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196
195화
메시는 쇠사슬에 묶인 고깃덩어리를 내려다봤다. 감옥의 바닥엔 피가 번져 있고 괴물은 시체처럼 해체되어 있었다. 왕실 전용 고문관의 솜씨였다.
친히 어블레이즈급 고문관들을 보낼 만큼 티스리스트 왕의 진노는 컸다. 저나이스 후작의 꼴은 참혹했다. 마나를 두른 면도칼로 피부 껍질부터 시작해 속살을 저민 결과였다.
‘승전식을 망쳐서라기보단 날 건드린 것에 눈이 뒤집힌 거 같지만…….’
후작은 죽은 게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꿈틀대고 있었다. 기절한 저나이스 후작이 눈을 뜨려 했다.
“이봐, 정신이 들어?”
[역시 트롤의 재생력이다뀨. 성능 확실하다뀨.]
뀨가 제 더듬이로 후작을 툭툭 찔러 보았다. 살아 있는 게 신기하단 반응이었다. 후작이 ‘입이었던 걸’ 움직였다.
[그… 그냥 죽여 달란 말이다! 더, 더는 고통 받고 싶지 않아…….]
메시는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저 말이 거짓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죽고 싶다면 자신이 개변화를 풀면 그만이었다. 저 정도 상처라면 바로 사망할 것이다. 하지만 저나이스 후작은 그러지 않았다.
‘이 와중에도 생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지 않은 것이군.’
영생을 위해 수많은 사람을 바친 노괴였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란 건 알았다.
후작의 상처는 빠르게 재생되고 있었다. 하루 사이 수백 차례 고문을 당했음에도 이 정도였다. 그 재생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늠되었다.
“내겐 너의 생사여탈권이 없다. 어디까지나 전하의 마음이지. 그분은 너를 계속, 매일, 영원히 1시간 간격으로 도륙 내고 싶어 하실 뿐이다.”
부들부들…….
저나이스 후작이 몸을 떨어 댔다. 앞으로의 미래가 보인 게 틀림없었다.
반항하다 소드 마스터들에게 난도질당해 죽은 펜란지 공작 정도면 호상이었다.
[워, 원하는 게… 뭐냐.]
“원하는 거?”
[바, 바쁜 사도께서… 여, 여기까지… 구경을 하러 온 건… 아닐, 테지.]
한쪽 안구를 재생시킨 저나이스 후작이었다. 어느새 메시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련한 정계의 귀족답게 상대의 의도부터 살폈다. 온몸이 찢어진 고통 속에서도 그것만은 잊지 않았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걸 하려 했다.
[무, 무엇이 궁금하지? 티, 티스리스트의 약점? 교… 교국이 만들어질 수 있는 방법? 아니면 내 가문의 비자금? 마, 말해 봐라. 내… 내 조건만 맞춰 준다면…….]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메시가 쓰게 웃었다.
“아직 살 만한가 보군. 네 주제에 제안 따윌 하는 걸 보니.”
[……!]
돌아선 메시가 철제 문고리를 잡았다. 곧장 외침이 들려왔다.
[가, 가지 마시오! 내… 내가 주제도 모르고 시, 실언을 했소이다!]
겁에 질린 목소리였다. 메시가 나가는 순간 시작될 고문이 두려웠다. 메시가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돌아와 냉정하게 쏘아붙였다.
“네놈은 제안 따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야, 저나이스. 이걸 이제 알았다면 처음과 끝이 같길 바란다.”
[미, 미안하오…….]
저나이스의 한쪽 눈이 미친 듯 흔들렸다.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는 모양이다.
강화를 했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수십 년간 권력의 중추에서 호사를 누린 노인에게 고문은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메시가 돌아가면 고문관이 들어와 작업을 재개할 터.
조건이 맞지 않아도 메시를 이 자리에 두는 게 맞았다. 이제 저나이스 후작의 고민은 하나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메시를 잡아 둘 수 있을까.
메시는 이를 조금 도와주기로 했다.
“내가 궁금한 거 하나다. 넌 ‘후원자’를 봤다고 했지. 그에 대해 아는 걸 소상히 말하면 된다. 만일 거짓의 기미가 보이거나 숨기는 느낌이 들면 난 주저 없이 떠날 거다. 다음 기회는 없다고 보는 게 좋아.”
저나이스 후작의 눈빛이 아까보다 또렷해졌다. 상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차렸다.
“대답은?”
메시의 무감정한 물음에 저나이스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놈은 후원자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펜란지 공작이 죽은 마당에 내가 아니면 정보를 구할 곳이 없다. 내 활로는 여기에 있다.’
티스리스트를 설득하여 자신을 빼내 줄 수 있는 자는 사도뿐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저 동아줄을 잡아야 했다.
하지만 사도의 눈엔 단호함이 어려 있었다. 괜한 거래라도 제안했다간 당장에라도 나갈 기세였다.
저나이스는 충성스러운 개처럼 배를 드러내 보이기로 결심했다. 살기 위해 뭔들 못할까.
[존귀하신 사도 예하… 잠시만, 저 따위가 제안을 하는 것에 마음 상해 마시고 부디 제 말을 들어 봐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
메시가 침묵하자 저나이스는 속으로 진땀을 흘렸다. 긴장의 시간이 지나고 메시가 말했다.
“태도는 좋군. 그걸 앞으로도 꾸준히 견지한다면 들어 봐 주지.”
‘됐다!’
[감사합니다, 예하. 제가 드리고 싶은 제안은 예하의 소중한 시간과 심력을 아낄 수 있는 방안이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고문도 싫고, 이 자리에서 죽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런 건 네놈의 네 살배기 증손자를 데려와도 알 거다.”
[그, 그러합니다. 하지만… 예하께서 원하는 정보를 제가 솔직히 털어놓는다면 예하께선 가 버리실 테고, 저는 또다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겁이 많은 저는 그리되기 싫어 삿된 거짓을 섞어 말을 늘리려 할 테고, 이는 분명 예하가 원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메시도 수긍하는 눈치였다.
[제게 자비를 베풀어 부디 희망을 갖게 해 주소서. 부탁드리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저는 예하께 모든 속살을 낱낱이 보여 드릴 것입니다.]
“흐음.”
메시는 입을 꾹 닫고 앉았다. 시간을 끌었다. 그의 침음이 흐를 때마다 저나이스는 긴장한 듯 몸을 떨었다.
마침내, 메시가 결정한 듯 말했다.
“늙은이의 속살 따윈 관심 없지만… 좋아, 희망을 주지. 사실대로만 말한다면 네게 자유를 주마.”
[진심이십니까?]
“네놈 따윌 속여 뭐 한다고. 하지만 다시 얻은 삶에 힘과 권력은 없을 것이다. 작위는 회수된 지 오래고, 개변의 씨앗은 내가 없앨 것이다. 네게 돌아가는 건 가족과 기존의 수명뿐.”
[그, 그것이… 가능하단 말입니까?]
“내가 널 어떻게 강제로 개변시켰다고 생각하는 거냐. 개변화의 작용 원리와 구조를 파악한 마당에 그까짓 것을 못 할까 봐.”
메시는 흑접 기사들의 몸을 고치며 어떤 방식으로 개변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었다.
부신과 중추 신경계에서 신경전달물질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과도하게 생성되면 심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던 개변화의 씨앗이 급속도로 번식을 시작한다.
그 말인즉, 먹이가 되는 호르몬만 차단하면 개변화의 씨앗은 버티지 못하고 사멸한다는 얘기였다. 따로 수술적 조치가 필요한 일도 아니었다.
[사, 살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 괜찮습니다.]
“그리해 주겠다.”
[약조만으론 안 됩니다……. 맹약을 통해 확인해 주십시오.]
메시는 고개를 저었다.
“교단의 사도는 한낱 마법에 몸이 묶일 수 없는 법이다. 대신 다른 방안으로 네게 믿음을 주겠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내 존재 자체다. 가이아 여신님의 사도인 내가 약속을 어긴다면 이는 가이아 님의 이름을 욕보이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보다 약속이 믿음직한 사람은 이 세상엔 더 없을 것이다.”
메시의 역제안. 저나이스 후작도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 생각해 볼 가치도 없었다.
사도가 모시는 신의 이름을 걸었는데 이에 거짓이 섞일 수가 있으랴.
[좋습니다. 그보다 확실한 게 없군요.]
피식. 메시가 불길하게 웃었다.
* * *
8왕국을 벗어난 세계.
수해의 인류 문명을 완전히 벗어난 숲속. 여기서 지내는 이들이 있었다.
이들을 이르는 표현은 많았다. ‘범죄자’, ‘탈주자’, ‘버려진 아들들’, ‘명예를 아는 자들’, ‘위대한 희생자들’, ‘수해의 모험가’…….
그중에서도 가장 알려진 호칭은 단연코 이것이었다.
‘벌목꾼.’
정확한 명칭이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숲을 개간하며 미지의 땅을 수색하는 일을 했다. 어디까지나 초창기에만.
약 2,000년 전, 벌목꾼이라고도 불리지 않을 초창기. 그때는 바깥세상을 탐험하는 모험가 무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바깥세상이 워낙 험한 데다 미스터리로 가득 차 있다 보니, 자연스레 이능을 가진 강자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낯선 자연환경에 적응하고, 그곳에서 서식하는 무수한 몬스터와 봉인된 이전 시대의 고대 마수들을 상대하는 일은 그러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었다.
하나 초, 중반기에만 해도 오래가지 못할 조직이었다. 생존율은 낮고, 강자는 적고, 숲에서 발견되는 보물들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이들을 구한 것이 ‘인류의 위대한 모험가’라 불리는 자.
‘티프리메이식’이었다.
그는 ‘바운더리 라인’이라 불리는 이론을 정립하여 인류의 수색 범위를 넓혔을 뿐 아니라, 관련 지식을 아무 대가 없이 공유하여 모험가와 개척자들의 생존율을 최초 한 자리대로 올린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바로 초기 벌목꾼의 형태를 정립한 ‘벌목꾼의 아버지’였다.
[인류의 미래는 저 숲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정된 자원으로 살아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무수히 전쟁을 치르지만, 이는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 힘을 모두 숲에 투사해야 합니다! 옛 조상들이 저 땅에서 살았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터전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당시 부족 국가 수준에 불과했던 왕국들이었다. 위대한 모험가는 여덟 왕국에 건의하여 인류의 미래가 개척에 있음을 주장했다. 이는 받아들여졌다.
‘벌목꾼 연합체’의 탄생이었다.
8왕국은 매년 인적, 물적 지원을 약속했고, 그들에게 명예를 부여했다. 이는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졌다.
하나, 8왕국이 지원을 한다 해서 어느 누가 죽음을 각오하고 벌목꾼이 되려 할까.
세월이 흘러 명예도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니 벌목꾼이 되는 이들은 평범함과 거리가 먼 이들뿐이었다.
국가에서 개심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강력 범죄자와 사형수.
귀족 가문의 후계자 싸움에서 밀려난 패배자, 또는 서자.
약속된 인원을 채우지 못해 강제로 징집당한 평민.
8왕국의 강력한 계급 사회에서 버티지 못해 밀려 나온 부외자들.
죄를 짓고 고향을 등진 도망자들.
일상을 거부하고 비일상을 찾는 극도의 쾌락주의자들.
이런 이들이 모인 집단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게 가능한 건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지도부를 지닌 탓이었다.
그 지도부의 대표자, ‘앙리 폰 앙켈’.
그가 돌돌 말린 양피지를 쥐고 빠른 걸음으로 요새를 걸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것 같은 흰 머리카락이 구레나룻을 타고 내려와 수염까지 이어졌다. 장년의 거친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이였다.
“큰일이군……. 바스카스 후작이 잘못된 것도 타격인데, 펜란지 공작에 저나이스 후작까지 모조리 죽었단 말인가.”
최근 들어온 소식은 대단히 참담했다. 이것을 보고하러 오기까지 몇 번이나 분해하고 한숨을 쉬었다.
‘이리되면 아시리스 왕국은 완전히 우리의 손에서 벗어나게 된 셈이다. 아헨탈 후작이나 로힐 백작, 두 사람이 남긴 했지만… 그분의 존안조차 뵙지 못한 뜨내기들이 아닌가.’
그로선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아시리스 왕국의 교두보가 폭삭 내려앉았다. 이를 다시 깔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거기다 연구를 위한 재료 수급과 자금 투입에도 큰 차질이 생길 터다.
아시리스 왕국은 8왕국 중 첫째, 둘째가는 비옥한 땅 위에 있었다. 그만큼 귀족들의 세입도 많았다. 바치는 연구비는 두둑했고, 인구도 제법 되어 재료를 구하기도 쉬웠다.
‘대체 그 다섯 손가락인지 뭔지 하는 손가락 병신들은 뭘 어찌 일을 처리했기에 이 지경까지 온 건지. 휴.’
더 화나는 건 실패의 대가를 치르게 해 주고 싶어도 그럴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로힐 백작과 신입 아헨탈 후작을 빼면 모두 죽었으니까.
그것도 교단의 사도라는 한 존재로 인해서.
앙리 폰 앙켈은 벌목꾼 연합체의 본부가 있는 세계수, 그 아래. 나무뿌리가 뻗어지며 만들어진 깊은 지하 미궁을 걷다 마침내 멈췄다.
세계수의 잔뿌리가 이리 얽히고 저리 얽혀 만들어진 대문이었다.
‘이런 일로 찾아뵈면 실망하시겠지만… 워낙 큰 사건이니 어쩔 수 없다. 이분의 의중을 알아야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세울 수 있으니.’
각오를 다진 앙리 폰 앙켈은 천천히 문을 열었다.
노크는 필요 없었다. 그분이라면 이미 지하 미궁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제 존재를 알았을 테니까.
문 안쪽엔 아주 좁은 토굴이 있었다. 연둣빛 야명주가 천장 곳곳에 밝혀 빛을 내고 있었고, 그 아래에서 누군가가 책을 읽고 있었다.
앙리 폰 앙켈은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티프리메이식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