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33
132화
‘아론 라 아시리스’는 왕태자로서의 제 의무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왕국을 시찰했다.
기실 명분만 그러했고, 공직에서 물러나 제 영지에서 휴지기를 가지고 있는 노귀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3, 4달쯤 못 되어 서둘러 왕도로 돌아오게 되었다.
각지의 귀족들과 타 왕국의 사절이 오는 큰 행사인 작위 수여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왕도 ‘모어로스’로 귀환을 했는데, 자신의 계파 귀족 몇이 뛰어와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전하께서… 아니, 됐다. 아버지께서 회춘하셨다고?”
“그렇습니다!”
왕태자는 ‘이놈들이 단체로 미쳤나?’ 하는 혐오감 짙은 표정으로 그치들을 밀쳤다.
“변방 귀족들이나 할 헛소리를 하려면 비켜라. 의무를 마치고 온 나에게 그따위 농담이라니.”
그도 왕토를 시찰을 하면서 소문을 못 들은 건 아니었다.
하나, 중앙의 왕도에서 변방 시골 영지까지 거리가 얼마인가. 사람과 사람의 입으로 전달되는 소문이 변방에 닿을 때쯤엔 정상이 아니었다.
평범한 상인이 대상인으로, 보통의 기사가 역전의 용사로. 오죽하면 ‘중앙의 오크가 변방에 가면 오거가 된다.’는 속담이 있겠나?
못 배운 백성들이 으레 그렇듯, 높은 분을 경외하는 마음에 뜬소문을 만들었다 싶었는데…….
아시리스 왕과 마주하자 자신이 철저히 잘못 생각했음을 알게 됐다.
풍성하기 이를 데 없는 하늘색 엘핀 헤어. 황혼을 그리는 주름은 온데간데없고, 젊어진 아버지가 대리석 식탁의 상석에 앉아 잘 구워진 칠면조 고기를 썰고 있었다.
“태자가 왔구나. 고생이 많았다. 식사는 하였느냐? 아직 식전이라면 너도 같이 들자꾸나. 오늘은 반가운 손님이 많아 기분이 좋다.”
“…예, 전하.”
충격으로 제대로 된 반응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50대의 아버지가 아닌가. 그럼 지금의 나와 고작 10살 차이밖에 안 난다는 소리인데……?’
40대의 왕태자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겨우 답을 하고 왕 가까이의 빈자리에 앉았는데, 맞은편에 동생이 굳은 얼굴로 고기를 썰고 있는 게 아닌가?
왕태자는 서둘러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이냐?’
이 왕자 ‘테론 라 아시리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긴, 뭐요. 좆된 거지.’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형제인 데다가 어미까지 달랐다. 왕위 계승 문제로 다투기도 해야 하니 당연히 서먹한 관계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같은 난처함을 공유하며 이상할 정도의 뜨거운 유대감을 느꼈다.
왕실 시종이 가져다준 갓 구운 고기를 썰자 진정이 조금 된 왕태자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수 있었다.
자신의 옆자리에는 아헨탈 자작이 있었고 그 맞은편에는 로드윈 후작이 있었다. 그 둘을 시작으로 하프간, 짐메리온, 엔더, 그 외 몇몇의 귀족이 함께하는 식사 자리였다.
‘이 구성은 대체 뭐냐. 아헨탈과 로드윈은 내 계파고… 하프간은 중립, 짐메리온과 엔더는 동생 쪽에 가깝지 않았나?’
이번 식사 자리는 아시리스 왕이 이 왕자 앞에서 제 세력을 시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당연히 왕당파의 핵심들이 소집되었다.
그 와중에 왕태자까지 알아서 들어온 셈이니… 아시리스 국왕으로선 기대치의 2배를 달성한 셈.
테이블에 나이프를 놓은 왕이 느긋하게 태자에게 물었다.
“그래, 시찰 중에 특별한 이상은 없더냐?”
“하, 한 영웅에 관한 소문이 있었습니다.”
“영웅이라? 그게 누구더냐?”
“신화 속 존재처럼 여신의 가호를 받아 젊음을 되찾은… 위대한 영웅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하하하! 태자가 못 본 반년 사이에 아부가 많이 늘었구나. 그런데 이 아비를 보고 놀라는 걸 보니 소문을 믿지 않았던 모양이다.”
“송구합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하하하!
호탕한 왕의 웃음소리를 듣자 왕태자 아론은 체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20년 전… 저 크고 당당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왕위의 꿈을 키웠거늘. 이제 저 웃음소리가 날 괴롭히는구나.’
놀람이 가시고 우려와 걱정, 두려움이 찾아오자 아론의 머리도 냉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이 대충 어떤 자들인지 눈치챌 수 있었다.
‘이 배신자 놈들……. 아버지가 돌아오자마자 옛 주인을 못 잊고 꼬리를 흔들어 댔군.’
로드윈 후작의 경우 출납원의 1인자이니 당연히 자신의 핵심 계파원이었다. 나이도 지긋하다 보니 자신도 우대해 줬거늘, 이리 뒤통수를 치다니. 찔리는 건 있는지 자꾸만 이쪽을 힐끔댔다.
아헨탈 자작도 마찬가지였다. 금력으로는 이 나라에서 따라올 가문이 없으니, 뿌리가 마음에 들진 않아도 핵심 계파원으로 대우해 줬다.
하지만 그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식사만 하는 꼴이 일부러 자신과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상인 출신의 피가 어디 가는 건 아니지. 제 잇속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맹세를 뒤집으니 너희가 천대받는 것이야.’
왕태자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속을 참지 못하고 왕에게 말했다.
“전하, 제가 먼 길을 다녀와 그런지 피로합니다. 일어서는 걸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그래. 짐의 배려가 짧았구나. 여독을 풀도록 해라.”
왕태자가 물러나자 뒤따라 이 왕자도 허락을 구하고 자리를 떴다. 왕은 껄껄 웃으며 그 또한 허락해 주었다.
아헨탈 자작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저리 같이 나가시면 두 분이 함께할 여지를 주지 않겠습니까?”
“로안, 담을 짓는다고 도둑이 넘지 않더냐? 괜히 경계하고 있음을 알리는 꼴이니라.”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도 안다. 하지만 현재 왕도엔 외국의 사절들과 중앙, 변방 가릴 거 없이 귀족들이 몰려와 있지. 이런 보는 눈이 많은 상황에서 내 자리를 감히 찬탈한다? 난 두 자식을 그리 멍청하게 키우진 않았다.”
왕의 자리는 단순히 무력으로 뺏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모두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정통성이 있어야만 했다.
만일 귀족들과 사절들이 보는 가운데 반란이 일어난다면 단연코 미친 짓이었다.
“어쩌면 앞으로의 몇 주간이 남은 인생 중 가장 평화로운 나날이 될지도 모르니… 로안, 즐길 땐 즐기는 게다!”
즐길 수 있을 땐 즐겨라.
노화라는 숙명에서 돌아온 자의 깨달음이었다.
그때, 로열 가드의 수장 발젤렘이 속보로 걸어와 접힌 자국이 가득한 종이를 내밀었다.
“전하, 북쪽 국경에서 온 전서구입니다.”
“북쪽? 교단 방면이 아니더냐.”
“교단에서 군사를 이끌고 내려오고 있다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종이에…….”
뭐라?
아시리스 왕이 서둘러 대충 종이를 훑고는 실소를 흘렸다.
“이것 봐라, 로안. 즐길 때 즐기지 않으면 이렇게 일이 터져 놀 때를 놓치는 거다.”
그러곤 이내 살벌하게 얼굴을 굳혔다.
“성전? 크롬벨로 간다고? 이놈들이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감히 남의 땅에서 무엇을 해?”
“정식 성전 포고문을 지닌 성기사가 말을 갈아타며 빠르게 남하 중이라 합니다.”
“어이가 없군. 그 근방 대영주에게 명해서 군대를 차단하고 성기사만 보내라 명해라. 놈들이 불만을 품거든 가이아 님의 자비를 배웠기에 이 정도로 그치는 거라 경고하고.”
그 얘기를 듣는 아헨탈 자작은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었다.
‘메시 경이 교단으로 간 지 얼마나 됐다고… 설마?’
현 교황 요한 바오로 1세는 피 보는 일을 싫어하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는 건…….
그만큼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설득을 당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 누군가가 메시 경은 아니겠지.’
목적지가 크롬벨령이라는 게 설마 설마 하게 만든다. 메시가 베네딕트를 그리 보내도록 당시 조언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걸 우연으로 치부해야 할까?
‘하지만 메시 경이 어찌 교황을 만난단 말인가.’
교황이 변방 어딘가의 촌장도 아니고, 8왕국 모두가 경외하는 존재인 것을.
만나는 건 둘째 치더라도 교황이 가진 신념이 대단할 텐데, 그걸 설득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게 더 고역이다.
거기다 그는 몸을 숨기고 성화 다루는 법을 배우기 위해 교단으로 갔다. 갑자기 성전을 한답시고 나타나진 않을 것이다.
이걸 아는데도… 참 이상한 건.
그라면, 어쩌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는 점이다.
* * *
메시는 이번 성전을 주관하는 지도자답게 커다란 마차를 타고 편하게 내려가고 있었다.
‘이래서 성공을 하라는 건가.’
교황이 타고 가라며 내준 마차는 아헨탈 자작의 마차보다 훨씬 크고 편안했다.
흔들리긴 하지만 침대까지 있어 누워 갈 수 있었고, 음료까지 구비되어 있었으니……. 이 정도면 마차계의 리무진이었다.
말의 부담을 늘리지 않기 위하여 마나 저장 착용구를 벗어 육체 수련까지도 멈춘 상태였으니, 메시는 이 편한 환경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메시는 눈을 감고 명상을 하며 다차원의 기억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원망의 숲에서 허무하게 5분 컷을 당한 기억이 대다수였지만, 가끔씩 예외적으로 살아남은 자들(그래 봐야 자신이지만)이 있었다.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원망의 숲이 아니라 다른 곳에 떨어진 거군. 운도 좋지.’
간간이 도시나 인간의 마을이 가까운 곳에 떨어져 목숨을 연명한 사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래 살아남은 건 아니었다.
중앙 공용어도 못 하며, 검은 눈의 검은 머리 이종인 데다가 어리기까지 한 메시가 살아남는 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메시는 자신의 기억들을 뒤적거리며 수많은 악의와 마주쳐야 했다. 그 악의는 때론 무심했고, 또는 잔인했으며, 어떤 순간에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이게 사부를 못 만났을 때의 내 인생이었구나…….’
납치당하고, 팔려 가고, 이유 없이 살해당하고, 분풀이로 맞고, 짐승 취급을 받고, 미신을 믿는 자들의 한 끼 식사가 되기도 하고, 때론 잔혹한 성범죄자들에게 걸리기도 했다.
생존 기간이 대부분 6달을 넘지 못했고, 운이 좋아 봐야 2, 3년. 가장 오래 산 것이 10년이었다.
자신은 정말 운이 좋은 거였다.
원망의 숲에 떨어져 살아남았고,
정말 말도 안 되게 선의로 가득 찬 사람을 만났으니.
‘사부… 당신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메시는 마지막 10년짜리 인생에 주목했다.
운 좋게 지나가던 사제의 동정을 받아 살아남은 메시가 도시의 수도원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다. 말단 성기사가 된 인생이었다.
하나, 오래 살 수 있었어도 그리 좋은 취급은 받지 못했다. 이종인 데다가 다른 신을 모시게 된 걸 금세 들켰기 때문이다.
똑같이 오흐가나를 심상 세계의 신전에 모시게 되었으니, 가이아 교단의 배움이 먹힐 리가 없었다.
거의 공기 취급을 받다가 자신을 거두어 준 사제의 선처로 머나먼 변방의 수도원까지 쫓겨 가야 했다.
그 이후.
성기사 메시, 정확히는 ‘주더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그는 제 안의 신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노력했고, 그 힘을 연구했다.
메시는 성기사 주더스의 기억을 차곡차곡 정돈해 갔다.
‘오흐가나의 힘을 다루는 다섯 단계.’
하나는 축신.
신이 내려 주는 성화를 온전히 몸에 쌓는 첫 단계였다. 이는 배움과 공부가 따로 없어도 가능했다. 성화를 부리는 메시의 단계였다.
그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황금빛 성화가 피어올랐다.
다음은 응신.
이때부터 성화를 다루는 것에 개인의 의지가 개입한다. 축신으로 받은 성화를 응축시키는 두 번째 단계였다.
메시의 성화가 서서히 한쪽 손에 완전히 집중되어 응축됐다.
‘기사의 마나 발출과는 완전히 다르군…….’
브릴란트나 어블레이즈의 경우, 마나 지배력의 상승으로 인해 몸 밖으로 유출되는 마나까지 재활용하는 원리라면.
이것은 오러처럼 처음부터 완전히 정제된 힘으로, 시전자가 쉽게 다룰 수 있으며 안정적이었다.
물론 성질만 같을 뿐 소드마스터의 오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 차이는 간단했다.
자신이 만들어 가는 힘과 주어지는 힘의 차이였다.
직접 마나를 모으고 자신을 갈고닦으며, ‘나’라는 우주를 확장해 하나의 세계로 만들어 가는 가능성의 존재가 기사라면.
이미 완성된 전능한 세계로부터 일원으로 인정받아 힘을 부여받는 것이 성기사였다.
하나는 세계가 되는 방법이고, 하나는 세계에 속한 존재가 되는 방법이다.
격부터가 다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기사가 마냥 기사에 비해 모자라거나 단점이 강한 건 아니었다. 성장 한계만 뚜렷할 뿐이지 기사와 다르게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세 번째는 개신.’
단순히 신에게 힘을 받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신격을 조금 나눠 받는 단계였다.
성기사 주더스가 사망하기 전까지 도달한 단계였다. 다행히 그 10년의 결과를 메시가 써먹게 되었으니 헛된 노력은 아니게 되었다.
세 번째 단계까지 시험을 해 보려는 때였다.
‘음?’
마차가 천천히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메시는 누군가 문을 두드릴 것을 알았기에 얌전히 기다렸다.
쿵쿵.
“사도 예하, 전방에 군대가 가도를 막고 있습니다.”
성전십장 이시도르의 목소리였다.
‘군대라……. 아시리스 쪽에서 막아 세웠나 보군.’
교단의 군세가 내려오고 있으니 당혹스럽긴 할 것이다.
“어느 영지의 군사인가?”
“호스텔치안 백작가의 깃발입니다.”
“호스텔치안?”
어디서 들어 봤는데.
메시는 고개를 갸웃하곤 마차에서 내렸다.
제법 큰 가문에서 나온 건지 수백 명의 병사가 가도를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고, 그 앞으론 5, 60명 정도 되는 기사들이 중무장한 상태로 말 위에 있었다.
그 맨 앞, 익숙한 얼굴 하나가 투구의 바이저를 올린 채 기세등등하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서 메시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자는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곤 다시 메시를 쳐다봤다.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게, 이번엔 마나를 눈에다가 집중한 상태인 듯했다.
그리고…….
“……?!”
사내는 놀라서 황급히 투구의 바이저를 내려 얼굴을 가리고는 뒤로 빠지려 말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제야 메시도 호스텔치안 백작가의 삼 공자를 떠올리곤 씩 웃었다.
분명히 아는 놈이다,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