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19
118화
고민을 거듭하던 메시는 뀨에게 먼저 물었다.
‘뀨, 네가 자작님의 생각을 읽을 순 없어?’
[내가 읽으려 드는 순간 맹약이 반응할 거다뀨.]
‘그래, 그렇게 허술하진 않겠지. 만일 가능했다면 사부도 개미 여왕의 힘을 빌려서 맹약을 우회했을 거야.’
사부는 더 오랫동안 우회 방안을 고민했을 사람이다. 그가 포기를 했다면 보통 수단으론 어렵다는 뜻이었다.
메시는 사부가 할 수 없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수단을 떠올렸다.
‘신성 힐로 맹약을 해제할 순… 없겠지.’
고개를 저었다.
‘침묵의 맹약’이 저주 계통의 마법, 흑마술이었다면 신성 힐로 정화가 가능했을 거다.
하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침묵의 맹약’은 저주가 아닌 맹약의 마법이었다. 효과가 지독하여 ‘저주’라는 멸칭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뿐.
메시는 남아 있는 한 가지 수단을 떠올렸다.
‘최후의 수단이 하나 있긴 한데.’
[나도 그걸 생각했다뀨. 근데 너무 위험하다뀨.]
뀨가 만류할 정도의 방안.
바로 신성 힐을 자작에게 쏟아 내는 동시에 자작이 맹약을 깨는 방법이다.
어떻게든 신성 힐로 자작의 목숨을 붙여 둠으로써 맹약을 어긴 대가와 싸우는 무식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절대 사용할 수 없지.’
그건 도박이다.
맹약이 어떤 방식으로 자작의 목숨을 가져가는지도 알지 못할뿐더러.
이 방법으로 자작이 죽기라도 한다면 자신이 죽이는 꼴이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도 자작이 목숨을 건 도박에 뛰어들어 줄지도 미지수다.
‘침묵의 맹약’은 정보만 차단할 뿐 삶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 마법이니, 메시에게 정보를 넘겨주기 위해 목숨을 내맡길 바보는 없었다.
후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메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메시라고 해도 별다른 수단이 없다는 걸 아헨탈 자작과 에레나도 직감했다.
자작이 위로차 말을 꺼냈다.
“너무 상심하지 마시오. 살아가는 데 불편한 것도 아닐뿐더러 다른 수가 있을 것이오.”
“죄송합니다. 저를 위해 그리 고생을 해 주셨는데…….”
“사실 힘들 거라 예상은 하던 차였소. 그러니 그리 미안해할 거 없소.”
자작은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말했다. 직접적인 언급이 없어도, 간접적인 언급만으로도 고통을 주는 듯했다. 일종의 위협이라 봐야 했다.
에레나도 ‘침묵의 맹약’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는 있었기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결국 그녀 나름의 최선의 수를 꺼냈다.
“프로크스 님에게 연락해 보면 어떨까요?”
“소용없을 거야. 프로크스가 대마법사라지만 전공이 다르단다.”
프로크스의 전공은 ‘맹약’이나 ‘저주’가 아닌 ‘마법 복원’.
아헨탈 자작은 무리라는 걸 알면서 친우에게 부담을 짊어지울 생각은 없었다.
거기다 프로크스는 아헨탈 영지에 있으므로 거리도 멀었다. 그가 오려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펜란지 공작이 기다려 줄 것 같진 않았다.
메시도 프로크스를 떠올리지 못한 건 아니었다. 같은 이유로 빠르게 배제를 했을 뿐.
‘잠깐. 전공이 다르다라…….’
생각해 보니 프로크스급의 또 다른 전문가가 하나 있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그자의 전공은 맹약 또는 저주와 연관이 있으면 있었지, 없을 거 같진 않았다.
[그 거울 녀석을 생각하냐뀨?]
뀨는 캐릭터가 겹쳐서 마음에 안 드는 눈치였다. 하지만 지금으로썬 최선의 방책이 아닐까.
거기다 아스카론을 떠올리자 한 가지 가능성이 열렸다. 이게 정말 될지 안 될지는 그에게 물어봐야 할 듯하지만…….
메시는 품에서 네모난 거울을 꺼냈다.
그걸 보는 아헨탈 자작과 에레나는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그 거울은 무엇인가요?”
“어쩌면 우리에게 답을 알려 줄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
두 부녀가 얌전히 지켜보는 와중에 메시는 거울을 바라보며 시동어를 중얼거렸다.
“네가 진정으로 답을 갈구한다면 마법사도, 인생의 스승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물어라.”
그 말과 동시에 붉은 빛이 거울에 일렁였다.
심상치 않은 변화를 느낀 건지 에레나와 자작도 기대감을 갖고 거울과 메시를 바라봤다.
‘역시 메시 경, 뭔가 비범한 수가 있었구려……!’
아헨탈 자작은 자신의 행동이 쓸모없는 일이 아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을 품게 됐다.
그런데…….
‘응?’
갑자기 메시가 허공을 향해 중얼거렸다.
“반갑습니다, 아스카론.”
* * *
아스카론의 작은 조각은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생각을 반복했다.
그는 ‘갈구의 거울’에 묶여 몸도 없는 신세였기에 자유는 사치와도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 불러 주기 전엔 나올 수도 없으니 그에게 허락된 건 오직 생각, 생각뿐이었다.
그 시간 동안 아스카론은 알고 있는 흑마술의 지식을 탈탈 털어 이 신세를 탈피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연구했다.
그러던 중 그는 갑자기 다시 세계로 불려 나오게 되었다.
[으음, 쓰임이 있을 때만 불려 나오는 건 썩 유쾌한 일이 아니군.]
“미안합니다. 하지만 매일 이 거울을 쓸 이유는 없으니까요.”
메시는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아스카론의 작은 조각도 메시를 원망할 일이 아님을 알기에 따로 별말은 없었다.
[흠, 차라리 검 같은 것에 들어갔다면 괜찮았을 텐데. 저 유충이 부러워질 줄은 몰랐네.]
[뀨뀨뀨!! 바보 거울이다뀨!!]
[빨리 몸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널 구울 것이다.]
“농담은 거기까지 하고, 물어볼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농담이 아니라네. 아무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구경꾼이 많군.]
아스카론의 사념은 모처럼 바깥 세상에 나와서 그런지 들뜬 목소리였다. 에레나와 아헨탈 자작을 보는 듯했다.
반면에 에레나와 자작은 메시가 혼잣말을 시작하자 멍한 표정이었다.
“메시 경,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리라 믿소.”
설명보단 직접 겪는 게 낫을 것이다. 메시는 두말 않고 거울을 내밀었다. 만져 보라는 의미였다.
아헨탈 자작은 뭔가 싶어 거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 순간, 그의 머리를 울리는 사념이 있었다.
[흐음, 로안 폰 아헨탈. 실제로 보는 건 두 번째로군.]
“……!”
자작의 몸이 뻣뻣해졌다. 깜짝 놀란 것이다.
아버지의 변화를 눈치챈 건지 에레나도 거울에 손가락을 살짝 얹었다.
[반갑네, 처자. 나는 아스카론이라고 하네.]
“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에레나 폰 아헨탈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받자 성실히 대답해 주는 그녀였다. 동시에 유령이라도 본 얼굴로 겁에 질려 주변을 돌아봤다.
“거울에 있는 영혼입니다.”
메시가 설명을 해 주자 자작과 에레나의 시선이 거울로 몰렸다.
[참한 처자로군.]
“…….”
왠지 아스카론이 어딜 보고 있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에레나는 반대 손으로 신체를 가렸다. 물론 효과는 미미했다.
“아스카론, 침묵의 맹약을 해제하는 법을 아십니까?”
[침묵의 맹약……. 그건 해제할 수 없네.]
일말의 고민도 없이 답변해 주는 아스카론이었다. 모두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단호한데요.”
[그야 당연하지 않나? 우리 적십자단이 그런 시도 한 번 안 해 봤을 리 없지 않나.]
“…우리 적십자단?”
아헨탈 자작의 인상이 잔뜩 찌푸려졌다.
“설마, 네놈이 적십자단의 그 아스카론인가?”
[나 외에 그 이름을 쓰는 자는 없지 않겠나? 같은 이름을 썼다간 몰매를 맞을 텐데.]
“설마설마했건만… 메시 경, 어찌 이런 더러운 놈과 함께한단 말이오?”
아헨탈 자작의 눈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그는 적십자단이야말로 큰 아들의 입지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은 작자들이라 생각했다. 아스카론은 그들의 우두머리였다.
메시는 에이러스가 가지고 있던 거울이라는 점과 이 거울의 영혼이 아스카론이긴 하나 그 영혼의 작은 일부라는 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걸로 이해될 리 없었다. 거울을 바라보는 아헨탈 자작의 눈빛은 차가웠다.
[미안하게 됐군. 하지만 우린 자네 아들의 의뢰를 받아서 일을 했을 뿐일세. 엄한 짓을 막지 못한 부모의 죄가 더 크지 않겠나?]
“이놈이……!”
부들부들…….
아헨탈 자작은 거울에 댄 손을 떨어 댔다. 마음 같아선 거울을 당장 바닥에 던져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메시 경이 이걸 내 앞에서 굳이 꺼냈다는 건… 이자에게 방안을 물어볼 참인 것이겠지.’
그 생각에 자작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이성을 돌려세울 수 있었다.
아스카론도 상황을 눈치챘는지 여유가 가득했다.
[그래도 도의적 책임은 느끼게 되는군.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주도록 하지.]
“지금 자작님에게 걸린 침묵의 맹약이 문제입니다. 해제할 수 없다면…….”
[해제는 못 해도 다른 이에게 떠넘길 순 있다네.]
“……!”
새로운 가능성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메시가 되물었다.
“떠넘긴단 말입니까?”
[끌끌, 조건만 갖춘다면 가능하네. 죽어도 되는 자 100명과 대신 맹약을 짊어질 자 1명만 준비해 주게.]
“…….”
“…….”
그럼 그렇지.
[역시 쌍놈이다뀨.]
[쯧쯧. 유충아, 흑마술이 괜히 흑마술인 줄 아느냐?]
“…유충?”
갑자기 아스카론이 유충을 언급하자 자작과 에레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에겐 뀨의 목소리가 안 들리니 당연한 현상이었다.
메시는 은근슬쩍 다음 말로 상황을 넘겼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100명의 목숨을 넘기라니, 무리입니다.”
“메시 경의 말이 옳소.”
아헨탈 자작도 동의했다.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까다롭네그려. 에이러스였다면 냉큼 했을 걸세.]
빠득, 아헨탈 자작의 입에서 이 가는 소리가 났다.
아스카론이 능글맞게 말을 이었다.
[뭐… 다른 수가 하나 있긴 한데……. 이걸 가르쳐 주는 대신 나와 약조 하나 하겠나? ]
“무슨 약조입니까?”
[내가 몸을 찾을 방도를 알아낸 거 같긴 한데… 이런 신세라 어렵단 말이지. 자네의 도움이 필요할 거 같네.]
“아하…….”
메시는 아스카론이 지금 상황을 이용하여 자신의 계획을 이루려고 함을 알았다.
‘하긴, 아스카론 입장에선 지금이 천금 같은 기회긴 하군.’
하지만 메시는 이 거울에 있는 영혼이 단순히 나이 먹은 늙은이가 아닌 흑마술에 미친 요괴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진 썩 와닿지 않았지만, 사람 목숨 백 개를 짜장면 주문하듯 말하는 태도에서 소름이 끼쳤다.
그런 흑마술사와의 약조라니, 이건 얻는 게 있어도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단물 그득한 껌을 내가 뱉을 리 없지.’
아스카론의 작은 조각은 훌륭한 껌이었다. 절대로 뱉을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맛있는 껌.
거기다 아스카론의 다른 수라는 거, 짐작이 안 되는 게 아니잖아?
메시는 다급한 목소리로 아스카론에게 물었다.
“흠, 그럼 다른 수라는 게 지금 당장 가능한 겁니까? 지금 급한 상황입니다.”
[아, 물론 그렇다네.]
“흑마술은 아닌 거지요? 사람을 대가로 바치는 것도 아니고.”
[당연하지. 그게 싫다고 하지 않았던가. 자네들은 내가 여기 있는 걸 정말 다행으로 알아야…….]
큭.
그 대답을 끝으로 메시는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 정도 대답이면 됐습니다.”
[……?]
아스카론은 메시의 말을 이해 못 한 듯 침묵했다.
[무슨…….]
“안 그래도 이게 가능할지 물어볼 참이었는데, 아스카론님이 먼저 답을 내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어……?]
메시는 거울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흑마술도 사용 못 하시는 분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신다면, 답은 하나 아닙니까?”
[……!]
“갈구의 거울을 이용하면 되는 거군요? 하하, 좋은 대답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푸하하하! 바보다뀨!!]
뀨의 비웃음이 터졌다. 아스카론의 모습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그의 얼굴은 시뻘게진 상태 아닐까?
[뭔가 오해가 있나 보군! 그 방법이 아닐세! 내가 흑마술을 못 쓴다고? 누가 그러던가! 아니야! 갈구의 거울을 쓰면 자작은 죽어! 반드시 죽을 거란 말이네! 적십자단의 수장인 나, 아스카론의 명예를 걸고 확실히 말해 주지!]
다급히 부정하는 아스카론의 목소리가 같이 울려 퍼졌다. 그걸 무시한 채 메시는 거울을 자작에게 건네주었다.
“갈구의 거울? 혹, 이걸 말하는 것이오?”
“맞습니다. 자작님은 지금 제게 정보를 알려 주는 걸 어떤 것보다 원하시는 거지요?”
“…나는 모르오.”
눈을 감고 대답하는 모른다는 말이 어떤 말보다 그렇다는 대답으로 들렸다.
“거울을 보면서 적힌 시동어를 외우십시오.”
“이거 말이오?”
아헨탈 자작이 시동어를 말하는 순간, 아스카론의 화를 내는 소리가 선명해졌다.
그리고 일렁거리는 거울에 천천히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난롯불 앞에서 머리가 새하얗게 새어 버린 늙은 아헨탈 자작이 가족들의 앞에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구전 동화처럼 말해 주는 장면이었다.
거기엔 메시도 있었고 에레나도 있었다. 검은 머리의 작은 아이가 에레나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 근처에서 나이를 먹은 에레브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미래의 이야기는 아닌 듯했다. 나이를 먹은 에이러스가 따뜻한 담요를 자작의 몸에 덮어 주었기 때문이다.
늙은 자작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메디에트는 기병들과 함께 마차를 둘러싸고 숲길을 나아갔다.
숲 사이로 난 길이지만, 펜란지 공작령과 왕도 사이를 잇는 가도였기에 정비가 잘되어 있었다.
거기다 숲의 위치가 위치인지라 위험한 몬스터가 나올 리 없다 보니 메디에트의 마음도 조금 풀어진 상태였다.
‘술이 맛있었는데……. 조금 더 있다 가면 좋았을 것을.’
오죽하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
그런 한가로움도 숲의 중심부에 들어서면서부터 점차 가시기 시작했다.
있어선 안 되는 이상한 기척이 그의 기감에 잡히는 것이었다.
‘이 밤에… 왕도와 공작령 사이의 숲에 수백의 기척이 있다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메디에트가 마차를 멈춰 세우려는 순간이었다.
핑!
강한 기운이 담긴 화살이 날아와 병사 하나의 머리를 그대로 날려 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머리가 완두콩처럼 날아갔다.
메디에트는 즉각 외쳤다.
“습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