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62)
“기어이 나는 쓰이다 버려질 운명인가.”
자택의 영당각 안을 서성이는 신돈의 머릿속은 몹시도 복잡했다.
정국의 흐름이 미묘하게 그를 낭떠러지로 밀어내고 있었으니, 그것은 금상이 마치 고려 내의 모든 악업(惡業)을 신돈에게 뒤집어씌우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왕은 신돈에게 다다음 복마군을 위한 양곡을 준비하라 명하였고, 동시에 영공 신돈의 이름으로 전국에 파발을 돌려 세를 가중(加重)하였으니, 그 정도가 몹시도 가혹하여, 왜구로 인한 피해 탓에 세를 면한 고을마저도 다시 징세키로 할 정도였다.
확실히 다음번 복마군의 편성까지는 경시감을 위시로 하여 준비가 가능하나, 그 이후에는 물산이 부족하여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준비가 가능한지조차 의문이긴 했다.
하나, 다음번 복마군의 출병까지는 이제 보름이 남았고, 그다음 복마군은 요동에서 전해 올 소식을 통해 상황에 따라 조율이 가능함에도, 벌써부터 백성들을 쥐어짜려 하는 것은 분명 과해도 너무 과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런 명이 암암리에 또 다른 목적을 띄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으니, 영공의 이름으로 수탈하여 신돈에 대한 민심을 부정적으로 돌리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금상의 신돈에 대한 명명백백한 견제 의도임에 틀림없었고, 아마도 악의가 섞인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하였다.
적어도 신돈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있었다.
성인으로 추앙받기에 이른, 백성들의 신돈에 대한 지지는 그에게 크나큰 정치적 자산이었다.
비록 작은 참언(讒言)에도 휘둘릴 어리석은 백성들이고, 그들 개개인의 힘은 몹시도 미약하여 수천을 모은다 하더라도, 권세가 하나를 당할 수 없음이지만, 수만, 수십만, 혹은 그 이상에 이른 백성들의 목소리는 왕조차도 무시할 수 없는 법이라는 건 역사가 증명하였기에 금상은 그런 무시하지 못할 힘을 가진 신돈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더불어 신돈의 위기감을 한층 더 고양시키는 건, 모니노에 대한 금상의 태도였다.
금상은 근래 들어 모니노의 생모(生母)에 대해 물으며, 그녀의 신분을 고귀하게 위조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죽이는 것이 어떤지 넌지시 물어 왔다.
생모를 귀족으로 만들거나 죽여라.
그것은 분명 모니노를 후계로 책봉하려는 의도를 엿보인 것이 틀림없었으니, 신돈은 자칫 모니노의 생모에게 닥칠 운명과 자신의 운명이 같은 길을 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생모의 신분을 위조하거나, 그녀를 죽이는 건 모니노의 앞길을 막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그것이 신돈에게도 마찬가지의 이유로 성립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니노가 신돈의 집에서 태어나 지금껏 자라고 있기 때문이었다.
분명 모니노의 태생에 대해 신돈과 관련된 참람한 소문이 있을 것이며, 그것이 후계자로서의 앞날에 크게 약점이 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
그렇다면 금상이 취할 방법은 자신을 제거하는 것뿐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바닥에 찧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시나이까. 제게 약조한 것은 진정 다 잊으셨나이까.”
열린 창가로 다가가 하얀 김과 함께 큰 한숨을 쉰 신돈의 고민은 추위를 잊을 정도로 깊어만 갔다.
그리고 그 고민 속에서 여전히 구체(具體)는 없으나 실체(實體)는 분명한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 * *
이인임의 부상은 제법 심각했다.
불타는 목재더미에 깔렸던 다리에 입은 화상은 환부(患部)가 깊고 넓었는데, 특히 왼다리는 관절 조직까지 뭉그러져 쾌차하더라도 앞으로 다리를 절지 않을 수 없음이 분명했다.
물론, 그마저도 무사히 건강을 회복했을 때야 아쉬운 부분이고, 지금의 이인임은 합병증으로 누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환부에 가득한 물집이 물러터지면서 체액을 크게 손실하였고, 그로 인해 떨어진 기력 탓인지 국부적인 발작도 있었다.
그렇게 고열과 다한 속에서 사경을 헤매기를 사흘 만에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눈을 뜨고 물을 찾은 이후, 아무런 반응도, 말도 없이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고 있는 그를 보며 다들 정신이 나갔다고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다시 하루가 지나서야 무겁게 말문을 연 이인임의 첫명은 임견미를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몇 날 며칠 동안 임견미는 가시방석 위에 앉은 기분이었다. 살인멸구하고 영장을 회수하여 증좌(證左)를 감추기는 하였으나, 떠도는 소문만으로도 고려군의 지휘부가 그에게 죄를 추궁하는 군병들을 금방이라도 보낼 것 같았던 것이다.
그나마 얼굴에 화상을 입는 것을 무릅쓰고 수문하시중을 구한 공이 있었기에 겨우 험한 상황을 모면하고 있기는 했지만, 시중의 상황이 중태하기에 그마저도 더불어 아슬아슬하던 중이었다.
그렇기에 시중이 정신을 차리고 그를 찾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속내로 크게 기뻐했는데, 다른 이들의 청원에는 아무 대답도 없다가 문득 그를 먼저 불렀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기도 하였다.
아무래도 단지 그를 불더미 속에서 꺼내 준 것에 대해서 치사하려고 자신을 부른 게 아닌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하나, 가슴이 철렁이든 말든, 일단 부르니 가야 했다. 대신, 품 안에 영장을 지니고 갔다.
비록 이인임은 자신이 제안한 군령에 동의했을 뿐이고, 작성 자체도 그와 상관없이 자신이 알아서 한 것이기는 하나, 엄연히 그 영장에는 수문하시중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잘못된 영장으로 인한 추궁에서 홀로 죽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시중 본인이 살기 위해서는 자신도 살려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시중을 상대로 협잡까지 각오한 임견미였지만, 정작 이인인은 엉뚱한 이야기부터 꺼내었다.
“춘부장께서는 강녕하신가.”
“……정정하십니다.”
말을 뱉기 어려운 것이 분명한 와중에도 힘겹게 던진 이인임의 물음은 임견미의 부친에 대한 것이었다.
“그대의 부친께서 지금은 귀한 신분이라 하나, 실은 평택 임가의 방계로서 직계에 대한 열등감이 크셨지. 하나 그래도 가문의 재력이 있고, 그대와 같이 큰 공을 세운 아들이 있어, 지금에 이르러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으로서의 명예와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서의 최고 품계를 얻었으니, 말년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직계보다 낫다할 것일세. 이대로라면 후회 없는 삶을 사셨다 할 만하겠지.”
“…….”
넋두리 같은 시중의 말에 임견미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에 틀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의도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본디 평택 임가(平澤 林家)는 당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였다가 신라에 정착한 임팔급(林八及)을 시조로 하였는데, 그 후 오래도록 평택에서의 세도는 있되, 중앙 관직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정치적으로 한미한 가문에 불과했다.
그러다 충선왕 시절 세자전객령(世子典客令)으로 당상관을 지낸 임세춘 대에 이르러 다시 그 가세를 회복하였는데, 같은 평택 임가이되 따로 독립한 임견미의 부친 임언수는 그를 질시하였다.
하여, 임언수(林彦修)는 그의 세 아들로 하여금 관직에 나아가도록 가문의 재력을 동원하였는데, 그중 임견미가 가장 먼저 현달하였다.
임금의 우다치(亏多赤 : 우달치, 숙위군)에 들어가 뇌물을 써 중랑장에 이른 그는 지난 홍건적의 난 때, 금상을 호종(扈從)한 공으로 1등 공신에 임하였고, 벼슬 또한 정3품의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이르렀으며, 부친 임언수가 평성부원군의 명예를 얻었으니, 임세춘 이후 후계들의 관직이 미미한 직계를 오히려 능가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 자네를 중랑장에 임하도록 허락한 사람이 누구인 줄 아는가?”
우습게도 임견미는 그에게 중랑장을 내린 자가 누군지 몰랐다.
당연히 상께서 모든 인사권을 가지고 계시나, 정5품의 무관직을 상께서 전적으로 관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니, 그를 그 자리에 추천한 자가 있을 것이건만 임견미는 그게 누군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뇌물을 쓴 건 밀직사(密直司)의 당후관(堂後官)이었지만, 정7품의 당후관이 정5품의 중랑장을 임하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니, 그 윗선에 청원했을 게 분명했으나, 당후관은 임견미에게 그에 대해 알려 주지 않았다.
아마도 임견미가 그를 제쳐 두고 더 높은 이들과 어울릴까 저어했던 모양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임견미로서는 참으로 이가 갈리는 작자였으니, 그가 문관을 혐오하게 된 여러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후에 홍건적의 침입으로 상을 호종하는 대임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지금도 정5품의 중랑장으로서 정7품의 밀직사 당후관에게 굽실거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어쨌든 이인임의 그 물음에 임견미는 부복하고 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시중을 바라보았다. 그가 묻는 바의 숨겨진 의미를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시중 영감이셨습니까.”
대답 대신 들려온 것은 시중의 끌끌거리는 웃음이 있었다. 물론 그 웃음은 이내 쿨럭이는 기침으로 변하였다.
그러면서도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거렸으니, 임견미는 자신을 벼슬다운 벼슬로 끌어 준 이가 수시중(守侍中)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당시 이인임이 밀직사의 좌부승선(左副承宣)이었으니, 우다치에도 영향을 주기에 충분하긴 했다.
한데, 기침 끝에 재차 이어진 질문은 한결 더 의미심장했다.
“자네의 다른 형제들이 아니라, 왜 하필 자네를 택했는지 짐작하겠는가.”
사실 애매모호한 질문이었다. 임견미의 형제들인 성미(成味)와 제미(齊味) 또한 부친의 조력으로 벼슬길에 올라 있었다.
하나, 다음 순간에 임견미는 자신이 다른 두 형제보다 지위가 높음을 깨달았고, 그것이 이인임의 배려 덕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확실히 이상한 부분이긴 했다.
비록 현재 임견미의 권세는 난중(亂中)에 금상을 호종한 덕이긴 했으나, 그 전의 직위도 다른 두 형제보다 높았으니, 성미와 제미가 그와 달리 현학하여 문관으로 현달(顯達) 중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인임의 선택은 의외인 면이 있었던 것이다.
“소위 유학을 배운 자들이란 정치 앞에서 헛된 잣대를 들이밀기 일쑤지. 제들 딴에는 불가와 달리 현세에 집중한다고 소리치나, 어차피 정치 앞에서 제 갈 길이 어지러우면, 현세를 보는 대신 죽은 자들의 말이 적힌 경전을 뒤적거리니, 귀신을 좆는다며 그들이 소리 높여 비난하는 불자와 다를 바가 무엇일까. 차라리 경전을 모르고 공맹의 도리를 듣지 않는 자들이 오히려 세상을 더 정확히 볼 것이 아닌가.”
긴 말이었지만, 임견미는 그 말속에 박힌 진의를 알 수 있었다. 직설하여, 임견미가 무학무식(無學無識)하기에 선택했다는 의미였다.
얼핏 기분이 상할 일이었으나, 임견미는 그보다는 이인임이 그 이유로 자신을 선택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집중했다.
꽤 오랫동안 내색하지 않았음에도 이렇듯 진중에서 상후(傷候)가 좋지 못한 가운데 불현듯 그것을 알린 그 이유.
임견미는 머리를 바닥에 닿을 정도로 조아리며 고하였다.
“소인을 이끌어 주십시오!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육감이 전해 주는 말에 따라 수시중에게 복종을 천명하였다.
“끌끌, 내 선택이 과연 현명했던 모양이군. 그대가 빈학하다 한들 세상을 아는 건 오히려 더 나을 것이야. 이보게, 부원수.”
“네, 시중 영감.”
“정녕 내 당여가 되겠는가.”
“이미 따르겠노라 고하였으니, 지금 버리신다 하더라도 두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임견미는 시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괜히 뜸을 들여 머뭇거리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됨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좋군. 아주 좋아…….”
기뻐하는 듯하나, 문득 잦아드는 음성에 보니, 이인임이 눈을 감은 채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 환부의 고통에 평안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에 임견미는 의원을 부르려 하였지만 곧 들려온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그 일은 걱정 말게.”
그 일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하다, 임견미는 문득 허리를 굽히며 길게 읍하였다.
* * *
“끄응…….”
들이킨 약이 몹시도 썼다. 환부에 바른 고약이 진액과 섞이니 냄새 또한 고약했다. 무엇보다 불에 탄 고통이 너무나 커 몸이 절로 떨렸다.
침음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이인임은 금상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의 상을 군신(君臣)의 관계로서 연모하였다. 그것은 지난날 원의 볼모로 지내다 온 그를 처음 뵈었을 때부터 그러했다.
술김이었으나, 왕께서 잃어버린 고려의 품위를 되찾겠노라 흉심으로 토로함에, 이인임은 금상이 진실로 나의 왕이시라 다짐했으니, 조부이신 성산군(星山君) 이조년(李兆年)을 선망했던 그는, 그가 가진 왕좌지재(王佐之才)를 펼칠 수 있는 진정한 임금을 만났음을 실로 기뻐했던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현 임금은 분명 현왕의 자질을 두루 갖추었으니, 조부께서 그러했듯 이인임이 직언을 함에도 옳은 것을 따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진심으로 즐거워하며, 그는 금상을 위해 문무(文武)에 걸쳐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였다.
홍건적들이 처음 쳐들어왔을 때 서경에서 그를 막아 내었고, 다시 크게 쳐들어온 홍건적으로부터 개경을 탈환해 내는 데 앞장섰다.
또, 원의 기씨 황후가 사주하여 역적 덕흥군이 쳐들어왔을 때 다시 서경에 나아가 방비를 이끌어 고려의 사직(社稷)을 지키기도 했다.
문신으로 입신하여 무신으로서도 공을 떨치니, 자타가 공인하여 그는 진정한 금상의 공신(功臣)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오만하지 아니하고, 금상의 복인(腹人)을 자처했으며, 설령 금상이 영공 신돈을 총애하여 그로 하여금 영공을 따르게 함에도 불만이 없었으니, 그는 충신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나, 거기까지였다.
금상은 더 이상 현군이 아니었다. 왕후를 잃은 후, 그는 왕으로서의 모습 대신, 저열한 협잡꾼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정치에 뜻을 잃은 듯 정면에서 물러났으면서 제 욕심을 부리는 건 놓지 않으니, 이는 큰일을 도모함에 큰 책임을 져야 하는 당연한 이치를 회피하는 소인배의 모습이었다.
이인임은 자신이 이제 지쳤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화마(火魔)에 덮치어 사경을 헤매고 나니, 자신이 맘속에 눌러 둔 불만을 직시할 수 있었고, 자연히 충신이며, 명상(名相)을 고대하였던 자신의 꿈이 헛된 것이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왕께서는 권신(權臣)을 만드시는 특출한 재주가 있으시오. 끌끌끌.”
* * *
다들 부처께서 화룡을 보내시어 재앙을 일으키셨다 하였다. 그건 이성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는 그 재앙이 석몽린을 통해 안배된 것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이 다를 뿐.
하나, 몽주가 후에 이성계를 찾아, 그에 관해 침묵해 줄 것을 청원하였기에 그가 정방의 폭발에 대해 아는 것을 지휘부에 고하지 않았으니, 덕분에 그 일은 진정 부처님의 도우심으로 남게 되었다.
북원군은 모조리 물러났다.
사실 외성의 안팎에서 죽은 북원군은 3만에 미치지 못할 정도에 불과(?)했고, 기적적으로 죽진 않았지만, 얼이 빠져 고스란히 포로가 된 이들도 1천 정도에 불과했으니, 10만에서 3만이 빠진 북원군은 여전히 요성을 도모할 만했다.
고려군 또한 요격을 나갔다 당한 군병들까지 합하여 1만 이상을 잃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했다.
하나, 정방의 폭발에 기겁한 그들은 고려군이 요술을 부린다고 두려워하여 사기가 급감하고 탈주병이 속출하였으니, 나하추든 에센 부카든 더 이상의 공성을 진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또 다른 행운으로 이어졌는데, 요동과 주변의 군벌들이 일제히 요동을 향한 군사(軍事)를 멈추고 상황을 예의주시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 또한 요성에서 일어난 기괴한 폭발에 대해 들었고, 그것이 요술에 의한 것이든, 무엇에 의한 것이든, 나하추와 에센 부카가 크게 상한 것은 분명하였기에 자연히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또, 요동의 군벌들이 북원의 대칸을 따른다고는 하나, 독립적인 세력으로서의 정체성과 야망도 있기에, 나하추와 에센 부카의 약화를 틈타 자기 세력의 확장을 꾀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덕분에 요성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위기에서 한순간에 평온을 되찾았고, 외성 안과 성벽을 정돈할 수 있었으니,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고려의 요동 경영은 안정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고려 도당에서 보낸 복마군(卜馬軍)의 첨병(尖兵)이 요성에 당도하여, 복마군 본대가 수일 안에 도착할 것임을 알려 온 날.
이성계는 몽주를 다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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