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4
전업 힐러는 점점 강해진다
(13)
개미굴은 어둡고 습했다. 깊은 지하로 내려가는 거라 숨이 막힐 만도 한데, 그런 변화는 없었다.
곳곳에 작은 숨구멍이 있는 데다가, 통로가 워낙 넓은 탓이다. 3피터에 달하는 기울어진 구멍으로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집어넣는 기분은 좋을 리가 없었다.
용병들은 무저갱 같은 검은 구멍이 무서웠다. 거기서 무언가 튀어나와 발목을 잡아채는, 깊은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제 모습이 무의식중에 올라왔다.
메시는 인터넷에서 봤던 마리아나 해구가 생각났다. 다이버들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영상이었는데, 물만 없을 뿐 똑같았다. 물속이 아니라서 횃불의 빛을 의지할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20분 정도를 아주 느릿하게, 조심해서 내려가자 기울어진 길도 끝을 보였다. 어둠 속으로 발이 쑥 들어가자, 1조 선봉에 선 용병이 움찔 놀랐다. 긴장감에 덩달아 다른 인원들까지 놀랐다.
“뭐야?”
용병은 어둠 속을 발로 휘저어보더니 라망에게 바로 보고 했다.
“길이 끊긴 거 같습니다.”
“끊긴 게 아니다. 아마…”
라망은 시종에게서 횃불을 건네받아 그 아래로 던졌다. 툭, 하고 횃불이 바닥에 떨어져 주변을 비췄다. 통로였다.
“저기가 본격적인 개미굴의 혈관 같군. 우린 그 혈관에 이어진 구멍으로 내려온 거고. 거기 용병, 너는 남아서 2조장에게 말하고 같이 내려오도록.”
확실해진 이상 두려울 건 없었다. 라망은 먼저 몸을 던져 바닥에 착지했다. 그 뒤를 이어 메시와 나머지 1조원들이 내려왔다.
“뭐야…?”
라망이 횃불을 들고 주변을 휘휘 저으면서 통로를 파악하려 했다. 그러자 조금 더 두려운 사실을 알게 됐다.
“단장님, 이거 6피터는 되는 거 같습니다…”
“분명 우리가 내려온 길도 직경 3피터는 되는 길이었는데…”
의외로 몬스터일수록 사람보다 효율적인 부분이 있다. 야생의 본능 때문이다. 그들은 이동 통로에선 더할 나위 없이 효율적이다.
사람이라면 장식이라도 걸고, 그림이라도 새기고, 자신의 권위를 표현하기 위해 천장을 높여서 제 몸과 상관없는 비효율적인 이동 통로를 만든다. 어쩔 땐 사용하지 않는 통로도 정성껏 만드는 게 사람이다.
몬스터들은 그런 게 없다. 자신의 몸이 이동하기 최대한 편한 통로를 만든다. 그리고 반드시 사용한다. 직경 6피터의 통로가 있다면 거기에 걸맞은 몸집의 괴물이 그 통로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거기다 더 불편한 사실은 통로의 벽마다 찍혀있는 무수한 자국들이었다. 갈고리로 찍은 듯한데 천장, 바닥, 벽 가릴 거 없이 통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개미들의 발자국이었다.
멀리서 본다면 체크무늬의 벽지 같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빽빽하게 찍혀있는 상황이었다. 이 정도 숫자가 한 번에 몰려온다면..?
상상만 해도 숨이 가빠졌다.
순간, 라망은 메시를 의심할 정도였다.
‘혹시 이종이 우리를 몰살시키기 위해서 사지로 끌고 가는 건가?’
하지만 메시 혼자 살아서 나갈 만큼 만만한 장소는 아니리라 생각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전투력이 높은 기사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을 목줄로 데려왔으니 별문제 없으리라. 걱정을 금세 접었다.
에레브도, 뒤따라오던 후속조의 가스통, 에일라, 레토. 모두 모여 대열을 정비했다. 통로 상태를 보고도 그들은 메시를 믿는 눈치였다.
“살아서 여기 개미굴에 들어와 볼 줄은 몰랐다. 어떠냐, 아직 네 계획대로냐?”
“아직까지는요.”
메시의 말에 레토는 안심했다.
메시는 주변을 살펴보곤 에레브에게 걸어갔다.
“정비하고 이동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여기서?”
“쉽게 그칠 비가 아니었습니다. 비가 오는 동안은 놈들도 이 통로를 쓸 일이 없을 테니, 차라리 우리도 푹 쉬는 게 나을 겁니다.”
평소라면 개미가 사냥터로 향하는 통로에서 쉰다는 건 나쁜 판단이겠으나, 지금은 달랐다. 날씨가 도움을 줬다.
오는 길에 쏟아지는 비는 나쁜 일이었으나, 굴에 들어오고 나서는 행운의 비가 되준 셈이었다.
졸졸졸…
일행이 들어온 구멍으로 빗물이 계속 흘러들어왔다. 물을 받아 흙을 가라앉히면 식수로도 쓸 수 있을 터였다.
“차라리 놈들의 움직임이 없을 때 조금이라도 돌파하는 게 낫지 않겠나?”
“저라면 그러지 않을 겁니다. 이 기회가 아니라면… 개미굴을 나설 때까지 쉴 수 있는 시간이 잘 없을 겁니다. 예비대를 두고 철저하게 절반씩 운용하는 놈들입니다. 번갈아 가며 우릴 쉬게 놔두지 않겠죠.”
“…좋아. 모두 휴식을 취하고 식사를 준비한다. 경계는 1조부터 하고. 보일, 부상자를 확인해라.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절대 출혈은 안 된다. 피가 나면 즉시 말하도록.”
에레브의 명령에 기사와 시종들이 일시 분란하게 움직였다. 용병들도 그걸 보고 쉴 자리를 찾아야 했다. 누군가는 긴장으로 지쳤는지 식사도 하지 않고 바닥에 등을 댔다. 금세 코를 골았다.
주변이 조금 조용해지자 에레브가 입을 열었다.
“메시, 이제부터 계획은 뭐지? 매번 내가 물을 때마다 대답해줄 생각인가?”
“초조하신가 보군요.”
“…당연하지. 내 목숨과 명예를 다 건 도박이니까. 판돈을 네놈에게 모두 걸었으니 넌 걸맞은 결과물을 내게 줘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걱정하지 마시죠, 이 공자. 제가 분명 안전하게 모셔드린다고 했습니다.”
“크크, 빌어먹을 이종. 입만 살아선… 네놈 얼굴에도 놀란 티가 역력한데 혀는 그리도 사탕 같으냐.”
“저도 이쪽으로는 처음 들어와 봤으니… 어쩔 수 없죠.”
“이쪽으로는 처음..? 그럼 개미굴에 와 본 게 두 번째란 소리냐?”
에레브는 생각지도 못한 사실에 놀랐다. 개미굴을 이전에도 와봤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해봤겠나.
‘역시 이 녀석은 상식 바깥이야. 그래서 쓸모가 있는 거지만…’
물론 그때 메시는 혼자가 아니었다. 사부와 같이 있었으니까. 두려울 게 없을 때였다.
“저를 데리고 개미굴을 돌아다닌 분이 계셨습니다.”
“그 인간도 제정신이 아니군.”
메시의 인상이 팍 나빠졌다. 자기 욕은 들어도 사부 욕은 기분이 매우 나빴다. 그걸 느꼈는지 에레브도 헛기침을 하며 말을 넘겼다.
“그래서 그 인간… 아니, 그분하고는 어디서 들어온 거지?”
“원망의 숲에서 들어왔습니다. 개미들의 ‘광장’에 연결된 통로였는데… 거기부터는 제가 확실하게 길을 인도할 겁니다.”
“개미들한테 광장도 있나? 있을 건 다 있는 놈들이군.”
“극히 효율적인 놈들이지만, 어떤 면에선 가장 인간을 닮았습니다. 가령 인간의 도시에 있는 중앙 광장처럼… 개미굴의 모든 방과 연결되는 중앙 거점이니까요. 우린 거기서… 개미굴의 공주에게로 향할 겁니다.”
“공주? 공주는 왜? 인질이라도 삼을 참인가, 크크!”
에레브는 재밌는 농담이라도 던진 듯 웃었지만, 메시는 정색했다.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맞습니다. 공주를 인질로 삼을 겁니다.”
“…미쳤나? 그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시피 인간과 가장 닮았습니다. 여왕의 후계자만큼 중요한 게 있습니까? 공주를 인질로 잡지 못한다면… 우리 계획은 실패할 겁니다.”
“실패한다면?”
“죽겠죠.”
“…!”
에레브는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게임은 시작됐고, 패는 플레이어들에게 돌아갔다.
에레브는 자신에게 들어온 패가 최상의 패이길 바랐다. 그러나 기도만 하면서 신에게 좋은 패를 달라 애원하는 짓은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이제 자신도 모르는 패를 가장 효과적으로, 안전하게 쓸 수 있도록 플레이어들과의 심리전을 벌이는 일만 남았다.
**
기사들은 이 공자의 주변을 둘러싸고 시종의 도움을 받으며 쉬고 있었다. 심지어 잠시라도 깨끗해지고자 하는 사람은 빗물을 받아 씻기까지 했다.
에레브는 졸린 듯 고급 육포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눈을 붙였다. 주인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 주변의 기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단한 충성심이었다.
번뜩, 갑자기 에레브가 눈을 떴다. 그리곤 3조의 라우드를 몰래 불렀다. 라우드 에릭센, 에릭센 가문의 넷째로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이였다. 라망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라망을 감시해라.”
“단장… 말입니까?”
“조용히 말해라. 내가 왜 조 단위로 잘라서 라망을 멀리 떨어뜨렸겠느냐. 의심되는 상황이 있어서다.”
“…하명해주십시오, 이 공자.”
“분명 라망에게 딴마음이 있다면, 일을 도모하기 위해 동료들도 있을 터. 사람의 심리란 묘해서, 어려운 일을 같이 도모하는 자일수록 멀리 떨어지는 걸 참지 못한다. 라망 같은 우직한 자라면 더 그렇지. 라망이 이끄는 1, 2조… 거기에 속한 이들도 감시해라. 수상한 느낌이 든다면 즉시 보고하도록.”
모략의 밤이었다.
용병들도 바쁘긴 마찬가지였다. 이 조용한 굴속에서 모든 인원이 옆 사람과 소곤소곤 심각하게 대화를 나눴다. 탈출이나, 목숨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들렸다.
에일라는 불안에 떠는 용병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다독거렸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몬 역시 듀렉을 찾아왔다.
“듀렉 형님, 이대로 가다간 위험한 거 아닙니까? 저희 어떡하면 좋습니까.”
“어쩌긴. 기회를 봐서 도망쳐야지. 얌전히 도망칠 순 없을 테니 최대한 기사들을 흔들어야 한다.”
“어떻게 하시려고요? 거기다 덴 형님까지 저렇게 되었는데…”
아몬의 시선 끝엔 드러누운 덴이 보였다. 망가진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따라 내려온 게 기적이었다. 지친 그는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은 지 오래였다.
“저렇게 됐으니 오히려 잘 됐지.”
“…예?”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선전판이 됐잖아. 저 녀석을 볼 때마다 용병들은 귀족과 기사를 불신하고 두려워할 거다. 아몬, 너는 앞으로 덴을 케어 해라. 어차피 같은 조로 움직이니까 가능하겠지?”
“…제가요? 안 그래도 조원들이 불만이 많습니다. 방금 내려올 땐, 조장 기사가 ‘곱게 죽여줄 테니 죽는 게 어떠냐’고 폭언까지 했습니다. 제가 덴 형님을 돌볼 수 있을지…”
“바보 같은 놈, 얘기 못 들었냐? 여기선 절대 못 죽인다. 피를 봐야 하니까.”
“그래도 진심 같았습니다. 걸리적거리면 질식시켜 죽일 놈들입니다.”
“크크, 그럼 덴이 가만히 있을 놈이냐? 절대 혼자 못 죽는다고 혀라도 씹어서 피를 낼 놈이다. 덴한테 전해둬, 놈들은 출혈을 무서워하니까 목숨을 위협하면 그걸로 협박하라고.”
“…알겠습니다.”
“넌 녀석을 데리고 다니면서 최대한 우리 편을 늘려라. 덴 녀석을 옆에 두고 설득하면 절로 겁을 먹을 거다. ‘덴도 저렇게 만들어 버리는 놈들인데, 모든 일이 끝나면 우릴 살려둘까?’ 이렇게만 화두를 던져도 밤에 잠이 안 올걸, 크크.”
“역시, 형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애들 거의 다 후방조로 들어갔지?”
“네, 아까 들어오기 전에 형님이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잘했다. 길눈 좋은 놈들로 해서 계속 벽에 표시 남기고, 돌아갈 길을 외우도록 해.”
듀렉은 탈출할 기회만을 노려왔다. 하지만 계속 미뤄왔던 이유는 강한 군기로 무장한 아헨탈 기사단 때문이었다. 작은 경계의 틈조차 보이지 않는 자들이라 요란한 술잔치에서도 도망을 못 쳤다.
듀렉은 저 정도로 강한 놈들이 왜 저렇게 사는지 이해가 안 갔다. 귀족 하나의 명령에 껌뻑 죽으면서 살아가는 게 행복한가? 그의 기준으론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은 반드시 살아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듀렉 용병단을 크게 키워, 떵떵거리며 살 것이다!’
어두운 굴속에서 그의 두 눈은 야망으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여기 있는 용병들이 자신을 따르게 되면 불가능한 꿈도 아니었다.
듀렉은 수통 속에 물 대신 담아온 술을 홀짝이며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어디에 용병 본부를 차릴까, 기본 의뢰금은 얼마 이상으로 해야 할까, VIP들만을 위한 의뢰 서비스를 만들 순 없을까, 등등… 심지어 본부 데스크에 세울 여자는 자기가 직접 얼굴을 보고 뽑겠다는 계획마저 하고 있었다.
그건 마치, 지나가는 예쁜 여자를 보고는 그녀와의 신혼여행부터 2세의 이름, 손주들의 재롱잔치까지 상상해버리는 일과 같았다.
물론, 누구나 그런 야망을 품을 순 있었다.
탈출 계획도, 행복한 상상도 개인의 자유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가 속한 9조가 경계근무를 서기 전까지였다.
그는 이곳이 원망의 숲 바로 아래 개미굴이라는 것에 좀 더 주의해야 했다.
두두두두두…
“뭐, 뭔가가 온다!”
“깨워! 모두 깨우라고!!”
“…개미다!!!”
끝
ⓒ 10억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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