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36
135화
홀의 끝에서 보이지도 않는 수여식을 바라보던 귀족들.
남작이나 준남작들은 홀의 문이 열리자 짜증스러운 눈이 되었다. 행사가 끝나가는 마당에 뒤늦게 들어오는 자가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대체 어떤 작자인가 하는 한뜻으로 모두가 쳐다보는데.
“교, 교단…….”
“성전십장이다!”
한 귀족이 자신도 모르게 움직인 입을 가렸으나,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홀의 입구로 쏠린 것이다.
입구에 서 있는 건 웬 쇳덩이 세 구였다. 멀리서 바라보던 귀족들은 눈에 마나를 집중했다.
그리고 이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대大신성방어갑주, 칼라.’
쇳덩이로 보인 건 사실 전신으로 이어진 갑주였고, 그 표면에 무수한 경전이 아로새겨진 교단의 무구였음을 알아봤다.
그 무구를 착용하고 다니는 건 교단엔 10명뿐이었는데, 그들을 아울러 ‘성전십장’이라 불렀다.
그 성전십장이 길을 내듯이 양옆으로 붙자 가운데로 한 명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그가 앞서가자 호위라도 되는 듯 성전십장이 이내 뒤를 따랐다.
왕도에 방문하기로 한 교단 측 인사 중 성전십장이 모시는 자라면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사도.
왕도에 성전 포고문이 도착한 이후로 가장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린 자.
하지만 모두가 충격받은 것은 사도가 등장했다는 이유만이 아니었다.
“사도가 이종이라고……?”
“가이아께서 이종을 택하셨단 말인가?”
경악했다.
이종이라 하면 오흐가나의 영역이라 불리는 수해 안에서 소수로 살아가는 종족 아닌가.
숲이 아닌 개척된 대지 위에서 살아가며, 여신의 말씀을 항시 따르는 자신들이 아닌 이종을 선택했다는 것에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
메시는 그런 시선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전신에서 금빛 성화를 뿌려 대며 붉은 카펫을 걸어서 올라갔다. 그의 머리 위엔 후광이 고리 3개가 엮인 형태로 떠 있었다.
그 빛을 보자 마음속 불만이 태양을 마주한 얼음처럼 사르르 녹는 걸 느꼈다.
그들에겐 가이아의 힘과 오흐가나의 힘을 구분할 능력이 없었다. 그저 신의 존재감을 느끼고 감격할 뿐.
홀의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메시를 알아보는 자들이 늘어났다.
“전하를 치료했다던 그 이종이군…….”
“나도 봤다네. 펜란지 공작의 연회에서…….”
대부분 그 연회에 참석했던 명망 있는 자들이었다. 아니면 왕당파로 돌아선 귀족들이거나.
그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기에 메시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 온 자인지 많은 귀족이 빠른 시간 안에 알 수 있었다.
“…….”
저벅저벅.
침묵에 빠진 홀에는 메시와 성전십장들의 걷는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광휘와 위엄이 넘치는 광경이었는데, 그 와중에 메시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거기엔 오랜만에 보는 얼굴과 자신을 한참 기다린 듯 쀼루퉁해진 여인이 보였다.
불이 났으면 불부터 꺼야 하는 법. 둘 중 그의 선택은 후자였다.
“에레나 양, 늦어서 미안합니다.”
언제 섭섭했냐는 듯 에레나가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다른 말도 없이 사뿐하게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아!”
메시는 그제야 에레나가 목발도 없이 서 있다는 걸 알았다. 못 본 사이 그녀는 홀로서기에 성공한 것이었다.
“칭찬은 다녀와서 해 주세요.”
대답하지 않아도, 메시의 끄덕임만으로도 충분했다.
오랜만에 보는 바실러스와도 마찬가지였다. 눈짓만으로 인사를 했다. 긴말 필요 없이 그걸로 상대를 읽어 낼 수 있었다.
‘더는 가짜 소드마스터가 아니라 이거지.’
정제된 마나를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감출 수 있는 것이었음에도 공개하는 건, 메시에게 시위를 한다는 의미였다.
크롬벨과의 전쟁 당시 ‘가짜 소드마스터’라고 적어 놨던 걸 아직도 기억하는 듯했다.
하우엘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소드마스터와의 전투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었다. 바실러스를 부른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
메시가 단상으로 향하며 멀어지자 에레나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난 건지 바실러스에게 질문을 했다.
“바실러스 경, 교단의 사제들도 결혼을 하던가요?”
“현 추기경은 혼자가 아닌 걸로 압니다.”
“그래요? 잘됐군요.”
“……?”
* * *
“이런… 미친…….”
바스카스 후작의 격렬한 감정 변화는 제 입 밖으로 나온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저놈이 어떻게……?’
항시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후작의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진 지 오래였다.
백나비 삼백을 고혼으로 만들며 자신에게 엿을 먹인 놈이 3주 만에 뻔뻔하게 돌아와서는 갑자기 교단의 사도라고?
만약 이게 게임이었다면 무슨 이런 미친 게임이 다 있냐고 성을 내면 그만이겠지만, 바스카스 후작에겐 이것이 현실이었다.
큭.
누군가의 조소가 들렸다.
후작이 눈을 돌린 곳엔 시선을 외면하면서도 입가엔 웃음을 지우지 못한 아헨탈 자작이 있었다.
그제야 자신이 자작에게 한 말이 떠올랐다.
[놈이 거기 영영 처박혀 지낼 수 있을지 나와 내기해 보겠나?]
교단에 처박혀서 얌전히 숨만 쉬어도 언젠가 기어 나오면 반드시 죽이겠다는 자신만만한 후작의 의지 표명이었다.
‘이제 나왔는데 어쩌실 겁니까?’
자작의 웃음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명백한 비웃음.
지금까지 누군가의 위협으로만 살아오다 조롱감이 된 타격은 생각보다 더 컸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게 물들 정도로.
더 열이 받는 건 이제 정말로 자신이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존재까지 되어 버렸다는 거였다.
이종이 왕의 단상까지 걸어오자 아시리스 왕이 서슴없이 왕좌에서 내려와 친히 마중할 정도였으니…….
왕의 목소리엔 꿀이 떨어지고 있었고, 이종은 그 꿀을 날름 받아먹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
“늦어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전하.”
“촉박한 일정을 강요한 건 나였으니 하등 죄송할 게 없다.”
“하아, 피곤하긴 하군요.”
“곧 식도 끝나니 나와 함께 좋은 차라도 마시자꾸나.”
이종은 왕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자신을 바라보며 씩 웃고 있었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저… 찢어 죽일 놈이… 감히.’
“사실 네게 자작위를 내리려 했지만… 의미가 없게 되었구나. 아니 그러한가?”
왕은 면식이 있는 바르톨로메오에게 은근슬쩍 동의를 구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였다.
“사도 메시 예하는 이제 교단을 대표하며 교황님의 다음가는 분이시니 그에 걸맞은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자작위로는 의미가 없게 된 셈이지요.”
4대 성직은 어느 나라에 가도 공작급으로 대우받는 위치였다. 그런 이에게 자작위는 하등 쓸모없는, 낮은 작위였다.
물론 아헨탈 자작이라는 예외가 있긴 했으나, 그는 작위를 초월한 영향력과 금력, 배경이 있었기에 백작위 이상의 대우와 존중을 받았을 뿐이다.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짐도 섭섭하다. 너를 이 나라의 귀족으로 삼으려 했건만… 이젠 그것이 의미 없을 만큼 큰사람이 되었으니.”
왕은 작위를 못 내릴 만큼 이종의 위치가 올라갔음을 모든 귀족이 똑똑히 알게 됐다.
특히 자신이 들으라고 하는 얘기처럼 느껴져 후작으로선 속이 더욱 불편해졌다.
“어찌 됐든 제시간 내에 와 주어서 고맙구나. 식이 끝나 가지만 모쪼록 참석을 했으니… 구경은 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 안 그래도 다음 주인공이 한참 기다리고 있었다.”
아시리스 왕이 눈짓한 곳엔 아헨탈 자작이 있었다.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린 사람처럼 저 이종을 반기고 있음이 바스카스 후작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둘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대화를 나누는 듯했는데, 생각보다 심적으로 가까운 사이라는 걸 후작은 알아차렸다.
‘다섯 손가락에 합류를 확정 지은 이상… 다른 잡생각을 하는 건 신상에 별로 좋지 않을 것이다.’
후작의 경고를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자작은 다시 작위 수여식에 집중을 했고, 어느새 이종은 성전십장들을 이끌고 붉은 카펫을 벗어났다.
그리곤 아헨탈 자작이 서 있는 자리의 바로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 맞은편엔 자신이 있었다.
놈은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과 시선을 마주했다.
후작은 감정을 숨기지 않고 노골적인 살의로 가득 찬 시선을 이종에게 보냈다.
마치 무당이 살을 날리듯,
‘네놈을 반드시 죽이겠다.’
말하지 않아도 그 말이 들릴 정도의 지독한 감정이었다.
그런데,
속닥속닥.
이종이 자신을 쳐다보며 바르톨로메오의 귀에다가 뭐라 속삭이자,
바르톨로메오 역시 귓속말을 들으며 눈으로는 이쪽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
더 황당한 건, 얘기를 전달이라도 하듯 바르톨로메오가 성전십장 이시도르의 귓가에 뭐라 떠들어 대는 게 아닌가.
이시도르의 눈빛이 살벌해지더니 그 역시 자신을 노려보다가 다음 십장에게 얘기를 전달하는 듯했다.
‘저 이종 놈이 지금… 성전십장에게 내 뒷담을 하는 건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것 말곤 짐작 가는 게 없었다. 노려보는 걸 보니 분명했다.
자신이 보낸 살기에 어이가 없을 만큼 간단하게 대처해 버린 것이다.
하나, 대체 뭐라 말했기에 자신에게 저런 눈빛을 쏘아 보낸단 말인가?
‘설마… 백나비를 보내 습격한 걸 일러바쳤나?’
하지만 그건 증좌가 없는 일이었다. 애초 자신 밑에 백나비라는 조직이 있는 것 자체가 비밀이었는데 무슨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죄를 덮어씌울 수 있을까.
제아무리 이종이 교단의 사도가 되었다 하더라도 증거가 없는 이상 바스카스 후작은 두렵지 않았다.
더군다나 교단은 ‘선善’과 ‘정의’, ‘올바름’과 같은 가이아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었다. 사도 개인의 원한을 가지고 사적인 복수를 도와줄 정도로 막장은 아니었다.
바스카스 후작은 불쾌감을 감추며 때를 기다렸다.
곧 아헨탈 자작이 ‘후작위’를 받으면 작위 수여식이 끝난다.
끝나는 즉시 저 이종에게 다가가 제 끔찍한 미래를 예고해 주리라.
얌전히 교단에 처박혀 있지 않은 걸 후회하게 해 주겠노라고.
* * *
메시가 안타까움의 탄식을 흘렸다.
그걸 바르톨로메오가 못 들을 리 없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예하?”
“이곳에까지 음습하고도 더러운 냄새가 나는구나. 아주 지독해.”
“예?”
바르톨로메오가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들에게 더러운 냄새라는 건 흑마술사의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바르톨로메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겐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습니다만…….”
“아아, 물론 그럴 것이다. 잘 숨기고 있구나. 아주 가증스럽고도 악마 같은 자다.”
메시가 악센트를 주며 강하게 표현하자, 바르톨로메오도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했는지 진지하게 물었다.
자신은 몰라도 사도라면 뭔가 다를 테니까.
“가르침을 주십시오, 예하.”
“이리 가까이 귀를 대 보라.”
바르톨로메오가 귀를 대자 메시는 손가락으로 전방의 바스카스 후작을 가리켰다.
“저자는 이단이다.”
“……!”
급발진을 밟는 메시의 말에 성격이 급하고 호전적인 바르톨로메오조차 깜짝 놀랐다.
자신도 아무리 이단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아무나 확정적으로 이단이라 칭하진 않는다.
이단이라 확정을 내는 건 깊은 조사가 필요한 일인 것이다. 이단심문관이란 직책이 괜히 있겠는가.
그런데 사도는 바로 저 노귀족을 이단이라 칭했으니 놀라울 뿐이었다.
“어찌 그걸 아신 것입니까?”
“항시 가이아께선 내게 답을 주시지.”
“아……!”
그걸로 납득해 버렸다.
“거기다 저자의 눈을 봐라.”
“불손하기 짝이 없는 눈이로군요. 이단 심문실에서 자주 본 눈입니다.”
“그렇지.”
바스카스 후작을 바라보니 정말로 진득한 살기를 자신의 사도에게 쏘아 내고 있었다.
저런 방자한 놈을 봤나…….
바르톨로메오가 뛰쳐나갈 듯 몸을 움찔대자 메시가 그의 팔을 잡았다.
“어허, 멈추어라. 지금 움직여선 발본색원이 멀어질 뿐이다. 너는 다른 십장들에게 이 얘기를 전달해라.”
“그리 하겠습니다. 악의 뿌리가 아시리스 왕궁에까지 미치다니… 통탄할 노릇입니다.”
그러고는 바로 옆의 이시도르에게 귓속말을 이어갔다.
그사이 작위 수여식이 끝나갔다.
“이것으로 아헨탈 가문은 아시리스 왕가를 떠받치는 후작 가문이 된다. 천 년 이상을 영위할 것이며, 왕가와 가문의 번영을 위해 충실히 할 것을 맹세하라.”
“맹세합니다.”
“좋다. 로안 폰 아헨탈, 그대는 이제 아시리스 왕국의 후작이다.”
왕은 직접 붉은 망토를 로안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망토에는 비취가 눈에 박힌 검은 까마귀가 멋들어지게 수놓아져 있었다.
축하의 연주가 흘러나오고 박수가 이어졌다. 모든 행사가 끝마쳐졌음을 알리는 시종장의 목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바스카스 후작은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목적지는 메시였다.
메시와 바스카스 후작.
두 사람의 시선이 날카롭게 허공에서 얽혔다.
드디어 서로가 완전히 적대적인 존재임이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었다.
메시의 앞에 선 바스카스 후작이 살벌하게 입을 열려는 순간이었다.
슥.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후작을 뒤덮었다.
그것은 한둘이 아니었다.
거체 3구가 바스카스 후작의 앞을 가로막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볼일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