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
전업 힐러는 점점 강해진다
(1)
베누다 마을의 레토는 약초꾼이다.
약초꾼이라 하면 으레 매일 같이 산을 타고 숲을 뒤지는 3D 직종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앞에 ‘30년 차’라는 말이 붙으면 달라진다.
평생을 한 곳에서 청소만 했어도 30년 정도의 경력이 쌓였다면 거기서만큼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그런 30년 차 약초꾼이 ‘외곽 숲’에 가장 가까운 베누다 마을에 정착해 지금껏 살아왔다면 얘긴 더 다르다.
마을의 모든 수입원이 외곽 숲에서 나온다. 30년 차의 약초꾼은 누구보다 그 숲에 대해 잘 알고 많은 수입을 올려 마을에 이득을 준다.
발언권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고, 진즉에 마을 대표 자리에 올라 촌장과 동등한 힘을 자랑했다.
그러니 3년 전, 외곽 숲보다 깊숙하고도 먼 하늘이 붉게 물들던 날.
마을에 외부인이 찾아왔고, 그의 정착을 레토가 받아들임으로써 마을 구성원 누구도 그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마을 촌장만 빼고 말이다.
“이보게, 레토. 그 녀석은 어디갔나?”
“……?”
약초꾼 레토는 들려온 촌장의 목소리에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3년 동안 저 영감이 ‘그 녀석’을 찾는 걸 본 적이 없다. 자신의 결정에 불만이 있기에 일부러 그러는 것이었다.
“귀를 먹었는가? 왜 반응이 없어? 메시 녀석을 말하는 거네.”
“촌장님이 메시를 찾는 걸 처음 봐서 그러지요. 뒤의 일행하고도 관계된 일입니까?”
그는 손질하는 약초에 눈을 떼지 않고서도 촌장의 뒤로 많은 이들이 몰려온 걸 알았다.
숲을 자기 앞마당처럼 돈다는 건 곳곳에 숨은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이 뛰어나단 뜻이다. 레토의 비상한 청력은 그중 하나였다.
“먼 곳에서 온 귀한 분들일세. 숲으로 들어가길 원하신다는 군.”
그제야 고개를 든 레토는 차근차근 일행을 살펴봤다.
검, 철갑, 방패, 활, 망토, 귀한 군마. 정갈한 기세. 단련된 몸.
기사다.
“안녕하십니까, 기사님들. 베누다 마을의 대표를 맡고 있는 약초꾼 레토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 방문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몰랐다면 다르지만, 상대가 누군지 견적이 나왔는데도 뻗댈 순 없었다.
말발굽 소리와 투레질 소리가 가까워지기에 설마하곤 있었지만 외딴 마을에 진짜 기사가 나타나는 건 마른하늘에다 날벼락이다.
이 시대의 기사는 크게 두 가지다.
양식을 갖춘 도적놈, 제대로 된 기사. 레토는 부디 이놈들이 후자이길 바랐다.
“기사 라망일세. 인사는 됐네. 질질 끌지 말고 우리 목적을 좀 이루게 도와주겠나?”
칼부터 뽑지 않는 걸 보니, 후자다.
아니, 아마 후자에 가까운 것이다. 레토는 조금 안도했다.
“…숲으로 들어가길 원하신다고 했는데, ‘외곽 숲’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설마 우리가 저 숲에 가자고 길잡이를 찾겠는가? 그 너머 ‘원망의 숲’으로 가려는 걸세. 촌장한테 들어보니 그곳에서 온 이종이 있다면서?”
“이종이요? 아…”
레토는 잠깐 헷갈렸다. 이제 가족으로 여기고 있던 메시라는 청년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낯선 호칭이었다.
“메시는 사냥을 나간 상태라, 아마 해가 지기 전쯤에야 돌아올 겁니다.”
“메시? 이종의 이름이 메시인가? 낄낄. 이종에 걸맞게 아주 잡스러운 이름인데.”
기사의 뒤편으로 누군가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동조하듯 뒷말이 따라붙진 않았지만 다들 입꼬리가 올라와 있었다.
당장이라도 빈정거림이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가만히 있는 건 기사들의 규율과 군기가 잘 잡혀있다는 뜻이었다.
한 명 예외가 있는 거 같지만…..
“그럼 여기서 기다리도록 하지. 해가 지는 것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니. 그리고 외상 환자들이 있다. 약초를 다룬다면 도움은 되겠지. 살펴봐 주겠나?”
“그리하지요.”
레토는 외상에 효능이 있는 약초들을 챙기며 한편으론 생각에 잠겼다.
‘원망의 숲…’
수해(樹海)지역 깊숙한 곳.
외곽 숲 너머의 위험지대.
벌목꾼들도 그곳의 개척을 포기하고 후퇴한 지 30년 전이나 됐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만 버려지듯 남겨졌다.
원래 베누다 마을의 뿌리는 벌목꾼들의 먹거리와 입을 것, 즐길 것 따위를 챙겨주라고 끌려온 범죄자, 집시, 떠돌이 잡상인, 폐급 용병, 창녀들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베누다 마을이다.
버려진 이들은 벌목꾼들을 원망했고, 나라를 원망했으며, 미지의 숲을 원망했다.
인간의 개척을 단호히 거부한 숲엔 곧 ‘원망의 숲’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그런 곳에 들어가겠다고? 무슨 목적이지? 벌목꾼들조차 포기한 숲을 저놈들이 뭐하러?’
사실 저들의 목적 따위야 레토에겐 상관없었다. 알아서 잘 훈련된 자살특공대로 전락하겠다는데 말릴 일도 아니었다.
다만, 자신의 가족 하나를 물귀신처럼 끌고 들어가려는 건 가만히 두고 볼 일이 아니었다.
“자네, 얼굴 좀 펴게. 모처럼 큰손들이 와서 마을에 활력이 돌고 있는데 그런 표정을 들이밀어서 누굴 경치게 하려고?”
“촌장님이 부른 사람들입니까?”
“내가? 미쳤나?”
“혹시 미쳤나 했습니다.”
레토의 말본새에 촌장은 혀를 차다가, 그의 귓가에 가까이 다가가 속삭였다.
“얌전히 메시 녀석을 내주게. 무슨 목적으로 원망의 숲에 들어가려는지 모르겠지만 오자마자 길잡이를 요구하더군.”
“차라리 아무도 거기에 접근을 안 해서 잘 모른다고 발뺌하지 그러셨습니까. 평소 잘 하시면서 왜 이번엔…”
“이 나이쯤 되면 사람 눈만 봐도 알아. 이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뭐든 할 수 있는 자들일세. 내가 그렇게 대답했다면 당장 내 목에 검을 들이민 뒤에 마을 사람 전체를 모아서 심문을 시작했겠지.
그럼 메시 녀석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것도 순식간이야. 자, 말해보게. 순순히 협조해서 길잡이를 제공하는 게 우리 안위에 도움이 되겠나, 아니면 검에 피를 묻혀가면서 강제로 차출당해야 더 안전하겠는가?”
“앞엔 오우거, 뒤엔 트롤이군요.”
답이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레토는 촌장의 사정이 이해가 갔다.
그런데도 조금 아쉬운 것은, 메시가 지금쯤이면 사냥을 간다는 걸 마을 사람이면 모두 알고 있다는 거였다. 모두의 의지만 있다면 메시의 존재 정도는 타이밍 좋게 잘 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레토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촌장이 서둘러 덧붙였다.
“운 좋게 메시를 숨겼다 해도 다음 순서는 자네야. 원망의 숲은 잘 몰라도 외곽 숲을 제집 앞마당처럼 다니는 자넬 가만히 놔두겠나? 난 자네를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30년이나 이 마을을 위해 수고해준 자네와 갑자기 나타난 이종 놈, 둘 중 고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자넬 살리겠네.”
“…그 마음은 고맙지만 지금 메시는 제 가족이나 다른 바 없습니다. 가족을 사지로 보낼 순 없지요.”
“자네 미쳤나? 말만 가족가족하는 줄 알았더니 진심이었군. 그래도 어쩌겠나,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는데.”
촌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다린 것처럼 소란이 일었다. 멀리 기사들과 그들에게 고용된 용병들의 무리에서 큰 소리가 난 것이었다.
당장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촌장이 뛰어갔고, 레토 역시 빨리 약초와 도구를 마저 챙겨 그곳으로 향했다.
말과 이어진 마차를 둘러싸고 용병들이 웅성대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사들이 그걸 보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마차 안에는 피 흘리는 환자들이 몇 명 있었고 그중 하나를 안고 여자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누가 좀 도와줘! 가스통의 피가 멈추지 않아! 치료사를 데리고 와! 어서!”
여자 용병의 외침에 새하얗게 질린 마른 남자 하나가 용병들에 의해 끌려왔다. 하지만 그는 극렬히 고개를 저었다.
“나, 나는 그저 힐러라고! 저런 중상자를 어떻게 손대란 말인가? 누… 누구보다 자네들이 잘 알잖아? 저런 상처에 힐(Heal)을 썼다간 도리어 원망만 듣게 될 걸세!”
“그래도 뭔가 해봐, 뒤지고 싶지 않으면. 기사님들에게 고용될 정도면 숨겨둔 한 수 정돈 있을 거 아냐?”
“세상에 그런 억지가….. 자네들은 용병이잖은가. 그럼 누구보다 힐의 부작용을 잘 알면서 그러나…! 힐은 마력에 의지를 더해 상처를 메우는 거지, 사제들의 이적처럼 부상 이전으로 되돌리는 재생의 의미가 아니야!”
“그래? 죽고 싶다는 말을 어렵게 하는군. 우린 용병답게 간단명료하게 말하지. 가스통이 죽잖아? 그럼 너도 죽는 거야.”
“아니 이런 미친…..”
치료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마차를 둘러싼 용병들은 들어 먹을 생각이 없었다.
치료사는 발을 동동 굴렀고 때마침 가스통이란 상처 입은 자가 피를 토하자 용병들은 검을 뽑으려다가 멈췄다.
레토가 끼어 들은 탓이었다.
“그만두는 게 좋아. 그 치료사 말이 틀린 게 아니니깐.”
“댁은 뭐지?”
“이 마을 약초꾼이다. 환자의 상처를 볼 테니 검은 뽑지 말아줘.”
용병들이 길을 열어주자 레토와 촌장은 얼른 가스통의 옆에 붙었다. 환부를 살피는 레토를 여자가 바라보다 물었다.
“살릴 수 있나요?”
“치료사가 아니라 그건 모르겠고. 일단 지혈부터 해야 한다는 건 알겠군.”
레토가 지혈용 약초를 꺼내 절구통에 넣고 빻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져진 약초를 덕지덕지 상처에 바르지만, 배에서 흘러나오는 피에 섞여 제대로 발려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이거 영 가망이 없어 보이는데? 내장이 상한 거 아닌지 몰라.”
“촌장님. 꼭 그런 말을 죽어가는 사람과 그 동료들 앞에서 해야겠습니까?”
“아니,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이 정도면 메시 그 녀석이 와도 못 살릴걸? 아니다. 살릴 수 있으려나?”
가스통을 안은 여자가 황급히 물었다.
“메시? 그 사람은 또 누구예요?”
“마을 사냥꾼이다. 힐도 쓸 줄 알지.”
“힐이요? 하지만 그건…”
여자는 말을 흐리며 곁눈질로 마차 밖의 치료사를 쳐다봤다.
“어, 물론 저 치료사 말이 맞아. 힐로는 이런 상처를 건드리면 오히려 확실한 사형 선고가 되겠지. 그렇지만 메시의 힐은 뭐랄까… 좀…..”
“뛰어나지.”
완성되지 못한 레토의 말을 촌장이 마무리하자 여자의 얼굴에 희망과 의아함이 감돌았다. 다급히 외쳤다.
“그럼 뭐해요! 당장 그 사람을 데려와야죠!”
“사냥 갔어. 당신들 능력이 된다면 찾아서 데려 와보든가.”
레토가 가리키는 건 ‘외곽 숲’이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나 외곽 숲을 마치 마당처럼 여길지 모르지만, 외부인들에겐 외곽 숲은 대단히 광활하고 울창한 정글이었다.
그곳에서 사람 하나를 찾는다는 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기사들이 괜히 가만히 기다린다는 게 아니었다.
울상을 지은 여자는 마을 바깥에 보이는 외곽 숲의 산림과 죽어가는 가스통을 번갈아 보다가, 마차 밖을 대고 외쳤다.
“전부 저 숲을 뒤져서 메시라는 사람을 빨리 찾아와! 치료사… 아니, 사냥꾼이야!”
“어떻게 찾으려고? 숲에서 이름이라도 계속 외칠 참인가? 괜히 몬스터만 끌어들이는 짓이다. 한 사람을 살리려고 나머지 동료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참인가?”
레토의 물음에 답변이라도 하듯이 여자가 선창했다.
“…붉은 여우 용병단은 가족을 버리지 않는다!”
용병들의 후창이 뒤따랐다. 깜짝 놀란 마을 사람들이 뛰어나올 정도였다. 반박할 수 없는 대답에 레토는 수긍했다.
“가족을 버리지 않는다… 아주 훌륭한 용병단이군.”
한편, 마차의 광경을 지켜보던 라망은 찾던 이름이 다시금 들리자 의아했다.
‘메시…? 그냥 사냥꾼인 줄 알았는데 치료술까지 익히고 있었나.’
하지만 힐 같은 치료술 가지곤 다루기 어려운 상처였다. 이 무리의 관리자이자 모든 문제를 살펴야 하는 라망은 이미 용병의 다친 부위를 알고 있었다.
오크 중 하나가 습격의 신호탄으로 투창을 던졌고 운 나쁜 용병 하나가 배에 맞았다. 갑옷이 탄탄한 덕에 날 전체가 박히진 않았지만, 갑옷이 뚫리면서 뱃속을 곤죽으로 만들었다. 출혈량으로 봐선 내장에 상처도 입었을 것이다.
“어차피 죽을 텐데… 뭐, 그래도 용병들이 알아서 길잡이를 찾아올 테니 의미 없는 짓은 아니군.”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그였다. 그런 라망의 시야에 이상한 뭔가가 잡혔다.
머리가 새까만 인간이 뭔가를 들쳐메고 오고 있었다.
끝
ⓒ 10억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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