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70
169화
볼프 성.
분지에 위치한 도시, 크롬벨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요새로, 옛 볼프 가문의 성세가 살아 있을 때 땅꼬마 장인들을 시켜 지은 성이라 수성에 특출하였다.
특히 산이라는 자연 지형을 이용한 방식이다 보니 짓기는 어려웠지만, 완성된 성은 병사들만으로 함락시키기엔 난공불락이었다.
이곳에선 매일 최후의 결사 항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씨발! 온다!”
“시체들이 몰려온다!”
뎅뎅뎅……. 적의 침략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높은 성채 위에서 지켜보는 병사들의 눈엔 산기슭 아래를 가득 채운 시체들이 보였다.
그들은 이동을 곤란하게 하는 산의 지형지물조차 무시하고 항시 보폭을 일정하게 유지했으며, 다리가 꼬여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 뒤를 따르는 동료들의 발받침이 되어 이롭게 했다.
필시 저들은 원래 크롬벨과 그 가신 가문의 주민들이었을 터. 그걸 지켜보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이럴 때마다 들어차는 심마가 마음을 어지럽힌다.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알브헴의 종이 울렸는데 교단은 언제 오는가, 죽은 주민을 또다시 죽이는 게 죄가 되진 않을까. 난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싸우기도 전에 기력이 사그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쯤, 그들의 귀로 들어오는 기도문이 있었다. 대체 언제부터 그걸 읊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알아채면 기도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빛으로 굽어살피시는 가이아시여―. 미망의 그물을 찢어 우리의 안과 밖을 비추시고 지혜와 용기를 가르쳐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찬란한 은빛 성화와 함께 기도문이 끝나고, 하늘의 빛이 먹구름을 가르고 성을 내리쬐었다. 우기의 촉촉함이 느껴지는 빛이 오직 볼프 성만을 가리켰다.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 같아도, 신이 자신들을 살펴보기 위해 구름을 걷어 낸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오오… 여신께서 우리를 굽어살피신다!”
“우린 이길 수 있다! 벌써 열 밤도 넘게 이 성을 지켜 내지 않았던가!”
작은 기적은 무지한 병사들에게 큰 용기를 내려 줬다. 이렇게 또 하루를 싸워 갈 힘을 얻어 가는 것이다.
알란아스터는 사제의 진정한 힘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베네딕트 경,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랄 것이 있겠습니까? 저야 평소 하던 대로 여신께 기도를 올렸을 뿐이지요.”
베네딕트는 무서울 정도로 일관적인 자였다. 단 한 번의 번뇌조차 없다. 후퇴에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마지막 보루인 볼프 성까지 왔음에도 일말의 흔들림조차 없다니……. 소드 마스터에 오른 알란아스터조차도 베네딕트의 평정심엔 고개가 절로 숙여질 지경이었다.
“그 평소대로가 어려운 일인데 경이 해 주고 계시니 감사한 것이지요.”
“허허.”
베네딕트가 인자하게 웃는다. 이런 자가 적십자단과의 전쟁이 시작되면 악귀로 돌변한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시선을 다시 몰려오는 시체들로 돌렸다.
“오늘 적의 규모가 유난히 많아 보입니다. 가뜩이나 병사들과 기사들이 힘들겠군요.”
“알란 경, 제 눈에는 오히려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 자리의 모두는 수십 차례의 교전 끝에 흑마술사전戰의 베테랑이 된 자들이었다. 하지만 베네딕트의 말이라면 경청해야 했다.
“몰려오는 것들을 보지 마시고 그 뒤에 느껴지는 사이함을 느껴 보십시오. 오늘은 평소보다 그 기운이 적지 않습니까?”
“음? 정말 그렇군요.”
“이단과의 전투로 내전이 한 달 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흑마술의 재료가 슬슬 떨어질 때가 되어 가는 거지요.”
“재료라면… 혹…….”
“살아 있는 인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저 쓰레기 같은 벌레 놈들은 침략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걸 감추기 위해 시체로 몸집을 부풀린 것입니다.”
“그, 그렇군요…….”
병사와 기사들에겐 좋은 소식일지 모르나, 알란아스터에겐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그 말은 장차 크롬벨령이 평화를 되찾아도 생산성이 개박살 났다는 뜻이니까. 또, 영지민을 못 지켰다는 소리니까.
이제 볼프 성의 보호를 받고 있는 ‘도시 크롬벨’의 인구가 크롬벨령의 총인구인 셈이다.
안색이 어두워지는데 베네딕트가 추가적인 말로 그의 기운을 북돋았다.
“아니면 다른 가능성도 있습니다. 재료를 아껴야 하는 시기가 온 것이지요.”
“그 말씀은?”
“예. 아군이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자보단 후자가 더 마음에 드는군요. 어느 쪽의 확률이 더 높아 보이십니까?”
베네딕트는 대답 않고 그저 웃었다. 알란아스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이 대화를 부하들에게 흘려야겠습니다. 순순히 말해 주면 안 믿을 테니 몰래 엿들을 기회를 줘야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모두의 사기를 위해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가능합니다.”
알란아스터의 재치는 잘 통했다.
일부러 병사들 근처에서 베네딕트와 비밀 얘기를 하듯 쑥덕거리자, 귀가 밝은 병사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소문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딱히 사기를 고양시키는 외침이 없어도, 이런 은근한 잔불과도 같은 희망이 병사와 기사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알란아스터에게 이런 잔재주가 없었더라면, 아무리 그가 전장에서 성장하는 소드 마스터라 해도 오래 버틸 순 없었을 것이다.
― 크라라라라라!
침공이 시작되었다.
시체들을 정지시키려면 머리를 노려야 하는데, 화살로 저 거리를 넘어 맞추는 건 기예에 가까웠다. 도리어 화살을 아끼기 위해 병사들은 창을 꼬나 쥐고 가만히 지켜봐야만 했다.
예외로 활을 쏠 수 있는 건 기사들이었다.
활쏘기는 기사의 소양 중 하나였으므로, 대부분은 그런 기예가 가능한 이들이었다.
휘익, 퍽!
시체 하나가 이마에 화살 뿔이 돋은 채 뒤로 넘어갔다. 알란아스터가 백발백중에 가깝게 시체들을 쓰러뜨린 후, 검을 들어 올려 한 마디를 하려는데 누군가 기회를 낚아챘다.
“조급해하지 마라! 이 높은 성벽은 저들에게 절벽과 같다! 근근이 올라온 놈들에게 창과 화살 맛을 보여 줘라! 일격에 죽이기 어렵다면 신체 부위를 훼손시켜라!”
베테랑이 되어 버린 로윈의 외침이었다. 제 조카의 성장에 알란은 피식 웃었다.
언데드들 중 덩치가 큰 놈들이 갑자기 성벽 앞에서 멈췄다. 그러곤 갑자기 다른 시체 중 몸집이 작은 녀석들을 잡더니 성벽 위로 던져 대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날아온다!”
공포에 질린 병사의 외침과는 달리, 그 시체들은 성벽을 넘지 못하고 날아와서 퍽퍽 부딪쳐 댔다. 그만큼 볼프 성은 높았다.
“겁먹지 마라! 성벽은 높고도 두껍…….”
콰아앙!
성벽이 흔들릴 만큼의 진동.
뭔가 했더니 던져진 시체들이 폭발하는 소리였다. 아예 성벽을 무너뜨릴 작정인지 폭발하는 시체를 만들어 끌고 온 것이었다.
“이 더러운 새끼들이……!”
“조카야, 흥분하지 마라. 지휘관이 흥분하면 그 감정은 네 것만이 아니게 된다.”
침착한 숙부의 말에 로윈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알란아스터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서, 성벽이 멀쩡한데요?”
“괜히 최후의 고지라 불리는 줄 아느냐. 땅꼬마 장인들의 성은 하찮은 토성과 다르다.”
쾅, 콰앙!
충격에 흔들리긴 해도 볼프 성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계획이 바뀐 것인지 시체들이 하나씩 성벽 아래에 드러눕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몸을 겹쳐 다른 시체들이 올라설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기름과 불을 던져라!”
이미 몇 차례나 겪은 전술이었다. 당황할 것 없이 아껴 둔 기름과 불을 붙여 던졌다. 썩은 시체는 좋은 땔감이었다.
화르르륵!
끼에에에에엑!
성벽 아래가 불바다가 되었다. 온몸에 불이 붙은 시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주변 숲에까지 불을 냈다. 검은 연기가 뿌옇게 오르고 뜨거운 열기가 성까지 밀어닥쳤다.
‘이쯤 되면 뭔가를 소환하거나, 저주를 뿌리거나… 아니면 하늘에서 괴물이라도 떨어져야 보통인데……. 정말 제물이 떨어졌나? 아니면 아군이 온 건가?’
그런 일들이 지금까지 부지기수였다. 그때마다 알란아스터나 베네딕트가 나서서 처리했다. 전날 나타난 스컬 와이번이나 전전날 나왔던 데스 나이트 20기의 수급이 볼프 성 마당에 구르고 다니는 건 그런 이유였다.
쏴아아…….
결국 또 한차례의 침략을 막아 냈다. 물론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그 슬픔을 위로하듯 하늘에선 여름비가 내렸다.
병사들은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서둘러 성벽 바깥으로 던져서 버렸다. 성 내에 시체가 있으면 흑마술사들이 어떤 짓을 할지 몰랐다. 실제로 패전으로 이어졌던 사례 중 하나였다. 그런 경험들이 쌓인 채로 이 철옹 같은 볼프 성에 들어왔으니 수비가 쉽사리 무너질 리 없었다.
높은 성벽 바깥엔 시체의 산이 쌓여 있었다. 아까 타다 만 시체에, 병사들의 시체까지 던져졌다. 불로 다 태워야 하는데 비가 와서 곤란했다.
알란아스터는 모처럼 더러운 몸을 빗물에 씻어 내며 베네딕트에게 물었다.
“적들의 동력이 꺾였든 아군이 오고 있든… 문제는 우리입니다. 버틸 여력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날씨도 습해 식량도 썩어 들어가는 판국이고 도시 쪽도 먹을 입이 많아 지원이 미미한 실정이니…….”
“어쩌시겠습니까. 놈들의 예봉이 꺾인 듯하니 아군에 구원 요청이라도?”
“…저길 뚫고 말입니까?
알란아스터는 볼프 성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광경을 우울하게 쳐다보며 되물었다.
우중충한 날씨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땅은 어두침침하게 바뀌고 있었다. 마치 원망의 숲처럼.
흑마술은 기본적으로 악마들의 힘을 빌려 치르는 마법으로, 그 환경이 명계와 유사할수록 힘이 늘어난다. 따라서 흑마술사들이 유리한 환경으로 토양을 바꾸는 건 기본적인 상책이었다. 문제는 그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괴물들이었다.
“적어도 제가 가야 할 거 같은데… 문제는 저나 베네딕트 경이 빠지면 수성이 어렵습니다. 매일 오늘 같기만 하면 무리가 없겠지만… 이게 놈들의 기만 작전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알란 경이 빠져나오는 걸 유도하거나… 아니면 아군의 방심을 원하거나…….”
“적어도 식량만 지원받으면 한 달은 더 버틸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에 혼잣말을 중얼거리는데, 그때 옆에서 로윈이 끼어들었다.
“숙부, 제가 가겠습니다.”
“…네가?”
“지원군이 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때 제가 전령으로 나서서 출발하면 병사들은 소문을 더욱 신뢰할 겁니다.”
알란아스터는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제 조카를 바라봤다.
함께 생사고락을 넘기며 성장을 하긴 했으나… 이전의 모습이 떠오르며 도통 신뢰가 잘 가지 않았다. 차마 그 말은 할 수가 없어 다른 이유를 가져다 붙였다.
“로윈, 저 어둠의 지대를 봐라. 저길 넘어 아헨탈 방면으로 가야 하는데, 네 실력으론 무리다. 네가 최근 경지가 올라 라비쉬에 도달한 건 안다만…….”
“어차피 이대론 다 죽습니다. 누구라도 가야 한다면 제가 가겠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기사 다섯만 붙여 주십시오. 반드시 돌파해서 우리의 전황을 전달하겠습니다. 정보가 차단되어서 교단은 우리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겁니다.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려야 늦게 지원이라도 오지 않겠습니까!”
로윈이 절절한 어조로 외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알란아스터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좋다, 로윈 폰 크롬벨. 네게 기사 다섯과 서신을 줄 테니 어떻게든 살아서 아군에게 전달해야 한다.”
“예! 맡겨 주십시오, 숙부!”
로윈이 기세등등하게 일어나 몸을 돌렸다. 그런 그의 등을 향해 알란아스터가 말했다.
“…로윈.”
“예?”
“네가 자랑스럽구나.”
로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형님, 그래도 아들 하나는 잘 자라난 거 같소.”
* * *
로윈 폰 크롬벨은 생각했다.
‘튀자! 이대로 여기 있으면 죽는 거밖에 더 있어?’
이종의 계책을 받아들여 알란아스터를 위시한 반란군을 결성, 내전에서 승리하여 크롬벨의 가주에 오른다는 계책 따윈 이미 표류한 지 오래였다. 적십자단이 끼어들면서 내전은 그야말로 개판이 난 것이다.
그때부터 로윈은 그저 살기 위해서, 살고 싶어서 검을 휘둘렀고 병사와 기사들을 지휘해야 했다. 나름의 성장도 거뒀다.
하나, 그렇다 해서 본질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다. 병신이 전쟁터에서 오래 살아남으면 베테랑 병신이 되는 거지, 우수한 천재로 뒤바뀌는 일은 잘 없었다.
‘아군이 오고 있다고? 성전이라고? 미친. 그 말을 지금까지 믿었다가 여기까지 버텼지만, 성기사의 코빼기도 보이질 않아. 우린 버려진 게 틀림없어.’
한 달 전, 알브헴의 종이 울렸을 때만 해도 그는 살아남을 수 있다고 기뻐했으나. 한 달이 지난 지금, 믿음의 삼각형은 닳고 닳아 원이 된 지 오래였다.
결국 그는 결심했다. 탈출을 하기로.
뛰어다니는 해골과 시체들과 싸우면서 굶고 개고생을 하느니, 제물이 없어 적들의 견제가 약해진 틈을 타 도망이라도 쳐 보기로 한 것이다.
“로윈 님! 말을 타고 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놈들의 눈에 띌 가능성이 높으니 다시 한번 재고를…….”
뭐?
걸어서 어둠의 지대를 탈출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말이 없으면 차후 뒤의 다섯 기사를 따돌릴 수도 없었다. 거기다 말은 비상식량으로까지 쓸 수 있다. 무사히 탈출한 뒤엔 군마를 비싸게 팔아 여비를 챙길 수 있으니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좋은 녀석을 놔두고 가자고? 미쳤냐.’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우린 지금 최대한 빠르게 도망… 아니,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우리가 목숨을 내놓고 빠르게 달릴수록 살릴 수 있는 아군의 목숨이 몇이나 늘어날 거 같으냐!”
로윈의 호소력 짙은 외침에 기사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런 마음이신 줄도 모르고……. 저, 얀주스! 로윈 공자님의 각오, 제대로 받았습니다!”
“저희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뭔 씨발, 개소리야.’
속으론 욕을 지껄였으나, 자신의 뒤에 붙은 다섯 기사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 줄 고기 방패들이었다. 티를 낼 순 없었다.
로윈은 대꾸하지 않고 말을 빠르게 몰았다. 다섯 기사도 그의 뒤를 열심히 따랐다.
4일 후.
로윈과 다섯 기사는 무사히 성전 집행군의 본대와 만날 수 있었다.
기사 얀주스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외쳤다.
“로윈 공자님, 살았습니다! 저희가 정말로 임무에 성공했습니다! 공자님의 말씀이 옳았습니다!”
로윈은 그들처럼 기뻐할 수 없었다.
‘…으응? 이게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