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26
125화
메시는 교황의 뒤를 따라 교황청 본단 내부의 어두운 지하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가장 앞에는 횃불을 든 2명의 교단 병사와 1명의 성기사가 섰고, 뒤로는 교황과 메시, 꼬리처럼 수십의 성기사와 사제가 뒤를 따랐다.
앞장선 교황은 이전처럼 흙이 잔뜩 묻은 정원사가 아니었다. 정말로 교황이란 직위에 걸맞게 금이 세공된 휘황찬란한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교황의 옷이 바닥에 끌릴까, 교황의 긴 옷을 붙잡고 따라다니는 시동이 셋이나 있었다. 그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그 번거로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메시의 시선이 아무래도 그쪽으로 자꾸 가자, 교황 ‘요한 바오로 1세’ 역시 머쓱하게 웃어 보였다.
“저들이 신경 쓰이나 보군. 때론 권위를 위해서 누군가의 희생도 필요한 법이지. 애석하게도 말일세.”
이 수직적 계급 사회의 정점이자 이 세계의 다수가 믿는 종교의 우두머리라면 저런 의전 따위 당연하게 누려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신경을 쓰는 메시가 이상한 것이었다. 그에게 이은호로서의 정체성이 조금이나마 남은 탓이었다.
하지만 요한 바오로 1세는 오랜 시간 저런 의례를 받아 왔을 텐데도 마음을 쓰는 눈치였다.
“권위에 목매는 분은 아닐 거 같으신데… 본인이 불편하시다면 굳이 과거의 것을 유지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글쎄…….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과거만이 전부인 조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네. 가이아 여신교단이 그렇지.”
지하 계단의 커다란 통로에는 두 사람의 목소리만이 울렸다.
교황의 파격적인 말.
사제와 성기사들은 혀라도 없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움찔 놀랄 뿐이었다.
“우린 과거만 파헤쳐도 매번 새롭고 배울 게 나오네. 과거 우상화를 당연시 여기고 진리라 생각하지. 한 마디로 부술 수 없는 것이 된다네. 고여 버리는 것이야.”
“앞으로 나아가고 싶으시다면 직접 바꿔 보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허허.”
교황은 그저 웃었다.
그리곤 간단한 옛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이 만든 낡은 성벽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네. 그들을 지키기 위해 그 성벽은 반드시 존재해야 했지.”
메시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아이가 말을 했네. 성벽이 너무 낡은 거 아닐까? 아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이 성벽을 고치기 위해 돌을 하나씩 바꿔 갔네. 꾸준히 수십 년간, 수백 년간. 결국 성벽의 모든 돌은 바뀌었네.”
메시는 왠지 그다음 이야기를 알 거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죽었네.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난 이후, 그 낡은 성벽은 그 예전의 성벽이 아니었으니까.”
“…….”
“어떤가, 이야기가 그럴 듯했나?”
신이 지어 줬다던 낡은 성벽은 가이아 여신교단을 의미할 것이고… 바깥의 위험은 수해를 의미하는 건가?
“교훈이 있는 이야기군요.”
“그리 느꼈다면 다행일세. 성벽이 낡았다 해도 그 돌이 거기에 놓인 건 의미가 있어서일 테지. 더군다나 그 돌을 놓은 사람이 위대한 존재라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하지만 저건 사소한 것이지 않습니까?”
메시는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어린 시동을 바라봤다.
“사소하지. 사소해서 더 바꿀 수 없는 것이기도 하네. 내가 저것을 가장 사소하다 여겨 바꾼다면, 다음 가장 사소한 것이 새로 생기기 마련이네. 그렇다면 내 다음이 가장 사소한 것을 바꿀 것이고, 이것은 반복되겠지.”
그렇게 변화가 일어나고, 지금의 교단과 수천 년 뒤의 교단은 같은 이름만을 쓸 뿐 내용물은 달라지고 만다.
미래를 보며 나아가는 것도 안정이 밑받침되어야 일어나는 법이다. 아직 인류는 살아갈 대지를 완전히 갖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가이아 교단의 교리와 정신은 이 인류 문명이 수해를 개척하며 생존 지대를 넓혀 갈 원동력이자 이념이었다.
나빠도, 불필요해 보여도, 사소해도.
그것을 바꿔 ‘변화’라는 도화선에 불을 붙이느니, 그대로 유지하여 수천 년 뒤의 미래까지 온전하게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안타깝게도 교황 요한 바오르 1세는 누구보다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었으나, 왜 변화해선 안 되는지를 이해한 자였다.
교황의 입장을 이해한 메시가 조금 안타깝게 보자, 그는 웃었다.
“그리 볼 건 없네. 덕분에 이런 호사를 누리지 않는가?”
“실례했습니다.”
“그리고 과거밖에 모르는 사람도 나름의 노력을 하는 법이네. 그 낡은 성벽을 만든 신은 어떤 분인지… 그 성벽은 어떻게 만드는지… 발견하고, 연구하고, 이해하며 배워 가는 것이지. 예를 들면, 자네를 여기 데려온 것처럼 말이야.”
한참 깊게 내려온 지하 계단은 끝을 보였다. 거대한 문이 있었고, 그것을 지키던 성기사들은 교황이 도착하자 문을 열었다.
구구구궁… 쿵!
쇳소리가 울리며 열린 공간에는 세로 지름만 30피트가 넘을 거인 같은 보석이 공중에 떠 있었다.
그 뒤로는 낡은 신전의 입구가 보였는데, 오래됐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고대의 신전이다뀨!]
뀨의 말대로 그 신전은 원망의 숲에서 본 신전과 비슷한 기운을 풍겼다.
“환영하네. 인류 문명이 처음 시작된 고대신의 유적이자, 가이아 님의 신전이라네.”
“……!”
이곳이 뀨가 말했던 제3 격변 이후, 수해 문명이 시작된 곳인가.
“이곳에 자네가 품은 신의 정체를 알게 해 줄 좋은 길잡이가 있지.”
교황의 손끝은 거대한 보석을 가리키고 있었다. 뒤의 신전은 신경 쓰지 말란 뉘앙스였다.
“저기 올라가 보게.”
살짝 방향을 내려 보석의 아래의 제단을 가리켰다.
‘뀨, 저게 뭐 하는 건지 알아?’
[나도 모르겠다뀨. 하지만 저 보석에 대단한 신성이 느껴진다뀨.]
제단의 외관도 범상치 않은 터라, 올라가면서 제단 구석구석을 살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메시가 올라선 제단은 여러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보석 아래에 실루엣이 서 있고 그 주변을 검은 실루엣이 둘러싼 그림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인신 공양을 하는 풍경이 생각날 정도였다.
교황의 뒤를 따라온 사제들은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제단을 둘러쌌다. 그림과 똑같이 재현하는 중임을 알았다.
“혹시 여신에게 저를 바치려는 거면 씻고 올 테니 미리 말해 주시죠. 걸어오는 일주일 동안 씻지를 못했습니다.”
“푸허허! 그건 걱정 말게. 굳이 자네가 아니라도 제물이 필요하다 하면 알아서 뛰어들 자가 많거든.”
…참으로 안심되는 말이었다.
“이건 뭐 하는 겁니까?”
교황은 시동이 가져온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풀었다.
“가이아 여신이 대지의 여신이라는 걸 아는 자는 많네. 하지만 그분이 인과因果의 여신이라는 것을 아는 자는 많지 않지.”
원인과 결과.
그 말만으로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짐작했다.
가이아 여신의 신전이니 그 인과와 관련된 유물이 있을 터.
‘저것인가…….’
머리 위에 뜬 큰 보석을 바라봤다.
“그래, 그것이 인과의 성유물일세. 저걸 통해 최초의 인간들, ‘퍼스트리언’은 자신을 만들었던 신의 바람을 들었고, 불을 피우는 법을 배웠다지.”
교황의 부연 설명이 뒤따라왔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 법. 자네가 모시는 신과 자네도 첫 접점이 있을 거야. 이른 바, 첫 조우의 순간이 있겠지. 그걸 살펴본다면 그분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걸세.”
첫 조우……. 그때 무슨 일이 있었나?
메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신과 첫 만남이라 해 봐야 베네딕트를 힐로 스캔하여 그의 심상 세계를 따라 구축할 때였다.
심상 세계에 자신만의 신전을 구축해야 했지만, 마땅한 견본이 없었고 원망의 숲에서 본 유적이 생각나 그걸 따라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정체불명의 존재가 강림했었다.
[나는 ■■■. 너를 ■■으로 ■■한 ■이자, 너를 ■ ■■으로 ■■■ ■■다.]
거대한 존재는 자신을 그리 소개했으나, 들을 수가 없었다. 격이 맞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끝났던 거 같은데…….’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다.
이후 성화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정도?
‘가이아 여신의 성유물을 이용한다면 저 들리지 않던 말이 들리게 되는 건가.’
만일 그리 된다면 신의 이름인 ‘신명’을 알게 될 테고, 성화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데도 도움이 될 거 같다.
그런 예측을 하는데, 뀨가 태클을 걸었다.
[아니다뀨. 어쩌면 메시는 그 이전부터 신을 만난 건지도 모른다뀨.]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하지만 메시는 날 만나기 이전부터 ‘신성’을 가지고 있었다뀨. 잊었냐뀨?]
“…….”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신성이 있다는 건 그 이전에 신의 손길이 자신에게 닿았다는 의미였다.
짝짝.
좀 더 뀨와 함께 고민하고 싶었지만, 교황은 짧은 박수로 메시를 상념에서 깨웠다.
“이제 그만 시작하지. 짧은 여행이지만,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겠네.”
교황의 신호에 맞춰 제단을 둘러싼 사제들이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신성력을 담아 부른다는 찬트였다.
―――――!!
그들의 노래가 다섯 소절 이상 이어지자 허공의 보석도 반응하여 은은한 은가루를 뿌려 대었다.
살랑거리며 내려온 은가루는 메시가 온전히 뒤집어썼고, 그는 자신의 몸으로 은가루가 흡수되는 기이한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설명할 순 없지만, 메시는 본능적으로 어찌해야 하는지 깨우친 사람처럼 눈을 감았다.
* * *
…….
‘어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이었다.
눈을 감으면 당연히 찾아오는 어둠과는 달랐다.
이것은 좀 더 본질적인 어둠이었다.
그 사이로 은가루가 반짝거리며 하나의 길을 형성하고 있었다.
메시는 그 길을 따라 걸었다.
지루한 시간들이었으나 계속 사제들의 찬트가 들려와 귀가 심심하진 않았다.
한참을 걷다 멍해질 무렵, 더는 찬트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메시는 어느새 자신이 낯익은 숲속에 떨어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 정말로 낯익은 곳이었다.
거대한 블랙 우드와 보랏빛 잎사귀들이 빛을 차단하는 이 풍경.
‘설마?’
원망의 숲인가.
메시는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원망의 숲이라면 상위종 몬스터들이 가득한 곳이었다. 당연히 경계를 하는 게 옳았다.
떠나온 지 몇 달이 지난 장소인데도 몸은 기억하고 있다는 듯 긴장했다.
‘어떻게 된 거지……. 환상인가?’
그러기엔 너무도 실제와 같았다.
바닥을 파헤쳐 흙을 손으로 만졌다. 감촉까지 살아 있었다.
‘정말로 돌아온 건가?’
하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흙을 만지는 자신의 손이 예전보다 작다. 거기다 복장마저 달라졌다.
청바지와 티를 입고 있었고, 손은 작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 이 풍경… 이 복장… 이 세계에 처음 떨어졌을 때구나.”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 중2에 불과했었다.
국제고 진학을 바라는 부모님 덕분에 시키는 공부나 할 줄 알았지, 숲속에서 살아남는 법 따윈 하나도 알지 못했다.
‘왜 이때로 돌아온 거지? 아니, 애초에 신과의 첫 조우 순간을 본다고 하지 않았나?’
기존 목적과는 많이 달라진 상황에 메시마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교황청 지하에 철저히 숨겨둔 데다가 뀨가 대단한 신성을 느꼈다던 성유물이 고장 난 녀석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 이때쯤 신을 조우했다는 의미겠지.’
이때 내가 뭘 어떻게 했지?
…아.
바깥에선 다 큰 어른인 척 굴던 중학교 2학년짜리가 외딴 숲에 떨어지니 겁 많은 어린 양이 되었었다.
‘패닉에 빠져서 어쩔 줄 몰라 한 발자국도 못 움직였었지.’
그래도 칭찬해 줄 점은 있었다.
외딴 숲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야생의 냄새를 맡은 것인지.
절대 큰 소리를 내진 않았다. 혹시나 육식하는 야생동물이라도 나타날까 봐.
빌딩 같은 나무들이 있는 숲이었고, 이렇게 울창한 자연 환경에 숲의 주인들이 없을 리가 없다고 여겼던 듯했다.
하지만 별 소용 없었다. 애가 주의를 기울여 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제 기억으론 금세 그린스킨과 마주쳤었다.
‘…큰일인데?’
일단 살고 봐야 했다. 몸부터 숨기기로 마음먹었다. 숨소리마저 가다듬고 기척을 죽였다.
그리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애석하게도 정말 과거인 건지, 마나는커녕 몸에 근육 한 점 없었다.
과거에 이런 상태로 원망의 숲 몬스터를 맞닥뜨렸다니…….
‘바실리 오크 놈들이었지.’
오크 중에서도 상위권에 해당하는 전투 종족이었다. 신체의 지방 함량이 5푼밖에 되지 않는 근육 돼지, 그린스킨.
그놈의 도끼에 머리가 쪼개지기 전, 자신은 사부에게서 구원을 받았다.
흠칫.
‘…그럼 사부를 다시 볼 수 있는 건가?’
어?
그리 생각을 하니 몸을 숨기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여기 숨어 있어 봐야 사부의 눈에 띄지 않으면 죽음을 잠시 유예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거기다 과거와 똑같은 상황을 만들어야 언제 신과 조우했는지 알 수 있는 거 아닌가.
메시는 일부러 긴장한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쉬고, 기척을 크게 드러냈다.
당시엔 움직이지 않았으므로 근처만 왔다 갔다 할뿐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슬슬 반응이 오고 있었다.
멀리서 짙은 누린내가 났다.
‘오고 있다. 놈들이다……!’
쿵, 쿵, 쿵!
흙을 밟는데도 저런 소리가 난다,
그만큼 육중한 괴물이라는 뜻이었다.
놈들은 멀리 있지 않았다. 메시의 시야에 언뜻 보이던 놈들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꾸에에에에엑!!”
잔뜩 흥분했는지 괴물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총 5마리……. 그때 마주쳤던 녀석들이 맞았다.
그땐 오줌을 지렸었다. 이번엔 그때처럼 겁이 나진 않는다. 겉은 어린 이은호라 해도 내용물은 메시였으니까.
결국 바실리 오크가 코앞까지 들이닥쳤다.
바로 이 타이밍이었다.
사부가 자신을 구하러 나타나는 순간이.
‘사부!!’
메시는 간절한 기대감으로 외쳤다.
…….
휘익, 퍽!
‘…어?’
망설임 없이 자신의 머리를 파고든 쇠붙이의 이질감을 느꼈다.
화끈함과 동시에 메시의 시야가 암전됐다.
* * *
“이런 빌어먹을…….”
메시는 그제야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방금 자신은 바실리 오크에게 그대로 살해당했다.
과거처럼 사부에게 구함을 받지 못하고 말이다.
더 황당한 건…….
“다시 살아났네.”
정확히는 아까 그때로 돌아갔다.
이 세계에 올 때 입은 청바지, 티셔츠에 피 한 점 묻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흙을 만진답시고 파헤친 땅도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