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38
137화
바스카스 후작과 몇 차례 부딪쳤지만, 그가 웃음을 보인 적은 얼마 없었다. 아헨탈 후작이 기억하기론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아헨탈 후작이 전대 로힐 백작의 죽음을 거론했을 때였다.
영생에 대한 모순을 펜란지 공작에게 말하자 바스카스 후작은 처음으로 웃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후작이 웃을 때는 말은 않지만 숨겨 둔 게 있을 때였다.
‘적십자단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더 알고 있는 거겠지.’
그렇다면 달리 생각해 봐야 한다. 바스카스 후작이 어째서 적십자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걸까.
아스카론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나, 아니면 적십자단과 일을 같이 하거나 또는 해 봤거나.
답은 셋 중 하나였다.
평소의 바스카스라면 이러한 사소한 암시조차 주의를 기울였겠으나, 위협을 위해서 평상시보다 흥분한 건 틀림없었다.
“전화를 피하게 해 주신다면… 확실히 매력적인 조건이긴 합니다.”
“그럴 테지. 당분간 영지를 후작령에 걸맞게 키우는 데만 시간을 써도 모자랄 걸세. 그러니 의미 없는 야료는 그만 부리는 게 이로울 거야. 내 신경을 건드리는 일 같은 거 말일세.”
아헨탈 후작이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이자 바스카스의 목소리도 누그러졌다.
“…….”
어려운 선택지다.
그렇다 해서 로안은 메시를 버리고 바스카스를 따를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남은 것들이 고르기 힘겨운 선택지들뿐인 게 문제였다.
크롬벨과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비만 해도 모자란 때에 성전에 끌려 들어가는 건 부담이 컸다.
거기다 바스카스가 적십자단에 대해 경고를 한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면 반대는 어떨까?
‘후작과 싸운다……? 무리다.’
지금 아헨탈의 전력으론 그와 대립각을 세우는 건 무모했다.
공식적으로 소드마스터 한 명을 보유한 바스카스 가문이지만, 하우엘의 등장으로 최소 두 명이 있음이 밝혀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돌은 금물인데, 바스카스 후작 본인도 알 수 없는 힘을 보유하고 있으니…….
게다가 바스카스 가문의 ‘흑접 기사단’은 왕실 로열 가드와 국왕 친위대를 제외하고 아시리스 왕국 최강의 정예라 불렸다. 타 기사단에 비해 소수 정예로 운용되지만, 모두가 브릴란트급 이상에 어블레이즈가 다수였다.
백나비와 같은 비밀 정보 부대까지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바스카스 가문의 전투력은 아시리스 왕국 중 최고였다.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크롬벨과의 전투처럼 적의 소드마스터급 개체가 빠져 주는 행운이 생기지 않는다면 아헨탈은 멸망이다.’
아헨탈 가문‘만’이라면 당연히 바스카스 후작에게 붙어야 옳았다. 그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하지만,
여기에 메시 경이 끼어든다면?
‘메시 경이 강해지는 속도는 상상이상이다. 몇 달 만에 브릴란트 급을 한 수에 격살할 경지까지 왔으니. 놀라운 점은 그가 라비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에게 펼쳐질 상승의 경지가 아직도 무궁하니 시간만 주어진다면 그는 반드시 소드마스터에 오를 거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단에서 사도의 자리에 올랐다. 이는 교단의 힘까지 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했다.
이번 성전을 명목 삼아 성전십장 셋을 끌고 온 건 괜한 일이 아닐 터.
‘메시 경은 분명 이번 성전을 이용해서 바스카스 후작까지 칠 속셈이 분명하다.’
하나 어떻게?
교단은 사적 조직이 아니다. 교단으로 바스카스 후작을 치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메시 경이라면 어떤 수를 쓸까, 로안은 고민했다.
물론 그 시간을 얌전히 기다려 줄 바스카스 후작은 아니었다.
“또 머리를 굴리고 있군. 내가 한 말 어디에 자네가 고민할 여지가 있는지 난 도통 이해가 안 가네.”
자신이 알고 있는 아헨탈 가문의 전력은 절대 바스카스 가문과 부딪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스카스 후작은 기계처럼 무표정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이 ‘의아함’을 표시하는 입력된 동작인 것처럼.
“저 이종이 사도가 되어 돌아온 것 때문에 고민하는 건 아니리라 믿겠네. 그렇다면 자네에게 실망할 거 같거든. 교단이 아무런 명목도 없이 사도의 사적인 원한만으로 내게 칼을 들이댈 수 있을 거라고 본다면… 바스카스 가문이 매년 교단에 보내는 교무금의 숫자를 직접 보여 주도록 하겠네.”
그리고 자신은 왕국의 후작이자 군무 대신이었다. 혹시라도 교단과 이종이 꼬투리를 잡아 자신을 공격할 수 있으나, 그 꼬투리가 신빙성 없는 거라면 역풍이 크게 불 것이다.
바스카스 후작의 머릿속으론 이미 자신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상태나 다를 바 없었다.
‘빨리 이종과 망령을 치워 버려야겠군. 그래야 아헨탈 후작이 쓸데없는 생각을 안 하겠지.’
그러나 만일, 메시와 티스리스트를 치우고도 아헨탈 후작의 꿍꿍이속이 계속 시커멓다면…….
그땐 상부에다가 보고를 넣을 것이다.
‘아헨탈 후작은 함께 가기 어렵다.’라고.
상부가 원하는 건 후작이 아닌 가문이니 그것만 삼키면 그만이다.
언제든 치워 버리면 그만이라는 점. 그게 바스카스 후작이 아헨탈 후작에게 나름 관대한 이유였다.
두 사람의 상념이 길어질 때, 연회장을 담당하는 시종관이 발을 두 번 구르며 외쳤다.
쿵쿵!
“대왕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연회장의 모두는 예를 갖추어 존경을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이 열리며 등장하는 건 티스리스트와 메시, 뒤를 항상 따르는 발젤렘과 로열 가드들이었다.
연회장의 모두가 허리를 굽혔다. 어느 누구도 잠깐 동안은 머리를 보이지 않았다. 외국의 사절들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이번 작위 수여식의 대성공으로 말미암아 밀밭의 왕이 재기했다는 걸 의미했다.
“그쯤 하면 되었다. 그대들의 부인에게 원망을 듣기 싫으니 이만 접은 허리를 펴라.”
농담 섞인 왕의 말에 늙은 귀족들이 웃었다.
나이가 있는 만큼, 과거 티스리스트의 전성기 통치 시절을 기억하던 자들이었다.
그들의 왕이 돌아왔으니 무슨 말을 해도 즐거울 수밖에.
하지만 왕권이 무너짐으로 해서 지금껏 즐거운 시절을 보내고 있던 현역 귀족들은 아니었다. 왕당파를 제외하곤 모두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왕태자 계파와 이 왕자 계파가 틀림없었다.
그들의 면면을 훑어보곤 왕이 입을 열었다.
“요리는 입에 좀 맞나? 왕실 수석 요리사의 피골이 상접했던데……. 그가 오늘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으면 그리되었겠느냐. 다들 그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먹도록.”
와하하하, 웃음이 가라앉자 왕은 계속 말을 이었다.
“먹고 마시면서 얘기를 들어라. 짐은 많은 귀족이 모인 이 자리에서 중대한 사항을 발표할까 한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펜란지 공작이 물었다. 재상인 자신과 사전의 상의도 없이 왕이 행동했으니, 약간의 불만을 표시한 셈이었다.
티스리스트도 그걸 아는지 달래듯 말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큰 얘길 꺼내게 되어 미안한 이들이 몇 있다. 하나, 이유가 있느니라. 이것은 왕위 계승에 관련된 문제. 어디까지나 짐의 가장 큰 소관이기 때문이다.”
“……!”
“왕위 계승……!”
귀족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왕태자 계파와 이 왕자 계파는 물론, 왕을 따르기 위해 모인 왕당파도 조용할 수 없었다.
외국의 사절들도 만만치 않게 당황한 눈치였다. 보통 이런 민감한 사항은 외부인에게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대들도 알다시피 짐은 가이아 여신님의 성은을 입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 처지에 어찌 감히 이번 성전을 대충 넘길 수 있겠느냐?”
성전?
갑자기 그건 왜?
모두가 의아해하지만, 아헨탈, 바스카스, 저나이스, 펜란지. 여기 네 사람만은 뒷말을 눈치를 챈 기색이었다.
“따라서, 짐은 왕위 계승자를 정하는데 있어 각 계파가 얼마만큼 성전을 잘 치러내는가. 그 결과를 보고 결정하려 한다. 아, 물론 이제 와서 계파 같은 건 없다는 허튼 소리를 할 자들은 없다고 짐은 생각한다.”
“헉…….”
“그, 그렇다면… 저희 모두가 성전에 참여하란 말씀이십니까?”
이름 모를 귀족 하나가 질문을 했다. 왕태자 계파로 추정됐다.
“그건 아니다. 너희 모두가 전시 체제로 들어간다면 왕국의 백성들 전체가 고통을 받을 것이다. 거기다 계파로 나뉘어 전쟁을 치른다면 이 왕자가 아무래도 유리하지 않겠느냐? 거긴 군문 출신이 많으니.”
티스리스트가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건지, 왕태자 계파의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각 계파의 대표 가문을 정해라. 두 가문이 세운 공의 우열을 본 후, 짐이 결과를 결정할 것이다.”
티스리스트가 방도를 제시하자, 연회장엔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의 낯빛은 복잡했다.
왕태자 계파로선 대표간의 대결 방식이 된 건 다행이었지만 그것도 사실 불리했기에 처지가 딱해졌고.
이 왕자 계파로선, 바스카스 후작이 있었기에 자신만만했으나 그가 살벌한 눈으로 왕이 있는 정면을 쏘아보는 통에 난감해했으며.
왕당파로선 부활한 왕권에 충성을 맹세하기로 결정했는데, 왕이 당장 왕위를 계승해 버릴 것처럼 굴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건,
조금과 다르게, 뭉쳐 있던 왕태자 계파와 이 왕자 계파의 귀족들이 서서히 서로를 경계하는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두 자식들이 그러했다.
“전하, 그것은 제게 대단히 불리한 방식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형님, 왕위 계승자를 어찌 결정할지 판단하는 건 어디까지나 전하의 권리입니다. 주제넘지 마십시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형제의 우애를 떠들던 네놈이 할 말이더냐!”
그 광경이 티스리스트의 눈에 들어왔다.
‘이것으로 두 아들 녀석들의 세력이 뭉칠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군.’
설사 두 왕자가 흉심을 품고 뭉친다하더라도, 외국의 사절들 앞에서 이런 선언을 했으니 나머지 왕국들에게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이를 따라야만 하게 생겼다.
‘정말 훌륭한 계책이 아닌가.’
그의 시선이 메시에게로 향했다.
두 아들의 동맹을 깬다는 자신의 목적에도 부합하고, 바스카스 후작의 세력을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메시의 목적에도 일치했다.
“잘되면 모든 건 그대의 공이니라.”
“아직 멀었습니다.”
“뭔가 더 할 게 있단 말인가?”
“고블린을 굴에서 꺼내려면 입구에 불만 질러선 안 됩니다. 나머지 굴을 모두 무너뜨려야 하는 법이지요.”
메시가 말하는 고블린이 누구인지, 왕도 알 거 같았다.
메시와 바스카스 후작은 연회에 들어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서로를 살벌하게 노려보며 눈을 맞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수여식을 기념하는 연회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끝난 후.
바스카스 후작은 다섯 손가락 회의가 열리는 하얀 대리석의 방으로 들어갔다.
공간이 온통 대리석으로 둘러져, 창조차 하나 없는 비밀 공간이었다.
거기엔 가장 먼저 온 아헨탈 후작이 있었다.
“일찍 왔군.”
아헨탈 후작은 굳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바스카스 후작은 지정석에 앉아 맞은편의 아헨탈 후작을 쳐다봤다.
문득 그가 입을 열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얼굴이 폈군.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나.”
“무슨 말씀이신지?”
“숨길 필요 없네. 왕과 그 이종이 자넬 비호해 준 거 같아 기쁠 테지.”
각 계파의 대립으로 성전이 비화되었으니, 왕당파인 아헨탈 후작에게 미칠 영향은 없게 되었다.
그를 겁박하던 자신의 패가 빛 한 점 보지 못하고 폐기되게 생긴 것이다.
오히려 자신이 성전에 합류하게 생겼으니, 아까와는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아헨탈 후작의 안면 근육이 씰룩였으나, 평소와 다름없이 평정을 연기했다.
“그저 우연의 일치라 생각합니다. 이번엔 제 운이 후작님보다 좋았던 거뿐이지요.”
“나 또한 그리 생각하네. 하지만 자네 운이 내 운보다 좋다는 건 동의하지 못하겠군.”
“……?”
설마 왕의 명령을 거부할 셈인가? 아헨탈 후작은 살짝 놀란 눈치로 바스카스를 바라봤다.
“내가 그 광신도들의 전쟁터에 갈 거 같나? 어림도 없네. 그 이득 하나 없는 전쟁터에 내 아까운 병사와 기사들을 잃을 순 없지.”
“거부하실 셈입니까? 사실 후작님만 참여한다면 이번 일처럼 이 왕자 계파에 유리한 상황도 없을 텐데요.”
“유리? 농담을 하는 건가, 모른 척하는 건가. 이 수작은 그저 왕태자 계파와 이 왕자 계파가 손을 못 잡고 대립하도록 불화의 씨를 던진 것뿐일세. 한쪽 계파가 정리되고 나면 과연 왕이 자리를 얌전히 물려줄 거라 생각하나? 권력이 그리워 젊음을 탐한 그 망령이?”
바스카스 후작은 정확하게 메시와 왕의 수작을 읽고 있었다.
“우리들이 왕과 이종이 깔아놓은 판에 얌전히 어울려 봐야 웃는 건 그 둘뿐일세. 거기에 장단 맞춰 줄 필욘 없지.”
아헨탈 후작은 자신하는 바스카스 후작을 보며, 그가 왜 다섯 손가락 회의를 열도록 했는지 알 거 같았다.
어차피 이 왕자 계파는 다섯 손가락들의 의견이 곧 계파의 의견이었다. 바스카스 후작은 손가락들의 동의를 구해, 이 왕자 계파의 모든 귀족들을 움직일 참이었다. 그들이 움직이면 왕태자 계파도 같이 합류할 터.
그렇게 되면 왕권이 회복되지 않은 아시리스 왕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아니면 적어도 바스카스 가문이 참전하는 일은 없도록 할 생각이겠지.’
로안은 그리 예상했다.
이윽고 로힐 백작이 들어왔다. 그는 싫어하는 두 사람이 모여 있는 걸 확인하곤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다음은 저나이스 후작이었고, 마지막으로 들어온 것이 펜란지 공작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펜란지 공작이 회의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를 내가 아닌 바스카스 후작이 소집한 건, 예외적으로 후작이 안건을 올렸기 때문이오. 후작, 하실 말이 있으면 하길 바라오.”
“어렵게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펜란지 공작님. 돌아가는 상황만 봐도 왕이 어떤 의도로 제안한 건지 아실 겁니다.”
끄덕끄덕.
펜란지 공작과 저나이스 후작이 고갯짓을 했다. 로힐 백작은 혼자만 모르는 게 싫었던지, 모르면서도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스카스 후작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왕의 수작에 놀아나선 안 됩니다. 모든 귀족이 왕에게 거절의 의사를 표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 저나이스 후작의 생각은 좀 다른 듯했다.
“허허, 왕의 속셈은 뻔하지만… 이번 기회에 확실히 계승을 받아 낸다면 나쁘지 않은 판이 아니오?”
“맞소. 설사 이번 일을 통해 왕태자 계파가 뿔뿔이 흩어져도 우리가 흡수를 할 수 있을 테고, 또한 왕이 외국의 사절 앞에서까지 약조한 게 있으니 어길 수 없는 계승의 명분까지 우리에게 주는 셈이오.”
‘이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펜란지 공작마저 나서자 바스카스 후작의 인상이 나빠졌다.
“그 망령이 그걸 신경 쓸 거라 생각하십니까? 명분은 둘째 치고, 망령이 죽지 않고 계속 통치를 하면 그만입니다.”
“허허, 그럼 그때 왕을 치면 그만 아니오? 계승의 명분도 확실하게 세워 놓았겠다, 왕이 없어진다 해도 정통성을 보장받을 수 있을 거요.”
“내 생각도 그와 같소.”
펜란지 공작도 저나이스 후작의 의견에 동의하는 듯하자, 결국 다수결로 결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왕당파인 저는 어찌되어도 상관없으니 여기선 기권하겠습니다.”
아헨탈 후작은 한발 뒤로 물러섰고, 로힐은 턱을 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도 기권이라는 뜻이었다.
2 대 1로 바스카스 후작의 의견이 기각된 셈이었다.
‘이리되면… 망령부터 정리하려던 일이 수포로 돌아가는군.’
안타깝지만 후작은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성전에 참여하는 가문은 어디로 할 참입니까?”
“음…….”
공작도 거기선 말을 잇지 못했다.
‘확실한 최선은 바스카스 가문이 대표로 나서 주는 것인데…….’
다들 같은 생각인지 눈치만 볼 뿐이었다.
하나, 바스카스는 같은 다섯 손가락의 일원이었고, 다섯 손가락은 결속된 공동체였다. 한쪽만 손해를 가중하게 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할 부분이었다.
바스카스 후작도 이런 방침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은 그런 걸 어기면서 아헨탈 가문을 전장으로 보내 버리려 했지만 말이다.
어차피 로힐 백작은 아헨탈을 싫어하고, 저나이스와 펜란지 공작 둘 중 하나만 설득하면 다수결로 해결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문이 출병하는 걸 막았으니 반은 성공했군.’
바스카스 후작은 이걸로 나름 만족하기로 했다.
그는 적십자단과의 충돌을 피한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여겼다. 후작은 적십자단을 고평가하고 있었고, 성전의 전망 또한 그리 밝게 보진 않고 있었다.
오히려 그걸 이용할 반대의 수도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성전이 실패로 돌아가 전멸한다면, 그 이종도 죽을 테고 왕이 깔아 놓은 판도 무효로 돌아가는 셈이다.’
판을 엎는 게 무효로 돌아간 이상, 그것이 최선의 방향이다.
그리 생각한 후작이 희생양이 될 가문 하나를 입에서 꺼내려고 할 때였다.
“그야.”
뜬금없게도 예상치 못한 자가 입을 열었다.
“바스카스 후작가가 움직여 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모두의 시선이 아헨탈 후작에게로 쏠렸다.
“……!”
‘이 미친놈이……?’
바스카스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