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rmer Tyrant's Resignation RAW novel - Chapter (8)
이상한 제목의 책이었다. 물론, 천몽처럼 이상함의 극치가 담겨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려 말기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도서관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몽주의 눈에 띤 책이었다.
고려 말기가 배경인 책들 대부분이 역사학술 분야의 책들이라, 그가 필요한 ‘실전적’인 정보는 오히려 부족하였고, 차라리 역사 소설 쪽이 참고가 될까 싶어 소설 쪽 서가로 갔는데, 소설 작법과 관련된 서적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었다.
물론, 정작 그 책은 소설 작법과는 별 관련이 없었다. 그 책은 그야말로 ‘만약 당신이 판타지 소설 속 세상에 떨어진다면?!’이라는 전제를 두고 소설과 실제의 차이를 주 내용으로 담은 책이었다.
아마도 도서관에서 책을 분류할 때, 판타지 소설 집필용 참고서적쯤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약 3년 전쯤에 출간된 그 ‘이계생존법’은 모 출판사의 ‘판타지 도서 목록’이라는 연속 출간물 중 하나였다.
두께는 얇았다.
대략 120쪽에 불과했다.
책은 들어가는 글과 나가는 글을 빼면 총 3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1장은 ‘판타지 세계로 간다면’, 2장은 ‘무협 세계로 간다면’이었고, 마지막 3장은 ‘과거로 간다면’이었다.
몽주의 눈을 사로잡은 건 당연히 3장이었다.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한 듯한 제목이었으니까. 또 내용도 조선 전기 이전의 과거 속으로 현대인이 가게 될 경우를 상정하고 있었다.
하나, 막상 내용을 보자 다소 실망스러웠다.
그 ‘과거’ 편은 기본적으로 현대인 자체가 과거 속에 등장하는 것을 전제로 하여 쓰인 것이었기 때문에 몽린의 몸으로 과거에서 살게 된 몽주의 경우와 그다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 속에 살아가게 된 현대인들이 처할 상황과 그에 대한 대응책에 대한 내용들 대부분이 몽주로서는 굳이 감안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제외하고 나자, 안 그래도 ‘판타지’ 편이나 ‘무협’ 편에 비해 내용이 적었던 ‘과거’ 편의 남은 내용은 별로 없었다.
하나, 그럼에도 몽주는 ‘이계생존법’을 제법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있었고, 3장 ‘과거’ 편을 쓴 이를 만나 보고 싶어졌다.
그건 ‘과거’ 편의 후반부에서 본 짧은 마무리 글 때문이었다.
그 글은 타임 슬립 내지, 시간 회귀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 속에 나오는 현대인의 모습은, 독자나 시청자의 흥미를 부르기 위한 재미의 관점으로 지어진 것으로, 그 나름의 이유와 설정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면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런 영화나 소설이 아니라, 가능할 리가 없지만 정말 기이한 일을 겪게 되어, 과거 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간 현대인이 있다면, 그가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유일한 목표는 ‘생존’이다.
즉, 살아남는 데에만 전력을 다하라는 말이고, 그조차도 쉽지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토착 질병에 의해 죽을 가능성이나, 과거 속 당대인들과의 조우할 시 처하게 될 위기 상황 등, 초반의 위험을 운 좋게 극복한다고 해도 현대인들이 과거 사회 속에서 죽을 이유는 너무 많다.
특히 현대인으로서 앞선 지식과 지성을 자랑스레 내세우거나, 그를 이용하여 권력을 가지려 하고 큰 부를 쌓으려 한다면, 죽을 가능성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현대인이 가진 지식과 지성은 현대라는 시대와 그에 걸맞은 문명 사회 속에서나 유효한 법이다.
과거의 사회에는 그 시대만의 지식 체계와 합리성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매우 공고하게 쌓여 있다. 그런데 그런 공고한 체제 속에서 수백 년의 시간을 건너뛰고 현대의 지식과 합리를 드러내는 건, 필히 당대인들의 반발을 사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반발은 역적이나 사문난적, 혹은 이단이나 귀신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이뤄질 것이고, 그 결과는 당연히 죽음이다.
모든 시대가 그러하듯, 당대의 지식과 합리는 권력층의 지배 논리에 부합하고, 그 논리의 바탕을 이루기 때문이다.
요컨대, 아무리 똑똑한 현대인일지라도 과거 속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건 없다.
설령 당대의 권력자를 배경으로 둔다고 해도, 이용당하다가 어느 순간 당대의 기준을 넘어서는 지식이나 주장을 보인다면 철저하게 버려질 것이고, 존재 자체가 지워질 것이다.
영화나 소설에서처럼, 과거라고 해서 현대인이 천재처럼 활약하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내가 한 짓을 보고 하는 말 같네.”
몽주는 쓴 입맛을 다시며, ‘이계생존법’의 속표지를 살펴 저자의 이름을 찾았다.
‘OX 출판사 편집부’
구체적인 인명 대신 출판사 편집부라고만 표기되어 있었다.
그래도 실제론 특정 저자가 있긴 할 것이다.
찾을 수만 있다면, 3장 ‘과거’편을 쓴 이와 만나서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 * *
‘이계생존법’의 3장 ‘과거’ 편을 쓴 이를 찾는 건, 약간의 퉁명스러움만 이겨 내자, 쉽게 해결되었다.
그 퉁명스러움이란, OX 출판사에서 전화해서 ‘이계생존법’ 중 3장을 쓴 이의 이름을 물어보았을 때, 별로 팔리지도 않은 오래된 책의 저자를 따로 찾기 귀찮아하는 출판사 직원의 퉁명스러움을 의미했다.
어쨌거나 열심히 사정해서 알아낸 ‘이계생존법’ 중 3장 ‘과거’ 편의 저자 이름은 현재상이었고, 그 책을 낼 무렵에 사용했던 핸드폰 번호도 얻어 낼 수 있었다.
다행히 번호가 바뀌지 않았는지 현재상과 곧바로 연락을 취할 수 있었고, ‘이계생존법’을 언급하며 잠시 만날 수 있는지 묻자, 그다지 내켜 하지 않으면서도 시간과 장소를 말하며 응해 주었다.
저녁 8시.
여전히 러시아워가 풀리지 않은 혼란한 도로 상황이 보이는 카페의 창가에 앉아 있던 몽주는, 문이 열리는 종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앞서 몇 번의 손님이 들어오긴 했지만, 그가 만나기로 한 사람으로 짐작되는 이는 없었다.
근데, 이번에는 맞는 모양이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회사원이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다 몽주와 시선이 마주치자 곧바로 다가왔다.
“진몽주 씨?”
“네, 맞습니다. 현재상 님, 맞으시죠?”
“예에, 근데 님이라는 말은 붙이지 마세요. 좀 닭살스럽네요.”
“아, 예…….”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는 걸 따진 현재상이라는 남자는 지친 기색으로 몽주의 맞은편에 앉더니, 곧바로 카페 메뉴를 살피기 시작했다.
“커피랑 쪽 케이크도 좀 주문해도 될까요?”
사달라는 말이었다. 궁한 건 몽주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대가로, 몽주는 잠시 후 캐러멜 마키아토 큰 잔과 치즈 케이크 세 조각을 앞에 두고 신나게 먹고 마시는 재상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적어도 세 조각의 케이크는 같이 먹자고 할 줄 알았건만, 예의상 권하지도 않았다.
물론, 그렇게 주문한 계산서는 제일 싼 아메리카노를 홀짝거리는 몽주 앞에 놓여 있었다. 며칠치 식비와 용돈이 그렇게 날아가고 있었다.
“…….”
한참이나 말없이 쩝쩝, 후르륵거리며 커피와 케이크를 탐하던 재상이, 자신을 바라보는 몽주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는 척이라도 한 건 세 조각의 케이크가 1/2 조각으로 변했을 때쯤이었다.
“아, 이런, 제가 너무 먹기만 했군요. 죄송합니다. 상사맨이라는 게 원래 끼니도 제대로 때우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거든요. 뭐, 다른 회사의 말단 사원들도 마찬가지겠죠. 몽주 씨도 나중에 취직하시면 제 심정을 이해하실 겁니다. 하하하.”
잠시 웃음을 연기한 그를 향해, 몽주는 그제야 용건을 꺼낼 수 있었다.
“오늘 뵙자고 한 건 현재상 씨가 집필하신 이계생존법의 과거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네, 아까 그러셨죠. 근데 왜죠?”
재상은 스푼을 반 토막 남은 케이크에 콕 꼽아 놓으며 이어 물었다.
“혹시 소설가이신가요? 그 책을 참고로 해서 대체 역사 소설 같은 걸 쓰시려는 건가요? 그런 거라면 하지 마세요. 대체 역사 소설의 목적을 생각하면 그건 참고할 필요가 없어요. 대체 역사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과거 속에 현대인이 놓이게 될 때, 경험하게 될 진짜 모습과 상황 같은 걸 기대하진 않아요. 그 책은 그냥 과거 속에 현대인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상하고 궁금해할 극소수를 위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해요. 실제로 별로 팔리지도 않았고요. 후후.”
“소설가 아닙니다.”
“아, 진작 말씀하시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한참 떠들었잖아요.”
“…….”
혼자 묻고, 혼자 단정 짓고, 혼자 떠든 사람이 누군데 타박인가 싶었지만, 몽주는 참을성 있게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제가 바로 현재상 씨가 말씀하신 그 책의 도움을 받아야 할 상상을 하는 극소수의 인물들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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