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61
160화
바르셀로 폰 에이드리언.
그 이름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바스카스 후작은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 과거가 다시 돌아왔다…….’
오래전 자신이 비껴 낸 화살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제 가슴에 명중했다.
마치 짜여진 각본 같았다.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던가?
새삼 느껴진 일련의 흐름에 거스를 수 없는 힘을 느꼈다. 거대한 무력감은 덤이었다.
인간으로서 정해진 명운을 탈피하고자 노력했으나, 자신이 결국 시곗바늘에 불과했음을 깨달은 기분이랄까. 시간이 돌아 다시 정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네가… 그 벌목꾼의 제자란 말이냐?]
“그렇다.”
[아니, 언제 놈이 제자를……? 있었다면 내가 놓쳤을 리 없거늘!]
놈이 모르는 걸 알려 주는 것도 훌륭한 복수였다. 원망의 숲에서 마지막 생을 보낸 스승의 얘기를 해 주자 바스카스 후작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독을… 더 썼어야 했는데……!]
“역시, 반성이라는 걸 모르는구나.”
바스카스 후작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반성? 내가 무슨 죄라도 지었단 말이냐? 내 죄가 있다면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방해하던 그 벌목꾼을 놓친 잘못밖에 없다. 아니, 그놈의 제자까지 찾아 한꺼번에 죽였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게 죄지!]
진실로 그리 믿기에 외친 건 아닌 듯했다.
그렇다 하기엔 두 눈이 떨리고 있었다. 저건 자신이 저지른 짓을 아는 자의 눈이었다.
심판대의 앞에 선 죄인이 제 죄를 부정하는 행색이 그럴까.
“그래, 다행이군.”
[다행?]
“네가 네 죄를 완전히 모르는 거 같진 않으니깐 말이야. 너도 인간이었구나, 바스카스 후작.”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을 뭘로 들은 것이냐……!]
부들부들.
바스카스 후작은 분노인지 당혹감인지 모를 감정들로 인해 몸을 떨어 댔다.
다가온 운명의 무게에 그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잠재된, 그간 잊고 있었던 인간으로서의 죄의식이 떠오르려 한 것이다.
그는 그것을 내리눌렀다.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들인다면 싸우기도 전에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오히려 다른 감정들을 끌어올렸다.
지금의 후작을 있게 해 준 양식 같은 것들 말이다.
그것은 오롯한 ‘부정’이었다.
[난… 난 잘못한 게 없다.]
“뭐?”
[잘못이라면 네 스승이야말로 역사의 죄를 지은 자가 아니냐.]
저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지? 메시의 고개가 옆으로 기울었다.
[네놈은 우리의 연구로 인해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느냐? 무력한 인간은 강대한 힘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이는 신조차 인간에게 내리지 못하는 대단한 축복이다. 우린 그 모든 걸 인간이 가질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미친놈.
제 욕심으로 행한 그 모든 잘못을 저런 대의로 포장해 왔던 것인가.
메시의 음성에 은은한 노기가 서렸다.
“그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냐?”
사부의 여동생인 마드리, 45인의 벌목꾼. 그리고 실험 재료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사람.
이유도 모른 채 가족과 친우를 잃고 그들을 찾기 위해 삶을 투신한 인생들.
그런 건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껄이고 있었다.
[인간이 인간을 먹는다! 원래 이 세상의 법칙이라는 게 그런 것이야! 그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기는 건 순리이지, 역리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역리를 말하고 있는 건 네놈이지!]
바스카스 후작은 피를 토하듯 외쳤다.
[인간사는 다 그리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네놈은 그저 내가 해 온 모든 일이 권력의 영속을 위해 벌인 일이라 생각하겠지만, 문명은 항상 그래 왔다! 그 과정 속에서 위대한 진보와 발전이 일어났던 것이야! 난 순리를 따랐을 뿐, 아무런 죄가 없단 말이다!]
후욱, 후욱.
혼신을 다한 일장 연설이 지나가자 바스카스 후작의 숨소리만이 비어 버린 배경을 채웠다.
메시는 그의 말을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욕망하기에 인간은 점차 나아간다. 그 생각은 나 역시 동의한다.”
예상치 못한 메시의 긍정에 바스카스 후작의 얼굴이 미묘하게 밝아졌다.
[이걸 이해한다면 네 녀석도 신세계에서 살아갈 자격이 있다! 어떠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단한 능력을 지녔어도 진의를 알 수 없는 너를 여태 경계했지만, 이젠 다르다. 네 발목을 잡던 과거만 털어 낸다면 함께 대업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야! 네 엄청난 능력은 미래를 위해 오롯이 쓰일 테고, 힘과 권력, 영생이 네게 주어질 것이다!]
마치 환영한다는 듯 두 팔을 벌려 외치는 후작이었다.
그 역겨운 광경을 보면서 메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까고 있네.”
[…뭐라?]
“힘? 권력? 영생? 세상 사람들이 다 네놈의 욕망처럼 역겨운 것만 원하는 줄 아나?”
메시 전신의 기운이 폭발하는 이글이글 타올랐다.
“네놈은 이해 못 하겠지만, 다수의 이는 그저 행복만을 바랄 뿐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사부와 함께 행복하게 살길 원했고, 사부도 제 말괄량이 여동생과 행복하게 사는 걸 꿈꿨던 분이었다.”
메시의 망막엔 한 풍경이 그려지고 있었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거나 깊은 고뇌에 잠겨 있던 사부. 찻물이 식을 때까지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어디 먼 곳을 바라볼 때가 많았던 사부.
그땐 그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몰랐으나, 이젠 알고 있다.
“45명의 벌목꾼도 제 가족이 있었고, 네놈들 손에 끌려가 핏물이 된 셀 수 없이 많은 이도 함께할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였을 터.”
메시는 바스카스 후작의 가슴을 향해 삿대질하며 쩌렁쩌렁 외쳤다.
“네놈은 타인의 행복과 소중한 것을 집어삼켜 제 욕심만 채우려는 버러지이지, 진보나 미래를 떠들어 댈 자격을 갖춘 자가 아니다! 그저 네놈은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인 악마이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해악인 쓰레기다!”
[네까짓 놈이 뭘 안다고……!]
“알지, 왜 모를까? 네놈도 알고 있잖아? 그따위 허울뿐인 포장이 네 분노의 이유가 아니라, 네 천박한 야망이 물거품이 된 게 화나는 거잖나!”
바스카스 후작은 메시의 말에 가슴이 바늘로 콕콕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맞다.
사실 지금 가장 화가 나는 건 자신의 야망을 이뤄 줄 모든 것이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거니까.
거기에 쐐기를 박듯 메시가 후작의 궤변을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 네놈이 내 은인, 내 사부님을 죽인 건데 긴말이 왜 필요하지? 그딴 개소리 떠들 거 없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는 게 세상의 이치 아닌가.”
너무 간단명료한 정리에 바스카스 후작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평생 외면해 온 사실을 강제로 끌어다가 자신의 앞에다 놓아 버리는 기분이다.
메시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 내가 벌을 줄 테니까… 넌 달게 받아야 할 거다.”
동시에 메시는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노, 노에아넨! 막아라!]
쾅!
땅의 상급 정령이었다. 메시가 딛을 땅에서 흙과 돌로 만들어진 토룡들이 솟아올랐다. 땅이 들썩임을 감지함과 동시에 방향을 틀었으니 무용한 공격이 됐다.
허공으로 치솟은 토룡들이 입을 쩍 벌리곤 메시를 향해 몸을 휘었다. ∩자로 휘어 다시 내려치니, 돌과 흙으로 된 벼락이 치는 듯했다.
‘바르셀로식式 빠른 걸음.’
하나, 메시는 숲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달리는 법을 배운 이였다. 이를 간단히 회피하곤 방향을 오로지 후작이 있는 곳으로 틀었다.
메시가 5보 이내로 접근하자 후작이 수세를 취했다. 두 다리를 디딘 대지에서 거대한 토양의 힘을 전신에 끌어올려 휘감았다.
땅의 정령술, 강철의 대지.
땅과 일체가 되어 그 굳건함을 공유하고 고통마저 분산시키는 기술이었다.
[아무리 네놈의 힘이 강하다 해도 인간이 땅 전체를 부술 순 없는 법이다!]
후작이 비명처럼 외쳤다. 그걸 듣곤 메시가 피식 웃었다.
‘땅을 뭐 하러 다 부수고 있어? 네놈만 부수면 되지.’
휘익, 메시의 휘파람에 의지가 담겼다. 곧장 세찬 강풍이 후작의 몸을 일시적이나마 붕 띄웠다.
대지와의 연결이 끊어지자 후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놈이 그때 연회장의 정령술사였구나!
뒤늦은 깨달음을 비웃듯 허공에 뜬 높이에 맞춰 메시도 박차고 뛰어올랐다. 후작의 체형이 커진 만큼 때릴 부위도 넓다.
메시는 주먹을 말아 쥐고 자신의 거력을 한쪽에 집중시켰다.
그 기세가 느껴진 건지 위급함을 느낀 후작의 날개가 펼쳐졌다. 뒤로 빠지기 위해 날갯짓을 한 번 하려는 순간에 맞춰 메시의 주먹이 복부로 날아들었다.
‘피, 피했…….’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하지만 주먹이 아주 잠깐 닿았다. 거기서 문제가 생겼다. 전달된 힘이 후작의 내부를 진탕시켜 푸른 피가 속에서부터 역류한 것.
[구웨에에엑……!]
공중에서 피를 토한 후작은 떨리는 손으로 입가를 닦았다.
‘대체… 저 괴물은 뭐냔 말이다!’
미친 벌목꾼은 다 죽어 가면서도 어떻게 저런 괴물을 길러 냈을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원한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이내 그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입에 불꽃을 머금고 뱉었다.
[이종 새끼, 저승에서도 네놈의 스승이 못 알아보게 태워 주마!]
화르르륵!
흑마술사들의 골수까지 다 태워 버린 불꽃이었다.
이번엔 거기서 그치지 않고 후작의 날갯짓이 바람의 정령과 조화를 이루었다.
바람이 불을 싣고 공기를 압축하며 회전시키자 불로 이루어진 용오름이 만들어져 주변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후우우웅……!
그건 후작도 예외는 아니었다. 불타는 용오름은 그의 몸까지 집어삼켜 공방 일체를 갖췄다.
제 강대한 힘에 취해 그는 웃음을 흘렸다.
[이 불꽃이 네 살점을 다 녹일 때까지 널 쫓아다닐 것이다!]
회오리치는 불꽃이 메시의 꼬리에 따라붙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고열만으로 화상을 입을 정도였다.
몇 분간 메시는 붉은 용오름을 피해 도망치면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방책을 강구했다. 그사이 근처의 숲엔 모조리 불이 옮겨 붙었다. 주변은 그야말로 불바다였다.
마침내 도망을 포기한 듯 메시는 걸음을 멈췄다.
‘무슨 수를 쓰려는 거지? 설마, 부딪쳐 보겠다는 거냐?’
메시가 승부수를 던졌다는 걸 알아챈 듯 바스카스 후작이 눈을 빛내며 용오름을 전진시켰다.
불꽃이 메시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메시는 뀨 포함, 일부 짐을 멀리 던져 놓곤 자스펠을 뽑은 채로 후작의 소용돌이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그 광경을 본 바스카스 후작은 광소를 터뜨렸다.
[어리석은 놈, 불꽃을 베기라도 할 참이냐!]
그 순간 메시의 몸에서 황금빛 성화가 빛을 발했다.
메시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댄 채 주문을 외웠다.
“힐(Heal).”
힐 마법이 메시의 몸을 감싸자 그대로 불꽃의 용오름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
‘설마, 이걸 뚫겠다고?’
바스카스 후작은 그 어리석은 선택을 비웃었다.
놈은 바람만을 다루니 정령의 불꽃이 얼마나 지독한지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감히 그 안에 몸을 들이밀다니?
‘내가 이겼다, 미친 벌목꾼이여. 네 제자마저 내가 죽여 버렸다!’
바스카스 후작의 예상대로 불꽃은 메시의 몸을 둘러싸고 먹어 치우고 있었다.
방어구와 옷은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버리고 머리카락과 눈썹, 털을 태웠다. 눈은 화상을 입어 제 기능을 잃었고, 살점이라고 멀쩡할 리 없었다. 피부는 오그라들다 못해 녹아내렸다. 검을 붙잡은 손은 녹아들어 자스펠과 하나가 되어 버렸다.
‘견뎌 내야 한다. 그토록 이날을 기다려 오지 않았던가!’
그 고통은 정신을 놓아 버릴 만큼 끔찍했다. 하지만 그는 이 불꽃의 속에서 의식을 잃지 않고 오직 목표물을 향해 똑바르게 나아갔다.
정신줄을 놓는 순간 제 몸을 회복시키는 힐이 사라져 불꽃의 먹이가 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메시의 몸은 재생과 손상을 무한히 반복하다 마침내.
용오름을 뚫고 용오름의 눈이라 할 수 있는 고요의 영역에 도달했다.
펑!
[뭐, 뭐냐!]
튀어나온 건 전신에 끔찍한 붉은 화상을 입은 고깃덩이였다.
재가 되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건 심히 당황스러웠지만, 화상의 상태를 본 후작의 입가가 올라갔다.
그때, 그 알몸의 고깃덩이가 희번덕 눈을 떴다.
후작의 눈이 말할 것도 없이 커졌다.
[마, 말도 안 돼. 그걸 견뎌 냈다고……?]
번쩍!
재점화된 불꽃처럼 황금빛 성화가 메시의 전신을 다시 감쌌다.
그러자 시간이 역행하듯이 붉은 화상들이 사라지고 하얀 살갗이 자라나며 검은 머리카락이 길게 돋아났다.
후작의 근처에 도달했을 땐 이미 이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 얼마나 기다렸는데, 고작 그 잠깐을 못 견딜까 보냐.”
유일하게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은 자스펠이 빛무리를 뿌려 댔다. 잔뜩 빛을 발하는 불꽃 속에서도 지지 않겠다는 듯 찬란히 빛났다.
바스카스 오러 참격술, 그람베 1식式.
강렬한 참격이 번개처럼 내려치자 안 그래도 보랏빛이던 바스카스 후작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건 그가 모를 수가 없는 검식이었다.
‘네놈이 이걸 어떻게!’
놀란 후작이 대검처럼 세워진 오른팔의 손톱을 뒤늦게 휘둘렀으나, 자스펠의 날은 그것이 아무런 장애물도 되지 못한다는 듯 강화된 후작의 손과 뼈를 잘라 냈다.
서걱!
[끄, 끄아아아아악……!]
다른 팔보다 유난히 길었던 오른쪽 팔의 손목이 잘려 나가자 그제야 길이가 맞춰졌다.
후작이 피를 철철 흘리며 비명을 지르는 사이, 그의 몸에 착지해 찰싹 달라붙은 메시는 후작의 목덜미에 팔을 걸고 힘을 꽉 조였다.
우드득.
숨구멍이 막히자 후작은 도살당하는 돼지처럼 괴이한 소리를 냈다. 메시는 자스펠을 던져 버리곤 빈손으로 후작의 날개 한쪽을 오로지 힘으로만 뜯어냈다.
우직!
[끠에에에엑!]
모기 다리를 뽑아내 버리듯 우악스럽게 잡아서 뜯어 버리자 후작의 눈이 고통으로 회까닥 돌아 버렸다. 그 탓에 불꽃의 용오름도 서서히 소멸해 버렸다.
더 이상 공중에 떠 있을 수 없던 후작의 몸이 거꾸로 뒤집혀 메시와 함께 떨어져 내렸다.
그 와중에도 메시는 날개를 뜯은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후작의 머리를 끊임없이 강타했다.
뻑, 뻑, 뻑!
그 광경은 우악스럽기까지 했다.
주먹 한 방, 한 방이 들어갈 때마다 두꺼운 목으로 단단히 지탱되던 후작의 머리가 좌우로 흐느적거렸고, 그 내부는 두개골이 산산조각 나 뇌가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 닿기 직전, 메시는 후작의 몸을 발판 삼아 옆으로 재도약했다.
쾅!
머리부터 땅에 처박힌 후작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머리가 땅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바깥으로 삐져나온 사지는 뇌에 입은 충격으로 인해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 처참한 광경 가까이로 메시가 걸어갔다.
한 손에는 어느새 자스펠을 다시 찾아서 쥔 상태였다.
메시는 땅에 틀어박힌 후작의 몸을 빼냈다. 일말의 저항감도 없이 그대로 끌려 나왔다.
[사, 살려… 살려…….]
머리를 집중적으로 맞은 탓인지 양쪽 눈동자가 각기 다른 방향, 그러니까 11시와 5시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살고 싶다는 의지가 있는지 입으로는 살려 달란 말을 완성도 시키지 못한 채 ‘살려’만 반복했다.
메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후작의 머리에 맨발을 턱 올려놓았다.
“명계에서 누가 널 죽였냐 묻거든 이렇게 대답해라. 널 죽인 건 벌목꾼, 바르셀로의 제자라고. 사부의 귀에 들어갈 수 있게 그것만 기억하면 돼.”
[사, 살려…….]
“그리고 거기서 네놈의 후원자를 기다려라. 내가 그놈도 곧 뒤따라 보내 줄 테니까.”
[사…….]
빠드드득!
주저함 없이 메시가 발에 힘을 주자 두부 으깨지듯 쑥 들어가 버렸다.
매크로처럼 반복되던 후작의 말도 뚝 그쳤다.
그것이 아시리스 왕국을 호령하던 바스카스 후작의 최후였다.
* * *
도시 아헨탈에서 에레브는 불타오르는 산을 불안하게 바라봤다.
산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폭발이 터지더니, 이내 화염이 번져 나가 활화산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어냈다.
도망친 적십자단과 바스카스 후작을 추격하기 위하여 아헨탈 기사단과 성기사들이 올라갔는데, 저 꼴이면 얼마 안 있어 도로 내려오겠거니 싶었다.
퍼엉!
갑자기 큰 폭발이 산봉우리 어디선가 일어났다. 그걸 본 에레브가 욕설을 내뱉었다.
“아이, 씨! 저거 우리 광산인데.”
광산 내부에서 때마침 새어 나오던 가스와 산불이 만나 내부적으로 큰 폭발을 일으킨 듯했다.
에레브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걸 처리하려면 또 몇 날 며칠을 고생해야 할지…….
그런 그의 곁으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땅 꺼지겠습니다.”
“응? 메시냐? 진짜 땅이라도 좀 꺼졌으면 좋겠다. 서류 작업 하면 진절머리가……. 아니, 근데 너… 꼴이 왜 이래?”
에레브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까 봤을 땐 휘황찬란한 사도용 사제복을 입고 있던 인간이 지금은 누더기가 된 붉은 로브 같은 걸 둘러쓰고 있으니 깜짝 놀랄 수밖에.
“뭐냐, 이 붉은 로브는. 적십자단 놈들 거 아냐?”
“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좀 뺏어 입었습니다.”
“빨리 갈아입어. 곧 성기사들 다시 돌아온다. 근데 너, 왜 자꾸 날 보며 히죽거리냐. 기분 나쁘게.”
“오랜만에 뵙는 듯해서 말입니다.”
“…미쳤나?”
아까도 실컷 본 인간이 갑자기 저런 소리를 하니 무서웠다.
그때, 그제야 메시가 끌고 온 시체가 눈에 들어온 건지 에레브는 깜짝 놀라 외쳤다.
“뭐야, 이거! 바스카스 후작 아니야? 언제 가서 잡은 거야, 대체!”
그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보랏빛 괴물의 시체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발로 퍽퍽 차 보는 게 그다웠다.
메시는 그 광경을 눈에 담다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사부, 해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