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72
171화
“헉…….”
메시의 불호령에 기사와 병사들이 헛바람을 삼킬 정도였다.
즉각 움직인 건 성전십장 바르톨로메오였다. 자신의 성검, 곡해의 망치 ‘해무딘’을 쥐고 튀어 나갔다. 거대한 양손 망치답게 일격에 사람을 쥐포로 만들 수준이었다.
해무딘이 꼬리를 그리며 떨어지기도 전에 벌레 떼처럼 9명은 흩어졌다. 남은 1명은 처음 본 여자였다.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저 여자는 내버려 둬라.”
즉각 해무딘이 방향 전환을 했다. 유성이 도망친 주민 하나에게 그대로 직격했고, 빛과 함께 펑 터졌다.
키에에에에엑!
“비명소리 한번 독특하군.”
사람의 비명보단 짐승의 것에 가까웠다. 주민은 복부 아래가 다 사라졌는데도 바닥을 구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내장과 썩은 피가 바닥에 범벅됐다.
병사와 기사들은 창백하게 질린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이들은 흑마술이 만들어 내는 참혹한 광경에 전혀 내성이 없었다. 성기사들은 재빨리 포위망을 펼치며 남은 8명의 이동을 제한시켰다.
상체 일부가 남은 인간이, 아니 인간이 아닌 존재가 고통 가득한 음성을 흘렸다. 음성에도 고름이 뚝뚝 떨어지는 듯하였다. 그의 피부는 어느새 검게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배가 고픈데… 먹어야 하는데……. 이리되면 배를 채울 수가 없구나…….]
“헉!”
애버든 후작은 겁에 질려 뒤로 주춤 물러섰다. 저들에게 등을 보였던 걸 상상하자 두려움이 끼친 것이다.
“어차피 살아 있어 봐야 동족의 살로 배를 더 채웠을 것이다.”
메시의 차가운 말에 남은 8명이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애원을 시작했다.
“배가, 배가 너무 고픕니다. 제발 먹을 것을 주십시오!”
“고기를 주십시오! 제발! 고기를!”
육류를 찾는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져 병사들은 점차 뒤로 물러섰다.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저들이 찾는 고기가 그 고기가 아닌 걸.
메시는 고개를 돌렸다.
“모두들 잘 기억해 둬라! 흑마술사는 인간을 이렇게 사용한다. 젊은 남자는 제물로, 그 외엔 이렇게 침식된 땅에 풀어놔 동족의 살을 먹여 지독한 괴물로 만든다.”
옛 문헌에나 나오는 고독蠱毒을 만드는 법과 비슷했다. 한 항아리에 맹독을 지닌 벌레들을 몰아넣어 서로를 뜯어먹게 한 뒤, 단 한 마리만 살아남게 하는 것. 이 침식된 땅은 고독 항아리와 같았다. 저 9명은 그런 고독인 셈이었다.
우드득.
점차 8명의 모습도 뒤바뀌고 있었다. 피부는 색이 검게 바래고, 피부 각질이 눈에 띄게 자라 점차 딱딱해지고 있었다. 손톱은 길어지고 눈은 혈안으로 바뀌어 갔다.
[배, 배가… 고프다고 했잖아! 왜, 왜 우릴 괴물로 보는 건데!]
“구울이다!”
[너흰 고기가 많잖아……. 몸에 두르고 다니잖아! 고기를 주지 않겠다면… 그거라도 뺏겠다!]
망자임에도 끊임없이 배고픔에 시달리는 저주에 걸린 언데드였다. 후다닥 소리가 날 만큼 뛰어와 이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성기사들은 이미 대비가 되어 있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갈 때부터 기도문을 중얼중얼 외고 있었던 것이다.
기도문을 마치자 빛이 그들을 가호했다. 아귀들은 그 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하나, 빛을 두른 성기사의 방패에 방향을 잃고 말았다.
푸욱!
순서가 정해진 기계처럼 성기사들은 절도 있게 검을 밀어 넣었다. 성검에 닿은 살은 녹아내려 구울들의 비명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끌끌… 구울들의 수준이 높진 않군. 사람을 얼마 먹지 못한 게야.]
아스카론(티끌)의 설명대로 해치우는 건 손쉬웠다. 하나 사람이었던 것들이 녹아내리는 광경은 이 세계에서도 일반적인 걸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무섭다뀨…….]
뀨마저 겁에 질릴 정도였으니 병사와 용병들이야 헛구역질을 하기 바빴다. 이 지독한 광경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 군세의 사기를 깎아 먹기 좋았다.
심지어 한 기사가 외쳤다.
“이 여자도 수상합니다. 즉시 처분해야 합니다!”
“마, 맞다. 얼른 죽여라!”
구하니 뭐니 할 땐 언제고 이젠 죽이라고 난리였다. 애버든 후작이 펄쩍 뛰었다.
처음 구출되었던 그 여인은 여론이 뒤바뀌자 몸을 부르르 떨며 땅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가까이에 있던 병사가 검을 뽑는데 메시가 이를 제지했다.
“멈춰라. 이 구울들이 우리의 내부로 숨어들지 못한 건 여인의 공이 크다.”
“예?”
그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이다.
메시는 엄격한 표정을 풀곤 조곤조곤 설명해 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 이 여자가 한 말을 못 들었느냐? 살려 달라가 아니라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잖으냐.”
“아… 듣고 보니 그렇군.”
에레브가 납득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이 그랬다. 그건 전혀 의식도 못하고 있었다.
“이런 지옥에서 사람을 만났는데 첫마디가 살려 달라가 아니라 용서해 달라는 건… 자신이 앞으로 할 일을 의미하는 것일 테지. 의도적으로 암시를 한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도 예하! 덕분에 살았습니다.”
여자는 메시의 말을 인정한다는 듯 덩달아 오체투지하며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그 모습에 모두가 술렁였다.
“역시 사도 예하는 다르시다.”
“그 한 마디로 다 눈치채시다니… 보통이 아니셔.”
“천 년 만에 여신께서 직접 선택하셨는데 오죽 대단한 분이겠나? 난 믿고 있었네.”
사도에 대한 신뢰가 굳건해지고 여론이 호의적으로 돌아서자 에레브에게 눈짓했다. 아까의 걱정을 해결했다는 의미였다. 그도 인정한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다만 애버든 후작만은 씩씩대며 얼굴을 붉혔다. 자기가 사지로 들어갈 뻔했는데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고 여긴 것이다.
‘그게 맞긴 하지만.’
그가 죽으면 병권을 흡수할 수 있으니 좋고, 안 죽으면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좋은 경고가 될 것이었다. 앞으로 지휘관의 판단이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될 텐데, 매번 지금처럼 딴 소리를 하면 배가 산으로 갈 것이다.
어쨌든 후자의 경우가 되었으니 뒷수습 정도는 해야 할 터. 메시가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이다.
“애버든 후작, 과연 대단한 연기셨습니다. 정계에 관록이 붙은 분답게 언데드마저 속이셨군요.”
“…으음?”
그는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메시의 눈치를 봤다. 에레브나 아헨탈 후작이었다면 진작 눈치를 채고 합을 맞출 텐데. 메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대사가 좀 장황해지겠군.
“아무리 제가 여인의 암시를 읽고 이단들을 유인하려 했다지만, 이는 성전의 군대에 걸맞지 않은 행위였습니다. 그렇기에 ‘진짜 귀족’이신 애버든 후작께서는 이를 알고 몸소 나서 주셨습니다. 단 한 사람만큼은 위험을 무릅쓰고도 성전의 군대에 맞는 격을 보여 줘야 한다는 것, 이는 절대 쉽게 실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젠장, 애버든 후작님! 믿고 있었습니다!”
에레브가 거친 감탄사로 분위기를 띄우자 성전십장들도 뒤따라 박수를 쳤다. 이내 모두에게 박수를 받는 통에 애버든 후작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하하! 명예를 아는 ‘진짜 귀족’인 이 몸이 나서야지 누가 나서야겠습니까?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데 이런 반응이니… 부끄럽군요.”
[좋다고 웃는다뀨!]
“아닙니다, 아니에요. 이번 일은 만인의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애버든 후작.”
메시는 박수를 치며 후작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앞으로 이렇게 종종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내 결정에 발을 거는 건 자제해 주셨으면 하는군요. 좋은 일하러 왔는데 서로가 추한 꼴을 보여서야 되겠습니까? 후작께선 마차에 편히 앉아 달리는 여정만 즐기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하.”
“별말씀을.”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준 메시는 해의 위치를 보며 외쳤다.
“이 마을을 기반으로 진지를 구축한다! 애버든 후작군은 진지 공사에 전념하고, 아헨탈 후작군은 근방 경계에 전념하라. 세 명의 성전십장은 성기사를 나눠 주변을 수색하도록. 남은 전투 사제들은 식량에 축언을 걸고 땅의 정화와 제염에 착수하도록 한다!”
메시의 명령에 각 지휘관이 고개를 숙였다. 애버든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멍하니 이 광경을 보는 여자를 메시가 가리켰다.
“저 여자는 일단 씻기고 먹을 것을 내주도록.”
“그 일, 제가 도와도 될까요?”
어느새 마차에서 나온 엘로이 부인이 하녀와 함께 메시에게 묻고 있었다. 메시는 부언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둘의 시선이 맞물렸다.
* * *
시녀가 씻을 물을 데우러 가고 또 다른 시녀는 음식을 가지러 갔다. 여인의 옷을 벗긴다는 이유로 호위 기사마저 잠시 문밖으로 나간 사이.
잠깐 동안 엘로이 부인과 여인은 단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여인이 싱긋 웃었다.
“엘로이 님, 아스카론 님의 전언을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흠칫.
“역시 오라버니의 사람이었구나.”
“아헨탈 내성과는 달리 성기사들이 둘러싸고 있는 이곳엔 매번 프루논 경을 보내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따로 저를 파견하셨습니다.”
적십자단에도 궂은일을 전담할 몸종은 필요했다. 환경적으로 정신을 세뇌했을 뿐, 흑마술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자들이었다. 여인이 그러했다.
“그렇구나. 오라버니께서 뭐라시던?”
“아스카론 님은 저들을 침식의 땅 내부로 끌어들이고자 하십니다.”
‘유인을 할 참이로구나.’
엘로이 부인의 눈이 번뜩였다. 그런 기색을 읽지 못하고 여인은 말을 이어 갔다.
“크롬벨령의 침식은 완전히 끝나 가는 상황입니다. 저들을 내부로 밀어 넣고 포위망을 구축하실 것입니다. 흑마종사께서 직접 나서실 테니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기쁘기도 하지만, 동생으로서 걱정이 되는구나. 몸은 괜찮으시더냐?”
은근한 물음에 여인은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저 따위가 어찌 아스카론 님의 건강을 알 수 있겠습니까.”
“되었다. 괜찮으시니 그리 무리를 하시는 거겠지……. 하나뿐인 동생의 속도 모르시고 말이다.”
“엘로이 님…….”
후작 부인은 손수건으로 슬쩍 눈물을 훔쳤다. 여인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오라버니께선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시더냐?”
“아스카론 님께선 엘로이 님이 뒤에 남길 바라셨습니다.”
“뒤에? 같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엘로이 부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예. 교단의 군대가 깊숙이 들어온다면 보급로가 길어질 것입니다. 따로 후방에서 지원을 담당하는 부대 편성이 생길 텐데, 그곳에 합류하길 바라셨습니다.”
“그럼… 나는 후방 부대에서 저들의 지원을 방해하면 되겠구나?”
“날카로우십니다, 엘로이 님. 아스카론 님께선 딱 그것을 원하셨습니다.”
엘로이는 웃으면서 얘기를 듣고 있었지만, 가짜 아스카론의 계획이 범상치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신을 빼 두고 남은 본대를 일거에 쓸어버릴 한 수를 준비 중인 느낌이랄까.
엘로이 부인은 제 기분을 숨기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하지만 너도 방금 겪었듯이 메시라는 자는 만만찮은 이종이다. 안으로 유인하려는 의도를 눈치채면 즉각 군을 물릴 텐데…….”
“걱정 마시옵소서. 제 암시에도 속아 넘어가는 자가 아닙니까? 그리고 저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 소식이 곧 도착할 것입니다.”
“그래……?”
무슨 소식일까, 엘로이 부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로윈과 다섯 기사가 성전 집행군의 진지에 도착한 건 그때쯤이었다.
* * *
로윈은 성전 집행군의 진지에 들어서면서 당황하고 있었다.
‘이런 썅. 진짜로 온 거였어? 진작 좀 오지! 하마터면 뒈질 뻔했잖아.’
성전 집행군이 오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로윈은 절대 볼프 성을 빠져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마음도 모르고 크롬벨 기사 얀주스가 떠들어 댔다.
“하하! 가이아께서도 로윈 공자님의 결사적인 각오를 듣고 감동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저희 모두가 무사히 도착하다니요.”
다섯 기사는 아군에게 볼프 성의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달렸으나, 로윈은 어둠의 대지를 탈출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렸다. 목적은 달랐으나 결과는 같았다.
로윈은 사도가 있다는 마을 집으로 향하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좋다. 창졸간에 일이 이렇게 됐으니… 최대한 이익을 얻어야겠다. 의도는 어떻든 간에 난 볼프 성에서부터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온 전령이다.’
그야말로 큰 공을 세운 것이다. 자신의 숙부마저도 감동을 할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분명 나의 이번 공은 성전에 길이길이 남을 만한 스토리다. 잘만 써먹는다면 내 이름을 드높일 만하지.’
사도가 누군지 모르겠으나, 이걸 인정하지 않곤 못 배길 터.
‘이 정도 공을 세웠으니 사도도 날 푸대접하진 못하겠지. 후후, 이제 얌전히 후방에서 꿀이나 빨면 되겠구나.’
그런 마음을 먹자 로윈은 절로 어깨가 펴지고 걸음걸이가 당당해지는 걸 느꼈다. 이를 본 기사 얀주스는 흡족하게 웃었다.
마침내 사도가 있다는 성전 집행군 지휘부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로윈은 당당히 외쳤다!
“사도 예하, 반갑습니다! 저는 볼프 성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알란아스터 경을 대신해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온 로윈 폰 크롬… 어, 뭐야.”
황당하게 말이 끊기자 모두의 시선이 로윈에게로 쏟아졌다.
“어… 어……?”
그런데도 그는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다.
그의 앞에서 메시와 에레브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로윈은 생각했다.
‘좆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