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05
104화
바스카스 후작은 ‘다섯 손가락 회의’를 마치고 바로 방을 빠져나왔다.
회동이 벌어지는 장소의 특성상 비밀의 엄수를 위해 참여자들은 서로 시간을 두고 빠져나오곤 했다.
지각한 만큼 가장 늦게 나온 사람이 바로 그였다. 그러곤 바로 자신의 근무처로 이동을 했다. 멀진 않았다. 회의 장소는 아시리스 왕궁의 외궁 안에 있었으니까.
그는 걸으면서도 얼마 전에 들어온 보고를 떠올렸다.
바스카스 가문은 오랫동안 전쟁과 함께한 가문이었다. 그랬기에 정보전의 중요성을 알았고, 가문 내에서 고유의 정보 단체를 육성하고 있었다.
비록 천공성처럼 중앙 전체를 아우르는 대규모 정보 집단은 아니지만, 후작이 직접 신경을 쓰다 보니 아시리스 왕국 내에서는 그럴듯한 정보망을 두게 됐다.
그 정보망에 첩보 하나가 걸려든 것이다. 누군가 자신의 뒤를 캐고 있다고.
‘설마, 놈들인가?’
짐작 가는 자들이 있던 바스카스 후작은 즉각 역추적에 나섰고,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전혀 다른 꼬리의 정체를 보고 바스카스 후작은 실망과 동시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아헨탈 가문의 정보대라고……?’
너무 쉽게 꼬리를 잡아 형편없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뜬금없이 아헨탈이라니? 딱히 원한 관계를 쌓은 가문도 아니었고 서로 있는 듯 없는 듯 취급하는 관계였다.
바스카스는 군사, 아헨탈은 재무로 양측이 영향력을 떨치는 영역이 달랐던 탓이다.
관련된 예로, 단 한 번 아헨탈 자작과 부딪친 적이 있었는데 공무로 인해 발생한 일이었다.
당시 아헨탈 자작은 국가 재정을 담당하는 출납원의 2인자인 재무 부장관을 역임하고 있었던 상황이라 당연히 돈 먹는 하마인 군무부와 사이가 안 좋을 수밖에 없었고, 두 사람 간의 충돌은 예정된 일이었다.
자작과 후작은 예정된 일로 앙심을 품을 만큼 한심한 자들이 아니었다.
‘수상하긴 하군. 최근 들어 아헨탈에 변화가 대단히 많기도 했고……. 무슨 꿍꿍이속일까.’
처음엔 ‘다섯 손가락 회의’의 존재에 대해서 알아차린 걸까 의심을 해 보았지만, 전시 상황인 크롬벨을 제외한 자신 외 세 귀족의 주변은 깨끗했다. 오늘 회의에 이 고민을 언급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럼 다른 이유 때문이라는 것인데… 짐작이 가는 게 도통 없군.’
그런 생각을 하며 바스카스 후작은 여러 부처의 건물을 지나 군무부로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이었는데…….
문제의 당사자가 입궁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묘한 우연의 일치였다.
웬 검은 머리 이종 하나를 뒤에 달고 내궁으로 가는 모습이 역시 평범하진 않았다.
이걸 기회라고 봐야 할까? 바스카스 후작은 아헨탈 자작의 뒤를 따라갔다.
* * *
모어로스에는 아헨탈 가문이 오래전에 구입한 큰 저택이 있었다.
중앙 귀족들은 왕도에 저택 하나쯤은 마련해 두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던 탓이다.
그들은 안식년 또는 공직을 내려놓는 휴지기에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는 게 보통이지만, 그 외에 공무를 담당할 때는 항시 왕도에 머물러야 했다.
아헨탈 자작은 휴지기에 해당했다. 출납원의 일을 내려놓고 영지로 돌아간 지 오랜 시간이 흘렀으므로, 이 저택을 이용하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세월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은 듯 저택은 이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소수의 관리인이 항상 청결하게 관리해 왔다.
관리자 그레섬은 오랜만에 만난 자신의 주인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가주님, 오셨습니까.”
“그레섬 집사, 이게 얼마 만인가?”
“거의 7년 만이지요.”
마차에서 내린 아헨탈 자작은 마중 나온 그레섬을 먼저 반겼다.
자신이 없는 사이에도 왕도의 저택을 제대로 관리해 준 그를 치하하면서 모든 고용인에게 상을 내리는 시간을 연이어 가졌다.
짧은 업무를 마친 자작은 메시와 에레나에게 다가갔다.
“메시 경, 난 바로 왕궁으로 들어가 전하를 알현할 참이오. 함께 가 주지 않겠소?”
“제가 가도 되겠습니까? 혹시…….”
“하하. 왕도에서 누가 감히 내 곁의 그대를 건드리겠소? 설사 내가 없더라도 메시 경이 아헨탈 가문의 휘장을 달고 있다면 왕도에서 그대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스물도 채 안 될 거요.”
“그렇다면 뒤를 따르겠습니다. 메디에트 경도 부르시겠습니까?”
뒤에 있던 메디에트가 기대감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왕궁에 들어가는 일은 기사로서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기에 간절히 원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자작이 고개를 저었다.
“메디에트는 여기 남아서 에레나를 지켜 주게. 신디르까지 있었다면 모를까, 전령으로 보낸 이상 어쩔 수 없지.”
신디르는 아헨탈 자작의 서신을 가지고 며칠 전 하이리언 영지에서 아헨탈로 출발했다.
조금 아쉬워하는 메디에트가 안타까웠는지 에레나가 왕궁에 관심을 보였다.
“저도 따라가면 안 될까요, 아버지?”
“에레나, 어전에선 누구도 앉아 있을 수 없단다. 네가 좀 더 호전된다면 그때 뵙도록 하자꾸나.”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 거동에 불편함이 있는 에레나로서는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했다. 왕 앞에서 앉아 있을 순 없었으므로 에레나는 자연스레 빠져야만 했다.
그게 지금 두 사람만이 입궁하게 된 사연이었다.
“…….”
에이러스의 죽음 이후 둘의 대화에 여백이 많아졌다. 아헨탈 자작이 메시를 원망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심란하기 때문이었다.
말없이 겸연쩍어하며 복도를 걷던 자작은 벽에 걸린 거대한 전신화를 가리키며 말문을 텄다.
“우리가 지금 뵈러 가는 전하요. 이건 내가 가주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려졌지.”
“풍채가 좋으시군요.”
“저건 내가 약관에 승마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그려졌던 거로 기억하오.”
“앞선 것보다 훤칠하군요. 머리숱도…….”
“그분의 머리 얘긴 하지 않는 게 좋겠소.”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인지 아헨탈 자작은 왕의 어진들로 대화를 풀어 나갔다. 그만큼 왕의 젊은 시절 초상화들이 궁 내부 곳곳에 있었다.
“메시 경, 갑자기 왕궁으로 따라가 달라고 해서 놀라셨겠소.”
“괜찮습니다. 무슨 연유인지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렇소?”
“작위 수여식 이후에 제 작위를 주청드릴 텐데… 아무래도 주청드릴 것을 미리 허락받는 게 중요하겠지요.”
메시의 설명에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생판 모르는 사람을 갑자기 언급하는 것보다 얼굴이라도 아는 사이에서 이름을 꺼내는 게 훨씬 나았다.
그리고…….
“또, 제가 자작님의 근처에 머무르길 바라시는 거 아닙니까?”
“왜 그런 생각을 하셨소?”
“크롬벨을 이겼으니 지금쯤 중앙 귀족들 사이에서 아헨탈 가문은 뜨거운 장작과도 같을 테고, 이는 당연히 견제로 이어지겠지요. 제가 옆에서 그걸 같이 보고 들어 주며 조언을 해 주길 바라실 거 같습니다.”
“못 당하겠군. 맞소. 이곳 왕궁에서 여러 정치적 흐름에 휩쓸리다 보면 원래 자신이 서 있던 자리가 어딘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잊어버리게 될 때가 많소. 그때 다른 누군가가 조언을 해 줬으면 하지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자가 많을 수는 없지.”
자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복도의 맞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뒤를 많은 귀족이 따르고 있었다. 자작은 자신의 뒤로 오라는 듯 메시에게 손짓했다.
마침내 그 누군가를 마주치자 아헨탈 자작은 허리를 굽혔다.
“이 왕자님, 강녕하셨습니까.”
“무탈했다오, 자작. 아니, 이제 백작인가?”
아시리스 왕국의 두 번째 왕자는 젊은 청년이었다. 기껏해 봐야 메시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을 만큼 어렸다.
현 국왕의 나이가 꽤 많은 것으로 아는데, 이 왕자가 이렇게 젊다는 게 묘했다.
“왕도로 오는 길에 안 좋은 일이 있다고 들었소. 사실인 게요?”
“예……. 나쁜 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그게 자작이 사과할 일은 아니지 않소. 애석하구려. 에이러스가 그렇게 가 버릴 줄이야. 훗날 나의 왕국을 이끌 훌륭한 초석이 되어 줄 인재였는데.”
“…….”
자작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푹 숙였다. 방금 그 말에 무심코 동의를 해 버렸다면 하루도 걸리지 않아 왕태자 계파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이 왕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자작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의 눈길이 뒤에 있던 메시에게로 향했다.
“이종을 데리고 다니시오?”
노예냐는 물음이었는데, 이미 눈길로 메시 가슴팍의 휘장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아헨탈 자작이 말한 스무 명 중 하나라는 걸 메시는 알았기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숲의 종족이자 고귀한 피를 잇는 메시라고 합니다. 최근 ‘이종의 성자’라는 과분한 호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시리스 왕국의 이 왕자께 인사 올립니다.”
“고귀한 피라……?”
급은 다르지만, 같은 왕족이라는 의미였기에 이 왕자도 호기심을 느꼈다.
물론 호기심뿐이었다. 메시를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사고 회로 자체는 없었다. 중앙의 인간들에게 이종이란 어디까지나 인외의 존재였고, 그들의 나라라고 해도 부족 국가 정도로 상정했다.
“재밌군, 자작. 이런 걸 어디서 구하셨소?”
“제 둘째가 메시 경에게 은혜를 입어 가문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메시를 데리고 있는 연유를 설명하는 것이지만, 사실 우리 가문의 은인이니 함부로 말하지 말란 의미도 저변에 깔려 있었다. 물론 이 왕자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눈치였다.
“이종의 성자라……. 어디서 들어 본 거 같긴 한데.”
“아마 제 딸 아이가 회복되었다는 소문과 함께 들으셨을 겁니다.”
“아!”
그제야 이 왕자도 호기심 수준이 아니라, 상당한 관심을 두고 메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사제 이상의 치유를 한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사제와는 다른 방식의 치유를 할 뿐이지 그게 사제를 뛰어넘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메시가 재빨리 정정하자 이 왕자가 마음에 든다는 듯 웃었다.
“혹시 머물 곳이 없어지면 날 찾아오라. 자, 이만 가지.”
이 왕자는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귀족들의 무리를 이끌고 메시를 지나쳤다.
메시는 자작에게 물었다.
“혹시 이 왕자의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진 않을 것이오. 이 왕자님이라면 교단의 사제들을 다 움직여서라도 치료받게 만들었을 테니까.”
‘그런 것치곤 내 능력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있는 눈치인데…….’
메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생각에 확신을 가진 건 역시나 뀨의 조언 덕분이기도 했다.
[방금 그 얘길 듣자마자 메시에 대해 호감이 대폭 늘었다뀨?]
‘왕태자 계파인 아헨탈 자작이 모르는 이 왕자 주변의 환자라…….’
아군보다 적이 많은 걸 알기 마련이다. 아헨탈이 크롬벨에 대해 잘 알았던 것처럼.
왕태자 계파의 핵심인 아헨탈 자작이 이 왕자 주변에 있는 환자를 모른다는 건 두 가지 가정을 의미했다.
이 왕자 본인이 아픈데 이를 숨겨 왔을 경우.
또는.
이 왕자가 반대파에게서 철저히 숨겨야 하는 존재가 아픈 경우.
* * *
티스리스트 라 아시리스.
현 아시리스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었다.
세간에서 그를 부르는 호칭은 ‘밀밭의 왕’.
밀은 이 세계 사람들의 주식 중 하나이기에 풍성한 밀밭은 배고픔이 없는 것. 즉, 평화를 상징하곤 했다.
그런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왕위에 오르자마자 전대 왕이 벌여 둔 이웃 나라와의 긴장을 완화시켰으며, 이후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단 한 번의 전쟁도 일어나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고령으로 인해 이제 그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를 처음 보게 된 메시마저 그걸 확연히 느낄 정도였다.
왕좌 뒤편, 벽에 걸린 거대한 어진은 비교적 최근에 그려진 것 같은데도 지금의 모습과는 차이가 엿보였다.
근육이 빠져 팔다리가 가늘어졌는데 그걸 숨긴답시고 통이 큰 옷을 입은 게 다 티가 났으며, 탄력을 잃은 피부에 주름은 가득하고 눈꺼풀은 처져 온전히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세월은 그에게서 신체적 자유를 앗아 갔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바라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 정도라면 같이 세월을 욕하는 것으로 끝났을 텐데…….
‘냄새……. 이게 노인들의 몸에서 난다던 냄새인가? 촌장님도 이 정돈 아니었는데… 유난히 심하군.’
나이가 듦에 따라 노넨알데하이드라는 물질이 모공에 쌓이고, 그것이 부패하면서 나는 퀴퀴한 냄새를 흔히 노인 냄새라 했다.
메시가 그것까지 알 리는 없었으나, 그런 냄새가 존재하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게 어전에서 짙게 풍기고 있었다.
왕을 둘러싼 갑옷 입은 기사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아닐 테니 답은 하나였다.
“그래… 로안, 오랜만에 보는구나.”
“강녕하시었습니까.”
“매일 사제의 기적을 맞이하는 이 몸에 이상이 있을 리 있나. 나는 잘 지냈다.”
왕의 말대로 병은 없었다.
다만 거대한 바위가 시간과 바람에 풍화되어 조금씩 제 형태를 잃어 갔을 뿐이다.
왕과 자작은 긴 인사말을 이리저리 주고받았다.
“그나저나 아들 하나는 잘 키웠더구나. 덕분에 오랜 가문의 한을 풀지 않았나? 나도 네게 백작위를 내릴 수 있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그 아이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는데, 궁으로 한 번 데려오질 않는구나.”
왕의 뒷말은 데려올 녀석은 데려오지 않고 웬 이종을 데려왔냐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것이, 왕도로 오는 길에…….”
자작은 조금 울먹이는 목소리로 사정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
“…그렇게 된 것입니다.”
“허, 일이 그리되었구나. 참으로 아깝다. 8왕국 대회전에서 짐의 체면을 세워 주었거늘.”
얘기를 다 들은 왕은 참담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저 뒤에 따라온 자는 누구냐?”
“이번 수여식 이후… 제가 작위 제안을 바로 주청드리고자 하는데, 메시 경이 그 주인공입니다.”
“저 이종에게… 작위를 내려 달란 말이더냐?”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라고 고개를 갸웃하는 기색이었다. 자작도 그런 분위기를 읽고는 한발 더 나아가 열렬히 소개를 시작했다.
“메시 경은 분명 우리와는 다른 존재이옵니다. 하나, 우리의 말을 능숙하게 하고 쓸 줄 알며, 현명하기 그지없는 숲의 종족입니다. 거기다 그는 왕족에 해당하는 고귀한 혈통을 이었으며… 그 혈통의 특징인 뛰어난 치료술로 전하의 수많은 백성을 치료하고 살려 내었습니다.”
“치료술? 약초라도 쓰나?”
“약초를 쓸 줄 모르는 건 아니오나, 소인의 재주는 힐(Heal)에 있습니다.”
메시가 직접 나서 대답을 했다. 유창한 중앙어가 메시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모두가 조금 놀라는 분위기였다.
“힐이라……. 짐은 마법에도 어느 정도 조예가 있다. 덕분에 한계 또한 잘 아는 편인데, 그게 네 재주라면 별 볼 일이 없겠구나.”
“전하, 송구하오나… 제 과년한 딸 하나가 일어서지 못하던 걸 기억하실 것이옵니다.”
“그랬지. 근래에 치료가 되어 일어섰다고 들었다. 참으로 축하한다.”
“예. 그런데… 그 아이를 치료한 것이 메시 경이옵니다.”
“그래?”
왕은 메시의 가치를 조금이나마 눈치챈 기색이었다. 메시는 기울어져 가는 저울에 자그마한 추를 몇 개 더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전하, 근래 들어 거동이 불편해지고 사타구니에 습이 자주 차며, 체취가 강해져 옷을 갈아입는 일이 빈번하시지 않으십니까?”
“…그야 그렇지. 당연한 게 아니더냐? 짐이 이토록 장수하는데 예전과 한 점 다른 바가 없다면 그건 신의 저주와도 같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이 그리우실 테지요.”
“허허. 저놈이 맹랑하구나.”
왕이 별 기대 없이 아이의 재롱을 보듯 웃는데,
“전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메시는 거기에 돌을 던져 긴 파문을 만들어 냈다.
그의 시선은 왕좌 뒤의 거대한 어진을 향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