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3
전업 힐러는 점점 강해진다
(22)
“고급 이상의 마나연공법, 그리고 상승 검술을 원합니다. 추가로, 선생이 되어줄 괜찮은 마법사. 정령술을 공부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까지 닦아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수련에 도움이 될 물자도 지원해주셔야 합니다. 보시다시피 출발이 늦은 터라 정석적인 방법으로는 힘들 거 같거든요.”
“흐, 흐하하하!”
웃음벨이라도 때린 듯 라망이 폭소를 터뜨렸다. 신호탄처럼 웃음이 번져나가 기사와 용병들은 눈물을 찔끔 닦았다.
그런데 웃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메시와 에레브였다.
그 말은, 정말로 둘 다 진지하게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천천히… 한 사람씩 웃음을 거둬갔다. 모두의 안색이 얼었다.
‘저 미친놈이… 그게 진짜로 원하는 거라고?’
‘이 공자가 웃지 않았다는 건, 방금 그 터무니없는 조건이 진짜 고려대상이 된다는 건데.’
‘잠깐만. 그럼 이 공자는 메시의 가치를 그 정도로 측정하고 있다는 뜻 아냐?’
기사들이 심란한 가운데, 에레브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게 끝인가? 더 있을 듯한데.”
“아헨탈 가문 내에서 쓰고 있는 정보망과 통신자원을 저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시죠. 아니면 제가 유용할 수 있게 권한을 확대해주시든지… 또, 정보단체의 비중 있는 직위로 넣어주는 것도 고려해볼 만합니다.”
“정보까지…?”
“이렇게까지 해주시려면 이 공자께서도 현 위치에선 월권이겠고… 저를 위해서라도 가주 자리에 올라주셔야겠습니다. 싫으셔도 제가 억지로 할 테니 하는 수 없겠군요.”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농담처럼 안 들린다. 내가 널 가주로 만들어주겠다는 거만한 말이기도 했다.
‘왜 이 미친놈의 말이 오만하게 들리지 않을까… 이놈이 하겠다면 정말 할 거 같고… 이상한 일이야.’
에레브는 턱을 괴고 고민하다가, 상대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하나씩 짚어나갔다.
“메시, 네가 원하는 건 다 말한 거 같고. 현실적인 얘기부터 해보지. 일단, 우리 아헨탈 가문이 어느 왕가의 소속인지나 알고 있나?”
“모릅니다. 안다고 해도 그 왕가에서 얼마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지, 힘이 있는지도 모르는 편입니다.”
“네 얘길 들어보면 제대로 우리 가문의 등 위에 올라타겠다는 심보야. 난 좋아, 네 명운까지 우리 가문에 걸겠다는 뜻이니까. 근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체 뭘 믿고 아헨탈 가의 허리를 힘줘서 잡는 거지?”
“…베누다 마을과 외곽 숲 쪽은 아시리스 왕국의 변경백인 탈렌 백작가의 영역입니다. 변경백은 세금도 내지 않고 자체적으로 영지와 군대를 꾸려가며 독자적인 힘을 갖췄습니다. 정치적으론 중앙권력과 거리가 있지만 자생력이 있죠.”
“내가 언제 탈렌 백작가에 관해 물었나?”
“그게 아니라, 이 공자께서 하신 일을 생각해보시죠. 용병을 제외해도 기사 오십으로 상당한 무력집단을 탈렌 가의 영지에 끌고 들어왔을 뿐 아니라, 베누다 마을에서 물자를 징수, 인력까지 차출해서 부려먹고 계십니다. 이건 탈렌 백작가를 강한 힘과 영향력으로 압도했거나, 협의를 끌어냈다는 말과 같습니다.”
특히 변경백들은 척박한 외곽 영지를 홀로 끌고 가는 입장이다 보니 자원과 인구에 대해서 민감하다. 그런 상대로 물자를 차출하고 인력까지 끌어다 썼다는 건… 무시했든, 협상했든 둘 중 어느 쪽이든 아헨탈 가문의 영향력이 대단하단 소리다.
“네가 볼 땐 우리 가문이 꽤 힘이 있다?”
“그렇습니다. 아니면, 협상력이 좋거나… 물론, 협상도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하니 결론은 같습니다.”
“크하하! 그렇군, 그렇군. 내가 확실히 남의 영지에서 너무 설치긴 했어, 그렇지?”
악동처럼 웃는다. 모르고 저지른 게 아니란 소리. 즉, 뒷감당이 된다는 얘기였다. 고개를 주억거린 그는 바로 다음 얘기로 넘어갔다.
“좋아, 그럼 다른 문제를 얘기해 보지. 네가 요구한 마법사 선생이나 경제적인 건 확답을 해줄 수 있다. 수련 물자 또한 당연하고. 그건 지금이라도 줄 수 있어. 그런데, 고급 마나연공법과 상승 검술 말인데… 그건 힘들다.”
“그렇군요.”
순순히 납득 하는 메시였다.
“수긍이 빠르군.”
“일단 전 마나연공법과 상승 검술에 대해 잘 모릅니다. 대단히 구하기 어렵다고만 알고 있죠.”
“아무래도 둘 다 비전으로 취급되다 보니… 시중에 괜찮은 마나연공법이나 상승 검술이라도 나타났다 하면 난리가 나거든.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만, 그 둘은 없어서 못 구해. 가문마다 필사적으로 보안을 유지하고, 연구하는 건 이유가 다 있는 거다. 메시.”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런 수직적 위계 사회가 유지되고 있는 데는 기득권이 하층민을 완전히 수탈할 수 있는 구조라는 뜻이다.
‘자본’과 ‘계급’도 구조를 이루는 이유가 되지만, ‘무력의 독점’만큼 확실하진 않았다. 지배계층에 가까운 자만이 마나를 쓸 수 있었고, 상승 검술을 배울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은패 용병인 에일라와 동패 용병들과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마나를 사용하게 되면서 에일라는 인간의 움직임을 벗어났다.
“그렇다고 아헨탈 마나연공법과 검술을 네게 전수하기엔… 우린 아직 믿음이 부족하지.”
“그 둘까진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분명 가문의 정수이고 귀한 고급 연공법일테니 확실한 이들만 배우겠죠. 전 자격도 안 될 테고, 된다 해도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격입니다.”
메시의 뒤편에는 기사들이 잔뜩 서 있었다. ‘아헨탈 마나연공법’이란 말이 나오자마자 도끼눈을 뜬 채다.
가문의 기사들에겐 가문의 마나연공법이나 검술을 익혔다는 것은 자존심과도 같다. 가문의 정수를 익힌다는 건 지금껏 고생한 자신들을 믿고 인정한다는 뜻이었으니까.
그걸 메시가 달라고 했다면 당장 반발할 이들이 스물은 됐다.
“그것도 그렇지만… 메시. 넌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메시, 세상은 마나연공법이나 검술을 10단계로 구분한다. 평가는 천공성이 하지. 그놈들은 우리 아헨탈 마나연공법과 검술을 고작 4, 5단계 사이로 쳐준다. 인심을 써야 중급이나 중하급에 해당한다는 거지.”
“빌어먹을 놈들, 감히…”
생각만 해도 열 받는 듯, 옆에서 라망이 이를 갈아댔다.
메시는 아헨탈 가의 영향력이 상당하다고 판단했기에 가문의 연공법이나 검술은 고급에 해당할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보단 높지 않군…’
사실 4, 5단계도 일가를 이룬 경지로 취급받는 대단한 것이지만, 이를 잘 몰랐다.
“라망 경, 화내봐야 뭐하겠습니까. 우리가 반성할 일입니다. 솔직히 가문에 소드 마스터가 나온 지 한참 전이니까요.”
“그리고 가문 검술과 연공법의 우수함이 꼭 가문의 힘과 비례하는 건 아니니까요. 우린 우리 것을 발전시켜 나가면 됩니다. 안 그런가, 네놈들?”
“이 공자 말씀이 옳습니다!”
기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메시, 어쨌든 넌 우리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걸 요구한 셈이다. 그러니 당연히…”
“줄 수 없는 거군요.”
“어떻게든 네가 익힐 만한 연공법이나 검술은 구해보겠다. 그건 내가 약조하지.”
메시는 고민하는 척했지만, 사실 예전부터 나온 답이었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예비 가주.”
“뭐라? 크하하하!”
전혀 그럴 거 같지 않았던 메시가 은근슬쩍 아첨하자 기분이 좋아진 에레브였다.
“기분이 좋군. 고용 계약은 가문에 돌아간 뒤에 정식으로 하겠다. 이건… 계약금 정도로 생각해둬.”
에레브는 품에서 보석 두 알을 꺼내 메시에게 던졌다. 오팔이었다.
“이건… 돈 대용입니까?”
“하하, 황당하군. 보석술도 모르는 거냐. 네가 원하던 수련 물자 아니냐.”
메시가 의아하게 쳐다봤다.
“평민이니 모를 만도 하군. 앞으로 네가 몸담을 곳이니 잘 기억해둬라, 아헨탈 가는 보석 채굴과 유통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보석술과 같은 가공 기술도 발달했지. 그건 보석을 재료로 만든 수련 물자다. 우리 가문의 기사들은 두 달마다 그걸 지급 받는다.
거기엔 마나연공에 도움이 될 기운이 담겨져 있으니 잘 사용하도록. 깨뜨린 후에 마나연공을 해보면 차이점을 느낄 테지만… 지금은 소용없을 테니 아껴둬라.”
“감사합니다.”
받은 걸 주머니에 넣었다. 귀한 건진 잘 모르겠으나, 노골적으로 따라붙는 시선이 느껴질 정도니 분명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식사를 마친 에레브와 라망이 사라지자 에일라가 다가왔다.
“메시, 정말 저 귀족을 따라갈 셈이야?”
“아… 미안하게 됐어요. 에일라. 그래도 붉은 여우와는 좋은 인연을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그건 말해 뭐해. 넌 이미 우리 용병 단원들의 은인이야. 네가 우리 용병단에 오지 않는 것과는 관계없어. 다만 내가 걱정하는 건…”
주변에 듣는 귀가 있기에 뒷말을 흘리는 그녀였다.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걱정하지 마요.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선택한 거뿐이니까.”
메시의 눈에서 스산한 빛이 흘렀다.
아헨탈 가를 선택한 이유는 명징했다. 이 시대엔 기득권층과 비기득권층의 기반 차이가 컸기에,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 따윈 없었다.
기득권의 일원이라 볼 수 있는 귀족들이 자본과 수련 물자를 독점하고 있는데 그걸 따라갈 수단은 많지 않다. 메시는 아헨탈 가의 인프라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아헨탈 가를 양분으로 쑥쑥 자라주마.’
뿐만 아니라, 사부는 강했지만 복수는커녕 사건의 전모조차 밝히지 못했다. 그건 그를 도와주는 동료나 세력이 전혀 없던 탓이다.
메시는 사부의 전철을 밟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신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의미한 세력을 자신의 발아래 두는 것도 필요했다.
힘과 세력을 확보한 뒤, 적당한 시기와 계기가 있을 때 그는 본색을 드러낼 것이다.
어차피 바스카스 백작처럼 사부가 의심한 사건 관련자들은 메시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자신도 모르는 곳에서 누군가가 원한을 쌓아가고 있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뼈저리게 알려줄 참이었다.
탁.
문을 닫고 30층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자, 책상에서 자고 있던 공주가 눈을 떴다.
[ 왔뀨? ]“더 자도 돼. 번역해주느라 고생했는데.”
[ 고맙다뀨우우우…. ]공주는 꿈쩍도 하지 않고 다시 잠들었다.
메시는 방안에 불 하나 켜지 않은 채, 달빛에 의지해 바닥에 앉았다. 먼지는… 그냥 무시했다.
주머니에서 오팔 하나를 꺼냈다. 그립감 좋게 손에 쥐고 힘을 꽉 줬다. 파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깨졌다.
“쳇, 그래도 고급 연공법 정돈되는 줄 알았더니…”
입으로 웅얼거리는 작은 불만과 다르게, 메시의 집중은 순식간에 자신의 내부로 향하고 있었다.
‘브레이브’의 경지였다.
새비지로 육신의 수련은 끝마치고, 이제 바깥보단 내부를 관조하면서 자기 자신을 하나의 그릇으로 인식한다.
마나는 우주의 기운이며, 그것을 담은 것이 우주다. 그러니 ‘나’를 ‘우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마나이며, 자기 자신을 또 다른 ‘세계’로 발돋움하게 하는 것이 마나연공법이다.
메시는 개미굴에서 싸우는 기사들을 치료해주며 느꼈던 감각. 그들의 몸을 이해하면서 알게 된 마나의 행로들을 쫓아갔다.
그가 따로 갖고 있다는 CPU, 또는 뛰어난 자질이 새롭게 추가된 업데이트 자료를 받아들였고, 몸은 이내 그것을 재현했다. 다시 한번 자신의 몸에 그들의 감각을 입히는 과정이 이어졌다.
스아아…
메시의 몸이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마나가 그의 몸으로 흘러 들어갔다. 행로는 명백했고, 마나를 이끄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오래전부터 마나를 연공 했던 사람처럼, 메시는 첫 마나연공법을 시도했다. 기운이 흐르는 데에 익숙지 않던 몸은 그 능숙함에 당황했으나 천천히 받아들였다.
‘흐른다. 흐른다… 이것이 아헨탈 마나연공법인가.’
한번 기세를 탄 마나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경로를 내달렸다. 메시가 굳이 힘들게 이끌려 하지 않아도 초행길이 아닌 듯 뛰어다녔다. 메시도 그걸 말리지 않았다.
마나에는 서서히 다른 기운이 섞였는데, 아마 보석을 깨자 흘러나온 기운으로 추측됐다. 마나와 섞이더니 약간의 증폭 작용을 했다.
답답하고 좁던 메시의 운행로를 두꺼워진 증폭 마나가 그대로 뚫고 나갔다.
괜히 모든 일엔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게 아니었다. 지금껏 마나와는 일절 접촉이 없었던 몸이었기에 강력한 압축력을 지닌 증폭 마나를 잘 몰랐다. 대비가 전혀 되지 않은 마나행로가 ‘뻥’ 하고 뚫리는 순간이었다.
단순한 우연으로 마나 증폭 보석을 받았고, 메시는 그걸 아주 효과적으로 썼다. 그 우연이 수련을 몇 년이나 앞당긴 것이었으니까. 수련 시작이 늦은 편인 메시에겐 이로운 일이었다.
‘이해를 바탕으로 그들의 마나연공을 재현한다. 이를 반복 숙달한다. 그것이 체화의 과정.’
장군 개미와 싸우는 도중에도, 기사들의 마나는 일정 경로로 마나가 끊임없이 돌고 있었다.
메시의 몸은 그때를 재현해냈다. 그리고 마침내 체화해냈다. 그의 의지가 없어도 마나는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에레브나 아헨탈 기사단원들이 봤으면 기절할 광경이었다.
가르쳐주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메시는 아헨탈 마나연공법을 이미 훔쳐 배웠으니까.
그들의 자존심이던 가문의 정수는 이미 유출된 지 오래였다.
끝
ⓒ 10억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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