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ull-time healer getting stronger and stronger RAW novel - Chapter 47
에레나 폰 아헨탈.
나이 18세, 아헨탈 자작가의 막내로 어릴 적부터 선천적 장애가 있어 걷고 뛰어보질 못했다.
따라서 그녀의 다리는 휠체어 달린 나무 바퀴였으며, 걷고 달리는 힘은 등 뒤의 누군가에게서 나왔다.
그래도 불만은 없었다.
일하지 않아도 맛있는 요리가 끼니마다 나오고, 자신을 도와줄 시녀들은 많았고, 가족들은 그녀를 좋아했다. 괜찮은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침실 가득한 인형을 보며 새삼스레 자신의 악취미를 깨닫는다.
‘너희도 나처럼 움직이지 못하지. 그렇지만 나만이 너흴 움직일 수 있어.’
인형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던 게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내면이 뒤틀려가고 있었던 거라고.
제 자리의 인형을 보며, 묘한 만족감을 느껴왔음을 인정했다. 그녀는 병들어버린 자신의 마음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그날 이후부터 에레나는 남을 위한 봉사에 적극적이게 됐다.
헝겊 인형에게 화풀이하는 게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집안의 시종, 시녀들의 어려움을 듣고 해결해주는 선에서 끝났지만, 모자람을 느끼곤 집 밖으로 눈을 돌렸다.
광산의 부상자들이 모이는 기도원에 처음 갔다. 음식을 주고, 옷을 주고, 약을 주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질리도록 들었다. 마음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나는 나을 수 없겠구나.’
기도원에서 죽어가는 이들은, 사제 한 명만 있어도 멀쩡히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한 명이 없어서 모두가 죽어가는 곳이 기도원이었다.
정작 자신은, 선천적인 장애를 치유하겠다고 아버지가 데려온 고위 사제만 해도 수십 명이고, 일반 사제만 수백 명이었다.
그런 이들이 치유하지 못한 자신이라면, 영영 나을 수 없겠거니 여기게 되었다. 희망이라는 걸 지금껏 놓고 살았다.
그런데, 눈앞의 남자는 뭔가 달랐다.
‘나도… 이 사람에게 치료받는다면 나을 수 있을까?’
의아했다.
자신을 치료하려고 오라버니가 초빙한 치료사일 텐데도, 자신을 낫게 할 수 있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더 믿음이 갔다.
[ 낫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가이아께선 에레나님을 항상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 말하던 자들은, 다 실패했다.
[ 환자의 믿음이 모자라신 것 같습니다. 안타깝군요. ]하지만 이 사람은 그런 말 따윈 하지 않는다.
행동으로 보여주겠다고, 자신이 치료하는 걸 잘 보라는 듯.
눈앞에서 기적을 보여주고 있었다.
**
“여, 여기…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아, 감사합니다.”
메시는 에레나가 손수 탄 차를 마셨다. 꽤나 맛이 좋았다. 이 세계에서 마음에 드는 게 있다면, 이 차 문화였다.
“힘드시죠?”
에레나의 질문에 메시는 잠깐 버벅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 같아요. 보일도 환자 열 명 넘게 힐을 쓰면 힘들어하니까요. 물론 메시 경은 기준이 좀 다른 거 같긴 하지만…”
메시는 어제만 해도 아흔 명이 넘는 사람에게 힐을 시전 했고, 지금도 마흔 명의 환자가 지나갔다.
솔직히 메시의 심정으론…
‘왜 힘들지 않지?’
메시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힐을 이렇게까지 한꺼번에 많이 써본 적도 없지만, 마법의 시전에 있어서 횟수 제한이 있는 게 일반적이었다.
마법사는 정신력을 기반으로 마법을 사용한다. 정신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모재였고, 평균적으로 양이 비슷했다. 거기다 수련을 통해 성장시키기 대단히 어려웠다.
대표적인 예로, 고리 회전수가 많은 어떤 고서클의 마법사는 주위의 마나를 더 많이 끌어당길 수 있어도, 정신력의 부분에서는 저서클 마법사와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마법사를 ‘단발 마법사’, 심하면 ‘조루 마법사’라고 놀리는데, 마법 한 번 찍 갈기고 그 뒤엔 맥을 못 추는 모습 때문이었다.
반대로 지금 메시의 경우, 비정상적인 정신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이것도 혹시 엔조 무에테 때문인가…?’
신체 능력엔 뇌 또한 포함된다. 뇌는 정신력과 가장 연관이 있는 신체였다. 엔조 무에테의 신체 능력에 영향을 받으면서 뇌까지 개발된 건 아닐까, 가설을 세웠다.
“그래도 어제 환자를 많이 봐서 그런가… 적당히 하고 쉬어야 할 거 같습니다. 마법은 정신력에 한계가 있으니 힘드네요”
메시는 앓는 척을 하며 고개를 빙빙 돌렸다. 과도한 능력을 보여주면 그 또한 이상하게 생각할 듯하니…
하지만, 에레나의 반응은 상상 이상이었다. 화들짝 놀라더니 당장 주변의 사람들을 시켜 탕약이나 음식 같은 걸 가져오게 했다.
메시는 꼼짝없이 그것을 먹고 마시고 한 시간을 넘게 쉬어야만 했다. 그 광경을 에레브가 빤히 쳐다봤다.
“뭡니까, 그 눈은?”
“이상한데… 네 녀석이 앓는 소리를 한다고? 힘들다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마알못다운 소리군요.”
“마알못? 그게 뭐지?”
“몰라도 됩니다.”
“이 새끼, 그거 방금 욕한 거지?”
약자멸시 때문인지, 아랫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건 빠르게 잡아냈다.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데 번호를 부르던 기도원생이 들어왔다.
“저… 치료사님.”
“?”
“아까 영지민 환자들은 다 들여보냈는데… 다음은 광노들입니다. 혹시 더 하실 마음이 없으시면…”
이 세계는 역시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다.
누가 더 중환자고, 목숨이 경각에 달했는지가 치료 순서에 반영되는 게 아니라 계급이 먼저였다.
거기다 치료를 할지 말지도 묻고 있었다. 노예 계급의 목숨이란 정말 파리 목숨 같은 거였다.
광노면 일을 할 때도 더 힘든 일을 배정받았을 테니, 부상이 영지민보다 평균적으로 더 심할 텐데… 기다리는 동안에도 많이 죽었겠지.
에레브가 당연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당연한 걸 뭘 물어? 우리 초빙 치료사도 피곤하다고 하니, 여기까지다. 치료는 끝났어.”
“잠깐만요. 들여보내세요.”
“무슨 소리야, 방금까지 힘들다면서. 노예 따위를 위해서 자신을 혹사할 셈이냐?”
에레브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을 바라봤다. 아직 21세기의 이은호가 메시의 결정에 조금은 영향을 끼치는 탓인데, 이런 걸 에레브가 이해할 리 없었다.
“절대 안 돼, 난 반대다. 내겐 노예 몇백 목숨보다 네 목숨 하나가 더 가치 있다.”
에레브가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절대 안 된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하지만 에레나가 나서면 어떨까?
그녀는 광노의 목숨까지 살리기 위해 희생하려는 메시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다. 그녀에게서 메시는 신비로운 능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대단히 명예로운 자로 격상되었다.
“오라버니, 그냥 허락하세요.”
“에레나, 메시는 우리의 귀한 손님이야. 이젠 가신급의 대우까지 받을 테고. 아버지도 이 얘길 들으시면 화내실 거다.”
“아버지였다면 귀빈이 원하는 방향을 먼저 생각하셨을 거예요. 그리고 무리하지 않도록 옆에서 최선을 다해 보조하도록 했겠죠.”
에레나의 조언에 이 공자도 끙, 침음성을 흘렸다.
동생에게 약한 건 어쩔 수 없나보군.
“열명 씩… 일단 받자. 그리고 열명 마다 계속 네 상태를 확인하겠어.”
“알겠습니다, 그럼 들여보내겠습니다!”
기도원생이 다행이라는 듯, 번호를 부르기 시작했다. 메시가 치료를 안 하면 광노가 죽어가는 걸 지켜만 봐야 하니, 그들로선 기쁜 일이었다.
예상대로 광노들은 상태가 더 좋지 않았다. 1번 환자부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양발이 검게 썩어들어가고 있었는데, 이런 상태로 지금껏 버티고 있었다는 게 용할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썩은 부위가 문드러질 정도까지 오래되진 않았다는 점이었고.
아예 의료 지식이 없어 썩은 부분을 절단하거나 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메시의 힐 능력에도 한계는 분명히 있었는데, 없어진 신체 부위를 완벽하게 재생시키는 건 힘들다는 점이었다. 차라리 썩은 지 얼마 안 된 신체를 살리는 건 가능했다.
1번 환자는 그 기적을 맞이할 수 있었다. 광노는 아무 말도 없이 메시와 에레브의 앞에 엎드린 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알고 보니 혀가 잘린 광노였다. 메시는 그 혀를 복구해줄까 하다가, 포기했다.
저건 지은 죄의 상징이었다. 신분을 바꾸고 죄를 세탁하지 않는 이상, 혀가 다시 복원되어 봐야 똑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그렇게 몇 명의 광노 환자를 받다가, 외팔이 8번 환자에 도달했을 때였다.
메시는 그 광노를 치유하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마나 유저?”
“뭐? 광노가 마나연공법을 알고 있다는 얘기냐?”
에레브가 놀라서 8번 광노를 쳐다봤다. 그도 놀란 표정이었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힐을 쓰면, 일반인과 마나 유저의 반응이 다릅니다.”
거짓말이었다. 메시는 그냥 힐을 쓰면 상대의 마나 회로 속 흐름까지 보이는 거였다.
“노, 놀랍군요. 죄를 저지르고 광노가 되기 전까진 은패 용병이었습니다. 마나 회로의 일부를 폐쇄당해서 지금은 마나를 사용할 순 없습니다만…”
‘호오.’
그래서 몇몇 회로가 제 기능을 못 했던 건가.
“무슨 죄였습니까?”
8번 광노는 눈알을 떼구르르 굴리며 주변을 살피다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살인죄였습니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서 한 녀석을 실수로 때려죽이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 영지의 농노지 뭡니까. 영주의 재산을 훼손한 걸 몸으로 갚으라는데, 저는 그러기 싫었죠.”
뒷이야기는 예상이 갔다. 몰래 도망치다 팔이 잘리고 마나 회로까지 폐쇄당해 이곳저곳 팔리다 광산까지 흘러들어왔을 것이다.
“광노들 중에 이런 자가 몇 있을 거다. 광노는 사망률이 높으니 그럴 바에야 범죄자들을 모아다 일 시키는 게 낫거든.”
에레브의 싸늘한 말에 8번 농노가 진땀을 흘리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래도 용병 현역 땐 꽤 이름을 날렸습죠. 파키탄의 싸움꾼이 제 별명이었습니다.”
“…파키탄? 중앙 동부의 거기? 난 못 들어봤는데?”
“끙… 세월이 흐르긴 했지요. 10년이나 지났으니. 당시엔 기사님들도 제 박투술을 높게 쳐줬습니다.”
박투술이라…
근접 무투전에서 필요한 기술이라는 생각이 메시의 관심을 자극했다. 어떻게 자연스럽게 보여달라고 할까, 고민하던 찰나.
“그럼 여기서 한번 보여봐라!”
“여기서 말입니까?”
에레브의 난데없는 권유에 광노가 난처한 기색을 표했다. 환자만 받는 게 심심했던 건지, 에레브는 재밌는 걸 발견한 눈치였다.
“혹시 아느냐? 이 몸의 마음에 들어서 네가 자유민이 될지도?”
“…!”
메시도 광노처럼 놀랐다. 에레브가 이렇게 선의를 베푸는 인간은 절대 아닌데.
근거 없는 약조임에도, 8번 광노의 얼굴이 크게 흔들렸다. 그만큼 광노의 삶이 고되다는 뜻이리라. 결심이 어렸다.
“…시작하겠습니다.”
아까 그 광노가 맞는 건가?
의문이 들 정도로 사납고 거친 기세를 풍기더니, 이내 허공에 주먹과 발을 쏟아냈다. 기도원실의 공간은 한 사람이 시범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메시는 시작하자마자 움직이고 있는 광노를 향해 힐을 쏟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마음을 금세 접어야 했다.
‘어째서, 그냥 알 거 같지?’
눈으로 그의 동작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근육을 움직이고 몸을 사용하는지 이해되고 있었다.
광노의 신체 정보를 다 받아들인 후라고 해도, 메시에겐 처음 겪는 현상이었다. 이 또한 엔조 무에테의 신체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생긴 현상이 아닐까 짐작했다.
하지만 보이는 게 많을수록 불쾌한 사실이 있었다.
눈앞의 사내는 사람을 아주 잔인하게 죽인 경험자였다. 동작만 보는데도 피냄새가 끈적하게 느껴질 만큼, 보이지 않는 상대를 때려죽이고자 하는 의지가 명백했다.
훅, 훅!
방금 누군가의 얼굴을 때려 부쉈고, 누군가의 입을 찢었다. 심장을 정타로 멎게 했고, 다리를 감아 전신의 힘으로 뽑아버렸다.
그가 보여주는 건 상대방을 완전히 걸레짝으로 만들 작정을 했을 때나 보일 수 있는 동작들이었다. 그걸 저리 능숙하게 펼친다는 건, 그의 손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단 소리다.
팔 한 짝이 없는 탓에 균형 감각 문제도 있을 텐데, 타격 부분에서는 흠잡을 데 없이 동작이 매서웠다.
광노는 자신의 아는 모든 동작을 펼치자 헉헉대며 땀을 흘렸다.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비굴한 표정을 지었다.
“너, 너무 오랜만이라… 그리고 팔도 하나 없어서 못 보여드린 게 많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나름 괜찮더군. 심심하던 찰나에 재밌는 유흥거리였다.”
“그, 그럼… 며, 면천되는 것입니까?”
8번 광노의 두 눈에 기대의 감정이 번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그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하고 있었다.
‘아니야, 이자는 면천 되어선 안 돼.’
박투술에서 피냄새를 맡은 메시가 말리려는데, 돌연 에레브의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하하!!”
에레브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리 사람이 좋아 보이나? 하하, 그렇게 안 생겼는데 아주 깜찍한 녀석이군!”
“예, 예?”
“아헨탈 광산에 팔리는 놈들은 웬만하면 극악 범죄자이거나 크나큰 죄를 저지른 놈들이지. 내가 그것도 모를 줄 알았나? 농노 하나를 때려죽여서 왔다고? 크하하! 나보고 그 말을 믿으란 말이냐! 이런 멍청한 놈!”
역시 에레브는 에레브였다. 진작 약자멸시로 사기를 꿰뚫어 본 모양이었다.
“꺼져라! 나머지 한쪽 팔도 잘리고 싶지 않으면!”
“으, 으으으으..!”
8번 광노는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인사도 남기지 않고 기도원실을 빠져나갔다. 에레브는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아쉽군, 덤벼들었으면 멱을 따버렸을 텐데. 그래, 박투술은 만족스럽게 감상했고?”
“네. 알고 있으면 근접전에서 꽤 도움이 될 거 같더군요.”
“그래? 그럼 저것도 따라 할 수 있겠어?”
‘저것’도? 뼈가 있는 말이었다. 메시는 대충 상황을 눈치챘다.
‘라망 경이 말을 했나보군.’
왠지, 이 공자가 너무 적절한 순간에 박투술을 권유하더라니.
라망은 메시가 마나를 혼자 깨우치고, 아헨탈 검술을 바로 따라 할 정도의 오성을 지녔다고 착각했다. 그 얘기가 에레브의 귀에도 들어간 거 같았다.
“그래서 시범을 보이라고 한 겁니까?”
“네가 말하면 이상하잖아? 앞으로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내가 도와줄 테니까.”
솔직히 이번 건 메시도 좀 감동했다.
그 괴팍하고 성격 더러운 인간이 여기까지 배려할 정도로 자라다니…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 둘의 대화를 듣던 에레나는 뭔 소리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둘만 아는 비밀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때, 기도원장이 난처한 얼굴로 들어왔다.
“저… 에레나 님.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네? 환자가 더 들어왔나요?”
“아뇨, 그게 아니라… 교단에서 사제들이 왔습니다.”