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6)
신돈의 낮은 웃음소리가 음산하게 들려왔다.
마치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느낌은 이어서 나온 신돈의 말이 증명했다.
“그들을 살펴 주어 그들로부터 이문을 취한다면, 그들은 내게 바친 이문을 보상 받기 위해 그만큼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짤 것이다. 이는 곧 백성들의 원성이 나에게로 향하게 되는 일이다. 그러니 네가 앞서 말한 바와는 맞지 않는구나.”
“그, 그건 나라에서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고 여겨집…….”
“내가 장사치와 바치들이 폭리를 취하지 못하게 다스린다면, 그것은 나로 하여금 그들을 살피라 한 네 말과 또 모순이다. 아니면, 설마 나더러 나라의 일을 방해하여 그들을 도우라는 것이냐?”
“그것이 아니옵고…….”
식은땀이 맺히다 못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몽주가 상인과 공인들을 살피라고 한 건 그들의 활동을 지탱해 줄 법과 제도를 정비하라는 말이었으나, 신돈에게는 그들의 뒷배가 되라는 말처럼 들린 것이다.
어쩌면 신돈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위정자들은 모두 그리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일단 신돈으로부터 전해지는 무형의 압박감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상공인들이 폭리를 취하지 못할 방도부터 이야기해야 했다.
“길게 보십시오.”
“길게?”
“장사치와 바치들이 이문을 충실히 취하면, 더 많은 이들이 장사치와 바치들이 되려고 할 것이며, 이는 곧 그들 간의 경쟁을 불러올 것입니다. 장사치와 바치들의 경쟁은 곧 그들이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들의 값어치를 낮추는 것이니, 자연히 폭리를 취할 여지가 없어질 것입니…….”
“크하하하!”
신돈의 폭소가 짧게 터졌다. 몽주는 몸이 바짝 굳어 버렸다.
신돈의 웃음 때문이 아니었다.
말을 마칠 때쯤에야 고려에서는 장사치와 바치들 모두 나라에서 관장하기에 아무나 될 수 없었으며, 심지어 바치들은 천인으로 여겨져 소(所)라는 그들만의 고을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상공인들의 수를 늘려 경쟁시킨다는 주장을 어불성설이었다.
“근래 들은 이야기 중 가장 웃기는 말이었다. 하나, 동시에 가장 어이없는 말이기도 했다. 장사치와 바치들을 늘려 경쟁을 시키면, 그들이 폭리를 취하지 못한다? 도적들을 늘린다고 해서, 그 도적들이 적게 훔쳐 가기라도 할 듯싶으냐? 네 녀석은 지금 그런 도적들을 내 손으로 키우라고 지껄인 것이다. 아마도 네가 그런 도적이 되고 싶은 모양이겠지.”
“……네?”
귀로 듣긴 했지만,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몽주는 반문하고 말았다.
“누가 시킨 짓이냐?”
“무, 무엇을 말입니까?”
“뭐긴, 네 녀석에게 중랑장에 대한 청탁을 사주한 자 말이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청탁을 사주한 바도 없습니다. 그저 소인이!”
“네놈 혼자 했다는 게냐?”
“그렇거니와 다시 말씀드리지만 청탁 같은…….”
“네 이놈!”
쾅!
신돈은 그가 앉은 보료 위에 놓인 사방침을 주먹으로 세게 내려치며 호통을 쳤다.
“장사를 해 본 적이 있느냐?”
“…….”
“어서 대답하지 못할까!”
“어, 없습니다.”
“하면, 고작 해금이나 타고, 기방에서 놀기를 일삼던 네가 어찌하여 갑자기 중랑장에게 그딴 요설을 늘어놓은 게냐?”
‘신돈이 몽린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요설이 아닙니다! 그저 소인이 평소 하던 생각을 중랑장에게 말한 것일 뿐입니다!”
“허!”
신돈은 코웃음마저 치며 몽주의 말을 믿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여라. 네놈의 애비가 시켰더냐?”
“……?!”
“묻고 있지 않느냐! 네 아비가 그런 요설을 하라 시켰더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건 엄연히 소인이 혼자 생각한 것입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왜 자꾸 신돈이 몽린의 아버지를 걸고넘어지려는지 몽주는 이해할 수 없었다.
“웃기는 소리! 네 아비가 지금은 호장이긴 하나, 그의 아비 때만 하여도 천한 장사치였다! 그것도 독점한 물건으로 큰 이문을 남겨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던 큰 도적과 같던 자가 아니었더냐! 그간 왕실의 눈 밖으로 도망쳐 있더니, 이제 조금 살만해지니 다시 장사를 도모할 요량으로 네 녀석으로 하여금 도당에 연줄을 대려 한 것임을 내 모를 줄 아느냐!”
“……!”
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지 몽주는 알 수 없었다.
몽린의 집안이 상인 가문이었다는 건 몽주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상인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돈의 말은 해도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도적이라니, 큰 도적이라니.
그저 장사를 잘해서 크게 번창하였을 뿐인데, 신돈은 몽린의 조상들을 거의 역적처럼 취급하고 있었다.
위기감이 온몸을 적셨다.
“영공 저하, 저는 다른 뜻은 없습니다. 그저 나라를 위하는 충심으로 고심하다가 떠오른 생각을 중랑장에게 전한 것뿐입니다. 제 생각이 짧을 수는 있으나, 영공께서 하신 말씀은 과하십니다!”
“허어, 네놈이 간이 부은 모양이로구나! 중랑장!”
“네!”
“저놈을 끌고 가 태(笞)를 치고 옥에 가두어 라!”
“알겠습니다! 밖에 누구 있느냐!”
“예!”
언제 밖에 모여 있었는지 우렁찬 장성들의 목소리가 울렸다.
몽주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정신마저 멍해졌다.
‘태를 치고 옥에 가두라니…….’
“여, 영공 저하!”
우르르.
네 명의 병사들, 아마도 금오위 소속일 듯한 자들이 방으로 들어와 몽주를 밖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제 말을 좀 더 들어 주십시오! 상업을 부흥시키면 상품이 유통되어 나라 안에서 구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될 것이니, 이는 백성들의…… 후생을 증진시킬 것이며 그만큼 나라 안에…… 자본이 축적……! 억!”
끌려가는 와중에도 몽주는 힘껏 소리치며 주장을 설명하려 하였다.
머릿속에서 제대로 거르지 못하였기에 후생이니 자본이니, 이 시대에 맞지 않은 단어들도 얼결에 튀어나왔지만, 그만큼 급박했다.
하나, 그 급박한 고함도 어느 순간 배를 얻어맞은 뒤부터는 이어지지 않았다.
몽주는 눈앞이 노래지며 숨이 턱 막혔다.
더 이상 몽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수렴 너머에서 신돈이 몸을 일으켰다.
“운이 좋았군. 이보단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어쩌면 힘들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잠시 혼잣말을 한 신돈은 김일기 중랑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자네의 공이 줄지는 않지. 수고했네. 덕분에 왕실의 옛 공전을 되찾을 기회를 잡았네. 조만간 보상이 있을 것이네.”
“황공하옵니다.”
중랑장은 고개를 꾸벅 숙였고, 신돈은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자네는 자네의 공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야 신돈의 명에 따라 추대현 석 호장을 틈틈이 감시하던 중에 석 호장의 아들이 접근해 오자, 그를 부추겨 요망한 말을 늘어놓게 한 것이 바로 그의 공이었다.
하나, 중랑장은 입을 무겁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공을 내세워서 좋을 것도 없었고, 내세울 만큼 대단한 공도 아니라고 여긴 탓이다.
신돈이 수렴을 걷어 내고 발걸음을 옮기더니, 방 한쪽에 놓인 화분의 난초 잎을 만지작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의종 임금 이십사 년, 무부들이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천대 받던 무부들의 쌓인 한이 터진 것이지.”
뜬금없이 무인정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중랑장의 표정이 무거워졌다.
무신들이 휘두르던 권세가 끝난 지도 어느덧 백 년. 그러나 그 기억은 여전히 남아 지금의 무신들에게 반면교사로 강요되고 있었다.
“심한 천시를 받았기에 그들이 난을 일으킨 것은 어느 한편으론 이해가 될 부분이 있었다. 하나, 이 나라에는 큰 문제일 수밖에 없었지. 그들은 나라를 이끌어 본 경험이 없었고, 가진 권력으로 그저 당장 자기들 재산을 챙기고, 자리를 차지하느라 바쁠 따름이었으니, 국정이 문란해지고, 나라의 곳간이 텅 비는 건 금방이었다. 나중에야 문제가 심각한 걸 안 무부들은 곳간이라도 다시 채우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지. 그들이 챙긴 재산만 십시일반했으면 해결될 것을, 자신들의 재산은 잃기는 싫었던 게지.”
난초 잎을 만지작거리던 신돈의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결국 선택한 것이 공전을 팔아 나라에 쓰는 것이었다. 공전은 왕실의 땅이요, 왕실은 나라의 기둥이니, 결국 아랫돌을 빼어 윗돌로 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나 그 당시 왕실은 아무런 힘도 없었으니, 무부들은 기어이 공전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팔린 공전들 중 많은 것들이 장사치들에게 넘어갔다. 대대로 왕실의 것이었던 땅을 얻었다가 후환이 생기는 게 두려웠던 세족과 호족들이 거부하자, 무부들이 장사치들에게 강요한 탓이었다. 한데, 그중 벽란도에서 남송과 큰 장사를 하던 구작이라는 자는 다른 이들과 달리, 스스로 나서 공전을 마구 사들였다. 심지어 웃돈까지 줘 가며 비싸게 공전을 매입했지…….”
말투는 평온했지만, 난초 잎을 향한 신돈의 시선에는 누군가를 향한 은은한 분기가 묻어 있었다.
김일기가 그것을 느끼고 고개를 조아리는 사이, 신돈의 말이 이어졌다.
“그 덕에 무부들은 나라의 곳간을 얼추 채우고도 남은 돈을 다시 챙길 수 있었고, 무부들은 구작을 불러 칭찬하며 그의 공에 대한 상을 청하게 하였다. 구작은 요사스럽게도 상을 청하기 전에 먼저 그가 사들인 공전 아니, 이제는 그의 민전이 된 땅의 조세를 사전에 준하여 바치겠노라 말하였다. 소출의 절반을 내는 사전과 십분지 일을 내는 민전, 그 차이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나라에 재산을 계속 바치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 이는 분명 무언가 노리는 것이 있다는 의미일 게 뻔했음에도 무부들은 단순히 이득이 늘어난 것에 크게 기뻐하며 더욱 상을 청하라 재촉하였다.”
뚝.
신돈이 쓰다듬고 있던 난초 잎이 부러졌다.
“구작의 입에서 나온 청은 옥새가 찍힌 문서로 그가 가진 토지의 소유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자신과 후손이 팔기 전에는 누구도 팔거나 달라고 요구하지 못하게 왕명으로 증명해 달라는 청이었지. 무부들은 그걸 하찮게 여기며 단숨에 승낙하였다. 그 사소한 일이 후에 어찌 될지 무부들은 알 턱이 없었지.”
신돈이 긴말에 숨이 차는지 잠시 말을 멈춰 숨을 고르자, 중랑장이 얼른 물잔을 바쳤다.
그 물을 한 모금 마신 신돈이 다시 말을 이었다.
“원에 굴복한 이래, 권세를 휘두르던 무부들은 축출되었고, 그들이 저지른 폐해도 하나씩 회복시킬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왕실의 토지를 되찾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나마 원 황실의 부마로서 권위가 선 임금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공전을 회복시킬 수 있었다. 단 한 사람의 것만 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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