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92
292/외전16
외전 4. 검성 알란아스터 (3)
“기뻐하십시오, 마침내 성사되었습니다!”
“……?”
책상 정리를 하는 메리와 함께 시시덕대던 알란아스터는 갑자기 들이닥친 로윈의 말에 의아한 얼굴이 됐다.
“로윈. 그게 무슨 말이더냐?”
“혼처를 찾았단 말입니다!”
움찔.
알란아스터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책상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눈길을 따라, 로윈도 ‘저기 뭐가 있나?’ 하고 고개를 돌렸지만, 청소 중인 하녀뿐이었다.
“아버지, 안 기쁘세요?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맸던 걸 발견했단 말입니다!”
마치, 금광이라도 찾은 것처럼 로윈은 부르짖었다.
그리 기뻐할 만도 한 것이.
무려 두 달간 8왕국의 귀족 출신 과부란 과부는 다 찾아가며, 아버지가 맺을 수 있는 최선의 인연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여인의 외모는 당연하고, 상대 가문 위상과 결혼으로 발생할 가문끼리의 득실을 최대한 따져서 고르고 골랐다.
“키슨 경과 제가 밤잠을 두 시간씩 줄여 가며 이룩해 낸 결과입니다. 한번 보시죠.”
로윈은 자랑스레 두꺼운 보고서를 내밀었다. 양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건 읽지 못하고, 당장 자신이 해낸 일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사실, 두 달 전만 해도 칭찬을 듣다못해 업고 다녔을 거다.
하지만…….
“아세마르 왕국, 질리언 자작의 여식입니다. 나이는 좀 많긴 해도… 그래도 아버지보다는 적지요! 외모는 고생으로 많이 상하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이만하면 보통이지요! 자식도 있습니다만… 질리언 자작이 맡겠다고 하니… 아악!”
딱! 갑작스레 떨어진 꿀밤에 로윈은 이마를 문지르며 물러섰다.
“뭘 자꾸 그래도는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총각인 날 팔아먹으려 들어? 이놈이 벌써부터 양아버지라고 천대하는 거냐!”
“뭐… 뭐하시는 겁니까? 아버지께서 ‘미망인’을 콕 집어 찾으시지 않으셨습니까!”
“무, 무슨?”
알란아스터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그의 눈동자가 하염없이 어딘가로 기울었지만, 그간의 고생이 무시당한 로윈에게 그게 들어올 리 없었다.
“두 달 전에 갑자기 ‘미망인’이라고 외치면서 집무실을 박차고…….”
“내가 언제! 내가 언제! 이놈이 날 변태로 만들어!”
딱! 딱!
로윈은 강경 진압을 당한 후 당장 침소에서 쫓겨났다.
“당장 사라지거라, 이 망할 녀석!”
문 바깥으로 밀려난 그는, 허공에서 펄럭이는 서류들을 바라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
늦은 오후, 집무실.
눈 아래로 짙은 그늘이 생긴 기사 키슨이 침울하게 말했다.
“포기하시죠. 가주님 장가보내려다가 우리 먼저 죽겠습니다. 하루 세 시간씩만 자는데 어디 이게 사람 사는 꼴입니까.”
“포기……?”
로윈은 입술을 다물었다. 그러곤 왼편에 쌓인 서류의 산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공들여 모은 8왕국 귀족가의 미망인들에 관한 정보였다. 저 서류의 산을 샅샅이 검토해 하나의 보고서로 만들었거늘.
‘그리 화를 내시다니…….’
시무룩.
“솔직히… 막말로 크롬벨 영지를 되살리는 게 더 쉬울 거 같습니다.”
“카슨 경. 그런 말은 나처럼 속마음에 담아 두게.”
“끙… 아무튼,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안 돼, 절대 안 되네!”
쾅!
또 험악하게 집무실 책상을 내려치는 로윈이었다. 키슨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만큼은 속으로 ‘빌어먹을 크롬벨…….’ 하고 중얼거렸다. 저놈의 핏줄은, 한 번 꽂힌 건 어떻게든 얻어 내기 위해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집안을 한차례 말아먹지 않았나.(아인하르츠 마나 연공법을 의미했다.)
“이대로 물러날 수 없지 않나. 아버지가 두문불출한 지 몇 달째네. 상심한 나머지 잘하시던 훈련도 안 하신단 말일세!”
“하지만 혼인을 하실 마음이 전혀 없으신 듯한데…….”
“부끄러우신 거겠지. 저번에 혼인에 대한 미련을 정리한다고 직접 말하기까지 했는데, 물리는 게 어디 쉽겠나?”
“그, 그런 문제 같진 않습니다만… 혹, 상대가 과부라 내키지 않으신 거 아닐까요?”
“아니야, 분명 내 귀로 똑똑히 들었단 말일세. ‘미망인’이라고 말하며 집무실을 뛰쳐나가셨는데, 그 눈빛은 마치 먹이를 찾은 늑대와도 같았어!”
“그리 말하니 가주님이 꼭… 아니, 아닙니다. 그럼 대체 왜 저러신단 말입니까.”
“흠.”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잠깐의 침묵.
곧 로윈이 먼저 서두를 뗐다.
“어쩌면 우리는 멀리 있는 목표 지점만을 바라보다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건지도…….”
“……?”
“잘 생각해보게. 일반적인 혼인은 집안과 집안의 결합이야. 하지만 아버지의 혼인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지.”
“그렇긴 하지요.”
“그러니 반대로, 아버지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는 거야.”
“…그 의사를 헤아려, 한번 다녀온 여인이라도 맺어 주려고 이 개고생을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 정작 결혼을 할 당사자인 아버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심했다는 거지.”
“예?”
아니, 이런 빌어먹을…….
키슨은 얼굴을 부여잡았다. 이건 뭐, 마누라와 연애하던 그 시절보다 더욱 복잡했다.
“일단 아버지의 마음을 좀 달래 드려야겠네. 그간 오죽 자존심이 상하셨겠나? 방에 칩거를 하실 정도였으니… 위로라도 한 다음, 다시 제안을 해 보는 거지.”
“하아… 알겠습니다.”
“요즘 아버지가 무엇을 하고 지내시는지, 그것부터 알아봐야겠어.”
영주 대리가 그리 마음을 먹은 이상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로윈의 계획에 키슨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메리는 영주 대리의 호출이라는 말에 황급히 달려왔다. 긴장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로윈은 살살 달랬다.
“해코지하려고 부른 게 아니니 긴장할 거 없네. 더군다나 아헨탈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여기까지 와 준 고마운 사람 아닌가.”
영주 대리가 고급 차까지 직접 잔에 따라 주자 메리는 조금 걱정을 덜어 냈다.
“시종장에게 물어보니, 그대가 근래 아버지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지?”
“그, 그렇습니다.”
혹시나 나쁜 오해라도 한 것일까 싶어 메리는 또 긴장했다.
허나, 로윈은 그런 걸 하등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애초에 양아버지가 독에 중독되어 있을 당시의 기억 때문에 여색에 빠지는 걸 질색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최근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가?”
“보통… 책을 읽으시죠.”
“책? 그분이? 정말 심각하군…….”
안 하던 짓을 하고 있다는 건, 보통 좋지 않은 신호였다.
로윈의 얼굴이 굳어지자 메리는 그게 조금 웃겼다. 책을 읽는다고 저리 심각하게 받아들이다니… 평소 얼마나 책을 안 보시는 거야?
메리는 제 앞에서 항상 책을 읽고 있는 알란아스터를 떠올렸다.
“가끔 책을 거꾸로 들고 읽으실 때도 있어 황당할 때가 있지만… 그래도 요즘은 독서를 즐기세요.”
최대한 알란아스터에 대해 새롭고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함인지, 메리는 그것을 강조했다.
“거꾸로……? 흠. 좋네. 그럼 질문을 바꾸지. 근래 아버지가 가장 기분 좋아 보일 때가 언제였나? 특별하게 말이야.”
“으음…….”
그녀는 그 질문을 받자마자 알란아스터의 일상을 곰곰이 되짚어 나갔다. 그녀의 기억 속 알란아스터는 대부분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항상 짜증이 나 있어서 지독한 심술을 부린다는 다른 하녀와 시종의 증언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말이다.
“…다과를 드실 때인가?”
“다과? 요즘 입맛이 바뀌셨나…….”
“저번에 무화과 케이크를 준비하셨는데 유독 좋아하셨던 거 같아요.”
“준비를 하셨다고? 직접?”
“네.”
“그렇군…….”
확실히… 직접 준비해서 먹을 정도면 좋아한다는 뜻이 틀림없지.
당분이 정신적 피로감을 해소하는데 있어 효과적이라고 들었다. 정신적으로 우울하시니 아버지가 그런 걸 찾는다 해서 이상할 건 아니었다.
“알겠네. 그 정도면 일단 충분한 거 같군. 무화과 케이크라… 한 번 준비해서 아버지와 대화의 물꼬를 터 보도록 하겠네. 앞으로도 궁금한 일이 있다면 부르고 싶은데, 괜찮겠나?”
“저라도 도움된다면 얼마든지요.”
메리의 힘찬 대답에, 로윈도 조금은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를 찾은 듯하여서.
메리가 나가자마자 로윈은 서둘러 주문했다.
“키슨 경, 당장 주방에다가 무화과 케이크를 준비하라고 이르게!”
*
“아버지. 제가 맛있는 무화과 케이크를 가져왔는데…….”
“당장 나가!”
쾅!
면전에서 문이 닫혔다.
*
“젠장, 아직 화가 안 풀리셨다니… 아니, 대체 나한테 왜 화가 난 건지도 모르겠군.”
로윈은 접시에 담긴 무화과 케이크를 신경질적으로 먹으며 투덜거렸다.
“요즘 사람이 좀 이상해지긴 했습니다…….”
“키슨 경. 그런 말은 나처럼 속마음에 담아두게.”
“아무튼, 그냥 포기하시지요. 왕국 재상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굳이 집착하실 게 무엇입니까.”
“안 돼. 흐흐, 이젠 자존심 싸움일세. 아버지 장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내가 두 달간 고생했으니 어떻게든 결과를 봐야겠다는 마음뿐이지!”
‘두 부자가 이렇게 미쳐 가는군…….’
키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로윈은 접근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하곤, 서둘러 메리를 다시 호출했다.
그런데 집무실에 뛰어온 메리의 손에는 조금 전 식사를 마친 듯한 접시와 작은 디저트 식기가 쥐어져 있었다.
“그건 뭔가?”
“아… 백작님께서 준비하신 다과가 담겼던 접시입니다.”
“…준비하신?”
“예. 무화과 케이크였습니다.”
“내가 일러서 주방에서 만든 거 같은데… 그걸 드시긴 드셨나 보군. 흥, 난 싫고 케이크는 좋다 이거지? 무려 두 접시나 드셨군!”
제 마음도 몰라주는 양아버지가 야속하여 로윈은 저도 모르게 빈정댔다.
그런데 메리가 조금 난처한 듯 얼굴이 붉어지더니, 이내 실토했다.
“사실…….”
“음?”
“한 접시는 제가… 먹었습니다.”
“자네가?”
“예. 항상 두 접시를 준비해 두십니다. 저도 단 걸 좋아하다 보니 거절을 할 수가 없어서…….”
“……?”
…….
로윈은 잠시 멍하니 메리를 바라보다가, 눈동자를 슬쩍 내려 빈 접시 2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올려서 메리를 한 번 더.
키슨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메리를 쳐다보다가 접시를 바라보고. 다시 메리를 쳐다봤다.
마침내,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맞추자 약속이라도 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런 빌어먹을!”
“그런 거였나!”
“왜, 왜들 그러세요…….”
로윈은 벌떡 일어나 집무실을 뛰쳐나갔다.
*
쾅!
“아버지!”
“나가라고 하지 않았더냐!”
“다 알고 왔습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로윈의 당당한 어투에 알란아스터의 안면 근육이 씰룩였다.
‘이 망할 녀석. 근래 어제와 접촉하는 거 같더라니…….’
“뭐, 뭘 알고 왔다는 거야.”
“그 하녀…….”
움찔.
그의 솔직한 반응에 막 들이닥친 로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진짜 그런 거였습니까. 아니, 젠장. 그러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이라도 해 주든가! 알았으면 헛고생이라도 안 했을 거 아닙니까!”
“누가 그 헛고생을 시키기라도 했더냐? 분명 내가 마음을 접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크흠…….”
그건 그랬다. 과부와의 혼인 주선은 알란아스터가 직접 부탁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과대 해석으로 발생한 과대 선의였을 뿐.
“언제부터였습니까?”
“…두 달 전쯤?”
“딱 칩거 시작한 때군요. 대체 왜요?”
“모르겠다. 그냥 신경 쓰이더구나.”
목적어가 없음에도 알란아스터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넙죽넙죽 대답했다. 그게 더 황당했다. 이리 알아내기 쉬운 걸 몰라서 빙 돌아왔다니.
로윈은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든 의문에 저도 모르게 질문했다.
“근데, 저쪽은 전혀 모르는 거 같던데요?”
“모르지.”
“…대체 두 달간 뭘 하신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알란아스터의 귀가 슬쩍 붉어졌다.
그저 맡은 일을 완수하는 메리와 짬짬이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자신은 책을 읽(는 척하)고, 그녀는 청소하거나 찻물을 보충하고 요깃거리를 가져다주었다.
그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
더 바랄 것도 없다는 듯, 일상을 영위했다.
“그리 문란하게 노셨던 분이 갑자기 왜 숙맥처럼 구십니까.”
“시끄럽다. 네가 사랑을 아느냐?”
저런 말이 크롬벨 최후의 검이라 불리는 양아버지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로윈은 헛웃음을 흘렸다.
하긴, 양아버지의 처지에서 따지고 보면 이성과 제대로 교류를 해 본 건 처음일 것이다. 쾌락분독에 찌든 상태였으니 창기 외에 어떤 여자와 정서적 교감을 해 보았겠는가.
다행히도 높은 경지에 이르러 겉모습만큼은 30대 초반에 가까웠지만, 그의 나이 든 영혼은 인간이 자라면서 겪어야 할 여러 가지가 상실되어 있었다. 그 사정이 참으로 딱했다.
그랬기에 그는 웬만해선 알란아스터가 하는 사랑이라면 다 응원해 줄 참이었다.
웬만해선…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그러실 작정입니까?”
“그건…….”
“평민이라 들었습니다. 거기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이고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듯 알란아스터는 고개를 주억댔다. 로윈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아버지. 제가 전에 말한 마지막 방안은… 평민 중에 적당한 여인을 찾아보자는 말이었습니다. 그건 인지하고 계셨지요?”
“그래…….”
“최소한 백당나귀(상단 연합체)에 소속된 상가의 여식이나 학식을 쌓아 명사로 이름을 알린 자의 딸을 연결하는 게 제 마지막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안의 하녀는 계획에 없었다는 뜻이겠지. 네 입장은 이해하고 있다.”
로윈에겐 양어머니가 생기는 일이었다.
헌데, 귀족도 아닌 평민이라는 것도 문제인데.
더 나아가 집에서 일하던 하녀였다? 그것도 과부?
‘이 사실이 퍼진다면 사교계의 귀족놈들이 얼마나 떠들어 대겠는가. 하다못해 우리 가문을 만만히 여기겠지. 안 그래도 크롬벨의 이권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리들이 주변에 득실대는데…….’
거기다, 다음 대 가주로 지목된 로윈은 숙부에게 입양된 처지였다.
그의 친아버지는 크롬벨 영지를 몰락시킨 장본인으로, 안 그래도 영지민의 지지를 얻기 힘든 데다가 다른 귀족들의 눈에는 정통성까지 약한 셈이니…….
적어도, 그의 양아버지가 반려자를 들인다면 자신의 평판을 갉아먹을 여인이어선 안 되었다.
자신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양어머니라면 더할 나위 없고.
로윈이 그간 눈이 벌게져서 양아버지에게 괜찮은 짝을 맺어 주려 한 것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알란아스터가 이걸 모를 린 없었다.
오히려 너무도 잘 알았기에, 그는 씁쓸히 말했다.
“로윈. 걱정하지 말거라.”
“아버지.”
“이미 두 달 전에 말하지 않았더냐. 내 결심엔 변함이 없다. 내 결혼이 뭐라고 너와 가문에 그런 부담을 안기겠느냐.”
알란아스터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가을이 와 붉고 노란 잎들이 가득한 산세가 저 멀리 보이고 있었다. 복구가 한창인 크롬벨을 내려다보며 새들은 재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풍광이 아름다워졌다. 내일은 도시락을 싸서 그녀와 함께 소풍을 다녀올 참이다. 식사는… 계란을 넣은 샌드위치면 충분하겠지.”
그의 눈동자엔, 영문도 모른 채 제 뒤를 졸졸 따라올 어수룩한 하녀 하나가 그려졌다. 상상만 해도 슬그머니 미소가 찾아왔다.
“곧 눈이 내려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통나무 별장에도 다녀올 참이다. 다행히 내전의 화마가 그곳만은 피해 간 듯하더구나.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라면, 평생을 아헨탈에서만 보냈다는 그녀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이야.”
“…….”
“난, 이 정도면 만족한다. 로윈. 꼭 혼인만이 행복을 찾는 길이 아님을 이제 나는 안다. 그러니… 너도 이번 일을 조용히 넘어갈 수 있겠느냐? 혹시나 그 아이가 내 감정 때문에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조용히. 또 혼자서만. 이 애틋한 감정을 품고 사탕처럼 천천히 녹여 먹다 사라지겠다는…….
진심이 담긴 그의 부탁에 로윈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