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3
전업 힐러는 점점 강해진다
(2)
흑발, 흑안, 이국적 외모의 남자는 금방 기사들과 용병단의 근처에 도달했다. 멀리서는 몰랐는데 키가 제법 컸다.
발걸음이 빠르지도 않았는데 거리를 좁히는 속도가 묘하게 빠르다고, 라망은 생각했다.
“희한하게 생겼군.”
기사 중 누군가가 그렇게 평했다.
처음 아시아 황인종을 본 중세 유럽인의 감정이 그럴지도 모른다. 그나마 라망이 안도한 것은 ‘그린 스킨’이 아니란 점이었다.
악신 오흐가나가 빚어낸 피조물들의 공통된 특징이며 흉포한 성질을 가진 몬스터들.
“그린 스킨이면 당장 베었을 텐데. 그나마 신체구조나 외형이 인간과 비슷한걸.”
라망의 감상은 당연했다. 상대는 인간이니까.
“따지고 보면 오크도 피부색이나 얼굴만 그렇지 팔, 다리 달린 외형은 똑같죠.”
“하하, 그렇군!”
하지만 그걸 이해하기엔 그들의 세상에서 황인종은 낯선 존재였다.
메시, 그러니까 한국 이름으로 ‘이은호’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다른 인종으로 동떨어진 세계에 표류했음에도 사부를 만나 살아남은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너, 이름이 ‘메시’ 맞나?”
기사 라망이 다가와 묻자, 메시는 잠깐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은 없었다.
“알아듣긴 하는 건가. 말은 할 줄 아나?”
갈림길이었다. 예상대로 상대는 자신에 대한 견적서를 뽑아보려고 시도하는 중이었다.
메시는 마을 입구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꾸준히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상황파악을 하기 위해 계속 머리를 굴렸다.
‘마을 분위기가 싸늘한 거 보니 저자들은 환영받을 초대 손님은 아닌 듯하고… 차림새로 봐선 중세의 기사, 뭐 그런 건가? 지위나 계급의 압박이 있겠군. 큰일 아니면 나타나지도 않는 촌장 영감이 와있는 걸 보니 비상사태인가 본데. 그래도 무기를 안 뽑은 걸 보니 대치상황은 아닌 거 같지만 분위기가 아슬아슬하다. 거기에 내가 나타난다면?’
낯선 이들에게 자신은 이질적인 변수다. 분명 과할 만큼 관심이 집중될 터. 어떻게 소개해야 이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날 보고도 놀라지 않는 거로 봐선 이미 내 존재는 알고 있었군. 촌장이 말했나? 그래도 대화 여부부터 묻는 걸 보니 자세한 정보는 전혀 듣지 않았나 본데.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는 걸 알면 계속 내게 심문하듯이 물어오겠지.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척 반응을 안 하면 어떻게 마을에 정착하게 되었는지부터 주변을 파고들 테고… 거짓말이 길어지면 틈만 보일 뿐이다. 국문과 수업에 들어온 중국인 유학생 느낌으로 가야겠군.’
메시는 라망의 눈을 쳐다보며 고개를 한번 갸웃하다가 순진무구하게 대답했다.
“말? 조금. 나 몰라. 말 모테.”
건방져 보일 수 있을 만큼 어색한 말투로 끊어서 대답했다. 일부 기사들의 손이 검으로 향하는 걸 라망이 멈춰 세웠다.
“놔둬라. 너희는 짐승이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모조리 죽일 셈이냐. 다만 우리가 과한 걸 바랬던 거다. 사람 말을 알아듣는 동물이라니…”
메시의 의도는 성공한 듯했다. 단번에 관심을 꺼버린 라망이 메시에게서 멀어졌다. 무리해서 의사소통할 만큼 자신에게 관심은 없다는 얘기였다.
다만 기사 무리의 한 명이 그런 모습을 보고 대폭소를 하는 게 메시의 눈에 잡혔다.
“푸하하! 라망 경, 내가 말했지 않습니까. 얌전히 마을의 인간들이나 차출해가자고요!”
“이 공자, 웃을 때가 아닙니다. 길잡이로 써먹을 패 하나가 반쪽인 셈입니다.”
“뭐 어때요. 사냥개 하나 들인 셈 치지.”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데서 중요한 정보가 3가지나 나왔다.
‘방금 말 건 자가 우두머리인 줄 알았더니, 내부에 권력자가 따로 한 명 있었군. 이 공자라면… 귀족인가. 마을 사람들의 생살여탈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성정까지. 저자의 눈에 띄거나 거슬리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겠군.’
‘길잡이로서 나를 아예 점 찍어놨다고? 어딜 갈 셈이지? 아니지… 답은 뻔하군. 목적지는 원망의 숲인가. 외곽 숲이라면 굳이 의사소통이 안 되는 날 고집할 필요가 없지. 마을에 들어와서 길잡이를 찾다가 숲에서 왔다는 내 존재를 알았겠군. 그리고… 나에 대한 정보를 가장 먼저 실토할 만한 사람은―’
메시는 시선을 천천히 돌려 짐 마차에 있던 촌장을 쳐다봤다. 때마침 눈이 마주친 촌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웃으면서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저 인간이군.’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던 촌장이다. 웃으면서 오라 가라 손짓할 사이도 아니고.
하지만 그 옆에 레토 아저씨가 있었다. 어차피 그리로 갈 생각이었다.
“와, 왔구먼? 오늘은 사냥이 일찍 끝난 모양이야.”
촌장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시선을 레토에게 뒀다. 명백한 무시임에도 자신이 한 일이 있는 걸 아는지 헛기침하며 고개를 숙이는 촌장. 그 어색함을 레토가 풀었다.
“상황이 상황이었다. 알지? 이미 대충 눈치채고 있을 듯싶다만…”
속삭이듯 작게 읊조리는 그의 설명에 메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스통을 안은 여자는 지금 말도 못 알아듣는 이종한테 뭐 하는 짓이냐는 표정이었다.
“급한 환자가 있다. 듣자 하니 배에 오크 놈들의 창을 맞았다는데, 치료되겠나? 지혈용 잔바 약초를 잔뜩 발라놨는데, 가시적인 효과는 없구나.”
끄덕끄덕, 메시는 얘기를 들으며 눈으로 가스통을 끊임없이 살폈다.
복부 오른쪽 아래에 뚫린 구멍이 명백했다. 피하지방을 꿰뚫고 창날이 파고 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내장에 상처를 입혔겠지.
더 절망적인 부분은 머저리들이 창을 무식하게 뽑았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뜯어진 상처는 출혈을 더 가속했을 테고.
지금 환자가 출혈로 인한 쇼크 상태인 게 이해가 가는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 지금껏 버티고 있는 게 용했다.
“…이 자가 메시라는 사람이에요? 말도 못 알아듣는 이종이라는 말은 없었잖아요?”
“알아듣습니다.”
“어?”
“알아들으니 조용히 좀 해주시죠. 레토 아저씨, 약방에 식혀놓은 약초수하고 깨끗한 천 있으면 잔뜩 가져다주세요. 흘러나온 똥이나 피를 좀 제거해야겠어요.”
“알겠다.”
레토는 신속하게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메시가 행동을 개시하자 촌장은 벌써 상황이 끝난 거라도 되는 듯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뭐지, 이 이종을 그렇게까지 믿는다는 건가? 근데 어떻게 말을…?’
혼란스러워하는 여자와 메시는 눈을 맞췄다.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마차 바깥에는 전혀 들리지 않도록.
“치료는 해주겠습니다. 다만 약속 몇 가진 받아야겠습니다.”
“무슨… 약속이죠?”
메시의 목소리가 낮아지자 덩달아 여자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일단 내가 의사소통된다는 것을 동료들에게 비밀로 해주세요. 특히 저 기사들에겐.”
끄덕, 상황을 파악했는지 여자가 응답했다. 지금 눈앞의 존재는 저들과 오래 말을 섞고 싶지 않은 것이다.
숨기는 것이 있거나, 켕기는 게 있거나, 노림수가 있거나, 아니면 셋 다거나. 추측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지만, 여자는 일단 미뤄뒀다.
“그리고 차후에 제가 협조를 구하면 반드시 도와주세요. 묻지도 말고. 그거면 됩니다.”
“알겠어요. 그렇게 하죠. 근데 그쪽 종족들은 원래 타인을 쉽게 믿는 문화가 있나요? 내가 말을 바꾸면 어쩌려고 그러죠?”
“그딴 건 없어요. 원하신다면 당장 가서 기사들에게 일러도 좋습니다. 어차피 저들이 원하는 건 길잡이 역할로서 충실한 역할입니다. 말을 할 줄 안다면 더 좋아하겠죠. 속았다는 것에 기분이야 나쁘겠지만 절대 죽이진 못합니다. 왜? 길잡이가 필요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사들이 오는 길 내내 원망의 숲을 잘 아는 길잡이를 찾으려고 용쓰는 걸 알고 있었다.
촌장에게 이종의 존재를 듣고 기사 라망의 기분이 유난히 좋아 보였다. 메시의 말이 맞다는 걸 여잔 알아차렸다.
“그리고 자신합니다. 제가 살아남아서 저 숲에 길잡이로 들어가는 날. 장담하는데, 당신과 당신 동료들을 모조리 사지로 몰아넣을 겁니다. 지금 살아남을 이 사람도요.”
여자에게만 들리도록 읊조리는 조용한 말이지만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옆에서 그걸 들은 촌장의 안색마저 바뀔 지경이었다.
때마침 레토가 약초수와 깨끗한 천을 잔뜩 가지고 왔다. 여자의 대답을 듣지 않고 메시는 치료를 시작했다. 선택지는 뻔했으니까.
“촌장님, 레토 아저씨. 좀 도와주세요. 상처를 최대한 벌려주시는 겁니다.”
“뭐, 뭐? 이 늙은 나까지?”
메시가 아무 말 하지 않고 촌장을 쳐다보자, 이내 지은 죄가 있던 촌장은 떨떠름하게 손을 내밀었다.
셋은 약초수를 부어 양손을 씻고, 촌장과 레토는 상처를 있는 힘껏 벌렸다. 피로 범벅된 내부는 상처가 어딨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일단 씻겨내죠.”
약초수를 부어 복부 내부의 피와 오염물질들을 모조리 잘 헹군 뒤에 천으로 빨아들여 제거해나갔다. 점점 더러워진 붉은 천들이 쌓여만 갔다.
‘정화 마법을 안다면 이런 귀찮은 과정 따윈 없어도 될 텐데.’
작업 내내 번거롭다는 생각을 하고있는 사람치고는 메시의 손은 신속했다.
다 씻겨내고 출혈 부위를 파악한 그가 힐을 사용하려는 순간, 마차가 출렁하며 누군가가 올라서는 게 느껴졌다.
“이야, 이종한테는 신비한 주술이라도 있는 건가? 이 녀석을 치료할 수 있는 거야? 이봐, 보일. 내가 비싼 돈을 주고 고용한 네놈은 치료할 엄두도 못 냈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공자였다. 그의 건장한 손엔 목덜미를 잡힌 채 끌려온 치료사가 있었는데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치료사는 끊임없이 메시와 눈을 맞추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게, 절대 치료하지 말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아마 자신의 무능이 드러나면 포악한 이 공자에게 불이익을 받는 게 걱정이겠지.
‘후… 빨리 치료 좀 하게 놔둬라.’
메시는 자꾸 배에 올라타는 사공들이 짜증스럽게 느껴졌지만, 얼굴에 티를 내진 않았다. 이 공자의 말을 못 알아들은 척, 반응하지 않았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사제가 아닌 이상 살릴 수 있는 상처가 아닙니다!”
“어이, 그렇다는데. 이 이종 놈은 어떻게 살린다는 거지?”
이 공자의 물음은 레토를 향해 있었다. 메시가 대답을 못 할 걸 아니까 그를 향해 물은 것이다.
“힐을 씁니다.”
“힐? 이종도 마법을 쓸 줄 안다고? 아니, 그거보단… 보일 네놈도 힐을 쓰니까 치료사가 아닌가?”
“절대 안 됩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힐은 그저 마력에 의지를 넣는 것입니다, 공자님! 물론 출혈을 잡고, 상처를 메꾼다는 의지를 넣는다면 힐의 묘리에 따라 상처 수복은 되겠지요! 하지만 그 내부가 이전의 건강했던 신체구조와 똑같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힐은 결과만 장담할 뿐,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은 담보하지 못합니다!”
한 마디로, 힐은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는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상처 부위를 메꾸기 위해 다친 내장에서 살이 자라 나와 재생될 수도 있지만 한 편으론 가까운 신체 장기와 붙어버려 기형이 될 수 있다는 소리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출혈은 멈춘다.
다만 그렇게 되었을 경우, 신체에 장애가 생겨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모른다. 형태와 내부가 다른데 이전과 똑같을 수가 없다.
“가벼운 경상이나 외상에만 힐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팔을 다친 검사들도 함부로 힐을 받지 않습니다, 팔 근육이 기형으로 이어질까 봐요! 하물며 근육도 그러는데, 신체 내부라니? 이 이종은 미친 자식입니다!”
“그렇다는데, 단장 계집? 그래도 이 이종에게 부하의 치료를 맡길 참인가. 어차피 죽을 거, 부하들을 더 괴롭히지 말고 이 몸에 맡기는 편이 좋지 않겠나?”
이 공자는 허리춤에 걸린 자신의 검을 툭툭치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자네도 알 텐데. 우리 가문의 검술을. 우리 아헨탈 검술이면 목이 잘리는지도 모르고 죽을 거야. 내가 제안하지. 부하들은 깔끔하게 죽을 수 있어서 좋고, 난 오랜만에 사람을 죽일 수 있어서 좋고. 이게 바로 쌍방이 배부른 일이 아니냔 말이야.”
그걸 윈윈(win-win)으로 여기다니, 생각보다 미친놈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물론 치료사 보일은 예외였다. 덜덜 떨기 바빴다.
“전 그냥 이 이종에게 맡길게요. 공자님의 상냥한 제안, 감사드리지만… 부하들에게 마지막 최선은 다하고 싶어요.”
최대한 이 공자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거절하는 여자였다.
“쳇, 뭐 좋아. 대신 너 때문에 피 맛을 못 본 거니 오늘 밤에 네게서 받아야겠다.”
“호호, 이 공자님이라면 제가 더 영광이지요.”
애초 목적은 그거였나. 메시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뭐해? 하찮은 것아. 빨리 치료하지 않고? 어차피 뒈질 테지만 발버둥이라도 치겠다는데.”
“하하, 맞습니다! 이 공자님의 자비를 마다하고 미천한 이종 놈의 미친 짓을 받겠다니. 이 용병들도 불쌍하군요. 제 치료사 인생 10년 만에 이런 안타까운 광경은 없었습니다.”
갑자기 불똥이 메시에게 튀었다. 메시는 못 알아들은 척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고, 레토가 툭툭 치더니 손짓하며 ‘치료, 치료’거렸다.
그제야 메시는 이해한 척 과장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쓸만한 둘의 연기 호흡이었다.
끝
ⓒ 10억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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