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5
전업 힐러는 점점 강해진다
(14)
개미굴에 진입하기 전.
메시는 따로 에레브를 찾아왔다. 넝쿨을 두른 군마들을 숲속에 배치하는 작업으로 라망이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
“이 공자, 저와 일 하나 같이 해보지 않겠습니까?”
“갑자기 찾아와서 그런 수상한 냄새가 나는 제안이라… 뭐지?”
에레브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날 찾아온 거 보면 내 지휘권이 필요한 일인가, 아까 그 용병에게 복수라도 하려고?”
“복수라는 건… 싸움이 끝나고 제가 졌을 때 앙갚음을 하는 거지요. 전 지지도 않았고, 싸움은 끝나지도 않았습니다.”
술쟁이 덴 덕분에 실전을 경험했다고, 속 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덴의 등을 떠민 건 다른 이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듀렉, 붉은 여우 용병단을 쪼개기 위해 다른 파벌을 준비하고 있는 자.
“그리고 위험요소를 덜고 가는 일입니다. 분명, 이 공자에게도 좋은 일일 테지요.”
“크크, 절대 사적인 감정은 아니다 이거군. 하긴 고귀한 마음씨를 지녔는데 어련하겠는가.”
빈정대는 걸 보니 믿지 않는 거 같지만, 메시는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어찌 됐든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그만이다.
“듀렉이라는 자가 있습니다. 지금 용병단 안에 파벌을 만들고 있지요.”
“아, 그 덩치 크고 멍청하게 생긴 놈?”
“네. 이 공자도 기억하고 있군요.”
“언젠가 손 좀 봐줘야겠다고 기억은 해뒀지. 그때 건방지게 지껄였거든… 뭐라더라, 우리에게 수치를 새겨준다고 그랬나?”
기사와 용병 간에 충돌이 발생하기 직전, 듀렉이 외친 말이었다.
에레브는 뒤끝이 길었다.
“지금은 서서히 몸집을 불리고 있지만, 가만히 놔두면 가시를 하나씩 드러낼 겁니다. 조금 전에 있었던 일처럼요.”
“그렇게 된 일이었나? 난 웬 얼빠진 놈이 네게 시비를 거는 줄로만 알았더니.”
“탈출하고 싶어서 기회만 노리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공자에게 앙심도 품었다는 거지요.”
“하! 내게?”
“제게 시비를 거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이 공자는 못 건드리겠고… 이 공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도록 저를 건드리는 거지요.”
그제야 에레브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단순히 길 가다 툭 튀어나온 돌부리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알고 봤더니 사람의 발목만을 기다리는 독사가 아닌가?
“계속 얘기해봐.”
“아까 이 공자가 병신으로 만들어버린 덴이라는 자도 챙기고 있더군요. 개미굴에 들어가면 짐덩이가 될 사람을 지금 싸고돈다는 건 좋은 신호가 아닙니다.”
“어딘가에 쓸모가 있어서 그런다는 거겠지.”
“예, 정확하십니다. 지금 이 공자에게 가장 앙심을 품었을 만한 인간이 누구겠습니까? 용병과 공자 사이에 불화를 상징할 만한 존재가 누구겠습니까?”
“그 병신이겠지. 크크.”
자신이 그렇게 만든 것에 대한 일말의 후회나 미안함은 없어 보였다.
사실 메시도 그 처분에 대해선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조금 부족하다고 여겼다.
“명분이 확실할 때 그를 죽였어야 했습니다. 공자. 그랬다면 차라리…”
“오, 넌 용병들을 살려야 직성에 풀리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네 입에서 그런 말을 듣다니 예상외로군.”
“비꼬지 마십시오, 이 공자. 용병들을 살리려는 건, 공자의 일에 용병들이 필요해서입니다. 이 공자의 일이 잘 끝나야 제가 살 수 있으니까요.”
“좋은 태도다, 메시. 대업의 성공이 네 목숨과 직결된다는 걸 잊지 말도록.”
에레브는 목숨을 거론했지만, 메시는 겁이 나지 않았다. 어차피 원망의 숲에서의 실패란 ‘평등한 죽음’을 의미했다. 에레브의 손에 죽을 것도 없이 메시도 죽을 것이다.
그리고 저 귀족은 말을 저리 해도, 이미 메시가 너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은 지 오래다. 말을 툴툴 던지면서도 해줄 건 다 해주고 있다는 게… 혹시 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지. 네 녀석은?”
“청소를 좀 해야겠습니다.”
“…내 손을 빌려달라는 건가?”
자신의 손을 빌린다고 하면 결국 기사를 이용해서 듀렉이라는 놈을 치겠다는 소리 아닌가.
에레브가 생각할 땐 그리 썩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개미굴을 통과하기 위해서 한 명의 용병이라도 더 필요한 상황 아닌가. 기껏 술과 식량을 풀어서 불화를 조금 메운 상태인데… 내 기사단을 이용해서 용병을 처리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될 텐데.’
메시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것보다 간단한 일입니다. 개미굴에 들어갈 때 진형을 조별로만 나누시면 됩니다.”
“조를 짜란 얘긴가. 어떻게?”
“10개 조로 나누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무슨 청소가 된다는 거지?”
에레브는 이해가 안 됐다. 파벌을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없을 텐데.
메시는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놈이 직접 말해주기 전에 이유를 기필코 생각해내겠다고 고민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이 공자, 사람의 심리란 묘한 것입니다.”
“…그게 뭔 개소리지?”
“사람은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속은 대단히 여립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을 같이 도모하는 자일수록 멀리 떨어지는 걸 참지 못하죠. 조를 나눈다는 걸 알게 되면 파벌이 뿔뿔이 흩어질까요? 아닙니다. 도리어 자신들끼리 뭉칠 겁니다.”
“…호오.”
“개미굴에 들어갈 때 넌지시 1조부터 선봉에 세우십시오. 그럼 놈들은 반드시 후방조에 다 몰리게 됩니다. 도망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놈들이니까요. 개미와 싸우기 싫어서라도 그렇게 할 겁니다.”
메시의 말이 끝나고, 에레브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 녀석이 이종만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정말 크게 썼을 텐데.
“네 생각을 알겠다. 개미굴 내부에서부터 후방조를 선봉에 세울 셈이구나.”
“영민하십니다, 이 공자. 우린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개미들이 청소해주길 기다리면 됩니다.”
정확히 용병들의 심리를 꿰뚫고 그걸 이용하는 작전이었다.
에레브는 감탄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빠져있었다.
“그래, 좋은 작전이라는 건 인정하지. 한데 한 가지가 빠졌군. 내가 이걸 왜 승인해야 하지? 후방조에 들어갈 내 기사들도 힘들 텐데.”
듀렉이란 놈이 자신에게 악감정을 품었고, 도망칠 생각인 걸 알았다. 그거야 이제 알았으니 어떻게든 몰래 처리하면 그만 아닌가?
굳이 자신의 기사들을 후방조에 배치해 고생시킬 메리트가 없었다.
“그거야 이 공자에게도 이 작업이 이롭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이 공자께선 지금 라망 경을 의심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
대체, 이놈은, 뭐지?
자신의 건틀릿 아래에 소름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그러고 보니, 라망이 자리를 비우자 바로 이 녀석이 왔다. 떠들다가 우연히 생각난 게 아니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어떻게 그걸 알았지?”
“처음엔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원망의 숲’에 대한 천공성의 자료가 완벽하지 않다는 말에 의문을 가졌습니다.”
메시도 사부에게서 들은 적 있다. [내 말은 틀릴 수 있어도, 천공성의 정보는 틀리지 않는다.] 라는 가르침.
“천공성의 자료에 ‘가장 중요한 정보’가 빠져있다? 모르고 들어간다면 가장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는 정보가? 때마침 이 공자께 설계 당한 에일라 단장이 생각나더군요.”
“과연…”
“이 공자도 그녀를 보고 생각이 드셨을 겁니다. 그렇지요?”
“인정하지. 나 또한 내부자의 이중설계에 휘말린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대표적인 용의자로는 천공성의 자료를 내게 구해온 라망 경이고.”
“더군다나 그는 이 공자의 사람이 아닌 다른 직속 상관을 둔 가신일 겁니다.”
“그래, 맞다. 아버지의 사람이지.”
에레브는 순순히 인정했다. 메시에게 숨겨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느꼈으니까. 이 눈앞의 이종은… 무서운 눈과 머리를 가지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공자. 사람의 심리란… 묘한 것입니다.”
“…그렇군. 네 말의 의미를 알겠다.”
듀렉이 자신의 파벌을 모두 후방조에 모을 것처럼, 라망 역시 자신과 뜻을 함께한 동조자를 무의식적으로 같은 조에 배치할 것이다.
동조자의 식별뿐만 아니라 감시까지, 모든 게 한 번에 해결된다.
메시가 체스판에 놓은 단, 한 수로.
“훌륭하다. 인정하겠다, 메시. 너는 내가 최초로 감탄한 이종이다. 이건 정말로… 내 최대한의 극찬이다.”
“…칭찬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거.”
“네 계획 승인하겠다. 개미굴에 진입하기 직전에 조를 나누도록 하지.”
“좋은 판단이십니다, 이 공자. 그럼 저는 마저 준비를 마치도록 하죠.”
메시는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막사를 나갔다. 에레브는 턱을 쓰다듬으며 그가 사라진 자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크크. 저놈 저거, 진짜… 욕심나는군.”
**
한참 잠을 자다가 경계근무에 투입된 듀렉은 잔뜩 하품했다. 그래도 말번인 9조에 있었던지라 달게 잠을 자고 일어난 편이었다.
듀렉은 갈수록 자신의 똑똑한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개미굴에 진입 전, 조를 나눈다는 얘길 듣자마자 자신의 부하들을 후방조에 몰아넣었다. 덕분에 선봉도 피하고, 근무도 말번이고. 최고의 선택을 했다.
‘역시 난 지도자감이다. 내 말을 따른 덕분에 부하들 모두 최고의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자신과 비교하자면, 단장 에일라는 욕심을 부리다 용병단을 생판 남에게 넘겨주게 된 무능한 계집이다. 거기다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게 한 주범이다.
‘안 되겠어. 모두를 위해서라도 내가 나서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 용병단이 살아남는다.’
달밤에 체조한다는 말처럼, 새벽부터 마음속에 호연지기를 가득 채우는 듀렉이었다.
머릿속에 잡생각이 많아져서일까.
어느새 졸졸 흐르던 물소리가 그친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주변이 조용해졌다.
그때였다.
두두두두두두….
멀리서부터 지각을 흔드는 발소리가 울려 퍼져왔다. 상념에서 벗어나 소리가 울리고 있는 어둠 속을 바라봤다.
“설마…”
“뭐, 뭔가가 온다!”
“깨워! 모두 깨우라고!!”
졸린 눈으로 경계를 서던 용병들이 어느새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마나를 눈에 집중시키던 기사가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적을 구별해냈다.
“개미다!!! 용병들은 방어 대형으로!!!”
“기사들은 정면에서 오는 개미들을 죽여라!! 용병들은 대형을 갖춰 길을 막는다!! 기사들에게 개미들을 보내기만 하면 된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도 정예 기사답게 9조장은 흔들리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명령을 받는 용병들이 잡병이었다는 것이다.
듀렉과 덴, 아몬의 선동에 넘어가 그들의 파벌에 들어갈 만큼 귀가 얇으려면 하나의 전제 조건이 필요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놈들! 내가 말하지 않았나, 방어 대형을 갖추라고!! 무기를 들어!!”
“안 되겠습니다, 조장! 이놈들… 아무래도 경력이 얼마 되지 않거나, 신참 같습니다.”
“무슨 한 조에 신참 용병들이 이렇게 많단 말이야?!”
겁에 질려 패닉이 온 용병들을 보면서 9조장은 윽박질렀다. 이렇게라도 해서 정신을 차리게 할 셈이었다.
하지만 그건 병사들을 다룰 때나 통하는 것이었다. 애초 영지의 병사들이란, 제 가족의 목숨까지 귀족과 기사들의 손아귀에 있기에 어떤 명령에도 목숨 걸고 따르는 것이었다.
용병들은 사정이 달랐다. 몸뚱이가 가족을 먹여 살릴 밥줄이고 자산이었다. 어둠 속 보이지 않는 적의 진격에 겁을 먹은 용병들은 주춤주춤 물러섰다.
“빌어먹을, 안 되겠군. 저놈들은 포기해라. 우리끼리 처리한다. 금방 이 공자께서 지원을 보내주실 거다.”
두두두두두..!
마침내, 거대 개미들과 인간의 첫 충돌이 일어났다. 양측 다 갑자기 마주친 존재들에게 놀란 듯했으나, 개미들은 금세 신나서 인간들에게 달려들었다.
“우, 우아아악! 다가오지 마! 아악!!”
용병 하나가 1.6피터 크기의 개미에게 잡혀 허공으로 붕 떴다. 거대한 집게에 허리가 물려 발을 버둥거렸다.
“이 개새끼야! 이거 놔! 놓으라고!”
그는 탈출하기 위해 용을 썼지만, 개미의 집게와 용력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레벨이 아니었다.
개미는 자기 몸무게의 스무 배를 든다. 그러니 자신보다 가벼운 인간쯤이야 얼마나 쉽겠는가. 오히려 인간이 찢어지면 큰일이므로 집게에 힘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리라.
붙잡힌 남자는 검으로 개미의 머리를 쳤다. 자세가 나오지 않아 힘을 전달할 수 없었다. 딱딱한 각질에 검은 튕겼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미래를 알았다.
픽, 마취 침에 쏘였는지 축 처졌다. 이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 광경이 연이어 반복되자, 그 꼴을 보는 듀렉은 미칠 거 같았다.
“이런, 빌어먹을 개미 새끼들!!”
저 부하들은 모두 제 자산이나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야망을 이루게 해줄 소중한 인적 자산들을 마치 뷔페라도 온 듯 집게로 집어 가져가고 있지 않은가!
“내놔! 내놔!!!”
듀렉은 검을 휘두르며 마구잡이로 개미들을 죽였다. 과연 15년 차 용병답게 그도 보통의 실력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이성을 잃어버렸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에레브는 피식 웃었다. 아마 어디선가 메시도 웃고 있으리라.
“이 공자, 지원을 보내야 할 거 같습니다.”
“좋습니다, 라망 경. 8조와 10조를 보내도록 하죠.”
“8조와 10조 말입니까? 알겠습니다.”
자신이 1, 2조를 이끌고 가려 했으나 에레브가 다른 조를 지목했다. 라망은 의아해졌지만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
“하하. 내 사랑스러운 동생 에레나가 왜 인형 놀이를 그리 좋아하는지 알겠군. 꼭두각시놀이란 참 재밌는 거였어. 하하하!”
에레브의 말에 기사들은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끝
ⓒ 10억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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