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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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2. 결혼식
많은 일들이 있었다.
단지, 고대 마법에 대한 호기심으로 연구실을 떠났을 뿐인데.
아헨탈의 전쟁에 휩쓸리기도 하고,
‘내’ 마탑을 세우기도 하며.
심지어는 세상을 멸망으로 이끄는 존재와 싸우기까지 했다.(사실, 싸우기만 했지 큰 영향을 끼친 건 아니다. 그 정도 양심은 있다.)
하지만 이 순간까지 가장 특별하고도 힘든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지금이었다.
“도둑.”
“변태 영감.”
“거기, 시끄럽다! 내가 아직 영감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거늘!”
“와, 들으셨습니까?”
“양심마저 없군.”
속닥속닥.
프로크스는 구석에 앉아 중얼대는 두 인간을 향해 삿대질했다.
그럼에도 오헨스와 에레브는 장난질을 멈추지 않았다.
‘저놈들이…….’
마음 같아선 번개라도 떨어뜨려 저 두 녀석을 굽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기분이 좋으니 한번 봐준다.”
오늘은 그 어떤 날보다 행복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결혼 축하합니다. 프로크스 님.”
예복을 입은 메시가 웃으며 축하하자, 프로크스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채로 머리를 긁적였다.
“으하하… 뭘. 사내가 때가 되면 다 하는 거지! 결혼도 못한 남자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 말에, 축하를 위해 들어오던 알란아스터가 난데없이 피격 대미지를 입고 추욱 처져서 되돌아갔다.
“이런, 그새 머리가 망가졌어. 기껏 빗은 건데!”
프로크스는 그 짧은 한마디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앞두면 대마법사의 멘탈도 소용없다는 게 증명됐다.
그의 머리는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기 위해 애쓴 티가 났다. 한 달 전부터 빗으로 매일 빗어 정리하고, 꽃 기름을 발라 광을 내고…….
심지어 예복도 고풍스러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젊은 귀족이나 입는 스타일이었다.
차라리 연륜을 강조하고, 풍채가 좋아 보이도록 벌크 업이라도 해 보는 게 나았을 거 같은데.
빼빼 마른 마법사의 판단 미스였다.
“프로크스 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제가 얼마든지 힐을 해 드릴 수 있는데요.”
“하하, 그때 말했잖은가. 나는 다시 젊어질 생각은 없다고.”
‘그런데 왜 그렇게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겁니까… 안쓰럽게…….’
도로 젊어질 방법이 있는데, 젊게 보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조금 미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메시는 프로크스가 한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드리와 재회한 후 회춘을 권유했으나 그는 거절했다.
[나는 ‘잊혀 가는 것의 복원’을 마법사적 소명으로 여기고 살아왔네. 고대 마법을 복원하려면, 그 반대 개념인 훼손에 대해 이해해야만 하지. 훼손된 방식을 역추적해야 손실 없이 원본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야. 훼손은 대게 인위적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범인은 ‘시간’일세. 그건 자연의 이치이고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에서 지듯이 당연한 흐름이야. 이걸 평생 이해하려고 노력한 학자가 나일세. 그런데 어찌 나보고 그 이치를 거스르라 하는가.]그 말에 메시도 더 권할 순 없었다.
두세 번 권유할 줄 알고 거절한 걸까 싶었는데, 태도에 변함이 없는 걸로 봐선 그건 아닌 듯했다.
‘뭐… 8서클의 벽도 넘어섰으니, 당분간은 별 상관 없으려나.’
프로크스는 마지막 결전이 좋은 경험치가 된 건지, 아헨탈에 복귀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지가 올랐다.
따라서 수명도 꽤 늘어났으리라.
신체 나이로 28살인 마드리와 발맞춰 살아가는 덴 별 무리가 없으리라.
8서클 대마법사 프로크스는 기분 좋아 보이는 얼굴로 예복의 타이를 매만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
연회장에 나온 알란아스터가 분한 듯 로윈에게 물었다.
“로윈, 이 결혼식을 망치는 방법은 없을까? 너, 그런 거 생각 잘하지 않느냐.”
“…갑자기 왜 이러세요. 돌아가면 제가 매파를 잘 타일러 보겠습니다. 좋은 사람을 찾아보죠, 아버지.”
“그래?”
바로 반색하는 알란아스터의 모습에, 로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양아버지는 ‘방탕한 소드마스터’라 불리던 시절의 행동으로 소문이 워낙 안 좋았다.
게다가 내전과 적십자단으로 인해 크롬벨령이 폭삭 망했는데 누가 딸을 시집보내겠는가.
왕국 최강검에 올라도 혼첩 하나 오지 않았다.
명예가 밥을 먹여 주는 건 아니니까.
양아버지도 자신이 결혼 시장에서 어떤 위치인지 안 건지, 점차 ‘결혼’이나 ‘혼인’이란 단어만 나와도 진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거짓말이면…….”
“제가 바빠도 꼭! 합니다!”
“약속한 거다.”
‘큰일 났군… 안 그래도 바빠 죽겠는데…….’
근래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로윈이었다.
망가진 크롬벨 영지를 재건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아헨탈 공작의 뒤를 따라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이 있으니 영주 대리 역할이라도 겨우 하는 실정이었다.
덕분에 영지민들의 시름만 들리던 크롬벨령도, 겨우 사람 살아가는 꼴은 갖추게 되었다.
허나, 그렇다고 일이 어디 줄어드는가?
시간을 내 이곳까지 온 것도 높으신 분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함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오지도 않았을 거다.
신랑 프로크스는 아헨탈 공작의 가장 친한 친우이자, 이 시대 유일한 8서클의 대마법사.
그리고 상대 여성은 사도 메시의 스승과 같은 핏줄이라 하니, 온갖 선물과 축하 사절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교황과 최고위 성직자, 성전십장, 고위 귀족과 유력자들…….
로윈은 그들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인사하고 다녔다.
“안녕하십니까, 크롬벨 백작령의 영주 대리. 로윈 폰 크롬벨입니다!”
언젠가, 영지가 이곳처럼 발전한다면 반드시 진탕 놀고 말겠다는 야망을 품으며.
정작 아헨탈의 후계자가 영주 대리 직무를 할 때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전혀 모른 채로 말이다.
*
예식은 성대했다.
8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이 주도해서 치르는 결혼식이니 오죽할까.
야외 예식장의 콘셉트는 ‘보석으로 만들어진 숲’이었다.
굵직한 미목을 일정 간격으로 심어 신랑과 신부가 걷는 길을 만들었고, 나뭇잎을 모조리 제거하고 대신 보석들을 치렁치렁 걸어놨다.
허공엔 잘 깎은 수정을 배치하여, 내리쬐는 빛을 이리저리 반사했다. 그 빛이 야외식장을 화려하게 비췄다.
그 아래, 프로크스와 마드리가 손을 잡고 서 있었다.
혼인 서약을 보증하기 위해 입회한 사제.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1세의 앞에서.
“프로크스 저 녀석. 입이 귀에 걸렸군…….”
지켜보던 아헨탈 공작의 한마디 했다.
그의 곁에 선 엘로이 부인도 거들었다.
“신부가 젊고 아름답잖아요.”
아헨탈 공작은 무심코 맞장구를 칠 뻔했으나.
흠칫.
다행히 제때 멈췄다.
유부남으로서의 오랜 경험과 중앙 귀족들의 정계에서 활약한바. 이것이 함정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그래도 부인만 못 하오. 당신과 혼인할 땐 나도 저런 얼굴이었을 거요.”
“흐응.”
엘로이 부인은 그 대답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 흐뭇하게 웃었다.
아헨탈 공작은 그렇게 가정을 지키고 1승을 적립했다.
이런 눈치를 지녔다면, 아무리 삭막한 바람이 불어도 제 한 몸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다 그런 능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거기서 조금 떨어진 뒤편, 라망은 스스로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하하, 예하. 그때, 생각나십니까?”
“무슨?”
“제가 막내딸을 소개해 드린다고 했을 때 말입니다.”
―……!
그 주변에 앉아 있던 아헨탈 기사들이 놀란 눈으로 라망을 쳐다보았다. 그러곤 슬쩍, 메시의 곁에 앉아 있는 에레나의 표정을 살폈다.
‘히익.’
‘허억…….’
‘라망 경, 제발 그만!’
에레브의 얼굴에서 보이던 미소가 왜 에레나의 얼굴에 있는 걸까.
기사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라망은 순진무구하게도 들떠서 말을 계속 이어 나갔다.
“제가 예하의 장인이 될 수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쉽습니다. 만약 그때 약혼을 했더라면, 지금쯤 저기서 공동 예식이라도 치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
‘곧 장례식을 먼저 치를 거 같은데.’
다가올 안 좋은 미래를 예상한 아헨탈 기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떴다. 황급히 대피하는 선두엔 오헨스가 있었다.
“물론, 에레나 아가씨가 소개해 준 막내 사위도…….”
“마음에 안 드셨었나 봐요?”
“예?”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음성.
자다가 속옷에 얼음이라도 들어간 사람처럼 라망이 화들짝 놀라 에레나를 바라봤다.
그제야 뭔가를 느낀 건지, 코끝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기사들은 어디 가고 다 빈자리뿐이다.
“제가 주선해 드린 배필감이… 마음에 안 드셨던 거죠?”
“어… 허허… 그, 그럴 리가요……. 예하와 비교하면 조금 손색이 있기야 하지만…….”
“아, 그렇구나. 그래서 아쉬우셨구나…….”
“…이제 전 사고의 가족석에 있어야 할 거 같군요. 준비한 이벤트가 있어서. 둘이서 대화 잘하길.”
“어어, 메시. 나도 도와줄게. 같이 가자.”
“예, 예하? 예하! 영주 대리!”
메시와 에레브가 황급히 자리를 비우자, 에레나는 슬쩍 자리를 옮겨 라망의 바로 옆자리를 채웠다.
“앉으세요.”
엉덩이를 슬쩍 떼는 라망을 도로 앉힌 에레나는 조용히 참교육을 시작했다.
*
마드리는 결혼식 당일, 정확히는 식장에 입장하고 나서부터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한데.
모두가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인데.
이상하게도 홀로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외딴 산길을 걷는다면 이런 느낌일까?
입회 사제, 그것도 교황의 앞에서 혼인 서약을 하면서. 그의 엄숙한 목소리가 귀에 안 들어올 정도였다.
자신이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던 마드리는, 이내 해답을 알아냈다.
‘내게 가족이 없어서 그렇구나…….’
결혼이라는…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나긴 여행을 시작하려는데, 아무도 배웅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못내 사무쳤다.
마음이 텅 비는 듯한 외로움을 일순 느낄 정도로.
그때.
그런 그녀의 손을 잡아 주는, 따뜻하지만 축축한 손이 있었다.
“괜찮아?”
프로크스였다.
항시 마드리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
그녀의 어지러운 심정을 못 알아챌 그가 아니었다.
애정 가득한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자, 마드리는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혼인 서약을 진행하는 교황의 음성이 다시금 들려왔다.
‘당신은… 여전히 나만 보고 있네.’
어느 날, 한 마리의 새가 창가 아래로 걸어와 소심하게 말했다.
[괘, 괜찮으시오? 나, 나는 프로크스라고 하오. 이래 봬도 마법사라오. 하도 안색이 창백하기에… 치료라도 해 줄까 하여… 아, 난 이상한 사람이 아니오. 진짜. 정말이라니까.]외로웠던 소녀, 상처 많은 소녀에게 찾아든 사람.
위로가 되어 줬던 사람.
아쉬운 이별 뒤에도 계속 생각났던 사람.
…긴 시간이 흘러도 같은 마음을 지녔던 사람.
그리고…….
마드리는 축축한 프로크스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느 때보다 긴장했으면서, 그런데도 나를 위해 주는 사람.’
비로소 마드리는 웃을 수 있었다.
자신은 혼자가 아니었기에.
비록 가족은 없지만, 함께 손을 잡고 평생을 걸어갈 사람이 있었다.
그러자 식장에 모인 이들의 면면이 좀 더 여유롭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자신과는 관련 없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뭐, 어떤가.
우리 두 사람을 배웅해 주려고 온 건데.
마드리의 시선은 다시 기울어, 가족석에 앉아 있는 메시를 바라봤다.
오라버니의 제자이자, 이제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사람.
메시가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기억을 찾지도 못했을 것이고, 프로크스와 재회할 수도 없었을 것이며, 복수를 이뤄 내기도 힘들었을 거다.
그런 메시가 오라비의 빈자리를 채워 주고 있었다.
‘고마워.’
마음이 전달된 건지, 메시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하고 마드리는 다시 고개를 돌리려는데.
‘응?’
그때 그녀의 눈에 조금 걸리는 게 있었다.
하나면 될 가족석이 두 개였고, 나머지 한 의자에는 웬 커다란 거울이 세워져 있었다.
저게 뭘까, 생각하는데.
그 순간.
“어, 어……?”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탄성을 흘리고야 말았다.
거울 속에서… 익숙한 남자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아…….”
말문이 막혀, 뭐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짙은 갈색의 머리. 온화한 입가. 자애로운 눈동자.
오라버니가… 저곳에 앉아 있다.
거울 속에서.
제자의 곁에서.
하나뿐인 여동생의 결혼식을 기쁜 얼굴로 축하해 주고 있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런 그녀를 보고 프로크스가 놀라, 서둘러 속삭였다.
“미, 미안하이… 놀랐나? 사실 말하고 준비할까 했는데… 메시 녀석이 비밀로 하자고 해서… 결혼 선물인데 널 울려 버렸구먼…….”
프로크스와 아스카론(티끌). 두 대마법사가 합작하여 만들어 낸 거울이었다.
갈구의 거울 또는 마주 보기의 거울.
옛 고대에선 놀이기구로 쓰였다고 했다. 그 기능만을 뽑아 어떻게든 재현한 것이었다.
마드리가 이 거울을 통해, 누구를 볼 건지는 자명했으므로.
울먹이며 마드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최고의 결혼 선물이야, 프로크스…….”
혼인 서약 중에 갑자기 신부가 진주 같은 눈물을 흘려 대자, 당황한 교황은 뺨을 긁적이다 폭소를 터뜨렸다.
“하하, 어차피 내 혼인 서약이 없어도 이 두 사람의 사랑은 영원할 거 같은데. 그냥 입맞춤하고 끝내지. 신랑과 신부. 괜찮겠나?”
역시 쿨한 요한 바오로 1세였다.
“아아, 그거 아주 마음에 듭니다.”
프로크스도 씩 웃었다.
곧 엄숙하던 식장에서 환호성과 비명이 같이 흘러나왔다.
*
사람들의 환호성 사이에서 메시도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행복해하는 두 사람.
즐거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
메시는 야외식장의 한쪽에서 행복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 모든 걸 두 손으로 지켜 낸 것 같아서.
어쩌면, 제 옆자리에 앉아 있을 사부를 생각하며 메시는 물었다.
‘사부. 이만하면… 제자는 충분히 행복한 거 아니겠어요?’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사부라면 그렇다고 답해 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웃을 때였다.
[잘했다.]“……!”
메시는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전히 모두는 박수를 치고 즐거워하며 한 커플의 적나라한 키스 타임을 관람 중이었다.
종이꽃잎이 허공에서 떨어지고, 보석들은 반짝반짝거렸다. 위에선 새 한 마리가 하늘을 선회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못 들은 걸까?
아니면 환청이었을까?
알 수 없었지만…….
“잘했다니 다행이네요.”
메시는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