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52
151화
메시는 마차의 창문을 열고 바깥 구경을 했다.
오랜만에 보는 도시 아헨탈의 풍경을 두 눈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그건 자신만의 생각임을 깨달았다.
‘서울도 이렇게 빨리 바뀌진 않겠다.’
달라질 거란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헨탈을 떠난 지 2달 만에 이렇게 바뀔 줄이야.
도시의 정문부터 시작해서 내성 입구까지 익숙한 게 거의 없을 정도였다.
대부분 공사를 진행하고 있고, 그대로 남은 익숙한 가게들은 사업이 번성했는지 층수를 늘리며 증축을 감행하는 등 실시간으로 커져 가고 있었다.
‘이 공자가 이렇게 일을 잘했나?’
메시마저 이런 착각이 잠깐 들 정도였으니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어쨌든 도시 아헨탈은 늦은 밤에도 활기를 띠고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도시였다. 이는 아헨탈을 방문한 귀족들과 사제들에게 감명을 줬다.
특히 아헨탈 후작과 같은 작위의 두 사람은 더했다.
“과연, 아헨탈 가문의 성세가 날로 높아지더니. 우리도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바스카스 후작.”
“…그렇군요.”
바스카스 후작은 주변은 살피며 도시 아헨탈을 관찰했다.
‘보고서로 볼 때와 현장은 느낌이 전혀 다르군. 크롬벨령의 인적, 물적 자원들을 흡수하고 있다더니 이 정도 수준이었나.’
야밤에도 건축자재들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야간에 비싼 삯을 주고 일을 시키는 게 더 이익이 될 만큼 빠른 발전을 하고 있다는 뜻.
도시 확장 공사도 이뤄지고 있는지 라이트 마법을 띄워 놓고 북쪽 성벽을 해체하는 모습이 후작의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마탑.
그건 아헨탈 발전의 화룡점정과 마찬가지였다.
불에 타 버렸던 후앙 상단의 경매장 부지는 어느새 대형 공사장으로 뒤바뀌어 있었다. 얼마나 높게 지으려고 하는지 모르겠으나, 땅을 파서 지반을 다지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걸 진두지휘하는 건 웬 땅꼬마(딱시가니) 하나였다.
바스카스는 이 모든 걸 보면서 마음속에 위기감이 샘솟는 걸 느꼈다.
‘역시 아헨탈 후작……. 보통 내기가 아니야. 주변의 어떠한 지원도 없이 이 모든 걸 홀로 일으켰다니. 참으로 수완이 대단한 자구나.’
그 위기감의 정체는 자신과 아헨탈 후작의 성장 배경이 다르다는 점에 있었다.
바스카스 후작 자신은 후원자의 지원과 다섯 손가락을 통해 정치적 권력 기반을 확실히 성립했기에 영지와 가문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력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아헨탈 후작은 그 정반대였다. 가문을 물려받긴 했으나, 거기서 더욱 발전시켜 나간 건 순전히 그의 능력이었다.
그런 자가 다섯 손가락의 정치적 지지까지 얻게 된다면 얼마만큼 성장하게 될까.
차후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질지도 모른다.
중단되긴 했으나, 하우엘을 통해 제거하려 했던 제 판단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아헨탈 가문과 후작……. 가만히 놔둬선 안 되겠어. 마차를 끌고 갈 노새가 필요했던 건데, 이건 마차 안의 사람들을 다 잡아먹을 맹수를 들이는 격이야.’
물론 이 모든 것엔 메시가 관련되어 있었지만, 바스카스 후작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 * *
아헨탈 내성의 입구엔 늦은 밤임에도 많은 가신과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 있었다.
마차의 창으로 이 모습을 보면서 메시는 묘한 감회를 느꼈다.
원망의 숲에서 에레브와 함께 복귀할 때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던 탓이다. 물론 그때는 에레브와 자신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에이러스를 마중 나온 것이었지만 말이다.
하나 지금은 달랐다. 오직 자신을 맞이하러 나온 것이다.
메시가 마차에서 내리자 가장 처음으로 보인 건 집사 그로테인이었다.
“오셨습니까, 사도 예하. 아헨탈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랜만입니다, 그로테인.”
“말씀을 낮춰 주시지요, 예하.”
“한 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 아니겠습니까? 스승에게 말을 낮추는 제자는 없습니다.”
메시에게 육체 단련의 정수를 가르쳐 준 그로테인이었다. 여전히 몸이 우람한 그의 눈이 뿌듯하다는 듯 휘었다.
“여전히… 운동은 열심히 하십니까?”
어디서 들어 본 그의 물음에 메시는 씩 웃으며 답했다.
“제겐 숨쉬기와 같은 것이지요.”
그로테인이 언젠가 했던 말이었다.
메시의 대답이 퍽 만족스러웠는지 그로테인은 웃으며 비켜섰다.
그러자 그 뒤로 도열하여 서 있는 아헨탈 기사단이 보였다. 중심에 선 라망이 검을 뽑아 예를 취하자 마치 파도타기를 하듯 그를 따라 예를 취했다.
동작 하나하나에 강한 기운이 서려 있는 게, 메시가 보기에도 꽤 의외의 모습이었다.
‘전체적으로 수준이 올랐군.’
예전에는 대부분이 브레이브 후반 정도였다면 지금은 라비쉬 중기에 들어서 있었다. 이는 꽤 큰 변화였다.
거기다 선임 기사들의 경우엔 브릴란트도 꽤 보였다. 예전 아헨탈 기사단을 생각해 보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어떻게 이리 달라졌나 생각해 보니 다 자신이 뿌린 씨앗 덕분이었다.
‘라우드의 자질을 패치해 준 덕분인가…….’
특히 라망은 더 그러했다. 어떻게든 크롬벨전까지 1 라우드를 꾸역꾸역 완성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기운은 장군 개미급이었다. 즉, 브릴란트 최상급에 벌써 도달했다는 소리다.
형편없는 자질이었음에도 오랫동안 포기하지 않고 쌓아 온 것들이 이제야 개화하고 있는 듯했다.
“아헨탈 기사단의 부단장, 라망 스트라디무스가 기사단을 대표해 사도 메시 예하께 인사 올립니다!”
“오… 부단장, 영전하셨네요? 그리고 많이 강해지셨는데.”
“부끄럽습니다! 말씀 낮춰 주시지요, 예하!”
“친우끼리 뭘 굳이……. 알겠다. 자네가 부담스러울 테니 사적인 자리에서만 편하게 하기로 하지.”
“황송합니다!”
기사들은 계급과 직위의 위아래에 민감할 것이다. 오히려 그가 원하는 대로 하는 편이 맞는 듯했다. 훌란과 오헨스와 눈을 맞추자 그들도 고개를 숙였다.
상전벽해라는 말이 딱 맞았다. 이들과 원망의 숲을 돌아다닐 때가 바로 얼마 전인 거 같은데.
이를 가장 크게 느낄 수 있는 건 역시나 에레브와의 대면이었다.
“크… 크흠……. 사, 사도 메시… 예하께 인사드립니다…….”
에레브가 더듬더듬 힘겹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실례겠지만, 에레브였기에 그 반응이 웃길 뿐이었다.
“잘 안 들리는데.”
“크흐흠……. 사도 메시 예하께… 인사드립니다!”
목소리 크기가 점점 내려가다가 마지막 끝에서만 살짝 올라갔다. 그의 성질머리로는 최선을 다한 셈이니 놀리는 건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오랜만입니다, 이 공자.”
“펴, 편하게 말씀하시지요, 예하.”
“음, 그럴까? 그래야겠군.”
“하, 하하! 저… 저한테는 사적인 자리에서 편하게 하란 말이 없군요?”
“음, 자네는 되도록 불편하게 해 주고 싶어서 말이야. 하하!”
“하하하!”
에레브는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표정인데, 그의 귓가로 메시가 다가가 속삭였다.
“후후. 둘만 있을 땐 예전처럼 편하게 하시죠, 이 공자. 그나저나, 저한테만 이러지 말고 저기 뒤에 후작들에게도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아, 알겠다. 아니… 알겠습니다, 예하.”
에레브는 서둘러 풍경이 되어 버린 애버든 후작과 바스카스 후작을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메시는 다시 그로테인의 안내를 받으며 내성으로 진입했다.
아쉽게도 프로크스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마탑이 건설되고 있는 마당이니 한창 프로크스 학파의 근간을 성립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데 멀리 세 여자가 눈에 띄었다. 그들 각각이 메시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다른 듯 눈빛에 차이가 보였다.
처음 보는 붉은 머리의 뇌쇄적인 여인은 호기심을, 죽은 대공자의 부인은 안타까움 같은 감정을.
마지막으로 아헨탈 후작의 아내인 엘로이 부인이 강렬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메시 또한 그 눈을 피할 생각은 없었다. 기세를 드러내며 마주 보자 그녀는 흠칫 놀라 시선을 회피했다.
뒤따라오며 호위하는 바르톨로메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적의라……. 그럴 만도 하군.’
메시는 그들을 외면한 채 익숙한 정문 너머 내성 진입로를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이런 찰나의 광경을 계속 메시에게 시선을 두고 있던 바스카스 후작이 놓칠 리 없었다.
* * *
늦은 밤 도착했기에 환영 연회는 자연스럽게 생략되었다.
더군다나 성전을 앞둔 판국에 입에 술을 대는 건 맞지 않다고 여겼는지 간단한 요깃거리만 각자의 숙소에 전달되었다.
숙소는 예전에 머물렀던 자신의 방이었다. 아헨탈 성씨만 머무는 본관에 있는 방.
거기서 짐을 푼 메시는 뜨끈한 닭고기 수프로 속을 달랬다. 수프가 거의 바닥을 보일 때쯤, 예상했던 손님이 찾아왔다.
“메시, 이 망할 녀석! 날 놀려?”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에레브. 그다웠다.
“…둘뿐일 땐 예전처럼 편하게 하라니까 정말 그렇게 하는군요, 이 공자.”
“하하, 억울하면 이제부터 너도 편하게 하든지.”
“아, 그거 좋네.”
냉큼 제안을 받는 메시의 태도에 에레브는 흠칫했다.
‘큭, 언젠간 이런 날이 올 거 같긴 했는데… 너무 빨리 와 버렸군. 대체 어떻게 교단의 사도가 된 거냐고.’
에레브도 내심 예전부터 상상했던 일이었다. 언젠가 메시의 신분이 높아져 서로 격의 없이 말을 나누는 순간을 말이다. 막상 다가오니 역시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냐? 갑자기 사도가 되어서 돌아왔다고 할 땐 에레나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니까.”
에레나가 왕도에서 보낸 서신이 제법 되는지 에레브가 손에 쥔 편지들을 흔들어 댔다.
“설명하자면 길고 알리지 말아야 할 것도 꽤 있어.”
“크흠, 우리 사이에 이러긴가?”
에레브의 말에 메시는 황당하다는 얼굴이 됐다. 우리 사이가 대체 뭔데?
메시는 에레나가 보낸 편지들부터 대충 훑었다. 뭘 설명해야 그간의 정보 격차가 해소될 수 있을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간 그녀가 겪었던 일들이 그녀의 관점에서 적혀 있었는데, 중요한 건 메시의 비밀 같은 부분은 일절 생략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에레나의 두 가지 배려가 담겨 있었다. 하나는 혹시라도 서신이 백나비에게 강탈당할까 염려하는 마음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요한 비밀을 누구에게 알릴지 메시가 직접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메시는 에레브를 보며 고민하다가 이내 말해 주기로 결심했다.
‘아헨탈 후작과 에레나도 아는 판국에… 에레브가 모르면 그것도 이상하긴 하군.’
어차피 두 사람이 메시의 일에 끼어든 이상 아헨탈 가문은 메시와 함께 가야만 했다.
그리고 바스카스 후작과 당분간 계속 일을 벌일 텐데, 후작에 대한 메시의 적대감을 에레브도 알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싹 비운 수프 그릇을 한쪽으로 치우고 메시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메시는 아헨탈 후작에게 고백할 때처럼 과거사부터 꺼내 들었다. 얌전히 듣던 에레브는 ‘바스카스 후작’이라는 말이 나오자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응접관 별실에 있는 그자?”
메시가 고개를 끄덕이자 에레브는 이마를 딱 짚었다.
“골 때리네……. 네 사부의 원수가 근처에 있는 거잖아?”
“그런 셈이지.”
“허.”
에레브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
“어디 가긴, 아헨탈 기사단을 모아야지. 잘됐어. 오늘 처리해 버리고 사고사로 위장해 버리자. 라망 경이 은근히 그런 거 잘한다니까.”
“…헛소리하지 말고 앉아. 그리 간단한 문제였으면 내가 먼저 처리했지.”
“허, 헛소리? 큭. 이 자식, 예전에 미리 교육을 시켜 놨어야 했는데.”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도 얌전히 다시 앉은 에레브에게 후작이 해 온 일들을 설명했다.
다섯 손가락부터 미지의 후원자까지. 그리고 그가 숨기고 있는 힘도.
“크크, 완전 음험한 인간이었네. 그래, 아까 보니 눈초리가 더럽더라고.”
에레브다운 원색적인 비방에 메시도 피식 웃었다.
한편으론 의아했다. 보통 이쯤 되면 이런 위험한 놈에게 복수하려고 자신을 따라왔냐며 노발대발을 하는 게 정상적인데…….
에레브는 그런 반응 따윈 보여 주지도 않았다. 아헨탈 후작의 경우를 생각하던 메시로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위험이야 하겠지. 바스카스 후작이면 크롬벨 백작가하곤 비교도 못 하지.”
“난 그런 후작을 상대하기 위해 아헨탈 가문을 이용하려 했고, 널 따라왔어. 화나지 않아?”
“화? 크크, 웃기시네.”
에레브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다리를 반대로 꼬았다.
“날 너무 바보로 아는 거 아냐?”
“……?”
“애초에 나를 따라 나올 때를 잘 생각해 봐. 네가 나에게 건 조건들이 뭐였지?”
“…….”
고급 이상의 마나연공법, 상승 검술, 선생이 되어 줄 마법사, 정령술을 공부할 경제적 기반, 수련에 도움이 될 물자까지 제공. 그리고 아헨탈 가문의 정보망까지 요구했다.
“혼자 전쟁이라도 치를 것처럼 그런 걸 요구하는데, 조금의 눈치도 못 채고 있으면 이상하잖아? 거기다 사부의 일기를 보고 내려왔다는 놈이 갑자기 눈가가 시뻘겋게 변해선 내 밑에 들어오겠다 하니 더 의아하지.”
확실히 그렇긴 하군. 메시도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눈치채고도 날 받아들였어?”
“왜, 감동했나?”
“아니. 바보 같아서.”
“…바보 맞네. 좋은 말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하지만 메시는 진심이었다.
자신이 에레브의 입장이었더라면 의심했을 것이다. 스승의 일기장을 읽고 온 이종이 벌게진 눈으로 자신을 따라가겠다고 한다면, 그 대가로 강해질 수 있는 지원을 요구한다면 말이다.
아마 조금만 머리를 굴려도 ‘복수’라는 키워드는 생각해 냈을 테고, 자신은 전후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이종을 달달 볶았을 것이다.
복수라는 건 때론 화마처럼 다른 곳까지 영향을 끼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에레브는 하지 않았다.
어째서?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날 가주로 만들어 준다며?”
“…그게 다라고?”
황당해하는 메시를 보며 에레브는 말했다.
“넌 약속을 지키는 녀석이야.”
“……?”
“처음엔 건방진 이종이라고 생각했어. 네가 날 벌목꾼의 요새로 안전히 모셔다 준다고 말할 땐 말이야, 솔직히 반반이었어. 절반은 믿지 않았단 말이지.”
“…….”
에레브는 그 선택의 순간을 다시 떠올렸는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넌 네 능력으로 정말 약속을 지키더라고. 그런 네가 약속을 또 했잖아? 날 가주로 만들어 주겠다고.”
[저를 위해서라도 가주 자리에 올라 주셔야겠습니다. 싫으셔도 제가 억지로 할 테니 하는 수 없겠군요.]
신뢰라는 걸 잘 모르던 에레브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온전히 믿어 본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지금 에레브는 정말 가주 대리가 되었고 유일한 후계자가 되어 있었으니까.
“생전 처음으로 가족 아닌 타인을 믿어 보고 싶더라고. 그것도 이종을.”
메시는 그를 바라보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원망의 숲 초입 때만 생각해 봐도 정말 못 볼 꼴을 여럿 보여 준 게 에레브였다.
그런 그가 약속 하나만을 믿고 자신을 데리고 나왔고, 그로 인해 자신은 귀중한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을 믿어 주고 위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생겼고, 사부의 원한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그리고 복수의 기회까지 가까이 왔다.
이 모든 것은 에레브가 자신을 믿어 줬기에 맺을 수 있었던 열매였다.
귀한 인연이었다.
메시는 살짝 고개를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흠, 역시 이 공자에겐 말을 높이는 게 좋겠습니다.”
“뭐? 갑자기 왜?”
“그냥 이게 편한 거 같습니다.”
존중의 의미였다.
악연으로 시작된 인연이기도 했고, 고생도 더럽게 많이 했지만… 그와의 관계로 인해 지금의 자신이 될 수 있었으니까.
큰 은혜를 입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에레브는 ‘내가 뭐 실수 했나? 이제 좀 편해지고 있었는데?’ 하며 되레 초조해하며 이유를 캐물었다.
하지만 메시는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그는 계속 듣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