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44
전업 힐러는 점점 강해진다
(43)
아돌 프라임은 시종의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제 4 연회장으로 향했다.
에이러스의 명대로 시종 서른 명을 제거할 생각이었다. 그런 짓을 저지르는 데 있어서 죄책감은 없었다.
오히려 대공자의 냉혹한 면이 좋았다. 명분이 필요 없는 살인을 할 땐 누구보다 거침없게, 명분이 필요한 살인을 할 땐 누구보다 주의 깊게.
아헨탈 자작이 자신을 대공자에게 붙일 때, 그는 누구보다 기뻐했다. 마음에 드는 주인이었으니까. 이왕 주인을 섬겨야 한다면 마음에 드는 상대가 좋지 않은가?
‘이 녀석이면 괜찮겠지.’
아돌은 제 손에 쥐어진 가루약이 싸인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하품’이라는 이름의 독인데, 수면제로도 쓰이는 독버섯을 말려 가루 낸 것이었다. 극소량만 쓰면 약이지만, 과하게 섭취하면 독이었다.
주로 산 근처에서 사는 이들이 잠들었다가 영영 못 일어나는 경우가 있는데, 다 이놈의 작품이었다. 생김새가 식용 버섯과 비슷했다.
‘녀석들을 불러내서 음식에다 섞으면 되겠지.’
대공자가 심어놓은 놈들도 연회장에 있을 것이다. 불러내어 이걸 음식에 타게 한 후, 그 녀석들만 따로 처리하면 보는 눈도 적고 깔끔할 것이다.
머릿속 계획은 완벽했다. 하지만 아돌은 변수까진 고려하지 못했다.
예상 밖의 손님이 있었던 거다.
‘이 공자? 그리고 이종까지?’
연회를 열어준 거로 모자라, 직접 치하하러 온 거 같다. 자신이 아는 이 공자는 그런 인물이 아닌데…
두 사람이 술과 음식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돌은 음식에 독을 타려는 걸 취소하려 했다. 어차피 시종들을 따로 처리할 방법은 많았으니까.
‘아니지… 잠깐.’
귀족인 이 공자라 해서 꼭 ‘우연히’ 독버섯을 섭취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이 자리에서 처리해버리면, 앞으로의 복잡한 일이 간단히 해결되는 거 아닐까.
가슴 속에서 은밀한 욕구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대공자는 말했다. 명분이 필요 없는 자를 그냥 죽이는 건 ‘살인’이고, 명분이 필요한 자를 그냥 죽이는 게 ‘암살’이라고.
암살은 정치적 수단 중에 할 수 있는 가장 하수이며, 큰 후폭풍을 감내해야만 하는 일이므로 최후의 수단이라 못을 박았다.
지금 자신은 ‘살인’을 하러 왔다가, ‘암살’을 하게 된 거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이건 아니야… 대공자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게 좋다. 항상 결과가 좋았으니까.’
흉금을 안고 돌아서려는데. 멀리서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이었다.
그녀를 본 아돌은 미련 없이 계획을 포기할 수 있었다.
**
“오라버니!”
“헉, 에레나.”
에레브가 귀신을 본 것처럼 당황했다. 금발의 여자가 휠체어 바퀴를 밀며 다가왔다. 금세 여기사가 따라와 휠체어를 대신 밀었다.
이 공자의 동생, 에레나 폰 아헨탈은 금발의 긴 머리에 순진한 미소를 잘 짓는 청순한 미녀였다. 물론, 얼굴까지만 청순했다. 그 어머니의 피는 어디 가지 않았다.
“꼭 제가 찾아오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시나요?”
“그게… 저, 미안하다.”
뭣이?
메시가 오히려 깜짝 놀랐다. 에레브가 사과를 해? 저 인간이?
사과라는 단어를 모르고 사는 사람 같은데 그게 아니었다. 여동생에겐 약한 오빠였다.
“오셨으면 바로 와주실 줄 알았는데… 저는 실망했답니다.”
“미, 미안하다.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사실 일이 계속 생기는 걸 어찌하겠느냐.”
“기사들과 시종들의 연회를 챙기는 걸 언제부터 그리 했다고 절 홀대하세요? 섭섭하네요, 오라버니…”
“아니야! 젠장, 이게 다 이 녀석이…”
갑자기 에레브가 자신을 팔아먹으려 들었다. 역시 약강강약의 대표적인 남자다웠다.
메시가 서둘러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에레나 양. 저는…”
“알고 있어요. 메시 경. 숲의 일족이시고 고귀한 피라면서요? 저희와 다른 존재는 얘기로만 들어봤는데 놀랍네요.”
일부러 듣는 이종 기분 나쁘지 않게, 다른 존재라고 돌려 표현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괜찮았다. 두 형제와 다르게 이쪽은 가정교육이 성공했다.
“아버님이 가문의 손님으로 인정해주는 일은 드문데… 정말 대단한 분이신가 봐요.”
“그렇게 됐습니다.”
“뛰어난 힐러라고 들었어요.”
“과분하지요. 좋게 봐주셨는지, 이 공자께서 초대해주셨습니다.”
“그러게요… 오라버니도 생전 친구 한 번 초대 안 하던 사람인데. 아버님과 둘째 오라버니 모두 예외의 모습을 보여주시네요.”
에레나가 씁쓸하게 말했다. 아마 자신의 치료 때문에 예외를 뒀다고 짐작하는 거 같았다. 당연히 그런 오해를 할 만했다, 메시의 다른 능력은 언급되지 않았으니까.
일단 아헨탈 가주는, 메시가 고대어를 해석할 수 있다는 걸 외부에 떠들고 다닐 입장이 아니었다. 고대어 해석이 필요한 일이 뭐 있겠는가, 고대의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말과 똑같았다.
그녀의 침울한 모습에 에레브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게 아니야, 에레나. 그냥 난… 초대할 친한 친구가 없었을 뿐이다.’
이걸 그대로 말했다간, 에레나가 더 슬퍼할 거 같았다. 때마침, 메시가 그녀의 관심을 돌릴 질문을 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데리고 다니는 반려 곤충이 있는데 꺼내도 될까요? 먹이를 줘야 할 거 같아서요.”
“…반려… 곤충이요?”
새삼 그런 건 처음 들어봤다는 듯,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뀨! ]메시가 공주를 꺼내자마자, 에레나의 입이 사과만큼 커졌다. 놀랍고, 당황스럽고,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이.. 이게 대체?”
“이 녀석은 원망의 숲에 사는 개미 유충인데…”
[ 그냥 유충이 아니라, 공주다뀨! ]“…귀여워서 키우고 있습니다. 온순하고요.”
“크윽, 그냥 그 녀석을 내다 버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에레브가 질겁하여 멀어졌다. 에레나가 그걸 보곤 우후훗 웃었다.
“오라버니는 예전부터 벌레를 무서워했죠. 먹던 요리에서 벌레 반 토막을 발견한 이후였죠?”
“누가 무서워한단 거냐, 흉물스러운 것뿐이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누구든 싫어해!”
그게 그거 아닌가? 메시는 굳이 따지지 않고, 연회장의 음식 앞에 공주를 내려놓았다.
[ 뀨… 설마 이거 다 먹어도 되는뀨? ]‘어, 다 먹어. 온종일 가만히 있느라고 심심했을 텐데.’
[ 뀨뀨규亦!! ]꿈틀꿈틀, 한 뼘만 한 애벌레가 접시 위로 올라가 음식을 먹는 광경은 흔하지 않았다. 모두가 침묵한 채 그 광경을 바라봤다. 연회장에서 노는 시종들도 마찬가지였다.
[ …부담스럽다뀨. ]“정말 귀엽네요. 어쩜… 이렇게 큰 벌레가 거부감 없기 쉽지 않은데…”
살집이 올라 오동통한 것이, 포동포동한 새끼 동물 같다. 에일라도 그러더니, 의외로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뀨였다.
뀨 덕분에 상처를 잊은 에레나는 즐겁게 웃었다. 시종의 연회가 끝날 때까지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녀를 따라온 시녀와 여기사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평소엔 이렇게 잘 웃는 일이 없나?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좋기에 의아했다. 그런 와중에 에레나가 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늘 정말 재밌었네요. 메시 경, 혹시 내일 제 테라스에서 티타임을 가질 수 있을까요? 바깥 이야기가 궁금하네요.”
“음, 에레나 양의 오라버니만 괜찮으시다면야.”
메시가 힐끗 에레브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가면 가만두지 않겠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에레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괜찮아요. 오라버니가 보수적으로 그런 걸 따지는 분은 아니세요.”
“그, 그래…”
전혀 아닌 거 같은데.
자리가 파장되고 제 4 연회실이 텅텅 비었다.
연회의 흔적을 보며 에레브가 한숨을 쉬더니, 메시에게 뜻 모를 질문을 건넸다.
“이걸로 만족하나?”
대단히 아쉬운 기색이었다.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아까 형님의 심복이 그냥 돌아갔다. 우린 계획의 반만 성공한 거야. 네가 물러터지지만 않았어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시죠. 계획의 반이나 성공한 겁니다. 내부에 첩자를 심었고, 덫도 깔았으니 알짜는 다 얻은 겁니다.”
“허, 그럼 원래 목표로 했던 내부 정리는? 계획을 세우고 다 끝나가는 마당에 무르는 녀석은 너뿐일 거다.”
메시가 세운 계획에서 가장 옥에 티는 죄 없는 시종들까지 함께 처분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냥 모른 척하면 그만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티끌로도 여기지도 않을 문제였다. 하지만 메시에겐 그렇지 않았다.
듀렉 용병단 같은 경우엔 자신에게 잘못을 저질렀고, 라우드 역시 자신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이들은 그게 아니었다.
메시가 에레브를 설득해 여기까지 직접 내려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자신들이 있으면 함부로 개수작을 못 할 거라 꿰뚫어 본 셈이다.
‘하긴, 원래 인간에게 정이 많은 녀석이었지…’
에레브도 처음 메시의 그런 점을 알아보고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거였다. 다른 이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앗아가는 존재였다면, 신뢰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 아마 자기 자신과 똑같은 인간이라면 믿지 않았겠지. 메시는 자신과 다르다. 그래서 신용을 한다.
“돈을 좀 쓰시죠.”
“너, 요새 내가 좀 편해졌냐?”
“시종들에게 성과급을 아주 넉넉하게 지급하고 선택하게 하시죠. 이쪽저쪽 옮겨 다니느라 바쁜 친구들은 남을 테고, 미련 없는 자들은 떠날 테니까요.”
“뭐야…? 그런 간단한 방법이 있었으면 진작 그렇게 하던가.”
“그럼 첩자를 못 심고 덫도 못 쳤죠. 거기다… 견적도 내보고 싶었습니다.”
“견적?”
“대공자요. 앞으로 싸울 상대가 어느 수준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링 위에서 치러지는 복싱에서도, 상대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 잽을 넣으며 탐색전을 벌이는 법이다.
메시는 대공자의 수준을 알기 위해 작은 전초전을 벌인 셈이다.
그에겐 당연한 일인데, 에레브에겐 큰 충격이었다. 갑자기 웃음을 팡 터뜨렸다.
“크하하, 에이러스 그 인간에게 견적을 내겠다는 놈은 네가 처음이다! 그래서 견적서는 나왔나?”
“할만할 거 같은데요.”
“하, 할만… 크크, 푸하하하!!”
에레브는 웃겨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자신이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형제를 이렇게 여유롭게 평가하는 놈이라니!
이제껏 에이러스는 에레브에게 난적이었다. 모든 걸 다 가진 형제. 아버지의 인정도, 어머니의 사랑도, 뛰어난 실력도… 항상 압도되어 기도 못 피고 살았다.
추하게도 그 분풀이를 주변에 하고 살았던 세월이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자신에겐 메시가 있다.
‘저자가 보물이란 말이냐?’
오늘 아버지가 그리 물었을 때. 에레브는 정말 대답하고 싶었다. 네, 라고…
“…저 먼저 갑니다?”
“어, 그래. 먼저 가라. 난 좀 더 웃고 가련다. 크크, 푸하하!!”
그래도 에이러스에게 한 방 먹였다는 것이 당장은 더 좋았다.
진심으로 속이 시원하고 통쾌해서 배를 잡고 끅끅댔다.
[ 미쳤나봐뀨… ]메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숙소로 되돌아갔다.
**
먼동이 틀 무렵, 메시의 눈이 떠졌다. 이른 시간만 되면 습관처럼 잠에서 깼다.
사부와 지낼 땐 하루가 모자라게 가르침을 받았다. 사냥꾼일 때는 날이 밝을 때만 사냥이 가능하니 일찍 일어났다. 숲은 해가 일찍 지는 탓이었다.
이 공자와 얽힌 후엔… 말해 뭐하나.
‘드디어 원하던 환경이 마련됐는데, 첫날부터 게을리할 순 없지.’
찬물에 가벼운 세수와 민트풀로 양치를 하고 방을 나섰다. 공주는 자게 내버려 뒀다.
목적지는 아침의 연무장이었다.
아헨탈 가문의 연무장은 성 바로 바깥에 있었다. 총 세 개였다. 하나는 아헨탈 기사단의 전용이고, 또 하나는 기마단의 것. 또 하나는 손님용이었다. 가주용도 따로 있는 것으로 아는데, 성 내부에 있을 것이었다.
메시가 찾은 곳은 손님용이었다. 이름부터가 아무도 없을 거 같아서 정한 것이었는데, 예상외로 먼저 온 손님이 있었다.
훅, 훅.
일정한 리듬의 숨소리. 메시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누구지? 금세 답은 나왔다.
쿵, 하고 벤치 프레스의 바벨 같은 걸 내려놓은 거구의 사내. 다름 아닌 집사 그로테인이었다.
“음, 아. 메시 경이셨군요.”
“반갑습니다. 그로테인 집사님.”
“아침부터 땀을 흘리면 기분이 좋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고갯짓으로 대답을 해주고, 메시는 연무장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상의를 벗고, 땀을 흘려대며, 훅훅 거리는 근육질 노인을 아침부터 상대하기엔 아침의 삼겹살처럼 부담스러웠다.
메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특하단 눈초리로 연무장을 도는 메시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외면하고, 메시는 움직이며 몸을 점검했다.
‘성장은 다 된 거 같은데, 뭔가 아쉽군.’
엔조 무에테의 신체 정보를 받아들이고 난 뒤, 하루가 다르게 몸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굳이 마나를 쓰지 않아도 마나를 쓰는 듯했고, 지치는 일이 잘 없었다. 근력은 또 어떻고? 지금 힘이면 기사의 갑옷도 찢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호기심을 품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성장이 딱 멈췄다.
자신이 아는 엔조 무에테의 신체 정보와 비교하면 우스운 수준에서 멈췄다.
그릇인 자신의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엔조 무에테를 받아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메시가 바라던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결과였다.
기껏해야 1할…
물론 종족이 다른데 엔조 무에테의 1할이나 받아들인 거면 인간으로선 엄청난 것이겠지만, 메시로선 아쉬움이 남는 일이었다.
‘더 받아들일 방법은 없나?’
그 절반만이라도 소화해낸다면, 신체 능력만으론 인간 중에선 적수가 없을 텐데…
메시는 연무장 구석에 있는 신체 단련 기구들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방금까지 그로테인이 쓰던 것들이었다.
‘그릇이 작은 탓이면, 그릇을 키워주면 되지 않을까?’
몇 바퀴를 다 돌고 몸이 좀 풀렸을 땐, 이미 근육질 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개인 PT라도 시켜달라고 해볼 걸 그랬네.’
왠지 좋아할 거 같았는데.
끝
ⓒ 10억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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