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91
190화
마력 안개가 빠져나간 연구실 안에서 메시와 릴리, 프로크스는 삼자대면을 했다.
다행히 프로크스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그들에게 따뜻한 차를 한 잔씩 대접했다.
중장년의 마법사는 차를 마시면서도 눈은 메시와 릴리를 번갈아 가며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릴리는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고, 메시는 그저 웃었다.
찻잔을 놓으며 프로크스가 말했다.
“오늘은 참 기묘한 날이네. 그리운 사람의 혈육이라 생각한 사람과 그 그리운 사람을 똑 닮은 사람의 방문이라…….”
메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오해를 하시고 계셨군요. 그때 제가 입을 다물긴 했습니다만, 전 마드리 님의 혈육이 아닙니다.”
“끙. 자네의 검은 머리와 눈 그리고 에이드리언 가문의 반지. 그걸 내게 보이고도 그런 말을 하는 건가.”
몇 마디가 돌았을 뿐인데 많은 정보가 오갔다. 천공성 지부장의 직업병인지 릴리의 눈이 반짝였다.
반면 메시는 과거를 회상하고 있었다.
처음 프로크스와 마주친 날.
그가 물었다. 마드리와는 무슨 사이냐고.
이후 자신과 마드리의 과거를 말해 줬을 뿐 아니라, 메시에게 진실을 요구했다.
당시 프로크스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기에 모든 걸 말해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그때 말씀드렸지요. 궁금해하시는 걸 언젠가 말씀드리겠다고. 대신 그 시기는 제가 정하겠다고.”
“오늘이 그날인가?”
오랜 궁금증이 풀린다는 것에 프로크스의 얼굴엔 화색이 감돌았다.
릴리는 상황을 보다 끼어들었다.
“저… 예하, 그럼 잠시 나가 있을까요?”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건 좋지만, 비밀 얘기임을 알고 눈치껏 물은 것이다. 내가 들어도 되는 거냐고.
“당연히 들어도 됩니다. 이건 릴리 양과도 관련된 이야기니까요.”
“……?”
메시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부에게 주워진 사정. 그리고 뒤늦게 사부의 과거를 알게 된 자신.
그 과거 속에 있던 사부의 여동생.
유적 속에서 발견하지 못한 사라진 여동생의 존재.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프로크스의 얼굴엔 무수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랬군…….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어.”
사부의 얘기를 들을 땐 그도 아는 바가 있는지 침울한 표정을 지었고.
“설마…….”
사라진 여동생의 얘기를 들을 땐 어째서 자신이 릴리를 데려왔는지 깨달은 눈초리였다.
“최근 베네딕트 경으로부터 신기한 얘기를 들었습니다. 릴리 양이 마드리 님과 똑같이 생겼다더군요. 재밌는 점은 릴리 양도 과거의 기억이 없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무려 33년이 흘렀네. 갓난아이가 다 커서 장성한 자식을 갖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지. 하나, 릴리 양은…….”
“압니다. 그때보다 조금 나이를 먹었을 뿐, 별다른 차이가 없지요.”
릴리는 자신을 두고 떠드는 두 사람의 대화를 도통 이해 못 한 얼굴이었다.
“어, 그러니까, 예하? 말씀하시는 걸 들어 보면… 제가 ‘마드리’라는 분과 동일 인물이다, 뭐… 그런 추측을 하신 건가요?”
“정확합니다.”
“아니, 아니……. 하지만 프로크스 님의 말처럼 33년 전의 사람이잖아요? 제가 기억을 잃긴 했지만, 그리 나이를 먹은 건 아닌데요.”
릴리와 프로크스는 같은 의문을 품은 채로 대답을 기다렸다.
메시도 이걸 납득시키기 위해선 한 가지를 더 설명해야 함을 알았다.
차원의 신, 헬무드. 그러니까, 오흐가나에 관해서.
“두 분은… 가이아 여신 외에 다른 신의 존재를 아십니까?”
“네? 가이아 님이 유일신 아니었어요? 아니, 그런 신성 모독적인 말을 예하께서…….”
“알고는 있었네. 오래전 마법들을 복원하다 보면 과거 신들의 기록이 언급되는 건 흔한 일이니까.”
예상대로 마법 복원 전문가인 프로크스는 알고 있었다. 다만 지식의 개념으로 알아 뒀을 뿐. 신에게 의지하는 사람이 아니니 그의 세계관이 흔들릴 만한 충격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드리 님이 사라진 곳은 차원의 신이라 불리는 헬무드의 신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에레브 공자 일행이 열지 못한 장소가 하나 있었지요.”
“…자네 말은, 그곳에 들어간 마드리에게 차원의 신이 설명할 수 없는 조화를 부렸고, 그녀를 현 시간대에 떨어뜨렸다는 소리군.”
“맞습니다.”
릴리는 입만 뻥긋거리며 멍한 상태였다.
그녀가 받아들이기엔 스케일이 큰 이야기였다.
[침 흐른다뀨.]
프로크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자네가 모르고 있는 게 있어. 사제들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신’이라는 지배자의 위대함으로 납득하겠지만, 이 세계의 이면과 작동 원리를 탐구하는 마법사들에겐 신도 이 자연계에서 살아가는 한쪽 축에 불과할 뿐이네. 요컨대, 관리자 같은 거지.”
사제가 마법사로 전향하는 경우는 있어도 마법사가 사제로 전향하는 경우는 없다.
‘세계’와 그것을 구성하는 ‘마나’. 그리고 세계의 원리를 이해한 후 그걸 뒤틀어 가며 현실 속에 제 관념을 구현하는 ‘마법’.
이 흐름을 이해한 자들에게는 신의 존재 하나만으로 세계가 해석되진 않았다.
프로크스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들이 완전무결에 가깝긴 하지만, 전지전능하진 않다는 걸세. 한 인간의 시간대 축을 바꾸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으나, 신이 그걸 감당해 주었다 해도…….”
프로크스가 말꼬리를 흐리며 릴리를 슬쩍 쳐다봤다.
“존재의 시간대를 바꾼다는 건… 한 인간의 격이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야. 마드리의 정신이 버텨 내지 못했을 걸세.”
그건 메시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프로크스가 모르는 건,
눈앞에 그런 일을 겪은 자가 또 있다는 것이다.
메시는 자신이 어떻게 이 세계로 왔고, 신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도 알고 있었다.
“버텨 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린 그 증거를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아니, 설마…….”
메시의 말에 프로크스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자신이 잊고 있던 릴리의 상태가 기억난 것이다.
메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녀의 기억을 닫아 놓은 겁니다. 그러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기억에 정신이 붕괴될 테니까요.”
하나의 가설이 완성되었다.
프로크스도, 릴리도 이 순간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저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신들이 자아낸 거대한 서사 속으로 들어와 있었던 셈이므로.
그리고.
기나긴 복수의 길을 걸어오면서 이 모든 걸 놓치지 않고 알아낸 눈앞의 사내에 대해 작은 경의를 느꼈다.
‘홀로 이 모든 걸 헤쳐 오기까지 대체 얼마나…….’
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메시가 선언하듯 말했다.
“전 릴리 양을 교황청 ‘바라헨델’로 데려갈 생각입니다. 그곳 지하에…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 줄 성유물이 있습니다.”
* * *
아헨탈 후작은 초췌한 기색으로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곡기를 끊은 상태로 칩거하다가 나온 몸이었다. 정상일 리가 없었다. 관리되지 않은 수염은 듬성듬성했고, 낯빛이 창백한 게 당장이라도 각혈을 할 듯했다.
며칠간 후작의 상태를 아는 모두가 메시에게 달려와 치료를 해 달라 아우성이었으나, 마음의 병임을 아는 메시로선 후작이 무사히 이겨 내길 바라야만 했다.
그러길 나흘. 드디어 침소의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아, 아버지… 저희 왔어요.”
메시와 함께 온 에레브는 아버지의 낯선 모습에 절로 얼어붙어 버렸다.
아헨탈 후작은 피식 웃고는 그를 안아 주었다.
“내가 못난 모습을 보였구나.”
“…괜찮으십니까?”
“메시 경, 미안합니다. 괜히 나를 신경 쓰느라 올라가지도 못하고…….”
메시는 고개를 저었다.
아헨탈 후작은 자신의 최대 파트너. 그의 상태를 지켜보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고, 또한 아헨탈 후작이 의아함을 품은 이상 엘로이 부인에 대한 일은 짚고 넘어갈 일이었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그간 쌓인 피곤이 터진 게지. 하등 신경 쓸 거 없다.”
아들의 질문에도 후작은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비밀을 혼자 짊어지겠다는 뜻이었다.
에레브도 후작의 말이 그저 둘러대기라는 걸 알았다. 몸이 아프다면 메시의 치료를 받으면 그만인 것을, 그러지 않았으니까.
“그보다… 널 부른 건 중요한 일 때문이다, 아들아.”
“예?”
에레브가 고개를 갸웃하는데 충격 발언이 흘러나왔다.
“네게 작위를 물려줄까 한다.”
“……?”
“…휴.”
에레브는 자기가 방금 맞게 들었냐는 듯 메시를 쳐다봤고, 일이 이리 될 수도 있다고 예상을 한 메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레브는 억지 웃음을 흘리며 후작의 어깨를 감쌌다.
“아, 우리 아버지… 아직 몸이 덜 회복되셨구나! 하하, 이런……. 얼른 침소로 모실게요. 메시, 어서 힐 좀 해 줘!”
“아니다, 아들아. 난 맑은 정신이고 가주 ‘로안 폰 아헨탈’로서 하는 말이다.”
“예?”
가주로서의 말. 그 무게에 에레브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그토록 고대하던 일이었고 이걸 위해 무수한 고생을 해 왔다. 당연히 기뻐해야만 하는 일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쉽게 웃을 수가 없었다.
그간 영주의 업무로 개고생을 하는 바람에 영주가 되기 싫어졌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납득이 되지 않아서였다.
‘대체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갑자기 가주직을 내려놓는단 말이야?’
‘약자 멸시’와 더불어 에레브의 선천성 스킬인 ‘의심 암귀’가 꿈틀거렸다. 제 아버지가 저럴 정도면 엄청난 일이 생긴 것인데, 입을 다문 게 자신에게 가르쳐 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덜컥 가주가 될 수 없었다. 그건 불안하기 짝이 없는 짓으로, 에레브의 취향이 전혀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데……. 이건 받으면 안 된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네가 원하던 가주의 자리다. 이걸 위해 넌 목숨을 걸고 원망의 숲까지 갔다 오지 않았더냐.”
“뭐, 그랬죠. 덕분에 좋은 인연도 얻었고요.”
에레브가 메시를 쳐다보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수긍이 잘 되지 않네요. 아버지는 여전히 건강한 데다가, 나이는 흔히 가주로서 절정에 달하는 시기이십니다. 또, 지금까지 가문을 잘 이끌어 오셔서 아헨탈은 역대 최전성기를 달리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가주를 관둘 이유가 하나도 없지요. 제가 후계를 받는다 해도 가신들이 인정을 하지 않을 겁니다.”
“가신들을 설득할 자신조차 없는 것이냐.”
아헨탈 후작이 혀를 차며 일부러 실망한 기색을 보였다.
하나 거기에 에레브는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갔다.
“예. 아직 제가 많이 모자랍니다. 영주 대리를 하면서도 크게 배웠습니다. 그러니 제가 더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아버지.”
“…이 녀석이.”
한숨을 내쉬는 후작.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군.’ 이런 생각을 하는 거 같았다.
그는 별수 없다는 듯 받아들였다.
“알았다. 네가 싫다는데 어쩌겠느냐.”
‘휴, 뭔지 모르겠지만 잘 넘겼다. 그래, 당분간이라도 영지에서 그냥 푹 쉬는 거야.’
에레브는 위험을 넘긴 자기 자신의 기특함을 속으로 칭찬하는데.
아헨탈 후작이 히죽 웃으며 덧붙였다.
“그래도 모자람을 네가 안다니 다행이다. 이번 왕도행엔 네가 가도록 해라. 가서 메시 경의 일을 잘 돕고 네 부족함을 채우도록 하거라.”
“…예?”
“영주 대리로 영지를 운영하는 건 대충이나마 알았을 터. 이제 중앙 정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시간이 될 것이다. 가문의 후계자로서 전권을 주겠다. 네 결정이 아헨탈의 결정이고 나 역시 따르마.”
“네? 아니, 잠시…….”
“그만 물러가라. 난 메시 경과 할 얘기가 있으니. 기사들은 에레브를 데리고 나가라.”
“흐엥? 엑?”
이상한 소리를 내며 호위 기사들에게 팔이 결속당해 끌려 나가는 에레브였다.
그걸 보며 메시가 쓴웃음을 지었다.
“대단한 솜씨셨습니다.”
“그냥 가라고 하면 그간 고생한 값을 쳐 달라며 배짱을 부릴 것 아니오. 기어 다닐 때부터 본 자식새끼이니 그 꼴이 눈에 선하지.”
하하!
아헨탈 후작은 에레브의 머리 꼭대기에 있었다.
다만 다른 가능성까지 전부 계산한 계책이었음을 메시가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이 공자가 수락한다면 정말 넘겨줄 생각 아니셨습니까.”
“맞소. 그것도 나쁜 일은 아니라고 여겼으니.”
“…왕도엔 같이 가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메시가 안타까운 눈으로 아헨탈 후작을 바라봤다. 볼이 훌쭉 들어간 게, 며칠간의 마음고생을 말해 줬다.
아헨탈 후작이 그윽한 눈길로 마주 봤다.
“메시 경, 나 역시 그대가 가고자 하는 길을 끝까지 함께하고 싶소. 경과 함께한 왕도 행은 피 말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으나… 오랜만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모험을 한 것 같았소. 마치 젊은 시절의 나로 돌아간 기분이었지.”
“계속 같이 가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러고픈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생각보다 난 약한 사람이었나 보오. 에이러스를 보내고 난 후에 허망함과 쓸쓸함, 슬픔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해 왔소. 하나, 아내의 얘기를 듣자 그마저도 이제 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소.”
메시와 아헨탈 후작, 둘 다 씁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다.
“…….”
“곁에서 힘이 되지 못해 미안하오. 대신 이 아헨탈 영지에서 메시 경의 힘이 될 준비를 하고 있겠소. 언젠가 그대가 불러 주기만 한다면… 이 아헨탈의 모든 전력이 일어날 것이오. 그때까지 난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겠소.”
아헨탈 후작의 결심은 확고한 듯했다. 그 정도 되는 사내라면 이미 세워진 각오를 꺾기는 어렵겠지.
메시는 긍정해야만 했다. 그가 직접 내린 결정이었으므로.
메시는 마지막으로 질문을 했다.
“…용서하셨습니까?”
누구를 의미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후작은 묵묵히 책상을 내려다보다 무거운 입을 열었다.
“용서라……. 경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리 대단한 사내가 아니오. 어떤 이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용서를 입에 담을 수 있겠소? 그건 분명 거짓이고 입바른 소리요.”
결국 그렇게 되는 건가.
메시가 안타까움에 눈을 감는데,
뒷말이 들려왔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해 보려 하오. 몇 년, 아니… 수십 년이 걸릴지도 모르지. 평생 힘들 수도 있고. 내 남은 일생의 과제가 될 것이오. 하나,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어젯밤 엘로이와의 대화를 통해 깨달았소. 내가 아직도 그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
“……!”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마시오, 메시 경. 그 짐은 원래 내가 들어야 했던 거니까. 그대는 할 도리를 다했소.”
씩, 아헨탈 후작이 마주 보며 웃었다.
조금은 후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미소였다.
“그보다, 생산적인 대화를 해야 하지 않겠소? 그때 말하길… 다음 목표가 에이드리언 가문이라 했던가.”
메시가 피식 웃었다.
함께 해 주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함께할 거라는 후작의 의사 표시였다.
그래, 이것으로 된 거겠지.
메시도 이를 순순히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그에 관해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하려던 참입니다. 독을 쓰는 자들이니 뒤에서 공작을 벌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도인 저에게 바로 손을 쓸 순 없을 테니… 제 주변부터 노리겠지요. 예를 들면 후작님과 같은…….”
둘의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 * *
며칠 후.
성전 집행군 전체는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귀환을 한다는 것에 대부분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새를 못 참고 일부는 먼저 나선 상태였다. 빨리 돌아가자고 난리를 피우던 애버든 후작의 군대였다. 그 뒤를 성전 의용군이 뒤따랐다.
성전 집행군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아헨탈 가문의 배웅을 받고 있었다.
후작이 섭섭하다는 듯 말했다.
“프로크스, 자네마저 가긴가?”
“후후, 멀리 안 가네. 내 마탑이 여기 있는데 어딜 가. 딱 볼일만 마치고 올 거야.”
“내 마탑? 자네, 말이 좀 이상한데……?”
“무슨 소리야, 마탑주는 나잖은가!”
“내 돈으로 지어 놓곤!”
투닥거리던 둘은 이내 부둥켜안고 웃었다.
“잘 다녀오게. 좋은 결과가 있길 빌지.”
“…자네야말로.”
둘은 이미 서로 사정을 들은 상황이었다.
‘내 소중한 친우가 잘 이겨 내기를.’
프로크스와 후작은 동시에 소원했다.
한편, 다른 쪽에선 로윈이 난리였다.
“숙부, 아니… 아버지! 저보고 뒷수습을 하고 있으라니요!”
“난 베네딕트 경과 약속한 게 있어서 몇 달간 교황청을 다녀올 참이다. 가문의 인장 반지도 주지 않았더냐? 잘하고 있거라.”
“흐엥? 엑? 이, 이런 걸 이리 급하게 말씀하시면!”
“어차피 방탕하게 살아온 나보다 그나마 영지 일을 해 온 네가 낫다. 그리고 아헨탈 후작님이 뒤를 봐주시기로 하셨으니 그분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이번 기회에 후작님의 뒤에서 일을 배워라, 꼭. 우리 크롬벨의 미래가 달렸다.”
알란아스터의 진지한 눈에 로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메시의 호령이 들렸다.
―전군, 출발한다!
성전 집행군이 부산스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말 위에서 메시는 의미심장하게 아헨탈 후작을 바라봤다. 모두가 보는 앞이었다. 후작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갖췄다.
“예하,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겠습니다.”
“나 역시… 기다리겠소.”
메시가 출발 신호를 올리자 성전 집행군의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메시의 뒤로 프로크스와 에레브, 릴리, 알란아스터, 베네딕트 그리고 성전십장들이 뒤따랐다.
목적지는 교황청, ‘바라헨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