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06
105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메시는 왕궁의 내궁 곳곳에 걸린, 수십 점에 달하는 왕의 초상화를 보았다.
거기서 메시는 젊음에 대한 왕의 욕구를 읽어 낼 수 있었다.
어진엔 어느 정도 화가의 과장이 들어가 있겠지만, 그런 과장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왕을 만족시키기 위함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현 국왕은 그림 속 과거의 자신에게 욕구를 투사하고 있었다.
메시는 그런 그에게 먹잇감 하나를 던진 것이다.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냐라…….”
왕은 눈을 감고 음미하듯 읊조렸다.
“물론 그럴 수만 있다면 악신이라도 감히 따를 수 있을 거 같구나.”
과하게 솔직한 대답이 돌아오자 당황한 건 아헨탈 자작과 왕의 곁을 지키는 로열 가드들이었다.
자작과 메시 그리고 국왕. 그 사이를 가로막은 큰 덩치의 기사가 부르짖었다.
“전하, 그런 말씀을 하신 게 교단의 귀에라도 들어간다면……!”
“발젤렘, 교단이 뭣 하러 늙은 노구를 건드려 소란을 피우겠느냐? 아니, 그 이전에 너희가 나를 배신하고 떠들 참이냐? 아니면 아헨탈 자작이? 또는 저놈이? 하하.”
절대 그럴 일은 없다는 듯이 너털 웃어 버리는 국왕이었다.
그만큼 이 자리의 로열 가드들과 아헨탈 자작을 신뢰한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메시까지 포함된 건 의외라고 볼 수 있으나, 사실은 이종이기에 그런 소리를 지껄여 봐야 아무도 믿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왕이 웃으며 메시에게 말했다.
“영리한 네 꾀가 통했다. 그런데 내 흥미를 끌었는데 어떻게 책임질 셈이더냐? 불사의 묘약이라도 만들어 줄 참이더냐?”
“불사는 아니더라도 약간의 젊음 정도는 돌아오게 해 드릴 수 있지요.”
“으음……?”
티스리스트 폰 아시리스는 70세가 넘었다.
평균 사망 연령이 낮은 이 세계에서 70대까지 살았다는 건 대단히 장수한 것이다.
더군다나 현대처럼 건강 관리의 비결이 있지 않은 상황이라, 국왕은 매일 받는 사제의 기적으로 건강을 유지한다고 봐야 했다.
그런 그에게 약간의 젊음이라도 돌아오게 할 수 있다는 제안은 매혹적인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매혹이냐면, 지금까지 한 말이 농담이었다고 얘기할 경우 ‘밀밭의 왕’이라 불리던 자신이 직접 이종의 목을 칠 마음까지 있었다.
국왕은 힐끔, 아헨탈 자작을 쳐다봤다.
그가 데려온 이종이 저런 놀라운 제안을 하는데도 얼굴 근육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이미 얘기가 된 것이라는 의미였다.
‘로안이 짠 계획인 건가? 아무리 그렇다 해도 저 이종의 능력이 그만큼 뛰어나야 가능한 계획일 텐데……. 이종을 그리 신뢰한단 말인가?’
국왕이 오랫동안 바라본 아헨탈 자작은 남을 쉽게 믿는 유형이 아니었다. 얼굴은 허허 잘도 웃지만, 그에게서 신뢰를 받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아헨탈 가문은 신뢰보단 계약서와 돈, 신체 일부처럼 눈에 확실히 보이는 것을 믿기로 유명한 족속들 아닌가.
절로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것이냐?”
“제가 전하의 옥체에 힐 마법을 사용할 기회를 주십시오.”
“힐… 고작 힐?”
특별한 이름도 아닌, 힐이라는 말에 왕은 갸웃거리는데 발젤렘이 정색했다.
“전하,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이종입니다. 그런 자가 전하의 육신을 건드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음…….”
당연히 왕은 타인에게 함부로 몸을 맡길 수 없는 처지였다.
매일 자신에게 기적을 부리는 사제도 철저한 조사 끝에 겨우 통과되어, 로열 가드들의 참관하에 왕을 치유했다.
발젤렘이 반대하는 건 상식적인 일이었다. 왕은 골똘히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고작 힐이기 때문에 상관없을 거 같기도 하군……. 건강한 육신에 사용되는 힐은 기분 전환 정도의 효과뿐이니.’
그때 아헨탈 자작이 나섰다.
“전하께서 메시 경의 치료에 관심이 없으시다면 얼마든지 물리셔도 될 일입니다. 하나, 전하께서 관심이 있으신데도 메시 경을 믿지 못해 거절하신다면, 메시 경을 믿지 마시고 저를 믿어 달라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로안, 너를? 일이 잘못되면 네 목숨이 날아간다는 소리다.”
“일이 잘못되어 전하의 옥체에 해라도 입힌다면 제 목숨으로라도 부족한 일이겠지요.”
“허어.”
그 말은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아헨탈 가문의 명운까지 감히 걸 수 있다는 얘기였다.
대체 저 이종이 로안에게 무슨 짓을 했기에 저토록 신뢰한다는 것인가?
이종의 힐은 얼마나 다른지도 궁금했지만, 그냥 저 이종에게도 호기심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는 가이아 여신교의 ‘은빛 성기사’조차 치료하지 못한 제 딸을 치유해낸 자입니다. 또한 그는 지금껏 제게 없는 얘기를 한 적이 없으니 이번 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헨탈 자작의 무한한 신뢰에 메시도 조금 가슴속이 간질거릴 정도였다.
이 정도로 믿음을 얻은 건 사부 이후로 처음이 아니던가.
아시리스 왕은 고개를 끄덕이곤 메시를 돌아봤다.
“그대는 행운아다. 로안의 신뢰를 이토록 산 자는 지금껏 없었으니… 그 기대를 저버리는 일이 있어선 아니 될 것이다.”
“전하, 그 말씀은…….”
발젤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이 지켜야 할 왕이 해서는 안 될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었다.
“네 힐을 한번 받아 보도록 하겠다. 만일 네가 조금의 젊음이라도 다시 되돌려 준다면… 내가 직접 너의 후원자가 되어 주겠다. 국왕이 일개 이종의 후원자가 되는 것은 아마 중앙 최초의 일이겠지.”
“……!”
* * *
“저, 전하… 재고해 보심이……. 아니면 다른 이에게서 먼저 효과를 보신 후에 치료하게 해도 늦지 않습니다.”
“발젤렘, 네 입장을 나는 이해한다. 하지만 무려 아헨탈 자작이다. 그가 제 목숨과 신용, 가문의 명운까지 걸었는데, 여기서 내가 보신만을 택하면 얼마나 좀스러워 보이겠느냐? 왕은 제 안위만이 아니라 체면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
가까이 다가와 속닥거리는 발젤렘을 향해 왕은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그리고 난 로안을 믿는다. 너도 평소에 로안을 썩 괜찮게 보지 않았더냐?”
발젤렘은 한숨을 푹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제 의견을 밀어줄 다른 신하들이 없는 게 애석했다.
그는 메시의 뒤편에 섰다. 그리곤 돌아보지 않는 뒤통수를 향해 경고를 날렸다.
“부디 어전에서 피를 보는 일이 없게 해라, 부탁이니.”
수상한 낌새만 있으면 즉각 목을 치겠다는 의도였다.
끄덕, 메시가 고갯짓만 하자 발젤렘은 더욱 열이 뻗쳤다.
‘이놈이 만약 헛짓거리를 하다가 전하께서 잘못되시기라도 하는 날엔 나도 무사하지 못할 테지. 낌새만 수상해도 내가 손을 쓸 것이야.’
“시작하겠습니다.”
뒤에 흉심을 품은 로열 가드를 두고 메시는 눈을 감은 채 심상 세계의 신전을 열었다.
베네딕트의 심상 세계를 따라서 구축한 곳. 그러나 신전의 모습은 원망의 숲에 있던 유적을 닮은 곳.
그 안에서 자신을 기다리던 어떤 거대한 존재감을 느끼며 메시는 그에게 힘을 빌려 달라고 외쳤고.
그녀는 응답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유적의 광장에서 복도 그리고 유적의 바깥으로 이동하며, 문이 닫히는 걸 마지막으로 메시는 눈을 떴다.
우우우웅…….
잘 익은 밀밭의 풍성한 황금빛 물결처럼 성화가 넘실거리며 메시의 몸에서 끝도 없이 뿜어져 나왔다.
“……!!”
그 광경은 모두의 이성을 잠깐 마비시킬 만큼 압도적인 광경인지라, 아무도 말문을 열지 못했다.
왕도, 왕을 지키는 주변의 로열 가드들도 그리고 메시의 뒤에 선 발젤렘도.
‘이종이… 성화를 쓴단 말인가? 하지만 힐을 쓴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 일어난 예상치 못한 일을 이해하는데 모든 심력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납득한 국왕이 입을 열었다.
“과연 로안이로구나. 네가 목숨을 걸었으니 이 정도는 나와 줘야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화로 된 기적이 더욱 뛰어난 건 사실이나… 젊음을 되찾아 줄 순 없을 텐데?’
그때, 메시가 왕을 향해 손을 뻗었다. 뒤에 선 발젤렘은 그 순간 긴장한 채로 검을 쥐었다.
하지만 메시의 입에서 나온 시동어를 듣자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힐(Heal).”
메시가 쏟아 낸 황금빛의 마법은 그대로 왕에게 쏟아져 들어갔다.
신성 힐을 맞닥뜨린 국왕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항상 세월이 가는 걸 처음 느끼게 하는 것이 손에 핀, 늘어 가는 검버섯과 축 처진 피부 탄력이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제 손이 빛으로 반짝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황금의 신성력이 제 피부에 스며들고 있었다.
이는 사실 메시의 의도대로 성화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아무리 신성 힐이라 해도 사제의 기적을 통해 억지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노구를 단 한 번에 젊어지게 할 순 없다.’
메시는 지금 당장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했다.
마음만 먹으면 시간과 공을 한참 들여서 라우드의 신체 수준까지도 끌어올릴 수 있는 그였지만, 왕은 이미 저물어 가는 신체를 지닌 상황이었다.
정말로 회춘을 시키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아헨탈 기사단을 강화했던 것처럼 오랜 시간의 지속적인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메시는 왕에게 그 정도의 공을 들일 생각은 없었다.
‘당장 젊음이 와닿을 수 있게 심미적인 부분에만 집중한다.’
어차피 내용물은 매일 받는 기적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 그럴 바에 차라리 확 와닿는 외모에 영향을 주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
‘모공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죽은 피부를 깨끗하게 되살린다. 거기다 탄력을 복구시키면 주름도 개선될 터. 빠진 근육을 조금이라도 복구시켜서 움직이는 데 도움을 준다면 자신이 정말 젊어졌다고 생각하는 데 크게 일조하겠지.’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자라나라, 머리 머리.’
잭과 콩나무의 이야기처럼 왕의 허전한 머리숱에 점차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왕이 황금빛에 둘러싸인 상황이다 보니 피부의 변화는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았는데 머리의 경우엔 그 변화가 확연하게 눈에 보였다.
“어어어?”
“머, 머리가!”
로열 가드들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낼 정도였다. 유난히 머리가 휑한 자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왕의 텅 빈 머리숱이 점차 채워질 뿐만 아니라, 다시 하늘빛의 머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이는 정말로 보는 사람의 눈엔 회춘하는 것과 같아서, 모두가 충격을 금치 못했다.
마침내.
메시의 몸을 휘감던 성화가 천천히 가라앉고, 궁 내부를 감쌌던 황금빛이 휘발되듯 사라졌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돌아갔으나, 궁 안의 모든 이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모두가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왕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 어떤 깨달음을 얻은 듯 가장 먼저 외쳤다.
“누가, 거울을 가져와라! 지금 당장!!”
“……!!”
목청마저 달라져서, 거울을 가져오라 외친 왕마저 놀랄 정도였다.
로열 가드 하나가 시동에게서 거울을 받아와 공손히 건넸다. 빼앗듯 거울을 든 왕은 거기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눈을 치떴다.
“이럴 수가……. 내 다시는 이 머리를 볼 수 없으리라 여겼는데…….”
하늘빛의 머리.
먼 옛날, 가문의 선조가 요정의 축복을 받은 증거라던 아시리스 왕실 특유의 상징, ‘엘핀 헤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왕은 감격의 눈물을 참지 못했다.
“저, 전하… 머리뿐만이 아니라 외모까지 아주 젊어지셨습니다. 꼭…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가신 듯합니다.”
발젤렘의 말에 아시리스 왕도 왕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피부도 이전과 비교도 안 되게 깨끗해져 있고, 바람 빠진 풍선과 같던 근육이 얼마 돌아와 있었다. 몸을 움직이는 데도 불편함이 줄어들어 확실히 젊어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거기다 머리를 쓸어넘길 때 느껴지는 이 머리숱의 뻑뻑함…….
메시가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마음에 드냐고? 허허!”
그건 답변할 필요도 없었다.
단 한 마디로 왕은 자신의 마음을 설명했다.
“내… 너를 반드시 자작에 봉하리라……!”
* * *
왕의 알현을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
아헨탈 자작은 방금까지 알현실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조금 멍해 보였고, 메시는 자신이 얻어 낸 신체 정보를 머릿속에서 되새김질했다.
타인의 신체를 변화시키는 것도 시도할수록 경험치가 쌓이고 있었다. 노인의 몸을 건드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으므로, 좋은 데이터가 되어 주리라 생각했다.
자작이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네가 전하의 마음에 든 건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되는군.”
“……?”
“그런 능력을 보였으니… 자네를 계속 곁에 두고 중임하고자 하실 텐데… 어쩔 셈인가?”
“하하, 제가 완전히 거처를 옮길까 봐 걱정하시는 겁니까?”
“험험… 그런 건 아닐세. 다만 자네가 피곤해지니 그렇지.”
머쓱해하며 둘러대는 자작이었다.
메시가 아헨탈의 그늘에서 벗어나 완전히 왕실에 자리를 잡을까 봐 염려하는 게 느껴졌다.
메시로서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내가 아헨탈가에 해 놓은 게 얼마인데 여기서 개고생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왕실은 사공이 너무 많아서 내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힘든데.’
메시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어차피 신성 힐은 저만이 사용하고 저만이 아는 것입니다. 자주 사용하면 부작용이 있을 거라 넌지시 경고만 해도 왕께선 어쩔 수 없을 겁니다.”
“흠, 그렇다 해도 최대한 가까이 두고자 하실 텐데…….”
“후후. 아마 왕이 회춘했다는 얘기를 들으면 난리 날 두 사람이 있으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들이 절 아헨탈로 돌려보낼 테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그들이 누군지 짐작한 자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 계산을 해뒀던 것인가, 내심 감탄했다.
저벅저벅.
그때, 얘기를 나누며 돌아가고 있는 두 사람에게 풍채가 좋은 노인 하나가 걸어왔다.
누군지 몰랐기에 메시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아헨탈 자작은 그를 알아봤다.
다가온 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헨탈 자작, 오래 기다리게 하는군.”
“…바스카스 후작님.”
흠칫, 메시는 그 이름에 깜짝 놀랐다.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메시는 잠깐이지만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바스카스 후작과 눈을 마주치기 전에 겨우 고개를 숙여서 감춘 건 훌륭한 판단이었다.
‘바스카스……. 이자가 사부를 죽게 만든 자.’
여전히 머릿속은 그 이름 하나로 가득 찼지만 말이다.
“오랜만에 전하를 뵈니 할 얘기가 많았나 보군. 어쨌거나 우리도 오랜만이야.”
“예. 제가 공직에 있을 때 뵈었으니 상당한 세월이 흐른 셈입니다.”
“그래…….”
후작은 눈을 굴리며 자작의 전신을 훑었다. 조금 지쳐 보이는 기색이었다.
“힘들어 보이는군. 무슨 일이 있었… 아, 그러고 보니 나쁜 일이 있었다고 들었네.”
그 나쁜 일이라는 게 뭔지 짐작한 자작은 대꾸하지 않았다. 큰아들의 일은 언급하기도 괴로웠다.
그 마음을 이해한 건지 후작도 도망가는 꼬리를 굳이 잡아채지 않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저를 기다리셨을 리는 없고…….”
“아니, 자네를 기다린 게 맞네. 물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서 말이야.”
묻고 싶은 것……?
아헨탈 자작은 그간 데면데면하던 후작이 직접 다가와 물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떠올려 보았다.
그러다 한 가지 후보가 생각나 멈칫했다.
그건 아니길 빌었으나, 세상일이 뜻대로만 흘러가진 않았다.
“자네, 왜 나와 우리 가문의 정보를 캐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