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88
288/외전12
외전 3. 여왕 뀨 (2)
500년.
500년의 시간이 흘렀다니…….
좀처럼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아서, 장군이에게 몇 번이나 재확인을 거쳤다.
하지만 무정하게도.
그 녀석은 실수 따윈 하지 않는다는 듯 더욱 강조해 올 뿐이었다. 내 혼란을 녀석이 이해해 줄 거라 기대하는 건 사치였다.
[―!]오히려 끊임없이 기뻐하는 감정 물질을 뿌려 대며, 여왕의 복귀 사실을 제국 전체로 퍼뜨리고 있었다.
장군이의 감정과 동일한 물질들이 분사되고, 제국은 그야말로 환희로 가득 찼다.
오로지, 이 제국에서 웃고 있지 않은 건.
여왕.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
“…….”
왜 이리 오랜 시간을 잠들어 있었을까.
이유가 짐작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내 손을 내려다보았다.
“완전히 꿈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인간과 비슷하게 작동하는 손.
다섯 개의 손가락에 관절 마디가 형성된, 부드러운 가죽을 둘러싼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다른 점이라면… 지문이 아예 없다는 것.
그러나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아도 인간을 닮았음이 명징했다. 한마디로, 종을 아득히 뛰어넘는 진화를 하고 만 것이다.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하체의 둔부만큼은 종족의 정체성을 지켰다고 해야 할까.
아마, 내 염원이 진화에 영향을 끼쳤다 해도 종의 번식을 책임지는 여왕으로의 기능마저 포기할 순 없었던 것이겠지.
그러니 저 녀석들이 여왕의 기침을 저리 반기는 것일 테고.
여왕이 성체가 아닌 탓에, 수백 년 가까이를 번식이 부재한 상태에서 나라를 운영했다. 그것도 이미 한계에 봉착했을 터.
당연하게도 번식이 안 되는 신체를 가진 여왕이었다면 녀석들은 즉각 반발했을 것이다. 아무리 강한 지배력을 지녔다 해도, 반드시 내리막길을 걷게 되는 제국에 충성을 바칠 녀석은 없을 테니. 뭐, 장군이라면 모르겠다만…….
꼬르르륵.
다시금 느껴지는 막대한 허기.
내 배고픔을 읽은 건지, 장군이는 어서 식사를 하라는 듯 애타게 가져온 것들을 가리켰다.
하지만 나는 그 배고픔마저 물리친 채 한참을 주저하다가.
“그는… 어디에 있지?”
결국, 가장 궁금한 질문을 장군이에게 하고 말았다.
녀석은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했던 것이라 놀랍진 않았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500년을 기다리고 있는 건 메시의 성정과 맞지 않았다.
“이곳에 없다면 언제 떠났지?”
[…….]여기서 장군이는 머뭇거렸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 못 하는 듯했다.
그만큼 오래전이라는 건가…….
책망할 일은 아니다. 지난 세월 동안 나를 대신해서 제국을 관리했다.
여왕의 지배 능력이라면 모를까. 쉴 새 없이 돌아가야만 하는 제국을 장군급 능력으로 빠짐없이 관리하려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을 터.
허나, 한 가지 사실만큼은 정확히 알려 주었다.
“몇 번 찾아왔다고? 하지만… 되돌아갔구나.”
메시가 준 서신도 있다 했으나, 찾고 보니 바스러진 지 오래전이었다.
지하굴이라는 유기물이 가득한 환경과 보존이라는 개념이 없는 장군이가 합작한 결과였다.
무려 500년이나 흐른 뒤였다. 그만큼 긴 시간 뒤에 깨어날 줄은 메시도 몰랐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가죽이나 석판에 글을 남겼겠지.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이냐…….”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이런…….
이런 결과를 원했던 게 아니다.
그저, 메시가 마음 둘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그와 헤어지는 결과가 빚어졌다는 게 충격이었다.
‘500년… 메시가 살아 있기나 할까…….’
내가 진화를 시작하기 전에도 이미 100살은 가뿐하게 넘긴 메시였다. 거기에 500년이 흘렀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시기조차 장군이가 기억을 정확히 못 할 정도로 무소식이라면―
“아아… 죽었겠구나…….”
죽었어.
내 유일한 친구가…….
죽었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수백 년 동안 신체를 재구성하면서 고생한 몸이 제발 영양분을 섭취하라며 간곡히 외치고 있지만.
그런 신호 따위는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할 만큼 크나큰 슬픔이 나를 덮쳤다.
가장 슬픈 사실은,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메시가 제일 힘든 시기.
의지할 곳이 없어… 방황하던 그때.
유일하게 변하지 않을 내게 마음을 기대고 있던 차에, 나마저 그를 버려 두고 딱딱한 허물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어리석은 뀨… 바보 같은 뀨… 어찌도 그리 어렸단 말인가― 그저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힘이 되었을 것을. 어째서 만족하지 못하고 허황된 꿈을 바랐던 것이냐―!”
어째서어어어어―!
여왕의 통곡과 비명이 여왕궁을 가득 채웠다.
꺽꺽 우는 소리가 집 안에 흘러넘치자, 그 슬픔의 감정에 동조된 병사들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환희에 차 있던 제국은 점차 여왕의 슬픔으로 번져 나갔다.
*
인간과 뒤섞인 새로운 형태로의 진화 때문일까.
아니면 진화 즉시 영양을 섭취하기는커녕 슬픔에 젖어 몸 관리를 게을리한 탓일까.
그해, 나의 제국에서는 동시다발적인 반란이 범람했다. 지배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황스럽진 않았다. 앞선 두 이유가 아닌, 수백 년에 달한 여왕의 부재 속 쌓인 불만이 이제야 터진 것일 수도 있었다.
긴 기다림 끝에 여왕을 맞이했으나, 상태가 메롱이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으로 돌아왔을 터.
애초에 각기 다르게 진화한 여덟 종류의 동족을 가장 우수한 종(만년 개미)의 아래에 묶어 놓는 것 자체가 기존의 지배 방식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이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 내 혼란과 슬픔의 틈바구니속에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얌전히 두고 볼 만큼 내가 순진하지 않아. 메시의 곁에서 보고 배운 게 있거든.’
난 정신을 차렸다.
슬픔에 젖어 모든 걸 잃어버리기엔, 이곳은 너무도 소중한 곳이었다.
여긴 메시가 나를 위해 찾아 준 곳.
여기라면 유아기에 불과한 내게 안전한 요람이 되어, 제국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을 거라 그는 생각한 것이다.
그런 곳을 고작 상태 난조로 인해 잃어버린다는 건 스스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으적으적…….
나는 꾸역꾸역 식사를 했다.
질 좋은 음식을 흡입하며 몸 상태를 최상으로 바꾸었다. 끊임없이 살을 찌웠다. 음식물을 먹고 소화했다. 그 영양분을 내 말라 죽어 가는 세포 곳곳에 채워 넣었다.
반란군도 바보들은 아니었다. 그걸 얌전히 지켜만 보진 않았다.
뇌의 용량을 최소화하는 진화를 한 이유로 이성보단 본능이 강하지만, 전투에 있어선 야생의 본능이 훨씬 위협적이다.
즉각 내 식량 공급을 끊고 머리를 처단하기 위해 여왕궁의 근방까지 병력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놈들이 간과하는 게 있었다.
기존 종의 한계를 초월한, 인간으로 따지자면 소드 마스터급에 다다른 괴물.
그런 장군이가, 본래 자신에게 주어진 ‘왕실수호대장’이라는 직무를 수행할 때 얼마나 지독해지는지.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곧, 장군이가 메시를 보고 배우며 쌓아 올린 힘을 드러내자 반란군의 진행은 철벽에 가로막힌 듯 그대로 멈췄다.
그사이, 나는 비축 식량을 씹어 삼켰다.
모자라면 반란군의 시체도 뜯어먹었다.
곧, 효과는 나타났다. 회복기에 접어들었고, 다시 지배력이 강화됐다. 반란군을 서서히 옭아맬 수 있었다.
그리고.
‘애초 장군이조차 어머니가 만들어 낸 장군급 개체에 불과해. 어머니보다 우수한 나라면 더욱 강력한 개체를 만들 수 있다.’
산란 또한 시작했다.
그 과정이 생각처럼 완벽한 건 아니었다.
인간과 유사한 몸은, 번식력에 있어서만큼은 기존의 신체를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숫자는 적어도, 탄생하는 개체 하나하나의 힘은 이전의 동족들을 까마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작은 알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일주일이면 성체가 되었고, 다 같이 약속이나 한 듯 전투에 특화된 존재들이었다.
이러니 반란이 계속될 수 없었다. 해를 넘기기도 전에 모든 사태는 깔끔하게 종식됐다.
“수고했어. 장군아.”
나의 치하에 더듬이를 배배 꼬며 좋아하는 장군이.
녀석이 신생 개체와의 서열 싸움을 벌이는 걸 내버려 두고, 난 제국의 내부를 샅샅이 살폈다.
내 감각 기관은 제국 전체를 아우를 만큼 예민하고 넓었으며, 강력했다. 여왕 개체만이 가지는 특권이었다.
이런 능력 없이도 여태 장군이가 제국을 관리할 수 있었던 건… 신기한 일이다.
‘예전보다 국토는 넓어졌지만… 숫자가 훨씬 줄어들었군. 식량 창고도 대부분 비었고. 이 상태론 강력한 외부의 적에게 노출되면 순식간에 무너질 뿐이야.’
여왕의 부재와 이번 반란으로 인해 생긴 공백이 치명적이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슬퍼할 시간조차 지금의 내겐 사치라는 사실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이제 어린 뀨는 없었다. 투정을 부리기엔 짊어진 것이 여실히 다가왔다.
나는 제국을 꾸리는 데 다시 전력투구하기 시작했다.
*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00년의 시간이 또 훌쩍 지나가 있었다.
제국은 다시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비대해진 영토를 줄이고, 확장보다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한 덕분이었다.
강력한 신생 개체들도 이제 그 숫자가 적지 않아, 더는 외적의 침입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강해졌다.
여유가 생기자, 그제야 나는 다시 슬퍼할 수 있었다.
인간의 개념에서야 100년 전 일로 다시 슬퍼한다는 게 우스울 수 있으나, 나의 수명에서 100년은 작은 일부분에 불과했다. 슬픔의 날은 무뎌져 있지 않았다.
100년이 흐르는 동안, 메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더욱 명백한지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장군이는 여왕궁에 틀어박힌 나를 신경 써 주듯, 어떤 방해도 하지 않았다.
이제 보니 저 녀석. 이전에 나를 배려해 주지 않은 건… 어쩌면 일부러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배력만 현상유지할 뿐. 여전히 나는 슬픔이란 감정 속에서 숨만 쉬고 살아갔다.
그때, 영원히 방해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장군이가 방문했다.
“…인간?”
제국을 침입한 인간을 잡았다고 한다.
장군이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인간에 대한 처우는 수백 년 전 즉위를 하자마자 모든 동족들에게 주지시켰다.
그들은 식량이 아니니, 먼저 적대하지 않는 이상 절대 사냥하지 말 것.
오히려 그들과 교분을 쌓아야 하니, 어려워 보이면 도와줄 것.
그마저도 그들이 원치 않는다면 방해하지 말 것.
이 세 가지는 강력한 지배력을 바탕으로 세뇌 각인을 펼쳐 대대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헌데, 이 세뇌에서 벗어나는 예외가 나온 것이다.
이유를 묻자, 흥미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나를 만나길 원한다고?”
인간이 내 존재를 아는 데다가, 만나고 싶어 한다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어쩌면…….
‘메시와 관련된 자가 아닐까.’
일말의 기대감이 샘솟았다.
*
생소한 어린 인간은 불안한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럴 만하다 여겼다.
인간은 빛이 없는 공간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공간, 숨쉬기가 버거운 곳에선 불안해하는 연약한 존재였다.
일부러 야명주를 몇 개 더 배치했으나, 그런 배려가 무색하게도 저 어린 인간에겐 소용이 없는 듯했다.
특히, 심약한 성정 탓인지 나를 보며 매우 놀란 표정이었다.
“저, 전설로만 듣던 ‘만년의 여왕’님을 뵙습니다!”
나는 넙죽 엎드려 외치는 그를 구석구석 살폈다.
그에게선 어떤 신성도 느껴지지 않았으며, 특출난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팔·다리는 가늘었으며, 몸속에 잠재된 기운도 예전의 장군이만 못했다.
오히려 그런 실력으로 이곳까지 무사히 도착한 것에 박수를 쳐 줘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내 시선을 이끄는 한 가지는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과 눈…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구나.”
“마, 말을……!”
“배웠느니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자, 어린 인간도 놀람을 잠재웠다.
내가 배웠다는데 뭐 어쩌겠는가.
“예까진 무슨 일이더냐?”
“ㅈ, 제 소개부터 드리겠습니다. 저는… 아우렌 폰 메시. 그러니까…….”
“……!”
“예, 위대한 여왕께서 기억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 가문의 1대조가 바로 여왕님의 친우 메시 님입니다.”
기대했던 대답에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렇군. 역시, 메시야.
내가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 후손을 통해 연락망을 만들어 둔 게 틀림없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장군이에게 모든 걸 맡기고 가기엔 그도 불안했던 거겠지.
“이제 보니… 눈이 많이 닮았구나.”
“…감사합니다! 그리 봐주신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여왕님께서도 얘기로만 전해 듣던 것과 다르게… 몹시도… 아, 아름다우십니다.”
움찔.
과연…….
메시의 후손답게 기본에 충실하고, 성정이 똑바르며, 보는 눈이 좋구나. 역시 피는 못 속인달까. 얼굴도 좀 닮았다.
나는 씰룩거리는 입가를 손으로 감추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온 것이냐? 혹… ‘그’가 어떤 부탁이라도 했더냐?”
질문이었으나, 사실 그가 남긴 편지라도 있으면 당장 토해 내라는 말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우렌이라는 어린 인간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리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뭐야?”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여왕님!”
…….
이제 보니 하나도 안 닮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