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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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몸이 자네가 찾는 아헨탈 후작일세. 그러니 엄한 사람의 속살을 파헤치는 건 그만두게나.”
아헨탈 후작의 등장에 카심은 인상을 찌푸렸다.
후작이 죽을 자리를 제 발로 찾아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가짜인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횃불에 비친 얼굴을 보자 카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아헨탈 후작인가?”
카심이 놀라 움츠려 앉은 몸을 일으켰다. 후작은 고갯짓을 하며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하네. 두 번 말하진 않겠어. 날 죽이러 온 이에게 그런 친절은 과분하니. 일단 저들은 놔두고 나와 해결을 보는 건 어떠한가?”
“하하, 어이가 없군…….”
귀족가의 서자 출신인 카심은 아헨탈의 풍경에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하녀를 대신해 기사가 덤벼들고, 기사를 대신해 집사가 용을 쓰고……. 뭐, 거기까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젠 그들을 살리기 위해 영주인 후작이 나타났다.
이건 어린 시절부터 그가 봐 온 자신의 집안, 겪어 온 귀족의 생리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러움인지, 안타까움인지 알 수 없는 이중적인 감정이 안쪽에서부터 울컥 올라왔다.
평정을 가장하며 카심이 입을 열었다.
“뭐, 좋아. 난 빨리 일을 마치고 여길 벗어나면 그만이다. 아헨탈 후작, 내 요구 사항을 들어준다면 이 둘을 살려 주지.”
“그것이 무엇인가?”
“원망의 숲에서 고대의 마법들을 발견했다지? 그 연구 자료의 원본을 내놔라. 그럼 이들을 건드리지 않고 당신의 목과 연구 자료만 갖고 떠나 주지.”
그 말에 아헨탈 후작은 실소를 흘렸다.
“후후, 그 자료를 가지고 뭐에 쓸 참인가?”
“죽을 자가 호기심도 많군. 시간이 없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당신 목을 자르고 자료는 알아서 찾겠어.”
카심이 위협하듯 몸을 움직이려했다. 한데, 후작은 겁을 먹기는커녕 똑같이 위협하듯 횃불을 종이 뭉치에 가까이 댔다.
“워,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걸세.”
움찔.
뜬금없는 짓에 카심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그의 시선이 묘하게 오래되어 보이는 종이 뭉치로 향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금세 짐작이 갔다.
“…당신, 설마.”
“설마가 아니라 진짜일세. 자네가 애타게 찾던 고대의 연구 자료가 이것이지. 참고로 사본 따위는 없네. 보안을 위해서라도 사본을 만들 리가 없지 않은가?”
아헨탈 후작이 악동 같은 미소를 지었다. 영락없는 에레브의 판박이였고, 나이 먹은 에레브였다.
“이게 불타는 걸 보기 싫으면 알아서 처신 잘하시게.”
‘미, 미친…….’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고대의 마법이 담긴 연구 자료는 부르는 게 값이었고, 그 존재만으로도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제 목숨이 위협받아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만한 것인데, 지금 저자는 횃불 앞에다가 가져다 대고 있었다.
“그게 진짜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거짓말하지 마라!”
아헨탈 후작은 대답 대신 횃불을 기울였다.
넘실대는 불이 종이에 닿을락 말락하자 카심은 억, 하고 비명이 나올 뻔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은 정직하군. 자네도 아는 거야, 이게 진짜일 수 있다는 걸.”
‘젠장……!’
눈앞의 저것은 벌목꾼이 수십 년 동안 연구하고도 완성하지 못한 실험의 끝을 볼 수 있는 것.
그 가치를 아는 카심으로선 진정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카심은 차분히 머리를 굴렸다.
‘오히려 배짱을 부리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은가? 저자는 내가 얼마만큼 저것을 원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할 거야.’
“혹시 내가 이것의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라고 말해 두고 싶군. 난 자네가 이걸 얼마나 원하는지 잘 아네. 아까 반응만 봐도 예상은 가네만, 그 개변이라는 걸 완성할 수 있다지?”
‘이런 빌어먹을.’
뒷구멍부터 바로 막혔다.
카심은 아까와는 다르게 매우 온순한 어투로 말했다.
“그럼 이건 어떻소? 그것만 가져가겠소. 당신의 목은 내버려 두는 걸로 하지.”
“내가 자넬 어떻게 믿고? 하하. 날 너무 순진하게 보는군. 이래 봬도 중앙 정계에서 꽤 구른 몸일세.”
카심의 언성이 바로 높아졌다.
“그럼, 이 둘은 죽어도 상관없나? 내놓지 않으면 죽음이야!”
“그들이 죽는다면 이 자료도 불타는 거지. 날 도발하지 말게. 죽는 마당에 똥물 정돈 뿌리고 죽을 마음이 있거든.”
으득.
아헨탈 후작과의 교섭은 평행선을 달렸다. 애초에 협상이 불가한 것을 협상하려 하니 잘될 리가 없었다.
그새 1, 2분이 흘렀다. 카심은 시간이 흐를수록 피가 마르는 듯했다.
자신이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건 동료 두 명이 목숨값으로 벌어 준 시간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장난질에 휘말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야 한다니.
‘안 돼. 이러다 그놈이 온다면…….’
부르르…….
카심의 몸이 떨렸다.
내성으로 향하는 통로를 뚫기 위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지 않으려 애썼지만, 멀리서 들리는 보로헤드의 비명은 똑똑히 들었다.
개변을 한 보로헤드가 전혀 상대가 안 됐다면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 두려움이 카심의 인내심을 한계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판단이 선 것이다.
“개변.”
콰드드득!
마음을 먹은 이상 거침이 없었다.
카심이 개변화를 선택했다는 건 좋지 않은 신호였다. 아헨탈 후작이 횃불을 꽉 쥐었다.
[결심했다. 이 자리에서 셋 다 죽이겠어.]“이 자료는 포기하기로 했나?”
[둘 다 가질 수 없다면 하나는 제대로 해야겠지. 후작, 당신을 죽이겠다. 연구는 어차피 그것이 없어도 끝에 도달할 거야. 대신 아헨탈 영지민들을 모조리 실험 재료로 써 주겠어. 자신들이 왜 끌려왔는지 모른다면 내가 직접 당신의 탓이라 말해 주겠다.]“…잘도 그런 고약한 생각을 하는군.”
쾅!
카심의 거대한 몸체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아헨탈 후작에게 치달았다. 그의 커진 덩치에 비하면 매우 작은 검을 던졌다.
목표물은 아헨탈 후작이었다. 횃불을 움직이기 전에 단번에 죽여서 자료를 탈취한다. 방금 말은 그렇게 했어도 완전히 미련을 버린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헨탈 후작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카심이 뛰어오를 때부터 계단의 난간 쪽으로 몸을 던지며 횃불을 기울였다. 단검이 스쳐 지나가고, 종이에 불이 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 안 돼……!]“된다네.”
화르르륵!
종이가 불타자 제 몸에 불이라도 붙은 듯 카심이 비명을 질렀다. 눈이 뒤집힌 그가 도망치는 후작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끄으으으……! 죽여 버리겠어! 반드시 죽이겠어! 그게 어떤 건데, 그걸!]“그러게 물러나라고 할 때 물러났어야지.”
[죽어!]원하던 걸 잃자 분노에 휩싸인 카심의 눈에 뵈는 게 없었다. 후작을 때려죽일 기세로 주먹을 내리쳤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헨탈 후작은 얼굴에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회한에 찬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
“후… 당신의 힘은 빌리고 싶지 않았거늘…….”
[끌끌, 그러게 같잖은 협박으론 시간 끄는 것조차 안 된다 하지 않았나.]아헨탈 후작의 머릿속에 한 노인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콰직!
그와 동시에 카심의 주먹이 막혔다. 아헨탈 후작의 뒤편, 어둠 속에서 뻗어 나온 거대한 보랏빛 손바닥이 이를 막아선 것이다.
[뭐야, 이건?]카심은 아헨탈 후작의 좌우를 두르고 있는 정체불명의 팔을 바라봤다. 그건 개변한 자신의 팔과 너무나도 흡사한 색을 띠고 있었다. 특유의 보랏빛, 이건 상대 역시 개변화를 했다는 뜻이었다.
카심의 시선은 팔을 타고 올라가 후작의 뒤쪽 어둠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어지간히도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군.]스윽.
그 안에서 나타난 건… 카심도 아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절대 이곳에서 나타나선 안 되는 자였다.
왜냐하면.
그는 죽었기 때문이다.
[바스카스 후작……?] [흐흐, 이 몸이 바로 아헨탈 최후의 방어선이니라.]스아아아아!
언데드가 되어 버린 바스카스 후작의 육신 뒤로 수많은 정령이 나타났다.
카심은 지금 상황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바스카스 후작이 나타난 데다가.
콰아아아!
그의 손짓에 거대한 정령의 불꽃이 자신을 구워 버릴 기세로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다.
‘살아 있었단 말인가? 그런데 왜 나를 적대한단 말인가? 어째서 아헨탈을 돕느냔 말이야!’
일을 방해해도 유분수지, 하필 이런 다급한 때에!
[바스카스 후작, 대체 이게 무슨 짓이오!]그 사이에서 카심은 이리저리 회피하며 소리를 질렀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물론 대답은 아헨탈 후작의 머릿속에만 들리고 있었다.
[끌끌. 예상은 했지만, 엄청난 역작의 탄생일세. 정령을 부리는 언데드라니. 그야말로 최강의 듀라한이야! 매제, 내 솜씨가 어떠한가!]‘정말 그 입을 꿰매 버리고 싶구려.’
[매제, 목숨을 구해 줬는데 이러긴가?]‘후… 제발 닥치고 싸우시오. 그리고 제발 그 매제 소리 좀…….’
아헨탈 후작은 두통이 오는 걸 느끼곤 지끈지끈한 이마를 매만졌다.
메시가 깔아 놓은 최후의 방어선, 아스카론(티끌)에게 도움을 받는 건 그 정도로 끔찍이 싫었기 때문이다.
말하기도 끔찍할 정도의 은원 관계가 쌓여 있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메시가 올 때까지 시간만 끌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짜 연구 자료를 태우는 척 협박하는 얕은수를 써 봤으나, 결국 일이 이렇게 됐다.
그사이, 갑작스러운 사태의 급변에 도망치던 카심도 서서히 독기를 품었다.
[내 일을 방해하지 마라, 바스카스 후작!]서걱!
정령들의 불꽃을 절묘하게 회피하여 파고든 카심의 검에 바스카스 후작의 몸이 썰렸다.
하지만 절단면은 거짓말처럼 부글부글 끓어올라 재생을 시작했다.
카심은 그제야 메시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재생하는 적이 얼마나 엿 같은지. 지금처럼 시간이 제한된 상황에선 최악의 상대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스스스슥!
그 와중에도 바람의 정령이 절삭력이 대단한 발톱을 들이밀었고.
화르르륵!
홍염의 기둥이 카심의 전신을 태우려 들었다.
카심의 안색은 갈수록 창백해졌다.
시간이, 여유가, 모든 게 부족했다.
마치 공기 중에 마실 수 있는 숨이 점차 줄어드는 기분까지 들어 가슴이 답답해지고 있었다.
이것이 초조함이라는 걸 카심은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아헨탈 후작의 목숨을 빼앗기 위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지만.
촤아악!
부글부글…….
[이런, 제기랄…….]고기 방패처럼 꾸역꾸역 공격을 받아 내고 재생하는 바스카스 후작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손이 모자라다……! 차라리 호스테레온, 아니 암수라도 하나 데리고 왔더라면……!’
카심은 통곡의 벽 앞에서 좌절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가 끝났음을 알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다, 카심.”
*
아침 해가 떠올랐다.
메시는 지하 굴에서 나오는 아헨탈 기사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치료했다.
신체가 잘린 이들은 이어 붙이고, 봉합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를 아물게 했다. 죽은 이보단 신체 결손을 당한 이들이 많았다.
이번 일의 경우, 아헨탈 기사들을 따돌리고 서둘러 내성으로 가기 위해 무력화할 요량이었는지, 적도 일부러 ‘거동하기 불편한’ 부상자를 만드는 데 집중한 느낌이었다.
그저 죽이는 것보다 부상자로 만들면 돌봐 줄 동료까지 같이 뒤로 빠질 테고, 그럼 포위망이 헐거워지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소드 마스터급의 벌목꾼을 상대했음에도 아헨탈 기사단의 사망자가 적다는 건 참 다행이었다.
“라망 경.”
하지만 당사자에겐 잔인한 현실이었다.
라망의 오른쪽 어깨가 비어 있는 채로 천으로 동여매어져 있었다. 메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예하, 그런 얼굴로 볼 건 없습니다.”
“팔은요? 가지고 나오셨어야지요!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이 듣습니다. 말을 낮춰 주십시오.”
라망이 호스테레온의 채찍에 오른팔을 잃었다.
티를 내면 안 되겠지만, 다른 누구보다 그 사실이 메시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제야… 경이 빛을 보는가 했더니…….”
아헨탈 후작도 안타까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장군 개미 덕분에 그자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극단적인 방법이긴 했지만… 그게 아니었으면 피해가 더욱 컸을 겁니다.”
카심을 막지 못한 아헨탈 기사단이 호스테레온을 막는다고 해 봐야 얼마나 막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땅속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장군 개미의 지원 덕분에 호스테레온을 막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피해가 자연히 커졌고, 장군 개미는 극단적인 수를 썼다.
토굴을 무너뜨려 아예 호스테레온을 삼켜 버린 것이다. 제아무리 소드 마스터라 해도 인간은 숨이 막히면 무력하다는 걸 개미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때 라망이나 다른 기사들의 잘린 신체가 같이 휩쓸려 버렸다.
‘차라리 내가 처리를 하고 뒤따라갔어야 했다. 아스카론(티끌)이라면 몇 분 정도는 더 버틸 수 있었을 거야.’
물론 이건 결과론적인 이야기였다.
카심은 속도 위주의 소드 마스터고, 단순 이동에 있어선 어블레이즈인 메시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빠르다. 그런 그에게 몇 분의 시간을 더 준다는 건 넉넉한 시간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의 안타까움에 메시의 목이 멨다.
그때였다.
불쑥.
땅속에서 장군 개미가 모습을 드러냈다. 터벅터벅 걸어 나오더니 품 안에 든 것들을 와르르 쏟아 냈다.
라망과 신체를 잃은 기사들의 눈이 하나같이 커졌다.
“너……!”
라망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한때 자신과 검을 나눴던 마물이 이젠 자신의 오른팔을 잊지 않고 챙겨서 가져온 것이다.
흙이 잔뜩 묻어 절단면이 오염되긴 했지만, 메시가 있는 이상 그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장군 개미는 또 땅속에서 뭔가를 전리품처럼 꺼내서 내던졌다.
다름 아닌, 생매장당할 뻔한 호스테레온이었다.
힘줄이 끊긴 상태로 포박된 카심과 의식을 잃은 호스테레온. 둘을 보는 아헨탈 후작의 눈빛은 곱지 않았다.
하마터면 도시가 전복당할 뻔했고, 아헨탈 기사들의 피해도 커질 뻔했으니 당연했다.
“붙잡힌 벌목꾼이 둘이라……. 메시 경,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오?”
단순히 벌목꾼의 처우에 관해 묻는 건 아니리라. 이를 보낸 에이드리언 가문까지 포함한 물음일 터.
“당하기만 하는 건 우리 성질이 아니지 않습니까?”
두 벌목꾼을 보는 메시의 눈이 번뜩였다.
“가르쳐 줘야지요. 우릴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복수는 메시의 전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