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58
157화
뇌가 정지되는 게 이런 기분일까.
바스카스 후작은 방금 들은 말을 다시 떠올려 보려고 무던히 애썼다.
하지만 도무지 상기시켜도 믿기지 않는 말이 들렸다.
‘방금 저 말은… 내가… 이 바스카스가… 협박을 했다는……?’
멍해져 있는데, 엘로이 부인의 말은 멈추지 않고 쏟아졌다.
“제가 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도… 저를 이 자리에 불러내어 억압을 하시다니……. 대체 저를 어찌 보고 이런 참담한 짓을 저지르신단 말인가요?”
“허.”
저도 모르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제야 바스카스 후작의 뇌가 현실을 받아들였고, 서서히 다가오는 충격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급기야 치솟는 열화와 같은 분노.
“이… 이익…….”
당장에라도 저년의 면상을 부숴 버리고 싶다는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본의 아니게 손톱이 손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고통에 후작은 정신을 차렸다.
‘여기서 흔들리면 안 돼.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순간을 넘겨야 한다.’
하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어느새 엘로이 부인은 아헨탈의 안주인에 걸맞은 여인이 되어 바스카스 후작을 향해 당당히 외쳤다.
“저는 엘로이 폰 아니자드. 아헨탈 후작의 부인이에요. 그리고… 아헨탈 영주 대리의 어머니이기도 하지요! 세상에 어느 어머니가 목에 칼이 들어온다고 해서 아들 가슴에 비수를 꽂는단 말입니까. 바스카스 후작, 대답해 주세요!”
* * *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지?
이 광경을 보는 내빈과 손님들 사이에선 소란이 일어났다.
처음엔 바스카스 후작이 자신의 귀에 들린 아헨탈의 비위를 공개해 공론화시키는 자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후작이 불러낸 증인, 아헨탈 후작 부인은 바스카스 후작에게 목숨을 위협당하며 협박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보는 입장에서도 이해가 안 될 수준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바스카스 후작에게로 향했다. 이걸 납득하려면 그의 대답이 간절했다.
하나, 이어지는 말은 모두를 미궁 속으로 빠뜨렸다.
“아헨탈 후작 부인… 이제 와서 어찌 이리 나오신단 말이오. 그대가 직접 말해 준 비위를 이 자리에서 꺼내기까지 내 얼마나 고민을 했건만, 이제 와 겁이 나서 덤터기를 씌운단 말이오?”
“흑!”
반격을 받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이 미친년이……?’
바스카스 후작은 선즙 필승을 시전하는 엘로이의 모습에 억제할 수 없는 분노를 느꼈으나, 침착하게 상황을 풀어 가기로 했다.
“다들 생각해 보시오. 방금 엘로이 부인이 좋은 말씀을 해 주셨소. 어떤 미친 작자가 어머니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아들을 음해하라는 협박을 한단 말이오? 그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 않소!”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스카스 후작, 손으로 해를 가려도 빛까진 감출 수 없는 법입니다. 진실은 그와 같지요.”
지금껏 조용히 상석에만 앉아 있던 사도 메시가 입을 연 것이다.
내빈들의 표정엔 놀람이 들어찼고, 바스카스 후작의 안색은 더욱 나빠졌다.
“이 자리에 오신 분들이라면 영주 대리와 엘로이 부인의 관계가 서먹하며 일반적인 모자와는 다르다는 걸 알고 계실 겁니다.”
“마, 맞아. 적어도 아헨탈령 근방의 이들은 은근히 들어 본 얘기지…….”
“후작 부인은 대공자와 관련된 일에만 모습을 드러냈었으니까…….”
메시의 말에 좌중 전체가 공감했다. 기다렸다는 듯 말을 이었다.
“후작께서도 아헨탈령에 와서 그러한 사실을 들었겠지요. 그걸 이용해 아헨탈 후작과 저를 음해하고자 그녀를 위협한 것 아닙니까?”
“무슨 개소리요, 그건!”
바스카스 후작이 고성을 버럭 지르자 성전십장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메시가 멈춰 세웠다.
“안타깝게도 피는 아무리 옅어져도 물이 될 수 없습니다. 엘로이 후작 부인이 사랑하는 장남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다지만, 그렇다 해서 영주 대리의 어머니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닙니다. 후작은 이를 모르셨나 봅니다.”
“모르긴 뭘 모른단 말이오. 이런 증거 하나 없는 억지 주장을 누가 믿는단 말이야!”
하하하, 메시는 웃음을 터뜨렸다.
“예하는 뭐가 그리 웃기시오. 내 말이 틀렸소?”
“바스카스 후작, 어찌 우습지 않겠습니까. 그대야말로 증거 하나 없이 나와 아헨탈 후작이 거짓말을 했다며 모함하지 않았습니까?”
“증거가 왜 없……!”
바스카스 후작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백나비가 확보한 하이리언 백작령을 오가는 상단의 장부가 자신의 손에 있지 않았다.
그 장부는 엘로이 후작 부인에게 넘겨준 지 오래였던 것이다. 만일 저 이종과 그녀가 붙어먹었다면 시간이 없어 사본조차 만들지 못한 장부는 이미 재가 되었을 터였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처음부터 엘로이 부인과 저 이종이 짜고 나를 속였단 말인가? 어떻게? 엘로이 부인은 적십자단이 숨겨 놓은 간자이지 않은가. 적십자단과 사도가 붙어먹기라도 했단 소리인가? 아니, 애초에 적십자단이 맞기는 한가? 그렇다면 내가 그들로부터 받은 서신의 내용은 어찌 안 거지?’
후작은 혼란을 느꼈다. 어떤 근거를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 모든 게 흐려졌다. 숲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처럼 그는 공황에 빠져 버렸다.
“증거가 없나 보군요. 결국 후작은 증거도 없이 자식을 잃은 엘로이 부인의 아픔을 이용하여 아헨탈 후작과 나를 모함하려 한 겁니다. 응당 이에 대한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그제야 바스카스 후작은 누구의 말도 증명할 수 없는 진흙탕 속에 자신이 끌려 들어왔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어이없게도 그 진흙탕 싸움의 문을 연 건 자기 자신이었다.
그런 주제에 이런 꼴이라니. 수치스러움과 부끄러움이 마음 한편에 몰려오면서도 그는 끝까지 냉정을 놓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건지 파악이 되지 않은 이상 여기서 홀로 떠들어 봐야 불리해질 뿐이다. 수치스럽다 해도 잠깐일 뿐. 차라리 이 일을 빌미로 삼아 내 병력을 성전에서 물리는 구실로 삼자. 백나비로 전후 사정을 파악한 후에 행동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저놈들도 근거 없이 떠드는 소리였다. 자신이 불쾌함을 느껴 군을 뺀다고 해서 제지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 자는 없었다.
후작은 빠르게 자신에게 유리한 형세를 판단했다. 그리고 불쾌하단 기색을 숨기지 않고 외쳤다.
“나, 발락 폰 바스카스. 이번 성전의 성공을 이루고자 위대한 왕 티스리스트 전하의 명을 받아 도우러 왔거늘, 이런 모욕을 당하다니……. 여러분, 난 도무지 참을 수 없소. 자애로우신 가이아 여신께서도 내 억울함을 아신다면 모든 걸 이해해 주시리라 믿소. 나와 내 군대는 이번 성전에서 물러날 것임을 선포하는 바요!”
억울함과 당당함이 서린 일갈이었다.
여론은 6 대 4 정도로 바스카스 후작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으나, 그의 억울함을 믿는 자들이 적은 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사정보단 그의 권력을 믿는 것이기도 했다.
그가 철군을 선언하자 바스카스 후작을 응원하는 음성과 비난하는 말이 엇비슷하게 터져 나왔다.
그런다고 번복할 그가 아니었다. 애버든 후작이나 교단에게 회군을 막을 권리나 명분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웃어?’
바스카스 후작은 메시의 입꼬리가 올라간 걸 목격했다.
어째서?
그가 의문에 빠질 때,
답은 다른 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도 예하! 저자가 그냥 물러나게 둬서는 아니 됩니다! 바스카스 후작은… 적십자단의 간자입니다!”
……!
비명처럼 터진 엘로이 부인의 고성에, 혼란스럽던 좌중이 또다시 숨을 헉, 들이켰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바스카스 후작이 적십자단의 개라고?
‘미, 미쳤어.’
‘여긴 이제 전쟁터나 마찬가지야…….’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애버든 후작과 란폴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침을 삼켰다.
방금 그 말은 지금까지 근거 없이 서로를 비방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바스카스 후작의 얼굴도 잔뜩 굳어졌다.
“보자 보자 하니까… 네년이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게냐!”
기어코 못 참고 그의 주먹이 튀어 나갔을 때, 어느새 그 궤도에 메시가 서 있었다.
“멈춰라.”
쾅!
강한 충격과 함께 바스카스 후작은 뒤로 물러났다. 메시가 공격을 간단히 쳐 내 버린 것이다. 무대가 부서지자 파편이 비산하며 비명이 사방에서 울렸다.
“사도는 비키시오. 난 귀족으로서 내 명예를 지킬 자격이 있소.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단 말이오! 할리스, 저년을 죽여라!”
“바르톨로메오.”
메시가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움직이려는 할리스의 앞에 거대한 쇳덩이 하나가 길을 막았다.
“귀족이 제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건 방해할 일이 아니지만, 그 대상이 이단 제보자라면 얘기가 다르지. 사도는 제보가 있다면 그 자리에서 이단 재판관을 겸할 수 있다.”
메시의 말을 듣자 후작이 피를 토하듯 외쳤다.
“네놈들이 서로 작당을 했구나. 감히 이 따위 수작질로 나를 모략하려는 것인가. 내가 적십자단의 간자라고? 그따위 헛소리를 증거도 없이 감히 씨불이다니. 네놈들은 선을 넘은 것이다!”
바스카스 후작은 메시와 엘로이 부인의 생각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그대로 회군하면 막을 명분이 없으니 교단에서 개입할 수 있도록 적십자단 같은 가짜 명분을 덧씌우는 것이었다.
여기서 얌전히 끌려다니다간 이 자리에서 이단 재판을 당하게 생겼다.
바스카스 후작은 버럭 외쳤다.
“더는 이 횡포를 넘길 수 없다. 흑접 기사단과 내 병사들은 무기를 들어라! 난 이곳을 빠져나가 내 명예를 되찾을 재판을 전하께 요청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선 바스카스 후작은 떳떳했기에 주변을 향해서도 당당히 도움을 요청했다.
“그리고 이 자리의 여러분, 이 발락과 바스카스 가문의 명예를 믿는다면 나를 도와주시오. 후일, 섭섭지 않게 보답하겠소!”
“…바스카스 후작님은 아시리스 왕국의 기둥 중 하나가 아닌가. 모두 도웁시다!”
“맞아. 제아무리 교단이라지만 저분께 이단의 낙인이라니. 너무 나간 거 아니냔 말이야.”
바스카스 후작을 믿는 귀족들은 적은 숫자가 아니었다. 이들이 성금을 내기 위해 모일 만큼 신실한 자들이라 해도, 밑바탕은 아시리스 왕국의 귀족이었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같은 귀족에게 명예롭지 못한 허물을 뒤집어씌우다니. 신앙이 커도 심정적으로 이를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대부분의 귀족이 분노하자 역풍이 불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상황은 자신에게 유리하다. 후작이 그리 생각할 때였다.
―크하하하하하!
―키하하하하!
괴이한 웃음소리에 모두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야외 행사장 곳곳에 붉은 기운을 머금은 이들이 있었다. 내빈 사이에 섞여 있던 자들이 어느새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 익숙한 인물도 있었다. 본체의 기억 속에 있던 자, 유령마를 타고 하루 만에 이곳까지 당도한 웨르베귄이었다.
“물론 도와드려야지요, ‘바스카스 후작’님! 우린 오랫동안 서로를 돕지 않았습니까?”
“자, 계획대로 ‘바스카스 후작’이 무기를 들었다. 아직도 여신의 젖을 빨고 있는 교단의 젖먹이들을 모두 찢어발겨라!”
“후작이 ‘약속된 신호’를 보냈다. 모두 살계를 펼쳐라!”
쾅, 콰아앙!
붉은빛이 번쩍이며 사방에서 폭음과 귀곡성, 비명이 아우성쳤다.
갑자기 나타난 적십자단과 그들의 기습.
그리고 흑마술사들이 한 마디씩 입에 담는 바스카스 후작.
방금까지 후작을 옹호하던 귀족들에겐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상황은 그야말로 갑자기 반전되었다.
이를 보는 후작은 몸을 벌벌 떨 정도였다. 제대로 설계에 당한 것이다.
“이… 이… 이… 개새끼들이!”
쾅!
할리스가 큰 소리를 내며 후작의 근처에 착지했다. 정확히는 바르톨로메오와의 충돌 영향으로 인해 튕겨져 나온 것이었지만.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가주님! 상황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어서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닥쳐라! 지금 도망치면 저 개소리가 사실이라는 걸 인정하는 셈 아니냐! 저놈들과 아무런 상관없다는 것을, 내가 결백하다는 걸 알려야 한다!”
“이 자리에 남는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말할 기회나 줄 거 같습니까! 저길 좀 보십시오!”
할리스가 말한 곳엔 성전십장 아시리스가 제 몸을 흰 성화로 태워 백화의 기둥을 하늘 높이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 신호는 도시 외부에서 대기 중인 성기사들의 눈에 틀림없이 보일 것이다.
그 얘기는 곧 성전에 미친놈들이 이단을 쳐 죽이기 위해 몰려온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메시가 외쳤다.
“바르톨로메오는 소드 마스터 할리스를 상대하라. 그리고 이시도르와 마테오는 흑접 기사단의 어블레이즈들을 무력화시키도록. 이단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할 것이다!”
“명을 따릅니다, 예하!”
덩달아 그 뒤편에선 신이 난 에레브가 광소를 터뜨리며 외쳤다.
“라망 경, 메디에트 경! 기사단과 기마단을 모두 내보내 성기사들을 도우시오! 이때가 아니면 언제 천하의 흑접들을 도륙해 보겠소? 크하하하!”
‘저, 저 입을 찢지 못한 게 내 천추의 한이다!’
바스카스 후작은 피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 * *
쾅, 쾅! 끄아아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폭음과 비명, 냉병기 부딪치는 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까드득.
바스카스 후작은 자신을 둘러싸고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사병과 협공으로 엉망진창이 된 흑접 기사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러나 사병 내엔 백나비들이 숨어 있었고 흑접 기사단은 기본이 브릴란트급이었다. 제아무리 상황이 어렵다 해도 버텨 낼 힘은 있었다.
그럼에도 주위를 살핀 바스카스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는 어렵다. 놈들의 세력이 우위에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다.’
그는 포기 않고 살길을 도모했다.
멀리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애버든 후작에게 외친 것이다.
“애버든 후작, 가만히 지켜볼 것이오? 이 사태의 본질은 아시리스 왕국의 귀족이 교단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고, 적십자단은 그 사이에서 반사 이익을 취하려는 것이오! 제발 정신을 차리시오. 그대는 날 도와야 해!”
그 절규에 애버든 후작이 찔끔했다.
그는 돕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도무지 판단이 서질 않는 것이다.
바스카스 후작의 말도 솔깃하긴 했으나…….
“끼하하! 바스카스 후작! 빨리 우릴 돕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것이오!”
“아스카론 님과의 약속을 기억하시오, 바스카스 후작!”
흑마술사들은 배에 칼이 박히면서까지 저런 말을 남기고 있었으며,
‘바스카스 후작이 이대로 망하고 적십자단의 간자로 밝혀진다면… 이 왕자 세력은 그대로 왕위 계승에서 탈락이지 않은가?’
이해관계에서 함께할 수 없음이 명명백백했다.
바스카스 후작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애버든 후작에게 이리 외치는 건 다른 귀족들이 듣길 바라고 하는 말이었다.
다수의 귀족은 아직도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흑마술사들이 바스카스 후작을 끌어들이는 꼴이 다분히 작위적이었으며, 바스카스 후작의 주장이 제법 그럴싸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데려온 호위들도 적은 숫자가 아니니 합류한다면 후작에게 큰 도움이 될 터.
분위기가 다시 한번 요동칠 때였다.
번쩍! 쾅!
허공에서 매서운 공격이 떨어져 내렸다. 바스카스 후작은 서둘러 몸을 뒤로 뺐다.
자신을 공격한 자는…….
“씹어 먹을 이종 놈이……!”
메시였다. 그는 흔들리는 귀족들이 들으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헛소리에 미혹되는 이들은 잘 보시오. 후작이 적십자단과 관계된 이단이라는 것을 이단 재판관으로서 나, 사도 메시가 보여 주겠소!”
“개소리 마라!”
바스카스 후작의 손짓에 주위에 떨어진 큰 파편들이 메시를 향해 튀어 올랐다. 물론 메시는 주먹을 휘둘러 산산조각 내 버렸다.
‘땅의 정령인가?’
쾅쾅쾅!
갑자기 바닥에서 원뿔형 바위가 치솟아 올랐다. 메시는 그런 공격을 무시하며 발로 밟아 깨부쉈다.
메시의 압도적인 힘이 주먹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단지 땅을 밟고 디디며 전진하는 행위였지만, 거기에 실린 힘만으로 땅에서 시작되는 모든 공격들이 무력화됐다.
바스카스 후작의 눈이 당혹으로 물들었을 땐 이미 다섯 보 내로 접근을 허용한 뒤였다.
메시의 검이 허리춤에서 빠르게 발출됐다.
‘아헨탈 검술.’
예리함과 지극히 단순한 극쾌가 바스카스 후작의 피부를 긁어 댔다.
빛무리를 머금은 검이었으나, 땅의 기운으로 온몸을 단단하게 만든 후작의 육신에 타격을 입히진 못했다.
기다렸다는 듯 후작은 정령의 기운이 실린 일권을 내뻗었다.
메시도 기다렸다는 듯 주먹을 내뻗어 대응했다.
‘멍청한 놈, 땅의 정령이 지닌 견고함은 타격기로 전환될 때 진짜 무서운 법이다!’
잠깐의 접전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 후작이 미소를 지었다.
주먹과 주먹이 부딪쳤다.
그리고.
펑!
난데없이 팔이 터져서 사라졌다.
바스카스 후작은 그 충격에 몸이 붕 떠 뒤로 날아갈 때, 이어지는 고통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크… 크아아아악!”
퍽, 데구르르……. 피를 흩뿌리며 후작은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신체 유실로 인한 고통에 몸부림칠 때, 메시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이, 이런 괴물 같은 놈! 힘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걸 하우엘의 보고로 들었지만… 이건 상식 바깥이 아닌가!’
정령의 힘마저 의미 없게 만드는 괴력이라니. 타인의 설명으로 이해하는 덴 한계가 있었다.
바스카스 후작은 희미해지는 의식을 혀를 꽉 씹어 잡아 냈다.
저벅저벅…….
가까이 다가온 메시를 후작은 쓰러진 채 올려다보았다.
메시는 씩 웃으며 말했다.
“살고 싶을 거 아냐? 얼른 변신해.”
“……!”
그제야 후작은 메시의 생각을 알아차렸다.
놈은 자신의 ‘개변’ 유무를 알고 있었고, 이를 주변에 보여 적십자단과 엮을 속셈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