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57)
“하면, 포은 선생은 이번 정벌이 힘들 것이라 보시는 게요?”
무학대사와의 만남 이후, 같은 군막 안으로 정몽주를 청하여 만난 자리에서 국정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이 오간 끝에 이성계의 입에서 나온 물음이었다.
이번 요동 정벌을 두고 도당 내외에서 오가는 말들 중에 정벌의 무의미함과 불가함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자 그렇게 물은 것이었다.
얼핏 항의를 하는 듯한 물음이었지만 그의 표정으로 볼 때, 결코 장수로서 나아가 싸울 기회를 염원하는 것 같지는 않는 듯 정몽주의 전언에 딱히 호불호가 느껴지지 않는 물음이었다.
정몽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문을 열었다.
“이번 정벌의 목표가 기사인테무르의 동녕부라는 점에 국한한다면, 그 흉적을 물리치고 그자의 것을 앗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빼앗는 것이 아니라, 빼앗은 것을 지키는 것이겠지요.”
거기까지만 들었음에도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이며 포은의 말에 동의를 표하였다.
동녕부 정벌은 충분히 가능하다. 오늘도 그러했듯 숱하게 직접 정찰을 나서 살폈다. 기사인테무르는 말만 거창할 뿐, 결코 고려의 적수가 아니었다.
내심 이성계는 도당에서 준비하는 병력의 절반만으로도 그 흉적의 목을 벨 수 있다 여기고 있었다.
하나 포은이 말한 대로, 문제는 지키는 것이었다.
이미 상의 의중이 흉적을 물리치는 것을 넘어, 흉적의 땅을 고려의 것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는 건 잘 알려진 바, 이성계는 그것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런 것인데, 가깝게는 동녕부의 북쪽을 감싸고 있는 나하추(납합출, 納哈出)를 비롯한 북원의 세력이 우려스럽고, 멀게는 나날이 승천 중인 명의 확장이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이번 정벌에서의 승리는 또 다른 유무형의 전란을 여는 시작일 뿐일 겁니다.”
“유무형의 전란?”
“그렇습니다. 전란을 피하기 위해, 혹은 최소화하기 위해 외교전이 있을 것이니 그것이 무형의 전란이요, 그 외교전에서 완벽히 이기지 못한다면 실제 전란을 맞이해야 할 것이니 그것이 유형의 전란입니다.”
“흠, 맞는 말씀이시오. 그리고 아마도 실제로 거센 공격을 받게 되겠지요.”
원이 몰락한 이래 요동은 그야말로 대세적인 질서가 없는 무법 지대였다.
수 개의 무력 집단이 패권을 노리는 곳.
바로 그곳에 고려가 한 발 끼어들 참이었다.
다른 경쟁 집단을 압도할 수 있는 무력을 가지고 끼어들어도 조심해야 할 판인데, 현재 고려가 준비 중인 무력의 수준은 그에 많이 못 미쳤으니, 향후 새로운 경쟁자를 견제하고 제거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었다.
포은은 이성계의 동의를 구하자,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장군께서는 고려의 기둥이 되실 분이십니다. 당금에 이르러 고려가 해결해야 할 급선무가 이곳이 아니라 남부의 왜적을 토벌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장군께서는 왜구를 토벌하여 사직을 안전케 하고 백성들을 평안케 하셔야 하는 데에 그 힘을 쓰셔야 할 것입니다.”
“…….”
이성계는 딱히 반응이 없이 정몽주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만, 마음속에서는 약간의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무학은 그더러 왕이 되리라, 고려가 아닌 다른 나라의 왕이 될 운명이라 하였고, 앞에 있는 포은은 그더러 고려의 기둥이라 하고 있었다.
그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이치. 이성계는 그 사이에서 속내조차도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하여 감히 소인이 바라고자 하는 것은 장군께서 이곳에서 군공을 세우시되, 결코 사수(死守)로 임하시지 마시라는 겁니다.”
“허허, 포은 선생의 충심을 내 잘 알고 있으니 망정이지, 아니라면 크게 당황스러웠을 말씀이오.”
“금상께서는 총명하시나 지금에 이르러 요승에 눈이 가리고, 간신에 귀가 어지러우십니다. 일찍이 이학(理學)에 마음을 여시어 임금으로서의 덕과 예, 그리고 인과 도를 깨달으셨다면 당금의 무리한 출정을 감행하시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소인을 비롯한 유자들의 불충일 것이요, 장차 금상을 현군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저희들의 의무일 것입니다. 하나 이는 하루아침에 이룰 수는 없는 일. 마땅히 충신이고 현신이고자 한다면, 훗날 왕께서 정도를 걷고자 하실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여, 내게 몸을 사리라 하시는 게요.”
“직설하면 그렇습니다.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가리는 것 또한 장수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는지요.”
그에 이성계는 가벼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나 입에서 나온 말은 다소 의미가 달랐다.
“포은 선생의 말씀은 뼈에 새기어 유념토록 하지요. 하나, 나는 정벌군의 일개 장수일 뿐이라는 것 또한 알아주시오. 나아가고 물러갈 때를 가리는 건 총사령관의 본분이고, 그를 수행하는 장수는 설령 같은 생각이 아닐지언정 적전(敵前)하여 분란을 일으켜서는 안 될 것이오. 그건 병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오.”
그에 포은은 속으로 옅은 한숨을 내쉬었으나, 그의 말에 틀림이 없어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려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라도 부디 자중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 * *
영당각 내에 한 줄기 거센 바람이 분 듯했다. 몽주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은 건 들으리라 예기치 못했던 말,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을 들은 탓이었다.
“저더러 군종(軍從)하라는 말씀이시옵니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고 영공을 직시하며 물었다.
“어찌 그리 놀랄꼬. 누가 너더러 나아가 싸우라더냐. 그저 복마군을 따라 양초를 운임하는 데에 한몫하는 것일 뿐이다.”
그게 그 얘기잖냐. 몽주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복마군(卜馬軍)이라 함은 수송부대였고, 양초(糧草)라 함은 군사가 먹을 양식과 말을 먹일 꼴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신돈이 몽주더러 복마군에 들어가 양초를 운임하라는 건 수송대의 군사(軍事)를 하라는 말이었다.
“하오나 소인은 군무에 아는 바가 없는 것은 물론, 심신이 미약하여 군사에 적당하지 않은 데다가, 장사치에 불과한 일개 중인으로서 중임을 수행하기에 자격 또한 부족하옵니다.”
“허어, 겸양을 하는 것이냐, 내 명을 거부하려는 것이냐. 나는 네게 내 당여가 되겠느냐 물었고 너는 그에 응하였으니, 이제 너는 내 명에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이다.”
당여(黨與)는 무슨…… 그저 똘마니 삼아 틈틈이 등골을 뽑아먹을 속셈이면서…….
물론 신돈이 자신을 따르겠느냐고 물어 와 그에 응하였을 때, 그것이 결코 호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익을 취하기 위함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사실 그렇게 되는 것을 노리고 이 자리에 온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신돈의 성품으로 보아 결코 믿음을 쉽게 주지 않을 것이기에, 분명 무언가 시험하려 할 것이라는 것 또한 짐작하고 있었다.
그건 현대에서 재상과 두신이 신돈에 대한 사초를 모아 만든 자료에서 내린 결론이며, 몽주가 고려에서 재차 확인하여 확신한 것이기도 했으니, 오히려 맞지 않았다면 다소 실망했을 것이다.
실제로 신돈은 권력을 쥔 기간에 비해 그 일파라고 할 만한 자들이 의외로 적었는데, 생사의 운명을 같이한 혈족을 제외하면 진정 당여라 할 만한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는 일차적으로 그에게 적이 많았기 때문이었으니, 이에 따라 자연히 수하로 부릴 자들을 들임에 있어서도 결코 쉽게 믿음을 주지 않고, 시험에 먼저 들게 하여 만족할 만한 이들만 믿었던 것이다.
신돈의 심복 중 심복이라고 불리는 기현조차도, 신돈이 채 권세를 쥐기도 전부터 갖은 도움을 준 후에야 핵심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니 비록 자신이 신돈의 앓던 배를 낫게 해 줄 보의 문권을 바치겠노라 한들, 몽주를 당장 진정한 당여로 여겨 줄 리 없으리라는 건 자명한 이치였다.
하나, 그렇다고 군종을 명받을 줄은 몽주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바였다. 그저 몽주나 남양 석가의 재산을 탐내어 그를 바칠 것을 종용하는 정도라 여겼던 것이다.
한데 신돈은 한발 더 나아가, 군량미를 바치는 것에 더하여 북방으로 양초를 가져가는 임무마저 내리니, 몽주는 속으로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앞서 몽주가 언급한, 군종의 부당함을 지적한 이유들은 신돈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군무에 대한 무지? 어차피 복마군을 따라갈 뿐이니 몰라도 된다. 심신의 미약함? 마찬가지로 싸울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신분의 부족함?
‘…….’
몽주는 문득 이참에 하나 더 얻어야겠노라 마음먹었다. 어차피 신돈을 뒷배로 이용코자 한다면 그의 명을 거부하기 어려울 터. 명에 따르는 것을 통해 얻는 것을 늘리는 데 집중하는 게 옳을 것이다.
“영공 저하께서 제 쓸모를 인정해 주신다면 감읍할 따름이옵나이다. 하나 저하께서 고작 중인에 불과한, 이 석 아무개를 쓰시는 것을 세상의 소인배들이 들먹이며 영공 저하마저 우습게 여길까 저어될 뿐입니다.”
“끌끌. 그렇기도 하군. 하기야 나라의 중대한 정벌을 위해 소중한 양초를 가져감에 있어, 내가 추천한 자가 아무런 자리도 없는 자라면 그것만큼 우스운 일이 없겠지. 보자, 무엇이 좋을까.”
신돈은 짐짓 고민하는 양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어 말문을 열었다.
“내 너를 경시감 한양별시 전수직장 서리에 임명할 것이다. 비록 종9품의 말직 중 말직의 서리이나, 네가 한양부에서 장사를 하고 있으니 훗날을 보아도 적합하다 할 것이다.”
전수직장 서리(轉輸直長 胥吏).
실소가 나올 만큼 낮은 직위였다. 하나 현실적으로 많은 것을 바랄 수 없는 입장에서 차라리 하는 일과 연관이 있는 게 나을 듯싶기도 했다.
직장(直長)이라 함은 각종 실무관청의 말단 직위로 종 7품부터 종9품에 해당하고, 전수직장이라면 유통을 담당하는 직책이었으니, 북방으로 양초를 운반하는 것을 따라야 하는 임무에도 적합하긴 했다.
물론 몽주에게 주어진 건 전수직장이 아닌 전수직장 서리였으니, 낮고도 낮은 전수직장의 실무 보조자인 셈이었다.
하긴 중인의 신분이며 향리의 자식이자 시전 상인에 불과한 몽주에게 곧바로 정식 품계의 지위를 쥐어 줄 수는 없으니, 잡직(雜織)이거나 서리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아쉬움이 없진 않으나, 몽주는 그쯤에서 욕심을 삼가기로 하였다. 비록 서로의 필요 때문에 당여의 관계를 맺은 걸 신돈 또한 잘 알고는 있으나,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눈치를 줄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훗날 더 큰 명분을 얻을 때, 한미하나마 관청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이점만 챙겨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다른 누구도 아닌 현 고려 권세의 으뜸인 영공 신돈이 꽂아 준 자리가 아닌가.
몽주는 길게 읍하며 감사를 표하였다.
“맡은바 소임을 완수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그 인사를 받으며, 신돈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위기일발(危機一髮)
지이잉.
전동문이 열리자 낡은 승용차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한적하기 그지없는 고급 주택단지의 도로를 따라 천천히 달린 승용차는 단지 입구의 출입 차단 장치를 빠져나가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설마 죽지는 않겠지?”
“싫증이 난 것도 아닌데, 죽었다고 하고 끝낼 리는 없지.”
재상의 대답에 휠을 잡은 두신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돈을 키우고 그에게 붙는 건 다 동의한 거긴 하지만, 그래도 전장까지 간다는 식으로 설정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러게. 신돈이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을 시험할 거라는 거야 우리가 먼저 얘기한 거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피드백이 올 줄은 몰랐지.”
“진짜 또 다른 팀이 있나?”
두신의 중얼거림을 들은 재상이 피식 웃었다. 저번에 그냥 던진 말인데, 두신은 그 가능성을 높게 여기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진몽주의 반응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멘탈적인 노력일 수도 있었다.
“중요한 건 덕분에 우리가 귀찮아졌다는 거지. 동녕부 정벌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리포트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거야 어차피 모아 둔 자료들도 많잖아. 좀 보강만 하면 되지. 그리고 우리가 받는 돈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몇 배 더 바쁘고 귀찮아도 감수해야…… 어!”
말을 하다 두신은 놀란 음성을 터뜨렸고, 휠을 크게 돌렸다 풀었다. 덕분에 두 사람이 탄 차가 좌우로 휘청거렸고, 그 바람에 하마터면 도로 옆 수로에 빠질 뻔했다.
“아이 씨, 저 차 뭐야?!”
재상도 식겁하다가 차가 멈춘 다음에야, 친구가 그렇게 운전을 한 이유를 깨닫고는 뒤를 돌아보며, 멀어져 가는 승합차를 노려보았다.
검은 승합차가 코너에서 과속으로 튀어나오면서 중앙선을 넘었던 것이다.
“괜찮냐?”
대시 보드 위에 붙어 있다 떨어진 방향제를 주워 올리며 두신이 묻자, 재상은 짜증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놀란 것뿐이야. 근데 이 동네에도 저딴 식으로 차를 모는 놈이 있네.”
“그러게. 다 얌전히들 운전하던데. 아마 외부인인가 보지.”
대꾸하면서 두신은 룸미러로 뒤를 훑었다. 과격한 운전을 한 승합차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 * *
“시간 없으니까, 빨랑빨랑해라.”
“네!”
콧수염 사내의 재촉에 작업복을 입은 이들이 몸놀림을 빠르게 하였다. 검은 승합차 안에서 녹색 박스를 꺼낸 그들은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잔디 바닥에 두고 잠시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을 조금 불만스레 주시하던 콧수염 사내는 고개를 돌려 주택 옥상 위에 있는 그의 똘마니를 바라보았다.
“어때?”
“비어 있습니다. 다들 밥 먹고 있는 중인 모양입니다.”
“창문은?”
“그대로 열려 있습니다.”
콧수염 사내는 그 보고에 내심 안도하였다. 안 그래도 창문이 열려 있다고 해서 부리나케 달려온 것인데, 그새 닫혀 있으면 곤란하기 때문이었다.
“이게 뭐하는 꼴인지…….”
콧수염 사내는 속으로 자조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3주 전쯤, 모시는 회장님이 그를 불러 진몽주를 감청하라고 명령하였다.
까라면 까야 하는 신세긴 하지만, 명령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회장은 몽주라는 청년이 가진 비밀을 알아내야 한다는 이상한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그냥 두면 크게 후회할 거라고 중얼거리는데, 콧수염이 보기에 노인네가 또 어디서 이상한 점괘를 받아 왔거나 개꿈을 꾼 게 분명했다.
사실 그 정도의 명령이야 사람도 외국으로 빼돌려 묻어 버리는 마당이니 못할 게 없었지만,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통에 일이 좀 복잡해졌다.
진몽주의 집과 그 집이 위치한 주택단지 자체가 안전과 보안에 신경을 많이 쓴 탓에, 일반적으로 침입했다가는 나중에라도 들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런 걸 각오하고 좀도둑으로 위장하여 감청 장치를 설치하고 나오면 되는데 절대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하니, 자기들이 무슨 007도 아니고 어쩌라는 건지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단 진몽주의 주택 근처의 빈집을 빌려 관찰하면서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다 준비되었습니다.”
작업복 중 하나가 굽실거리며 콧수염에게 보고하자, 그는 턱짓으로 바로 시작하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작업복들이 프로펠러가 여럿 달린 무언가를 들고 옥상으로 서둘러 올라갔다.
“드론이라는 걸 다 써먹을 줄이야.”
회장님의 명령을 수행하려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TV 화면에서 드론(Drone)으로 촬영하는 걸 보고 혹시나 해서 알아본 것이다.
지금 콧수염 사내의 명령에 따라 드론을 준비하는 자들은 드론 관련 사업을 하다가 자금 압박으로 사채를 쓴 자들인데, 회장님이 그 사채를 처리해 주는 대신 이번 일을 하기로 하였다.
근데 막상 일을 진행하고 보니 드론을 쓰나, 그냥 침입하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고 있었다.
어차피 사람과 맞닥뜨리면 망하는 건 똑같고, 다이렉트로 걸리지 않더라도 드론 역시 침입의 흔적을 남길 가능성은 충분히 있기 때문이었다.
콧수염 사내는 이런 난리법석이 모두 다 미신에 환장한 노인네 때문이라고 속으로 투덜대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위이이-
네 개의 프로펠러 가 힘껏 돌아가고 있는데도 별로 소음은 없었다. 지난번에 업자들이 저소음 기술 어쩌구 하면서 성심성의껏 설명을 해 주긴 했지만 다 잊은 상태였다.
작업복들 중 하나가 콧수염과 시선을 한번 마주치더니 컨트롤러를 조작하였고, 드론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콧수염은 컨트롤러를 조종하며 모니터와 비행 중인 드론을 번갈아 보고 있는 작업복 곁으로 다가갔다.
“실수하면 큰일 나요. 나는 회장님께 혼나서 큰일, 당신들은 우리한테 혼나서 큰일. 어느 쪽이 더 큰일인지는 잘 알 테고…….”
그 장난스런 말에 작업복들이 일제히 긴장하여 마른침을 삼키는 모습을 보였다. 콧수염이 피식 웃으며 컨트롤러를 쥔 작업복의 어깨를 살짝 잡아 주며 말했다.
“실수 안 하면 되니까.”
“반드시…… 잘해 내겠습니다.”
드론은 높아 솟아 진몽주의 집 위에 이르렀고, 서서히 하강하여 목표인 2층의 열린 창문 앞을 기웃거리며 안을 살폈다.
하부에 달린 카메라로 내부가 비어 있는 걸 확인하자, 드론은 조심스럽게 창문으로 들어갔다.
그 창문 안의 방은 콧수염 부하들이 감시한 결과, 진몽주와 다른 두 사내가 일주일에 한두 번씩 모여 회의를 진행하는 곳으로 밝혀져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회장님의 직감대로, 혹은 믿고 있는 미신대로, 뭔 일이 있다면 그 회의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가장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붙이겠습니다.”
“어. 얼른 붙여.”
컨트롤러를 쥔 작업복이 이마에 땀방울을 달며 드론 조종에 힘을 쏟고 있었다. 모니터를 통해 드론이 회의실 안 탁자 아래에 아슬아슬하게 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돼…… 됐습니다!”
개조된 드론 상부의 툭 솟아난 받침대에 접착형 도청 장치를 설치해 두었고, 드론이 탁자 아래에서 위로 떠오르면서 그 장치를 부착시킨 것이었다.
“캬, 세상 좋아졌네. 야, 우리가 무슨 첩보원이라도 된 것 같다.”
콧수염의 말에 근처 부하들이 낄낄거리며 웃어 댔다.
창문 밖으로 드론을 무사히 나오게 하는 데 성공한 작업복들도 긴장이 풀려 실실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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