혼인에 있어서는 지참금을 석 호장에게로 옮길 준비를 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실제로, 지참금 명목으로 석 호장에게 맡길 최 상가 재산의 대부분이 한양부로 이전이 완료된 상태였다. 도중에 도적 떼나 다름없는 유민들과 조우하는 바람에 약간의 손실을 입기도 했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그 많은 재산을 옮기는 거사에 있어 그 정도의 감가상각은 차라리 행운이다 싶었다.
이제 공식적으로 사돈댁에 남은 재산은 사실상 개경 시전의 상점 몇 개와 그에 얽힌 재산뿐이었다.
“그러면, 검모포의 선소 소유주도 바뀐 겁니까.”
“네, 문권에 소유주가 아내 이름으로 변경되었죠.”
문권(文券)은 모든 종류의 재산과 그 권리에 관한 문서로, 보통 사문서에 많이 사용되는 단어였다. 내용을 기재하고 도장이나 화압(花押) 즉, 손도장을 찍어 발효하였다.
“몽주 씨 이름으로 하는 건 어려웠나 보죠?”
“부부도 각각의 재산권을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번 혼인에 앞서 토지 쪽은 해민의 이름으로 하되, 나머지는 아내 명의를 유지하기로 이미 약조된 바죠. 아무래도 사돈댁 입장에서는 그 많은 재산을 해민에게 통째로 넘기는 건 불안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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