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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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이었다.
불똥이 튀어 오르는 화톳불 앞.
“그러니까… 동생의 말은, 이 모든 게 티프리메이식이 벌인 짓이라는 것이군.”
바로 고개를 끄덕이자 바르셀로의 얼굴이 짐짓 흐려졌다. 머리를 깊게 숙이면서 그림자가 생긴 탓이었다.
메시는 바르셀로가 모르고 있던 사실들을 알려 주었다.
티프리메이식의 존재와 그가 어째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자신과 마드리, 죄 없는 벌목꾼들이 왜 거기에 휩쓸렸는지까지도.
차원 이동에 관한 이야기만 빼고 대부분을 알려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동안 이를 알아내기 위해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사실만 간추려서 말로 전달하는 덴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자, 만난 적이 있어. 단순한 벌목꾼의 수호신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 거야…….”
“티프리메이식은… 경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랜 세월 이 세상에 자리 잡아 있었던 만큼, 자신을 처단할 만한 자질을 지닌 자들을 미리 짓밟아 왔지요.”
“자네의 얘기를 들으니 앞뒤가 맞아떨어지네. 사실, 10년 전 개척팀장으로 알파 147로 향하는 건 내게 주어진 일이 아니었거든. 갑작스레 내 개척팀을 거기에 집어넣더니… 처음부터 목적이 나였던 거였군.”
사부의 두 눈이 타오르고 있었다. 장작불에 비쳐서일까, 아니면 분노로 인한 것일까.
“동생은 이런 걸 어찌 알았나?”
“아까 보셨다시피 전 아인하르츠 가문의 비전을 이은 사람입니다. 300년 전… 철벽의 아인 공은 티프리메이식에게 당했고, 그 후손들은 여태 쫓기는 신세지요. 하지만 그 긴 세월을 마냥 당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도 알아낸 것들이 있지요.”
바르셀로도 납득한 듯 주억거렸다.
사실 목숨을 구해 주고, 추격자들을 화려하게 몰살시킨 그를 의심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놀라운 실력을 지닌 메시의 근간이 어디에 있나 궁금했을 뿐이다.
‘그 벌목꾼 스승이라는 사람은 아인하르츠 가문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하긴 벌목꾼 연합체는 도망자들이 숨기 좋은 곳이지. 문제는 거기가 이리의 아가리인 줄 모르고 들어간 게로군.’
그럼 아인하르츠 가문의 비전은 그렇다 치고. 그 치료술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목숨을 구해 준 사람을 캐물어 취조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다. 여기까지가 딱 적정선이었다.
‘과거 좀 모르는 게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10년 동안 한 명도 생기지 않은 동료가 나온 것인데.’
바르셀로는 조금 들뜬 마음마저 들었다.
여태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도 힘듦을 아는 사람이었고, 사람이기에 외로웠다.
흑막 세력은 철저하게 꼬리를 제거하고, 바르셀로와 가까웠던 사람들을 회유하거나 죽였다. 뒤를 쫓던 10년의 세월 대부분 시간을 홀로 보내야만 했다.
어쩌다 인연을 맺거나 가까이 접근하는 이들도 배신자거나 암살자들이었다. 그랬기에 항상 경계심에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사제는 출발선부터가 다르다. 중독되어 있을 때 얼마든지 손을 쓸 수 있었을 텐데도, 치료하고 손을 보탰다.
바르셀로는 저도 모르게 입이 가벼워졌다.
“그런데, 동생. 형님이라 부르라니까.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거 같은데…….”
“……?”
메시는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사부의 나이는 지금 40대가 코앞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억지를 쓰니… 농처럼 들릴 수밖에.
‘그만큼 내가 마음에 든 건가?’
피식.
그간 진지했던 사부의 모습만 봐오다 저런 우스운 모습을 보니 메시도 덩달아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좀 더… 마음이 정리되면 그리하겠습니다.”
“정리? 아무튼 좋네. 이리 연을 맺게 되었으니 난 기쁘기 그지없어. 앞으로 잘 부탁하네.”
밥 대용으로 먹고 있던 과일을, 술잔처럼 짠 부딪쳐 오는 바르셀로였다. 과거엔 볼 수 없었던 사부의 유쾌함에 메시는 웃었다.
이런 모습을 볼수록 떠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메시는 지금 이 순간을 조금이나마 즐기고자 했다.
‘아주 잠시만 시간을 보내는 거다… 사부와 함께… 조금만…….’
“이곳 너머라면… 몸을 숨기기엔 모자람이 없을걸세.”
메시는 바르셀로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봤다. 곧 어수선한 마음이 들었다. 익숙한 마을이 보인 탓이다.
차원을 넘어오며 사부를 만난 것도 놀라운 일인데, 여길 함께 올 줄은 몰랐다.
“베누다 마을…….”
“눈이 좋군. 그새 마을 명패를 봤나? 10년 전에 내가 지은 거야.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나를 환영하지 않을 테지…….”
바르셀로는 슬픈 눈이 되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자신은 그저 실패한 개척자일 뿐이다. 어떤 사정을 들먹여도 달라지지 않는다.
강제로 징집 당해 개척 마을로 이주를 해야 했던 이곳 사람들의 한은 풀리지 않는 원통한 것이었다.
“이 너머에 알파 147. 이젠 ‘원망의 숲’이라 불리는 곳이 있네. 그래… 내가 오면서 말해 준 ‘그 사건’이 있었던 곳이야. 몇 년 전까지 벌목꾼들이 유적지에 재진입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계 때문에 어쩌질 못했다더군.”
“포기했나 보군요.”
“그렇네. 무려 초고대의 마법이니… 현시대로선 어쩔 수가 없다는 걸 안 거지. 하지만 그만큼 우리에게 좋은 조건이 어딨겠나?”
벌목꾼들이 개척 불가 지역으로 선포한 곳이며, 본인과도 관련이 있는 곳이었다. 램프 밑이 가장 어둡다고 몰래 숨어 살기에 적합했다.
‘어째서 사부가 원망의 숲에서 머물렀는지 알 거 같군…….’
독을 다스리는 사이 몸을 숨길 곳이 필요했겠지. 하지만 생각처럼 살가라스의 극독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였고… 아예 정착하게 된 것이리라.
“마을 사람들 몰래 지나가세나. 아무도 찾지 않는 마을에 나타난 외지인은… 주의를 끌기 마련이니.”
“그래도 경을 환영해 주는 사람이 하나쯤은 있지 않겠습니까?”
“환영이라…….”
약초꾼 레토를 떠올리며 한 말이었으나, 바르셀로는 씁쓸한 약재를 삼킨 사람처럼 입을 꾹 닫았다. 그러곤 조용히 읊조렸다.
“그런 사람이 있으려나…….”
한 사내의 짙은 외로움이 물씬 와 닿았다.
사부가 몸을 숨기는 것만 보고 떠나려 했던 메시의 의지는 점차 희미해지고 있었다.
*
놀랍게도 사부는 이전과 똑같은 장소를 선정하여 집을 짓기 시작했다.
나무가 워낙 높아 햇볕이 잘 안 들어오는 원망의 숲에서 유일하게 빛이 들어오는 장소였던 탓이다.
요새도 직접 만드는 벌목꾼답게, 능숙하게 집을 지었다.
‘난 밥 당번을 해야겠네.’
메시는 만년 개미 몇 마리를 잡아 체액을 뽑아냈다. 여기에 담긴 강인한 생명력을 알기에, 이보다 훌륭한 식사는 없었다.
사냥술에 능숙해지기 이전에는 이조차도 혼자 할 수 없었다. 어린 소년에 불과했던 자신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사부는 불편한 몸임에도 짐덩이 하나를 안고 이 숲에서 살아간 셈이었다.
“허어. 외곽 숲에서 열매라도 채취해 오나 했더니… 만년 개미의 체액을 알고 있었나?”
바르셀로는 메시가 가져온 체액을 보며 감탄했다.
원망의 숲 고유의 생태계 특성에 대해선 오는 길에 말해 줬지만, 거기서 무엇을 먹고 살지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게 생각난 것이다. 바르셀로의 실수였다.
“떠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주워듣다 보니…….”
“잘했네. 안 그래도 말해 주는 걸 깜빡했단 걸 알고 아차 싶었거든. 하하.”
집은 금세 완공됐다. 기억 속의 그리운 모습 그대로였다.
‘여기에 불을 질러서 몬스터들의 시선을 끌어모았었지…….’
사부의 시신도 함께 재가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게 시작되었다.
*
주거지가 마련되자, 식사를 끝마치면 대련을 반복하는 삶을 살았다.
그건 몇 달간 계속 이어졌다.
대련 장소는 유적지의 앞.
원망의 숲에서 가장 깊은 장소인 데다가, 몬스터들과 엔조 무에테마저 접근하지 않는 장소였기에 소란을 일으켜도 괜찮았다.
콰앙―!
쿵!
두 사람의 경지가 경지다 보니… 간단한 대련조차 소란스런 파문을 일으켰다.
숲이 울릴 만한 굉음이 매일매일 터져 나갔다. 원망의 숲 몬스터들이 소음공해로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길 몇 시간이면, 만신창이가 된 바르셀로와 메시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제야 숲이 조용해진다.
“동생의 힘은 정말 못 당하겠군. 젊어서 그런 건가?”
“그 외엔 할 만하다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하하! 솔직히 검은 내가 좀 낫지 않은가? 그래도 자네의 고속 검술만큼은 얕잡아 볼 수가 없겠더군. 아헨탈 검술이라 했나?”
“하지만 아직 티프리메이식의 수준에 닿기엔 미진하죠. 놈은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검이니, 속도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의미를 잃습니다.”
“공간을 지배한다… 상대하기 지극히 까다로운 검의군.”
바르셀로와 메시는 대련 후엔 자리를 잡고 앉아, 서로의 검술을 복기하고 논검했다.
또한 티프리메이식과의 가상의 전투 결과를 계속 추정해 냈다. 그의 전투력에 관해선 메시가 알고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뛰어난 감각과 사고를 지닌 바르셀로는 메시의 설명만으로 티프리메이식의 수준을 알아냈고, 그것을 바탕으로 가상의 전투를 이어 갔다.
메시는 그런 사부를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아마… 내가 이끄는 방향대로라면 곧 사부는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이를 테지…….’
사실, 메시는 바르셀로의 자질을 얻고 난 이후 자연스럽게 벽을 넘어섰다.
소드 마이스터의 경지였다.
하지만 높은 격을 지닌 메시의 경지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경지의 적들과 싸워도 밀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이른 티프리메이식과 조우한다 해도 질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길 수 있어.’
그런 확신이 들었다.
그럼에도 메시는 사부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이 시간도… 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굳이 자신의 힘을 바르셀로와 맞춰 가며 그와 검을 나눴다.
‘만약, 그때 사부에게서 검을 배웠다면 이랬을까?’
메시는 오랜 시간이 지나와서야 바르셀로에게서 검을 배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다.
수련이 끝나면, 두 사람은 한가롭게 원망의 숲을 거닐었다.
두 사람의 경지에 원망의 숲은 적당한 산책로에 불과했다.
눈을 감은 채 따스한 햇볕을 쬐던 바르셀로가 입을 열었다.
“동생, 이상하게도 난 지금이 좋네.”
“……?”
“이상한 상상 하지 말게. 그저, 마음이 편한 거야. 이런 평온은… 참 오래간만이군. 아니… 어쩌면 내 인생을 통틀어서 이런 시기가 잘 없었지.”
“다행입니다.”
“복수에 눈이 멀었었네. 근 10년… 동생과 동료의 억울한 죽음, 그 비밀을 알고 싶어서 정신없이 세상을 헤맸어. 그러니 얼마나 추한 꼴을 다 봤겠는가? 하하.”
지나고 보니 인생의 뒷맛이 씁쓸하다는 걸 깨달은 사람처럼, 바르셀로는 회한에 찬 음성이었다.
메시는 그런 스승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쓰라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바르셀로가 밝게 웃으며 메시의 어깨를 두드렸다. 작은 위로였다.
“이제라도 자네를 만나서 다행이야. 진심으로.”
“저도… 그렇습니다.”
“우리 두 사람이라면, 반드시 티프리메이식을 처단할 수 있겠지. 그날까지… 잘 부탁하네.”
그러곤 바르셀로는 먼저 앞서 걸어갔다. 제법 부끄러운 말을 해 버렸다고 생각한 걸까.
그 모습에 메시는 한숨을 내쉬었다.
‘티프리메이식을 사부와 함께 처단한다면…….’
메시는 눈동자가 깊어졌다.
그런 상상을 안 해 본 게 아니다. 오히려 메시가 바라마지 않는 그림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안 되는 이유가 있었다.
오흐가나는 자신에게 다차원의 모든 미래를 맡겼다.
그 말은, 메시가 이곳에 개입하여 티프리메이식을 해치우면, 이 차원을 기준으로 다른 차원의 미래가 조정된다는 뜻이다.
‘절대적 출발선’이라는 명제엔, 그 모든 차원의 바탕이 되는 큰 줄기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그 차원을 기준으로 나머지 차원들이 영향을 받아 비슷한 문명과 인과관계를 성립하는 것이다.
‘사부가 살아 있는 이곳이 큰 줄기, 진짜 역사가 된다.’
그리된다면… 큰 문제가 발생한다.
기존의 차원들엔 바르셀로가 살아 있지 않다. 애초 바르셀로가 독을 극복하여 살아나는 역사는 메시의 개입으로 벌어진 일이다.
그러니, 메시와 바르셀로가 티프리메이식을 해치우고 이곳이 차원이 기준이 된다면…….
남은 다른 차원들은 같은 결말을 세울 수가 없게 된다.
오류인 것이다.
‘사부는… 죽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그런 오류를 아카샤가 어떻게 해결하는지, 메시는 두 눈으로 보지 않았던가.
‘결국 이 차원만이 남고… 나머지 차원들은 모두 멸망하여 사라지겠지.’
메시가 있던, 원래의 차원도 그리될 것이다.
자신을 지키려 했던 그 수많은 사람도, 믿고 복수를 함께해 준 아헨탈 일가도. 세상을 구해 줄 거라 믿어 준 교단도.
모두 사라진다.
하지만…….
사부만은 살아남는다.
이곳에서 자신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지키려 했던 사람들도 이 차원에서 다시 재회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들은 자신을 처음 보는 거겠지만.
‘티프리메이식… 조금이나마 당신의 마음을 이해했어…….’
자신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걸까.
메시는 힘겹게, 바르셀로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오늘도.
선택하지 못했음에 괴로워하며.
*
눈을 떴다.
통나무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느새 익숙한 유적지 내부에 있었다.
메시는 이미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기에, 어디인지 알아차렸다.
“오흐가나.”
[그래. 내가 너를 이곳에 불렀다.]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신의 음성.
메시는 그녀가 있을 거라 짐작되는 장소로 시선을 두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저를 질책할 생각입니까.”
그녀가 왜 자신을 심상 세계로 소환했을까.
이유야 뻔했다.
자신은 제2의 티프리메이식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대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러던 것이 벌써 몇 년째 계속되고 있었으니까.
메시는 답지 않은 변명을 입에 올렸다.
“오흐가나, 나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별의 아픔을 모르지 않습니까. 소중한 사람과 다시 함께하는 이 순간순간이 얼마나 기쁜지… 당신은 모를 겁니다.”
[그래… 모른단다. 나는 여전히 인간에 대해 무지하지. 우리는 다른 업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니까… 서로 완전히 안다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안다.]상대방이 순순히 수긍하자, 도리어 할 말이 없어졌다. 메시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예상 밖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왔다.
[나는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란다. 오히려… 네게 제안을 하러 왔지.]제안…….
그 말을 듣자, 메시는 오흐가나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아이야. 네가 원한다면… 이 세상에 남지 않겠니?]“…이 차원을 기준으로, 다시 시작할 셈입니까.”
“저 때문에 내린 결정입니까……?”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가, 오흐가나는 말을 이었다.
[인간은 한 번 겪은 이별이라도 다시 반복하길 어려워하지. 그것은 아무리 뛰어난 너라도 같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이 순간을 오래전부터 그려 왔단다.]“제가 돌아가지 못할 거라 예단하고 있었군요.”
[인간은 미래를 살아갈 힘을 과거에서 얻는다고 하지 않니? 네게 과거는 그 스승이었고, 함께하고자 하는 애틋한 마음이 유달리 강했으니까…….]오랫동안 메시의 심상 세계 속에 머문 오흐가나였다. 어쩌면 뀨보다 더 메시에 관해 잘 알고 있는 존재가 그녀일지 몰랐다.
[나는 네가 한 가지 약속만 지켜 준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너는 알 테지.]그 약속이란 쉽게 예상이 갔다.
티프리메이식처럼, 또 다음 기회를 탐하려 들지 말란 의미일 것이다.
메시는 쉽게 약속하지 못했다.
티프리메이식이라고 처음부터 차원을 건너는 짓을 반복하려 했을까?
‘이 세상에서 불사자로 살아가다 소중한 이가 먼저 죽으면… 홀로 영원히 생을 이어 가야 한다.’
원래 차원은 멸망한 차원으로 뒤바뀐 지 오래일 테니 돌아갈 수조차 없다.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 고단한 형벌이 예정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러니… 티프리메이식도 다음 기회를 원하게 된 것이리라.
‘나라고 그렇게 변하지 말란 법이 없다… 티프리메이식 앞에서 모두를 지키겠다고 말한 나조차 지금 이러고 있는데.’
혼란스러움에 메시는 마른세수를 연거푸 반복했다.
하나의 선택에 걸린 조건들이 너무나도 컸다. 대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메시는 그에 대한 해답을 속 시원하게 알고 싶었으나, 누구도 대신 대답해 줄 수 없었다.
그 순간.
무언가 따스하고 커다란 것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걸 느꼈다.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모르겠니?]“…하나를 선택하면 가장 소중한 이가 영영 사라지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면 저를 믿어 준, 지켜야 할 이들이 사라집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이, 이토록 한심하게 느껴진 순간이 없었다.
그런 메시를 향해, 오흐가나가 말했다.
[아이야, 네가 진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더냐. 말하지 않았니, 나는 네게 모든 공을 넘겼다고… 둘 중 하나를 반드시 택해야만 한다면, 네 자신이 원하는 미래는… 네 안에 담겨 있는 것이 아니겠니? 묻는다면… 자기 자신에게 물어야겠지.]“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그 말에 흔들리던 메시의 동공이 일시에 멈췄다.
어디선가 들어본 낯익은 말이었다.
분명,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메시는 떠올렸다.
천천히 자신의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것은 거울이었다.
유리의 하단에 붉은 글씨로 문장 하나가 쓰인 특별한 거울.
“네가 진정 답을 갈구한다면, 철학자도, 인생의 스승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물어라…….”
거울에서 붉은 빛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