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03
102화
피떡이 된 하이리언 백작을 장군 개미의 손에 맡긴 채 그들은 내성으로 들어왔다.
메시와 메디에트, 신디르 그리고 에레나는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는데, 그 와중에 자작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에이러스의 시신을 계속 내려다보았다.
사망 후 몇 시간이 지나 피부는 하얗게 질려 있었고 상처 하나 없어서 인형 같았다. 입가에 굳은 피가 죽은 시신임을 알려 줬다.
침묵을 이어 가던 자작이 메시에게 물었다.
“에이러스는 어떻게 된 것이오?”
“몬스터의 독에 쏘인 걸 발견했습니다. 찾았을 땐 이미…….”
“어리석은 녀석. 결국 이렇게 될 것을…….”
메시는 에이러스의 사망과는 무관한 것처럼 얘기했다. 자작도 자세한 내용은 더 묻지 않았다. 다만 목소리가 슬프게 가라앉아 있었다.
자작이 살아남은 두 기사를 바라봤다.
“메디에트, 신디르. 이번 일과 자네들이 무관하여 나는 기쁘네.”
“아닙니다, 자작님. 제가 대공자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해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그 죄가 가볍지 않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메디에트와 신디르는 바닥에 머리를 처박고 용서를 구했다.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 죄를 물을 일이 아니었다.
온전히 큰 아들의 잘못이자 부모인 자신의 죄였다.
“메시 경과 그대들에게 사죄하고 싶네. 내가 자식을 잘못 가르쳤고 신경 쓰지 못했어.”
“자작님은 훌륭한 아버지입니다. 세상 모든 자식의 죄가 부모의 죄라면 죄인 아닌 자가 없을 겁니다.”
“맞아요, 아버지. 오라버니의 일은… 아버지의 책임이 아니에요.”
메시와 에레나의 위로에도 자작은 기쁘지 않았다.
큰아들에게 좀 더 관심을 두었으면… 이번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더군다나 큰아들의 처지를 생각하니 이런 일을 저지를 만큼 많이 몰려 있었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에이러스에게 믿음을 조금씩 덜어 낸 것이 녀석에겐 큰 상처였던 건지도 모르지.’
이유를 찾자면 끝도 없다는 걸 자작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하룻밤만큼은 그 이유를 계속 찾아야만 할 거 같았다.
“메시 경만 남고 모두 나가 주겠나. 비록 못난 아들이지만, 가는 길에 배웅은 해 줘야지…….”
자작은 에이러스의 시신 옆에 자리를 잡았다. 모두에게 등을 돌린 채 앉은 그 모습이, 축객령의 의미로 느껴졌다.
모두가 나오는 길에 도로쿠가 그 등에다가 위로를 전했다.
“혈육의 죽음은 항상 슬프지. 하지만 인간 친구! 죽음은 끝이 아니라네. 영혼이 그저 위대한 정신에게 가서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야.”
“그런가. 고맙네.”
위로가 된 어투는 아니었으나, 그것만으로 만족한 건지 도로쿠는 냉큼 방을 나섰다.
모두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방 안에 정적만이 남았다.
홀로 남은 메시가 먼저 운을 뗐다.
“죄송합니다.”
그 사과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번 일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사죄도 있었고, 에이러스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것에 영향을 끼친 미안함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에이러스를 간접적으로 죽였다는 의미도 포함됐다.
에이러스를 내려다보던 자작이 고개를 저었다.
“메시 경, 그대가 사과할 일은 없소. 오히려 또 빚을 졌구려. 그대가 없었다면 이 녀석의 뜻대로 되었겠지. 그랬다면 나도, 에레브도, 에레나도 모두 불행해졌을 거요. 메시 경은 여전히 나와 아헨탈의 은인이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오.”
이번 일로 자신과 메시 사이에 변하는 건 없다는 걸 보장한 셈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작의 말이었으므로, 메시는 조금이나마 걱정이 가셨다.
“도리어 내가 미안하오. 에레나를 일으켜 준 것만으로도 그보다 더한 빚을 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젠 구명까지 받았으니.”
“이번 일은 모른 체하셔도 됩니다. 빚을 졌다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덮고 가시지요.”
“어찌 그러겠소. 이리도 큰 대형 사건이 터졌는데, 널리 알려진다면 메시 경의 명성에도 도움이 될 거요.”
그 명성이 홀로 아헨탈 기마단을 전멸시키고 귀족을 죽였다는 것이라면 메시 입장에선 되레 거절하고 싶었다.
“하이리언 백작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왕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변하게 하고 판결을 받게 할까 생각 중이오. 명분이 있다 해도 내가 직접 손을 쓴다면 꼬투리를 잡는 것들이 중앙 귀족들이니…….”
“차라리 아까 말씀드린 대로 이번 일을 덮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대공자의 반란이 주변에 알려진다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닙니다.”
“흐음.”
덮는다면 장점은 명확했다.
귀족 가문에게 명예란 목숨과도 같은 것이었다. 에이러스의 반란 소식은 아헨탈 가문과 자작의 명예에 똥칠을 하는 셈. 그걸 방지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백작위 수여에 큰 영향을 끼친 게 에이러스의 공이었다. 그런 그가 패륜아였다는 게 알려지면 작위가 취소될 여지가 넘쳤다.
“그리고 아무리 대공자가 목숨을 잃었다지만, 명예까지 땅에 떨어뜨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구려.”
아헨탈 자작에게 가장 끌릴 만한 부분은 이것이리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죽은 자식이라 해도, 명예는 지켜 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었다. 자작의 심성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그러려면 백작의 목숨은 붙여 놔야 했다. 용서라는 이름으로 그의 입을 다물게 해야 했다.
“좋은 조언을 해 주셨소. 그리 하겠소. 백작도 살려 준다면 이번 일을 함부로 떠들진 않겠지.”
하지만 자작은 원한을 쉽사리 잊을 만큼 호구는 아니었다.
“물론 대가는 치러야겠지만 말이오. 그는 아주 오랫동안 괴로울 거요.”
“백작에겐 오히려 더 안 된 일이겠군요.”
아헨탈이 마음만 먹으면 직접 손을 쓰지 않고도 조용히 하이리언 가문을 말려 죽일 방안은 많았다.
하이리언 주변 영지들을 회유하여 백작령으로 들어가는 물동량을 메마르게한 뒤 굶어 죽일 수도 있었고, 중앙에서 하이리언 가문에 대한 정치적 획책을 반복하여 오랜 시간을 두고 죽일 수도 있었다.
아마 여러 가지 공작이 하이리언 가문을 끊임없이, 오랫동안 괴롭힐 것이다.
백작은 이유도 불분명한 채로 가세가 기울어져 가는 걸 지켜보며 몸부림쳐야만 하겠지. 원한을 산다는 건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 * *
메시가 자작의 방을 빠져나온 건 그로부터 한 시간이나 더 흐른 뒤였다.
그런데도 메시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에레나 양?”
“괜찮으신가요?”
메시는 그녀의 질문이 자작의 상태를 묻는 거라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자작님은 잘 추스르고 계십니다.”
“아니요. 아버지가 아니라 메시 경 말이에요. 혹시나 아버지께 무슨 얘기라도 들은 게 아닐까 하고…….”
“아.”
에레나라면 메시가 에이러스를 처리했다는 것 정도는 짐작했을 것이었다.
자작이 메시를 남긴 게 그 원망을 풀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지레 걱정했다.
“별문제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제 걱정을 덜어 주셨습니다.”
“…다행이네요.”
“그것 때문에 기다리신 겁니까?”
“아… 그, 아버지의 상태도 걱정되어서요.”
굳이 변명을 하는 귀여운 모습에 메시는 웃었다.
“이번 일로 메시 경이 대단하다는 걸 알았어요.”
각자의 침소로 향하는 복도에서 뜬금없는 에레나의 말에 메시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에 제가 한 일은 많이 부족합니다만.”
“아니에요. 만일 오라버니가 살아서 기사들과 돌아왔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르니까요.”
“에레나 양이 또 계책을 내지 않았을까요? 백작을 이용해서 아헨탈 기마단원을 처리한 것처럼요.”
메시는 에레나가 했다던 미인계와 이간질을 떠올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건 제가 떠올린 게 아니라 미카엘라가 떠올린 거예요. 그렇죠, 미카엘라?”
“네……?”
아무 생각 없이 휠체어를 밀다가 갑자기 화살을 맞게 된 미카엘라였다.
하지만 눈빛으로 ‘그렇다고 말해요.’라고 말하고 있는 자신의 아가씨를 보자니, 그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제가 생각했죠…….”
“들었죠? 어떻게 제, 제가 그런 여우 같은 생각을 하겠어요.”
‘이 여우 같은 아가씨가!’
미카엘라는 속으로 경악했다.
“그래도 에레나 양이 직접 여우처럼 성공시킨 거 아닙니까. 대단한 거죠. 유혹이 제대로 통했다는 건데…….”
“그, 그건…….”
메시의 짓궂은 장난에 하이리언 백작이 워낙 숙맥이었다는 둥, 연기가 어색했는데도 통했다는 둥, 여러 가지를 주절대는 에레나였다.
그러다가 당시 상황까지 이야기가 이어지자 에레나의 표정이 많이 나빠졌다.
“정말 제가 너무 무력하다고 느꼈어요.”
“그런 계책을 내서 실행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에레나 양.”
“아니에요. 전 메시 경이 될 수 없겠더라고요. 아버지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하얗게 됐어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는데, 그땐 이미 아버지가 떠난 뒤였죠.”
그녀는 침울해졌다.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그때 큰 무력감을 느꼈어요.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다는 게… 오히려 아버지의 탈출에 방해만 될 거라는 게 슬펐어요.”
“전 오히려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자작님이 그리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에레나 양을 살리기 위해서였을 테니까요.”
“그럴까요? 그런 걸 오히려 짐덩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요…….”
걷지 못할 때는 항상 안전한 울타리 안에만 있었으니, 이런 감정을 느껴 보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에레나는 자신의 모자람을 느끼게 됐다.
“짐덩이라……. 그런데 왜 굳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사람이 그 짐을 짊어지려고 하겠습니까?”
“그야…….”
“네, 그 짐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겁니다.”
“…….”
“에레나 양은 자작님의 소중한 것이니 자신을 낮추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맞아요.”
“그리고 지금의 자신은 무력할지 몰라도 영영 그럴 거란 보장은 없지요.”
메시의 조언에 에레나는 뭔가 알 거 같은 얼굴이었다. 그가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했는지 그녀의 마음에 와닿았다.
‘그래. 지금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는다면 오늘 같은 일은 또 없을 거야.’
에레나는 속으로 각오를 다졌다.
* * *
방으로 돌아온 메시는 문부터 잠갔다.
지금부터 하려는 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되도록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인간의 예절 같은 걸 몰라 아무렇게나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땅꼬마들이 있었으므로, 자신이 미리 신경 쓰는 게 나았다.
메시는 품에서 자신이 얻은 전리품을 꺼냈다. 아무래도 선명하게 붉은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기에 남들 눈에 띄지 않길 바랐던 것이다.
바로 ‘갈구의 거울’이었다.
“또 적십자단의 물건 같은데…….”
메시는 적십자단의 물건이라고 인상을 찌푸리거나 바로 화로에 집어넣는 사람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걸로 재미를 많이 본 처지였다.
‘다크필드’가 새겨진 붉은 스크롤로 엔조 무에테를 제압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고, ‘경지돌파’ 붉은 스크롤로 알란아스터를 속여 넘겼다. 그리고 크롬벨전에서 대승리를 할 수 있었던 계곡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니 메시는 적십자단의 물건이라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몰래 수거부터 한 셈이었다.
“평범한 거울일 리가 없는데…….”
거울의 구석구석을 만져 봐도 특별한 구석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 면에 새겨진 붉은 글귀를 발견하게 됐다.
메시는 감각적으로 이것이 시동어임을 알아차렸다.
“네가 진정으로 답을 갈구한다면 마법사도, 인생의 스승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물어라.”
메시의 말이 끝나자마자 갈구의 거울은 바로 반응을 했다.
거울의 유리가 일렁이며 뭔가 변화가 찾아오려는 순간.
[으응? 에이러스는 결국 죽은 건가.]
갑자기 머릿속을 울리는 사념에 메시는 눈을 치떴다.
“…누구십니까?”
[나는 아스카론의 아주 작은 조각이지. 이종인 자네가 들어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스카론은 현재 적십자 마도대학을 이끄는 존재일세.]
‘……!’
갑자기 연결된 게 적으로 생각해 오던 단체의 수장이라니.
메시는 지금껏 에이러스가 상당한 거물과 놀아 왔다고 여겼다.
[흐음, 흥미롭군. 자넨 사념 전달 방식이 꽤 익숙한 모양이야. 보통 내 사념을 받으면 깜짝 놀라서 난리인데…….]
“본의 아니게 익숙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어서 말입니다.”
[아! 자네가 데리고 다닌다는 그 만년 개미의 유충 말인가? 혹시 내게 그걸 팔 생각이 있는가? 예전부터 계속 물어보고 싶었네.]
마법사들은 만년 개미에게 한이라도 맺힌 건지 다들 관심이 지대했다.
메시는 고개를 저었다.
“애석하게도 제게 꽤 필요한 친구라. 그나저나 저에 대해 조사를 좀 하셨나 보군요.”
[끌끌… 당연하지. 자네가 바로 원망의 숲에서 온 이종, 메시 아닌가. 우리가 오랫동안 공들인 에이러스를 몰락시킨 자.]
자신이 벌써 적십자단 수장의 눈에 띄었다는 건 썩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아스카론은 자네와도 대화를 나눠 보고 싶어 하지. 하지만 내가 먼저하게 되었군.]
“…본인이 아스카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야. 난 그저 아주 작은 조각일 뿐일세. 그가 자신의 영혼에서 티끌만큼 덜어 낸 존재라고 할까. 여기서 문제일세. 아스카론과 같은 영혼을 지닌 나는 아스카론일까, 아니면 다른 존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