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300
300/외전24
외전 5. 구도자 메시 (6)
뭐, 기자? 장난하시오? 안 그래도 가게에 파리 날리는 것도 짜증 나는데 당신 기삿거리 챙겨 주게 생겼어? 너 어디 부족 출신이야?
…아, 사자님과 이 도시에 관해서? 진작 말하지 그랬소. 난 또 요즘 사자님을 퇴진시키자고 떠드는 공화당 놈인 줄 알았지. 기자인 척하면서 교묘하게 사상 주입을 하거든.
그래, 그런 주제면 날 찾아온 것도 이해가 가는군. 우리 푸춧간이 ‘카울라스크토라(카울라스크 앞)’의 제일 오래된 가게지. 이 도시가 고작 마을일 때부터 지금의 대도시가 될 때까지 조금의 변함도 없이 가게를 운영해 왔으니까.
뭐? 그게 지금 파리 날리는 이유 아니냐고? 네까짓 놈이 전통을 알아? 너 어디 부족 출신이야?
음, 그래… 이 정도 액수라면……. 기자 양반 질문에 착실하게 대답할 만하지. 아까 뭘 물었더라? 아, 사자님과 도시에 관해서……?
글쎄… 나도 사자님과 친분이 있는 건 아니라서. 하지만 할아버지께 들은 얘기가 있긴 하오. 우리 할아버지도 그 할아버지께 들었을 테고, 고조할아버지도 그 할아버지께 들었을 테지만. 흐흐.
지금이야 용기만 있으면 아무나 출입할 수 있지만, 예전엔 카울라스크를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하오.
맞소, 오크가 연초 피던 시절의 이야기지. 당시 카울라스크는 영산 취급을 받았소. …음? 지금도 그렇기야 하다만, 반쯤은 자연 보호의 의미고, 그땐 진짜 진짜 신성시했다니까.
기자 양반도 알고 있지 않소? 카울라스크 꼭대기에 전사의 신전이 있다는 것 정도는. 우리야 왜 그런 곳에 신전이 있을까, 한 번도 구경해 보지 못한 것에 동경과 호기심을 품지만… 과거엔 부족의 최고 전사를 그곳으로 보내는 관습이 정말 있었다 하오.
오, 공부를 좀 했구려? 맞소. ‘그날’을 대비해서 악타카 님이 우수한 전사를 모으시는 거지. 그런데… 어느 날 최고 전사 ‘바그람’이 그곳에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왔는데, 세상에. 사자님과 함께 내려온 거요. 상황을 직접 상상해 보시오. 엄청난 난리가 났지.
바그람? 맞소. 지금도 사자님의 곁에 머무는 전사, 그 사람을 뜻하는 거요. 나이? 글쎄외다……. 여태 살아 있으니 한 300살은 넘었겠지. 뭘 그리 놀라시오, 그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아예 사자님과 함께 내려온 자인데.
그래, ‘날드’라는 전사지. 그 사람은 바그람보다 훨씬 과거에 카울라스크를 오른 전사인데, 얼마나 예전인지 당시 조상 아무도 그 이름과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하오. 하지만 대단한 강자인 건 분명하오. 악타카께서 사자를 보필하라고 붙여 준 전사일 테니 얼마나 강하겠소? 지금도 날드가 입을 떼면 바그람은 눈조차 못 마주치지.
흠… 맞소. 베일에 싸인 전사요. 아무도 그가 무기를 휘두르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하니까. 도전하는 자들은 바그람의 선에서 다 정리가 되어 버리니 그 솜씨를 볼 기회가 어디 있겠소? 도전자들이 약해서 그런 거니 별수 없지. 하하.
큼, 말이 좀 샜군. 아무튼… 사자께서는 이 땅에 많은 걸 내리셨소. 새로운 종자를 주셔서 병충해를 막으셨고, 선진 농사법도 전수해 주셨으니… 게다가 친히 군사를 이끌어 땅을 넓히고 타 부족을 통합하였소. 그럼에도 바츌렘 부족만을 위하지 않고 모두를 조화롭게 받아들이셨으니, 이런 관대한 처사는 역사적으로도 또 없소. 아무렴! 근데, 기자 양반 출신 부족이 대체 어디요? 자꾸 말을 돌리고…….
아, 저 등대 말이오? 하하, 하긴. 이곳에 처음 온 자들은 저것부터 물어보곤 하지. 저리 높은 건물이 도시 한복판에 세워져 있으니 오죽 궁금할까.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아버지께서 저 등대 공사에 나가 노임을 받으셨다는데… 저걸 왜 짓는지는 자세히 못 들었다 하오. 솔직히 받을 돈만 받으면 그만이지, 굳이 이유를 알 필요가 있겠느냔 말이오.
뭐, 이것에 관해 추측성 기사도 많지 않소? 카울라스크 꼭대기에 있는 신전에 신호를 보내는 거라느니. 저 불빛이 초록색으로 바뀌면 악타카 님이 내려오신다느니… 얼마 전 신문을 보니 한 수학자가 계산한 것까지 나오더구려. 등대의 붉은빛이 절묘하게 카울라스크 꼭대기에 도달한다고 말이오. 예전엔 나도 그런 걸 믿곤 했지.
…지금은 안 그렇냐고? 음… 솔직히 말하면 그렇소. 뭐, 나보다 훨씬 똑똑한 양반들이 그렇다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해야겠지만.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서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소.
맨입으로? 큼큼. 아, 뭐 이런 걸 다. 내가 뭐 돈을 밝히는 건 아니고… 그래, 등심 몇 근이 필요하시다고?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우리 가게 고기맛이 최고긴 하거든.
어디 보자… 예전에 사자께서는 카울라스크토라에 계속 머무셨던 시절이 있었소. 지금이야 성지는 ‘펠루아나’지만 과거엔 카울라스크토라가 성지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거든. 그렇소. 사자께서 여기에 꾸준히 머무셨던 게요.
당시,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삼촌 되시는 분이 이곳 성벽을 책임지는 경비 일을 하셨소. 헌데, 매일매일 사자님께서 성벽에 올라 저 카울라스크를 바라보곤 하셨다고 하오.
신호? 그래… 그땐 등대가 없으니 직접 신호를 보내시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소. 하지만… 그게 참 묘한 게. 삼촌께서는 그 모습이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양새 같았다더군.
악타카 님?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그분의 명을 받고 내려온 사자님인데, 악타카 님이 언제 내려오실지 모를 리 없지. 더군다나 삼촌분이 알아본 바로는 훨씬 예전부터 그러셨다더군. 어쩌면… 이곳에 내려온 그날부터 말이오. 악타카 님을 기다리는 거라면, 그러진 않으셨겠지.
아아, 맞소. 뭐… 증거는 없소. 그냥 그런 말씀이 전해져 내려오더라~ 하는 게 내 말의 요지요. …카더라 말고 다른 기삿거리는 없냐고? 허허, 참. 줘도 못 먹는 양반이시군.
됐고! 모처럼 이곳까지 왔는데 관광이나 하다 가시오. 기념품도 사고 말이야. 사자님께서 직접 고안한 악타카 인형과 개미 사과빵 정도는 사 가야 카울라스크토라를 갔다 왔다고 할 수 있지. 아무리 우리 악타카교의 상징이자 영물이 부지런한 개미라지만, 기자 양반처럼 살면 인생에 재미가 없……. 잠깐, 어디 가시오? 어어… 기념품 가게에 내 이름만 대면 싸게 해 줄 텐데! 이번엔 진짜야!
*
메시는 책상에 쌓인 서류들을 하나씩 처리해 갔다.
부족 연방 국가의 지도자… 나쁜 말론 독재자의 위치에 올라 이 손때 묻은 낡은 책상에 앉은 지도 354년쯤.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을 반복하는 건 어렵지 않으나,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조금씩 몸이 뻐근해지는 걸 느꼈다.
‘나도 나이가 들긴 했어.’
의자에서 일어나 집무실 전신 거울로 다가갔다. 거기에 비친 자신은 나이를 먹은 중년인이었다.
40대 중반에서 후반. 주관에 따라 50대 초반까지도 어림할 법한 얼굴. 한때 아헨탈 공작이 이런 나이대였다.
“끙…….”
메시는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근육을 풀다가, 결국 안 되겠다 싶은지 황금빛 성화를 제 몸에다 일으켰다.
서서히 편안해지는 표정. 얼굴에 조금씩 생기던 잔주름과 기미도 사라져 갔다.
하지만 치료가 끝나고 난 후 자세히 거울을 들여다보는 메시의 표정은 굳어져 있었다.
‘점점 원복이 빨라진다.’
치료를 받으면서 펴진 주름살 일부는 빠른 속도로 재생성되고, 사라진 줄 알았던 기미도 미세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예전이었다면 사라지다 못해 회춘까지 일으켰을 신성 힐이었지만, 이제 메시에게만큼은 큰 효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티스리스트 왕과 나눴던 과거의 대화를 떠올렸다.
[제가 부린 기적도 양초로 설명 드리자면, 타 버린 심지를 다시 복구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정녕 그게 사실인가? 그렇다면 영생도 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닌가?] [삶과 죽음, 시작과 끝. 이 모든 건 신이 정해 둔 섭리입니다. 신께서는 자신이 만든 섭리를 자신이 어길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건…….] [심지를 복구시키지만, 한번 탔던 것이 이전과 같을 린 없습니다. 이전보다 더욱 빨리 탈 것입니다. 복구된 심지가 새것이 아니라는 건, 왕께서도 증명하고 계시지 않습니까?]메시는 제 얼굴을 매만지며 씁쓸하게 읊조렸다.
“심지가 다 되어 가는 건가…….”
덜컥.
“예하? 거울 앞에서 무얼 하시는 겁니까?”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날드가 물었다. 아직 중년인에 불과한 메시에 비해, 그는 어느새 다 늙어빠진 노인이었다.
“나도 제법 늙었단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제 앞에서 그런 농담을 하시다니. 여전히 악취미십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이 속 늙은이의 질 나쁜 농담을 들어주러 온 게 아니라면.”
메시가 털썩 의자에 앉자, 날드가 봉투를 내밀었다. 그 위에는 바른 글씨로 ‘사직서’라고 쓰여 있었다.
잠시 말문이 막힌 듯, 눈썹을 긁적이던 메시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왜, 요즘 일이 힘드나?”
“일도 일이지만… 이제 저도 한계치가 임박해서 말이죠.”
“…그렇구나.”
안타까운 눈길로 제 후손을 바라보았다.
기대하지 않은 만큼, 우연하게 이어진 인연. 귀한 사람이었다.
그는 뀨가 사라진 후로 주변에 아무도 없었던 메시에게 큰 힘이 되었다.
어쩌면.
날드가 없었다면.
제2의 삶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이 지금과 전혀 달랐을지도 모른다.
“이 나이 먹고 인제 와서 사람답게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웃깁니다만… 이제 할 만큼 한 거 같으니. 가 봐야겠습니다.”
“그래… 충분히 버틸 만큼 버텨 줬다. 넌 제 몫을 다했어. 고맙구나. 날드.”
드문 메시의 칭찬에 날드가 머쓱하게 웃음을 흘렸다.
떠나는 마당에 예의상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듯한데, 메시는 진심이었다.
몸은 젊지만, 타들어 가는 심지의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영혼은 갈수록 노쇠해져 간다. 신체는 젊어져도, 영혼은 그대로. 그 불균형은 조화를 무너뜨리고 사람의 정신을 좀먹었다.
아내 에레나나 아들 라이덴조차 120살을 넘기자 삶을 유지하기 힘들어했다.
그에 반해, 날드는 374살이 되도록 메시를 보좌했다. 이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몇 대에 이르는 자손을 봤다. 아내가 죽고 자식이 죽고 손자가 죽어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만큼 정신력이 강한 거겠지.’
가족들을 어쩌지 못해 속만 썩히던 샌님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메시와 함께 새로운 세계 속에서 성장하여 거인이 되었다.
그 거인이 마침내 사직서를 건넸으니 수고했다고 치하할 수밖에.
“날 따라온 걸 후회하진 않느냐?”
“카울라스크… 아니, 황혼의 산맥을 1년간 헤맬 땐 좀 후회했었지요. 동상 때문에 제가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기억하십니까? 한 번은 다리가 썩었으니 잘라 내야 한다고 예하께서 말씀하시는데 그땐 어찌나 놀랐는지…….”
“그랬지, 그랬지. 장난이었는데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군.”
“제가 여기서 반란을 획책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아십시오.”
“하하, 참고하마.”
가벼운 농담에 웃고 난 후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찾아왔다. 메시의 입이 굳게 닫힌 탓이다.
이 정도 살았으면 이별에 무덤덤해질 법도 한데, 나이를 먹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가 어려워질수록 이별이란 건 더욱 가슴 아렸다.
메시는 한숨을 내쉬며 창가를 바라보았다. 밖으론 어두운 밤하늘을 가르는 붉은 광선이 있었다. 등대의 불빛이었다.
황혼의 산맥을 건너올 누군가가 길을 헤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안한 장치였다.
“아직도 친구분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글쎄… 머리론 못 볼 걸 아는데, 마음은 그리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고 할까.”
지금껏 자신이 살아 온 나날을 계산해 본다면, 나이는 704살.
뀨와 함께한 지낸 시간을 환산하면 6, 7년에 불과하다. 굳이 가치절하를 하자면, 뀨와 교류한 시간은 인생의 100분의 1조차 되지 않는 거다.
헌데도 무수한 시간이 흘러서 마음에 여전히 친구가 남아 있는 건, 인연의 깊고 옅음이 단순히 시간으로 계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 녀석이 이곳에 와서 만족한다면 좋을 텐데.”
“…만족하실 겁니다. 그간 해 오신 일이 다 그분과 관계된 게 아닙니까.”
“하하, 티가 났나?”
메시가 새로운 세계를 선택한 이유.
“내가 만들어 놓은 이곳이라면, 그 녀석도 혼자 외롭게 살아갈 필요가 없겠지.”
외로움을 자각한 그날.
문득, 메시는 이후를 생각했다.
‘뀨가 눈 떴을 때… 내가 없다면 녀석이 견딜 수 있을까?’
그녀는 최소 만년을 버티는 수명을 지녔다.
뀨와 같은 인격체에게 만년의 세월을 살아간다는 건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만 해도 고작 수십 년을 견디지 못하고 이토록 외로움을 느끼는데…….’
뀨는 자신과 함께 넓은 세상을 직접 보았다. 복잡다단하며 자극적인 감정을 제 몸으로 느끼고, 경험으로 지식을 쌓았다.
일반적인 만년 개미들은 다르다. 그들은 어미의 날개를 먹어 선조가 쌓아 온 지식을 흡수하여, 오로지 그 지식만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그렇기에 굴속에서 만년을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 세상을 모두 알고 있다고 여기고, 바깥으로 나갈 필요성을 못 느끼니까. 오직 제국을 가꾸는 데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뀨는 어떨까?
몇 년마다 자신을 만나러 와 주는 인간 친구가 없다면?
육포를 쟁여 와서 입에 넣어주는 인간 친구가 없다면?
제국의 바깥 하늘이 새파랗고 높다는 걸 이미 알아 버린 뀨라면?
못 버틸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혼자 살아가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때부터였다.
메시가 그녀만을 위한 세상을 만들어 주기로 마음먹은 것은.
자신이 사라진 이후에도, 그녀를 외롭지 않게 보듬어 줄 수 있는 세상.
점차 영토를 넓혀 가는 8왕국의 인간들을 피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세상.
개미와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세상.
“그래, 분명 괜찮을 거야.”
메시는 자신의 집무실 구석에 세워진 동상을 바라보았다.
만년 개미의 형상이 빚어진 동상 아래로는, ‘악타카’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