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87
186화
아스카론(티끌)의 말에 동조하듯이 암흑 물질은 제 형태를 먼저 완성하곤 서서히 질감을 드러냈다.
재질은 모르겠지만, 부서질 거란 생각이 도통 들지 않는 대문이었다. 메시에겐 조금 낯이 익었는데, 왜 그런가 했더니 비슷한 걸 본 적이 있었다.
원망의 숲 유적의 북문. 그것과 똑같은 재질 같았다.
기이이익…….
‘그 대단한 마신의 보물 창고라더니, 기름칠도 안 되어 있나.’
만악 신전의 내탕고가 열리는데 기분 나쁜 마찰음이 들렸다. 그 안에는 빛 한 점 새어 나오지 않는 짙은 어둠뿐이었다. 하늘의 달빛이 전혀 내부를 비추질 못했다.
아스카론이 발악적으로 외쳤다.
「동쪽의 군세를 이끄는 왕이자 공포의 군주, 지옥의 초대 공작. 그 이름도 높은 바알 공, 거기 계신다면 내 말을 잠시 들어 주시오! 절대 이 일은 내 본의가 아니었으며 공을 모욕하고자 하는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소! 이번만 넘어가 준다면 차후 공작을 위하여…….」
기이익, 뚝.
천천히 열리던 내탕고의 문이 잠시 멈췄다. 마치 아스카론의 말을 다 들어 보겠다는 듯한 의중처럼 느껴졌다.
‘저렇게 설득당하면 우리가 준비한 게 소용없게 되는 거 아닙니까?’
[끌끌… 내 저번에 유충에게 지나가듯 말하지 않았나. 마족은 유치하다고.]
[그랬다뀨.]
[바알은 특히 성격이 최악이지. 괜히 마족 사이에서도 공포의 군주라 불리겠는가. 정말 지랄 맞기 이를 데가 없어서 그리 불리는 걸세. 간단히 말하자면, 저런 말 몇 마디로 넘어갈 군주는 아니란 거지. 본신도 그걸 알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거야. 잘 보게나.]
아스카론(티끌)의 설명에 메시도 기대된다는 듯 사태를 관망했다.
문이 열리길 멈추자 아스카론의 얼굴에 혈색이 조금 돌았다. 이리 적극적으로 반응해 줄 줄은 몰랐던 모양. 고조된 어투로 다급히 말을 이었다.
「…사도의 영혼을 묶어 공께 바치겠소! 믿어 주시오. 지금 조금의 시간만 준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오! 그러니……!」
그때.
까악―
아스카론의 말을 끊은 건 웬 까마귀의 울음소리였다.
[쯧쯧, 저런.]
제 본신의 일인데도 이제 남의 일인 것처럼 혀를 차는 아스카론(티끌). 메시로선 저게 또 무슨 일인가 싶었다.
반쯤 열린 바알의 내탕고 문 사이로 검은 까마귀 한 마리가 나와 선회비행을 하더니 내탕고의 문틀에 앉아 울어 댔다.
아스카론의 얼굴은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렸다.
‘대체 어떻게 되어 가는 겁니까?’
[어떻게 되긴, 바알이 상황을 제대로 꼬아 버린 거지. 나베리우스가 사용하는 까마귀 감시자인데 그게 바알의 내탕고에서 나왔으니… 무슨 뜻이겠나?]
‘…둘이서 손을 잡았군요. 아스카론 하나 때문에.’
[쟤, 완전 새 됐다뀨.]
[자신의 계약자가 다른 악마 군주를 불러낸 것도 모자라, 탐나는 산 제물을 냅다 다른 군주에게 바치겠다 외쳤으니……. 보지 않아도 나베리우스의 표정이 어떨지 알 거 같군.]
뀨의 말대로 아스카론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까마귀가 고개를 한 번 갸웃하곤 다시 까악― 하고 울었다.
그 울음이 계속 지껄여 보란 소리로 들리는 건 착각이 아닌 듯했다.
「나, 나베리우스! 그대의 계약자가 사도의 함정에 빠진 거요! 난 이번 일과 무관하오! 그대가 날 도와줘야 해!」
까악?
「바알 공을 설득해 주시오! 그리고 날 도와주시오. 내 그대에게도 분명 보답을…….」
까아악?
바알에게 사도를 주면 나에겐 뭘 줄 건데?
그리 묻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건…….」
아스카론은 말을 더듬었다.
사도 이상의 제물이 있을 리 없다.
부족한 걸 주자니 타 악마 군주에게 바치는 것보다 모자람이 있다면 나베리우스가 어찌 생각할지 뻔했다.
그렇다고 바알에게 말을 바꿔 사도 말고 다른 걸 주겠다고 하면 더 분노할 터.
‘씨발.’
제대로 외통수에 몰렸다. 아빠, 엄마 둘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보다 어려운 상황.
자신이 저 입장이었어도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메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바알이 만든 상황은 아스카론에게 있어 최악이었다.
‘나베리우스가 도울 확률은 없습니까? 그래도 오랜 계약자인데.’
[끌끌… 제3자가 됐으니 얘기하는 거지만, 마신지경을 목표로 자신과 맞먹으려 드는 계약자가 예뻐 보였겠나? 오늘 같은 날만 기다렸을 걸세.]
아스카론(티끌)의 말처럼 나베리우스가 말했다.
까악―
그냥 죽어.
기이이이익……!
그와 동시에 바알의 내탕고가 활짝 열렸다. 가지고 놀렸다는 사실에 분노한 아스카론이 악에 받친 듯 독설을 쏟아 냈다.
하나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내탕고에서 갑자기 황금의 빛이 터져 나왔으니까.
* * *
‘…성화?’
어디서 본 성화였다. 메시는 놀라서 그걸 쳐다보는데, 동그란 구체가 되어 황금빛 성화가 메시에게로 눈 깜짝할 새에 내려왔다.
[어서 잡게!]
얌전히 두고 볼 아스카론이 아니었기에 이미 이쪽을 향해 덤벼들고 있었다.
메시는 재빨리 팔을 뻗어 구체형 성화에 집어넣었다. 손에 부드러운 뭔가가 걸리자 주저하지 않고 붙잡았다. 반사적으로 몸을 내뺐다.
콰과과광!
등 뒤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는 가운데, 메시는 제 손에 들린 것을 쳐다봤다.
‘망토?’
고동색의 망토였다. 비단처럼 주름하나 없었는데, 일시적으로 구길 순 있어도 영구적으로는 주름 생성을 방지하는 마법이 걸린 듯했다.
그런데 이 망토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기운은 분명 자신이 잘 아는 그것이었다.
‘오흐가나……?’
[고대의 성유물이 틀림없네! 얼른 두르게. 바알이 줬다면 절대 보통이 아닐 테니까!]
[뀨뀨! 메시의 신성과 똑같은 냄새가 난다뀨!]
「당장 그걸 내놔―!」
붉은 광선이 유도 미사일이라도 되듯 메시의 뒤를 추적했다.
달리면서 망토를 두르자 전신에서 황금빛 성화가 일어났다. 그로 인해 메시의 몸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틀림없군. 이거… 오흐가나의 성유물이다.’
이 세상에선 악신 취급을 받는 게 오흐가나였다. 오죽하면 헬무드라는 다른 명칭까지 있겠나. 그러니 그녀의 성유물이 멀쩡히 남아 있을 리가 없었다. 오흐가나의 것이라면 엄청나게 희귀한 것이리라.
[근데 바알이 왜 성유물을 갖고 있냐뀨?]
[끌끌… 왜긴. 아마 천계의 창고보다 바알의 창고에 성유물이 더 많을 거다. 수백만 년간 쌓인 전리품이 어디에 처박히겠느냐?]
[사, 상극 아니냐뀨? 그런 걸 잘도 모은다뀨!]
[말했잖느냐, 마족은 유치하다고. 천족의 눈을 뒤집을 수만 있다면 뭔들 못 할까. 적의 유품 하나 넘기지 않고 싹싹 긁어 가면 그만한 모욕과 도발이 어디 있겠느냐.]
그 얘길 듣자 메시는 의아해졌다.
‘하필 그 많고 많은 성유물 중에서 내게 딱 맞는 오흐가나의 것을 내줬다고?’
우연의 일치라기엔 너무 의도적인데.
불현듯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저들도 내게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여태 기다려 온 건지도 모르겠다고.
아마도 오흐가나가 자신에게 타 차원의 모든 가능성을 맡긴 것의 연장선상일 수 있었다. 마신이라고 그 일에 무관하진 않을 테니.
‘그럼… 부담 없이 써 주겠어.’
메시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물들었다.
바알이 내준 성유물은 주인을 만난 대형견처럼 아까부터 자신을 써 달라는 느낌을 팍팍 뿌려 대고 있었다. 나는 뭘 할 수 있고요, 이것도 할 수 있어요……!
이 망토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덕분에 감을 잡은 상태.
‘이 녀석은…….’
부웅, 필요할 때마다 자체적으로 성화를 일으키며 항시 몸의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시켰고.
「이 쥐새끼가!」
수백 자루나 되는 피의 창이 메시의 뒤를 노리며 허공에서 직각으로 쏟아지자.
까앙!
메시가 팔을 뒤로 휘두르며 망토를 크게 펄럭였고, 그에 충돌한 창들은 그대로 무력화되었다.
[엄청난 마법 방어력이다뀨!]
[닿는 것만으로 배열을 파괴하다니……. 마법에 있어선 칼라 이상이군! 바알이 대단한 걸 줬어!]
그 효과에 일순간 뀨와 티끌이 경악했다.
오흐가나의 신격으로 인한 공격 예측과 메시의 회피력, 망토의 마법 방어력이 합쳐지자 아스카론에게 메시는 상극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시간을 끌겠다는 듯 자꾸만 회피하는 메시를 보고 아스카론은 독기를 품었다.
「그래도 끝까지 도망만 치겠다면… 이 일대를 깡그리 날려 주마!」
그 말에 즉각 방향을 전환하는 메시가 보이자 아스카론은 입이 귀에 걸릴 듯 찢어져라 웃었다.
으허허허허!
그 웃음엔 기쁨과 체념, 슬픔, 공황. 복합적인 감정들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이미 그의 몸 5분의 1은 가루로 바스러져 사라진 상황.
「내가… 내가 너희 모두만은 기필코 데려가리라―!」
아스카론이 괴성을 지르며 거대한 눈을 까뒤집었다.
그의 머리 위로 좌표가 찍힌 듯 붉은 에너지가 급속도로 응축, 팽창을 반복하더니 머리 하나가 더 생긴 것처럼 큰 크기를 형성했다.
그걸 보고도 메시는 두려움을 잊은 듯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저 망토를 끌러 머리까지 두를 뿐.
「반신의 전력을 쏟은 내 마탄을 견뎌 낼 수 있으면 견뎌 내 봐라! 이 산과 함께 네놈을 날려 버리면 그만이니……!」
독기 오른 아스카론은 높이 솟아오름과 동시에 전력을 다한 공격을 바닥으로 내려치려했다.
그러나 그의 커다란 동공이 다가오는 메시를 넘어 그 뒤편을 보게 된 순간.
우뚝.
아스카론은 일격을 내던지지 못하고 정지했다.
뭔가가 보인 걸까.
그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서걱―
다리에 힘이 풀리기라도 한 듯 아스카론이 무너져 내렸다. 체격의 4분의 3을 차지할 정도로 커다란 머리를 지탱해 주던 66개의 팔이 일순간 잘린 것이다.
아스카론의 표정이 영문을 모르는 사람처럼 뒤바뀌는데, 전신이 붉은 빛에 싸여 있는 알란아스터가 그 너머에서 나타났다.
알란과 메시의 눈이 허공에서 잠시 마주쳤다.
말은 필요 없었다. 놈을 끝내라는 그리고 끝내자는 무언의 합의가 이뤄졌다.
그 열망에 응답하여 메시는 높이 뛰어올랐다. 아스카론과는 불과 열 걸음도 안 되는 거리.
망토의 추가적인 도움을 받아 지금 자신이 시도할 수 있는 최선의 단계에 도전했다.
두 눈을 감았다.
철컹!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메시는 어느새 자신의 ‘심상 세계’에 도달했다.
이젠 눈에 익어 아늑하게 보일 지경이 된 원망의 숲 속 유적 내부.
북문이 보이는 정면 앞에 서 있는 거대한 존재를 마주 바라봤다.
그간 모습이 보이진 않지만, 그 존재감만은 뚜렷했던 위대한 정신체이며.
메시와의 만남에 있어 보다 격이 적합해진다면 또 만날 수 있을 거라 약조했던 그녀였다.
오흐가나.
항상 차가운 얼굴로 업무에만 집중할 것 같았던 여인이 선명한 보랏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웃고 있었다.
[벌써 날 인식할 정도로 성장했구나.]
그리고 메시의 망토를 바라봤다.
[바알, 그자도 급했나 보군. 내게서 훔쳐 간 것을 도로 뱉다니.]
메시는 한 마디 할까 하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이전에 베네딕트의 심상 세계에서 만난 여신의 조언 때문이었다. 격이 다른 존재와의 만남이 길면 좋지 않다. 그건 대화라는 의식도 포함된 말일 터.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싱긋 웃었다.
[똑똑하구나. 그럼 이만 돌아가거라. 신격의 망토, ‘발몽發蒙’의 새 주인으로서의 인사는 이것으로 되었으니.]
오흐가나의 작별 인사가 끝나자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듯 메시는 심상 세계의 바깥으로 끌려 나갔다.
그리고 눈이 떠짐과 동시에.
성화를 부리는 3단계, ‘개신’을 뛰어넘는 다음 단계의 자물쇠가 헐거워졌음을 알아차렸다.
전력을 일으키며 그것을 거침없이 잡아 뜯었다.
‘4단계, 개방.’
메시의 전신이 금빛으로 코팅되기 시작했다.
* * *
알란아스터는 전투 초기부터 여섯 마창과의 충돌로 정신이 없었다.
사도의 전투를 곁눈질로 자꾸만 살필 정도로 그를 돕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창 각각이 펼치는 무기술들은 평균을 훨씬 상회했다.
싸우면서도 느끼고 있었다. 창의 뒤엔 범상치 않은 기사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나도 볼프 성을 지키지 못하고 죽었다면 일곱 번째 창이 되었으려나.’
촤자장!
여섯 마창 중 다섯은 창이 검이라도 되는 듯 사용하고 있었다. 창으로 검의 묘리를 펼치고 있으니, 전생의 무기가 검인 듯했다.
나머지 하나만이 제대로 창술을 익힌 듯 긴 리치를 지닌 창의 이점을 살려 알란아스터를 압박해 왔다.
전투 초반에는 여섯 소드 마스터에게 사방이 점해져 압박받는 상황에 힘겨움을 느꼈지만,
‘이거 점점 할 만해지는군.’
알란아스터의 천재적인 자질은 여기서도 빛이 나고 있었다.
수십 년간 독에 취하고 술에 몸이 축나고, 음욕에 수련할 시간을 뺏겨도 그를 소드 마스터의 경지로 이끌어 낸 괴물 같은 자질이었다.
스팟.
제대로 된 찌르기가 들어오자 고개를 틀어 비껴 버리고. 그의 팔다리를 노리는 창이 대검처럼 휘둘러져오자 한 발로는 아래의 창대를 밟으며 다른 창들을 쳐 내 넓어진 틈 사이로 몸을 집어넣어 여섯 마창이 고립시킨 영역을 벗어난다.
원혼은 전직 소드 마스터인지 몰라도 지금은 마창을 조종하는, 육체 없는 신세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다섯은 제 무기에 맞는 기술을 펼치고 있지도 않은 상황.
‘자신이 없군, 질 자신이.’
여섯 마창과의 전투가 벌어진 지 십 분쯤 되었을 땐 초기의 압박감이 옅어졌고, 그게 삼십 분쯤 흐르자 각 무기가 펼쳐 내는 무기술을 기초부터 심화까지 하나씩 뜯어내어 이해하기 시작했다.
다섯 마창의 기술은 그저 무기가 창이 아닌 검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리 치환하여 해석하면 그만이었고.
나머지 창술은…….
솔직히 창은 흥미가 떨어져서 발로 방향을 바꿔 사도에게 전달해 버렸다.
그쯤 되자 이 다섯 마창을 상대하는 일은 알란아스터에게 더는 어려운 일이 되지 않았다.
검의 화신은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대체 이것들을 어떻게 떨궈 내지?’
주인인 아스카론이 괴물로 변하자 더욱 빨라지고 강맹해졌다. 그걸 보니 아스카론이 죽기 전까진 멈추지 않을 모양.
박살을 내고 싶어도 다섯 창은 명품에 해당하는지 오러 블레이드로도 좀처럼 타격을 입지 않았다.
주변 상황도 점차 어지러워지는 중이었다.
곳곳에서 붉은빛의 기둥이 뿜어지고, 성은 아스카론으로 인해 무너져 내리고, 더는 수성에 의미가 없어지는 그때.
파드득…….
알란아스터는 당황했다.
전투 중에 새가 자신의 머리 위에 앉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기에.
까악.
검은 까마귀였다. 놈이 머리 위에 앉자 마창이 공격을 정지했다.
자신이 기척도 못 느끼고 머리를 내줬다니. 알란아스터는 새가 보통 존재가 아님을 직감했다.
“…누구십니까?”
알란조차 함부로 하지 못하고 말을 높이는데, 그 까마귀의 검은 두 눈이 붉게 반짝였다.
그와 동시에, 알란아스터는 제 몸에 생각지도 못한 기운이 일어나는 걸 느꼈다.
‘……!’
이건, 말도 안 되지만…….
‘경지의 벽을 강제로 넘겨 버렸어?’
이런 비슷한 경우를 본 적 있긴 했다.
반란 초기, 옛 크롬벨 가문의 어블레이즈 삼인방인 오버트, 에손, 릭레이가 반쪽 소드 마스터가 되어 자신에게 덤벼든 적이 있었다.
셋 다 교육을 해 주고 품을 뒤져 보니 붉은 스크롤이 나왔는데, 이후 베네딕트로부터 ‘경지 돌파’라는 흑마술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혹시나 하고 자신도 사용해 봤으나, 소드 마스터의 경지를 어떻게 끌어올릴 순 없었다.
그때 조금 아쉬워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 저 까마귀가 울자 자신에게 그 마법의 효과가 먹힌 것이다.
‘대체… 이 까마귀가 뭐기에?’
툭툭.
마치, ‘뭘 멀뚱히 쳐다보고 자빠졌냐’고 말하는 듯 까마귀가 부리로 알란아스터의 머리를 쪼았다.
“아야, 아무튼 고맙습니다. 이걸로 예하를 도울 수 있게 됐습니다.”
까악.
까마귀의 울음소리가 ‘그래, 사도를 도와라.’라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새는 그대로 날개를 펴 하늘 높이 날아갔다.
‘세상 살다 보니 별일을 다 겪는군.’
알란아스터는 그리 생각하며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이전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서 검을 ‘무기’로서 통달함과 동시에 마나를 완전히 정제해 오러의 레벨로 끌어올렸다면.
지금은…….
마치 검이 자신의 의지이자 철학이며, 검리로 읽혔다.
“이것이… ‘소드 마이스터Sword meister’의 경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사와 병사들의 손에 쥐여진 무기들 하나하나에 담긴 그 의미들이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그건 마창들도 마찬가지였다. 원혼들이 해석한 검에 대한 관념이 자신의 눈에 뻔히 보였다.
그 말은, 저들을 박살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검에 서린 검리에 따라 무기는 사용자의 의지를 갖고 움직이는 법. 그걸 알고 있다면 적을 무장해제 한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5초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