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80
280/외전4
외전 2. 노기사 라망 (1)
라망 폰 스트라디무스 자작.
전전대 아헨탈 자작부터 전대 아헨탈 공작 그리고 지금의 가주에 이르기까지.
무려 3대를 성심을 다해 보필한 신하였으며, 긍지 높은 아헨탈 기사단의 정신이라고도 불리는 인물이었다.
‘죽지 않는 기사’라고도 불리우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고, 아헨탈 기사단을 정치와는 관계없이 오로지 자질과 실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탈바꿈시킨 인물이었다.
기사로서의 실력은 또 어떤가?
자질이 뒤처졌던 그였으나, 끝까지 검을 포기하지 않고 단련하여 40이 넘는 나이에 어블레이즈에 도달하는 기염을 토했다.
흘린 땀이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이야기는 대중이 열광하는 요소였다. 그가 8왕국 기사들의 존경을 받는 이유였다.
하지만 해가 뜨면 결국 지는 날도 있는 법.
새로운 시대의 물결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 존경 받던 기사 역시 점차 뒤로 물러나야 함을 느끼고 있었다.
‘몸이 예전 같지 않군…….’
관절이 삐거덕댔다. 약해진 근육과 혈관은 조금의 충격만 있어도 터져 나가 이내 멍이 되었다.
추위에는 얼마나 약해졌는지 살아오며 아침 훈련을 한 번도 빼먹지 않은 그였지만 갈수록 잠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어졌다.
“후, 후.”
겨우 추스르고 나온 라망은, 새벽이슬에 젖은 연무장을 선선히 달렸다.
예전에는 수십 바퀴를 돌아도 거뜬했던 거 같은데, 이젠 5바퀴만 돌아도 숨이 거칠다. 기력이 떨어진 게 여실히 느껴졌다.
나이로 인한 신체 능력의 저하는 높아진 경지로도 어쩔 수 없었다.
“나오셨습니까, 선배님.”
아침 훈련을 나온 젊은 기사 하나가 꾸뻑 인사를 했다. 단장직을 관둔 지는 오래됐다. 선배라는, 나이 차이를 생각하면 어색한 호칭이 벌써 익숙해졌다.
‘어느새 훈련 시간인가, 하긴… 오늘은 침소에서 너무 꼼지락댔어.’
라망도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아 준 후 그길로 연무장을 벗어나 내성의 성벽 위를 올랐다.
병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성벽에 올라선 라망의 두 눈에 도시 아헨탈이 담겼다. 이미 왕도에 필적할 만큼 개발된 이 도시는 지평선의 끝까지 건물로 빽빽했다.
한 기사의 삶이 저물어 가는 것과는 상관없이, 도시는 계속해서 팽창해 나갔다. 아헨탈 가문이 그토록 상업과 도시의 발전에 신경을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선을 아래로 두자, 내성 바깥의 연무장은 어느새 아침 훈련을 나온 기사들로 바글바글했다. 갓 일어나 몸이 조금 무거운 것만 빼면, 그들 하나하나의 수준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기사들은 젊고, 강했다.
라망은 땀을 식히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아헨탈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늙은 기사가 몸 둘 곳이 없었다.
“내가 오래 버티긴 했어…….”
70이 넘는 나이가 될 동안, 기사단에 계속 남아 있는 건 오직 라망뿐이었다.
오헨스조차 은퇴하고 그로테인의 뒤를 이어 집사로 전직을 한 마당에, 그보다 나이가 스물은 많은 자신이 여태 현역이라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허나 아무도 라망에게 은퇴를 권유하지 않았다.
못했다는 게 맞았다.
라망은 아헨탈 3대를 모신 가문의 살아 있는 역사였으며, 전대 기사단장이었다. 그 누가 은퇴를 입에 담겠는가.
거기다 라망 개인의 욕심도 있었다.
‘눈 감는 마지막까지 기사로 살고 싶다.’
태어나 기사로 살았으니, 죽는 것도 기사로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자작위를 받아 영지도 있는 마당에, 끝까지 아헨탈 기사로 버티고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고지식한 성격의 그였으니, 이런 가치관을 갖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욕심이었던 게야.’
어제와 그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오늘이지만. 이상하게도 이 순간, 라망은 그 꿈이 무리라는 걸 깨달아 가고 있었다.
아헨탈은 그간 너무도 압도적으로 번창하여 적수가 없었다.
귀족들도 시샘할 만하고, 티스리스트 왕도 견제를 할 법한데. 그 모두가 아헨탈을 건드리지 못했다.
처음에는 팔란티어 교국 아헨탈 령에 있는 ‘사도’ 때문이었다. 나중에는 아헨탈 자체의 힘이 강해져 왕조차 함부로 나서지 못했고.
그러니 전쟁 한 번 나질 않았다.
기사로서 죽을 기회도 없었다.
평화의 시대였다. 더는 기사가 제 죽을 자리를 찾을 수 없는 그런 시대.
불순 세력이 조금씩은 나타나고 있지만, 그 수준은 정말로 미미한 정도였다.
“그만 떠나야겠구나…….”
땀이 식자,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라망은 이마저도 제 늙음의 소치라 여기며 성벽을 내려갔다.
*
“왔나? 일이 바빠 근래 대화도 잘 못했군. 거기 앉아서 기다려 주시게. 차라도 마시고.”
에레브 폰 아헨탈.
현 아헨탈 가문의 가주이자 공작인 그가 집무실에서 바쁘게 펜대를 굴리고 있었다.
책상 곳곳에 쌓인 서류의 탑을 보자니 힘든 내색을 할 법도 한데. 라망의 방문이 순수하게 기쁜 듯 웃어 보였다.
“여전히 일이 많으십니다. 잠은 제때 주무십니까?”
“잠? 그게 뭐지?”
“예?”
“크크, 농담일세.”
유머 감각은 사망에 이르렀다.
하지만 50대에 접어든 가주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자신이나 오헨스 집사 앞에서나 그러했지, 다른 때는 매우 엄중한 모습이었다.
마치… 그리운 전대 가주처럼 말이다.
슥슥. 종이를 긁는 소리가 이어지는데, 그 와중에 라망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만… 물러날까 합니다.”
“기각.”
“……?”
“물러난다는 게, 집무실을 나가겠다는 말은 아닐 테고. 은퇴하고 싶다는 거 아닌가?”
“그렇습니다.”
“그러니 기각이지. 안 돼.”
너무 단호한 거 아닌가?
라망은 벙 찐 표정이 되었다.
“전 늙었습니다. 이때까지 기사단에 버티고 있었던 게 용한 일이지요. 그만 영지로 내려가서 손자 손녀 엉덩이나 두드리고 살렵니다.”
“손자, 손녀? 이봐, 라망 경. 자네 손자 손녀는 이미 다 컸어. 그런 짓을 했다간 말년에 변태 영감 소리나 듣는다고. 그냥 여기 가만히 있어.”
“그런… 그럼 증손자, 증손녀로 하지요.”
“증손들도 지금쯤이면 머리는 다 컸을걸. 예전처럼 ‘증조부님~’ 하고 아장아장 뛰어올 줄 아나? 아니야. 집에도 잘 안 오던 영감이 왜 갑자기 친한 척이지? 용돈이나 뜯어 볼까? 이런 생각이나 하지.”
“까짓 거 그럼 용돈 좀 주지요. 평생을 집안에 무심했으니… 면목없지 않습니까.”
에레브는 그제야 펜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라망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마주치고 서로가 진심이라는 걸 알자, 에레브는 한숨을 내쉬며 깃펜을 통에다 꽂았다.
“라망 경, 무슨 문제가 있나? 혹시 내가 섭섭하게 한 게 있나? 부디 말을 해 줬으면 하는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가주님은 제게 모든 걸 주셨습니다. 명예도, 작위도, 재산도. 그리고 끝까지 가주를 모실 영광도.”
“그런데 왜 떠나겠다는 건가? 그 영광을 걷어차고 말이야.”
“…이 공자.”
흠칫.
오랜만에 듣는 친숙한 호칭에, 에레브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 늙었습니다.”
“자네만 늙나? 나도 늙었어. 아직도 리자는 밤마다 난리인데… 크흠.”
“흘흘, 금실이 좋으시니 신하로서 보기 좋습니다.”
“내 입장이 되어 보게. 죽을 맛이야… 어떻게 된 게 자식만 여덟인데… 리자는 조금도……!”
낄낄낄…….
라망은 경박한 웃음을 터뜨렸다.
집무실 바깥을 지키던 병사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튼, 늙었다는 이유로는 안 돼. 정 힘들면 이번 여름휴가 때 함께 메시에게 가도록 하지. 자네라면 그 녀석도 냉큼 회춘시켜 줄 거야.”
라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젊은 시절에는, 예하의 능력 덕분에 든든하던 때도 있었지요. 하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젊어지는 것도 마냥 행복한 일이 아닌 걸 알겠습니다.”
“…….”
“먼저 가 버린 아내와 첫째도, 무심한 남편과 아버지를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을 텐데. 그 기한이 더 늦어지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에레브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에 연초를 물고 불을 붙였다. 창가 바깥을 바라보며 연기를 연거푸 뿜어 댔다.
가주가 된 이후 고민할 거리가 생기면 으레 보여 주는 모습이었기에 라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에레브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라망 경, 생각해 보게. 자네까지 이곳을 떠난다면… 나는 어찌하나?”
“장성한 아드님들도 있고, 훌륭한 기사가 많습니다. 내부의 일은 집사인 오헨스가 잘해 내고 있지요. 또, 왕도에 계신 전대 가주님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말은 좋지. 하지만 자식 새끼들도 키워 봐야 소용없어. 서로 다음 가주가 되겠다고 눈만 부라리고, 기사들도 가문을 직장으로 알지 옛날처럼 충직하지도 않아. 오헨스… 그로테인이 죽기 전까지 겨우 사람으로 만들긴 했지만 완벽할 리 없잖은가, 그 오헨스인데. 아버지는… 글쎄. 이상하게 그분 앞에선 약한 소리를 할 수가 없군. 죽은 형님 때문에 그런 걸까…….”
에레브는 연초를 재떨이에 비벼서 껐다. 한 줄기 뿌연 연기가 향처럼 피어올랐다.
“메시도 고대의 유물을 찾는다고 바쁘니 자주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에레나도 영지를 다스리는 고충이 나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네. 이런데, 자네마저 가 버리면… 난 대단히 외로울 거야.”
씁쓸한 가주의 말에 라망도 입을 다물었다.
한때의 철부지 이 공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 짊어진 것이 많은 중년의 사내만이 남았으니.
남자의 외로움을 이해하는 건 같은 사내뿐이라던가.
“라망 경, 그러니 가지 말게. 그대 아니면 내가 의지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기적인 말인 건 알아. 자네도 늙어서 따뜻한 집에서 가족과 함께하고 싶겠지. 하지만… 가지 말게. 부디 내가 기댈 수 있게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주게.”
“…….”
라망은 고개를 숙이고 말을 잇지 않았다. 다만, 쭈글쭈글해진 자신의 손등을 바라보며 얼마나 더 이 자리에서 버틸 수 있을지를 가늠했다.
적어도 한 3년은…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면 마지막 주인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망은 고개를 들어 웃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이 공자의 곁에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아 보지요.”
“킬킬, 아주 마음에 드는 소리야. 똥 닦느라 오헨스가 고생이 많겠군.”
기나긴 시간을 함께해 온 두 사람은 얘기할 거리도 많았다.
모처럼 라망이 방문했으니, 에레브도 펜을 놓고 수다를 떨었다.
원망의 숲에서 함께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에레브와 라망, 두 사람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이었으니 생략될 수가 없었다.
정겨운 시간이었다.
그러다 에레브가 갑자기 문득 생각났다는 듯 라망에게 제안했다.
“자네… 혹시 내 아들을 맡아 보지 않겠는가? 예전의 나처럼 말이야.”
“예에……?”
라망의 안색이 꺼무죽죽해졌다.
젊었을 적에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이 공자인데, 다 늙어서 이 공자의 피를 이은 공자를 맡으라니… 감당이 안 될 일이었다.
에레브의 순수혈통을 이었다면… 상상만 해도―
“무슨 불길한 생각을 하는 건지 알겠는데, 그런 녀석이 아니야. 다섯째는 흠… 나랑은 좀 달라.”
“……?”
다섯 번째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에 관해서 라망은 깜깜하다시피 했다.
그는 에레브의 자식 중 장녀(셋째)와 사공자 다음은 몰랐다. 그 이외 후계는 마주칠 일이 잘 없었으므로.
도시에 발맞춰 내성의 크기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특별히 마음먹지 않으면 만날 일이 없을 만큼 생활권이 넓어진 것이다.
늙은 라망의 성정도 한몫했다.
가문 내 이권 싸움에 관심이 없으니, 후계들도 끌어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러니 후계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 줄 사람이나 파벌이 어디에 있겠는가.
결국, 가끔 특별한 날에만 후계들을 스쳐 지나가듯 보는 게 다였다.
“다르다는 게… 좋은 쪽인지, 아니면 나쁜 쪽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음, 반반이라고 해야 할까…….”
“어렵군요.”
“어렵지… 어려워. 한 가지 확실한 건, 녀석은 대단히 무심하다는 거야.”
“……?”
“욕심이 없네. 갖고 싶은 것도 없고, 배우려고 들지도 않아. 심지어 가주 자리도 마찬가지야.”
“허어…….”
라망은 머리를 긁적였다. 지나치게 별종이라 느낀 거다.
젊었을 적, 에레브는 욕망의 화신 그 자체였다. 가주가 되기 위해 형제 에이러스와 얼마나 부딪쳤는가.
그런 걸 생각해 보면 그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 욕망에 해탈한 수도승과 같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환경 때문인가? 장녀를 제외하면 강력한 후보가 셋이나 위에 있으니… 일찍 체념한 걸 수도 있겠지. 헌데…….’
“좋은 거 아닙니까? 형제지간에 분란을 일으킬 것도 아니고… 다섯째면 아직 약관도 아니군요. 이제 18살이시니. 어째서 제게 그분을 맡기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이 의문이었다.
왜, 가주는 다섯째를 자신에게 맡기려는 것일까.
에레브는 새 연초를 입에 물고 잠시 사색의 시간을 갖고서야 말문을 열었다.
“욕심이 없다는 것만 빼고 생각해 보면, 빼어난 녀석이니까.”
“…그 말씀은, 다섯 번째 공자를 정식 후계자로 삼고 싶다는 말씀이십니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에레브조차 답을 찾는 듯,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자기 자신의 속내에게 물어보는 듯했다. 정말로 그러하냐고.
그러곤 이내 답을 내렸다.
“아헨탈은 아버지의 시대를 지나 내 시대로 오면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졌어. 지금보다 발전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만큼.”
“동감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적은 많아졌지. 알게 모르게 말이야. 다들 속마음은 아니꼽지만 참고 있는 거야. 메시가 멀쩡히 버티고 있고, 아헨탈의 힘도 강성하니까. 심지어 프로크스 마탑은 8왕국의 마탑 중에서 손에 꼽을 만하고, 크롬벨 백작령이라는 막강한 우군이 곁에 있으니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는 거지.”
라망도 주억거렸다. 해가 뜨는 아침, 성벽 위에서 바라보던 광경이 떠올랐다.
“그러나 영원한 건 없어. 로윈이 그럴 리는 없지만, 그 이후에 크롬벨 백작령이 옛 과거를 추억하며 적으로 돌변할 수도 있고, 아헨탈의 성세를 깎기 위해 아시리스나 타 왕국의 공작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지 몰라. 물론 지금도 없는 건 아니지. 백나비가 고생 중이니까.”
라망은 가주가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미래를 염두에 뒀을 때 가장 뛰어난 후계를 가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맞네. 요즘 가문의 첫째가 무능력한 경우를 빗대서 ‘아헨탈의 비극’이란 말을 쓴다지? 그만큼 첫째는 내 욕심만을 닮았지. 둘째는 성정이 너무 잔혹하고. 셋째는 시집을 갔으니 제외. 넷째는 가문보다 마탑에 더 관심이 많으니 뒤를 이었다간 남는 건 마탑뿐일 거야.”
“그럼… 오 공자만이 가주의 전체적인 기준을 넘어섰다는 얘기군요.”
에레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래서 아쉽다는 거네. 분명 가주로서의 욕심만 있다면… 참 완벽할 것 같거든.”
에레브는 라망의 앞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자네는 욕심만 많고 하찮았던 젊은 날의 나를 바른길로 인도했네. 아니, 인도까지는 좀 그렇고. 함께해 주었지.”
“그냥 인도했다고 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안 되지 그건. 메시가 섭섭해할 거야. 아무튼, 이번엔 내 아들과 함께해 주게. 뭐, 메시처럼 해 달라는 게 아니야. 난 그렇게까지 말년의 자네에게 부담을 안기고 싶진 않네. 그저… 가르침을 내려주게. 이 영지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얼마만큼의 피가 흘러 이 땅이 다져졌는지. 그리고 그것을 왜 자신이 지켜야 하는지 말이야.”
침묵하던 라망은 순순히 고개를 숙여 가주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노기사 라망 스트라디무스.
그의 마지막 임무가 될 것 같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