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297
297/외전21
외전 5. 구도자 메시 (3)
아내의 죽음 그리고 아들의 죽음.
메시는 생애 처음으로 존엄사를 고려했다.
아내가 고른 ‘존엄사’라는 선택지는, 앞으로 예고된 외로운 삶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방책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 자신은 존엄사가 아니었다. 이건 그저 ‘자살’에 불과했다.
“…….”
메시는 제 손에 쥐어진 잘 갈린 날붙이를 바라보았다.
오러가 엉긴 단검은 세상 어느 명검과 비교하여도 아깝지 않은 예리함을 지녔다.
이걸 이대로만 제 심장에 찔러넣으면 끝이었다.
후대에 자살한 사도로 기록되거나 병신 소리를 좀 들으면 그만이다.
아니다. 손자·손녀가 그리 놔둘 리 없다. 적당히 꾸며 내어 열반에 들었다고 주변에 알릴 거다. 제 죽음 실체는 가문의 10대 비사 따위가 되어 영영 알려지지 않을 테지.
‘그럼 된 거 아닌가? 왜 나는 주저하고 있는가?’
앞에 놓인 죽음의 결정체 앞에서, 스스로 가슴을 들이밀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건, 사부의 서신 때문이었다.
[혹시 마음씨 넓은 연자가 있다면… 내 사랑하는 제자 메시가 행복하게 살다가 들판에 묻혔는지, 이 자리에 와서 전해주었으면 한다.]메시는 뀨의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 써 내려 간 사부의 서신을 읽었다. 그 구절이 지금 제 행동의 족쇄라도 되듯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었다.
‘행복한 사람이 자살할 리가 없지 않은가.’
행복한 자살 같은 역설적인 단어는, 냉엄하고도 매운맛이 가득한 현대 21세기에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조합이었다.
메시는 단검을 내려다 놓았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자살을 할 만큼 메시의 정신력이 약화한 것도 아니었다. 아주 잠깐 선택지로 냉정하게 고려해 봤을 뿐.
그리고 이렇게 멋없이 최후를 장식한다면, 아직까진 슬퍼할 이가 있었다.
“할아버님……? 기침하셨어요?”
“메데이아… 내 어여쁜 손녀 왔느냐.”
“손자를 볼 나이에 어여쁘단 말을 듣다니. 저처럼 복에 겨운 할머니가 또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손녀의 방문에, 메시는 꺼내 놓은 단검을 슬그머니 책상 아래로 감췄다.
‘그래… 이건 아니야…….’
메시의 은밀한 힘으로 단검은 가루가 되어 소멸했다.
*
세월이 더욱 흘렀다.
메시는 손자, 손녀의 장례를 손수 치러 주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직접 꽃 한 다발을 아이들의 초상화 아래에 놓았다.
손자와 손녀는 제법 위명을 떨쳤다. 유명세를 탄 덕분인지 꽤 많은 손님이 찾아왔고, 그들은 하나같이 메시를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전 같으면 부담스러울 만큼 위대한 존재, 추앙받아 마땅한 반신으로 보는 눈이었다면.
세대 교체가 몇 번이나 된 지금은 옛 전설적 이야기의 주인공보다는 숫제 괴물을 보는 눈초리에 가까웠다.
‘또는 성가신 걸림돌인가……?’
그럴 만도 했다.
그들에게 자신은 불멸의 존재일 테고, 불멸의 존재만큼 괴물이 또 어딨겠는가.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메시와 아헨탈은 기득권의 정점에 서서 변화를 허용하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꼭대기 층에 앉아서 그 아래가 어떻게 돌아가든 상관하지 않았다고 봐야 했다.
그러니, 위에서 고고하게 놀고 있는 게 아니꼽게 보였을 터. 끌어내리기엔 메시라는 괴물이 걸림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떠날 때가 된 건가…….’
아래의 도전자들이 눈을 홉뜨는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증손자, 고손녀의 눈빛에서까지 고마움은커녕 그런 기색이 읽히자, 메시는 팔란티어―아헨탈 령을 벗어나기로 마음먹었다.
‘가문을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러라지. 그보다… 어디로 갈까? 사부의 무덤 근처에 집을 짓고 조용히 살까.’
매년 찾아가 봉분을 관리했지만, 아예 매일 사부의 곁을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사부가 그러길 바랐다면, 애초 혼자 숲에 머무는 걸 반대하지 않았겠지.’
바르셀로, 그는 제자가 행복을 찾길 원했고, 그 행복은 소중한 사람의 곁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제자가 배우길 바랐다.
그러니 사부의 무덤을 관리한답시고 원망의 숲에 고립되는 건 언어도단.
허나… 아무리 사부라도 몰랐을 것이다. 제자가 인간의 수명을 넘어 긴 세월을 살아가는 운명에 처할 줄은.
고로, 지금의 자신은 사부의 가르침이 통용되지 않는 바깥에 나와 있었다. 이제부터 스스로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어딘가 머무르면서 조용히 생각해 봐야겠구나. 그럴 만한 장소라면…….’
역시 거기밖에 없나.
이제 자신을 환영해 줄 존재라곤 그녀밖에 없으니.
메시는 모처럼 은신의 망토를 꺼내 둘렀다.
혈육의 배웅을 받으면서 떠나는 건 사치인 듯하니, 챙길 건 챙겨서 은밀히 떠나는 게 맞겠지.
그는 어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
뀨, 미안하구나. 너무 오랜만이지……?
그래. 그리 화낼 줄 알았다.
하지만 화내기 전에 이것부터 보렴. 이렇게 네가 좋아하는 육포를 잔뜩 챙겨 왔어.
뭐? 네가 육포만 주면 좋아하는 단세포냐고? 에이… 설마 위대한 제국의 여왕인 뀨 공주님에게 그러겠나.
자자, 선물이 가지각색이야. 이것부터 보렴, 내 아들이 네게 보내는 선물이지.
그래, 귀엽다고 말한 녀석. 그럴 나이는 지났지만 하는 짓은 여전히 귀여웠지.
일종의 가족사진… 아니, 사진이라고 말하면 모르겠구나. 가족 전신 초상화라고 해야 되나? 말이 어렵군.
맞아, 여기 네가 내 어깨 위에 있지. 아들이 여전히 널 잊지 않았더구나. 네 생김새는 내가 설명해 줬는데… 예쁘게 잘 그렸지?
에레나? …에레나와 비교를 하면 쓰나. 그건 좀 양심 없구나. 자, 진정하고 여기 육포를 보아라. 에레나와 내 손녀가 특별히 만든 거란다, 네가 먹을 걸 상상하면서! 그래, 그러니까 좀만 봐줘라.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아마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알 거다. 내 아들과 손녀도 마찬가지고.
아무튼, 잠시 신세 좀 져도 괜찮겠나?
얼마나?
음… 이번엔 반년쯤은 있어 볼까 하는데…….
있으려면 말투부터 고치라고? 하하, 알겠다. 알겠어. 손녀와 지내다 보니 노인네 말투가 입에 붙었지 뭐냐.
*
5년이 흘렀다.
[―――――――!]갑자기 들리는 장군이의 사념.
저 멀리, 더듬이를 흔들어 대는 녀석이 보였다.
예민한 공주께서 또 뭔가 마음에 안 들어서 날 찾나 보군.
메시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화를 풀어 주기 위해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켰다.
‘5년, 벌써 뀨의 곁에 머문 지 그리됐나.’
알파 117.
통칭 ‘개미들의 제국’이라 불리는 곳에서 밤하늘을 바라본 지 1000일이 넘은 듯하니, 그 정도 추정치가 나왔다.
새벽빛이 반짝일 때쯤 경치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멍하니 상념에 젖었고, 땅거미가 질 때쯤 지하굴로 돌아가 잠들었다.
그는 이곳에서 시간이 얼마만큼 흐르는 줄도 모르고, 뀨의 곁에서 멍하니 지냈다.
처음 도착했을 땐 미안한 마음이 컸다.
틈틈이 뀨의 제국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는데, 남은 이가 가족밖에 없게 되자 방문을 자꾸만 미루고 말았다.
그런 주제에 인제 와서 얼굴을 들이민다는 건 염치 없었다.
하지만…….
[뀨우~! 메시! 왔냐뀨?]그녀는 이전과 한 점 다를 바 없이 반가워했다.
만년 개미의 기준으로는 3년이나 30년이나 똑같이 얼마 안 되는 시간인 탓일까?
아니면, 제국을 운영하는 것으로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걸까.
아무튼, 메시는 그것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30년이 흘러도 모습에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이유로 충분하지만.
그녀의 곁에서는 무척이나 당연한 것이라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이제 난 인간의 삶과는 정말 거리가 멀어진 셈이로군.’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편안함을 느꼈다.
고립의 안정감은 두 가지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5년간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고여 가는 신세였다.
어쩌면.
‘계속 이리 살아도 괜찮을지도.’
그런 유혹이 들었다.
뀨의 수명이라면, 죽을 때까지 함께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더는 이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혼자가 되는 숙명에 겁먹지 않아도 된다.
필연적으로 외톨이가 될 자신에겐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장점이다.
물론, 개미들의 세상이다 보니 인간인 그가 즐길 거리는 별로 없었다. 그간 한 거라곤 멍하니 앉아,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한 평생의 추억을 곱씹으며 지낸 게 다일 정도니까.
하지만 그것도 5년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개미 군단의 선봉장이 되어서 최강의 마수 제국을 만들어 봐?’
뀨는 몰라도 저기 보이는 장군이라면 좋아할 듯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뀨는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을 존재였다.
아헨탈 사람들과 에레나와는 또 다른.
대가 없는 우정을 주는 친구.
그녀는 그런 존재였다.
‘내가 떠나지 않는 이유를 알기도 하니…….’
메시는 과거를 떠올렸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지 1년쯤 되던 날.
[메시! 나 몰래 육포 빼먹었냐뀨!]“…그거 내가 가져다준 거잖아.”
[에레나가 준 내 선물이라고 했다뀨!]‘기억력은 더럽게 좋군.’
죽은 아내와 손녀의 손맛이 녹아 있는 귀한 것이었기에, 메시가 육포를 몰래 빼먹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메시는 나중에 육포를 직접 만들어서 벌충하겠다고 회유를 해서야 공주의 화를 풀어 줄 수 있었다.
그러자 이어진 뜬금없는 뀨의 질문.
[요즘 에레나나 손녀의 얘기를 도통 안 한다뀨?]그제야 뀨가 화를 낸 건 연기였고, 어려운 질문을 해도 괜찮은 상황을 만들기 위한 밑밥임을 깨달았다.
그래, 이제 알려 줘도 괜찮겠지.
“그들은 내 치료를 거부했어. 나와 계속 함께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더군. 미안할 일이 아닌데 말이야…….”
말뜻을 알아챈 듯 뀨는 그날 이후로 가족에 대한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몰래 육포를 몇 개 빼먹어도 타박하지 않았다.(개수까지 세어 가며 먹던 뀨를 생각해 봤을 때 엄청난 양보였다.)
그것은 분명 배려였다.
마음을 써 주는 것. 참으로 고마웠다.
소중한 이들이 하나씩 사라지다 보니, 그런 감정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았다.
‘그동안 뀨의 곁에만 머물렀을 뿐, 그녀를 신경 써 주지 못했구나. 방황이 너무 길었다.’
메시는 자조적인 반성을 하며, 장군 개미를 향해 걸었다.
이제는 마음을 추스르고, 뀨와 함께 행복하게 지낼 방안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개미 제국도 안정화된 거 같으니… 같이 8왕국을 여행하는 것도 괜찮겠지. 생각해 보면 뀨가 못 가 본 곳이 훨씬 많으니깐 말이야…….’
메시는 기다리고 있던 장군 개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따라오라고?”
끄떡.
처음 보는 장군이의 행동에 혹시 뀨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나, 걱정이 들었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장군이의 발걸음이 다급하지 않았다. 큰일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장군이의 기준에서 큰일이 아니라는 걸, 메시는 미처 알지 못했다.
곧 마주할 상황에 대해 전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로, 그는 장군이의 뒤를 쫓았다.
*
“뀨… 인가?”
끄덕.
장군이의 대답에 메시는 멍하니 눈앞의 뿌연 막을 바라보았다.
우윳빛의 불투명한 껍질이 판막처럼 동그랗게 뀨를 감싸고 있었다. 안에선 붉은빛이 진주알처럼 반짝거렸는데, 아기 심장처럼 콩콩 뛰고 있었다.
메시는 이 현상에 대해 금방 눈치를 챘다.
‘뀨가 이런 껍질에 둘러싸일 일이 뭐가 있겠어… 진화를 위해 번데기 속으로 들어간 걸 테지.’
“장군아, 뀨에게 듣기론 700살쯤 되어야 시작하는 과정이라 들었는데… 뀨가 내게 나이를 속인 거냐,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 세월이 그리 흐른 거냐?”
절레절레.
둘 다 아니라는 듯 장군 개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도 예상치 못한 변수라는 뜻이었다.
메시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간 마음에 여유가 없어, 이제야 외유를 마치고 뀨에게 관심을 쏟을 수 있을 거 같았는데…….
한발 늦은 셈이었다.
‘5년이라고 했지… 진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행히 그녀에게서 들은 정보가 있었다. 만일 이걸 몰랐다면 자신이라도 당황했을 것이다. 혹시나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나 싶어서.
메시는 뀨를 둘러싼 막을 매만졌다. 흔히 번데기라고 하면 딱딱한 인상인데, 이것은 몹시도 부드럽고 유했다. 흡사, 뀨 같았다.
“공격에 취약하겠어. 외부 침입이 있으면 위험하겠는 걸…….”
메시는 장군이를 바라봤다.
과거 브릴란트 최상급에서 지금은 어블레이즈 중급에 다다라 제법 강해지긴 했으나, 비상사태에 외부의 적을 막기엔 부족해 보였다.
병사들도 여덟 종의 각기 다른 개미들로 구성됐다. 특별한 개체를 제외하곤 그들 모두 원망의 숲 만년 개미보다 약했다.
더군다나 이곳은 외곽 숲의 한복판.
언제든지 강력한 마물 개체가 나타날 수 있었고, 영역을 옮기는 마수의 무리가 습격해올 수 있었다.
특히, 이곳은 땅의 질이 몹시도 좋았다. 원망의 숲에서 본 토룡 우라디오스 같은 녀석들이 새로운 둥지를 찾아 떼로 나타난다면 필패였다.
기다리는 5년 동안, 할 일이 생긴 것 같았다.
“장군아, 너 엔조 무에테 알지?”
끄덕.
모를 리가 없었다. 원망의 숲에서 한차례 직접 격돌하지 않았나. 장군이는 양팔이 달아나는 경험까지 했다.
“넌, 이제 장군 무에테다.”
[……!]뭔가 질색하는 표정이다. 착각이겠지?
*
하루 일과가 바뀌었다.
일어나면 장군이의 신체를 고쳤다.
엔조 무에테의 신체 정보를 곤충 타입의 마물에게 맞춰서 욱여넣는 일이었다.
베이스가 다른 걸 같은 규격으로 제작하는 일이라 꽤 힘들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 외로 일은 순조로웠다.
생각해 보니, 과거엔 엔조 무에테의 신체 정보를 인간에게 넣었다.
이건 마물의 신체 정보를 같은 마물에게 부여하는 일이니 훨씬 쉬운 게 당연했다.
그런 작업이 끝나면, 두 시간 정도는 장군이를 수련시키는 데 집중했다.
크롬벨 검술과 아헨탈 검술, 심지어는 아인하르츠 마나 연공법까지 녀석의 몸에 때려 박으며 가르침을 선사했다.
‘이거 어쩌면… 사상 최강의 장군 개미를 만드는 거 아닌가.’
이 녀석이 인류의 적으로 돌변하면 나중에 꽤 난처할 것 같은데…….
[……?]쉭쉭, 거리며 더듬이를 흔드는 모습을 보니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았다. 더군다나, 뀨의 지배력을 벗어날 녀석도 아니고.
장군이의 수련이 끝나면, 알파 117 주변에 있는 마물 서식지를 방문했다. 개미들의 먹이도 필요하니 강한 개체들만 골라서 제거했다.
여왕이 사라진 개미 제국에 위협이 될 만한 것들은 모조리 씨를 말려 버리겠다는 계산이었다.
‘이러면 5년쯤이야 금방 가겠는데.’
메시는 별다른 걱정 없이 사냥에 집중했다.
*
“5년이 아니라… 혹시 15년인가?”
메시는 자신이 잘못 기억을 하고 있나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럴 리 없었다.
이미 5년이 되는 날은 지나 있었다.
그마저도 잘못 계산한 건가 싶어 1년을 더 기다렸다.
하지만 뀨를 둘러싼 번데기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어떤 기미도 보이질 않았다.
심지어 심장으로 추측되는 내부의 붉은 보석은 크기가 전혀 자라지 않은 상태.
“장군아,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냐?”
메시가 슥 바라보자, 장군 개미는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몇 년간 수련이랍시고 혹독하게 시달린 탓에 이제 눈만 마주쳐도 반사적으로 물러나는 지경이었다.
“그래… 네가 뭘 알겠냐…….”
녀석의 더듬이가 축 처진다.
메시는 다시 번데기를 바라보며,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 잡았다.
‘5년이나 15년이나… 어차피 남은 삶도 긴데. 못 기다릴 게 뭐 있겠어. 그 안에는 변화가 있겠지.’
메시는 더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
“15년도 아니라고……?”
메시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10년을 더 기다렸는데, 그것도 아니라니.
이제 알파 117 주변의 강력한 마물은 씨가 마른 지 오래라, 몇 달 단위로 주변에 원정을 다녀오는 처지였다.
그 탓에 반사 효과를 누리는 건, 개미 제국과 벌목꾼이었다.
개미 제국은 예전보다 5배나 커져 다양한 마수의 서식지와 경계를 맞댈 정도였고.
벌목꾼은 강력한 마물들이 사라지자 개척이 쉬워져서 그런지, 외곽 숲을 돌아다니다 보면 간간이 만날 수 있었다.(다행히 개미들이 인간에게 우호적인 것을 아는지, 벌목꾼들은 알파 117을 굳이 개척하려 들지 않았다.)
‘어찌한다. 이제 더 할 것도 없는데… 큰일이군.’
번데기의 불투명한 내부를 살펴보니, 조금은 달라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미묘한 수준에 불과했다.
“설마 50년인가……?”
메시는 문득 떠오른 가설에 혀를 찼다.
여기서 35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였다.
허나.
‘35년이라… 15년의 약 2배하고 조금 더 인가? 못 기다릴 건 없겠군.’
우습게도 순순히 순응했다.
이미 시간 감각도 인간의 궤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 정도라면 다른 일을 하며 지내면 되지, 하고 손쉽게 납득한 것이다.
다른 일이라 하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헨탈이나 내 후손들이 어찌 됐는지 궁금하군. 여행 겸 훌쩍 다녀올까…….’
그사이, 무슨 일이 터져도 대처를 할 만큼 장군 개미를 강화해 놓았다. 별일은 없을 것이다.
*
50년.
이 세계 평민의 평균 수명이 28살인 걸 고려하면, 매우 긴 시간이었다.
35년을 떠돌다 돌아와 50년을 채웠건만.
변화가 없는 번데기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500년인가… 설마.’
500년은 메시의 입장에서도 긴 시간이다. 어쩌면 자신의 남은 수명이 그만큼일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다면, 살아서 뀨를 만나는 건 이제 어렵다.
허탈했다.
“어이가 없군. 그럼 그때 뀨와 본 게 마지막이었다는 건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마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를 했던 거 같다. 앞으로 계속될 하루라 여기면서.
그런 볼품없는 이별이라니.
“갑자기 이러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이야… 너무도 가혹하지 않은가…….”
이번만큼은 뀨를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반대로 이별을 선고받은 셈이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 메시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35년간의 여행은, 자신이 8왕국에 다시 눌러앉기 어렵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일이었을 뿐이다.
인간들의 수작이란 수백 살 먹은 메시에겐 너무나도 뻔했기에, 속마음이 훤히 보이니 누구에게도 쉽사리 마음을 줄 수 없었고.
제 피를 이어받은 후손들은 어리석어 제 살을 깎아 먹기만 하니 실망감만 안겨 주었다.
그렇다고 아무도 모르는 지역에서 정착하자니, 나이를 먹지 않는 존재에겐 그것마저 과분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뀨와도 살아생전에 만날 길이 끊겼으니.
메시는 그녀의 앞에서 절망하며 애원했다.
“내가, 몹시도… 외롭구나. 뀨, 그러니 어서 돌아와 줄 수 없겠느냐? 더는 나를 혼자 두지 말아다오… 부탁이다…….”
메시, 348살의 가을.
외로움을 자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